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남쪽 바다에 사람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는 괴담이 퍼졌다. 당시 여론의 지탄을 받던 인물이 이곳 출신인데 선거 때 그를 찍은 유권자들이 후회의 뜻으로 손가락을 잘라 바다에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
손가락은 그만큼 인간의 의지를 최종적으로 상징한다.
국민의 뜨거운 존경을 받고 있는 안중근의사는 러시아의 카리에서 열한명의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 위에 ‘대한독립’이라고 혈서를 썼다. 안의사가 자른 손가락은 왼손 넷째 약지.
우리는 그렇게 손가락으로 사랑을 맹세하기도 하고 그것에 반지를 끼워 확실한 표징으로 간직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간의 손가락에는 갈릴레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1633년 그 시대 절대 금기시 됐던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은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E Pur Si Mov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는 것. 물론 해가 도는 것이 아니라 땅이 돈다는 ‘지동설’을 강조하는 의미로.
결국 그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여러 병에 시달리다 1642년 세상을 떠났는데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거의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사면을 받고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이장을 허가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장을 할 때 갈릴레오를 열렬히 추종하던 사람이 시신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몰래 떼어다 자기 집에 숨겨 놓았다.
갈릴레오가 자신이 만든 천체 망원경을 조종하면서 그 손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위대한 손가락’을 갖고 싶었다는 것이다. 또 그가 재판을 받고 나올 때 땅을 가리킨 것이 바로 그 손가락이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위대한 손가락’은 어찌어찌해서 플로렌스의 과학사 박물관에 기증됐는데 최근 일반에게도 공개가 됐다. 또 세월이 변하여 1992년 로마 교황청은 그에 대한 재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표했다.
갈릴레오의 ‘손가락’에 앞서 르네상스의 찬란한 불을 밝힌 또 하나의 ‘손가락’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1508년 로마 바티칸의 시스틴 대성당 천장에 그린 ‘아담의 천지창조’.
하느님이 떠 있는 몸짓으로 손가락 끝을 통해 아담의 손 끝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이다. 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뜨거운 영감을 주고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왜 미켈란젤로는 손가락을 통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으로 천지창조를 표현했을까? 그 천장의 웅대한 그림을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에 짜릿한 전율이 전해오는 것만 같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손가락질 받는 정치인이 되지 않겠습니다.’하고 각오를 밝혔다. 나는 그에게 ‘손가락질 받는 정치인’이 되지 않으려면 19대 국회 같이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최악의 국회’라고 누구나 말하는 19대 국회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손가락질’ 받는 것이 정치인뿐이 아니다. 경상남도의 어떤 시장은 유럽 출장 때 부인의 경비까지 공금에서 지불했다가 말썽이 됐다.
총알이 뻥뻥 뚫리는 옷을 방탄복이라고 납품케 한 군장교, 대학 운영비를 마음대로 횡령하다 구속된 대학총장, 선생님들이 저지르는 성추문, 세속화 되고 있는 종교계, 수십억의 변호사 수임료 등 최근 충격을 주고 있는 법조계의 정운호 구명 로비 의혹…. 도대체 이 나라 어디에, 그리고 누가 감히 ‘손가락질’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 지도자, 공직자 모두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라. 갈릴레오의 땅을 가리키는 신념에 찬 손가락은 못되더라도 부끄러운 손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