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싸움에 小영화는 ’괴로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대작 영화의 흥행 전쟁에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최근 기자시사회를 갖고 오는 29일로 개봉 날짜를 잡았던 영화 ‘피아니스트’(수입 배급 M&N엔터테인먼트)는 서울시내 스크린을 2개밖에 확보하지 못해 고민 끝에 결국 내년 2월로 개봉을 연기했다. ‘피아니스트’는 2001년 칸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당시 ‘너무 충격적이어서 당혹스럽다’에서 부터 ’놀랄 만큼 사실적이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받으며 심사위원 대상과 남·여 주연상을 휩쓴 화제작. 지난 1월에도 비슷한 이유로 개봉이 무산된 적이 있어 이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다. 개봉관 확보가 힘들었던 것은 11월 말 대작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 21일 개봉한 ‘광복절특사’를 필두로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반지의제왕-두 개의 탑’ 등의 블록버스터 급 판타지 영화가 12월13일과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고 한국영화 ‘색즉시공’도 12월 중으로 개봉날짜를 잡고 있다. 22일 극장상영을 시작하는 영화 ‘좋은걸 어떡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걸 어떡해’는 ‘아멜리에’에서 오드리 토투의 미소를 잊지 못하는 영화팬들이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하지만, ‘좋은걸 어떡해’(수입 배급 미디어필름인터네셔널)가 확보한 극장은 서울의 브로드웨이 극장 단 1개 관. 계획에도 없던 단관개봉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22일 개봉할 계획이었던 같은 수입사의 ‘웰컴 투 콜린우드’도 “시사회 반응이 좋은데 비해 개봉관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봉일을 내년 1월10일로 미뤘다. 영화홍보사의 한 관계자는 “12월에는 워낙 대작들이 많다 보니 시사회를 열 극장을 확보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한편, ‘반지’와 ‘해리포터’는 각각 55개와 76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던 지난해와비슷한 수준으로 개봉관을 잡을 예정이며 ‘광복절특사’도 서울 65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어서 영화에 따른 개봉관 확보의 극과 극을 보여주고 있다.

새영화/ 도니 다코

22일 선을 보일 ‘도니 다코(Donnie Darko)’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영화.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설정, 몽환적인 분위기의 화면, 최면을 거는 듯한 음악, 인과관계가 뒤엉킨 듯하면서도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치밀한 줄거리,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마지막 반전 등이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고교생 도니 다코는 가족이나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상 성격의 소유자. 어느날 밤 이상한 목소리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가자 토끼 가면을 쓴 괴물로부터 28일 6시간 42분 12초 뒤에 세상의 종말이 닥쳐온다는 예언을 듣는다. 이튿날 아침 골프장 그린에서 잠이 깬 그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방이 폭격을 맞은 듯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집을 비운 사이 지붕에 정체불명의 대형 여객기엔진이 떨어진 것이다. 가족들은 죽은 줄 알았던 도니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미지의 공포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학교 친구들도 그를 이상한 존재로 여기며 슬슬 피하지만 새로 전학온 결손 가정의 그레첸만이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운명의 날이 다가올수록 도니 주변에서는 기괴한 일이 일어나고 학교와 마을은 온통 공포감에 휩싸인다. ‘도니 다코’는 선댄스영화제에서 ‘메멘토’와 함께 시나리오상 부문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메멘토’가 시퀀스를 역순으로 배치해 인과관계를 부각시킨 반면에 ‘도니 다코’는 아인슈타인의 시간여행 개념을 동원해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놓았다. 관객들도 장자가 ‘호접몽(胡蝶夢)’을 꾸는 것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비몽사몽간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 반전이 이뤄지는 순간 꿈과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7세의 신예 감독 리처드 켈리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영화따로 OST따로 ’푸짐’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로 인해 영화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국내 개봉작들의 영화음악을 담은 OST 앨범이 잇따라 출시됐다. 먼저 눈길을 끄는 앨범은 70대 노부부의 격렬한 정사 장면으로 인해 논란이 됐던 ‘죽어도 좋아’의 OST. 지난달 30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8세 이상 관람가’등급을 받아 12월 6일 개봉을 앞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는 7회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물결’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엔딩 타이틀 곡인 ‘Too Young to die’는 영화의 성격을 내포한 곡으로 신인 래퍼 MK.신이 역동적이고 젊은 감각의 영어랩을 불렀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70대 부부가 함께 부른 ‘이팔 청춘에 소년몸 되어서’로 시작하는 ‘청춘가’도 실려 있다. 음악감독 박기헌의 데뷔앨범이기도 한 이 앨범에는 타이틀과 ‘청춘가’ 외에는 트럼펫, 클라리넷 등 금관악기를 위주로 한 연주곡이 주를 이룬다. 2주 연속 박스오피스에서 정상을 차지한 영화 ‘몽정기’(감독 정초신)의 OST앨범도 발매됐다. 깔끔한 사운드의 복고풍 모던록,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80년대 팝, 재치와 기지가 뒤섞인 곡을 담았다는 평.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운동회 1천미터 이어달리기 장면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타이틀 ‘결심’은 시원하게 질주하면서도 매끄러운 멜로디를 가진 신나는 곡이다. 여주인공인 김선아가 교실에서 부르던 만화영화 주제곡 ‘캔디’는 재미있는 편곡으로 눈길을 끈다. 80년 대의 전형적인 록 발라드곡인 보니 타일러의 ‘Straight from the Heart’와 80년대 유로 댄스곡인 패티 라이언의 ‘You’re my Life, You’re my Love’등이 실려 있다. ‘격정 멜로’를 표방한 이종원·김윤진 주연의 ‘밀애’(감독 변영주)의 OST도 출시됐다. 조영욱 음악 감독은 단일 사운드트랙으로 7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한 영화 ‘접속’의 음악을 맡았던 감독.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사용된 ‘도나도나’는 ‘포크록 음악의 대모’격인 존 바에즈 특유의 청아하고 슬프면서도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느낌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타이틀곡. ‘도나도나’를 제외하곤 거의 모두가 현악기를 사용해 주인공의 욕망과 감성은 바이올린으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첼로로 표현했다. 핀란드 민요를 현악 4중주로 편곡한 ‘허공에서 부리를 물고와’, 오케스트라 버전인 ‘내겐 돌아갈 집이 없어’,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G마이너’를 발췌해 9분짜리 곡으로 만든 ‘슬픈 폭력’등이 실려 있다.

춘사영화예술상 후보작 선정

제10회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집행위원회는 ‘가문의 영광’(감독 정흥순·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을 비롯한 12편을 춘사영화예술상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이와 함께 ‘공공의 적’(강우석·시네마서비스), ‘꽃섬’(송일곤·씨앤필름), ‘나쁜 남자’(김기덕·LJ필름),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스튜디오박스), ‘생활의 발견’(홍상수·미라신코리아), ‘연애소설’(이한··팝콘필름), ‘오아시스’(이창동ㆍ이스트필름), ‘집으로…’(이정향ㆍ튜브픽쳐스), ‘챔피언」(곽경택·진인사필름), ‘취화선’(임권택·태흥영화사), ‘YMCA 야구단’(김현석·명필름)이 최우수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 등을 놓고 경합을 벌인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후보작 상영회를 18∼23일 서울 중구 남산동 한국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개최한다. 시상식은 26일 오후 5시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치러진다. 이에 앞서 25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과 조병두홀에서는 영화감독협회(이사장 임원식)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정용탁) 공동주최로 춘사 나운규 탄생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린다. 최무룡 감독·주연의 영화 ‘나운규의 일생’상영에 이어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나운규, 서술적 오류와 영화사적 평가), 조희문 상명대 교수(남북한 나운규 연구비교), 일본 영화평론가 마키노 마모루씨(문헌에 나타난 나운규상)가 주제 발표에 나서고 유현목 감독과 자료수집가 홍형철씨 등이 토론에 참가한다.

한국영화, 영국 ’접수’ 나선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비롯한 9편의 한국영화가 6일부터 시작된 제46회 런던영화제(비경쟁영화제)에 참가해 국립극장과 런던 웨스트엔드의 주요극장에서 오는 21일까지 상영된다. 또 주영 한국대사관은 김기덕 감독의 “파란대문” 등 6편의 영화를 오는 8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영국 6개 주요 지방도시를 순회하며 상영하는 등 한국영화 붐 조성에 적극 나선다. 런던영화제 참가작품은 오아시스 이외에 박기영 감독의 “낙타,” 김인식 감독의“로드무비,”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 제47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 한국·태국·홍콩 합작인 김지운 감독의 “3,” 항국.홍콩 합작인 프루트 찬 감독의 “공중화장실,” 한국·일본 합작인 준지 사카모토감독의 “KT,” 일본·프랑스·중국·한국 합작인 지아 장케 감독의 “미지의 즐거움” 등이다. 영국내 지방도시 순회 한국영화제에는 “파란대문” 이외에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박흥식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역시 박흥식 감독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박철수 감독의 “봉자,”김기덕 감독의 “섬”등이 참가한다. 한국영화제는 오는 8-14일은 에든버러, 15-21일은 셰필드, 22-28일은 맨체스터, 29-12월5일은 옥스퍼드, 12월 6-12일은 케임브리지, 12월 13-18일은 브리스톨에서 각각 열린다. 한편 런던의 한인밀집 지역인 킹스턴에서는 오데온극장에서 한국영화 두사부일체가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상영된데 이어 오는 8-9일 이틀간 상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