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사부일체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 기대를 모았던 ‘투사부일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기자 시사회를 마련했다. 시사회장에 참석한 김동원 감독과 정준호, 김상중, 정웅인, 정운택 등 주요 배우들은 각각 자신들의 영화에 대해 높은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일관했다.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정준호),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 스타들이 교복을 입길래 나도 입어 보았다”(김상중), “코메디 대상 수상식이 열렸으면 좋겠다”(정웅인), “많은 기다렸었다. (촬영을 하며) 많이 맞은 만큼 어여삐 봐달라” 등이 상영 전 밝힌 짧막한 견해들. 당초 개봉일 보다 앞당긴 투사부일체의 실체는 19일 드러났다. 관객들과 만났으며 이미 어느정도의 윤곽을 드러낸 상황이다. #1 스크린에서 만난 반가운 지역 인사 영화의 초입, 프롤로그 부분을 보면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 물론 이는 영화가 마켓으로 삼은 전국 단위의 규모에서 볼 때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으나 적어도 경기도에선 많은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대학 강단에 들어서 학생들의 출석 체크를 하는 이가 바로 유형욱 도의회 의장이다. 소위 말하는 ‘까메오’ 출연으로 지난해 경기방문의해 홍보대사였던 정준호와의 친분 관계를 통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이 시점에서 굳이 유 의장의 연기력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교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자체가 10여초 남짓한 시간으로는 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 뒤 대답이 없자 “이 놈 안되겠네…”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투사부일체’가 분명 코메디를 지향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준다. #2 광고 영화(?) 투자 유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영화계의 요즘 추세라고 하지만 가뜩이나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나타나는 큼직한 상표들은 간혹 거슬리게 다가온다. 그것도 자연스레 보여주거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기술적 측면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채 가운데에 버젓이 자리잡았다. 장면의 완성도를 위한 연출이라기 보다 상품을 위한 장면 구성이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예컨대 ‘아침을 돌본다’는 의미의 숙취해소 드링크제는 마치 음료인듯 취급된다. 광고 모델인 정준호의 애정어린 설정이라 생각하면 깜찍한(?) 발상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넘기기엔 강압적이다. 또 국내 모 컴퓨터 회사의 노트북은 아예 상품에 없던 상표를 달고 화면을 채웠다. 노트북 LCD가 달린 겉면에 컴퓨터 회사 로고를 부착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주인공에 가까운 한효주의 심리나 이미지를 암시하는 옥상씬에서 ‘K’로 시작되는 패션 브랜드가 눈 앞을 가득 메운다. 난간에 오른 그의 심리 및 이미지는 이 때문에 온전히 살지 못했다. 운동화에 새겨진 브랜드에 시선을 집중 시킬 따름이다. #3 압박감에 눌린 코메디와 폭력 코메디 영화의 특징중 하나라면 단연 ‘가벼움’이다. 가볍다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코메디에서 파생되는 웃음만큼이나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전편에 이은 ‘투사부일체’는 초반, 이를 충실하게 따랐다. 집중력을 높이는 액션씬에 이어 ‘형님 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코메디는 배꼽을 움켜 쥐게도 한다. 특히 그동안 냉철하고 무게감 넘치는 연기력을 보였던 김상중이 고교생으로 돌아간 변화나 엔터테이너 하하와 같은 감초스런 배역들은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좀 더 정확히는 그 이전부터 방향키를 잃어간다. 1편과 마찬가지로 학교가 무대가 돼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신선함이 없다. 코메디를 만들어 나가는 형식도 비슷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위적이며 웃음 또한 TV 속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장면들이 지나가면 없다시피 하다. 더구나 코메디의 가벼움에서 벗어나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사학비리는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근자에 사회적 이슈로도 떠오르고 있는 화두이긴 하지만 치말한 계산 없이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던 눈치다. 감독은 학교 재단 이사장 아들과 원조교제를 맺었던 한효주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정준호의 분노를 끌어 올린 뒤 교복 입은 학생까지 조직 폭력배들과의 싸움에 가세시킨다. 결국 ‘죽음-폭력-화해’란 엇박자의 구도를 낳았다.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 치킨 리틀 말썽쟁이 꼬마 닭 마을 영웅이 되다 ‘치킨 리틀’은 설 연휴 가족 관객들을 겨냥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다. 등장 인물은 모두 동물. 이중 주인공은 꼬마 닭 치킨 리틀이다. 동물 마을에서 치킨 리틀은 구제불능의 말썽쟁이로 통한다. 얼굴의 절반을 덮는 안경을 쓴 작은 꼬마가 마을을 발칵 뒤집었기 때문이다. 쾌청한 오후 “하늘 조각이 떨어졌어요!”라고 외치며 마치 하늘이 무너질 것같은 소동을 벌인다. 그러나 증거라고는 머리 위에서 떨어진 도토리뿐이었다. 치킨 리틀은 이 일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놀림감이 된데다 아빠로부터 신뢰도 잃는다. 그런데 몇년 후 다시 하늘 조각이 떨어진다. 이 광경은 치킨 리틀은 물론 그의 왕따 친구들도 함께 목격한다. 치킨 리틀과 친구들은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이번에도 웃음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주인들 공격이 시작된다. 어린이를 겨냥한 이 애니메이션의 무기는 두 가지. 하나는 다양하게 묘사된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고 또 하나는 귀에 익은 각종 팝송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흥을 돋운 점이다. 주인공 닭 이외에 물고기, 청둥오리, 돼지 등의 캐릭터가 사랑스럽게 표현됐고 특히 물고기는 지상에서 살기 위해 산소 마스크와 같은 어항을 뒤집어 쓰고 다녀 인상적이다. 우주인들의 공격은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을 패러디했으며 마지막 장면에선 인기 TV 시리즈 ‘스타트랙’도 패러디했다. 이러한 유머와 함께 영화는 아빠와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치킨 리틀의 노력을 통해 짠한 감동도 추구했다. 전형적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디즈니표 애니메이션. 가족과 친구의 가치를 강조하는 디즈니의 사시(社是)가 담긴 만큼 설 연휴에 잘 어울린다. 오는 26일 개봉. 전체 관람가. ● 게이샤의 추억 할리우드가 탄생시킨 신비의 여인 ‘게이샤’ 사무라이와 함께 게이샤는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각기 일본의 남성과 여성을 대표하는 둘은 공통점을 안고 있다. 극단성과 선정성 등이다. 바로 이같은 점이 서양인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더도 덜도 아닌 야만을 상징하는 키워드인데도 서양인의 눈에는 이보다 더 매혹적이고 화려해 보이는 동양이 없다. ‘게이샤의 추억’은 ‘라스트 사무라이’에 이어 할리우드가 일본 문화에 대해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애정을 표한 작품이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할리우드 최고 몸값의 스타 톰 크루즈가 제작·주연을 맡았다 ‘게이샤의 추억’은 미다스의 손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고 ‘시카고’의 롭 마셜이 감독을 맡았다. 할리우드중에서도 정중앙에 있는 인사들이 만든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게이샤들을 일본 배우가 아닌 중국 배우들이 맡은 점이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한국보다 못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장쯔이는 물론 궁리나 미셸 여 등 주연 3인방 게이샤가 모두 중국인 여배우. 한마디로 게이샤를 할리우드와 중국 여배우들이 추억한 셈이다.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인 김윤진이 게이샤 출연 섭외를 받고 고민 끝에 거절한 것과 대조적이다. 영화는 80년대 후반 출간된 미국 작가 아서 골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독특한 색깔의 눈동자를 가진 어촌 소녀 지요가 최고의 게이샤로 성장하는 이야기. 소설의 분량이 방대한 까닭으로 영화는 원작의 앞과 뒤를 싹둑 잘라내고, 부분 각색을 통해 할리우드식으로 변형을 꾀했다. 이 과정에서 인물 묘사 역시 대폭 간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영화의 기획 동기가 게이샤에 대한 서구 남성의 호기심 어린 시선인 만큼, 게이샤의 성적 매력과 성적인 기능에 대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의 독특하고 화려한 화장법이나 남자를 사로잡는 갖가지 제스처, 처녀성에 대한 경매 등은 서구 남성들을 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혼탕에서의 유희도에 대해 게이샤들은 예술가로 자평하지만 결국은 돈과 권력이 있는 남성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 개인적인 삶과 사랑을 갈망하기에 나름의 인간적 고뇌는 있지만, 평생 뒷바라지 해줄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삶은 사실 고급접대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국 여배우들과 함께 와타나베 겐, 야쿠쇼 고지 등 일본 남자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화면을 꽉 채운다. 하지만 배우들의 어색한 대사는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여겨진다. 1930~40년대 어둡고 축축한 일본 골목길과 좁은 다다미방, 화려한 사원 등은 게이샤 못지않은 볼거리를 전해준다. 다음달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홀리데이 황대철역 이 얼 ‘비열한 양아치’로 변신 “이렇게 일찍 인터뷰도 합니까? 이른 시간이어서 적응이 잘 안 되네요” 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읊조리는 이얼(43)은 오전 인터뷰가 적응이 안 되는 눈치다. 그의 생각으로는 아침 댓바람부터 진행하는 인터뷰에 주파수를 맞추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다른 배우들보다는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배우로서의 일정은 대부분 오후 시작, 아침에 하는 인터뷰가 좀 생경하네요” 잘 적응되지 않는다는 그를 붙잡고 ‘홀리데이’(감독 양윤호 제작 현진시네마)에서 맡은 교도소 방장 황대철 역에 대해 물었다. 이 노련한 배우는 정신이 없다고 말하다가도 배역 얘기가 나오자 술술 말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이얼은 지난 88년 발생한 지강헌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 ‘홀리데이”에서 지강헌을 극화한 인물 지강혁(이성재 분)이 수감된 교도소의 방장이다. 특사로 나가려고 교도관들을 매수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는 비열한 인물. “촬영 들어가기 5일 전 캐스팅됐어요” 이얼은 캐스팅과정부터 입을 뗐다. “‘홀리데이’는 오랜 전부터 기획된 영화이고 이미 배우 강성진씨가 황대철 역을 맡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캐스팅에 문제가 생기면서 저한테 배역 제의가 왔어요. 그렇게 끌리는 배역도 아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솔직한 답변이다. 그가 이런 악조건에도 제의를 수락한 건 이미지 변신이란 배우로서의 숙명(?)때문이었다. 전작들을 통해 이얼은 세상의 어떤 험난한 풍파도, 거친 인생사도 그저 너털웃음으로 포용할듯한 선한 이미지로 박혀있다. 그는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면 배우생활에 문제가 많다”며 “기회가 되면 바꾸려고 했는데 기회가 빨리 왔다”고 말했다. 성격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들어간 황대철 캐릭터는 양윤호 감독과의 논의를 통해 완성됐다. 그래도 이번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가 보다. “촬영중 양 감독과 황대철 캐릭터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완전히 조폭수준으로 갈 거냐, 아니면 양아치 정도로 마무리할 거냐를 놓고 고심했어요. 저는 세게 가자고 했죠. 그래야 나중에 황대철이 변하는 모습과 대비를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양 감독은 황대철 역할이 너무 무겁게 가면 작품 자체가 어두워진다고 양아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황대철을 조폭수준의 악역으로 묘사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양아치로 가서 서운하냐”는 말에 “다음에는 제대로 된 악역을 할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며 씽긋 웃었다. 그는 지강혁과 탈주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황대철에 대해 “황대철이란 인물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을뿐 인간적으로 보면 외로운 인물로 사회에는 황대철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 더 많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배우 이얼을 논할 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그를 관객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킨 역할도, 배우 스스로 맘에 들어 하는 역할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도 바뀌는데 같은 배역을 연기를 해도 다르지 않겠느냐”며 “다시 성우 역을 맡는다면 더 밝게 할 것 같은데 그때만큼 잘 할 자신은 솔직히 없다”며 웃었다.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이 현지시간으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튼에서 열린 ‘제 6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주제가상 등 4개부문을 싹쓸이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브로크백 마운틴’은 록키산맥의 스펙터클한 대자연의 풍경을 배경으로 20년에 걸쳐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두 남자의 동성애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이안 감독은 20년간 짧은 만남과 긴 기다림을 반복하며 가슴 속 깊이 진실한 사랑을 간직하는 에니스와 잭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사랑이라는 신비한 감정의 날줄과 씨줄을 세세하게 포착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무엇보다‘브로크백 마운틴’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두 주인공의 호연이 한몫했다. 헐리우드의 인기 꽃미남 배우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은 사랑한다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남자들의 가슴 사무치는 사랑과 그리움, 북받치는 감정을 절제된 연기에 담아 영화의 감동과 진실성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에 이어 LA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비평가협회, 보스턴 비평가협회, 런던비평가협회 등 내노라하는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휩쓸었던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번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 수상으로 오는 3월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가장 확실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바 있는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정점에 이른 연출력을 발휘했다. 이 영화에서 이안 감독은 미국 서북부 록키 산맥의 눈부신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들과 수천마리의 양떼가 노니는 푸른 초원의 탁월한 묘사를 통해 관객의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대자연의 장관을 빚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대자연의 아우라 속에서 사랑하고 갈등하는 에니스와 잭, 두 인물의 깊숙한 내면에 현미경을 들대고 그들의 심리와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풀리처상 수상자이자 유명한 소설가인 애니 프루가 1997년 뉴요커(The New Yorker)에 발표해,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를 수상한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다이아나 오사나는 잡지에 실린 단편을 우연히 읽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탈진하는 경험을 맛봤다고 털어놨다. 소설의 감동을 지울 수 없었던 그녀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동료인 래리 맥머트리에게 이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풀리처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한 래리 맥머트리는 오사나와 함께 밤새 이 소설을 읽고 다음날 바로 시나리오로 각색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결국 오랜 세월 지속된 내밀한 감정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원작은 래리와 다이아나의 손을 거쳐 중심을 잃지 않는 탄탄한 시나리오로 거듭났다. 과장되지 않은 진실한 러브스토리로 전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있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렇게 탄탄한 원작과 정교한 각색의 만남, 여기에 세심한 이안의 연출력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한눈에 봐도 흉측한 뱀 문신, 혀를 내민 뱀이 지금이라도 꿈틀 꿈틀 살아 움직일 것 같다. 이 문신을 한 주인공은 협박난무 느와르 ‘손님은 왕이다’에서 정체 불명의 협박자로 등장하는 명계남이다. 그는 잔악무도한 협박자 ‘김양길’ 역을 맡아 손가락 마디 마디에 ‘HATE’와 ‘LOVE’라는 문신을, 왼쪽 팔목에는 문제의 뱀 문신을 새겼다. 리얼한 뱀문신의 탄생은 협박자 캐릭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까 고민한 명계남과 오기현 감독의 논의 끝에 나온 아이디어. 촌스럽지만 징그럽고 거부감이 드는 뱀문신과 ‘사랑’, ‘미움’이라는 극과 극의 의미가 담긴 문신은 김양길의 캐릭터를 단박에 설명하는 분신과도 같은 소품이다. 그러나 진짜 같은 이 문신은 미술팀에서 만든 가짜 문신이다. 밑바탕이 되는 뱀문신을 정교하게 그린 후 판박이 종이 위에 그대로 뱀그림을 따라 그리면 일단 반은 성공이다. 이 문신 판박이를 원하는 신체 부위에 대고 물을 충분히 묻힌 후 30초 정도 기다리면 문신이 피부에 붙으면서 고정된다. 보기보다 튼실해서 따로 지우지 않으면 일주일 정도 유지된다고 한다. 명계남은 “느즈막한 나이에 주책 맞게 왠 문신이냐”는 구박에도 불구하고, 촬영 때마다 손가락과 팔목에 문신을 새기는(?) 수고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제작사인 조우필름에 따르면 이 뱀문신으로 인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쁜 촬영 일정에 쫓겨 문신을 지우지도 못한 채 허둥지둥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된 명계남. 손등 위로 드러난 흉측한 뱀문신과 요란한 영화 의상은 하객들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명계남 특유의 입담으로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이 에피소드는 촬영 기간 내내 회자되면서 듣는 이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후문이다. 내년 2월 개봉될 ‘손님은 왕이다’는 네 남녀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그린 작품. 명계남은 이 영화에서 데뷔 이후 첫 주연을 맡아 관록의 연기를 선보인다.
지난 1988년에 일어난 지강헌 탈주 사건의 마지막 인질극 현장에 출동했던 한 경찰관이 지씨를 다룬 영화 ‘홀리데이’에 대한 소감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계모씨는 지난 13일 이 영화의 제작사 현진씨네마 홈페이지에‘홀리데이 시사회 감상하고’라는 글이 올리고“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지강헌이 탈주해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민가에 잠입하였을 때 처음 출동한 경찰”이라며 “TV에 생중계되고 지강헌이 마지막 죽을 때까지 현장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계씨는“영화 마지막 부분의 지강혁역을 맡은 이성재와 인질이 되었던 효주의 장면이 압권이었고 영화 속 인질극이 벌어졌던 집 역시 북가좌동의 집과 구조가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질이 지강혁에게 동화돼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시도한 지강혁을 구하려고 하는 장면이 잘 표현됐다”고 평가했다. 계씨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강혁이 죽기 전 홀리데이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권총을 이마에 대고 발사했지만 불발되자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트려 깨진 유리조각으로 자신의 목에 자해를 해 자살을 시도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계씨는“영화의 장면이 당시 상황을 보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연출됐다”면서도“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주장하고, 마지막 순간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인질을 해치지 않은 것은 범인을 미화화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반대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영화 ‘사랑을 놓치다’ 송윤아 “일상생활 연기 더 힘드네요” 연기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은 분명 역설이다. 그렇지만 이 말에는 극중 인물을 온몸으로 오롯이 표현하고 싶은 배우의 절절한 연기 욕심이 숨어 있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연출 추창민·제작 시네마서비스)에서 10년간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연수를 연기한 송윤아(33)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이 말부터 꺼내 놓았다. “시사회 보신 후 느낌이 어땠어요?”라는 가벼운 질문에 대한 대답치고는 무게감이 깊다. 그는 “표현 자체가 웃기기는 한데 연기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게 너무 어렵더라”며 웃었다. “엄마랑 얘기하고 남자친구와 얘기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그런 대화들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기가 힘든지 몰랐어요.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는 “막상 시사회에서 영화를 접하니 어색한 곳 투성이”라면서 “’내가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구나’, ‘내가 여전히 예쁜 척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창피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내내 조용했던 그가 함께 출연한 장항선, 이휘향 등 선배 연기자들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언급할 때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연수 엄마 역을 연기한 이휘향의 연기 열정을 보고는 깊이 반성했다고. “선생님이 온몸에 선탠을 하셨는데 얼룩덜룩하게 하셨어요. ‘시골 양어장에서 평생 일만 한 아낙이 어떻게 예쁘게 살이 탔겠느냐’면서 오일을 군데군데 바르시고 하셨대요. 저희 같으면 일단 고르게 태우고 분장으로 해결했을 텐데, 연기 열정에 많이 놀랐습니다.”/연합뉴스
영화 ‘태풍’장동건의 의상이 인터넷 쇼핑몰 영화소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105만원에 팔려나갔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에 따르면 개봉 전부터 인터파크 영화 예매 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하며 2005 최고 오프닝을 기록한 해양 블록버스터 ‘태풍’ 의상 경매를 진행했다. 이달 12일부터 23일까지 실시됐던 경매 결과 이정재 의상은 23명이 입찰해 27만원에 낙찰되었고, 장동건의 의상은 44명이 입찰해 약 4배에 달하는 105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지난 8월 CJ몰에서 진행한 ‘친절한 금자씨 소품 경매’ 이영애(금자) 물방울 무늬 원피스 최종 낙찰가인 80만 9천원, 11월 인터파크에서 진행한 ‘한류스타경매’ 김래원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청바지의 최종 낙찰가인 94만원을 뛰어 넘는 낙찰가다. 인터파크 경매 담당자는 “흥미로운 점은 서울에 거주하는 한 30대 남성팬이 장동건, 이정재 두 스타의 의상세트를 모두 낙찰 받았다는 것”이라며 “장동건, 이정재의 열혈 여성팬이 낙찰받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표주식씨(33세,자영업)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밝혔다. 표씨는 낙찰 직후 “내가 입을 옷을 구입하기 위해서라면 100만원을 쓸 수 없었을테지만 장동건, 이정재 두 배우의 땀과 노력이 깃들여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부자가 된 느낌이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인터파크는 전했다. 이번 ‘태풍’ 의상 경매에서는 총 132만원이 모금됐으며, 전액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되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수호)너랑 나랑 만난 건 몇 만 분의 확률일까?” “(수은)태풍 한 가운데 별이 떠있을 만큼의 확률.” “(수호)나 너 때문에 울고 너 때문에 웃을 거구 너 때문에 살 거야. 앞으로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 그림 같은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둘만의 데이트 장면. 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서정적인 대사를 주고받는 송혜교와 차태현. 그러나 이 장면은 모니터링 결과 가장 닭살스런 대사로 손꼽히는 장면이었다. 영화 ‘파랑주의보’의 극중 닭살 대사가 화제다. 개봉 전 각종 행사나 인터뷰에서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영화 속 커플 연기에도 자신감을 펼쳤던 두 주인공은 실제 영화 속에서 역대 멜로 영화 중 최고의 닭살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영화를 보는 중에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낯간지러운 닭살 대사들과 사랑에 관련된 주옥 같은 명대사들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수호’ 역의 차태현이 꼽는 최고의 닭살 대사는 무엇일까? 수호와 수은이가 섬 여행 갔을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안개섬의 할매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 속 대사다. “(수호)뭘 빌었어?”“(수은)넌?”“(수호)너 먼저 얘기해”“(수은)싫어 너 먼저 해” “(수호)그럼 동시에 할까?”“(수호)하나 둘 셋”“(수호, 수은 동시에) 늘 오늘만 같아라!”“(수은이가 놀라서 얼른 수호 팔뚝 꼬집으며)잠자리!” “(수호)날아갔다!” 이 영화의 기자 간담회에서 차태현은 이 장면이 거슬렸는지(?)“너무 낯간지러운 장면이라 기억 속에서 지워주세요”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날리기도 했다. 두 배우의 연기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닭살 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청연 잃어버린 사랑, 빼앗긴 조국…하늘을 품었던 ‘비운의 여인’ 평생의 꿈을 이루는 그 순간, 가장 비참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조국과 자존심도 버린 채 그토록 소망해왔던 일이지만 사랑도, 후배도, 그리고 삶의 정당성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남겨진 게 과연 무엇일까. 박경원에게 하늘을 날만큼 기분 좋아야 할, 하늘을 나는 일이 굴레가 돼버린 영화 속 한장면은 이 영화가 과연 뭘 보여 주고자 하는지 분명히 드러낸다. 올 한해를 마무리할 블록버스터가 드디어 모습을 공개했다. 제작기간만 3년. 제작비 93억원이 제때 충당되지 못해 촬영이 중단되기도 몇차례. 그럼에도 윤종찬 감독은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박경원이 그랬던 것처럼. ‘태풍’에 이어 ‘청연’ 역시 한국 영화의 촬영기술이 이젠 꽤 업그레이드됐음을 느끼게 해준다. 깨끗한 화면 속에 펼쳐지는 비행장면은 압권. 복엽기(複葉機)의 고공비행 장면은 스릴과 시원함을 함께 전해준다. “비행에서 오는 감정의 굴곡과 착잡함을 담으려 했다”는 윤 감독의 의도는 감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개봉 직전 박경원의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피해갈 생각은 없었다. 사실(史實)이니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윤 감독의 발언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드러난다. 영화는 오히려 박경원의 친일 행적이란 좋은 소재를 활용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한 여자의 삶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박경원(장진영 분)은 하늘을 날겠다는 꿈 하나로 일본 비행학교에 입학한다. 고학생인 그는 밤에는 택시 정비를 한다. 대타로 택시를 몰았던 날 평생의 운명이 될 남자 한지혁(김주혁 분)을 만난다. 그는 친일파 아버지를 둔 까닭에 방황하며 자기 자신을 방치하며 살아간다. 아버지의 명령대로 군에 입대한 한지혁이 1년 후 박경원의 비행학교가 있는 부대에 배치받으며 두 사람은 사랑과 믿음을 키워간다. 여기에 귀여운 후배 이정희(한지민 분)와 강세기(김태현 분)까지. 더 이상 행복한 날들이 없다. 스승이자 동료인 다치가와 교관(나카무라 도루 분)까지 곁에 있으니. 거칠 것 없는 박경원에게 적당한 일본인 경쟁자까지 등장한다. 비행학교 경연대회 랠리부문 출전자인 박경원을 밀치고 모델이자 외무성 장관의 애인인 기베(유민 분)가 최종 출전자가 된다. 그는 박경원의 꿈을 알게 된 후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갑작스런 강세기의 죽음으로 주력이 아닌 고공 비행종목에 출전하게 된 박경원의 비행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 협곡에서 촬영됐다. 미국 LA 근교에서 미국에도 단 2대 밖에 없는 스페이스캠과 실제 복엽기 4대, 촬영 전용 헬기 등이 동원돼 촬영됐다. 그만큼 실감나는 영상이 제작진의 노력에 화답했다. 이젠 갈등 국면. 한지혁은 “결혼하자”고 갑자기 조른다. 모든 게 불안하다며. 언젠가 네가 훌쩍 떠나버릴지 모른다며. ‘소름’에 이어 두번째로 호흡을 맞춘 윤종찬 감독과 정진영 콤비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충분하다. 오는 2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비행사 박경원 친일행적 논란 장진영 주연 영화 ‘청연’의 실제 주인공 박경원에 대한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졌다. 윤 감독은 “영화를 직접 보면 알겠지만 친일 논란 자체를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영화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한 여자의 삶이 있었기에 관심이 갔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 또는 감내해야 했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업의 정석 연애 고수들의 작업로맨스 본색을 드러내시지~ “작업은 기술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외치는 남녀가 있다. 자고로 이성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선 스스로 번듯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 외모와 직업, 능력과 끼 등을 겸비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능청과 내숭, 적당한 속임수 등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지원(손예진 분)과 민준(송일국 분)은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선수다. 그런데 각자의 과학으로 강호를 평정해나가던 둘이 그만 눈이 맞았다. 각자 서로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려고 하는 이들 선수들의 지략과 활약은 상상 이상. 영화는 이처럼 둘의 치고 받는 에피소드를 가볍고 유쾌하게 이어간다. 개봉 1개월만에 전국 230만명을 모은 ‘광식이 동생 광태’ 바통을 이어 12월 연인들을 공략하는 또 다른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 매듭이 촘촘하진 않으나 이만하면 귀엽게 봐줄 만한 매력이 다분하다. 그중 가장 큰 매력은 배우 손예진의 놀랄만한 변신과 활약이다. 일련의 작품을 통해 청순한 매력을 뽐내왔던 그가 “왜 이제야!”란 의문을 불러 일으킬만큼 천연덕스러운 작업녀로 변신했다. 후안무치하고 대담무쌍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당장 전작 ‘외출’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 ‘외출’에선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연기로 박수를 받은 그는 전혀 다른 영화 ‘작업의 정석’을 통해 나이에 꼭 맞는 발랄한 매력을 물씬 뿜어 내는 데 성공했다. 만일 그에게 한치의 주저함이라도 있었다면 이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손예진의 변신 역시 지극히 부자연스럽게 다가왔을 터. 그러나 손예진은 자신이 넘쳤다. 트로트중에서도 아저씨들이나 좋아할만한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양푼에 밥을 비벼 먹다가도 작업의 대상 앞에선 천하의 우아한 공주처럼 구는 그의 연기는 영화의 숱한 빈틈들을 봉합해버린다. 기독교 맹신자처럼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병원 응급실에선 발작이 난듯한 흉내를 내고 때로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구차한 모습도 연출하는 그의 현란한 연기 메들리는 이 영화가 한편의 깜찍한 오락이 되도록 이끈다. 15세 이상 관람가.
장동건 주연의 판타지 서사 액션 ‘무극’이 제 5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얼마 전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에 이은 두 번째 쾌거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칸 국제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베를린 국제영화제(Berlin Film Festival)는 지난 20일 총 9편의 경쟁부문 후보작 중 6편을 우선적으로 발표했다. 이 중 첸 카이거 감독의 ‘무극’이 선정되는 영광을 안은 것. 베를린 국제영화제 사무국에서 먼저 발표한 경쟁부문 진출작 6편은 ‘무극’을 비롯해 독일영화 ‘소립자’와 ‘레퀴엠’, 호주영화 ‘캔디’, 영국ㆍ캐나다 합작 영화 ‘눈 케이크’, 태국 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 등이 있다.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인 쇼이스트는 22일 “‘무극’은 내년 3월 5일에 열리는 제 78회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를 가능성이 매우 유력시 되고 있다”며 “‘무극’은 이미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중국 출품작으로 선정됐으며 최종 후보작 5편은 다음 달 31일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 관계자들은 골든글로브상으로 아카데미상을 점쳐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극’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제 5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내년 2월 9일에 개막해 19일까지 개최된다.
●태풍 장동건· 이정재 ‘카리스마’ 격돌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진일보했다. 지난해 ‘태극기 휘날리며’가 보여줬던 가능성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작품이 탄생했다. 지난 1년여 숱한 화제 속에 제작돼 온 ‘태풍’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액인 순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태풍’은 남·북한 모두에게 버림받은 탈북자 출신 동남아 해적 씬(장동건 분)이 남한을 향해 가공할만한 테러를 계획하는 이야기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UDT 출신 최정예 해군대위 강세종(이정재 분)이 투입돼, 태국과 러시아, 부산 등지를 오가며 씬과 추격전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살아 남은 씬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이미연 분)가 남한의 미끼로 등장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태풍’은 외형과 구조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일단 스케일이 크고 스케일에 어울리는 중량감과 볼 거리가 있다. 주인공에겐 절박한 미션이 주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선 주인공이 불사조가 된들 별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내용적으로는 한국화에 성공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아픈 현실을 무리없이 녹여냈다. 탈북자들의 아픔과 한은 창작해낼 수 없는 소재이며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남북의 처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이 블록버스터에 어울리게 응용됐다. 질퍽함과 촌스러움 등은 줄어든 대신 오락성과 감각이 더해졌다. 같은 신파도 이처럼 재료의 선택과 요리법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밑그림이 제대로 갖춰진 구조 속에서 장동건과 이정재라는 두 스타가 한판 신명나게 놀았다. 각자 여한이 없을 정도로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토해 냈음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깡마르고 까만 외모에 상처와 문신으로 장식된 얼굴과 몸, 입 등을 벌리면 번득이는 쇠붙이 치아와 긴 고수머리, 강한 이북 사투리. 이젠 내재된 카리스마를 끌어 내는 방법을 알게 된 장동건은 이러한 찬란한 외모에 힘입어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죽이게 했다. 여기에 이미연과의 상봉장면에서 눈에 핏발 세운 그의 울부짖음은 방심하는 사이 눈물을 왈칵 쏟아 내게도 한다. 그동안 남성미 넘치는 강인한 캐릭터에 목말라왔던 이정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스크린 속을 누볐다. 단정하고 절제된 모습의 이정재는 분출하는 장동건과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며 극을 안정시켰다. 애국심과 인간애 등으로 뭉친 해군 대위는 까딱하면 코웃음을 유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이정재는 그 수위를 잘 조절했다. 태국과 러시아의 로케이션과 동남아를 누비는 해적의 모습은 생생한 이국적 재미를 더하며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해양 액션 역시 크게 흠잡을데 없이 박진감 넘친다. ‘007 시리즈’의 악당이 아닌 한국인이 세상을 전복시키는 무지막지한 계획을 세우고, 주인공이 타고 있던 배에 어뢰가 터져도 살아나는 등 영화는 ‘태풍’이란 제목을 가질 만한 파워가 있다. 한국영화의 크기와 내실이 커졌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돼 반갑다. 이제 과제는 세계 시장이다. 이런 영화가 국내용으로만 소비된다면 그때는 분명 낭비될 것이다. 국내 시장은 기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힘에 부쳐했던 일을 ‘태풍’이 해내길 기대해본다. 단순 액션의 무협이 아닌, 김기덕 감독의 예술영화가 아닌, 한국 블록버스터의 성공 소식이 듣고 싶다. 오는 14일 개봉. ●섹스와 철학 마흐말바프의 ‘사랑에 관한 독백’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의 공세가 12월 극장가를 달구는 가운데 시류와 상관 없는 예술영화 한편이 조용히 개봉한다.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섹스와 철학’이 지난 9일 종로필름포럼(옛 허리우드 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았다. 영화는 마흔살 생일을 맞아 지나온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려는 한 댄스학교 교사 조언의 이야기다. 그에게 지나온 삶은 네명의 여자들로 요약된다. 사랑을 빼놓고는 삶을 논할 수 없다는 조언의 사랑에 대한 담론이 펼쳐지는 것. 이 과정에서 댄스학교 학생들은 꾸준히 집단 무용을 선사하는데 이 광경이 대단히 이색적이다. 특히 팔을 이용한 전위적인 동작들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애절하게 느껴진다. 조언은 생일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들 네 여인을 댄스학교에 초대한 후 한명씩 붙잡고 이들과의 사랑을 반추한다. “모든 사랑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돼”라고 믿는 조언은 네 여자와의 만남을 모두 운명이라고 여긴다. 제3자 시선으로 볼 때는 중년 남자의 젊은 여자 꼬시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육체적 사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대신 시적인 대화를 나눈다. 다른 서구 영화들과는 180도 다른 접근법. 이 중년 남자의 욕망은 한 여자와 춤을 추듯 손을 에로틱하게 포개는 단 한 장면만으로 표출될뿐 그 외에는 모두 대화를 통해 소화된다. 다분히 이란적(?)인 것. 결국 댄스학교 학생들의 온몸을 이용한 현대무용이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진정한 사랑의 순간은 단 몇초, 몇분 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며 결국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온 건 외로움뿐”이란 우울한 결론이 나온다.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진 한 중년 남자 하소연은 영화 앞뒤에 등장하는 맹인가수의 구슬픈 노래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단풍길과 눈밭은 스러져가는 중년을 상징한다. 그러나 찰나일지라도 사랑은 행복한 것. 지금은 모든 게 덧없다고 느끼는 주인공이지만 마흔살 생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부터 새 출발을 운운했던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애인 ‘쿨’한 척 만났지만 비틀거리는 男女 “날 갖고 놀아줘” 남자가 여자에게 내뱉는 말이다. 그것도 만난 지 불과 한두시간만에. 남자의 저돌성에 처음에는 기막혀 하던 여자도 이내 남자에게 끌린다. 둘은 만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서로에게 맹렬하게 빠져 든다. 한가지 특징은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시한부였다는 점. 남자는 다음날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고 여자는 7년 사귄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선 남녀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서로가 서로를 일탈의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하루동안의 불장난을 즐기자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둘은 섹스를 즐긴다. 어느 한쪽이 화대를 지불하지 않으니 둘은 연애하는 것이요, 둘의 관계는 애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성인 남녀간의 걷잡을 수 없는 끌림과 이어지는 섹스는 많은 멜로영화에서 묘사했던 이야기다. 대단히 도발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는만큼 그동안 빈번하게 영화화됐을 터. 그중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시 주연의 ‘데미지’같은 명작도 있다. 말초적 흥미를 넘어 가슴을 두드리는 감동까지 전해준 것. 그러나 ‘애인’은 아쉽게도 감동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제작사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가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가 50억원으로 치솟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순제작비 13억원으로 만들었다. 한국 영화의 모범답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영화의 짜임새는 그런 규모의 경제가 미덕으로 느껴지게 하지 못했다. 주연배우 성현아와 조동혁은 영화의 성적 코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으나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끄는데는 실패했다. 이들의 짧은 사랑은 여행지에서의 그것처럼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란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으나 그들 사이의 대화나 교감 등은 지극히 단선적이다. 특히 여자가 사랑하지 않는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둔 상황인만큼 낯선 남자에 대한 끌림이 얼마든지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본능에서 시작된 사랑을 그리려던 둘의 원데이 스탠드는 채 끓기 전에 상에 내놓은 수프가 돼버렸다. 단순한 재료만으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는데도 불 조절 실패와 손맛 부족 등으로 제맛이 나지 못했다. 지난 8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