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이봐, 해봤어?”

중국의 부자들도 유럽이나 미국의 부자들 못지않게 고급 아파트, 호화 별장 등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부자 소리를 듣는 자산 3천만 위안 이상의 부자가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자가 많기로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이들은 캐나다 밴쿠버, 우리나라 제주도 등의 부동산을 마구 사들이는가 하면 유명 기업들을 입맛대로 삼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송모 전의원이 중국을 가리켜 ‘11억 거지…’하고 말한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중국의 최고 부자로 알려진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중국이 낳은 걸출한 부호다. 아직 50대의 젊은 나이에 중국 GDP의 2%에 이르는 자산을 움직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2천년에 불과 열여덟 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그의 전자상거래는 이제 2만5천명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 경제를 G-2로 이끄는 기업가들이 마윈 말고도 상당한 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금 역동적으로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지난해 10월 전ㆍ현직 홍보임원들의 모임인 한국 CCO클럽은 광복 후 70년에 걸쳐 기업가 정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기업인의 어록을 설문조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재계 인사사이트’ 독자 278명이 대상이었는데 그 결과 정주영회장의 “이봐, 해봤어?”가 1위로 뽑혔다. 

2위는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말. 3위는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인데 대우가 세계를 무대로 한창 뻗어나갈 때의 어록이다. 무엇보다 이들 어록 가운데 가장 설득력있게 지도자가 던질 수 있는 것은 “이봐, 해봤어?”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정주영회장이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1915년에 태어난 그는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몸소 겪으며 싸워 이겨낸 인물. 무엇보다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1998년,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가난하여 집을 뛰쳐나온 정주영의 소년 시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군을 일군 재벌 총수에 이르기까지 ‘소떼 앞에 선 정주영’은 참 멋진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아랫사람이 어떤 프로젝트를 가지고 정회장 앞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이봐, 해봤어?”하고 툭 던질 수 있었다.

 

누군가 정주영회장이 태어난 1910년대는 우리나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삼성그룹을 창업하여 대한민국의 반도체 세계를 연 이병철회장이 1910년 2월에 태어났고, 고 박정희대통령이 1917년 11월에 태어났으며 1915년 정주영회장 등 우리나라 산업화 주역 3인이 모두 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어떤가? 롯데그룹의 형제싸움과 같은 재산싸움이나 하고, 8ㆍ15 광복절에 사면 받을 기업인이 누구일까 목을 빼며, 끊임없이 사정당국의 리스트에 기업인이 오를 뿐인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봐, 해봤어?”하며 이 시대를 준비하는 기업인은 없는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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