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탐욕의 포로가 된 ‘배신자’들

평소 가깝게 지내는 모 기업 CEO가 어느 날 한 모임에 직접 차를 운전하고 나타났다. 어떻게 운전기사 없이 왔느냐고 했더니 이제 직접 차를 몰기로 했다는 답변이었다.

 

그 무렵 몽고간장의 회장이 운전기사에 대한 막말 파동으로 사회문제가 되는 등 운전기사의 잇단 고발사건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요즘은 차안에 블랙박스가 있어 차 속의 대화까지 다 녹음되는 판에 세금문제, 관청의 인허가 문제 등 수시로 전화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모두 녹음되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다가 어느날 운전기사가 감정이 틀어지게 되면 그것을 빼어 나쁜 것만 편집해 고발하면 망신당하는 것이 뻔한데 아예 불편해도 기사 없이 직접 운전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렇게도 우리 사회가 불신의 늪에 빠져 버렸는가.

하긴 2012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밀항 도피사건도 그의 가장 측근 운전기사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객 돈 200억원을 불법 인출한 김회장은 그해 5월3일 저녁, 경기도의 한 어항에서 중국으로 밀항하기 직전 해경에 의해 체포됐다.

또 요즘은 잘 나가던 스타급 인사 두 사람이 하루 아침에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 사건으로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첫째는 가수 조영남씨의 미술작품 대작 파문이다. 그의 많은 그림이 송모(61세)씨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인데 두 사람은 형님, 아우 할 정도로 가까운 처지. 그런데 송씨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지 돈을 받고 파는 것은 몰랐다는 보도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지면서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만약 연예가를 주름잡고 있는 조영남씨가 시골에서 그림만 그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송씨에게 마음을 열고 인격적 소통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확대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끝없이 추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은 홍만표 변호사다.

“홍만표 반만 하라.” 지금 법조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네이처 리퍼블릭 정운호 게이트’의 중심인물이 된 홍만표변호사가 검찰에서 명성을 날릴 때 검찰 내부에서 흔히 나왔다는 말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수사를 비롯 대형사건들을 다루면서 그는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수사를 지휘하던 서슬 퍼렇던 사무실에서 지난주 피의자의 신분으로 후배 검사들 앞에 17시간이나 앉아 조사를 받아야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100채가 넘는 오피스텔 등 100억원대의 부동산, 천문학적인 사건 수임료…. 바로 탐욕이다. 그 탐욕의 그늘 밑에는 고교 후배인 법조브로커가 있고, 사건의 교통정리를 하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있다.

 

‘법조비리’의 원조격인 1999년의 대전 법조비리 사건도 그렇다. 검사출신 L모 변호사로부터 사건 수임 명목으로 법조인, 경찰관 등 300명이 금품을 받은 사건인데 결국 판사 2명, 검사 6명이 옷을 벗는 불명예를 안았다. 바로 L변호사의 사무장이 비밀 장부를 언론에 폭로하면서 빚어진 사건이었던 것. 이들 역시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여 일이 터졌다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원망하랴. 배신한 것은 운전기사가 아니라 회장님의 갑질-그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회장님이고, 연예인이며, 공의(公義)를 짓밟고 ‘전관예우’의 꽃가마를 탄 변호사가 아닐까? 그 탐욕의 포로가 된 사람들 말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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