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삼학사는 심양에 끌려와서도 청나라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여 죽임을 당했는데 청 태종은 비록 자신을 거부한 그들이지만 그 절개는 높이 기린다며 ‘삼한산두(三韓山斗)’라고 새긴 비를 세웠다. 삼학사의 절의가 태산 같고 북두칠성처럼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1960년대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이 비가 부서졌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조선족이 다니는 발해대학 학장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현장에 도착하니 과연 눈 속에 누워있는 비는 조국 땅에서 찾아온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 했다. 이인구이사장은 그 후 사비를 들여 조각난 비를 복원시키고 민족의 귀감이 되도록 발해대학 후원에 이를 세웠다.
이 비를 보며 도대체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기에 우리 역사에 이토록 통절한 기록을 남겼는가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왜 백제를 멸망시켰고, 수(隨)나라에서 당나라까지 6명의 황제가 비록 실패는 했지만 왜 우리 땅 고구려를 정벌하려 했을까?
어찌하여 그들은 조선말기 대원군을 압송해 4년간 유폐시키는 무례를 저지르고도 그를 이용하여 일본과의 파워게임을 벌였을까? 또 6ㆍ25 전쟁 때는 북한을 도와 그들 군대가 압록강을 건넘으로써 남북 통일의 기회를 짓밟지 않았는가?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 바람처럼 중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가?
중국의 예비역 중장이라는 사람이 3년전 공산당 기관지에 ‘한반도는 지금껏 중국에 위협이 되어왔다’는 글을 발표했는데 우리의 한 언론이 그 내용을 요약해 보도했다. 글쓴이는 전 난징(南京)군구 왕홍광(王洪光) 부사령관.
그는 수당 황제들이 끈질기게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나섰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오히려 그로인해 농민반란 등 국력이 소진됐으며 당태종은 52세에 죽었다고 지적했다. 임진왜란 때 명(明)이 조선에 파병하여 급속한 재정 압박으로 멸망을 재촉했고, 청나라가 일본과 한반도에서 벌인 청일전쟁은 중국의 식민지화를 앞당겼다고도 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1950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서자마자 625 한국전쟁에 개임함으로써 대만과의 통일 기회를 놓쳤다는 것. 또한 이 전쟁에 발목이 잡히면서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국의 국가 통일과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의 결론은 북한의 핵 보유 결심을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한 것. 중국 군사전문가로서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는 매우 민감하고 불길한 예고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지적한 대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지금에 와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하려는 사드를 가지고 우리에게 모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병자호란 때 우리가 당한 뼈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다음 정권을 어쩌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대원군 시대처럼 우리를 속국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정치인들 가운데 우리 국가 안보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사대주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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