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李도령의 공권력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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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은퇴해서 TV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우리나라와 온두라스 경기를 앞두고 방송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스타급 선수들이 가장 많이 받는 유혹이 있는데, 그것은 경기 중에 공을 몰고 갈 때 자신에게 초점이 모아진 TV 카메라와 관중의 함성을 다른 선수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슈팅으로 이끌어 골을 성공시키면 그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유혹은 흔히 실패로 끝나고, 그 실패는 팀 전체에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짜 팀에 충실한 선수는 자기가 잡은 공을 빠르게 효과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패스하여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것이 중요한 ‘스포츠 정신’ 즉, ‘스포츠의 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스포츠뿐 아니라 인류가 발전시켜 온 모든 직업에는 혼이 있다. 기술인의 장인정신, 군인의 목숨 던져 불태우는 호국정신, 슈바이처 같은 의사의 인술, 묵묵히 사도(師道)의 길을 걷는 선생님들…. 이런 혼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만큼 우리들 사회에 신뢰와 인간의 공동선, 그 가치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아직도 절실한 것은 공직자들의 혼이다. ‘전기 누진세 폭탄’에 대한 여론이 그렇게 들끓었는데도 도대체 우리 공무원들은 귀를 막고 있다가 대통령의 한 말씀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여 국민의 원성을 샀고, 검찰의 고위 간부는 권력의 칼을 개인적 치부로 활용하다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조직에 안겨 주었다. 이런 것이 바로 ‘공직자에게 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다.

 

그 시퍼런 군사정권 시대 용감한(?) 어느 장관이 ‘대학교육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입각했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6개월이 지나니까 그 역시 관료 조직 문화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던 것.

 

2014년 11월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삼성그룹 출신의 이근면씨가 임명되어 정부 인사혁신을 주도해 나갔다. 삼성의 인사 전문가여서 기대도 컸다. 그러나 결국 그는 19개월을 뛰다가 물러나고 말았다. 주위에서는 신병을 이유로 그의 사임을 말하지만 ‘공무원들의 반발’이 큰 이유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특히 공직 개방 확대, 순환보직 관행 축소 같은 그의 혁신안은 공무원 사회에서는 예민한 문제였다.

 

‘춘향전’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고전문학이다. 그러나 여기에 짚어볼 문제도 있다.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애인 춘향이를 남원군수 변학도의 손에서 구출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능청을 떨며 춘향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친다. 멋진 장면이지만 이건 분명 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렇듯 고려시대부터 시행된 과거제도는 개천에서 용이 나고, 흙수저에게 꿈을 주는, 훌륭한 공직 진출의 길이었지만 점점 ‘공직 정신’이 퇴색하고 개인의 사적 영달로 치부되면서 많은 역기능을 가져왔다.

 

지난 여름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진경준 검사장 사건도 이도령의 춘향이 구하기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는 넥슨 김정주 회장과의 스캔들 외에 자신이 내사하던 항공사에 압력을 넣어 처남이 운영하는 청소용역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기도 했다. 이도령이 춘향이를 위해 공권력을 행사한 것처럼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권력을 개인의 이권을 위해 행사한 것.

 

이렇듯 우리 공직자들에게는 주어진 직위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들어 ‘공무원에게 영혼이 있는가’라는 질책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런 세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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