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영양사와 조리사의 ‘권력싸움’

지난 6월 대전의 한 초등학교 급식문제가 전국적인 여론의 지탄을 받았고 국회에서까지 공방을 일으켰다.

 

한 학부모가 페이스북에 학교에서 먹는 자기 아들의 급식 사진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사진에는 어묵 세 조각, 콩나물 약간, 반 그릇의 국…. 성장기의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다. 즉시 반발이 일어났다.

 

“교장선생님, 당신 자식이라면 이런 밥 먹여?”

“이건 작은 세월호다!”

SNS에서는 전국에서 분노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학부모들은 ‘비대위’를 구성하고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매일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육당국은 지방의원도 참여하는 감사에 착수하고….

 

지난주 감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조리 기구의 불결, 주방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1인당 2천350원의 급식비가 실제로는 70%인 1천645원에 불과한 것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 중에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영양사와 조리사의 갈등이었다. 영양사는 그날그날의 식단을 짜서 조리사에게 넘긴다. 조리사는 그에 의해 주방의 아주머니들과 함께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 그런데 조리사가 주방 경력이 많은 경우, 영양사의 식단을 무시하고 임의로 메뉴를 짠다. 고등어 대신 오징어 볶음, 시금치 대신 콩나물….

 

이럴 경우 조리사가 영양사에게 가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식단을 고치면 뒤탈이 없을 것이다. 영양사 역시 자기가 작성한 식단대로 하지 않은 조리사에게 그 이유를 묻고, 대화로 풀어 나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양사는 자신의 권한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고 즉시 교장에게 항의를 했다. 지적을 받은 조리사는 ‘그런 엉터리 식단으로는 아이들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다’며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제까짓 것이 뭘 하느냐?’고 덤볐다.

 

소위 말하는 우리 관료사회의 고질병인 ‘칸막이 문화’를 이 조그만 초등학교에서도 생생히 보여준 것이다. ‘내 권한’에 대한 철저한 방어벽 ‘칸막이’는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두꺼워졌고 마침내 그 결과물은 아이들의 식판을 초라하게 만들어 학부모들의 분노를 터뜨리게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학교운영의 책임자인 교장은 몰랐을까? 물론 알았다. 알았지만 그는 정년퇴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몇 달만 잘 버티면 퇴임을 하게 되고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데 굳이 일을 시끄럽게 해서 자신의 퇴임 일정에 차질을 가져오면 되겠는가. 때문에 학교 CEO로서 그는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덮으려고만 했다.

 

우리 관료사회의 책임자들이 흔히 보여주는 ‘안일무사’의 병폐가 이 작은 초등학교에서도 역시 드러난 것이다. 결국 교장과 영양사, 조리사 등 5명이 중징계를 받게 됐다. 그들이 이렇게 징계를 받는다 해서 우리 ‘칸막이 문화’의 병폐가 사라질 수 있을까?

 

가족끼리의 칸막이는 가정을 인간 수용소로 만들고, 기업의 칸막이는 시장에서의 퇴출을 재촉하며, 정부의 칸막이는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특히 정부와 기업이 함께 벌이는 칸막이 경쟁은 한진해운 사태에서 보듯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다. 그렇게 칸막이는 우리의 희망을 꺾는 ‘암’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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