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신발 두 짝

신발 두 짝 문삼석 신발 두 짝이 나란히 누워 소곤소곤 얘기했대요. -우린 일할 땐 따로따로지? -그렇지만, 쉴 땐 이렇게 함께잖아?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어느 집이건 신발장을 열면 신발 두 짝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큰 신발은 아빠 신발, 조금 작은 신발은 엄마 신발, 그 옆에 놓인 누나 신발, 형 신발 그리고 내 신발. 모두모두 나란히 놓여 있다. 이 동시는 바로 그 두 짝의 신발을 노래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두 짝 신발의 주고받는 대화다. ‘-우리 일할 땐/따로따로지?/-그렇지만, 쉴 땐/이렇게 함께잖아?’ 시인은 신발을 통해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침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은 후 각자 일터로 떠났다가 저녁이면 다시 돌아오는 가족의 이야기다.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아 차라도 한 잔씩 나누며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 이야기 가운데는 보람찼던 이야기도 들어있을 테고, 힘들었던 이야기도 들어있을 테고, 속상한 일도 들어있을 터. 가족은 거기서 삶의 즐거움과 함께 행복을 느낄 뿐 아니라 고단함과 피로를 씻기도 한다. 그리고 또 있다. 내일의 희망도 서로서로 주고받는다. 이 동시를 읽다 보니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그림이 생각난다. 가난 속에서도 삶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 시인은 바로 우리들 모든 가정의 평화로운 저녁을 소망하며 이 동시를 쓴 건 아닐까 싶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현대의 트렌디한 도자기를 한눈에… 국내유일 도자 박람회 ‘경기도자페어’ 12일 개막

도자기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는 국내 유일의 도자 전문 전시회 ‘경기도자페어’가 막을 올린다. 한국도자재단은 오는 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코엑스 B홀에서 이 같은 전시회를 연다. 특히 최신 인테리어 경향을 소개하는 홈스타일링 전시회 ‘서울 홈·테이블데코페어’가 동시에 열려 현대 삶의 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도자기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주거생활 양식도 경험할 수 있다. ‘요즘도자 THESE DAYS CERAMICS’를 주제로 한 올해 전시는 ▲전시·판매관 ▲기획전시관 ▲홍보관 등으로 구성된다. ‘전시·판매관’에는 경기도 요장 총 64곳이 참여한다. 트렌디한 생활 도자기부터 전통·작품 도자기, 장신구, 오브제 등 일상 속 다양하고 감각적인 도자 상품을 선보인다. 관람객들은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취향에 따른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기획전시관’에는 올해의 도자 테이블웨어 트렌드를 만나볼 수 있는 ‘요즘 도자’ 기획전시가 열린다. 기획전시관 1, 2관에서는 플라워랩 그로브의 하수민 디렉터가 참여해 자연의 도자기라는 의미를 가진 ‘자연도’를 주제로 색을 활용한 전시를 연다. 흑과 백 그리고 자연의 상징인 초록색으로 자연과 ‘요즘도자’의 조화를 만나볼 수 있다. 기획전시관 3관에는 푸드스타일링 스튜디오 차리다의 심승규 디렉터와 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도자, 정물로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공간을 연출한다. 요즘 도자의 예술적 아름다움과 함께 도자가 단순히 정적인 오브제를 넘어 감정을 담은 일상품임을 보여준다. 기획전시관 4관에서는 아이오이(IOE)의 정찬희 디렉터가 ‘A PiECE OF SWEET’을 주제로 디저트 접시, 커트러리, 캔들 등 도자 오브제를 조명해 ‘디저트의 달콤함을 담는 하나의 CERAMiC PiECE’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회에선 다양한 강연·시연 행사가 마련돼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12일에는 하수민 디렉터의 ‘쓰임이 있는 도자기’, 13일에는 이영숙 셰프의 ‘우리시절 음식과 도자기’, 14일에는 김은아 디렉터의 ‘인생을 아름답게, 차리다’, 14일에는 정찬희 디렉터의 ‘MEET YOU AT ①NE TABLE’ 등이 진행돼 도자기의 역사와 실용을 아우르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밖에 ‘홍보관’에는 ‘경기도자미술관 창작공방’, ‘경기도자박물관 공예의 언덕’,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등 한국도자재단 입주작가의 작품 전시와 함께 ‘경기도형 스마트혁신 도자공방 지원사업’ 전시관이 운영된다. 한국도자재단은 국내 대형 유통사와 홈쇼핑 등을 초청해 경기도자페어 참가 요장과의 만남을 연결하는 ‘구매상담회’와 더불어 경기도자의 판로 개척과 지속적인 마케팅을 지원하는 ‘네이버 쇼핑라이브’도 진행한다. 최문환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올해 경기도자페어는 경기도의 우수한 도자 업체와 작가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도자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관람객들이 도자 문화를 더욱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라고 말했다.

최재혁·앙상블블랭크, 현대음악 매력 발산…‘BBC 프롬스 코리아’서 눈길 [공연리뷰]

음악가 최재혁과 앙상블블랭크가 객석과의 소통법을 연구하는 현대음악의 매력을 선보였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 BBC 프롬스 코리아가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올해 한국 공연은 2016년 호주, 2017년 두바이, 2019년 일본에 이은 아시아 네 번째 순서로 마련됐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프롬스 공연은 영국에서의 핵심 요소를 가져오면서도 현지 관객의 정서와 여건에 맞춘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구조다. 그 가운데 3일 오후 7시30분 공연장을 수놓은 무대는 음악가 최재혁이 지휘·작곡·예술감독을 맡아 주목받았다. 그가 중심이 돼 2015년 창단한 앙상블블랭크는 국내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다. 또 이날 무대에는 세계적인 클라리넷 연주자 제롬 콤테도 함께 동참했다. 1부는 조커 분장을 한 트럼본 연주자가 베리오의 ‘트롬본 솔로를 위한 시퀜자 Ⅴ’를 선보이면서 시작했다. 그는 객석 속에서 출발해 통로와 무대를 오가며 경계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지는 순서는 독일 출신 현대음악 작곡가 알렉산더 슈베르트의 ‘심각한 미소’. 지휘자,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퍼쿠셔니스트가 모두 손목에 센서를 부착했다. 격렬한 손짓과 몸부림이 소리로 변환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연주라는 행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악기를 두드리거나 현을 문질러야만 연주일까. 첼로의 현을 떠난 활이 허공을 가를 때 생성되는 불규칙한 전자음이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번쩍이는 조명, 무너지는 화음, 반복되는 몸짓들을 두고 과연 음악이고 연주라고 할 수 있을까? 음악과 연결되는 여러 감각을 화두로 내세운 퍼포먼스는 다음 무대를 통해서도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10번 B♭장조 ‘그랑 파르티타’ 중 Ⅲ. 아다지오’가 어디에서 울려 퍼졌는지 떠올려 보면 된다. 바로 무대가 아닌 객석 뒤편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음악이 생성되는 곳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관객들의 감각 체계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최재혁 예술감독과 앙상블블랭크가 마련한 1부 무대는 객석을 향해 익살스런 질문을 던졌다. 음악을 음악답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무대를 무대답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자유롭게 생각해볼 기회를 던져준 셈이다. 이어지는 2부에선 제롬 콤테의 클라리넷이 무대로 합류했다. 에릭 사티의 ‘백사시옹(앙상블 버전, 편곡 최재혁)’, 최재혁의 클라리넷 협주곡 ‘녹턴Ⅲ’, 베르트랑의 ‘스케일’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현대음악의 흐름 속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찾아내고픈 연주자와 예술감독의 열망이 담긴 무대라는 점에서 1부와 연결고리가 느껴졌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모토로, 검증된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와 협업하는 방안도 고려한 풍성한 무대를 준비하고자 했다”는 최 감독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무대였다.

생생한 현장 ‘순간포착’... 경기지역 보도사진전

한 장의 사진이 증명하는 역사의 기록과 감동이 한데 모인 전시가 열린다. 한국사진기자협회 경기지회는 오는 13일부터 19일까지 경기도청 1층 로비에서 ‘2024 경기지역 보도사진전’을 개최한다. 올해로 28회를 맞은 전시에는 경기일보를 비롯해 경기신문, 경인일보, 기호일보, 인천일보, 중부일보, 뉴시스, 뉴스1, 연합뉴스 등 한국사진기자협회 경기지회 소속 사진기자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취재해 담아낸 역사와 삶, 사건·사고와 사회적 이슈 등 보도사진을 선보인다. 전시에선 경기일보 김시범 기자의 ‘어미 잃은 야생동물 새끼들의 슬프고도 귀여운 눈, 눈, 눈’과 이산가족 고령화가 가속화 된 가운데 시급한 상봉의 필요성을 인물 사진으로 알린 조주현기자의 ‘이산가족 고령화 가속, 상봉 시급’ 등 사건·사고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알린 보도사진을 만날 수 있다. 또 ‘시각장애인도 윷놀이 즐겨요’(윤원규 기자), 부산 KCC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경기에서 승리를 알리는 골을 넣은 선수가 환호하는 순간을 담아낸 ‘좋았어! 승기 잡았어’(홍기웅 기자) 등 일상에서 만나는 즐거움과 환호의 순간도 생생히 전한다. 수천 개의 단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 보도사진을 통해 사건·사고, 기후 변화, 인권, 사회적 현상 등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임열수 한국사진기자협회 경기지회장은 “보도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그 이면의 사건과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다.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기시나위, 21일 송년음악회 ‘사유하는 계절’로 한해 마무리

경기아트센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한해를 마무리하며 소중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연말 콘서트를 마련했다. 경기시나위는 오는 21일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송년음악회 ‘사유하는 계절’을 무대에 올린다. ‘사유하는 계절’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며 계절 한 편에 담긴 소중한 추억들을 사유한다는 의미를 담은 따뜻한 감성의 연말 콘서트다. 매년 경기시나위의 명곡 시리즈로 국내 최정상급 협연자들이 함께했다. 이번 공연은 올해 경기시나위가 위촉초연한 대표 곡인 이창의 작곡의 ‘선경’과 손다혜 작곡의 ‘이화 도화 만발하니’로 포문을 연다. 이어 뮤지컬 레베카, 명성황후, 맘마미아, 팬텀 등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계의 디바 신영숙이 뮤지컬 모차르트의 ‘황금별’과 뮤지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 등을 경기시나위와 함께 선보인다. 또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와 영화음악 시네마천국 OST는 섬세하면서도 패기있고 당당한 연주를 선보이는 클래식계의 젊은 연주자 첼리스트 이길재의 연주로 만나볼 수 있다. 팝클래식 보컬그룹 유엔젤 보이스는 경기시나위와 위촉 초연한 곡 ‘나부코 아리랑’과 ‘You raise me up’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무대를 감싸는 감각적이고 화려한 미디어아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말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릴 예정이다. 김성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4계절에 담겨있는 크고 작은 추억들을 가슴 깊이 사유하며 경기시나위가 선사하는 송년음악회를 통해 따뜻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건강칼럼] 전동킥보드 사고

전동킥보드는 도심에서 빠르고 편리한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보호장비 착용 부족과 함께 과속, 도로와 보도를 넘나들면서 운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보행자와의 충돌 등으로 인한 부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미한 타박상에서부터 심각한 뇌 손상까지 다양한 부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전동킥보드 관련 교통사고는 2020~2022년 약 5천건이 발생해 55명이 사망, 5천600명이 부상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러한 전동킥보드 등과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한 부상과 치료, 보험에 관한 대처법을 알아보겠다. 전동킥보드의 주요 사고 유형으로는 도로의 돌출물, 과속방지턱, 빗길 등이 꼽힌다.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와의 충돌로 인해 부상하는 경우도 많다. 부상으로는 피부 찰과와 멍, 경미한 통증의 타박상과 찰과상, 근육과 인대의 손상인 염좌에서부터 뼈의 골절과 탈구 등이 있을 수 있다. 보호 헬멧을 쓰더라도 뇌진탕이나 두부 외상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경미하더라도 꼼꼼히 살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는 보호장비와 장치가 있어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전동킥보드는 헬멧 외에는 특별한 보호장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작은 충돌이나 낙상에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 이후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며칠 후 증상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사고 후 바로 의료기관을 찾아 살피거나 추후 증상을 인지하면 꼭 증상 부위를 살피고 의료진의 진료와 상담을 해야 추후 후유증상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전동킥보드 등 전동휠은 자동차관리법상 이륜자동차에 해당되며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에 속한다. 다만 전동킥보드는 일반 자동차와 같이 자동차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 보장이 안 되는 보험이 있다. 또 사고 가해자의 약 44.4%가 13세 이상 20세 이하의 청소년으로 나타나 무면허 운전의 경우가 있다. 이때는 무보험차상해특약으로 보상가능할 수 있으니 살펴봐야 한다. 피해자가 교통사고사실확인원을 첨부해 무보험차상해 특약에 가입된 보험사에 신청하면 보험사에서 조사한 후 책임보험 한도 내에서 피해자에게 먼저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가해자(배상책임자)에게 구상을 한다. 자동차보험약관에서는 무보험차상해 특약의 피보험자를 기명피보험자 및 배우자를 비롯해 기명피보험자 및 배우자의 부모와 자녀까지 포함하고 있다. 운전을 하지 않거나 미성년자라 운전면허가 없는 등 본인 소유의 자동차가 없어 가입한 자동차보험이 없어도 배우자, 부모, 자녀 등 자동차보험에 가입돼 있는 가족(형제·자매 제외)이 1명이라도 있다면 무보험차상해 특약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인천시립교향악단, '수험생을 위한 음악회' 개최

인천시립교향악단이 남동문화재단과 함께 오는 13일 남동소래아트홀 소래극장에서 힐링콘서트를 한다. 정한결 부지휘자가 이끄는 이번 공연은 삶에 지친 사람들과 수험 준비로 애쓴 수험생들을 격려할 목적으로 콘서트를 마련했다. 지친 삶을 위로하는 목적으로 시립교향악단은 무엇보다 듣기 편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주제에 맞춰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근심 걱정 없이 폴카’ ▲드뷔시의 ‘달빛’ ▲슈베르트의 ‘마술하프’ 서곡 D.644 ▲베토벤의 교향곡 7번 A장조 작품번호 92, 2악장과 4악장 등을 선보인다. JTBC ‘슈퍼밴드 2’에서 이름을 알린 비브라포니스트 윤현상의 협연 무대도 준비했다. 숲에서의 휴식을 담은 ‘Rest in the forest’, 광활하고 웅장한 우주를 오묘하고 황홀한 사운드로 표현한 ‘은하’ 등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담은 자작곡을 선보인다. 신병철 인천문화예술회관은 “내면의 압박과 쫓기는 시간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전석 1만 원으로 엔티켓, 인터파크티켓, 인천문화예술회관 누리집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수험생은 50% 할인, 전석 5천원에 관람 가능하며 공연은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다.

팔달노인복지관, 시니어 모델 ‘ESG 확산 런웨이’ 성료

수원시 팔달노인복지관이 지난 6일 ESG 실천과 노인인식 개선을 위해 추진한 ‘RE:MAKER ESG 확산 런웨이’를 성료했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통해 진행된 이번 사업은 ‘환경·노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의류 재활용 전문 시니어 모델 양성 프로그램’이다. 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의류를 기부받아 차별화된 ESG를 실천하는 동시에 시니어모델의 활동으로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특히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 수원여대, 광교생태환경체험교육관과 지역주민들의 참여형 사업으로 운영됐다. 이날 ESG 확산 런웨이의 축하공연은 평균 나이 76세로 구성된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 동아리 70+다시‘봄’에서 진행했다. 안혜숙 협회장은 ‘늙어가는 길’ 시낭송을 선보였고, 이어 강민주 강사의 코칭으로 만들어진 ‘촛불잔치’, ‘빗속의 여인’ 무대가 이어지며 관객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어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콘셉트로 시니어모델 14명이 각각 장롱 속 10년 이상 보관한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서는 1부 행사와 기부 받은 의류를 재활용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2부 행사가 진행돼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윤학수 팔달노인복지관장은 “ESG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RE:MAKER’ 사업을 기획했다”며 “행사를 통해 ESG와 노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지역사회,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ESG 복지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8년 3월 개관한 팔달노인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팔달구 어르신과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복지프로그램, 사회체육프로그램 등 사업을 하고 있다.

‘잇몸병’ 방치하면 ‘당뇨병’ 발병 위험 증가…젊은층도 ‘위험’

치아 주변에 염증이 생기는 치주질환이 있으면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균관의대 사회의학과 신명희 교수 연구팀은 2012~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2만9천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당뇨병과 치주질환 사이에 이 같은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9일 밝혔다. 연구팀은 연구 대상자를 4천50명이 속한 ‘당뇨병’ 그룹과 2만5천441명이 속한 ‘비당뇨병’ 그룹으로 나눠 치주질환의 영향을 살폈다. 그 결과 치주질환은 기존 당뇨병 환자에게서 1.51배, 신규 당뇨병 환자에게서 1.74배 더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치주질환이 심하면 신규 당뇨병의 발병 위험도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20~44세 연령대에서 치주질환과 함께 체내 염증수치가 3mg/L 이상으로 높은 경우엔 신규 당뇨병 발병 위험이 23배까지 높아졌다. 잇몸병인 치주질환을 방치하면 구강 내 염증과 세균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진다. 전신 염증 반응이 촉진되고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면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이에 잇몸병을 예방하려면 주로 치태가 쌓여 잇몸병이 발생하는 치아 사이(치간)와 치아와 잇몸의 경계(잇몸선)를 신경써서 양치해야 한다. 하루 3번 이상, 최소 2분 이상 양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신명희 교수는 “치주질환이 심할수록, 당뇨병이 새롭게 발병한 경우일수록, 젊은 연령층일수록, 혈액 내 염증 수치가 높을수록 두 질환 간 연관성이 크다”며 “젊은 시절부터 치주질환을 관리하는 게 당뇨병 예방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강 노벨상 연설, 31년 집필 인생… 내 모든 질문은 ‘사랑’ 향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고요한 음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한강 작가만을 응시하는 가운데, 그가 나지막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시 한편을 읽어 내려갔다. 1979년 4월 여덟 살의 나이에 써 내려간 이 시 이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한강은 ‘쓰는 사람’이 됐다. 한강 작가는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실-빛을 내는 실.” 지난 7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이 주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란 제목의 8쪽 짜리 강연문을 발표했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사랑과 폭력, 삶과 죽음 등에 관한 근본적인 고뇌를 청중과 나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매해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 주간(Nobel Week·5∼12일)에 참석해 자신의 성취물이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노벨 강연(Nobel Lecture)’은 공식 시상식(10일) 이전에 열리지만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지며 노벨상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불린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으로 8쪽 분량의 강연문을 준비한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 근원적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를 청중들과 나눴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쓰던 시기 고통스러운 질문 안에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갔다. 그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서가에서 문득 발견한 ‘광주 사진첩’을 몰래 읽었을 때 솟구쳤던 근원적인 의문과 다시 마주하게 됐다. 5·18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게 된 고통스러운 질문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가,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까지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한강의 이날 강연은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한국 시간으로 8일 새벽 1시부터 약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강연은 노벨위원회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됐으며, 900명 이상이 시청했다. 앞서 한강은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강 작가는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며 ‘문장, 언어, 우리, 실, 빛, 전류’를 키워드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강 2024 노벨문학상 ‘노벨 강연(Nobel Lecture)’ 전문] 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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