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친절한 금자씨.올림포스 가디언

#친절한 금자씨 금자씨의 ‘친절한 복수극’ 박찬욱 감독의 떠들썩한 신작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가 29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감독 스스로의 입을 통해서, 혹은 기대에 찬 지지자들에 의해 복수 트릴로지의 마지막편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삼부작의 전작 ‘올드보이’에 비하면 스타일의 기름기가 한층 빠졌으며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서는 비장미가 줄어든 느낌이다. 화려한 스타일과 힘있는 캐릭터라는 감독 특유의 재능은 어김없이 영화에 잘 드러나 있지만 복수극하면 기대되는(혹은 ‘올드보이’로부터 기대되는) 장르적인 재미가 풍부한 것은 아니며 동시에 건조하고 소름끼치는 복수 이야기도 아니다. 제목과 영화사의 이름을 빌려 표현하자면 영화속에서 친절함은 지나치면서도 동시에 갑작스러워 모호함을 담고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금자(이영애)는 스무살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된다. 어린 나이,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검거되는 순간에도 언론에 유명세를 치른다. 13년동안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보내는 금자. “기도는 이태리 타올이야. 아기 속살이 될 때까지 빡빡 문질러서 죄를 벗겨 내”라는 식의 천사 같은 얘기가 나긋나긋한 말투와 친절한 미소 속에서 흘러나오니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붙여진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한명 한명 열심히 도와주며 13년간의 복역생활을 무사히 마친 금자, 출소하는 순간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해온 복수 계획을 펼쳐 보인다. 그녀가 복수하려는 인물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백선생(최민식)이다. 13년의 시간만의 문제는 아닌 듯, 금자는 백선생 덕분에 한 아이를 죽게 만드는 데 한몫했으며 자신의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전반부 절반을 차지하는, 복수를 준비하는 금자의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한편으로는 독특하면서 기발하다. 영리하게 영화를 잘 만드는 박 감독의 재기는 두말할 것 없이 이번 영화에서도 풍부하다. 탄탄하게 꾸려진 인물 한명 한명은 각자의 에너지와 개연성을 가지고 잘 꾸며져 있고 화면은 스타일리시하면서 힘이 있다. 그 틈에서 착하고 밋밋한 표정과 함께 욕설을 내뱉는 금자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과 함께 양면의 충돌을 통한 강렬함을 발산한다. 어찌보면 과잉이라고 할만큼 넘치는 스타일로 힘 있게 전개되던 영화는 금자와 백선생이 만나 복수가 본격화될 시점인 중반 이후 ‘속죄극’으로 점프한다. 백선생에게 복수를 할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복수의 방법을 토론하고 각자 복수할 순번을 정한 뒤 그에게 린치를 가하기 시작한다. 복수에서 속죄로 넘어가는 이 순간은 동시에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해지는 순간이다. ‘말이 지나치게 많은’ 복수와 이후 이어지는 금자의 속죄는 영화적이기보다는 연극적이며 은밀한 상징이기보다는 너무 직접적인 연설인 까닭에 당황스럽다. 복수의 계기 만큼 속죄의 계기도 애매해진 것은 이때부터다. 감정은 친절하면서도 추상적인 까닭에 여전히 모호하고 동시에 복수의 스릴도, 속죄의 아픔도 느껴지기는 쉽지 않다. 상영시간 112분, 18세 관람가. #올림포스 가디언 그리스·로마 신화 상상의 나라로~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길어도 길어도 계속 물을 쏟아내는 샘물처럼 오랜 시간 동안 상상의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줬다. 이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을 애니메이션에서 만나게 됐다. ‘기간테스 대전쟁(기간토마키아)에서 트리톤이 소라고둥을 불어 기간테스들을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한 문장을 애니메이션으로 꾸며낸 ‘올림포스 가디언’이 28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은 ‘만화로 보는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알맹이는 TV 애니메이션과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이다. 국산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처럼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매끄러운 3D 장면도, 재치 넘치는 장면도 없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해 내용만큼은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올림포스의 열두 신이 세계를 지배하던 어느날, 마법을 다루는 인간의 왕 에우리메돈은 신들을 없애려고 기간테스를 부활시킨다. 거인족의 하나인 기간테스는 신들에 대항할 수 있는 강적.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령 암피트리테 사이에서 태어난 트리톤은 해룡 시드와 헤르마 등 친구들과 바다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열네살 소년이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무기 트라이던트를 훔치려는 에우리메돈이 트리톤의 엄마를 납치하고 트리톤은 엄마를 구하려고 모험을 시작한다.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주제곡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장면과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힘들어 보이는 문어체식 대사가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줘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부모님이 손잡고 함께보면 딱 좋은 작품이다. 상영시간 87분. 전체관람가.

MOVIE/아일랜드.천군.발리언트

○아일랜드 슬픈 ‘복제인간’ 대체 난 누구야 미래사회. 심각한 대기 오염으로 소수만 생존해있다. 이들이 모여 살고있는 첨단 시설의 건물. 통제가 지나쳐 보이지만 오염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다. 직접 세상으로 나가 공기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편해보인다. 잘 정돈된 옷들과 최신식의 놀이 시설, 첨단기술이 건강까지 관리해주고 식단도 여기에 맞춰 철저하게 조절되니 아쉬울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구원된 선택된 사람들, 이제 복권에만 당첨되면 꿈의 낙원 ‘아일랜드’로 가는 티켓을 얻을 수도 있으니 이곳에 모인 자들은 분명 행복한 사람들이다. 할리우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흥행 불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재주꾼 마이클 베이 감독이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영화는 과학적 허구이면서 동시에 인간복제라는 어두운 설정으로 출발한다. 에코 혹은 델타 등의 코드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름을 가진 이곳의 사람들은 사실 복제인간이다. ‘당신들은 선택된 사람이다’고 끊임없이 칭찬을 받지만 건물의 뒷쪽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복제인간’(Clone) 혹은 ‘상품’(Product)이다. 영화의 배경도 먼 미래가 아닌 2020년대의 가까운 훗날이다. 일부 부자들은 거액의 돈을 투자해 자신들의 복제품들을 만들었으며 철저한 ‘품질관리’를 거친 이들은 아이를 낳는 데, 혹은 간 같은 장기의 이식에 사용된다. 결국 ‘아일랜드’행 당첨은 이들에게는 용도 폐기 혹은 사망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자들 중 가장 먼저 ‘의심’이라는 것을 해 본 사람은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다. 왜 항상 같은 색 옷을 주는지, 왜 먹고 싶은 베이컨을 못먹게 하는지, ‘생각’이 많은 그는 마침 매일 밤 같은 내용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진실을 알게된 것은 친하게 지내던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의 아일랜드행이 결정된 날이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벌레의 발견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결정적인 계기. 벌레의 이동경로를 쫓아가다 건물의 뒤편을 보게된 링컨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조던과 함께 ‘생명’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속도감있는 액션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가지고 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처음 선보이는 자신의 SF영화를 통해 인간 복제를 화두로 꺼내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클론의 부정적인 면은 꽤나 강도가 센 편이다. 영화는 간을 빼내던 중 도망치려던 클론의 모습이나 대리 출산 직후 아이를 안아보기도 전에 어김없이 죽임을 당하는 산모의 얼굴에 클로즈업을 한다. 거대한 양수 주머니를 통해 잉태 혹은 생산되는 클론들, 후반부 클론과 본체는 서로 자신이 인간이라고 외친다.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이 이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슬픈 클론으로 출연한다. 21일 개봉. ○천군 남북한 군인들 이순신 영웅 만들기 오랜만에 단순 명쾌한 영화가 등장했다. 그렇다고 웃자고 덤빈 허랑방탕한 코미디는 아니다. 오히려 80년대 극장에서 틀어주던 ‘대한뉴스’처럼 교과서적인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할까. 2005년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발한 핵탄두 비격진천뢰가 미국에 양도될 상황이 벌어지자 북한군 소좌 강만길(김승우 분)은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비격진천뢰를 빼돌려 압록강으로 도망친다. 이때 433년만에 지구를 지나는 혜성의 이상 작용으로 강만길 일행과 그를 쫓아가던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 분) 일행은 순식간에 강력한 빛에 흡수돼 사라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들이 떨어진 곳은 1577년 조선 변방. 오랑캐 여진족의 습격에 민중들이 피폐된 삶을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행은 도적질과 밀매를 일삼으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더벅머리 스물여덟살 청년 이순신(박중훈 분)과 맞닥뜨린다. 과거로 간 주인공들은 이순신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무과 시험에 떨어져 인생을 포기한 이순신에게 “넌 4년 후 무과에 붙을거고 훌륭한 영웅이 될거야”라고 잔소리를 겸한 은근한 ‘최면’을 걸어댄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이들의 등장으로 역사는 왜곡되는 것일까. 영화는 이 부분을 지혜롭게 넘어섰다. “난 왜 맨날 이러냐. 꼬이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라며 삶을 한탄하고, 미래에서 온 이들의 말에 콧방귀도 안뀌던 이순신은 천진난만한 꼬마가 오랑캐에게 무참하게 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스스로 대오각성, 180도 변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시대적 충돌’의 재미를 빼먹지 않았다. 400여년 전이니 이 시대의 물건은 뭐든 현대로 가져가기만 하면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재가 되는 것. 반대로 수류탄이니 총이니 첨단 무기도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가 되는 것이다. 박정우가 재빨리 펜을 건네 이순신의 사인을 받는 재치도 귀엽다. 또한 이순신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 차이도 적절히 이용했다. 박정우 일행이 이순신 ‘교화’에 올인하는 동안 강만길 일행은 어딘가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를 찾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이순신 외에 시선을 돌릴 여유를 준다. 또한 시시각각 죄어오는 오랑캐의 공세 역시 한 축에 놓고 그들과의 대결에서는 꽤 생생한 액션 장면을 끌어냈다. 신인 민준기 감독은 1999년 “왜적대장 ‘평수가’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다”는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권26에 실린한 줄 글귀에 착안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정체에 대한 설명이 일절없는 ‘신병’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미래에서 온 주인공들이 이순신 시대 사람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군대인 ‘천군’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자칫 허무맹랑하게 흐를 수 있던 영화는 욕심 부리지 않은 감독의 연출과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등 주인공들의 고른 호연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무게 중심을 잡는데 성공했다. 박중훈은 특유의 코믹함과 관록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잘 잡았고 김승우가 오랜만에 보여준 진중한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발리언트 ‘꼬마 비둘기’ 모험의 날갯짓 여름 애니메이션 개봉작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가운데 색다른 애니메이션 ‘발리언트’(Valiant)가 22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것은 바로 영국 국적의 작품이라는 사실로 미국산 애니메이션과는 색다른 재미를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비둘기와 독수리 혹은 쥐 같은 동물들. 일단 캐릭터의 외모가 보기 좋게 왜곡됐다기 보다는 사실적으로 묘사됐으며 벌레를 먹거나 전깃줄위에 앉는 행동 자체도 깔끔한 맛은 떨어지지만 날것의 재미를 선사한다. 영국 제작사 방가드 애니메이션, 얼링 스튜디오와 영국영화위원회가 제작했으며 스코틀랜드 출신 이완 맥그리거가 주인공 발리언트의 목소리를 맡았다. 때는 2차대전의 막바지.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영국군은 비둘기 특공대인 ‘메신저 부대’의 부진으로 위기에 처한다. 이는 상대편인 독일군에 무시무시한 독수리 ‘팔콘’이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독수리 앞의 한낱 비둘기일 뿐.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살고있는 꼬마 비둘기 발리언트의 꿈은 바로 이 메신저부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지만 문제는 다른 비둘기들에 비해 한참은 작아 보이는 키와 날개에 있다. 주변에서는 비웃음만 쏟아질 뿐, 어머니 역시 아직 ‘알’에 불과하다며 입대를 만류한다. 결국 용기를 내서 런던행 날갯짓을 시작하는 발리언트. 입대 후 최고의 대원이 되기위해 혹독한 훈련도 수행하고 미녀 간호병 빅토리아와 풋풋한 사랑도 키우던중 드디어 중대한 미션이 떨어진다. 상영시간 78분. 전체관람가.

MOVIE/국산 공포영화 四色.인 디스 월드

올 들어 일찌감치 선보인 일련의 일본과 할리우드산 공포영화들이 애피타이저였다면 7-8월에는 한국 공포영화들이 메인 디시로 잇따라 등장한다. 2005년 여름을 서늘하게 할 ‘국산 공포영화 四色’을 소개한다. 국내 대표적인 투자·배급사 네 곳이 각각 한 작품씩을 꿰차고 여름 라인업에 올려놓아, 작품 이면의 대결도 흥미를 끈다. 또 하나. 네 작품 모두 ‘여인천하’라는 점도 특징이다. 구두 가발 첼로...목소리...악! ‘분홍신의 저주’ 신으면 죽는다 ▲분홍신(감독 김용균, 제작 청년필름)=지난 1일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영화는 무엇보다 다소 부담스러운 김혜수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희석시켜 그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포스터 속 그의 커다란 눈이 공포와 매치가 잘된다.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영화는 분홍신을 손에 넣은 후부터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우연히 주운 분홍신 때문에 점차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던 선재(김혜수 분)는 후배 미희가 분홍신을 신고 나간후 발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되자 분홍신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날 부르는 죽은 친구의 속삭임 ▲여고괴담4:목소리(감독 최익환, 제작 씨네2000)=‘여고괴담’은 한국의 성공한 공포 시리즈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 유명세를 타고있다. 벌써 네번째 작품이 나왔으니 이만하면 확실한 브랜드 파워. ‘여고괴담’ 시리즈는 1편(1998년)이 전국 250만명을 모으며 대박을 기록했고, 2편(1999년)은 60만명, 3편(2003년)은 180만명을 각각 모았다. 여학교를 무대로 한 콘셉트가 주타깃인 학생관객들의 심리를 제대로 공략한 것. 제작사 씨네2000을 늘 위기에서 구하는 효자 상품이다. 제4편은 어느날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된 한 여고생이 죽음의 비밀에 다가서다 맞닥뜨리는 끔찍한 공포를 다룬다. 부제가 ‘목소리’인 만큼 소리에서 오는 공포에 주안점을 뒀다. 이번에도 신인들로 승부수를 띄웠다. 15일 개봉. 기억을 머금은 머리카락 공포 ▲가발(감독 원신연, 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가발이 탐스러운 머리를 원하는 수현(채민서 분)의 손에 들어온 후부터 수현-지현(유선분) 두 자매에게 일어나는 공포를 그린다. 8월 12일 개봉. ‘마파도’로 상반기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킨 코리아엔터테인먼트가 대단히 자신있어 하는 작품이다. 앞서 개봉한 ‘분홍신’과 언뜻 봐서는 콘셉트가 비슷해 보여 후발주자로서 불리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코리아엔터테인먼트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작품성으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모발과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스크린 속 가발과 실제 머리카락을 비교해보며 관람해도 흥미로울 듯. 섬뜩한 첼로 선율… 너가 죽였니? ▲첼로(감독 이우철, 제작 영화사태감)=여름방학의 끝자락에 개봉하는 마지막 주자로 8월 18일에 개봉한다. 지난 5월 17일 크랭크 인 한 까닭에 현재 초스피드로 촬영이 진행 중이다. 웬만해서는 개봉일을 맞추기 힘든 스케줄이지만 몸집이 가벼운 기획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해 쓸데없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주홍글씨’로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다져나가고 있는 성현아가 단독 주인공을 맡아 독을 품었다. 극중 그는 두 딸을 둔 첼리스트로 젊고 예쁜 엄마이자 조용하고 지적인 음대 강사다. 영화는 단란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던 그가 어느날부터 겪게 되는 공포를 그린다. >>인 디스 월드 희망찾아 삼만리 파키스탄 북서부의 샴샤투 지역에는 5만여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 난민들이 배급 받는 식량은 밀가루 480g, 식용류 25g, 콩 60g 뿐. 지급 받은 텐트 속에서 담요 세 장과 난로 한개를 가지고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영화 ‘인 디스 월드’(In This World)의 주인공인 고아 소년 자말(자말 우딘 토라비)도 이들 중 한 명이다.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그가 하루에 받는 돈은 1달러(약 1천원) 미만. 어쩌면 평생 이 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는 이제 막 그 운명을 벗어나려하는 찰나에 있다. 바로 사촌 형 에나야트(에나야툴라 자무딘)와 함께 런던행 여정을 떠나는 것. 영어 통역이 그가 동행하는 명분이다. 200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환호를 받았던 ‘인 디스 월드’가 8일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당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막바지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영화를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지만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인물들 틈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감독의 카메라 덕분이다. 비행기 한 번이면 쉽게 갈 수도 있을 법 하지만 난민 신세의 두 사람에게 가능한 방법은 육로를 통한 밀입국이다. 위험천만한 여행이 될 것은 눈에 보일 듯 뻔한 일. 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지라 이들은 먼 길을 떠나게 된다. 흥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낯선 땅. 조력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박해 보이는 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로 한 브로커는 돈만 챙겨 달아나고 부패한 관리는 뇌물을 요구하며 곳곳에는 검문소가 지키고 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 자말과 에나야트는 버스에 숨어서, 혹은 걷거나 트럭의 바닥에 붙어서 힘겹게 계속 나아간다. 이란을 걸쳐서 간신히 터키에 도착해 일자리를 구하며 잠시 시름을 잊은 두 사람. 하지만 이들 앞에는 다시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 수십시간을 지내야 하는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런던까지의 로드 무비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관객들에게는 가슴을 헤집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로드 무비 특유의 이국의 풍광을 즐기는 철없음에서 시작한 영화 보기는 흐뭇한 웃음과 비정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거쳐 결국 비통함으로 절규하는 데 이른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의 어디엔가에 위치하고 있다. 카메라는 인물들 사이에 들어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고, 스토리에 따라 연기하고 있지만 배우들은 실제로 평생 동안 파키스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진짜 난민들이다. 15세 관람가.

MOVIE/애니야 노올자~.어썰트13.분홍신

방학이 그리 멀지 않았다.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 극장가에는 어김없이 애니메이션이 걸린다. 이번 여름에는 ‘메이드 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2편과 ‘메이드 인 코리아’ 애니메이션 2편이 나란히 관객을 찾아온다. 외국 애니메이션 2편은 제작면에서나 기술면에서나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동물과 로봇이라는 소재로 각각 개성있는 이야기를 풀어내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애니메이션 2편은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전과 베스트셀러 등 친숙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관람 포인트. ▲마다가스카=수박만큼 시원한 웃음을 원한다면 ‘마다가스카’가 어떨까. 뉴욕 센트럴파크동물원에서 호의호식하던 동물 4인방이 졸지에 야생 정글 마다가스카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제작진의 면면과 주연배우로 동물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을 기대하게 한다. 목소리 연기도 벤 스틸러, 크리스 록, 데이비드 쉬머 등 개성이 뚜렷한 배우들이 맡았다. 이들이 모여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질 듯. 아는 사람은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패러디 코드도 곳곳에 숨어있다. ‘슈렉2’ ‘캐스트 어웨이’ ‘아메리칸 뷰티’ ‘혹성탈출’ 등의 명장면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다. 최근 애니메이션마다 등장하는 뮤지컬 분위기의 군무도 볼 수 있다. 14일 개봉. ▲로봇=상상을 뛰어넘는 기계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로봇’도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 에이지’의 크리스 웨지 감독이 제작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인공지능 최첨단 로봇이 아닌 우리 주변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적인 로봇의 세계를 그렸다. 발명가를 꿈꾸는 로봇 로드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도시를 찾는다. 그곳에서 수다스러운 고물 로봇 팬더를 만나 모험을 겪는다. 이완 맥그리거와 로빈 윌리엄스, 할리 베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영화 내내 끊임없이 움직이며 펼쳐내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이다. 놀라운 디자인으로 설계된 거대한 로봇 도시의 구석구석과 각종 로봇을 구경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29일 개봉. ▲왕후 심청=남북한이 손을 잡고 제작한 첫번째 작품인 ‘왕후 심청’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고전 ‘심청전’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지난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ACF)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심학구 대감의 외동딸 청이는 듬직한 삽살개 단추와 말썽꾸러기 거위 가희, 졸린 눈을 껌뻑이는 거북이 터벙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다. 내용은 ‘심청전’을 따라갔지만 인물은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이 작품은 현재 남북한 동시개봉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심슨가족’의 애니메이터 넬슨 신 감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북한 동시개봉성사 여부는 7월중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8월 초 개봉. ▲그리스 로마 신화-올림포스 가디언=‘올림포스 가디언’은 1천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쉽게 설명해줘 재미도 있고 교육효과도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는 작품.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바다의 정령 암피트리테의 아들인 트리톤. 장난꾸러기 트리톤은 훌륭한 신이 되기 위한 훈련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던 중 트리톤에게 올림포스를 지키라는 임무가 주어지고 놀라운 활약을 펼친다.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등 12신과 아기 해룡 시드와 수다쟁이 헤르마 등 귀여운 캐릭터도 등장한다. 28일 개봉. -어썰트13 이들의 나른한 평화를 깨는 일이 발생한다. 근처를 지나던 범죄 호송 차량이 폭설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 채 이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것. 죄수 중에는 경찰을 죽인 악명 높은 킬러 비숍(로렌스 피쉬번)도 끼어 있는데, 이들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나 경찰서를 습격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경찰이다. 영화는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작 ‘분노의 13번가’를 리메이크했다. 전화, 전기마저 끊긴 고립무원의 경찰서가 공격받는다는 콘셉트에 매력을 느낀 장 프랑수아 리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어떻게 경찰서를 공격할 수 있나”라며 경악하는 심리학자의 대사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인 것. 경찰서를 공격하는 것도 발칙한데 공격하는 자들이 경찰이다. 비숍과 손잡았다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부패한 경찰 조직이 비숍을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공격하는 것.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친절하게도 초반에 모두 알려주며 스릴러에는 관심 없음을 명확히 한다. 대신 아날로그 액션으로 승부했다. CG나 스턴트에 기대는 대신 몸으로 부딪히는 리얼 액션으로 특수효과에 익숙한 관객에게 신선한 맛을 주고자 했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경찰과의 대결을 위해 죄수들에게도 무기를 안겨준다는 것. 고립무원의 경찰서를 동트는 아침까지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다. 유치장에서 풀려나 무기를 손에 넣은 죄수들이 날고 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일단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하지만 이들이 언제 변심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상황을 일찌감치 보여주고도 영화가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배수의 진’을 친 상황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데서 나오는 얄팍한 신뢰가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긴장감이 소재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7일 개봉, 18세 관람가. -분홍신 분홍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소녀적인 감수성과 동화적 느낌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좋아했을 법한 분홍 고무신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분홍신은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적인 구두다. 5~7㎝가량의 뒷굽이 있는 보편적인 스타일의 여성 구두. 색깔만 다른 색이었다면 특색이 전혀없을 수도 있는 그런 모양인데, 정말 특이하게도 요즘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분홍색의 표피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화 속 여자들은 모두 이 분홍신에 집착한다. 일단 한번 보기만 하면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물불 안 가린다. 또 이 신을 신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 선재(김혜수)와 그의 딸 태수(박연아), 그리고 선재의 후배 미희(고수희)가 모두 그러하다. 여기에 다섯 명의 여자가 더 등장한다. 과거 속 세명의 여성과 두명의 여고생.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힘을 줬다. 하나는 어두운 색감이고, 또 하나는 금속성 음향효과다. 분홍신을 강조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모두 어둡게 처리했다. 대부분의 신이 밤 신이고 선재의 집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김혜수의 빨간 입술과 분홍신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두 붉은 색은 여성 욕망의 상징이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된 선재로서는 반대급부로 더욱 화려한 것에 집착하게된다. 그녀가 안과 의사라는 사실 또한 종종 클로즈 업되는 눈과 함께 영화의 ‘차가운 시선’을 강조한다. 그러나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금속성의 날카로운 음향은 귀를 자극한다. 분홍신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 소리도 부분적으로 공포를 주지만 연신 이어지는 거울이 깨지는 듯한 ‘쇳소리’는 대단히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이런 쇳소리가 유치하면서도 고민 없는 선택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효과는 기본적으로 발휘한다. 버려진 분홍신을 신은 여자들이 이상 기운에 휩싸이고, 그 분홍신을 친구 혹은 엄마로부터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여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발목이 잘린 채로. 발목이 잘릴 때는 어김없이 쇳소리가 들려온다. ‘토막살인’의 끔찍한 효과. 분홍신을 탐낸 무용수가 결국은 멈추지 않는 분홍신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 그때의 원죄가 60여년이 흐른 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따돌린 영화는 후반부 반전을 몰아친다. 15세 관람가, 30일 개봉. -설경구가 차기작으로 멜로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 출연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송윤아와 함께 멜로 연기를 펼치는데 대학시절부터 10년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온 두 남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11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MOVIE/남극일기.프락치.코치 카터

■남극일기 이게 남극이다. 6개월은 밤, 6개월은 낮이 이어지는 곳. 눈 앞에는 온통 하얀색 뿐, 하얀 산과 하얀 바람, 하얀 눈과 눈부신 햇빛 만이 대륙을 덮고 있다. 아마 땅 속을 파보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이상 묵은 눈을 볼 수도 있을 듯,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 거대한 모습을 유지한 채 거기 있는 그런 곳이다. 남극에 여섯 명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무보급으로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는 것. 남위 82도8분 동경 54도58분에 위치한 이 지점은 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까지 1950년대 옛 소련 탐험대만이 단 한차례 가본 적이 있다. 기대작 ‘남극일기’가 19일 드디어 영화팬들을 만난다. 뉴질랜드 로케이션이나 송강호·유지태 등의 화려한 캐스팅, ‘반지의 제왕’의 스태프와 ‘공각기동대’의 거장 가와이 겐지 음악감독의 참여, 그리고 제작비 90억 원의 초대형 예산 등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상반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남극이라는 장소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남극과 미스터리를 함께 빚어놓은 언발란스는 감독의 손을 거치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탄생했다. 감독은 단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남극이라는 땅덩어리 하나로 힘있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 놓고 있다. 풍경이 주는 광활함의 공포는 그 어떤 스릴러의 눈에 보이는 악몽 못지 않게 지독하며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들은 쉽게 부서질 듯 위태로워 슬프다. 이들이 수십일 동안 걷고 먹고 자는 이곳은 언뜻 봤을 때의 마냥 경치 좋은 곳만은 아니다. 고요함은 써늘함의 다른 표현이며 광활함은 막막함의 유사어다. 말이 좋아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 일행들과 비슷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선가 숨진 채 묻혀 있다. 탐험대를 이끄는 대장은 노련하면서도 냉철한 카리스마가 있는 도형(송강호)이다. 최대장의 오랜 파트너이자 지적인 부대장 영민(박희순)과 식사 담당인 근찬(김경익), 통신 담당 성훈(윤제문), 전자장비 담당 재경(최덕문)은 부대원이며 이들의 뒤를 막내 민재(유지태)가 따르고 있다. 순조로웠던 탐험대에 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가 발견되고 부터다. 얼마 뒤 재경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는 도저히 발병할 수 없는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낙오하고 대원들은 빨리 그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탐험을 계속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대원들을 다그치는 대장과 논리적 분석으로 그를 따르는 부대장, 여기에 근찬과 성훈은 재경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철수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상황은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일어나며 점점 극으로 치닫고 대원들은 원인모를 광기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어느새 논리적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순했던 막내의 눈은 발갛게 충열되며, 대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앞뒤 안가리는 사이코가 되어 간다. 남극의 묘한 기운은 얼음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텐트밖에서, 그리고 언덕 너머 어디에서 이들을 지켜본다. 초반에 인물들을 설명하며 워밍업을 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속도를 올리다가 결국 광기로 치달으며 폭발을 한다. 스릴러의 스토리는 감독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듯, 여기에 송강호, 유지태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두 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은 지루함 없이 힘있게 흘러간다. 15세 이상 관람가. ■프락치 장마철쯤 돼보이는 무더운 여름. 러닝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변두리 여관방에 누워 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고 이 땀은 텁수룩한 수염을 타고 눅눅하게 흐른다. 방 안에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여관의 사람들은 이 두 남자를 ‘아마 동성애자 커플일 것’이라고 오해한다.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 ‘프락치’가 20일 개봉한다. 밴쿠버와 로테르담(국제비평가상),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옥천전투’와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로 알려진 황철민 감독의 7년 묶은 야심작이다. 두 남자 중 나이 들어보이는 쪽은 정보기관의 기관원(양영조)이다. 젊은 쪽은 이미 정체가 드러나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인 프락치(추헌엽). 영화 감독 지망생이던 이 프락치는 이제 사랑하던 사람 앞에 다시 서지 못할 상황에 놓였고 기관원의 감시에 묶여 여관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다. 벽장 하나, 거울 한개밖에 없는 이 여관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밥 먹는 것 말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소지품이라는 것은 프락치의 비디오 카메라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정도. 무료해하던 두 사람은 ‘죄와 벌’을 대본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극을 한다. 얼핏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도 갇힌 자와 가둔 자다. 이는 이들의 ‘영화 찍기’ 놀이에 옆방의 배우 지망생이 합류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 사람은 함께 술도 마시고 잠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는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감독은 독일 유학시절 실제로 만났던 학원 프락치에게서 영화의 모티브를 따왔다. 상영시간 100분. 15세 관람가. ■코치 카터 고등학교 농구팀 선수들에게 학교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별의미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이 팀이 지난 4년 동안 지역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반 학생들의 극소수만이 대학 진학의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수업에 참석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 아이들에게 삶 자체에 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코치 카터’(Coach Carter)가 13일 개봉했다. 흔하지도, 뻔하지도 않은 스토리는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장점. 사무엘 L. 잭슨의 카리스마와 이에 반하는 아이들의 개성이 잘 드러난 데다, 줄거리가 단지 운동이외의 꿈 얘기로 진전을 보는 것은 이 영화를 범작 이상으로 만들어 놨다. 왕년의 고교 농구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금은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켄카터(사무엘 L. 잭슨)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꿈이라면 고등학생 농구 선수인 아들 데미언(로버트 리처드)이 좋은 선수로 자라나는 것 정도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모교 리치먼드 고등학교의 농구팀 코치 제의가 들어온다. 안정된 생활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갈등을 하던 카터는 결국 팀을 맡기로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팀은 지구 내 꼴찌를 도맡아 할 정도인데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에 실력도 ‘꽝’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패배의식. 유색인종 거주지역에 위치한 이 학교에서 농구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이들에게 ‘맘 잡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하는 수단 이상이 못된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가난의 고통으로 아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어 가고, 꿈이라는 흔한 단어는 이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아이들과 마주 선 카터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운다. 하나는 팀에게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주는 것, 나머지는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혹독한 훈련 끝에 결국 농구 팀은 승승장구.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는 학업쪽에서 발생한다. 아이들이 여전히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약속대로 체육관을 폐쇄하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6분.

MOVIE/혈의 누.밀리언즈.킹덤 오브 헤븐

■혈의 누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 ‘혈(血)의 누(淚)’는 피눈물이다. 피눈물이 난다는 것은 한이 사무친다는 의미. 말할 수 없이 억울할 때, 그 억울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피눈물이 난다. 조선 후기 한 외딴섬. 종이를 만드는 제지소의 운영으로 번창해가는 이 섬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대단히 참혹한 방식이다. 또 그에 앞서 원인 모를 화재로 조공용 종이가 가득 실린 배가 불타버린다. 한양에서 수사관이 파견된다.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냉철한 원규(차승원 분)는 섬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그 실체 파악에 나선다. 그 핵심에는 마을 사람들의 묵인하에 억울하게 참형을 당한 한 가족의 사연이 놓여있다. 사극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영화가 대단히 허술해보이기 마련. 캐스팅, 의상, 대사, 로케이션, 미술 등 곳곳에 지뢰가 놓여있다. 그런 면에서 ‘혈의 누’는 합격점을 무난히 넘어선다. ‘스캔들’처럼 미(美)를 탐하지는 않았으나 영화는 나름의 치밀한 고급스러움으로 관객을 정성껏 맞이한다. 여기에 사극과 스릴러의 결합이 별다른 누수 없이 잘 어울렸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온몸으로 껴안은 영화는 자칫 스릴러에 함몰되기 쉬운 유혹을 떨치고 무게중심을 잘 잡았다.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반상의 질서와 그 사이를 비집고 꿈틀대는 자본주의 사상, 그리고 당시의 ‘마녀사냥’ 구실이 됐던 천주교도 등의 설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속에 안경, 종이, 도르래 등의 장치가 시대를 흥미롭게 대변한다. 또한 영화는 고전적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다. 제지소 내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CG에 기대지 않고 오직 제지소 내 각종 도구와 장치를 이용해 전개된다. 할리우드 영화로 익숙한 부비 트랩의 묘미가 조선 시대 제지소에서 펼쳐지는데 그 재미가 상당하다. 이러한 ‘기본’을 바탕으로 영화는 원규 캐릭터의 변화를 심도있게 포착했다. 김대승 감독은 원규의 공명심과 자부심이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수치심과 배신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세밀화를 그리듯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차승원은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선입견을 보란 듯 깨버린다. 그는 시종 묵직한 톤으로 원규 캐릭터를 끌어나갔고 성공적으로 정극에 안착했다. 차승원의 이러한 변화는 영화를 보는 대단히 중요한 재미다. 자신을 정상으로 이끈 이미지를 정면으로 배반하기란 스타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 웬만큼해도 본전을 하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그를 원규 역에 캐스팅한 좋은영화사의 안목과 용기도 높이 평가된다. 5월 4일 개봉, 18세이상관람가. ■밀리언즈 돈벼락 맞으면 뭐할거니?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 돈을 쓸 수 있는 기간은 열흘 뿐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할까.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고민은 없을 것이다. ‘밀리언즈’는 유로화 통합에 관한 가장 깜찍하고 예쁜 이야기다. 돈다발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소재에 천진무구한 동심을 버무리고, 양념으로 엄마 잃은 아이의 보편적인 슬픔을 가미한 영화는 귀여운 동화로 탄생했다. 할리우드식 동화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영국의 한 소도시. 기찻길 옆에 빈 박스를 쌓아놓고 그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7살 꼬마 데미안의 머리 위로 검정색 가방이 뚝 떨어진다. 누군가가 기차에서 집어 던진 가방 안에는 파운드화가 가득 들어있다. 9살 형 안소니는 “절대 아빠한테도 말하지 말고 신고도 하지마. 세금이 40%란 말이야”라며 둘이서 이 돈을 쓸 궁리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파운드화가 열흘 후면 유로화로 통합되는 것. 은행에서 환전을 하지 않는 한 열흘 후면 이 돈을 쓸 수 없는데, 꼬마들이 무슨 수로 은행에서 환전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신나게 쓰는 수밖에. 물론 이는 가상의 설정. 영국은 아직도 꿋꿋하게 파운드화를 쓰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꼬마들처럼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신나는 씀씀이는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들다. ‘28일후’ ‘트레인스포팅’ ‘비치’ 등에서 독특한 감각을 뽐낸 대니 보일 다운 설정이다. 감독은 돈다발 이전에 형제의 엄마를 하늘로 보냈다. 어린 데미안에게 사람들은 “엄마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데미안은 유독 죽은 성자와 성녀의 이야기에 집착한다. 대니 보일의 괴짜 기질은 이 부분에서 도드라진다. 데미안의 상상을 통해 “하늘에서는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라며 담배를 피우는 성녀, 참수형 자국이 목에 그대로 남아있는 성자, 데미안 대신 학교 연극에서 목소리 연기를 해주는 성자 등을 등장시키는 것. 데미안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하늘에서 우리 엄마 봤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다.두 형제의 180도 다른 돈 씀씀이도 흥미롭다. 어른처럼 세금과 부동산을 운운하는 안소니는 아이들에게 돈을 뿌리며 사람 부리는 재미에 빠진다. 반면 데미안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난하세요(Are you poor)?”라고 물으며 그들을 돕기에 분주하다. 감독은 어른의 축소판인 이들을 대비시키며 돈에 대한 인간사 백태를 살짝 풍자했다. 청빈함을 내세운 몰몬교도들이 데미안이 몰래 기부한 돈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가전제품을 사들인 것이 그중 압권. 대니 보일은 지금까지와 달리 동화 속 예쁜 집 한채를 짓는 느낌으로 화면을 밝고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유지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은 엄마를 되돌릴 수 없다는 뻔한 메시지를 나름의 감각으로 포장한 솜씨도 괜찮다. 그러나 아쉽다. 좀더 발칙하고 좀더 깜찍하기를 기대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5월 5일 개봉, 전체관람가. ■킹덤 오브 헤븐 ‘서민적 영웅’ 모험담 땅을 둘러싼 국가간의, 그것도 두 문화권이 충돌하는 곳에서의 분쟁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 뭉치처럼 풀어헤치기가 쉽지 않다. 화약고 중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이 각자의 성지를 가졌으며 역사적으로 지배를 번갈아 해온 이 지역의 전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걸려있으며 스스로의 국가를 갖고자 하는 욕망이 얽혀있으니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잘 살아보자는 식의 장밋빛 꿈은 어쩌면 영화에서나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외화 중에서는 한동안 눈에 띄는 기대작이 없던 극장가에 할리우드 대작 ‘킹덤 오브 헤븐’이 5월 4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주인공은 떠오르는 스타 올랜도 블룸(‘반지의 제왕’, ‘트로이’)인데다 그의 뒤는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든든한 명배우가 받쳐주고 있다.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로 역사 대작 연출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블랙호크다운’으로 미국적 시각에서 벗어났다는 호평을 받았던 리들리 스콧. 영화는 오래간만에 괜찮은 대작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여기의 중심이 되는 전투 장면은 바로 눈 앞에서 칼날이 휘둘리는 듯, 모래 먼지가 눈앞으로 튀는 듯, 사실감이 넘쳐나니 일단 이 영화가 볼거리라는 블록버스터의 미덕은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젊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아이와 부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다. 아내를 땅에 묻은 날 그를 찾아온 사람은 십자군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발리안에게 고백하는 고프리는 함께 자신이 영주로 있는 땅으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고민하던 중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발리안은 결국 고프리와 함께 가기로 하고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먼 길을 떠나게 된다. 동행 중 발리안은 아버지 고프리에게 검술을 배우며 전사로 거듭나지만 미처 예루살렘에 도달하기 전에 고프리는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예루살렘에 당도하는 발리안. 이 곳은 국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의 선정으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평화가 지켜지고 있지만 분쟁을 원하는 무리들 때문에 전쟁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발리안은 용맹함으로 왕의 신임을 받게 되고 아름다운 공주 시빌라(에바 그린)와 사랑에 빠지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평화주의자 왕의 목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공주의 남편은 악명 높은 기사 기 드 루지앵(마튼 소카슨)이다. ‘서민적 영웅’이라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올랜도 블룸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펼치는 모험담에 전투 장면의 볼거리와 로맨스, 비장함이 적절히 섞여 있으니 영화는 괜찮은 대작이라는 호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다면, 주인공이 살생을 싫어하게 되는 동기나 살인을 피하고자 왕위를 거절한 그가 결국은 수많은 적들에게 칼질을 하게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두 문화권이 서로를 존중하며 ‘천국의 왕국’을 만들어보자는 식의 흔한 결론도 할리우드영화치고는 전향적이지만 블록버스터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은 쉬운 결론이다.상영시간 137분. 15세 관람가.

MOVIE/댄서의 순정.모래와 안개의 집.트리플X2:넥스트 레벨

■댄서의 순정 영화 ‘댄서의 순정’은 순수하고 싱그러운 문근영의 캐릭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영화다. 전국 310만명을 모은 ‘어린신부’의 영광에 다시 한번 도전한 작품. 제작진의 선택은 이번에도 주효했다. 옌볜처녀 춤바람 났네 문근영은 여전히 예쁘고, 아니 더 예뻐졌고 더 착해졌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댄서의 순정’은 관객의 순정에 호소하는 영화다. 문근영의 순정은 남녀노소에게 일체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거부감은 커녕 문근영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장해제당한 관객은 저 밑에 가라앉아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순정을 잽싸게 꺼내들게 된다. 관객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너그러운 관람의 자세를 취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옌볜처녀 장채린(문근영 분)이 위장결혼을 통해 서울에 온다. 스포츠댄서인 나영새(박건형 분)와 짝을 맞춰 댄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곡절 끝에 ‘조선자치주댄스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언니 장채민을 대신해 온 채린은 춤을 전혀 못춘다. 파트너가 뒤바뀐 사실에 기막힌 영새는 그런 채린을 외면할까 하다 결국 훈련시켜 같이 댄스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노래방에서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멋대로 열창하던 ‘어린신부’가 이번에는 등려군의 ‘야래향’을 그럴 듯하게 소화하고 삼바춤까지 춘다. 2년 사이 키가 3㎝ 자라 165㎝가 된 문근영은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꽤 날렵하게 삼바를 소화한다. 골반을 리드미컬하게 흔들고 빠른 스텝을 밟는 그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볼거리. 어여쁜 모습만으로도 만족하겠는데 어른이 되는 중간 과정에서 단련된 춤까지 선사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이 중국어와 춤 연습에 흘린 땀방울만큼 ‘어린신부’ 보다 업그레이드된 영화다. 여전히 순정만화의 눈높이에 머물고 있지만 그 황당무계함은 ‘어린신부’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키치적 유머도 밉지 않고 완성도를 떠나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이만하면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은 명확한 것으로 보여진다. ■모래와 안개의 집 화려한 결혼식장. 젊은 남녀가 하객의 축복 속에 식을 올리고 있고 신부의 아버지 매수드 아미르 베라니(벤 킹슬리)가 마이크를 든다. 한때 조국 이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던 그가 이곳 미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부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추측밖에. 겉보기에는 성공한 이민자 같지만, 매수드의 실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직업은 고속도로 공사장의 막노동꾼, 고급 아파트에 사는 부유한 이민자처럼 보이지만 공사장의 작업복을 고급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의 얘기다. 낡아 보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는 캐시 니콜로(제니퍼 코넬리)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바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고, 청소를 안해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아늑한 집이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와 모래처럼, 그녀의 삶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남편에게 버림받은 처지, 알코올 중독자에서 벗어나 힙겹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뒤뚱거리며 삶이라는 힘겨운 길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일 때문에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캐시는 세무당국의 실수로 집이 경매로 내 놓이는 처지에 처하고 매수드는 이 집을 싼 값에 구입한다. 캐시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유산이며 유일하게 자신이 기댈 곳인 이 집을 그것도 자신의 잘못도 없는데 빼앗길 수는 없는 일. 집을 비싼 값에 되팔 생각인 매수드도 이 집은 막내아들의 학자금이 될, 그래서 넘겨줄 수 없는 밑천이다. ‘모래와 안개의 집’(29일 개봉)이 그리는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들이다. 세상은 답답하게 막혀 있을 뿐, 비극적인 결말은 삶에서 이미 예정돼 있던 듯하며 힘겹게 절망을 극복해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다. 인간의 의지라는 게, 순진하게 꿈꿔보는 희망이라는 게 작은 의미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 사이의 얽힘은 경찰관 레스터(론 엘다드)의 등장으로 더 꼬여만 간다. 캐시를 돕던 그가 잘못한 것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 부인과 자식을 버린 그는 경찰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매수드를 위협하며 가정과 직업이라는 그동안의 규범을 벗어던진다. 점점 복잡해지던 상황은 캐시가 총을 들고 매수드의 집으로 향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트리플X2:넥스트 레벨 리 타마호리 감독은 역시 파워풀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그리는 것을 알고보면 “과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사의 후예’에서 보여준 가공하지 않은 폭력성은 ‘007어나더데이’에서 자본과 반갑게 악수를 했고 결국 ‘트리플X2:넥스트 레벨’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린다. 그는 그야말로 마음껏 때려부수고 폭파했다. 3년 만에 등장한 ‘트리플X’의 속편은 감독과 함께 주인공까지 바꿨다. 전편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빈 디젤은 개런티에 불만이 있었던지 속편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극중에서는 그가 죽은 것으로 처리됐다. 영화는 그토록 뛰어난 비밀 요원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새로운 요원을 선보인다. 랩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동하는 흑인 스타 아이스 큐브(36)다. 아이스 큐브의 발탁은 인권영화가 아님에도 흑인 주인공을 내세우는데 대단히 개방적으로 변한 할리우드의 최근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흑인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놀랄만큼 편해졌다는 얘기. 동시에 흑인주인공은 미국 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도 부합한다. 더구나 아이스 큐브가 윌 스미스나 덴젤 워싱턴처럼 잘 빠진 흑인스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B급 흑인 배우’의 등용인 것. 그러나 이 같은 제작진의 개방적인 사고와는 별개로 영화는 주인공에 의존하지 않는 영리함을 보였다. 소도둑처럼 생긴 큐브의 액션 연기는 굼뜨고 투박하다. 빠른 발차기나 총쏘기, 고공 다이빙 대신 도끼로 장작을 패야할 것처럼 생겼으니 그에게는 도무지 ‘스타일’이 안 나온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인지 영화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못차릴만큼 격렬하게 요동친다. 주인공에게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며 여기저기서 터뜨리고 때리고 부순다. 전편이 익스트림 스포츠의 재미를 줬다면, 이번에는 탱크와 각종 첨단 무기를 미국 수도 워싱턴으로 끌고 와 ‘불꽃놀이’를 벌였다. 여기에 자동차 마니아들의 혼을 쏙 빼놓을 근사하게 빠진 명차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MOVIE/역전의 명수.인터프리터.칸, 누구를 선택?

■역전의 명수 ‘역전(逆戰) 야구’로 유명한 군산상고의 고장 군산. 이곳 역 앞에는 명수라는 ‘양아치’ 녀석이 있다. 학교는 이미 중학교 때 깨끗이 정리했지만 ‘주먹’ 실력 하나는 꽤나 쓸 만한 편. 역전을 주름잡는 이 친구의 별명은 바로 ‘역전의 명수’다. 공부 잘하는 인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이곳에는 수재 현수가 있다. 역전에 ‘양아치’ 떴다 커트라인 높다는 법대에 수석입학한 터라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은 이 친구에게는 ‘필수과제’처럼 보인다. 군산지역 최고의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현수의 미래는 꽤 밝아보인다. 똑 닮은 외모에 같은 지역 출신인 두 사람은 사실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형제다. 그것도 명수가 2분 17초 먼저 태어난 쌍둥이. 둘의 미래가 확연히 달라보이는 것은 이 집안의 가훈과 어머니의 자식 교육방침 때문이다. 집안의 가훈은 ‘여자 말을 잘 듣자’며 어머니의 교육 방침은 ‘잘될 놈에게 몰아주자’니, 현수의 미래가 밝은 만큼 명수의 미래는 그저 암울할 뿐이다. 정준호의 1인2역 연기와 ‘쥑이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었던 영화 ‘역전의 명수’(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가 15일 개봉했다. 15자 내외로 설명될 만한 ‘콤팩트’한 줄거리와 그 내용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한 ‘쌈빡한’ 제목, 출연작마다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은 해주는 배우 정준호가 모였으니 일단 잘 짜여진 ‘기획 영화’의 요소는 모두 갖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쉽게도 짜릿한 홈런 레이스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지루한 투수전 같은 지지부진한 재미만을 선사한다. 정준호가 연기하는 두 캐릭터의 대비도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편이며 뻔히 다음 장면이 예상되는 줄거리도 힘이 빠져 있다. 영화가 관객을 끄는 부분은 풍부한 조연진에 있다. 명수가 입소하는 교도소의 막내로 ‘변신’한 조형기나 파출소장 역의 임현식이 보여주는 애드리브와 ‘공공의 적2’의 박상욱, ‘말죽거리 잔혹사’의 박효준 등 탄탄한 조연급 연기자들의 모습은 ‘잔재미’를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신인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향하는 현수의 여자 문제를 뒤처리하며 시작된 명수의 대타 인생은 2년 뒤 대신 군에 입대하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2년여의 해병대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현수는 다시 현수 대신 교도소 생활까지 하게되고, 명수의 인생은 꼬여만 간다. 그 동안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조인의 생활을 시작한 현수의 앞에는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다. 드디어 출소 날, 그의 눈앞에 뜻밖에 미모의 여인 순희(윤소이)가 나타난다. 순희는 명수의 전 여자친구. 사회부 기자인 그녀는 명수를 이용해 부모의 원수를 갚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순희의 제안은 은행을 털자는 것. 구체적인 계획에 총까지 준비해 놓았으니 여로모로 당황되는 상황이다. 결국 순희의 꼬임에 넘어간 명수는 정계와 재계의 비리가 연루된 복잡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인터프리터 UN통역관이 뭔 죄? ‘위험’하기에 더 매력적인 얼마 전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미숙한 통역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니 UN 회의장에서 일하는 통역관의 스트레스는 어떨까. 첨예한 국제 문제들을 요리하는 현장에서 단어 한번 잘못 옮겼다가는 커다란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죽다’를 ‘사라지다’로 통역하면 바로 해고된다”는 극중 대사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일 터. 반면 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에 매력적이기도 하다. ‘인터프리터’는 제목 그대로 통역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프리카 태생의 UN 통역사 실비아(니콜 키드먼)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에 희귀한 아프리카 언어인 ‘쿠어’까지 구사한다. 그는 우연히 불꺼진 회의장에 들어갔다가 아프리카지도자의 암살을 모의하는 쿠어 대화를 엿듣는다. 현장에서 곧바로 도망쳤지만 그날이후 그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못봤지만 말을 알아들었다는 죄다. 서구 미인의 전형인 니콜 키드먼이 아프리카 내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과는 또 다르다. 스트립은 아프리카를 즐겼지만 키드먼은 아프리카를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실비아가 한때 손에 총까지 들었고, 흑인 반군 지도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던 사실은 많은 대사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보여질 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의 첫 스릴러라서 그럴까. 참 생뚱맞고 어설프다.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칸, 누구를 선택? 지난해 ‘올드보이’의 영광이 올해도 계속 이어질까? 다음달 11~22일 열리는 제58회 칸 영화제에 어떤 작품이 초청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지난해 ‘올드보이’(칸 영화제)와 ‘빈 집’(베니스 영화제)이 잇따라 주요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어서 올해 칸 영화제에서도 수상에 대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현재 출품이 확정된 작품은 감독주간에 초청된 ‘주먹이 운다’(감독 류승완)와 ‘그때 그사람들’(임상수) 등 두 편. 초청작 공식 발표가 예정된 20일에 정확한 목록이 나오겠지만 이들 작품들을 포함해 일단 5~6편의 한국 영화가 초청작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영화제 소식에 밝은 한 국내 영화인에 따르면 경쟁부문에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활’의 초청이 유력한 가운데 ‘극장전’(홍상수)과 ‘달콤한 인생’(김지운)도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한국 영화사 두필름이 제작하고 중국 감독 장률이 메가폰을 잡은 ‘망종’과 ‘태풍태양’(정재은)도 경쟁 혹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될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인은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들 작품 외에도 단편 영화도 다수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앞서 스크린데일리 인터내셔널도 런던발 기사에서 ‘활’과 ‘태풍태양’, ‘극장전’이 공식 초청작으로 유력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친절한 금자씨’(박찬욱)는 영화제 개막 때까지 완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출품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후보에 거론되고 있지만 ‘극장전’도 후반작업이 늦어져 8월 개최 예정인 베니스 쪽 출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종판인 ‘스타워즈-시스의 복수’(Starwars-Revenge of the Sith)가 개막작 혹은 공식 비경쟁부문 초청이 기대되는 가운데 ‘쿵푸허슬’(저우싱츠), ‘신 시티’(프랭크 밀러,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라스트데이즈’(구스 반 산트) 등이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 김정은<사진>과 이범수가 코믹 영화 ‘요원의 수기’에서 호흡을 맞춘다. 이 영화는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지던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정은은 가가호호를 방문해 자녀 수를 체크하는 공무원. 이범수는 그런 김정은의 눈을 따돌리는 가장 역이다.

MPVIE/주먹이 운다. 800 블렛. 잔다라2

■주먹이 운다 인생 막장의 순간에서 다시 일어선 40대의 아버지 강태식과 방황을 끝내고 다시 일어선 20대의 아들 유상환. 이들은 각자의 인생을 위해 링 위에 선다. 링은 그들에게 자신만의 전쟁터. 승리는 단 한 사람만의 것이며, 이들은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올해 충무로 기대작 중 하나인 ‘주먹이 운다’가 4월1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시네마키드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거쳐 흥행 감독으로도 자리를 잡은 류승완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최민식, 그리고 가장 영리한 20대 배우 류승범이 한 자리에 모인만큼 이 영화는 올 상반기 개봉작 중 많은 기대를 받아왔다. 애초에 감독이 “연출을 하지 않는 연출”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는 상당 부분배우의 연기와 이들의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스타일로 캐릭터를 만들었고 관객의 입장에서 이들의 ‘대결’을 한 영화에서 보는 것은 행복에 가까운 재미다. 사각의 링 위에서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이 서로 뒤엉킨 장면은 한동안 다시 못볼 아름다운 ‘투 샷’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신인왕전에서 맞붙는 후반 15분 이전에는 마치 전혀 다른 두 영화인 것처럼 각 인물별 에피소드로 따로따로 진행이 된다. 카메라는 인생의 ‘막장’에 서 있다는 공통점 외에 전혀 다른 삶을 산 40대와 20대, 전직복서와 신인복서의 삶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 주며 링 위에 선 두 사람과 마주 선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관객들은 이미 두 사람의 간절한 사연을 알고 있는 만큼 고민에 빠진다. 태식은 한때 복싱 스타였지만 지금은 매맞는 일로 돈을 버는 남자다. 운영하던 공장의 화재로 답답한 신세가 된 그에게는 재산이란 것은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뿐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그에게 아내는 이혼을 요구해 오고, 이제 그는 아들과 함께 살 수도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된다.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잃을 것도 없는 인생 막장의 이 늙은 복서는 이제 신인왕전 타이틀을 마지막 희망으로 품게 된다. 상환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 없이 소일하는 인생이었다. 패싸움과 ‘삥 뜯기’가 하루 일과. 어느날 큰 싸움에 휘말려 합의금이 필요하자 그는 동네 유지의 돈을 빼앗다 소년원에 수감된다. 소년원에 들어와서도 그는 여전한 문제아다. 다른 재소자와 싸움을 벌이던 그는 교도 주임의 눈에 띄고 권투부에 가입하게 된다. 권투는 아무 의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마저 쓰러졌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 전해져 오자 이제 그는 가족을 위해 하게되는 첫번째 일로 신인왕전 출전을 결심한다. 차근차근, 두 인물의 삶에 빠져들던 관객들에게 영화의 막바지 권투 경기 장면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들이 벌이는 결승전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처절한 전투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그래서 누구의 편도 쉽게 들 수 없는, 그런 싸움이다. 시합 장면은 실제로 두 배우가 진짜 펀치를 날리며 진짜 6라운드 경기를 펼치며 촬영됐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몸만들기에 들어갔던 두 사람은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실시간으로 직접 경기를 펼쳤다. 상영시간 134분. 15세 관람가. ■유쾌한 퓨젼 서부극 ‘800 블렛’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스턴트상을 제정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스턴트맨의 랩소디’를 그린 영화가 개봉했다. ‘커먼웰스’로 2000년 스페인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40) 감독의 2002년작인 ‘800 블렛(800 bullets)’은 스턴트에 대한 자부심과 향수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다. 무대는 스페인 알메리아 사막의 어느 마을. 이곳에는 ‘텍사스 할리우드’라는 다스러져가는 영화 세트장이 있다. 과거에는 실제로 할리우드 서부극의 촬영지로 사용됐으나 이제는 하루 10명 안팎의 관광객만이 찾을 뿐인 처량한 세트장은 관광객보다 많은 액션 배우들의 삶의 터전이다. 이들 액션 배우들은 저마다 보안관, 인디언 추장, 총잡이 등을 맡아 관광객들 앞에서 한바탕 쇼를 펼친다. 그러나 첨단 컴퓨터 그래픽이 관객의 눈을 현혹시키는 21세기에 이들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봐도 시대착오적이다. 한때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는 훌리안(산쵸 그라시아 분)은 몇해전 역시 스턴트맨이었던 아들을 자신의 눈 앞에서 잃는 사고를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스턴트에 집착하며 “몸으로 때우는 것이지만 정직한 직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훌리안의 모습은 결코 장인 정신의 표출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한 낙오자이고 그가 꾸린 배우 집단은 오합지졸 공연단일 따름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엔 한심하고 하찮은 가치관일지라도 한사람의 평생을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라면 그것은 위대하다. 누가 누구의 인생을, 어떤 잣대로 평가할 것인가. 이글레시아 감독은 이러한 주장을 펼치며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쓸쓸한 노인에게 찬란하고 화려한 마지막을 선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수십년 전에 냅킨에 써준 전화번호를 가보처럼 간직한 훌리안은 그 자부심을 안고 오직 800발의 총알로 탱크에 맞선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아내에게서 아들 향기가…‘잔다라2’ 2001년 개봉했던 ‘잔다라’의 속편. ‘잔다라’는 태국말로 ‘저주받은’이라는 뜻의 ‘잔라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태프(와차라 탕카파서트)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폭행의 이유는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 이를 용납하지 못한 태프는 집을 나간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경찰이었던 아버지 차웅(소라풍 찻리)은 에머랄드 섬에서 어부로 생활하며 젊은 여자 리암(헤렌 니마)과 함께 살고 있다. 리암에게 차웅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 하지만 리암은 성관계에 어쩔수 없이 응할 뿐 차웅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 갈등은 사진작가가 된 태프가 섬을 찾으면서 다시 시작된다. 차웅과 원치않은 관계를 갖는 리암에게 연민을 느끼는 태프. 서로에게 끌리던 두 사람은 머지않아 애정행각을 시작하게 된다. 2편은 1편과는 다른 인물과 줄거리가 등장하며 인간관계의 얽힘은 덜 복잡하지만 스토리의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전편과 비슷한 편이다. 1편과 2편을 아우르는 핵심적인 단어는 ‘불륜’, 갈등의 핵 역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반목이다. 31일개봉. 상영시간 100분. 18세 이상 관람가. ■김정은 주연의 영화 ‘사랑니’(제작·투자·배급 시네마서비스)가 최근 촬영을 시작했다. 지난 16일 서울 정릉에서 진행 된 첫날 촬영 신은 인영이 점을 보기 위해 점집을 찾는 장면. 상담을 받으러 간 인영이 오히려 역술인에게 상담을 해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6월까지 촬영된 뒤 가을 극장가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MOVIE/피와뼈.나인하드 2

■피와뼈 괴물이 된 조선사내 ‘김준평’ 피와 뼈가 붙어 있다고 인간인가. 피와 뼈를 물려줬다고 부모인가. 최양일 감독은 “피와 뼈는 인간과 가족 관계를 말한다. 뼈 안에는 무엇이 있고 피 안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폭력이다. 시대가 폭력이고 생존이 폭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자체가 폭력적이다. 진저리날만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그것이 재일한국인의 삶이고 작가와 감독이 모두 재일한국인이라는 점은 분명 한국 관객에게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눈을 크게 뜨고 영화를 직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냄새가 역하다. 1923년 오사카. 일련의 한국인들이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다. 이들은 불결한 빈민가에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뿌리를 내린다. 모두가 살아남아야 했다. 한복입고 제사지내고, 결혼식날 신랑의 발바닥을 북어로 때리는 풍습은 꾸역꾸역 지켜가지만 한국어는 ‘장인어른’과 ‘형님’을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영화는 주변인에게 결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오로지 한 사람,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분)에게 초첨을 맞춘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도일했을 그의 모습은 그러나 극 초반부터 광폭하고 탐욕스러운 중년으로 그려진다. 마누라는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자식들은 하찮은 벌레 취급하는 이 남자는 자신이 인간임을 잊은 듯 하다. 여자를 섹스 도구로 생각하며 오로지 돈에만 관심있는 그는 발정난 돼지 같은 모습으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한다. 그중 가장 기가 찬 풍경은 자신의 아들들과 처절한 육박전을 벌일 때. 이들 부자 앞에 인륜은 공허할 뿐이다. 그런 그가 딱 한번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섹스 노리개로 삼던 기요코가 뇌종양수술을 받고 거동도 못하는 바보가 됐음에도 버리지 않고 정성들여 간호하는 것. 피와 뼈를 나눈 가족들에게는 한번도 보이지 않던 행동. 그러나 이마저도 사실은 또다른 정부를 들이며 자식을 넷이나 까발리는 짓과 병행한 것이다. 욕정만큼 그의 자식에 대한 욕심도 거대하다. 역시 피와 뼈에 대한 집착이다. 영화는 김준평의 무소불위 광기와 폭력을 가감없이 따라가며 50~70년대 재일한국인들의 지난한 삶을 중간중간 훑었다. 젊은층의 북에 대한 동경과 한국인끼리의 결혼을 고집하려는 노력이 살짝 그려진다. 마을 잔치 때 잡힌 커다란 돼지가 난도질되는 장면은 어쩌면 당시 재일한국인의 삶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시뻘건 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고, 대야 가득 쏟아지는 구불구불한 내장은 보상받을 길 없는 고단한 삶이다. 그러나 혼란스럽다. 김준평의 모습을 뒷받침하는 설명이 싹둑 잘라져나갔다. 거두절미하고 김준평의 아들 마사오의 눈으로 괴물 같은 아버지의 비상식적인 짓거리들이 나열되는 것이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나,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가 그를 그렇게 내몰았다는 식의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이 때문에 각종 묘사가 사실적이고 기타노 다케시의 연기가 두려움을 자아낼 정도로 질퍽함에도 영화는 당위성을 줌으로써 끌어낼 수 있는 감동을 놓치고 간다. 25일 개봉, 18세 관람가. ■나인하드 2 코믹 킬러… ‘해도, 너무해’ ‘완벽한 행운’, ‘왕대박’을 뜻하는 ‘나인야드(The Whole Nine Yards)’가 조금 더 커진 행운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2000년에 개봉했던 ‘나인야드’보다 1야드 넓어진 속편 ‘나인야드2(The Whole Ten Yards)’가 24일 국내 관객을 만난다. 2편에서도 1편의 주인공인 냉혈한 전문킬러 지미 튤립(브루스 윌리스)과 어딘가 헐렁해보이는 소심한 치과의사 오즈(매튜 페리), 대범한 금발미녀 신시아(나타샤 헨스트리지), 막무가내 킬러 지망생 질(아만다 피트)이 호흡을 맞췄다. 1편에서는 지미가 오즈의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황당한 사건에 연루되고 결국 이둘과 신시아, 질까지 부자연스럽게 뭉치면서 1천만 달러를 차지했다. 또 지미의 부인이었던 신시아는 오즈와, 킬러를 꿈꾸던 간호사 질은 지미와 사랑에 빠지면서 끝났다. 이번 ‘나인야드2’는 졸지에 부자가 된 오즈에게 갱단의 보스 고골락(케빈 폴락)이 전편에서 죽은 아들 야니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고골락은 오즈의 부인 신시아를 납치한 뒤 오즈에게 야니를 죽인 지미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며 협박한다. 신시아를 구하려고 지미를 찾아간 오즈는 킬러에서 손끝이 섬세한 가정주부로 변신해 닭에게 이름까지 붙여 애틋하게 부르고 있는 지미를 만난다. 지미와 오즈, 질은 추격해오는 고골락 일당을 따돌리지만 끝없는 내분으로 신시아를 되찾을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1편이 코미디와 액션, 인물과 줄거리가 적절히 섞여 적당한 웃음을 만들어 냈다면, 2편은 각 요소가 조금씩 더 과장돼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애매한 영화가 돼버렸다. 줄거리는 반전에 반전을 노리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허탈해진다. 어느새 냉소적인 미소의 액션 배우보다 실없는 코미디 배우가 더 잘 어울리게 돼버린 브루스 윌리스는 어색한 앞치마에 토끼 슬리퍼까지 신고 고군분투한다. 질과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누며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하는 모습은 킬러부부답지만 왼쪽 팔뚝에 해놓은 문신 속 튤립은 이미 시들어버린 듯 하다. 영원한 ‘프렌즈’로 남아있는 매튜 페리는 챈들러 캐릭터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 ‘프렌즈’에서도 그랬듯 영미권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말장난과 매번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웃음의 원천은 오히려 브루스 윌리스 쪽보다 아직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괴팍한 발음과 무지막지한 손놀림,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고골락과 그의 노브레인 아들이 이끄는 갱단이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영화 초반에 걸 스카우트로 잠깐 등장하는 여자아이. 금발의 이쁘장한 여자아이는 바로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 무어 사이의 세 딸 중 막내인 타룰라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8분. 영화 ‘사랑니’ 김정은 연하男 누가될까? 김정은이 차기작으로 정지우 감독의 신작 ‘사랑니’를 선택했다. 정 감독이 ‘해피엔드’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는 ‘사랑니‘는 열일곱 살 남자와 사랑에 빠진 서른 살 여자의 이야기. 김정은의 상대역은 미정이다. ‘사랑니’는 3월 크랭크 인하며,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