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영양사와 조리사의 ‘권력싸움’

지난 6월 대전의 한 초등학교 급식문제가 전국적인 여론의 지탄을 받았고 국회에서까지 공방을 일으켰다. 한 학부모가 페이스북에 학교에서 먹는 자기 아들의 급식 사진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사진에는 어묵 세 조각, 콩나물 약간, 반 그릇의 국…. 성장기의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다. 즉시 반발이 일어났다. “교장선생님, 당신 자식이라면 이런 밥 먹여?” “이건 작은 세월호다!” SNS에서는 전국에서 분노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학부모들은 ‘비대위’를 구성하고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매일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육당국은 지방의원도 참여하는 감사에 착수하고…. 지난주 감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조리 기구의 불결, 주방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1인당 2천350원의 급식비가 실제로는 70%인 1천645원에 불과한 것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 중에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영양사와 조리사의 갈등이었다. 영양사는 그날그날의 식단을 짜서 조리사에게 넘긴다. 조리사는 그에 의해 주방의 아주머니들과 함께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 그런데 조리사가 주방 경력이 많은 경우, 영양사의 식단을 무시하고 임의로 메뉴를 짠다. 고등어 대신 오징어 볶음, 시금치 대신 콩나물…. 이럴 경우 조리사가 영양사에게 가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식단을 고치면 뒤탈이 없을 것이다. 영양사 역시 자기가 작성한 식단대로 하지 않은 조리사에게 그 이유를 묻고, 대화로 풀어 나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양사는 자신의 권한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고 즉시 교장에게 항의를 했다. 지적을 받은 조리사는 ‘그런 엉터리 식단으로는 아이들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다’며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제까짓 것이 뭘 하느냐?’고 덤볐다. 소위 말하는 우리 관료사회의 고질병인 ‘칸막이 문화’를 이 조그만 초등학교에서도 생생히 보여준 것이다. ‘내 권한’에 대한 철저한 방어벽 ‘칸막이’는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두꺼워졌고 마침내 그 결과물은 아이들의 식판을 초라하게 만들어 학부모들의 분노를 터뜨리게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학교운영의 책임자인 교장은 몰랐을까? 물론 알았다. 알았지만 그는 정년퇴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몇 달만 잘 버티면 퇴임을 하게 되고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데 굳이 일을 시끄럽게 해서 자신의 퇴임 일정에 차질을 가져오면 되겠는가. 때문에 학교 CEO로서 그는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덮으려고만 했다. 우리 관료사회의 책임자들이 흔히 보여주는 ‘안일무사’의 병폐가 이 작은 초등학교에서도 역시 드러난 것이다. 결국 교장과 영양사, 조리사 등 5명이 중징계를 받게 됐다. 그들이 이렇게 징계를 받는다 해서 우리 ‘칸막이 문화’의 병폐가 사라질 수 있을까? 가족끼리의 칸막이는 가정을 인간 수용소로 만들고, 기업의 칸막이는 시장에서의 퇴출을 재촉하며, 정부의 칸막이는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특히 정부와 기업이 함께 벌이는 칸막이 경쟁은 한진해운 사태에서 보듯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다. 그렇게 칸막이는 우리의 희망을 꺾는 ‘암’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지방 수령들의 평가표

공주에 있는 충남역사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만든 지방 수령들의 성적표를 볼 수 있다. 지금의 도지사격인 관찰사가 시장, 군수에 해당되는 지방수령들의 실적을 아산 현감 ‘하’, 부여 현감 ‘중’ …. 이렇게 상ㆍ중ㆍ하로 평가한 것이다. 만약 어떤 군수가 ‘하’를 맞게 되면 즉시 파직이고 ‘중’을 두 번 맞아도 파직. 그러나 최고 점수인 ‘상’을 맞으면 어떤 보상도 없다.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이 임무인 수령으로서 당연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평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역시 조선왕조의 기틀이 됐던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뽑아낸 ‘수령칠사(守令七事).’ 첫 번째는 농사와 누에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두 번째는 그 고을에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가. 특히 전염병이 돌면 많은 인명손실을 겪었던 당시로서는 지방수령들의 보건위생 행정이 큰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고을의 인구를 늘리는 것은 정말 힘든 문제. 세 번째는 교육이 잘 되고 있는가. 네 번째는 관할지역에서 1년 동안 송사가 얼마나 있었나. 물론 송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지역의 민심이 나쁘다는 반증이어서 평가에 크게 불리하다. 송사가 전혀 없었다면 그 수령은 높은 점수를 받는다. 만약 오늘날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방수령을 평가한다면 ‘상’을 맞을 시장·군수가 몇이나 될까? 즉시 파면되는 ‘하’를 맞은 사람을 또 얼마나 될까? 그 지역 출산율을 제일 중시했던 평점으로 생각하면 ‘상’을 맞을 지방수령은 거의 없다. 이미 서울시는 부부 출산율이 0.968명으로 전국 1.187명에 비해도 꼴찌다.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시·군 역시 점점 늘어나 ‘돌잔치’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문상’가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충남의 공주시장은 최근 공주시로 100명 이상을 전입시킨 공무원에게 계급 승진을 시키는 특례를 베풀었다. 그렇게 인구증가는 절박하다. 인구 감소의 현상이 가장 심각한 곳은 전라남도, 경상남도, 충청남도 순이다. 봄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듯 인구 감소 역시 남쪽에서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1학년 취학 어린이가 한 명도 없는 농·어촌 초등학교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2030년에 가면 많은 대학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레리 덴트 박사는 한국이 2018년에는 ‘인구절벽’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는 15~64세의 생산가능 인구 비율이 급속히 떨어져 경제위기를 자초하는 현상으로 매우 심각한 메시지다. 오죽했으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이례적으로 우리 초저출산율 문제의 심각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했을까? 이 총재는 일본의 경우 전담 장관까지 임명하여 합계출산율을 현재 1.4명에서 1.8명으로 끌어올려 50년 후에도 일본 인구 1억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지금 인구문제를 그렇게 강력히 밀어붙여도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20~3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출산정책에 더욱 속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변평섭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이해찬 의원과 세종시의 과잉 반응

시장ㆍ군수 인사권을 도지사가 갖고 있던 시절의 에피소드. 충남도지사가 지방을 순방하는데 마침 가을이라 황금 들녘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도지사를 안내하던 군수가 “지사님 보십시오. 지사님 은덕으로 풍년이 들어 벼이삭들이 지사님께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도지사 때문에 풍년이라고?’ 그러나 도지사는 그 ‘과잉 충성’에 기분이 고무된 듯 ‘허허’ 웃음을 날렸다. 2010년 경기도에서도 과잉 충성 해프닝이 있었다. 경기도 홍보기획관실에서 선거를 앞둔 시점에 만든 홍보물 ‘우리는 GTX 타고 미래로 간다’는 책자를 도내 지하철과 유관기관에 배포했다가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 일까지 있었다. 그 책자에는 현직 도지사의 홍보성 사진이 들어가 있는 등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봄 치러진 총선 때도 이와 같은 공무원들의 과잉 충성이 문제가 된 예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선거기간이 아닌데도 일부 공무원의 과잉 충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현재 무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친노 좌장’으로까지 불릴 만큼 이해찬 의원은 야당의 거목이다. 그가 무소속으로 남아 있는 것도 지난 총선 때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는 이변(?) 때문이다. 그는 이에 불복, 무소속으로 세종시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민주당 소속 세종시 시의원들 중에는 공식 당 공천 후보자가 있었음에도 무소속 이해찬 후보를 지원하는 바람에 당에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 또한 이변이었다. 이제 그가 언제 복당이 되느냐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김종인 체제가 물러남으로써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이 의원은 2013년 세종시 전동면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마련했고 의회가 끝나면 여기에 머무르는 것을 즐겼다. 주택 주변은 우리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과수, 야채를 가꾸는 비닐하우스 등등. 그런데 최근 인근의 한 농민이 수퍼푸드로 각광받는 아로니아를 재배하려고 3백여평 밭에 퇴비를 뿌렸다. 그러자 특유의 냄새가 주변에 짙게 퍼졌다. 사실 농촌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이런 냄새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의원은 세종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퇴비를 뿌린 농민은 밭을 갈아엎고 뿌려진 것을 수거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 냄새를 차단하려고 땀을 뻘뻘 흘렸다. 뿐만 아니라 세종시 행정부시장 등 간부들이 현장에 쫓아와서 실상을 파악하는 한편 퇴비 시료를 채집하여 관계기관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환경기관의 악취 측정 방식으로 냄새를 측정했으나 결국 허용기준치 이하로 나타나 시 당국은 머쓱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수치가 허용치를 넘었다면 세종시는 그 농민을 고발했을까? 사실 이해찬 의원도 이와 같은 과잉 반응을 원치는 않았을 것이다. 주민들 역시 국무총리를 역임한 7선 의원의 중량감, 특히 스스로 서울을 떠나 농촌을 택해서 전원주택을 마련한 만큼 농촌을 이해하고 사랑하리라 기대도 가졌을 텐데…. 따라서 지역에서는 이의원이 좀 더 농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 환경을 받아들이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소리가 높다. 이참에 우리 정치인들, 농어민과 수많은 밑바닥 서민들은 매일같이 그 직업 특유의 냄새와 힘든 싸움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가슴 아픈 瀋陽의 ‘삼학사’ 碑

10여년 전 계룡장학재단 이인구 이사장과 함께 중국 심양(瀋陽) 일대의 우리 역사 유적을 답사하던중, 놀라운 사실(史實) 하나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것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인질로 잡혀간 오달제, 윤집, 홍익환 등 소위 ‘삼학사’를 기리는 비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 삼학사는 심양에 끌려와서도 청나라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여 죽임을 당했는데 청 태종은 비록 자신을 거부한 그들이지만 그 절개는 높이 기린다며 ‘삼한산두(三韓山斗)’라고 새긴 비를 세웠다. 삼학사의 절의가 태산 같고 북두칠성처럼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1960년대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이 비가 부서졌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조선족이 다니는 발해대학 학장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현장에 도착하니 과연 눈 속에 누워있는 비는 조국 땅에서 찾아온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 했다. 이인구이사장은 그 후 사비를 들여 조각난 비를 복원시키고 민족의 귀감이 되도록 발해대학 후원에 이를 세웠다. 이 비를 보며 도대체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기에 우리 역사에 이토록 통절한 기록을 남겼는가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왜 백제를 멸망시켰고, 수(隨)나라에서 당나라까지 6명의 황제가 비록 실패는 했지만 왜 우리 땅 고구려를 정벌하려 했을까?어찌하여 그들은 조선말기 대원군을 압송해 4년간 유폐시키는 무례를 저지르고도 그를 이용하여 일본과의 파워게임을 벌였을까? 또 6ㆍ25 전쟁 때는 북한을 도와 그들 군대가 압록강을 건넘으로써 남북 통일의 기회를 짓밟지 않았는가?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 바람처럼 중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가? 중국의 예비역 중장이라는 사람이 3년전 공산당 기관지에 ‘한반도는 지금껏 중국에 위협이 되어왔다’는 글을 발표했는데 우리의 한 언론이 그 내용을 요약해 보도했다. 글쓴이는 전 난징(南京)군구 왕홍광(王洪光) 부사령관. 그는 수당 황제들이 끈질기게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나섰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오히려 그로인해 농민반란 등 국력이 소진됐으며 당태종은 52세에 죽었다고 지적했다. 임진왜란 때 명(明)이 조선에 파병하여 급속한 재정 압박으로 멸망을 재촉했고, 청나라가 일본과 한반도에서 벌인 청일전쟁은 중국의 식민지화를 앞당겼다고도 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950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서자마자 625 한국전쟁에 개임함으로써 대만과의 통일 기회를 놓쳤다는 것. 또한 이 전쟁에 발목이 잡히면서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국의 국가 통일과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이어 그의 결론은 북한의 핵 보유 결심을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한 것. 중국 군사전문가로서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는 매우 민감하고 불길한 예고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지적한 대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지금에 와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하려는 사드를 가지고 우리에게 모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병자호란 때 우리가 당한 뼈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다음 정권을 어쩌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대원군 시대처럼 우리를 속국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정치인들 가운데 우리 국가 안보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사대주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李도령의 공권력 남용

지금은 은퇴해서 TV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우리나라와 온두라스 경기를 앞두고 방송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스타급 선수들이 가장 많이 받는 유혹이 있는데, 그것은 경기 중에 공을 몰고 갈 때 자신에게 초점이 모아진 TV 카메라와 관중의 함성을 다른 선수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슈팅으로 이끌어 골을 성공시키면 그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유혹은 흔히 실패로 끝나고, 그 실패는 팀 전체에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짜 팀에 충실한 선수는 자기가 잡은 공을 빠르게 효과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패스하여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것이 중요한 ‘스포츠 정신’ 즉, ‘스포츠의 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스포츠뿐 아니라 인류가 발전시켜 온 모든 직업에는 혼이 있다. 기술인의 장인정신, 군인의 목숨 던져 불태우는 호국정신, 슈바이처 같은 의사의 인술, 묵묵히 사도(師道)의 길을 걷는 선생님들…. 이런 혼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만큼 우리들 사회에 신뢰와 인간의 공동선, 그 가치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아직도 절실한 것은 공직자들의 혼이다. ‘전기 누진세 폭탄’에 대한 여론이 그렇게 들끓었는데도 도대체 우리 공무원들은 귀를 막고 있다가 대통령의 한 말씀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여 국민의 원성을 샀고, 검찰의 고위 간부는 권력의 칼을 개인적 치부로 활용하다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조직에 안겨 주었다. 이런 것이 바로 ‘공직자에게 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다. 그 시퍼런 군사정권 시대 용감한(?) 어느 장관이 ‘대학교육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입각했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6개월이 지나니까 그 역시 관료 조직 문화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던 것. 2014년 11월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삼성그룹 출신의 이근면씨가 임명되어 정부 인사혁신을 주도해 나갔다. 삼성의 인사 전문가여서 기대도 컸다. 그러나 결국 그는 19개월을 뛰다가 물러나고 말았다. 주위에서는 신병을 이유로 그의 사임을 말하지만 ‘공무원들의 반발’이 큰 이유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특히 공직 개방 확대, 순환보직 관행 축소 같은 그의 혁신안은 공무원 사회에서는 예민한 문제였다. ‘춘향전’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고전문학이다. 그러나 여기에 짚어볼 문제도 있다.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애인 춘향이를 남원군수 변학도의 손에서 구출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능청을 떨며 춘향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친다. 멋진 장면이지만 이건 분명 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렇듯 고려시대부터 시행된 과거제도는 개천에서 용이 나고, 흙수저에게 꿈을 주는, 훌륭한 공직 진출의 길이었지만 점점 ‘공직 정신’이 퇴색하고 개인의 사적 영달로 치부되면서 많은 역기능을 가져왔다. 지난 여름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진경준 검사장 사건도 이도령의 춘향이 구하기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는 넥슨 김정주 회장과의 스캔들 외에 자신이 내사하던 항공사에 압력을 넣어 처남이 운영하는 청소용역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기도 했다. 이도령이 춘향이를 위해 공권력을 행사한 것처럼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권력을 개인의 이권을 위해 행사한 것. 이렇듯 우리 공직자들에게는 주어진 직위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들어 ‘공무원에게 영혼이 있는가’라는 질책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런 세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화력발전 반대 단식하는 市長님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으로 있던 럼스필드의 집무실에 항상 걸려있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인공위성으로 밤에 찍은 한반도 사진이다. 환하게 밝은 남한과 캄캄한 북한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럼스필드 장관이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남·북 체제의 비교, 나아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체제수호가 만들어낸 자부심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결국 이것은 남·북 에너지, 특히 전력생산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북한의 전기 사정은 심각하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업체를 철수시켰을 때 누구보다 개성 시민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 역시 개성시 일원까지 밝혀주던 공단 전기가 끊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전기 사정은 여유롭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다. 원자력 발전소 하나 지으려면 해당 지역민과 뜨거운 갈등을 겪어야 하고 화력발전은 요즘 들어 미세먼지의 주범처럼 몰리고 있다. 지난달 찜통 더위 속에 김홍장 당진시장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김시장이 요구한 것은 석탄 화력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과 송전선로의 지중화. 그의 주장이 무리가 아닌 것은 화력발전소가 당진을 비롯 충남 서해안에 8기가 밀집되어 있는데다 곧 2기가 더 세워질 계획이며, 당진지역에 송전탑이 무려 80개나 되니 재산상 피해는 물론 보건 환경에도 그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 일대의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내는 연기와 쭉 깔린 송전탑이 답답할 지경이라는 것. 그런데다 이들 화력발전소의 본사는 당진에 있는 게 아니라 울산에 있어 100억 넘는 지방세를 그곳에다 내고 있다. 이러니 당진시는 먼지만 먹고 있으라는 것이냐는 반발도 적지 않다. 충분히 이해할만한 대목이다. 실제로 화력발전에서 배출되는 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제이콥 교수팀은 지난해 석탄연료의 배출오염으로 1년에 750명이 조기 사망할 가능성을 제시해 충격을 준 바 있는데 이 같은 충남 서해안의 배출오염이 수도권에도 28%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황산화물의 경우 석탄의 연소과정에서 가스 상태로 배출돼 대기 중에서 초미세먼지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5년간 충남 지역에서 3백여 회 초과 배출돼 126톤을 뿜어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홍장 당진시장의 단식 현장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그리고 많은 환경문제 전문가들이 다녀갔다. 초미세먼지가 당진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 일원, 나아가 국가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는 석탄 화력발전소(당진 에코파워)의 실시 계획 승인여부 결정을 연기했고, 국회는 이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기로 했으며 김시장의 단식농성도 중단됐다. 무엇보다 에너지 수급 정책에서 화력발전의 문제점을 공론화시킨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면 성과라 하겠다. 특히 이 시점에서 추가로 화력발전소를 2기 더 건설해야 하는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전 측의 발표대로 전력의 예비율이 30%나 된다면 굳이 더 발전소를 늘릴 필요가 있을까? 해마다 여름철이면 뉴스에 단골처럼 등장하던 ‘전력 비상’ 소리가 올해엔 뜸한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우리도 화력에 의존하지 않는 청정에너지 정책 개발에 힘을 집중시켜야 할 때다. 변평섭 前 세종시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중국 마오타이酒와 김영란법

중국 청나라 때 건륭제 밑에 화곤(和坤)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그를 둘러싼 부정부패는 날로 원성을 자아냈다. 가령 전쟁에 나가 많은 병력을 잃고 패배한 장군이라도 화곤에게 뇌물을 바치면 ‘패배한 장군’이 아니라 ‘승리한 장군’으로 황제에게 보고되어 훈장을 받을 정도였다. 이렇게 중국의 부패는 뿌리가 깊다. 장개석이 중국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물러난 것도 마오쩌둥(毛澤東)의 전략보다 군부의 부정부패에 있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뛰어난 무기들이 다음 날이면 공산군 진영에 들어갈 만큼 체계가 엉망이었다. 지금 중국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공산당 정부 역시도 부정부패가 극심해 위험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지난번 쓰촨성 지진 때 학교 건물 6천9백여칸이 무너져 1만명의 어린이가 죽었다. 조사 결과 시교육청에서 뇌물을 받고, 부실공사를 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와같은 부정부패는 곳곳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다. 심지어 군부대에 지급된 무기들이 고철로 분해되어 유출되고 대형사업을 하려면 뇌물 없이는 되는 게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진핑 주석이 ‘토끼에서 호랑이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에 따라 야심만만하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을 비롯 고위 부패 관료 99명을 숙청했다. 그리고 지금도 ‘토끼에서 호랑이까지’의 부패 관료와 당원들에 대한 ‘사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그물을 벗어나는 묘책들이 진화하고 있어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크다. 시진핑 주석이 공직자들의 허례허식을 줄이고 근검절약하자는 강력한 지침에 의해 공직자의 접대는 물론 일반 식탁에 ‘사채일탕(四菜一湯)’이라 하여 채소 네가지에 탕 1개를 넘어서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식탁 아래에 요리접시를 감춰놓고 식탁 위의 접시가 빌 때마다 그것을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사채일탕’을 지키는 것이다. 중국에서 공직자들에게 금지된 최고급 술, ‘마오타이’를 마시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값이 싼 술병에 ‘마오타이’를 부어 마침 저렴한 술을 마시는 것처럼 위장을 한다는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의 대책이 개발되는 것이다. 역대 중국의 제왕들로부터 부패 척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 심지어 명나라 태조 주원장 같은 이는 부패 공직자의 가죽을 벗겨 관청에 전시를 하는 잔혹한 방법까지 동원했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지금 ‘김영란법’의 합헌 판결로 법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의 핵심은 왜 국회의원과 사회단체는 제외되었는가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농수산물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도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법 조항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는 방책이 벌써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중국에서 싸구려 술병에 ‘마오타이’술을 따라 마시는 것과 같은 현상이 우리에게서 벌어진다면 ‘김영란법’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의 조항을 철저히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패에 대한 국민의식의 변화다. 비리에 대해 좀 관대한 유교문화권, 특히 중국과 밀접한 문화의식을 갖고 있는 우리 역시 중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이봐, 해봤어?”

중국의 부자들도 유럽이나 미국의 부자들 못지않게 고급 아파트, 호화 별장 등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부자 소리를 듣는 자산 3천만 위안 이상의 부자가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자가 많기로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이들은 캐나다 밴쿠버, 우리나라 제주도 등의 부동산을 마구 사들이는가 하면 유명 기업들을 입맛대로 삼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송모 전의원이 중국을 가리켜 ‘11억 거지…’하고 말한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중국의 최고 부자로 알려진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중국이 낳은 걸출한 부호다. 아직 50대의 젊은 나이에 중국 GDP의 2%에 이르는 자산을 움직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2천년에 불과 열여덟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그의 전자상거래는 이제 2만5천명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 경제를 G-2로 이끄는 기업가들이 마윈 말고도 상당한 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금 역동적으로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지난해 10월 전ㆍ현직 홍보임원들의 모임인 한국 CCO클럽은 광복 후 70년에 걸쳐 기업가 정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기업인의 어록을 설문조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재계 인사사이트’ 독자 278명이 대상이었는데 그 결과 정주영회장의 “이봐, 해봤어?”가 1위로 뽑혔다.2위는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말. 3위는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인데 대우가 세계를 무대로 한창 뻗어나갈 때의 어록이다. 무엇보다 이들 어록 가운데 가장 설득력있게 지도자가 던질 수 있는 것은 “이봐, 해봤어?”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정주영회장이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1915년에 태어난 그는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몸소 겪으며 싸워 이겨낸 인물. 무엇보다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1998년,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가난하여 집을 뛰쳐나온 정주영의 소년 시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군을 일군 재벌 총수에 이르기까지 ‘소떼 앞에 선 정주영’은 참 멋진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아랫사람이 어떤 프로젝트를 가지고 정회장 앞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이봐, 해봤어?”하고 툭 던질 수 있었다. 누군가 정주영회장이 태어난 1910년대는 우리나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삼성그룹을 창업하여 대한민국의 반도체 세계를 연 이병철회장이 1910년 2월에 태어났고, 고 박정희대통령이 1917년 11월에 태어났으며 1915년 정주영회장 등 우리나라 산업화 주역 3인이 모두 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어떤가? 롯데그룹의 형제싸움과 같은 재산싸움이나 하고, 8ㆍ15 광복절에 사면 받을 기업인이 누구일까 목을 빼며, 끊임없이 사정당국의 리스트에 기업인이 오를 뿐인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봐, 해봤어?”하며 이 시대를 준비하는 기업인은 없는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사드와 일본 속의 百濟城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 기구치(鞠智城)라는 성이 있다. 1400년 전 우리 백제에서 건너간 귀족이 세운 성으로 65ha에 이르는 이 넓은 성에는 인근 3개 성에 대한 무기, 병참, 예비병력을 담당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성의 외곽 등은 요즘 들어 복원된 것. 특히 성 광장에 세워진 백제 귀족 억예복유(憶福留)의 축성 지휘를 하는 모습의 동상이 인상적이다. 그는 왜 일본에까지 와서 이와 같은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벌였을까? 일본은 왜 지금껏 당시의 병영 모습을 애써 보존하려는 것일까?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은 백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663년 8월 2만7천명의 군사를 파견했다. 훗날 천지(天智) 천황의 이름으로 등극한 중대형(中大兄) 왕자가 원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일본 원군은 마침내 지금의 강경 포구와 부여(사비성) 사이의 금강을 타고 진격해 왔다. 하지만 강폭이 좁고, 강 양안에 매복해 있던 당나라와 신라군의 기습 공격에 일본은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무참히 패배했다. 4백여 척의 전함이 불탔고 거의 모든 병력을 금강물에 빠뜨린 왜군 사령관은 겨우 백강(금강의 강경포구 구간의 별칭) 전투현장을 벗어나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것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동북아 3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인 ‘백강전투’. 한반도에서 벌어진 첫 국제전이기도 하고 중국대륙과 해양세력 일본 사이에 낀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이 빚은 미래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어쨌든 ‘백강전투’에서 일본군이 패퇴할 때 이 전투에 참여했던 많은 백제 귀족들이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들은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이번에는 일본으로 쳐들어 올 것에 대해 숙의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들은 일본으로 올라오는 목줄과도 같은 구마모토의 기쿠치에 성을 쌓는 작업을 서둘렀고 그 총책임자는 백제에서 건너온 귀족이 맡았다. 그렇게 기쿠치성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기쿠치성 외에 일본 야마모토 조정은 인근의 오노성(大野城), 사가현의 기이성, 나가사키현의 가네다성을 축성했으니 일본이 당나라에 대해 큰 위협을 느낀 것 같다. 이 성을 돌아보노라면 멀리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팔각형의 대형 전망대, 당시 병사들이 숙소로 쓰던 막사 등이 1400년 전 가졌던 대륙에 대한 경계심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대륙세력(중국)과 해양세력(일본)이 맞부딪히는 한반도는 유럽의 폴란드처럼 강대국 틈새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1274년과 1281년 몽고는 고려를 앞세워 일본을 침략했는데 마침 불어온 태풍 ‘가미카제(神風)’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이 침략전쟁으로 하여 몽고군의 병선(兵船)을 만드느라 우리 남부지방은 벌목으로 거의 모든 산들이 민둥산이 되었고 제주도는 몽고군의 말 목장이 되어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있다. 이후에도 계속된 임진왜란, 6ㆍ25와 국토분단 등 우리 한반도가 겪어야 할 지정학적 운명의 상처는 너무 가혹하게 전개되어 왔다. 요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이 뜨겁다. 1400년 전에 ‘백강전투’에서 활 쏘는 전쟁으로 시작된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활보다 무서운 핵무기가 등장한 것이 다를 뿐. 지정학적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려는 어떤 선택-역시 그럴만한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대통령의 여름휴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겨울 휴가로 그의 고향 하와이에서 장장 27일간을 보낸다. 운동복 차림에, 거리 가게도 들러 가족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은 시민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가족이 다녀가는 가게는 금세 유명해져서 톡톡히 재미를 본다. 뿐만 아니라 여름휴가는 주로 마서스 비니어드섬 같이 시원한 곳에서 보내기도 하는데 행정부ㆍ의회 등 지도자들을 초청, 골프를 치는가 하면 휴가 때마다 대통령이 읽을 책을 언론에 발표하여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의 이와 같은 휴가는 매우 낭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미국인들의 여론은 호의적이다.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대통령 휴가지를 따라가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사실 엄청난 업무에 시달리는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 머리를 식히고 당면한 정책을 구상하며 책을 읽는 것 등은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도 대통령의 휴식을 위한 시설이 있었다. 충북 청원에 있는 청남대. 하필 그것이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져서 좋은 이미지를 얻지 못할 뿐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인기가 없어서인지 당시 ‘청남대 화장실은 금으로 되어 있다더라’ 또는 ‘대통령이 대청호에서 낚시를 하면 잠수부들이 대통령 낚싯대에 큰 물고기를 꿰어 준다더라.’는 등 많은 유언비어가 돌아다녔다. 물론 대통령 일행이 오는 날에는 이 일대 주민들이 경호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침내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2003년 4월 청남대는 충북도에 반환해 버렸다. 그리고 일반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우선 화장실로 달려가 진짜 변기들이 금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또한, 호숫가 낚시터로 가서는 잠수부들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모두가 사실이 아니어서 구경꾼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관광객들은 청남대가 대통령의 국정 구상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임을 공감했다. 사실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2003년 4월 17일 3당 대표들을 이곳에 초청하여 삼겹살 파티를 했는데 모두들 만족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지금도 청남대를 충북도에 반환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주장들이 있다. 대통령이 복잡한 서울을 떠나 쾌적한 자연 속에서 국정을 구상하기도 하고 여야지도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한다면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도 일곱째 날에는 쉬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휴식은 어떤 면에서 재창조를 이루는 에너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올여름 휴가지로 울산 십리대숲을 추천하여 화제가 됐었다. 그러자 김기현 울산시장은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의 울산 방문을 건의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 국내 휴가지를 권유한 것은 지역 경제가 어렵고 특히 울산은 조선업의 구조조정으로 분위기가 어둡기 때문인데 현직 시장이 이 기회를 챙기고자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의 여름 휴가 계획은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박대통령이 올여름 휴가를 청남대에서 보내는 것은 어떨까 권고하고 싶다. 여기 잔디밭에서 야당 지도자들과도 삼겹살 파티를 하며 사드 문제 등 격의 없는 국정논의를 한다면 국민들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JP흉상 설립 논란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오줌누는 소년상’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코스다. 불과 60㎝의 이 작은 소년상은 항상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누고 있는데, 이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줄을 서고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사실 벨기에를 다녀왔다면서 ‘오줌누는 소년상’ 앞에서 찍은 ‘인증샷’이 없으면 무효(?). 그만큼 관광수입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동상에 얽힌 스토리텔링이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것이 14세기 프랑스 침공 때 큰 화재가 나서 도시를 삼킬 위기에, 한 소년이 나타나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는 것. 그런 전설로 이 도시는 ‘오줌누는 소년’이 화재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곳에서 이슬람 과격단체 IS의 테러가 빚어지자 ‘오줌누는 소년’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는 농담도 나오고 있다 한다. 어쨌든 전통있는 도시에는 동상들이 많아 그들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요즘 ‘브렉시트’ 후유증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영국 런던에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영광을 말해주듯 윈스턴 처칠, 나폴레옹과 싸워 이긴 넬슨, 셰익스피어 등등 도시 어디를 가든 동상을 만난다. 최근에는 자기들에게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인도의 간디 동상도 세우는 금도(襟度)를 보이기도 했다. 그밖에 워싱턴, 파리, 베를린, 시드니 등 세계 유서 깊은 도시들은 그렇게 동상들로 하여금 도시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닷가에 서있는 콜럼버스 동상은 신대륙을 발견하려고 떠나는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하고…. 요즘 충청지방에서는 동상 문제로 다소 논쟁이 있다. 하나는 공주고등학교 교정에 JP(김종필 전국무총리) 동상을 세우는 것에 일부 반대가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전시 충무체육관 한쪽에 세워진 윤봉길의사의 동상 위치에 대한 시비다. 공주고등학교는 올해로 개교 94년이 되는 충청지역의 대표적 명문고. 김종필 전국무총리에서부터 지금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의원의 부친 정석모 전내무장관, 그리고 미국 메이저리그 영웅 박찬호선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많은 인물들을 배출해냈다. 총리는 JP가 처음. 그는 부여에서 공주고등학교(당시는 공주중학교)에 입학,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이때 많은 문학서적을 섭렵했고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오르간 연주를 배우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이 시절을 못잊어하는 것으로 회고록은 전하고 있다. 이런 선배를 둔 동문회는 그동안 JP의 흉상 건립을 추진하고 1억원 모금운동도 전개, 2m50㎝의 흉상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제막식을 가지려고 했으나 일부 교직원의 반대 등으로 무기 연기되었다. 반대 이유는 생존자의 흉상을 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며 특히 JP가 5ㆍ16 쿠데타의 주역으로서 역사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창회 측은 학부모, 교사, 시민단체 등과 협의를 시도했고 가까스로 7월9일 학교 후원에 흉상을 안치하여 제막식을 가지려했으나 또 다시 무기 연기. JP 자신도 이와 같은 사태에 ‘무리하여 설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윤봉길의사의 동상이 이용이 한정되어 있는 체육시설 구석에 세워져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나, 대한민국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문의 동상이 거리나 광장도 아닌 학교 교정에서까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시비에 휘말리는 우리의 현실이 슬플 수밖에 없다. 차라리 ‘오줌누는 소년상’까지 세워 관광객의 명물로 만드는 벨기에가 부럽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풀꽃

얼마 전 화분 두 개를 선물로 받았다. 하나는 야생화이고 하나는 꽃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인데 안타깝게도 적어준 꽃 이름을 모두 잃어버렸다. 야생화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속어로 되어 있는데 한동안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은 내 사무실 창가를 차지하고 있기는 너무 예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늦가을,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늘색 빛깔의 들국화를 닮은 그야말로 내 눈을 끌기에는 너무 평범한 꽃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물도 주고 다듬어 주다 보니 가지에서 뻗어 나온 꽃망울이 계속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는데 창밖의 햇살이 투영되면서 꽃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허리를 굽혀 자세히 보니 그 빛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는 비로소 이 꽃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 이름을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개망초’라는 것을 알았다. ‘망초’에 ‘개’자를 붙인 것. 이렇게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다행이지만 우리 야생화의 이름이 참 해학적으로 재미있게 지어졌음을 발견했다. 작은 땅 비싸리, 병아리풀, 요강꽃, 노루귀, 노루발풀, 홀아비 바람꽃, 개불알꽃, 며느리밥풀꽃, 여우오줌싸개…. 물론 그 이름마다 이야기가 있다. 쌀이 귀한 가난한 시절, 며느리의 밥그릇에 얼마나 아까운 밥알이었겠는가? 그래서 ‘며느리밥풀꽃’은 밥알처럼 깨끗하고 성글다. 이렇게 촌스럽고 해학적인 꽃 이름만큼 우리의 야생화는 하나같이 아름답고 청아하다. 물론 자세히 보아야 그렇고, 오래 보아야 그렇다. 한반도를 ‘금수강산’이라고 한 것도 이처럼 산천초목 모두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을 보는 눈도 그럴 것 같다. 어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 교실에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눈에 띄게 예쁜 녀석들도 있고 저렇게 못생겼을까 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보면 밉게 생긴 아이는 하나도 없어요. 다 예쁘지요. 참 신기합니다.” 그 교장선생님 이야기처럼 모든 아이들이 다 예뻐 보이려면 역시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오래 보아야’하고 ‘자세히 보아야’ 한다. 물론 그러자면 마음에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그야말로 인내심, 여유, 사랑의 눈이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대하는 데는 외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종차별은 그 도가 심해서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심지어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이 자주 흑인이나 히스패닉계로부터 표적이 되는 경우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외국인 백만명 시대에 들어섰고 그 가운데서도 다문화가정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한 기둥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들 결혼이주여성이 겪어야하는 인권문제는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그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소위 ‘왕따’를 당해 학업을 포기하는 일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도 우리가 함께 살아야할 대한민국 국민인데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외로운 늑대’가 되고 마는 것이다. 풀꽃이 아름다운 것은 오래 보아야하고 자세히 보아서이다. 모든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다문화 가정도 보듬을수록 아름답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남경필 도지사의 ‘세종시 천도論’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세종은 정치, 서울은 경제중심 수도’로 만드는 개헌을 하자는 주장이 적어도 충청권에서는 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사실상의 ‘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에 천도를 제일 먼저 계획한 사람은 조선 태조 이성계. 이태조가 1393년 결정한 후보지는 바로 세종시에 붙어있는 계룡산 자락, 지금 3군본부가 있는 곳이다. 그때 새 도읍지 터를 닦고 궁궐에 쓰일 주춧돌 작업을 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돌이 세월이 흐르면서 인근 주민들의 집짓는 돌로 많이 유출되고도 아직 115개나 남아 있다. 그로부터 600년 세월이 흘러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에 인접한 공주 장기면 일대를 새 수도로 추진했고 마침내 2012년 세종시가 탄생됐다. 저수량이 풍부한 대청댐, 가뭄을 모르는 금강, 경부-호남-수도권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 등등이 탄생 배경이다. 그런데 세종시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설되고 6개 부처를 제외한 18개 행정부가 자리를 잡았지만 비능률, 낭비, 정부시책 추진의 누수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도권의 인구 분산과 지방 균형발전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 등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왜 그럴까? 단적인 예로 지난해의 상반기만 해도 세종시 공무원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매일 5천840만원의 세금을 길에다 버렸다. 1년에 200억원이 그렇게 없어진다. 경제부처의 경우 기획재정부, 농림식품부, 산업부 등 대부분의 공무원이 세종시에 있는데도 회의는 70% 이상이 서울에서 열린다. 다른 부처도 똑같다. 그러니 서울 출장이 많을 수밖에 없고 공무원은 피곤에 지친다. 특히 국회가 열리면 장ㆍ차관과 고위 공무원들은 서울에 머물러야만 한다. 따라서 세종시 공무원이 결재를 받기 위해 장·차관이 머물고 있는 서울을 왔다갔다 하느라 죽을 맛이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는 원격결재, SNS 보고체계, 특히 영상회의를 권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갖는 한계성이 있으며 특히 보안상의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국회에도 영상회의실이 있으나 사용실적은 월평균 2.5회. 거의 잠자고 있는 수준이다. 국회의원들 역시 장·차관을 면전에 두고 호통을 쳐야 ‘의원님’ 맛이 나지 영상기기와 모니터 앞에서는 영 그 맛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세종시에는 국무총리가 머무는 총리공관이 있고 총리의 주민등록도 세종시 어진동사무소에 있지만 세종시에 머무는 날은 1년에 불과 며칠이다. 그러니 낭비, 비효율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어 건설한 세종특별자치시-이미 20만명을 돌파한 인구, 어떻게 당초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까? 그것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는 명실상부한 수도 이전’을 하는 것이고 개헌논의가 점화된 이 시점에 수도 이전의 개헌도 병행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종시가 살고 국가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남경필지사의 주장에 세종시와 충청인들이 환영하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남지사의 그와 같은 주장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경제수도로서의 수도권’, ‘정치ㆍ행정수도로서의 세종’이 상생할 수 있는 거시적 구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지도자? 칠레 광부에게서 배워라

2010년 10월 칠레에서 발생한 광산 매몰사건은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첫째 매몰기간이 69일로 최장기록을 세운 데다, 둘째 33명 매몰 광부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처음 갱도가 매몰됐을 때는 모두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야말로 절망, 또 절망이었다. 하도급으로 파견 나온 광부 5명은 별도의 굴파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서로 주먹싸움을 벌이는 등 살벌하기만 했다. 이때 33명의 광부들 속에서 지도자가 나타났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 54세인 그는 ‘절망은 절망일 뿐’이라면서 한사람 한사람 대화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갇혀있는 광부는 33명이지만 이제부터는 1명이 더 늘어 34명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광부들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그 한사람 광부는 하느님’이라며 반드시 구출된다는 신념을 갖도록 했다. 캄캄한 절망을 희망의 빛으로 바꿔준 우르수아! 멋진 화술도 없고 특별한 지식이나 파워도 없는 한낱 광부에 불과했지만 그가 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자, 싸우면 다 죽는다, 모두가 사는 길을 찾자-너무도 평범한 말이었지만 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모두들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한 사람당 하루에 통조림 참치 반스푼, 우유 반컵… 마침내 그들은 길고 긴 69일을 버티어 모두 구조될 수 있었다. 구출되는 순간에도 루이스 우르수아는 진솔했다. 동료 광부들을 질서 있게 하나씩 내보낸 다음 마지막으로 구조 상자에 올라탄 것이다. 그가 갱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대통령을 비롯 초조히 기다리던 모두는 열광했다. 루이스 우르수아는 순간 칠레의 국민적 영웅으로 탄생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세계 언론들은 이것을 ‘진실과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했다. 대중을 이끄는 참된 영웅은 진실과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시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21세기는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면서 “심지어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조차 아버지란 이름만으로 존경받던 시대는 지났다. 아래로부터의 소통이 메시아의 환상을 깰 때 우리 사회는 폭력적 전근대성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언론 기고문에서 주장했다. 칠레 광부 우르수아가 보여준 것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소통’이 민주주의적 리더십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진보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4월 새누리당 혁신모임의 초청 세미나에서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는 “민주적 규범을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는 황영철, 오신환, 하태경 의원 등 다수의 새누리당 혁신모임 멤버와 나경원, 이주영 의원 등 많은 의원들이 참석하여 당의 진로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역시 최교수가 지적한 ‘민주적 규범’이 핵심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소통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닌 가부장(家父長)적 리더십으로는 대중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그런데 뻔히 이것을 알면서도 새누리당은 참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분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새누리당에 불이 났다고 더민주당, 국민의당이 좋아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모든 정당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같은 내분의 불덩이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당을 이끌고 나라를 이끌겠다면 먼저 칠레의 광부 루이스 우르수아에게서 한 수 배우길 권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未生’들의 고함소리

최근 KBS TV에서 정글에 사는 한 부족의 모습을 방영했다. 특별히 관심을 끈 것은 호랑이가 많은 밀림에서 꿀을 따고, 암벽을 타고 올라가 바다 제비집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곡예처럼 위험하고 험난한 것. 90뉅가 넘는 암벽을 밧줄 하나에 오르다 떨어져 죽는 일도 많고, 호랑이 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한데 그렇게 목숨을 걸고 번 돈은 우리 돈으로 7만 5천원. 더욱 보는 이를 짠하게 하는 것은 밀림을 걸으면서 일행들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오지 마라’는 경고의 표시이며 ‘여기 우리는 여럿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호랑이는 덤벼들어 사람들을 물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 많은 부족의 리더는 정글 바닥의 호랑이 발자국을 빨리 식별하여 인근에 호랑이가 있다고 느끼면 즉시 돌아온 길로 빠져나간다. 그때까지는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미생’이다. 강남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죄 없는 여성이 한 정신질환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 살해 현장과 강남역 구내에 죽은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도배를 할 정도로 수없이 이어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세요.’ 또 어떤 것은 우리의 허술한 사회안전 시스템을 비난하는 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5월 31일에는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수리작업을 하던 19세의 김모군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이 가련한 젊은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포스트잇이 금세 스크린도어를 다 채웠다. 그가 마지막 들고 있던 손가방에서 컵라면 한 봉지가 나와 더욱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 라면 하나로 식사를 때우려 했는데 그것마저 못 먹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다 서울 메트로의 갑질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계속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 분노가 확산되었고 포스트잇 역시 더욱 뜨거워졌다. ‘금수저로 태어나세요.’ ‘컵라면, 너무 속상하다.’ ‘이 불안한 사회, 어른들 진짜 무관심해요.’ ‘19살에 죽었잖아. 어린 나이에, 100여만원 벌려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전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지만 포스트잇으로 자기 마음을 나타내는 것은 강남역 화장실 여성피살 사건이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중 숨진 김군 때처럼 뜨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 외국에서처럼 추모 꽃을 바치는 경우는 볼 수 있었지만 이렇듯 포스트잇 행렬은 없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포스트잇에 분노를 담게 했을까?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같은 상황의 불안을 겪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에 근무하면서 역시 ‘컵라면’에 끼니를 걸어야 하는 또래의 젊은이들, 취업을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 혹은 그런 딸이나 아들을 둔 부모들…. 말하자면 ‘미생’의 분노다. ‘미생’은 TV 드라마로 크게 히트했던 직장인들의 삶을 주제로 만든 작품의 제목이지만 원래 바둑에서는 집을 차지하고 있어도 산 것이 아닌 불안한 ‘삶’을 말한다. 그 드라마 ‘미생’에서 가장 감동을 준 명대사는 바로 ‘우리는 다 미생이다.’ 그런데 이 미생들이 고함을 지르고 있다. 밀림지대에서 벌꿀을 따며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호랑이에 대한 불안함으로 고함을 지르듯, 포스트잇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것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미생’의 고함소리를 들어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탐욕의 포로가 된 ‘배신자’들

평소 가깝게 지내는 모 기업 CEO가 어느 날 한 모임에 직접 차를 운전하고 나타났다. 어떻게 운전기사 없이 왔느냐고 했더니 이제 직접 차를 몰기로 했다는 답변이었다. 그 무렵 몽고간장의 회장이 운전기사에 대한 막말 파동으로 사회문제가 되는 등 운전기사의 잇단 고발사건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요즘은 차안에 블랙박스가 있어 차 속의 대화까지 다 녹음되는 판에 세금문제, 관청의 인허가 문제 등 수시로 전화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모두 녹음되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다가 어느날 운전기사가 감정이 틀어지게 되면 그것을 빼어 나쁜 것만 편집해 고발하면 망신당하는 것이 뻔한데 아예 불편해도 기사 없이 직접 운전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렇게도 우리 사회가 불신의 늪에 빠져 버렸는가. 하긴 2012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밀항 도피사건도 그의 가장 측근 운전기사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객 돈 200억원을 불법 인출한 김회장은 그해 5월3일 저녁, 경기도의 한 어항에서 중국으로 밀항하기 직전 해경에 의해 체포됐다. 또 요즘은 잘 나가던 스타급 인사 두 사람이 하루 아침에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 사건으로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첫째는 가수 조영남씨의 미술작품 대작 파문이다. 그의 많은 그림이 송모(61세)씨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인데 두 사람은 형님, 아우 할 정도로 가까운 처지. 그런데 송씨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지 돈을 받고 파는 것은 몰랐다는 보도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지면서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만약 연예가를 주름잡고 있는 조영남씨가 시골에서 그림만 그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송씨에게 마음을 열고 인격적 소통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확대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끝없이 추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은 홍만표 변호사다. “홍만표 반만 하라.” 지금 법조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네이처 리퍼블릭 정운호 게이트’의 중심인물이 된 홍만표변호사가 검찰에서 명성을 날릴 때 검찰 내부에서 흔히 나왔다는 말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수사를 비롯 대형사건들을 다루면서 그는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수사를 지휘하던 서슬 퍼렇던 사무실에서 지난주 피의자의 신분으로 후배 검사들 앞에 17시간이나 앉아 조사를 받아야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100채가 넘는 오피스텔 등 100억원대의 부동산, 천문학적인 사건 수임료…. 바로 탐욕이다. 그 탐욕의 그늘 밑에는 고교 후배인 법조브로커가 있고, 사건의 교통정리를 하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있다. ‘법조비리’의 원조격인 1999년의 대전 법조비리 사건도 그렇다. 검사출신 L모 변호사로부터 사건 수임 명목으로 법조인, 경찰관 등 300명이 금품을 받은 사건인데 결국 판사 2명, 검사 6명이 옷을 벗는 불명예를 안았다. 바로 L변호사의 사무장이 비밀 장부를 언론에 폭로하면서 빚어진 사건이었던 것. 이들 역시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여 일이 터졌다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원망하랴. 배신한 것은 운전기사가 아니라 회장님의 갑질-그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회장님이고, 연예인이며, 공의(公義)를 짓밟고 ‘전관예우’의 꽃가마를 탄 변호사가 아닐까? 그 탐욕의 포로가 된 사람들 말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남의 산소 벌초하는 구청장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일본에서 제일가는 부자다. 그의 고향은 대구시 동구 도동에 있는 향산마을. 특히 이곳은 천연기념물 ‘측백나무 숲’으로 유명한데 손정의 회장의 조상 묘소 역시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친척들의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벌초 때가 오면 손이 모자라게 되는데 대구시 동구 청장을 비롯 직원들이 대신 벌초작업을 도왔다. 이를 맨 먼저 시작한 사람은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을 받고도 김무성 대표가 ‘옥새’를 가지고 잠적하는 바람에 등록도 못하고 주저앉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 그가 이처럼 손회장의 조상 묘소 벌초에 나선 것은 대구 동구의 첨단의료복합단지에 투자유치를 위해서다. 이재만청장이 이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는 바람에 주민들의 신임도 컸고 마침내 국회 문 앞에 까지 이르렀으나 뜻하지 않은 ‘유승민 파동’에 눈물을 머금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대구 동구만이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이 이렇듯 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에 까지도 손을 뻗친다. 결국 그것이 자신의 성적표가 되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지방자치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정사립이다. 어떤 곳은 돈이 넘쳐 철철 쓰고 어떤 시ㆍ군은 직원 봉급도 정부에서 주지 않으면 은행 빚을 얻어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시청 청사를 중앙청사 보다 화려하게 짓고도 남아 종합운동장이며 승마장까지 마련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돈이 없어 낡은 청사에 컨테이너 박스에서 사무를 본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법인 지방소득세의 50% 상당을 도세(道稅)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자체수입예산 60%가 넘을 정도로 재정형편이 좋은 지방자치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수원, 성남, 용인, 화성 등이다. 물론 지방에도 천안, 아산 등 형편이 좋은 곳이 많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분배를 통해 부자 시ㆍ군과 가난한 시ㆍ군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 그러나 이것인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가난하자’는 것으로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재정이 좋은 시ㆍ군의 경우,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룩하여 얻은 결과인데 마치 이것을 ‘복권당첨’처럼 공짜로 얻은 소득 취급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누가 애써 투자유치를 위해 남의 조상 묘소에 벌초도 하고 공장유치를 위해 외국까지 뛰어 다니겠느냐는 것. 그래서 다 같이 못사는 균형 보다는 증세를 통해 가난한 시ㆍ군에 재정을 지원하는 등의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여기서 또한 생각할 것이 있다. 시ㆍ군마다 종합운동장을 가져야 하고, 공연장 같은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드는 시설에 경쟁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가까운 시ㆍ군과 공조를 해서 함께 사용할 수는 없을까? 또 자치단체마다 소모적인 축제를 벌이는 것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시ㆍ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축제가 360여개나 되는데 이중 강원도의 산천어 축제만 높은 수익을 내고 있으며 부산의 국제영화제, 공주ㆍ부여의 백제문화제 등등 거의가 적자 투성이고 선심성 이벤트도 많다.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하는 지방자치가 중앙예산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지방자치가 아니다. 이 기회에 지방자치의 건전한 재정자립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세종시 공무원의 투표심리는 野性?

지난 413 총선에서 세종시에서는 무소속의 이해찬의원이 당선됐다. 투표 직전까지도 여론조사는 대부분 여당인 새누리당 박종준 후보가 당선되는 것으로 전망 됐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빗나간 여론조사가 아닌가! 특히 정부청사의 공무원들이 집중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도담, 아름, 한솔, 어진동 등에서는 이해찬의원이 52.7%나 득표를 했고 새누리당 박후보는 26.1%로 거의 두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세종시 전체 득표에서는 7.7% 차이) 흔히 공무원은 정부여당 지지성향을 보여온 것이 그동안의 통념이었는데 세종시에서의 413 총선에서 그 판이 깨진 것이다. 후보의 인물을 보고 선택한 때문이 아니겠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다. 이해찬의원이 과거 실세 총리를 지냈고 ‘친노의 좌장’이라는 명패가 늘 따라 다녔으며, 거기에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로부터 ‘정무적 판단’에 의한 공천 탈락의 수모(?)를 당함으로써 뉴스 포커스가 된 효과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당투표에서조차 이들 공무원 집중 거주지역에서 새누리당이 18.8%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안철수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32%대 득표를 한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이 얼핏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이번 선거만이 아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세종시 전체로는 박근혜후보가 3만3천587표로 3만787표를 얻은 문재인 후보를 이겼다. 그러나 공무원이 많이 사는 한솔동의 경우 문재인후보가 5천531표로 박근혜 후보 2천551표를 크게 이겼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이 ‘정부여당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이라고 분석한것은 솔직한 면이 있다. 무엇이 공무원과 그 가족들을 화나게 했을까? 필자가 만난 현직 공무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와 언론은 ‘관피아’ 문제를 심하게 다룹니다. 그런데 A공기업에 자리가 하나 생겼다고 합시다. 그전 같으면 우리 부서 공무원 가운데 연륜이 된 사람이 그리로 옮겨요. 그러면 자리에 숨통이 트여 승진의 폭이 늘어납니다. 또 퇴임한 사람도 그렇게 소화시켜 줘요. 이것을 ‘관피아’라고 막아 버리고나니까 오히려 정치인 낙하산 인사가 생겼잖아요. 정치권에서 마구 밀어 내립니다. 그들 정치권 인사보다 관련 부처 공무원이 공기업이나 단체에 도움이 될텐데 말입니다.” 그밖에 공무원들이 갖는 불만 중에는 연금개혁이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것’으로만 인식되는 공무원 연금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다. 사실 이 불황시대에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공무원이라고 하지만 그 인기의 요인이 되고 있는 ‘연금’이 이렇게 흔들린다면 무조건 손뼉칠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가지 문제, 관피아 척결과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해서 이미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떻게 모두를 통합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덧붙여 세종시에 있는 공무원들이 아무리 도시 환경이 좋고 그야말로 ‘행복도시’의 여건이 훌륭하게 갖추어졌다 해도 아직 정서적으로 안착이 되지 않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국회가 열리기라도 하면 서류 보따리를 싸들고 여의도를 수없이 왔다갔다하며 누적되는 피로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타향살이’는 일급 호텔에 살아도 타향살이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이 세종시에 안착할 수 있는 심도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거창한 구호도 좋고 애국심도 좋지만 그것만으로 충성을 강요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70代 야구감독과 정치지도자의 정년

지난 4월 14일 한화-두산의 프로야구. 한화가 2대 17로 두산에 정신없이 깨지고 있던 7회에 갑자기 덕아웃에 심판들이 모이기 시작하며 술렁였다. 김성근감독이 아무 조치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원래 경기 중에는 감독이 있어야 하는 규칙을 저버린 것. 심판들은 수석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양해하고 경기를 진행했다. 알고 보니 그 시간 김감독은 어지럼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74세인 김감독의 연령을 생각하면 한화의 성적 부진이 크게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그 무렵 한화의 성적은 꼴찌로 추락하는 것도 모자라 내부 갈등까지 가라앉지 않고 있어 ‘야신’이라고 이름을 날렸던 김성근감독으로서는 리더쉽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한화의 57명 선수 연봉은 총 102억원을 넘어 10개 구단 중 1위인데도 성적은 왜 10위일까? ‘벌떼 야구’ 소리를 들을 만큼 패기에 찼던 한화가 아니었던가? 김성근감독만이 아니다. 해태에서 명감독으로 활약했고 ‘한국시리즈’를 열 번이나 움켜쥐었던 김응룡감독 역시 마지막 노년을 한화에 던졌으나(2012.10~2014.10) 그 역시 수렁에서 헤매다 감독석을 박차고 나갔다. 일선 선수로 출발하여 감독에 오르고 삼성 라이온스의 사장까지 이르렀던 그의 화려한 야구인생을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것이었다. 그 김응룡감독 역시 김성근 감독 보다 한 살 많은 70대 노장. 야구에서 뿐아니라 정치판에서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선거 후 그 강력했던 기세가 꺾이고 당내에서 ‘노인’ 소리를 듣는 등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논어에 인생 70을 ‘종심(從心)’이라고 했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에서 나온 말이다. 나이 70이 되면 어떤 행동을 하거나 결정을 해도 실수가 없다는 뜻인데, 그만큼 산전수전 다 겪다보니 경륜이 쌓였다는 뜻이다. 반대로 자신만의 어떤 고정관념, 편견, 독선, 같은 역기능이 축적될 수도 있다. 마침 미국과의 화해로 주목을 받고 있는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80이 넘은 몸으로 지난달 제7차 쿠바 공산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당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최고 나이를 60세, 당에서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상한선을 70세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 제안을 하면서 “65세, 70세 이상도 여전히 중요한 활동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로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긴 공산체제의 중국에서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연령 제한을 묵시적으로 72세 이하로 이어오고 있다. 이와같은 중국의 불문율은 2002년 이후 한번도 예외가 없다는 것. 그래서 70대 중반 이후의 지도자들은 앞에서 지휘하는 것 보다 뒤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선배의 역할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55.5세. 19대 때 보다 1.6세 더 높아졌고 60대 이상이 81명으로 19대 때 69명 보다 12명 늘어났으며 70대 이상도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등 5명이나 된다. 한마디로 고령화 현상이 국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신선한 젊은 지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김영삼, 김대중 전대통령이 40대 때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그런 바람이 불어야 할 때이다. 현재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를 비롯, 미국 권력서열 3위이며 향후 대통령감으로 스포트를 받고 있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도 40대 기수들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신선한 인물이 어디 없는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갈릴레오의 손가락

몇년전 남쪽 바다에 사람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는 괴담이 퍼졌다. 당시 여론의 지탄을 받던 인물이 이곳 출신인데 선거 때 그를 찍은 유권자들이 후회의 뜻으로 손가락을 잘라 바다에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 손가락은 그만큼 인간의 의지를 최종적으로 상징한다. 국민의 뜨거운 존경을 받고 있는 안중근의사는 러시아의 카리에서 열한명의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 위에 ‘대한독립’이라고 혈서를 썼다. 안의사가 자른 손가락은 왼손 넷째 약지. 우리는 그렇게 손가락으로 사랑을 맹세하기도 하고 그것에 반지를 끼워 확실한 표징으로 간직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간의 손가락에는 갈릴레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1633년 그 시대 절대 금기시 됐던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은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E Pur Si Mov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는 것. 물론 해가 도는 것이 아니라 땅이 돈다는 ‘지동설’을 강조하는 의미로. 결국 그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여러 병에 시달리다 1642년 세상을 떠났는데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거의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사면을 받고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이장을 허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장을 할 때 갈릴레오를 열렬히 추종하던 사람이 시신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몰래 떼어다 자기 집에 숨겨 놓았다. 갈릴레오가 자신이 만든 천체 망원경을 조종하면서 그 손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위대한 손가락’을 갖고 싶었다는 것이다. 또 그가 재판을 받고 나올 때 땅을 가리킨 것이 바로 그 손가락이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위대한 손가락’은 어찌어찌해서 플로렌스의 과학사 박물관에 기증됐는데 최근 일반에게도 공개가 됐다. 또 세월이 변하여 1992년 로마 교황청은 그에 대한 재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표했다. 갈릴레오의 ‘손가락’에 앞서 르네상스의 찬란한 불을 밝힌 또 하나의 ‘손가락’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1508년 로마 바티칸의 시스틴 대성당 천장에 그린 ‘아담의 천지창조’. 하느님이 떠 있는 몸짓으로 손가락 끝을 통해 아담의 손 끝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이다. 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뜨거운 영감을 주고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왜 미켈란젤로는 손가락을 통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으로 천지창조를 표현했을까? 그 천장의 웅대한 그림을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에 짜릿한 전율이 전해오는 것만 같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손가락질 받는 정치인이 되지 않겠습니다.’하고 각오를 밝혔다. 나는 그에게 ‘손가락질 받는 정치인’이 되지 않으려면 19대 국회 같이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최악의 국회’라고 누구나 말하는 19대 국회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손가락질’ 받는 것이 정치인뿐이 아니다. 경상남도의 어떤 시장은 유럽 출장 때 부인의 경비까지 공금에서 지불했다가 말썽이 됐다. 총알이 뻥뻥 뚫리는 옷을 방탄복이라고 납품케 한 군장교, 대학 운영비를 마음대로 횡령하다 구속된 대학총장, 선생님들이 저지르는 성추문, 세속화 되고 있는 종교계, 수십억의 변호사 수임료 등 최근 충격을 주고 있는 법조계의 정운호 구명 로비 의혹…. 도대체 이 나라 어디에, 그리고 누가 감히 ‘손가락질’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 지도자, 공직자 모두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라. 갈릴레오의 땅을 가리키는 신념에 찬 손가락은 못되더라도 부끄러운 손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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