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섹스와 철학'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의 공세가 12월 극장가를 달구는 가운데 시류와 상관없는 예술영화 한 편이 조용히 개봉한다.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섹스와 철학'이 9일 종로 필름포럼(구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다. 영화는 마흔 살 생일을 맞아 지나온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려는 한 댄스학교 교사 조언의 이야기다. 그에게 지나온 삶은 네 명의 여자들로 요약된다. 사랑을 빼놓고는 삶을 논할 수 없다는 조언의 사랑에 대한 담론이 펼쳐지는 것. 이 과정에서 댄스학교의 학생들은 꾸준히 집단 무용을 선사하는데 이 광경이 대단히 이색적이다. 특히 팔을 이용한 전위적인 동작들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애절하게 느껴진다. 조언은 생일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들 네 여인을 댄스학교에 초대한 후 한 명씩 붙잡고 이들과의 사랑을 반추한다. "모든 사랑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돼"라고 믿는 조언은 네 여자와의 만남을 모두 운명이라 여긴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중년 남자의 젊은 여자 꼬시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들은 육체적 사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대신 시적인 대화를 나눈다. 여타 서구 영화들과는 180도 다른 접근법. 이 중년 남자의 욕망은 한 여자와 춤을 추듯 손을 에로틱하게 포개는 단 한 장면만으로 표출될 뿐 그 외에는 모두 대화를 통해 소화된다. 다분히 '이란'적(?)인 것. 결국 댄스학교 학생들의 온몸을 이용한 현대무용이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진정한 사랑의 순간은 단 몇 초,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며 결국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온 것은 외로움뿐"이라는 우울한 결론이 나온다.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진 한 중년 남자의 하소연은 영화의 앞뒤에 등장하는 맹인 가수의 구슬픈 노래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단풍길과 눈밭은 스러져가는 중년을 상징한다. 그러나 찰나일지라도 사랑은 행복한 것. 지금은 모든 것이 덧없다고 느끼는 주인공이지만 마흔 살 생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부터 '새 출발'을 운운했던 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연합

MOVIE/연애.‘음란서생’ 김대우 감독.둠.천년학

MOVIE/● 전미선 주연 ‘연애’ 女子에게 연애는 ‘유혹’ 남편은 늘 등 돌린 채 누워 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한켠에서 여자는 액세서리에 촘촘히 가짜 보석을 박으며 남자와 전화한다. 영화는 무미건조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어진을 통해 ‘연애’의 단맛과 쓴맛을 표현했다. 아들 둘을 둔 유부녀 어진의 일탈은 사랑에 대한 갈구이자 현실 도피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제작사인 싸이더스FNH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연애의 목적’을 잇는 연애시리즈 완결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두 영화가 그러했듯 이 영화도 파격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풀어 가는 방식은 격정적이었던 두 영화와 달리 담담하게, 독백하듯 흘러 간다. 지난 91년 ‘네 멋대로 해라’와 지난 93년 ‘101번째 프로포즈’ 등을 감독한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사무국장으로 임무에 충실했던 오석근 감독이 모처럼 현장으로 돌아 와 제작한 작품. 오 감독은 영화의 배경지로 부산을 선택해 부산에 대한 애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영화는 배우 전미선을 우리 앞에 과감하게 소개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귀를 후벼 주며 무심히 단서를 제공했던 장면은 긴박했던 영화 속에서 한폭의 풍경화처럼 묘사됐다. 차승재 대표가 이 영화에서 전미선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한 후 그를 위한 ‘연애’ 제작에 착수했다. 남편 사업이 망해 빚에 쪼들리는 어진은 ‘윤정’이란 이름으로 낯선 남자들의 무료함이나 성적 욕망을 달래 주는 전화방 아르바이트와 액세서리를 완성하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아들에게 그토록 원하는 인라인스케이트도 사주지 못할 정도의 가난이 그를 답답하고 무료한 삶으로 내몬다. 그나마 두 아들이라도 있기에 버티는 것. 돈을 받기 위해 전화방 사무실로 간 자리에서 묘한 분위기의 김 여사(김지숙)를 만난다. 김 여사는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며 명함을 건네 준다. 룸살롱에 가지 못하고 노래방에서 아줌마인줄 알면서도 여자를 찾는 남자들을 위한 공급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망설임 끝에 어진은 결정을 내리고 어색한 화장을 한다. 2차를 나가기로 결정한 날 어진은 외제 자동차 딜러 민수(장현수)를 만난다. 민수는 달랐다. 어진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대했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 처음 하는 섹스이지만 경계심이 다소 사라진 상태에서 관계했다. 섹스 후 민수는 어진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자신의 속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면서. 어진은 그런 민수가 싫지 않다. 처음엔 애써 거부하지만 민수를 차츰 받아들인다. 이처럼 민수에게 잊고 있었던 새로운 감정을 품기 시작했을 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주인 젊은 여자는 “어진의 두 아들중 한 명을 자신이 키우겠다”고 제안한다. 어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서. 현실에 있지 않을 것 같았던 행복은 잠시. 그가 의지한 김 여사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남편과 함께 자살하고 민수는 머뭇거리며 어진에게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내릴 제안을 한다. 시종 위태롭다. 일탈이며 불안한 회귀다. 어진의 선택에 공감이 가면서도 답답하다. 그래서 지켜 보는 내내 보는 이의 가슴이 답답해진다. 적나라하지 않지만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포착하는데 주력했으나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유발해낼지는 미지수. 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인터뷰/‘음란서생’으로 데뷔 김대우 감독 ▲영화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과 김민정이 지난달 24일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스·캔·들 속편이라뇨? 오히려 반·칙·왕과 닮아있죠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반칙왕’, ‘정사’. 모두 흥행과 작품성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을 쓴 김대우 작가가 이번에는 직접 메가폰까지 잡았다. 영화 ‘음란서생’을 통해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은밀한 성(性)에 접근한다는 외양을 봐서는 ‘스캔들’과 닮아 있지만 오히려 ‘반칙왕’이나 ‘정사’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내용과 함께 한석규·이범수·오달수·김민정 등 쟁쟁한 캐스팅을 앞세워 한창 촬영중인 ‘음란서생’은 내년 설 개봉 예정이다. 충무로 기대작을 촬영중인 화제의 신인 김대우 감독을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만났다. ‘음란서생’은 이곳에 조선시대 저잣거리를 오픈세트로 지어 놓고 발칙한 이야기를 풀어 내고 있었다. 우선 시나리오만 쓰다 연출까지 맡은 소감이 궁금했다. “그간 알고 지냈던 감독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싶고 그동안 잘못했던 점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연출이 어렵습니다. 작가 때 몰랐던 일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연출에 대해선 “로빈슨 크루소가 명동 한복판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느낌”이라고 작가다운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혼자서만 살던 크루소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 속에 던져진 느낌을 표현한 것일까. 명문가 자제가 음란소설을 집필한다는 내용의 ‘음란서생’에 대해 항간에선 ‘스캔들’의 속편이 아니냐는 궁금증을 제기하고 있으나 김 감독은 ‘스캔들’과의 연관성을 싹뚝 잘랐다. “속편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극이라고 다 같진 않습니다. 되레 이 작품은 ‘정사’나 ‘반칙왕’ 쪽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생각을 할 때 가장 표정이 밝습니다. 음란하다고 음침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음란함도 충분히 밝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이야기를 그는 어디서 영감을 얻었을까. 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까. “옛날 사건에서 가져온 건 아닙니다. 요즘 인터넷에는 음란소설을 올리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글이 올라오면 답글이 바로 줄줄 올라올 정도로 팬층이 두텁습니다. 사람은 똑같습니다. 현대나 조선시대나 음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많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한석규가 맡은 ‘윤서’역이 탄생했다. 정사품 사헌부 장령이자 조선 최고 문장가이지만 삶이 무료한 양반이다. 음란물을 쓰고 그로부터 행복을 얻으면 어떨까 생각했고 확신을 가졌다. 분명 그런 인물이 있었을 것이고. 그의 글에 의금부도사 광헌(이범수 분)은 삽화를 넣는다. 또 이 책을 은밀히 배급하는 배급업자 황가(오달수)가 있고 윤서에게 영감을 주는 요염한 여인 정빈(김민정)이 등장한다. 영화는 조선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2천평에 3억원 규모 오픈세트를 지었고 1만2천야드 천을 정교하게 손으로 염색해 200여벌 3.6t의 의상도 제작했다. 그의 전작들에 이어 감독으로 만든 콘셉트 있는 웰메이드 영화가 또 한편 등장할지 기대된다. ■스크린 찾은 전설의 게임 ‘둠’ 지난 93년 미국에서 출시돼 히트한 동명의 인기 컴퓨터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로 미국에선 지난 10월21일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는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적-그것이 괴물이든, 사람이든-을 향해 끊임 없이 총질해야 하는 미국 해병대 특수작전팀의 고난을 그리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끊임 없이 총알 쏘는 버튼을 눌러야 했던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손가락을 절로 움직일지도 모를 일. 영화는 이처럼 쉴 틈 없이 총알을 난사해야 하는 바쁜 상황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대한 호기심을 한축에 놓아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인 흥미에 도전했다. ‘미이라2’와 ‘스콜피온 킹’ 등의 근육질 맨 더록이 주인공을 맡아 이번에는 자신의 손발이 아닌 총에 기대 싸운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콘셉트를 그대로 따왔는데 그중에서도 실전 게임을 그대로 본떴다고 생각되는 장면들이 10여분 정도 흐른다. 특히 총을 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대신 화면 가득 총만 잡히는 신이 그것. 게이머들에게는 마치 손 대지 않고 코를 푸는듯한 재미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뿐. 더는 없다. 야후닷컴 영화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개봉 당시 비평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평점 ‘C’를 줬고 네티즌 관객은 ‘B’를 매겼다. 2046년 연합항공 우주국이 화성기지에 세운 올더바이 연구소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다. 지구에서 파견된 해병대 특수대원들은 슈퍼 파워와 지능 등을 갖춘 거대한 정체 불명 괴물들과 맞딱뜨린다. 18세 이상 관람가. {img5,l,000}■‘천년학’ 크랭크 인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천년학’이 오는 10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마을 세트장에서 촬영에 들어 간다. ‘천년학’은 장흥 출신 중진 소설가 이청준씨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소리꾼 아버지와 눈 먼 딸, 소녀의 이복 오빠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가의 판소리와 관련된 소설 ‘서편제’와 ‘소리의 빛’ 등을 함께 담았던 영화 ‘서편제’의 뒷얘기로 임 감독은 ‘천년학’을 통해 이 작가의 판소리 소설 3편을 모두 영화화하게 된다. 장흥문화원은 이에 따라 ‘천년학’ 촬영에 맞춰 ‘서편제에서 천년학으로’를 주제로 축하공연을 9일 열 예정이다. 축하공연에는 임 감독과 이 작가, 영화 주인공인 배우 오정해와 김영민 등이 참석하며 김덕수 사물놀이와 길굿공연, 안숙선의 판소리, 원장현의 대금, 진유림의 한국무용, 오정해의 판소리 공연 등이 영화 촬영지와 장흥문화예술회관 등지에서 열린다. ‘천년학’은 내년 3월까지 소설과 영화의 주무대인 회진면 선학동 마을과 광양, 진도, 제주 등지에서 촬영될 계획이다. 장흥문화원 관계자는 “선학동마을은 마치 학이 날아 가는듯한 형상을 가진 노송이 우거져 때 묻지 않은 풍광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라며 “‘천년학’으로 문학의 고장인 장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MOVIE/야수와 미녀. 아네트 베닝 ‘여전히 매력’

■ 27일 개봉 ‘야수와 미녀’ 야수의 간큰 거짓말 미녀에게 딱 걸렸어 만약 ‘그저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게 코미디 영화의 ABC라면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야수와 미녀’는 중간 이상 되는 성공은 거두는 셈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류승범의 원맨쇼는 이미 한참 물이 올랐고 에피소드도 과장된, 그래서 꽤 자극적이다. 안길강이나 안상태 같은 조연들의 연기도 톡톡 튀며 두 남녀의 사랑이 맺어졌다는 식의 해피 엔딩도 보기 편하다. ‘괴물’ 소리가 전문인 성우 구동건(류승범)과 앞을 못보는 착한 애인 해주(신민아)는 그야말로 야수와 미녀 같은 외모를 가졌다. 물론 ‘미녀’ 해주가 ‘야수’ 동건의 외모를 알리는 없다. 해주가 동건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다 동건이 자신이 “영화배우 장동건 뺨치는 미남”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마에는 흉측한 흉터가 있으며 얼굴은 험악하기 그지 없는 그는 얼떨결에 고교 동창 탁준하(김강우)를 생각해 내고 그의 외모를 자신인 양 소개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해주는 수술을 통해 눈을 뜬다. 이제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가 날 순간, 해주의 병원을 찾아간 동건은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시 얼떨결에 스스로를 동건의 친구라고 소개해버린다. 점점 커져가는 거짓말. 다행히 하와이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하며 얼마간 시간을 벌지만 이때 진짜 ‘킹카’인 준하가 해주 앞에 나타나며 상황은 점점 복잡해 진다. 코믹 멜로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야수와 미녀’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사실 야수의 아픔도, 이들이 나누는 사랑의 깊이도 당초부터 관심이 없었을 것 같다. 외모에 대한 해주의 판단은 들쭉날쭉 일관성이 없으며 자꾸 거짓말을 하는 동건의 동기도 부족하다. 영화의 시작이며 끝인 멜로와 거짓말 두가지 모두 개연성을 갖지 못한다. 여기에 시각장애인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외모를 속이는 남자 심리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보다 영화는 개연성이나 현실성 차원에서 우리가 밟고 있는 땅에서 한 2m 정도는 붕 떠 있는듯하다. 감정선이나 에피소드의 현실감, 남발되는 우연과 억지스러운 비약 등에 대한 설명은 이때문에 이 영화가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항은 아닌듯하다. 단발적인 웃음은 계속되지만 웃음이 영화 전체를 타고 흐르지 못하는 건 이런 까닭이다. ‘보스상륙작전’과 ‘올드보이’ 조감독 출신인 신인 이계벽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구동건 役 류승범 “이번엔 눈·어깨에 힘을 쫙~뺐어요…” ‘주먹이 운다’에서 한껏 무게를 잡았던 배우 류승범이 소심한 이웃집 소년,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소심남으로 출연했다. 시각장애인 애인 앞에서 잘 생긴 척하다 그녀가 광명을 찾자 거짓말한 게 부끄러워 뒤로 숨어 버리는 캐릭터.이번에 맡은 역은 ‘품행제로’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그의 코믹함이 제대로 묻어 났던 전작들과는 또 다르다. 애인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캐릭터가 빚어 내는 상황이 코믹한 것이지, 그의 개인기나 원맨쇼가 요구되지는 않았다. 이때문에 류승범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출연배경에 대해 “상쾌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한동안 장르색이 짙은 영화를 하느라 배우로서 좀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통해서라면) 영화라는 작업을 하면서도 휴식기를 가질 수 있겠구나, 다시 한번 날 돌아 보며 쉼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아무래도 전작인 ‘주먹이 운다’와는 180도 다른, 눈과 어깨에서 힘을 쫙 뺀 캐릭터인데다 감정을 내지르지 않고 안으로 삭히는 연기여서 에너지 소비는 덜했을 것 같다. ■ 아네트 베닝 ‘여전히 매력’ 연기파 중년 여배우로 안착 “참 많이 늙었네….” 흔히 “그럼 지금 도대체 몇 살인데?”란 궁금증과 함께 따라 오는 이 말이 갖고 있는 의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너도 별 수 없구나”란 비꼼의 뜻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난 아직 괜찮지”란 자기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부모나 가족이 대상이 됐을 때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말이고 오래간만에 보는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음에 대한 어색함의 발로다. “옛날에는 그렇게 예뻤는데, 지금은 많이 늙었더라”, 오는 27일 우연히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빙 줄리아’(Being Julia)나 ‘오픈 레인지’(Open Range) 등을 보는 관객들은 아마 이런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다. 바로 여배우 아네트 베닝(Annette Bening) 때문이다. 1958년생이니 올해로 47살. ‘러브 어페어’(Love Affair·1994)에서의 그 빛났던 아름다움은 흐려졌고 그 자리는 세월만큼 늘어난 주름이 메우고 있으니 이때 나오는 한숨은 세월의 거스를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다. 그가 처음으로 영화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건 1989년작 ‘발몽’(Valmont). 90년대 ‘러브 어페어’나 ‘벅시’(Bugsy·1991),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1995), ‘화성침공’(Mars Attacks!·1996) 같은 영화로 전성기를 보낸 뒤 한동안 주춤했지만 아네트 베닝은 사실 최근 다시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각각 미국에서 개봉한 지 1년과 2년이 됐지만 ‘빙 줄리아’와 ‘오픈 레인지’는 이제 중년에 접어든 아네트 베닝에겐 예전의 히트작과는 다른 뜻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빙 줄리아’ 이후 한 미국 평론가는 “아네트 베닝이 메릴 스트립이나 글로리아 스완슨 대열에 합류했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빙 줄리아’(감독 이스트반 자보)는 그에게 네번의 도전 끝에 사상 첫 골든글로브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오픈 레인지’는 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확고히 해준 영화가 됐다. 1999년 ‘아메리칸 뷰티’로 좋은 평가를 받은 이후에도 2000년 코미디 ‘어느 별에서 왔니?’가 고른 악평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영화 출연을 쉬기도 했다. 그가 성공과 좌절을 반복하며 결국 그저 예쁜 여배우에서 연기파의 중년 여배우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인터넷 팬 페이지에 직접 남겼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연기는 유명해지기 위한 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MOVIE/퍼펙트 웨딩. 새드무비 ‘정우성’

■퍼펙트 웨딩 제인 폰다 vs 제니퍼 로페즈 헐리우드판 ‘고부갈등’ 누가 시어머니 좀 말려줘요! 원어 제목을 알면 관람의 욕구가 훨씬 배가된다. 영어로 ‘시어머니’나 ‘장모’를 뜻하는 ‘Mother-in-law’에 트릭을 가한 ‘Monster-in-law’라는 제목은 영화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영화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고부간의 갈등을 코믹 터치로 그렸다. 지난 5월 미국개봉 당시 첫주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고부간의 갈등은 우리네 연속극에서만 각광 받는 소재가 아닌 것이다. 왕년의 ‘얼짱’, ‘몸짱’인 제인 폰다가 여전히 몸매와 스타일이 좋은 시어머니로, ‘백만불짜리 엉덩이’의 소유자인 싱싱한 제니퍼 로페즈가 예비 며느리로 출연해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두 사람의 전혀 상반된 스타일과 패션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 멋진 연애를 꿈꾸던 찰리(제니퍼 로페즈 분)는 어느날 이상형인 케빈(마이클 바턴)을 만나게 된다. 둘은 첫눈에 반하고 케빈은 머지않아 찰리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케빈의 엄마 바이올라(제인 폰다)가 둘의 결혼 방해 작전에 결사적으로 나선다. 금쪽 같은 의사 외아들이 자기 품을 떠나 결혼한다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심지어 찰리가 변변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니 결혼은 절대 안되는 것. 영화는 제인 폰다의 생생한 캐릭터로 활력을 얻는다. 단순히 고압적으로 결혼반대를 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환영하는 척 하면서 뒤로 ‘며느리 죽이기’ 전략에 들어가는 것. 중반부터 시어머니의 계략을 알게된 제니퍼 로페즈의 반격이 시작되니 점입가경이다.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새드무비 ‘정우성’ “액션 연기 신나지만 멜로 역시 신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관객의 눈물샘을 활짝 열었던 배우 정우성이 또 한편의 멜로영화를 들고 나왔다. 영화 ‘새드무비’(감독 권종관·제작 아이필름)에서 그는 임수정과 호흡을 맞춰 슬픈 사랑을 그렸다. 영화와는 달리 너무도 화창한 가을날 남산에서 그를 만났다. 블록버스터 ‘데이지’와 ‘중천’ 사이에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새드무비’에 합류한 그는 “시간적으로 적은 노력을 들여 좋은 영화에 참여한 것이 기쁘다”며 웃었다. 사랑 앞에 작아지는 열혈 소방관 정우성은 ‘새드무비’에서 소방관 진우를 연기했다. 불구덩이 속을 예사로 뛰어들며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그러나 이러한 그의 위험천만한 모습은 늘 애인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둘은 그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촬영을 앞두고 소방훈련을 받으면서 연기 때문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경험했다. 소방관은 아무나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일을 하는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데 얼마나 인색한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이렇듯 열혈 소방관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전해주는 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그의 애인은 그가 직업을 바꾸기를 절실히 바란다. “직업이 가진 위험성 때문에 자기 여자를 잘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걱정을 하는 남자다. 그의 사랑은 욕심 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사랑이다” 시나리오에 매료돼 여덟 명의 배우 중 가장 먼저 ‘새드무비’의 출연을 결심한 그는 “사실 극중 (차)태현이가 맡은 역할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지만 내가 해줘야 할 역은 진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액션 못지 않게 멜로에도 어울리는 정우성은 “액션 연기도 신나지만 멜로 역시 신난다. 여자 배우와 감정의 디테일을 마치 칼 싸움하듯 창창 주고받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배우 임수정에 대해 “짧은 시간 호흡을 맞췄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연기해 호흡이 잘 맞았다. 수정이는 동생 같이 느껴진다. (오빠로서)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일에 대해 마르지 않는 갈증. 그는 지금 한창 일 욕심에 휩싸여 있다. 전지현, 이성재와 함께 네덜란드로 ‘데이지’ 촬영을 다녀온 후 곧바로 ‘새드무비’를 촬영했고, 이어 23일부터는 중국 항저우로 건너가 차기작인 ‘중천’의 촬영에 돌입한다. {img5,l,000}■신민아는 ‘야수’를 좋아한다? ‘야수와 미녀’는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연애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언밸런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멜로물. 사랑에 눈먼 소심한 야수 ‘류승범’ 특유의 코믹 연기와 눈에 뵈는 게 없는 발랄미녀 ‘신민아’의 사랑스러움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방해꾼 김강우의 귀여운 매력을 볼 수 있는 영화다. 27일 개봉.

한가위 극장가

3일간의 짧은 추석 연휴이지만 올해 추석 극장가에 선보이는 영화들은 어느때 못지 않게 풍성하다. 초대형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의 선전이 여전한데다 연휴에 1주일 앞서 이미 ‘형사 Duelist’와 ‘외출’, ‘가문의 영광’ 등 ‘빅3’의 전초전이 지난 주말 시작됐으며 소규모로 상영 중이지만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이밖에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 ‘더 독’ 등의 외화도 추석 극장가를 노리고 개봉한다. 그의 슬픈 눈을 바라보지마… ● 형사 Duelist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하지원과 강동원이 출연한다. TV 드라마로 성공을 거뒀던 방학기의 만화 ‘다모’를 원작으로 하고있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탐미적인 영상. 강렬한 색과 빛의 대비, 화려한 액션과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조정의 어지러움을 틈타 가짜 돈이 유통되고, 좌포청의 노련한 ‘안포교’(안성기분)와 물불 안 가리는 의욕적인 신참 ‘남순’(하지원 분)은 파트너를 이뤄 가짜 돈의 출처를 좇는 중 정체를 모를 자객 ‘슬픈 눈’(강동원)과 마주친다.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줄거리보다는 남순과 슬픈 눈 사이의 러브스토리다. 기둥을 이루는 스토리나 여기에 덧붙여지는 이야기의 살들은 빈약한 편이지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날아다니는 카메라와 그 속의 인물들의 역동성은 이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다. 그들과 똑같은 우리… 사랑일까요? ● 외출 = ‘봄날은 간다’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허진호 감독의 신작.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용준과 ‘청순가련형’ 연기에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손예진이 만났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지나고 나니 모습을 드러냈던 사랑의 흔적을 담았으며 ‘봄날은 간다’를 통해 지나간 사랑의 가슴 아픔을 좇았던 허 감독의 카메라는 이번에는 불륜의 상황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수(배용준)와 서영(손예진)은 각자 배우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강원도 삼척의 한 병원의 응급실에서 만난다. 알고보니 이들의 배우자는 사고가 난 차에 같이 타고 있었다. 서로 불륜 관계였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배신감과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속에 혼란을 겪던 중 서로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조폭가문-검사 며느리 ‘희한하네~’ ● 가문의 위기 = ‘대박’을 터뜨렸던 ‘가문의 영광’의 속편이다. 전작의 기둥줄거리가 조폭 가문의 엘리트 사위 만들기였다면, 속편은 검사며느리가 들어올 ‘위기’에 처한 조폭 가족을 기본 설정으로 했다. 주인공은 잔뜩 망가진 신현준과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하던 김원희. 여기에 ‘마파도’의 흥행배우 김수미와 가수출신 탁재훈이 가세했고 공형진, 신이, 박희진, 현영 등 개인기 넘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전라도 조폭 가문의 대모 홍덕자 여사(김수미). ‘아그들’과 ‘동상들’의 충성이 든든하고 사업 역시 탄탄하지만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일 하나는 확실히 하지만 결혼할 나이가 지난 노총각 큰아들 인재(신현준)다. 그러던 중 인재는 첫사랑과 닮은 여인 진경(김원희)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진경에게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라는 사실. 결국 진경의 정체가 밝혀지고 ‘가문’에는 서서히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달콤한 환상의 세계로의 초대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팀 버튼 감독이 조니 뎁과 힘을 합쳐 만든 판타지 영화. 감독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 적절히 섞여있다. 전 세계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있지만 뭔가 비밀에 휩싸인 초콜릿 브랜드인 윌리 웡카 초콜릿. 이 곳의 주인인 윌리 웡카(조니 뎁)는 어느 날 자신의 초콜릿에 5개의 ‘황금티켓’을 숨겨놓고 이를 발견한 다섯 아이에게 공장을 공개하고 다섯중 뽑힌 한 명에게는 ‘특별 선물’을 증정하겠다고 공언한다. 전세계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난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찰리(프레디 하이모어) 역시 초콜릿 공장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한명 한명 황금티켓의 주인공이 발견되고 그러던 중 찰리 역시 이 티켓이 찾아오는 행운을 갖게 된다. 투견으로 사육된 남자의 운명은… ● 더 독 = 매년 추석 시즌에 찾아오던 청룽(成龍) 대신 올 추석에는 리렌제(李連杰)가 ‘더 독’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 속 리렌제가 맡은 대니는 어릴적부터 투견(鬪犬)으로 길러져 온 남자다. 그를 키운 사람은 비열함과 잔인함으로 똘똘 뭉친 악당 바트(밥 호스킨스). 엉겁결에 바트로부터 떨어진 대니는 시각장애인 피아노 조율사 샘(모건 프리먼)과 손녀 빅토리아(게리 컨던)와 함께 살며 전에 못느끼던 따뜻한 정을 느끼지만 바트는 대니를 찾아 나서고 샘과 빅토리아의 목숨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음악과 연기, 액션의 삼박자가 잘 갖춰진 액션물. 이 마을에선 누구나 ‘무장해제’ ● 웰컴투 동막골 = 지난 11일까지 전국 670만명을 동원한 올해 최고의 흥행작. 8월 4일 개봉 이후 롱런에 들어가 추석 연휴에도 상영된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빗겨간 산골 마을 동막골이 배경. 이곳에 흘러 들어온 국군 현철과 인민군 수화, 미군 스미스 대위 등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인물들은 어느새 동막골 사람들의 순박함에 빠져 한 편이 되어버린다. 분단의 비극을 판타지와 휴머니즘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영화는 원작 연극의 매력적인 이야기와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등으로 호평을 받아오고 있다. {img5,c,000} ‘형사 Duelist’, ‘외출’, ‘가문의 위기’가 각각 400개 내외의 스크린을 확보(전체 1천567개)한 가운데 개봉 규모는 크지않지만 작품성과 재미를 갖춘 다양한 영화들도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엽기 유머로 무장한 일본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와 국산 독립 액션 영화 ‘거칠마루’, 서정적이면서도 쿨한 사랑이야기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랜드 오브 플랜티’, 파격적이고 대담한 성묘사가 화제가 된 스페인 영화 ‘루시아’, 독특한 코믹 SF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서양 영화인이 최초로 북한에서 제작한 장편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 등이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MOVIE/올 가을 물들일 멜로영화

스크린의 가을은 역시 멜로영화를 타고 온다. 각종 대작들이 휩쓸고 간 여름 극장가의 열기를 서서히 정리하며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가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멜로영화들을 소개한다. 외양상으로는 가녀리게 보이지만 일단 터졌다하면 웬만한 여름 블록버스터에 비해 파급효과가 큰 것이 멜로영화. 2005년 가을 멜로의 포문을 연 ‘외출’ 외에도 올 가을을 물들일 야심작들이 즐비하다. #.너는 내 운명 (감독 박진표·제작 영화사봄) 전도연을 왜 ‘멜로의 여왕’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지를 알려주는 작품. 더불어 주가 상승 중인 황정민의 연기도 일품. 순박한 시골 총각과 다방아가씨의 사랑을 그렸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둘의 사랑은 여자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국을 맞는다. 운명적인 사랑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진정한 최루성 멜로영화. 노인의 성과 사랑을 그린 ‘죽어도 좋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박진표 감독의 두번째 작품. 23일 개봉한다. #.사랑니 (감독 정지우·제작 시네마서비스) ‘해피엔드’ 이후 차기작 준비에 고심하던 정지우 감독이 5년만에 메가폰을 든 작품. 30세의 입시과외학원 여자 강사가 첫사랑을 빼닮은 17세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 아슬아슬한 이야기. 코믹연기에 두각을 보이던 김정은이 모처럼 감성 짙은 멜로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촬영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상대역은 신인 이태성이 맡았다. 29일 개봉.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감독 민규동·제작 두사부필름) 일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여섯 커플의 사랑을 그린 작품. 임창정 엄정화 황정민 김수로 주현 윤진서 등이 출연했다. 10월 7일 개봉. 비단 청춘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아버지와 딸, 중년 남녀간의 사랑이 이어진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결국은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로 각 에피소드 별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겠다는 각오다. #.새드무비 (감독 권종관·제작 아이필름) 정우성 임수정 차태현 염정아 신민아 등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를 자랑한다.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마찬가지로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놓은 구조다. 덕분에 제작 기간 내내 두 작품은 비교될 수밖에 없었는데 전작이 밝은 분위기라면 ‘새드무비’는 슬픈 사랑에 포커스를 맞췄다. 8명의 인물이 펼치는 네 가지의 다양한 이별 이야기. 10월 20일 개봉. #.사랑을 놓치다 (감독 추창민·제작 시네마서비스) ‘역도산’의 설경구가 모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도전한 멜로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호흡을 맞췄던 송윤아가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10년의 세월을 두고 어긋나기만한 두 남녀의 사랑을 촉촉한 가을비처럼 그린다. 11월 개봉 예정. △종려나무숲 실화 바탕으로 한 순수멜로 서울 상봉터미널. 능력있는 변호사 인서(김민종)가 강릉행 버스에 오르고 뒤를 이어 성주(이아현)가 버스를 탄다. 남자는 지방대학교에 특강을 하러가는 길, 여자는 마음에 드는 이 남자를 잡으려고 서둘러 터미널로 달려왔다. 남녀는 어제 맞선을 본 사이. 사실 남자의 마음에는 여자가 들어올 틈이 없다. 수년 전 거제도의 종려나무숲에 자신의 사랑을 놓아둔 채 떠났기 때문이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종려나무 숲’은 유상욱 감독의 어머니의 실제 이야기다. 전체 이야기는 인서가 성주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으로 구성돼 있다. 카메라는 액자 속과 밖을 넘나들며 남자의 심리와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2년 전 인서는 거제도의 조선소에 파견 근무를 온다. 부임 첫날 그는 남자 직원들 틈에서 씩씩하게 족구를 하고있는 화연(김유미)을 발견한다. 화연은 기계를 운전하는 현장 기술자. 인수는 억센 거제도 사투리의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쉬운 생각에 1년만 사귀자는 인서의 농담에 화연은 마음을 다치고 이후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지만 두 사람은 어느 새 가까운 사이가 된다. 잠깐의 사랑에 하연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이 섬 외딴 곳에 있는 그녀의 집과 집 주위의 종려나무 숲과 관계가 깊다. 화연은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집안의 비극을 들려준다. 상영시간 108분. 15세 관람가. #10월 부산영화제 별들이 몰려온다 10월 초 열리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해외영화인들이 대거 초청된다. 개막작 ‘쓰리 타임즈’의 허우샤오시엔<사진> 감독과 중국 스타 창첸이 참석하며 ‘지그재그 3부작’으로 유명한 이란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성냥공장 소녀’로 알려진 폴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뉴커런츠 섹션의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는다.

MOVIE/게스 후?,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게스 후? 색(?)다른 사위, 난 싫다구! 흑인 장인·백인 사위 그린 ‘로맨틱 코미디’ 결혼 25주년을 앞둔 중년의 흑인 남자 펄시 존스 (버니 맥). 그가 나이가 찬 딸의 사윗감으로 바라는 것은 ‘절대’ 많지 않다. 그저 멀쩡한 직업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 여기에 조금 더 희망사항이 있다면 운동을 좀 잘했으면 좋겠고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나 성공한 코미디언 빌 코스비처럼 흑인의 모범이 됐으면 하는 정도다. 그러던 어느날 딸 테레사(조 살다나)가 사윗감 사이몬(애쉬톤 커처)과 함께 나타난다. 순간 펄시의 눈은 단번에 뒤집어 진다. 바로 희멀건해 보이는 백인이 사윗감이랍시고 나타난 것. 운동은 젬뱅이인데다 몸은 부실해 보이고 여기에 알고 보니 이 녀석 이제 막 번듯한 직장을 잃은 실업자 신세다.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 애쉬톤 커처가 다음달 2일 ‘게스 후?’(Guess Who)로 한국 팬들을 만난다. 영화의 핵심이 되는 상황은 장인과 첫 만남을 갖는 사위. 이전에 ‘미트 더 페어런츠’ 시리즈가 백인 커플의 양가 상견례를 통해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사이의 융합을 그렸다면 게스 후?의 이야기는 흑인과 백인 사이의 신경전과 화해를 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장인과 사윗감 사이의 반목. ‘미트 더 페어런츠’시리즈의 장인이 CIA 요원이었다면 게스 후?의 장인은 여기에 한술 더 뜬 22년차 경력의 대출 관리자다. 첫 눈에 상대의 재무 상황을 알아맞힐 정도의 능력을 갖췄으며 깐깐하게 사람을 쳐다보는 게 직업병 수준이니 한층 더 강적일 수밖에. 사이몬과 테레사의 계획은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 자신들의 약혼 사실을 발표하는 것이다. 사윗감 특유의 긴장감에 실업 상태라는 불안이 함께 있지만 ‘잘 해낼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 사이몬. 하지만 첫 대면에서부터 삐꺽거린다. 사윗감이 당연히 흑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펄시가 사이몬을 택시 운전사로 착각한 것. 겨우 집안에 입성하는 데는 성공하는 사이몬. 사이몬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펄시는 이때부터이 백인 녀석을 쫓아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영화는 장인과 사위, 그리고 흑인과 백인 사이의 신경전이 잘 버무려져 있는 코미디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삶의 끝자락서 피어난 사랑 외톨이 남녀 ‘기묘한 동거’ 태국 화제작 내달1일 개봉 잠에서 깨어난 한 도마뱀. 자기가 세상에 살아남은 마지막 도마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겨워하던 가족들도, 싫어하던 친구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문제는 외로움. 도마뱀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쿨한 사랑이야기 한 편이 내달 1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태국 감독 렌엑 라타나루앙이 메가폰을 잡은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Last LifeIn The Universe)가 그것. 세상 끝에 혼자 살아 남은 도마뱀은 이 세상에서 좀처럼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두 남녀 주인공의 다른 모습이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결벽증의 일본 남자 켄지(아사노 다다노부). 그가 죽고 싶은 이유는 빚이나 실연 혹은 절망 때문은 아니다. 그저 잠을 자다 깨어보면 새로운 인생이 되는 것, 그게 그가 꿈꾸는 최상의 행복이다. 그는 이국땅 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이다. 답답할 정도로 정리를 잘하는 게 특징이자 장점. ‘최상의 행복’을 위해 자살을 하려 하지만 매번 제대로 시도를 해보지도 못한다. 자유로움 속에 쓸쓸함이 묻어있는 태국 소녀 노이(시니타 분야삭).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며 남자관계도 복잡한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는 태국을 떠나려 한다. 그녀가 가려는 곳은 일본의 오사카.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된 곳은 한 다리 위다. 이날도 어김없이 겐지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노이는 여동생 니드와 다투고 있던 참이다.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던 겐지를 보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니드. 마침 그날 밤 겐지의 형 유키오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외톨이라는 것. 각각 형과 동생을 잃은 두 사람은 희망찬 미래 따위를 꿈꾸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 이날 만난 인연으로 두 사람은 노이의 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것저것 어지르는 노이와 깔끔하게 치우는 겐지, 두 사람은 서툰 영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자신을 조금씩 열어간다. 결국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꿈을 꾸게 되는 이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장밋빛만은 않다. 영화는 세상 끝의 나른함에서 문득 생겨난 사랑의 감정을 차분한 말투로 보여주며 외톨이로 흩어져 있는 현대인들의 슬픔을 어루만진다. 쿨(Cool)하면서도 따뜻한 이 영화가 묘한 설렘과 함께 울림을 주는 것은 왕자웨이의 카메라 감독으로 유명한 촬영 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덕이 크다. 건조한 그의 카메라는 지쳐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외톨이의 슬픔에서 사랑의 희망까지 다양한 감정들은 그의 카메라를 통해 일관되게 쿨함을 유지하고 있다.

MOVIE/어떤 나라. 애프터 썬셋

■어떤 나라 평양 여중생의 하루는 어떨까…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해변을 가득 메울 만한 1만2천여 명의 어린 학생들. 이들은 운동장과 관중석을 가득 메운 채 카드 섹션과 집단 체조를 펼치고 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스케일과 일사불란한 동작에 묘한 매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전체주의적인 동작에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도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화려한 스펙터클 중 하나일 듯한 이 장면은 바로 북한이 자랑하는 대집단체조의 모습이다. 서방 세계에서 북한 하면 생각나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이 광경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지 그대로의 겉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꽉 닫혀있는 듯한 이 집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본다면 어떤게 있을까? 마치 기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서양의 시선으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다룬 보기 드문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나라’(State of Mind)가 26일부터 남한 관객들을 만난다. 진중하게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의 힘이 피상적인 이미지를 깨뜨리고 그 안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있듯, 영화는 비판이나 옹호 같은 의견을 배제한 채 편견을 넘어서 진짜에 가까운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이 집단 체조에 참가했던 10대 초반의 두 여학생이다. 카메라는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이들을 보여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김정일과 북한을 ‘악의 축’(Axis ofEvil)으로 규정하던 2002년과 2003년. 13살 현순이와 11살 송연이는 북한 최고의 행사인 전승기념일의 집단 체조(매스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 역시 다른 나라의 십대들처럼 가끔은 연습을 몰래 빼먹기도 하고 학교에 지각을 하기도 한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지겨워하기도 하며 성적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다른 곳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틴에이저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당에 대한 충성심이다. 이들은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것에 감격스러워하며 힘든 훈련을 이겨낸다. 연출자 대니얼 고든 감독은 북한에서 제작한 자신의 첫 영화 ‘천리마 축구단’ 이후 얻게된 북한 당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삶에 가깝게 들어간다. “내 방이 생겨서 무척 좋습니다”고 말하는 송연이의 모습이나 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 시절을 회고하며 “딸의 생일에 옥수수죽을 끓여먹어야 했다”고 말하는 송연의 어머니의 모습처럼, 영화는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다. 학교 성적의 하락을 고민하면서, 그리고 부상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그 곳의 아이들이 흥분 속에 대집단체조에 참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지 지도자 개인에 대한 충성심과는 다른 차원이 있는 듯하다. ■애프터 썬셋 훔치려는 자 vs 막으려는 자 숨막히는 두뇌게임 전설의 보석 절도 커플 맥스(피어슨 브로스넌)와 롤라(셀마 헤이엑). 철저한 계획과 척 맞아 떨어지는 타이밍, 그리고 절묘한 콤비 플레이와 확실한 알리바이 설정까지 최고의 실력을 과시하는 이들 커플은 마지막으로 FBI를 절묘하게 속이고 한 탕을 한 뒤 은퇴를 선언한다.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이들이 은신한 곳은 환상적인 해변이 있는 캐리비안의 바하마. FBI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인 데다 자연 환경도 말 그대로 낙원 수준이니 새 삶을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두 사람은 바닷가에 멋진 집을 마련해 매일같이 수상 스포츠와 맛있는 바다 요리, 트로피칼 풍의 음료수를 즐기며 한가로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휴양지에서의 생활은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족한 것. 바쁘게 업무를 봐 오던 맥스의 입장에서 이곳에서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할 뿐이다. 반면 맥스와 달리 롤라는 유유자적한 삶에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함께 지는 태양(썬셋)을 보며 평생을 보내자며 결혼하자고 조르지만 맥스는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한가한 혹은 따분한 생활을 보내던 이들 앞에 어느날 항상 당하기만 하던 FBI요원 스탠(우디 해럴슨)이 나타난다. 이들의 은퇴를 믿지 않는 스탠이 계속 주변을 맴도는 것은 얼마 후 이곳에서 있을 보석 전시회 때문이다. 어수룩한 스탠이 전해 준 전시회 소식은 마침 심심하던 맥스에게는 간만에 생긴 흥밋거리일 수밖에. 하지만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즐기려던 롤라는 맥스의 관심에 자꾸 신경이 쓰일 뿐이다. 캐리비안의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보석 절도의 귀재와 FBI 요원 사이의 한판 승부를 그린 영화 애프터 썬셋(After Sunset)이 25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훔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사람 사이의 두뇌 게임과 친구와 적 사이를 오가는 두사람의 해프닝이 이 영화의 주된 관람 포인트. 하지만 영화는 연기도 캐릭터도 유머도 한결같이 밋밋한 까닭에 평범한 재미 이상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하는 보석 도둑은 영리하다기 보다 둔해 보이고 우디 해럴슨이 맡은 어리숙한 FBI 요원 역시 익살스러운 맛이 없다. 줄거리 역시 우왕좌왕하며 개연성이 떨어지는 편이며 뻔한 유머도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가기에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러시아워’ 시리즈를 만든 브렛 레트너가 메가폰을 잡았다. 상영시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MOVIE/이대로, 죽을 순 없다. 옹박-두번째 미션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불량형사의 눈물겨운 ‘부성애’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오는 18일 가족 영화 한편이 개봉한다. 코미디로 포장됐지만 실은 절절한 부성애에 포커스를 맞춘 12세관람가 영화다. ‘일단뛰어’에 이어 이범수가 이번에도 형사로 변신했다. 그런데 ‘일단뛰어’에서는 오직 범인 검거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열혈 형사였다면 이번에는 좀 다르다. 적당히 나사가 풀리고 적당히 부패한 뺀질거리는 형사 ‘이대로’. 체포 안하는 조건으로 용의자측과 뒷거래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동료를 뒤로하고 애인과 여관에서 밀회를 즐긴다. 이러한 이대로의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희화화된 동료 형사 캐릭터들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코미디를 연출한다.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이대로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그로인해 180도 달라진 이대로의 변화를 통해 한단계 발전한 코미디를 펼친다. 개인기에 기댄 슬랩스틱 코미디가 상황극으로 발전한다. 8살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 파파 이대로가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앞으로 살 날은 길어야 3~4개월. 그는 딸에게 10억원의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생명보험에 들고, 범죄현장에서 사고사를 당하거나 그것을 위장한 자살을 하기 위해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그러나 결과는 극적인 범인 검거. 줄 표창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중적 의미의 제목처럼 영화 역시 ‘죽으려 환장한’ 이대로의 코믹한 상황과 그에 상대적으로 비례하는 눈물겨운 부성애를 나란히 쥐고갔다. 사실 이대로는 지난 8년간 키워온 딸이 진짜 자신의 딸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지방 근무하던 시절 다방 종업원 영숙과 사고쳐서 낳은 딸이라지만 아이를 놓고 도망간 영숙의 주장일뿐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8년간 딸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다. 이대로의 일말의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는 부분. 제멋대로 사는 와중에도 딸에게만큼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었던 이대로가 그런 딸을 두고 죽어야하니 미칠 노릇인 것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비장한 병법을 코미디의 소재로 차용한 재치와 누구나의 아킬레스건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버무린 영화는 부담없는 한편의 소품이 됐다. 마침 가수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 중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라는 가사가 영화와 딱 들어맞는 것도 귀엽다. 배우 오지혜의 남편으로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이영은 감독은 “사람들의 변화, 결핍된 가족애의 완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옹박-두번째 미션 차고 비틀고 꺾어라! 태국의 액션 스타 토니 자가 ‘옹박-두번째 미션’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늙었다. 이연걸은 지쳤다’고 외치며 새로운 액션 스타로 등극했던 그가 1년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모습은 이전에 비하면 한층 화려해 보인다. 제작비 규모는 전편의 10배 가량. 이 덕분에 전편에 없던 보트 추격신이 새롭게 등장하며 촬영지는 태국과 시드니를 넘나들었다. 스케일이 커진 만큼 그가 대결하는 상대의 면모도 다양해졌다. 이제 호주 출신인 거구의 레슬러의 거대한 주먹을 피해야 하며 채찍을 휘두르는 중국 악녀에도 맞서야 하는 것. 여기에 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를 사용하는 용병의 발차기와 베트남 출신 악당의 현란한 무술에도 대적해야 한다. 영화의 원제는 영화 속 악당들의 소굴인 시드니의 음식점 이름 ‘톰 양 궁’(TomYum Goong). 주인공 토니 자의 분위기는 전편과 비슷하지만 줄거리는 이전과 이어지지 않는다. 주인공 청년 캄(토니 자)은 깊은 산골에서 코끼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 온 이 코끼리의 이름은 포야이. 완벽한 혈통의 코끼리로 새끼 콘과 함께 캄과는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다. 하지만 얼마 뒤 밀수꾼들은 이들에게서 두 코끼리를 빼돌리고 이를 호주의 시드니로 보낸다. 코끼리를 지키려던 캄의 아버지 역시 악당들에 의해 부상을 입은 상황. 악당들을 한명 한명 물리쳐가던 캄은 코끼리를 찾아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이 곳에서 태국 출신 경찰관인 마크(페치타이 웡캄라오)와 힘을 합쳐 코끼리의 소재를 찾아나선다. 이때부터 악당들과의 본격적인 승부가 펼쳐진다. 무에타이로 달련된 몸에 수m 점프는 기본, 발은 총알보다 빠르고 주먹은 칼보다 강한 이 태국산 액션 영웅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에 비해 신선감은 떨어지지만 여전히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엄청나다. 특히 후반 식당 계단에서의 액션신은 영화의 압권이다. 70여명의 악당들을 차례로 물리치는 토니 자의 모습을 좇는 카메라의 롱 테이크는 자그마치 4분여를 넘어선다. 여기에 다양한 개성의 악당들이 등장하며 태국의 미녀스타 본코드 콘말라이나 재중동포 중국 무용수 진싱(金星) 등 조연급 배우들의 합류도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하지만 전편의 약점인 엉성한 스토리 역시 한층 더 심해진 느낌이다. 인물의 동기는 약하고 줄거리의 비약은 심하다 못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특히 도구를 이용한 몇몇 액션 장면은 실소를 낳을 정도로 과장돼 있다. 상영시간 105분. 18일 개봉. # 코미디 ‘가문의 위기’(감독 정용기)가 최근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가문의 영광’ 속편으로 혈통을 개선하기 위해 엘리트 검사 며느리를 ‘모시려는’ 조폭 가문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9월8일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MOVIE/웰컴투 동막골.펭귄

■웰컴투 동막골 웃음과 감동… 따뜻한 전쟁영화 민족 상잔의 비극 6·25가 한창이던 어느날. 강원도 첩첩산중의 마을 동막골에 수류탄이 터진다. 이 마을의 주산물은 옥수수. 우스운 실수로 수류탄이 옷수수 헛간에 떨어지자, 터진 것은 수류탄만이 아니었으니, 바로 이 땅에 최초로 팝콘이 탄생한 순간이다. 높게 솟은 옥수수 알갱이에 핀 것은 하얀 팝콘 꽃, 하늘에서는 팝콘 비가 내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냥 순박한 웃음이 퍼져나간다. 습기와 더위로 지친 한여름 휴식같은 영화 한 편이 관객들을 만난다.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전쟁 블록버스터. 하지만 1천만 관객 동원에 빛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와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핵무장을 하자는 ‘천군’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군에 인민군에 미군까지 총출동하지만 이 영화에는 대립도, 살육도, 울부짖음도 그 중심에 없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전쟁터가 아닌 전쟁의 포화에서 빗겨간 산골 마을 ‘동막골’이다. 그다지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고 워낙 외진 마을인 까닭에 이 곳에서 전쟁이니 총이니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들이다.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문상상(서재경),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장영희(임하룡), 미군 스미스 대위(스티브 테슐러)는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하지만 뭔가 알지 못할 힘에 이끌려 이 마을에 흘러든다. 전쟁에 찌들린 이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은 일단 당연한 일. 서로 으르렁대던 이들은 멧돼지 잡고, 풀썰매 타며, ‘강냉이’ 튀겨먹으며 어느 새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에 동화되어 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잠잠한 마을에도 전쟁의 긴장은 점차 스며든다. 이제 동막골은 이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낙원이며 이곳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보호해주고 싶은 존재들이다. 다른 소속 세 무리의 군인들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연합작전을 시작한다. 분단과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다음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이 담고 있는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영화는 6.25 이후 한동안 나왔던 반공 영화와도 다르고, 80년대 이후 작품들에서 보여준 분단의 비극도, 아니면 ‘쉬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묘한 형제애도 담고 있지않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사랑에 있다.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찌보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 없는 이 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풍부한 웃을 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후반부 웅장한 감동과 함께 펼쳐진다. 영화 속 동막골의 사람들은 지금보니 낯설지만 어찌보면 우리들 본연의 모습이다. 함께 밭을 갈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낯선 이를 경계하지도 추운 사람에게 옷을 나눠주기를 꺼려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니 총부리를 들이대봤자 나오는 것은 ‘우터(어떻게) 오셨나? 부애(화) 많이 나셨네’ 쯤 되는 말. 전쟁이니 총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소박하고 아둔해보이는 말투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영화가 가식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은 정재영과 신하균, 강혜정과 임하룡 등의 탄탄한 연기와 이미 대학로에서 히트를 쳤던 원작 연극의 덕도 단단히 한 몫 하지만 신인 박광현 감독의 차분한 연출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톱스타 한 명 없는 캐스팅에 신인 감독의 작품이지만 영화는 올해 상반기 최고의 이변이자 최고의 흥행작인 ‘말아톤’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 히사이시 조가 들려주는 서정적인 음악이 이를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영화의 장점들이다. ■펭귄 남극의 ‘신사’ 펭귄 진한 모성애 그려 참 고약스러운 일이다. 남극에 사는 황제 펭귄. 새는 새인데 몸집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 날 수가 없고, 사는 곳은 1년 내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남극이니 도대체 번식은 어떻게 해야하며 먹이는 어디서 구해야 하나. 우리가 ‘남극의 신사’ 펭귄에 대해 알고있는 것은 상당 부분 피상적이다. 그래도 새니까 아마 알을 낳을 테지만, 추운 날씨에 어떻게 부화를 하는 지는 잘 모른다. 여름 극장가에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편 개봉한다. 프랑스 제작 영화 ‘펭귄-위대한 모험’(March Of The Penguins)이 그것. ‘남극의 황제 펭귄’의 생태를 담아낸 이 영화는 다음달 4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애초에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영화가 보여주는 펭귄의 1년살이는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하다. 펭귄의 짝짓기 시기는 겨울이다. 바닷속에서 생활하던 황제 펭귄들은 아마도 조상대대로 수천년은 반복했을 긴 여행을 떠난다. 한명 한명 얼음 틈에서 솟아나와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이들이 향하는 곳은 머나먼 평지 ‘오모크’(Hummok). 특유의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아니면 배를 바닥에 깔고 미끄러지며 차근차근 길고 먼 행진을 계속한다. 한참을 거쳐 오모크에 도착한 이들은 ‘춤’을 춘다. 우리에게 춤을 추는 행위로 보이는 것은 사실 짝짓기를 하는 것. ‘꺼욱 꺼욱’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구애의 시간이 길게 이어지면 커플을 이룬 암수는 짝짓기를 시작하고 알을 낳으면 이제부터 이 어린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흥미로운 정보에 지적 만족감을 느끼다 보면 영화는 어느새 생명에의 경외와 그들에게도 여전한 부(모)성애를 느끼게 해준다. 본능처럼 펭귄들은 자식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고 그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내레이션을, 성우 배한성과 송도순, 아역 배우 박지빈 등이 한국어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85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가 8월31일~9월10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제62회 베니스영화제의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박 감독이 해외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베를린, 2001년), ‘올드보이’(칸, 2004년)를 포함해 이번이 세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