[사설] 세종·충청으로? 또 서운해지는 경기·인천·서울

대통령선거만 오면 어김없이 이런다. 상대적으로 민주당 쪽 주장이 강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쪽도 다를 것이 없다. 경기지사 출신들도 거침없이 가세한다. 바로 세종·충청권으로의 행정·기관 이전 구호다.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가 시작이었다. 20년도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대통령실·국회, 대법·대검이다. 식상하지만 언제 들어도 불쾌하다. 경기·인천·서울에는 박탈이다. 지난 13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경남 출신인 그가 세종시청에서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그다. 노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을 되살릴 장소로 선택한 모양이다. 일성은 예상한 대로 ‘세종시 완성’이다. 대통령실을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헌법 개정과 특별법 제정 등도 약속했다. 차기 대통령의 직무를 아예 세종시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충청표를 구애하는 ‘세종팔이’다. 이 대열에는 현직 수도권 단체장도 가세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다. 지난 2월 한국지방자치학회 학술대회에서 특강을 했다. “대통령실과 국회는 세종시로,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충청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사법·법원까지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를 ‘노무현 (전)대통령이 미처 하지 못했던 사업’이라고 했다. ‘충청’에 공들여온 그다. 새로울 건 없다. 18대 경기도지사 이재명 전 대표도 한목소리다. 지난 대선부터 그랬다.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 추진, 대통령 세종 집무실 설치를 약속했다. 당 대표 때도 행정수도 이전 재추진을 지시한 바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끼어들었다. 지난 3월 중순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말했다. “청와대, 여의도 국회를 합친 명품 집무실을 (세종시에) 구축하겠다.” 중원의 지배자가 대권을 잡는다고 했나. 충청 잡기 경쟁이다. 국민의힘 쪽은 탄핵 충격이 아직 깊다. 공약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 다만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입은 주목된다. 8년간 경기도지사였다. 재임 중 했던 말이 있다. 2010년 1월14일 경기언론인클럽 초청 특강에서다. 세종시 정책에 대해 “국토를 남북으로 나눠 놓고, 다시 수도를 4개로 찢는 나라가 어디 있나”며 비판했다. 당시와 현재 상황은 다르다. 입장이 달라졌을까. 그라고 다를까 싶기는 하다. 식상하고 진부하다. 새로울 것도 없고, 충격받을 것도 없다. 어차피 기관이란 기관은 다 빼갔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기관도 없다. 국회 분원과 대통령 집무실도 그렇다. 세종시에 사 둔 부지로 가져 가면 끝이다. 뭐가 새롭다고 떠들고 유난을 떠나. 그저 충청에 잘 보일 대선이 왔을 뿐이다. 수도권 홀대의 시간이 또 왔을 뿐이고.

[사설] ‘인천 공약’ 없던 일로... 더 이상 요술방망이 아니다

대통령의 중도 하차로 폐기 수순으로 가는 게 많다. 2022년 대통령선거 공약도 그렇다. 후보들마다 대동소이하긴 했지만 당시 ‘인천 공약’도 화려했다. 다른 지역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로만 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28개 사업 중 1개 정도만 ‘이행 완료’다. 사실 그 이전, 이전에도 ‘공약’이 늘 그러하긴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인천 7대 공약’도 없던 일이 됐다. 7대 공약의 28개 세부 사업 중 1개 사업만이 ‘완료’ 판정을 받았다. 서해 5도 어장 확대 및 조업시간 연장이다. 나머지 27개는 여전히 ‘일부 추진 중’이다. 7대 공약 중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D노선 Y자 및 GTX E노선 신설이 으뜸이다. 그러나 이 공약은 현재 국토교통부가 12월께 마련할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그 첫 단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예측조차 어려운 상태다. 경인선·경인고속도로 인천구간의 지하화도 공약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국토부의 철도 지하화 선도 사업 대상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분간 사업의 추진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수도권매립지가 옮겨갈 대체매립지 조성도 공약했다. 그러나 3차 공모까지 실패한 상태다. 국무총리실 산하 전담 기구 설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 제2의료원 설립은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영종 국립대학병원 유치는 사실상 백지화 수순에 놓여 있다. 인천내항 1·8부두 재개발은 유정복 인천시장의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중요한 앵커시설 유치 등은 늦어지고 있다. 서북단 접경지역 주민 삶의 질 향상도 제자리걸음이다. 강화 주민들이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에 시달려도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6·3 조기 대선 후보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할 ‘인천 공약’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사실 별무관심이다. ‘또 그러다 말겠지’ 정도로 여긴다. 한 표가 아쉬운 대선 후보들이니 무언들 못 들어줄 것인가. 그래서 선거 때만 반짝 통하고 마는 지역 공약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먼저 최소한의 합리적인 어젠다 선정이 중요해 보인다. 인천시민 의견의 최대공약수가 반영된 실현 가능한 현안 말이다. 지금까지는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도 모를 사업도 없지 않았다. 단순히 국비 지원 규모만 겨냥한다면 공약(空約)이기 쉽다. 다른 지역들도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 공약 다 지키면 나라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공약이 더 이상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지지대] 일상 파고든 최악의 변수들

상수(常數). 수식에서 변하지 않는 값을 뜻한다. 항상 일정한 값을 갖는 수. 변수(變數).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 어떤 관계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값으로 변할 수 있는 수를 의미한다. 상수와 달리 예측이 어렵고 그만큼 대비도 힘들다. 우리의 일상 속, 최악의 변수라 여겨질 만한 각종 재난 사고가 불청객처럼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3월24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서울 강동구 명일동 인근 사거리에서 발생한 폭 20m, 깊이 18m 규모의 대형 싱크홀. 이날 여느 때와 같이 평범했던 퇴근길 도심과 30대 오토바이 운전자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지난 11일,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 붕괴 사고. 인근에 위치한 60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교회 등 시민들의 생활공간과 인접한 현장. 당시 붕괴 우려 조짐을 인지한 시공사 측의 작업 중단 이후 15시간 만에 도로가 ‘와르르’ 주저앉았다. 여러 상황과 변수를 계산한 뒤 결정한 시공사 측의 보강 공사. 이 판단에서 정작 공사를 멈춘 ‘붕괴’ 가능성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강 공사에 투입된 작업자가 매몰된 지 수일째 생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되는 끔찍한 참사를 예견하면서도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11년 전 오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 단원고 학생 및 교사 339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을 태운 청해진 해운 소속 세월호 여객선이 짙은 안개를 뚫고 오후 9시 인천항을 출발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제주를 향하고 있었을 당시,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역대 슬픔과 분노로 기억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인 이선민씨가 말했다. “참사는 사람을 가려 오지 않는다. 이번에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

[문화산책] 우주에 새긴 페르소나

1960~70년대는 SF영화와 문학의 인기 그리고 록 음악의 부흥이 만나면서 가장 특별한 문화적 융합이 일어났던 시기다. 당시 SF는 비디오, 커버 아트, 우주복 등의 테마에서뿐만 아니라 전자 사운드의 음악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는 그런 융합을 주도한 인물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9일 전인 1969년 7월11일 보위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노래는 ‘메이저 톰’이라는 상상의 우주 비행 조종사가 우주 미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보위는 1968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큰 감명을 받았고 노래 제목은 그 제목을 변주해 스페이스 오디티로 결정했다. 보위는 이 우주 영화를 통해 얻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영감을 평생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겼다. 그 후 보위는 깡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자기의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알라딘 세인’ 그리고 ‘씬 화이트 듀크’ 등으로 변신해 우주에 홀로 버려진 이른바 소외된 존재의 이미지를 쌓는다. 1972년 정규 5집 앨범 ‘화성에서 온 거미들과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성쇠’에서 지기 스타더스트를 소개한 이후 영화 ‘지구에 떨어진 남자’(니컬러스 로그 감독·1976년)에 출연하기도 했고 1973년 4월 발매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알라딘 세인’에서는 말 그대로 알라딘 세인으로 변신해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1976년 정규 10집 앨범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을 발매하면서 ‘씬 화이트 듀크’를 세상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페르소나들은 록 음악, 드라마,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알라딘 세인은 패션, 젠더의 모호성, 화려한 퍼포먼스가 결합된 글렘 록의 시초가 됐으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에서는 보위가 직접 열연한 FBI 요원 필립 제프리스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거기서 제프리스는 현실과 꿈, 시간과 정체성의 경계에서 소외된 존재로 설계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에서는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위가 니콜라 테슬라로 등장한다.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의 실루엣은 씬 화이트 듀크에서 따온 것이다. 닐 게이먼 작품 ‘샌드맨’의 ‘루시퍼 모닝스타’ 역시 보위의 페르소나로부터 영향을 받은 캐릭터다. 페르소나와 더불어 그의 영향력은 상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과학 세계에도 가닿았다. 2008년 독일의 거미학자 피터 예거는 새로 발견된 사냥거미에게 ‘헤테로포다 데이비드보위’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2015년에는 스페인에서 2008년 발견된 소행성의 이름을 ‘342843 데이비드보위’라고 최종 결정짓기도 했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알라딘 세인의 표지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그 얼굴에는 번개 모양이 그려져 있다. 벨기에 천문학자들은 이 번개 모양을 일곱 개의 별로 구성한 후 그 별자리를 2016년 1월13일 제정해 보위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보위가 타계한 1월10일로부터 3일이 지난 후의 일이다. 2018년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 로켓을 이용해 테슬라 로드스터를 우주로 발사했다. 당시 테슬라 로드스터에서는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정말로 ‘스타맨’이 돼 자신의 노래와 페르소나를 실제 우주에 새긴 것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그렇게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 페르소나에게서 온다.

[이슈&경제] 2025년 뉴노멀, 트럼프

요즘에는 사용 빈도가 뜸해 보이는데 얼마 전까지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였다. 뉴노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경제적 기준이나 표준을 의미하는 개념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 규제 강화 등이 주요한 뉴노멀로 논의됐다. 글로벌 경제의 현재 상황을 보면 ‘트럼프’가 그 자체로 뉴노멀의 범주에 포함돼야 할 것 같다. 트럼프는 2기 출범 직후부터 현재까지 관세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의 아이콘인 트럼프를 새로운 표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 현재의 상황은 표준이라는 것이 기준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렵다는 점 이외에 확실한 것이 없다는 점을 우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 정세를 보면 당분간 트럼프가 글로벌 경제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취임 첫날 동맹국인 멕시코, 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주변국을 긴장시킨 트럼프는 동맹국에도 예외 없는 관세 정책으로 우리 기업을 불확실성의 공포에 빠뜨렸다. 지난 2일 있었던 상호관세 발표에서는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 규모를 기준으로 최대 50%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는데 중국에는 34%, 대표적 대미 무역흑자 국가인 일본과 우리나라에는 각각 24%, 25%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중 간의 관세 갈등으로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던 9일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다소 진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상호관세 발표 시 급락했던 국내외 증시는 9일 유예 발표로 급등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다소 진정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이 언제 어떻게 또 달라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지지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고 있다. 국내 주요 일간지의 한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주변의 억만장자 지지자들마저 ‘상호관세가 너무 성급하고 공격적이다’, ‘심각한 정책적 실수다’, ‘국가 간의 신뢰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 등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라고 밝혔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벌어진 미국 국채 폭락 사태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90일 유예 조치’가 발표되며 다소 진정되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세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다음 무기는 환율이라는 이야기들이 벌써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8일 뉴욕타임스 등의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가치 조정을 위한 다자간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그 유명한 1985년의 ‘프라자 합의’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아찔하다. 우리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으로 가장 중요한 대외 변수인 트럼프와 그가 촉발한 글로벌 경제질서의 급격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분간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의 지배력이 큰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트럼프의 경제 정책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를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시급하다. 정치적 혼란이 전략적 대응의 공백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천자춘추] 슈만의 사랑이 담긴 ‘피아노 4중주’

슈만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음악가들의 여러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부모님의 뜻대로 안정적 생활을 위해 법대에 입학했던 청년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스승인 비크를 만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른손에 영구적인 부상을 입으며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좌절됐고 그 대신 스승의 외동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장래가 밝던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클라라가 아직 성년도 되지 않았기에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 스승 비크와 법적 투쟁까지 벌인 끝에 결혼하게 된 슈만은 출판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에 따라 문학적인 재능도 있었기에 피아노 대신 음악평론과 작곡을 통해 생계를 꾸린다. 신음악지의 편집장을 맡아 주필로서 쇼팽, 베를리오즈, 브람스 등을 찬사해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취약했던 집안 내력에 따라 양극성 장애를 앓았던 슈만은 조증이 왔던 시기에는 왕성한 작곡활동을 보여줬으나 울증이 왔던 시기에는 작곡을 전혀 못하기도 했다. 1840년 클라라와 결혼한 슈만은 정신적 안정을 얻고 ‘가곡의 해’라 불릴 만큼 그해 많은 가곡작품을 쏟아내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1841년에는 보다 거대한 규모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1842년에는 ‘실내악의 해’로 불릴 만큼 피아노 4중주와 피아노 5중주 등의 걸작을 발표했다. 특히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4명이 주고받는 내밀한 사적 대화 같은 피아노 4중주 op.47은 요즘 성격유형검사(MBTI)에 따르면 ‘극 I’(내향적 성향)였을 듯한 슈만이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신혼의 달콤함 속에서 부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클라라를 위해 피아노를 포함시켜 은은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귀족의 살롱 중심의 음악회에서 벗어나 교향곡이 중심이 되는 거대한 공공음악회가 성행하기 시작한 당대에 바그너, 베를리오즈 등의 신독일악파에 의해 고루하다고 비판받던 장르인 실내악은 이러한 슈만과 브람스 등의 걸작 덕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특히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낮은 음역에서 가슴을 잔잔히 적시는 첼로의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해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이어지는 따뜻한 선율이 일품이다. 찬란한 봄 로맨틱한 슈만의 사랑을 생각하며 들어보기 적절한 클래식이리라 확신한다.

[인천시론] 글로벌 인천의 매력적 관광자원 ‘전통시장’

최근 들어 각종 도시여행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야시장 등 먹거리 가득한 전통시장이다. 21세기 도시들은 도시 간 경쟁 속에서 도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으며 인천도 이를 위해 다양한 도시관광 전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 시대에도 여전히 전통시장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상업공간을 넘어서 지역공동체의 중심이자 역사와 문화의 보존 공간이며 도시관광의 중요 자원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본 와카야마현의 인공섬 ‘마리나시티’에 위치한 수산시장인 구루시오시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와카야마 시정부는 쇠락해 가는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1990년대 초에 약 49만m² 규모의 인공섬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그 중심부에 일본의 전통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전통시장을 배치해 지역경제의 구심점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핵심적 앵커시설로 계획된 구루시오시장은 풍부한 해산물과 특산품으로 유명한 와카야마현의 지역 자원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고, 참치 해체쇼 등 재미있는 이벤트와 함께 신선한 해산물을 현장에서 바로 맛볼 수 있는 바비큐 코너 등이 마련돼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한국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도시관광에서 멋지고 세련된 신도시의 현대적인 건축물에서보다 지역의 맛스러운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장소가 기억에 강하게 인식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래서 도시 여행객은 빠지지 않고 전통시장을 찾게 되는데 정작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그 정체성을 잃거나 도시개발 사업에 밀려 흔적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통시장은 소상공인의 생계와 관련되는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있겠지만 이웃 간의 교류와 공동체 문화 형성 등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 보존의 장소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시설 노후화나 접근성 등 현실적 한계를 지녔지만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공간마케팅 등 좀 더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구도심에 위치한 전통시장은 재개발사업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고 개발사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사라지거나 소규모 슈퍼처럼 한편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또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시장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청년의 창업을 지원하고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표로 청년몰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가 일부 지역에서는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저조한 매출, 상인들과의 갈등 등 여러 이유로 현재는 이렇게 조성된 청년몰은 빈 상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교통이나 편의시설 등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즐길거리와 문화적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매력적인 도시로서의 장소 만들기 핵심전략으로 전통시장은 소중하고 귀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구루시오시장처럼 도시를 계획함에 중심부에 전통시장을 배치하고, 특색을 살리는 공간디자인과 지역사회와 연계된 프로그램 등 아낌 없는 투자와 지원을 통해 도시의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항과 항만을 지닌 글로벌 도시로의 전통시장은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지역자원이며 정책적, 시민적인 측면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의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기고] 청소년을 노리는 사이버 도박

‘한 번만 해보자’는 호기심이 ‘멈출 수 없는 습관’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사이버 도박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중독성과 범죄성을 동반한 위험한 덫이다. 과거 도박이 어둠 속에서 몰래 이뤄졌다면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청소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공개 채팅방을 통해 유입되는 불법 스포츠토토, 온라인 바카라, 슬롯머신 게임, 게임머니 환전 사이트 등은 외형상 단순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청소년을 노리는 불법 사이버 도박이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나 ‘용돈벌이’로 시작하지만 결국 돈을 잃고 관계가 무너지고 학교생활과 미래까지 흔들리는 결과를 낳는다. 청소년들이 사이버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친구의 소개, 경제적 유혹, 손쉬운 접근성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SNS와 메신저를 통해 도박 사이트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청소년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의 금전까지 손대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절도, 중고물품 사기, 대리 입금 등과 같은 2차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아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경기남부경찰청은 사이버 도박에 연루된 청소년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난 1일부터 5월31일까지 청소년 도박 자진 신고제인 ‘고(GO)-백(BACK)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처벌보다는 선도와 회복을 중심에 둔 제도로 도박에 참여했거나 관련 정보를 아는 청소년이 ‘117 신고센터(전화)’에 자진 신고할 수 있다. 자진 신고자는 수사 및 처벌에서 일정 부분 감면받을 수 있으며 전문 상담, 예방 교육, 병원 치료 등 종합적인 회복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히 법적 처벌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숨김없이 말해 청소년들이 도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실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만두는 용기이며 청소년들이 문제를 혼자 끌어안지 않도록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나아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이니 만큼 정부와 지역사회는 예방교육과 지속적인 지원 체계를 강화해 청소년들이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청소년 도박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해 도박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이럴 수도...?

[사설] 정당과 대선 후보자들은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야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 선고함으로써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오는 6월3일 실시된다. 각 정당은 이미 대선 후보자 당내 경선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 당내 경선 일정을 확정하고 오늘부터 후보자 등록을 받는다. 각 정당은 대선에 출마할 최종 후보자를 이달 말 또는 5월3일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일 오후부터 대통령 후보자 예비 등록을 받고 있으며 본선에 출마할 후보자 등록은 5월10~11일이며, 선거운동은 5월12일부터 6월2일까지로 22일 동안 전개될 예정이다. 내달 중순경부터는 각 후보자의 공약이 적힌 선거벽보가 거리에 부착되고 유권자들은 책자형 선거홍보물을 받는다.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국가 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국 혼란은 지속되고 경제는 침체되고 있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폭탄 등 국제 정세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초불확실성 시대로 인해 국민들은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87년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은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충분한 여론 수렴없이 졸속으로 개헌된 87년 헌법은 5년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했으나,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후유증만 발생해 국가 발전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줬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개헌을 약속했지만, 집권 후 개헌 약속은 흐지부지돼 오늘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그동안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자는 개헌 논의는 무성했다. 특히 이번 대선이 개헌에 적기라는 공감대는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 간에 형성돼 있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이 54%나 된다. 지난 6일 우원식 국회의장도 “다시는 이런(비상계엄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며 “이번 대통령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 의장의 제안은 사실상 민주당의 반대로 사흘 만에 철회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자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할 후보자와 소속 정당은 대선 공약에 개헌의 일정·내용 등을 밝힌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 유권자로부터 심판을 받고 당선 후 반드시 공약대로 이행하기 바란다.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청산, 제7공화국을 열기를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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