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일기 이게 남극이다. 6개월은 밤, 6개월은 낮이 이어지는 곳. 눈 앞에는 온통 하얀색 뿐, 하얀 산과 하얀 바람, 하얀 눈과 눈부신 햇빛 만이 대륙을 덮고 있다. 아마 땅 속을 파보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이상 묵은 눈을 볼 수도 있을 듯,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 거대한 모습을 유지한 채 거기 있는 그런 곳이다. 남극에 여섯 명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무보급으로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는 것. 남위 82도8분 동경 54도58분에 위치한 이 지점은 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까지 1950년대 옛 소련 탐험대만이 단 한차례 가본 적이 있다. 기대작 ‘남극일기’가 19일 드디어 영화팬들을 만난다. 뉴질랜드 로케이션이나 송강호·유지태 등의 화려한 캐스팅, ‘반지의 제왕’의 스태프와 ‘공각기동대’의 거장 가와이 겐지 음악감독의 참여, 그리고 제작비 90억 원의 초대형 예산 등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상반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남극이라는 장소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남극과 미스터리를 함께 빚어놓은 언발란스는 감독의 손을 거치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탄생했다. 감독은 단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남극이라는 땅덩어리 하나로 힘있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 놓고 있다. 풍경이 주는 광활함의 공포는 그 어떤 스릴러의 눈에 보이는 악몽 못지 않게 지독하며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들은 쉽게 부서질 듯 위태로워 슬프다. 이들이 수십일 동안 걷고 먹고 자는 이곳은 언뜻 봤을 때의 마냥 경치 좋은 곳만은 아니다. 고요함은 써늘함의 다른 표현이며 광활함은 막막함의 유사어다. 말이 좋아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 일행들과 비슷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선가 숨진 채 묻혀 있다. 탐험대를 이끄는 대장은 노련하면서도 냉철한 카리스마가 있는 도형(송강호)이다. 최대장의 오랜 파트너이자 지적인 부대장 영민(박희순)과 식사 담당인 근찬(김경익), 통신 담당 성훈(윤제문), 전자장비 담당 재경(최덕문)은 부대원이며 이들의 뒤를 막내 민재(유지태)가 따르고 있다. 순조로웠던 탐험대에 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가 발견되고 부터다. 얼마 뒤 재경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는 도저히 발병할 수 없는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낙오하고 대원들은 빨리 그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탐험을 계속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대원들을 다그치는 대장과 논리적 분석으로 그를 따르는 부대장, 여기에 근찬과 성훈은 재경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철수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상황은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일어나며 점점 극으로 치닫고 대원들은 원인모를 광기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어느새 논리적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순했던 막내의 눈은 발갛게 충열되며, 대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앞뒤 안가리는 사이코가 되어 간다. 남극의 묘한 기운은 얼음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텐트밖에서, 그리고 언덕 너머 어디에서 이들을 지켜본다. 초반에 인물들을 설명하며 워밍업을 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속도를 올리다가 결국 광기로 치달으며 폭발을 한다. 스릴러의 스토리는 감독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듯, 여기에 송강호, 유지태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두 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은 지루함 없이 힘있게 흘러간다. 15세 이상 관람가. ■프락치 장마철쯤 돼보이는 무더운 여름. 러닝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변두리 여관방에 누워 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고 이 땀은 텁수룩한 수염을 타고 눅눅하게 흐른다. 방 안에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여관의 사람들은 이 두 남자를 ‘아마 동성애자 커플일 것’이라고 오해한다.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 ‘프락치’가 20일 개봉한다. 밴쿠버와 로테르담(국제비평가상),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옥천전투’와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로 알려진 황철민 감독의 7년 묶은 야심작이다. 두 남자 중 나이 들어보이는 쪽은 정보기관의 기관원(양영조)이다. 젊은 쪽은 이미 정체가 드러나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인 프락치(추헌엽). 영화 감독 지망생이던 이 프락치는 이제 사랑하던 사람 앞에 다시 서지 못할 상황에 놓였고 기관원의 감시에 묶여 여관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다. 벽장 하나, 거울 한개밖에 없는 이 여관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밥 먹는 것 말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소지품이라는 것은 프락치의 비디오 카메라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정도. 무료해하던 두 사람은 ‘죄와 벌’을 대본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극을 한다. 얼핏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도 갇힌 자와 가둔 자다. 이는 이들의 ‘영화 찍기’ 놀이에 옆방의 배우 지망생이 합류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 사람은 함께 술도 마시고 잠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는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감독은 독일 유학시절 실제로 만났던 학원 프락치에게서 영화의 모티브를 따왔다. 상영시간 100분. 15세 관람가. ■코치 카터 고등학교 농구팀 선수들에게 학교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별의미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이 팀이 지난 4년 동안 지역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반 학생들의 극소수만이 대학 진학의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수업에 참석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 아이들에게 삶 자체에 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코치 카터’(Coach Carter)가 13일 개봉했다. 흔하지도, 뻔하지도 않은 스토리는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장점. 사무엘 L. 잭슨의 카리스마와 이에 반하는 아이들의 개성이 잘 드러난 데다, 줄거리가 단지 운동이외의 꿈 얘기로 진전을 보는 것은 이 영화를 범작 이상으로 만들어 놨다. 왕년의 고교 농구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금은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켄카터(사무엘 L. 잭슨)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꿈이라면 고등학생 농구 선수인 아들 데미언(로버트 리처드)이 좋은 선수로 자라나는 것 정도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모교 리치먼드 고등학교의 농구팀 코치 제의가 들어온다. 안정된 생활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갈등을 하던 카터는 결국 팀을 맡기로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팀은 지구 내 꼴찌를 도맡아 할 정도인데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에 실력도 ‘꽝’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패배의식. 유색인종 거주지역에 위치한 이 학교에서 농구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이들에게 ‘맘 잡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하는 수단 이상이 못된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가난의 고통으로 아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어 가고, 꿈이라는 흔한 단어는 이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아이들과 마주 선 카터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운다. 하나는 팀에게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주는 것, 나머지는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혹독한 훈련 끝에 결국 농구 팀은 승승장구.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는 학업쪽에서 발생한다. 아이들이 여전히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약속대로 체육관을 폐쇄하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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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5-05-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