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전지적 학부모 시점

초등생 학부모 시절에는 대학 입시에 관심이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정도가 궁금했고 대입은 까마득한 미래였다. 중학생 학부모가 되고 보니 누구는 외고를 준비한다더라, 누구는 자사고를 간다더라 하는 대화에 ‘도대체 어떤 학생이길래’ 하는 부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학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고, 늦었구나’ 싶은 생각이 입학하자마자 밀려왔다. 다급한 마음에 수학학원을 찾아갔는데 선행학습이 돼 있지 않다며 받아주지 않았고 국어학원도 준비가 안됐다는 한숨 섞인 평가를 마주하고서야 대입의 무게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큰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뒤이어 둘째가 수능을 봤다. 두 번째인데 새삼스러울 게 있을까 싶지만 다시 다가온 현실은 처음인 양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은 국어, 영어, 수학, 과탐, 사탐 등 교과목을 공부하지만 자녀의 합격이 절실한 학부모는 입학전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6장의 수시원서와 3장의 정시원서를 내면서 대학마다 다른 입학전형에 당황스러울 수 있다. 2025학년도 수능에는 2004년 이래 가장 많은 18만1천891명의 N수생을 포함해 52만2천670명이 응시했다. 수능이 끝난 지 두 달여가 훌쩍 지났지만 정시 응시생들은 여전히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달 들어 정시 합격자가 대학별로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름과 수험번호, 주민번호를 차례로 넣고 조회를 눌렀을 때 ‘합격’이 뜰까, ‘불합격’이 뜰까. 그래도 마지막 남은 정신줄을 부여잡고 행운을 빌어 본다.

[지지대] 입춘부터 맹추위?

이럴 때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공교롭다. 2월3일은 봄이 온다는 입춘인데 맹추위가 엄습해서다. 기상당국은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 오면서 이번 주 내내 기온이 평년보다 5도 이상 낮은 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0도에서 영상 2도 사이이고 낮 최고 기온은 영하 4도에서 영상 6도 사이다. 아침엔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고 낮에는 평년보다 꽤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4∼6일은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영하 5도, 낮 기온은 영하 5도∼영상 5도로 예상된다. 4∼6일에는 최고 기온도 영하인 지역이 서울을 비롯해 많겠다. 추위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캄차카반도에 기압능이 자리해 우리나라 북쪽 대기 상층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흐르는 제트기류를 가로막는 점이다. 직진하던 제트기류가 기압능에 막혀 남쪽으로 더 굽이쳐 흐르게 되면서 고위도 찬 공기가 한반도 중위도로 더 내려온다. 대기 하층에선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서쪽에 고기압, 동쪽에 저기압이 자리하는 서고동저 기압계가 형성돼 북서풍이 불어 찬 바람을 일으킨다. 겨울철 북쪽에서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면 지상에 강풍이 불어온다. 건조한 공기는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어서다. 일각에선 입춘이 꼭 따뜻하지만 않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절기는 2천400여년 전 중국 황허강 부근 화북지방 기후를 기준으로 설정돼 우리의 기후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다. 이날이 봄 날씨인 적은 많지 않았다.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52년간 서울 입춘 평균 기온을 보면 영하인 적이 35번으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최고 기온이 영하, 즉 종일 영하에 머물렀던 적도 12차례다. 가장 따뜻했던 입춘은 지난해였다. 평균 기온이 영상 7.3도,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은 각각 영상 12.2도, 영상 3.7도였다. 설 연휴를 지내고 맞이하는 첫 절기가 을씨년스럽다. 하긴 그 매서움이 요즘의 흐트러진 정국에 비할까.

[지지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시골 외과의사 토마시도 그랬다.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 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테레자나 화가이자 토마시의 불륜 상대인 사비나, 사비나의 연인 프란츠 등도 예외가 없었다. 전처와의 이혼 이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20여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얼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가 썼다. 청년 시절 읽었던 서양 소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들은 서로를 아꼈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건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방식 혹은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쿤데라가 별세 1년 반 만에 그의 조국에 묻힌다. 외신에 따르면 그의 유해가 사망 1년6개월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인 브르노로 옮겨졌다. 브르노 시장인 마르케타 반코바는 쿤데라의 유언을 집행하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로부터 유해를 넘겨 받았다. 그리고 “브르노의 영광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브르노시 당국은 작가의 유해를 모라비아 국립도서관에 임시 보관하다 중앙묘지에 안치할 예정이다. 작가는 공산주의 체제인 조국에서 프라하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1968년 일어난 민주화운동인 ‘프라하의 봄’으로 탄압받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을 박탈당했다. 2019년 국적을 찾았다. 민주화 이후 고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망명 후 줄곧 프랑스 시민으로 살았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됐지만 2023년 7월 파리에서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작가는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참담할 수 있는지를 고발했다. 2025년의 현실은 이 같은 쓰라림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지대] 위기의 민생경제, 지방정부 역할 중요

“청년 창업자가 실패하면 사회가 다시 기회를 주고 용기를 주면 되지만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진다.” 침체된 경제 탓에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소상공인의 절규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인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결국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25년 새해가 밝았고 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가 다가왔지만 소상공인의 곡소리는 여전하다. 높은 물가와 가벼워진 지갑 탓에 명절이라고 소비자들이 무턱대고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관련 주요 지표도 절망적이다. 최근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조사해 발표한 소상공인 관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경기도내 소상공인의 1년 생존율은 80% 초반대로 10곳 중 두 곳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했다. 또 2025년 가계 소비 지출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2025년에는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결국 올해 소상공인의 매출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혼란에 빠진 중앙정부에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멈춰선 중앙정부 대신 지방정부가 소상공인의 희망이 돼야 한다. 최근 적극적으로 민생경제 살리기에 나선 수원시가 대표적인 예다. 수원시는 이달 초 지역화폐의 인센티브를 20%로 확대해 시민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설 명절을 앞둔 24일 2차 지역화폐 인센티브 20% 지급 이벤트를 실시한다. 지난해에는 관내 모든 공영주차장의 1시간 이용요금 무료화를 추진, 공영주차장 이용객을 크게 늘렸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가기 위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는 없다. 결국 공영주차장 1시간 무료 혜택을 보는 사람은 전통시장 및 소규모 점포를 이용하는 시민이고 이는 소상공인 매출에도 기여한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수원시같이 소상공인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지방정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지지대] 베트남에 K-9 자주포 수출

한때는 우리와 총부리를 겨눴던 국가다. 숱한 젊은이가 이 나라와의 전쟁에서 숨졌다. 그런 나라에 우리의 무기가 수출된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베트남 얘기다. K–9 자주포 20문의 베트남 수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4천300억원 규모다. 공산권 국가에 대한 첫 방산 수출이다. 이 무기를 한번 들여다보자. 포탄의 발사속도, 반응성, 생존성, 기동성 등이 최대한 발휘된다. 탄 취급장치와 뇌관추출기구 등도 자동화됐다. 격발기구가 유압식으로 작동된다. 급속발사 때는 15초 이내에 초탄 3발을 발사할 수 있다. 3분간 분당 6~8발, 1시간 동안 분당 2~3발 사격이 가능하다. 자주포로는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련 업계와 당국 등에 따르면 한국과 베트남은 K–9 자주포 베트남 수출을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베트남이 이 무기를 도입하면 한국을 포함해 세계 11번째 ‘K–9 유저 클럽’ 국가가 된다.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점유하는 베스트셀러인 K–9이 동남아에 처음 진출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간 방위산업계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와중에도 암묵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나 군부독재정권 등과는 거리를 뒀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등 국제정치 지형이 변화하는 가운데 베트남 측이 적극적으로 K–9을 검토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 나라는 최근 스프래틀리군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를 놓고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였다. 하지만 구식 무기체계로는 중국에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한국산 무기체계 도입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트남이 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의 무기체계와 호환이 가능한 한국산 무기를 도입한다면 이는 베트남이 ‘반중’, ‘탈중’ 노선으로 간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부대에서 복무했던 필자로선 만감이 교차한다.

[지지대] 당신의 다짐은 무탈하신가

지난해 말 운동을 가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던 중 허리에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척추병원에 실려가 입원까지 하게 됐다. 의사의 진단은 한 달간 꾸준한 치료와 금주. 약 복용 중 음주 시 간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고 염증이 심화되기 때문이란다. 마침 새해 직전에 발생한 일이라 본의 아니게 금주가 새해 다짐이 돼 버렸다. 처음부터 무리라고 생각하면서 졸속으로 계획한 금주의 다짐은 한 달은커녕 허리가 적당히 회복된 2주일 뒤에 무너져 버렸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20여일 지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야심차게 세웠던 목표와 다짐들에 슬슬 균열이 가며 공수표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부 다짐은 단 하루도 실천하지 못했을 수도. 과거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공동 조사한 결과 새해 목표를 ‘한 달도 못 지켰다’는 답변이 26%를 차지했다. ‘한 달 이상 다짐을 유지했다’는 답변은 45%, ‘1년 가까이 꾸준히 지켰다’는 답변은 29%가량으로 집계됐다. 매년 반복되는 새해의 야심찬 다짐, 얼마 안 돼 느끼는 좌절과 다음 해를 기약하는 동일한 반복. 중도 포기 후 ‘내년에는 반드시’라는 자기최면을 걸고 다가올 1월1일만을 기다리는 이 지긋지긋한 패턴을 이어갈 필요가 있나. 포기가 잦다면 매순간 의미를 부여해 다짐을 이어가 보면 어떨까.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움.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하라는 의미다. 다가올 매일매일이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고 인생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최초로 맞이하는 날이다. 다짐은 새해에만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의 순간마다 다양한 목표를 계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굳이 새해에 한해서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지지대] 제2의 조선물산장려운동

엄동설한이었다. 말총모자와 무명 두루마기 등으로 온몸을 덮었다. 이 같은 차림으로 전국을 누비며 음식이나 일용품 등의 토산품 애용을 외쳤다. 조선물산장려회의 태동이었다. 장소는 평양이었다. 좀 더 들여다보자. 조만식·김동원·오윤선·김보애 선생 등 당시의 선각자들이 주축이었다. 70명이 뜻을 모았다. 민족자본을 육성하고 경제 자립을 도모하자는 게 취지였다. 그래야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남녀노소, 빈부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많은 백성이 호응했고 실천에 나섰다. 1907년 한반도를 뒤덮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이어가자는 범민족적 경제 살리기 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국산품 장려, 소비절약, 금연·금주 등의 운동을 벌여 전국적으로 호응을 얻었다. 이후 유진태·이종린·백관수 선생 등 20여 단체 대표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서울이었다.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이후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조선물산장려회가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산됐다. 1923년 1월20일이었다. 이후 집행기관으로 이사회를 두고 그 아래 경리부·조사부·선전부가 설치됐다. 회의 실무를 계획·집행하는 상무이사와 이사장에는 유성준 선생이 선출됐다. 본부는 서울 견지동에 두고 각 지방에 분회가 설치됐다. 강연회 개최, 가두시위 등을 통해 백성들에게 외래품 배척과 경제적 자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일대 민족운동을 펼쳤다. 그후 활동 방향을 전환했다. 소비조합 조직, 조선물산진열관 설립, 조선물산품평회 등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다. 기관지도 발행됐다. ‘조선물산장려회보’와 ‘실생활’ 등이 대표적이다. 조만식·명제세·김성준 선생이 10여년을 이끌었다. 1934년부터 재정난을 겪으면서 일제의 탄압으로 1940년 강제로 해산됐다. 완결되지 못한 경제 분야 독립운동이었다.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제2의 조선물산장려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지대] 블랙아이스와 불확실성

적당히 추울 때 발생하는 ‘도로 위의 암살자’다. 블랙아이스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어떻게 생길까. 기존에 내려 쌓인 눈이 녹으며 지표면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서다. 기온이 영상이었다가 밤이나 새벽에 영하로 떨어질 때도 빈발한다. 노면 온도가 지상 도로보다 낮은 교량, 햇볕이 잘 들지 않는 터널 출입구 등지에서 자주 발생한다. 제설을 위해 염화칼슘이 뿌려진 도로도 가능성이 높다. 운전자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에서 블랙아이스에 의한 사고가 잇따라 발생(본보 15일자 8면)했다. 밤 사이 내린 눈과 한파 등으로 도로가 얼어붙으면서다. 지난 14일 오전 5시15분께 고양 일산서구 자유로 구산IC 파주 방향 인근에서 44중 추돌 사고가 발생해 16t 화물차 운전자 1명이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같은 날 오전 5시50분께 고양 덕양구 서울문산고속도로 문산 방향 고양분기점 인근에서도 43중 추돌 사고로 한 명이 중상을 입고 12명이 경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같은 날 오전 6시40분께 서울문산고속도로 고양휴게소 후방인 흥도IC 인근에서 차량 18대가 연쇄 충돌했다. 블랙아이스에 의한 사고는 다른 사고보다 훨씬 위험하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새 도로 결빙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는 4천609건이며 사상자는 7천835명으로 집계됐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최근 5년간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블랙아이스 관련 교통사고 사망자(170명)가 적설로 인한 사고 사망자(46명)보다 3.7배 많았다.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고 급제동이나 방향 전환 시 차량 제어가 힘들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터널 출입구, 고가도로, 그늘진 커브길 등 결빙 위험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브레이크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긴 요즘 정국에는 불확실성이라는, 훨씬 더 무서운 블랙아이스가 곳곳에 숨어 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제들이다.

[지지대] 을사년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다. 지난 연말 한 해를 평안히 넘기는가 싶었는데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온 국민을 숨죽이게 했다. 이어진 대통령 탄핵 정국은 새로운 해를 맞아서도 혼란을 부르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 체포를 두고 온 국민이 한숨을 쉬고 있다. 당장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이하고 있고, 세계는 더 세진 미국의 우선주의에 따른 관세 정책에 대비하려 숨 가쁘다. 21세기 글로벌 대항해 시대에서 선장 없는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선원들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1905년 을사년,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가해진 압박과 조정 대신에 대한 회유로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을 맺었다.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본군을 동원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으로, 불평등 조약이다.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박제순,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됐다. 고종이 거부하고 내각의 반대도 있었지만 을사오적의 찬성으로 나라는 혼란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백성은 나라를 잃게 됐다.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에서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은 일본의 명배우 릴리 프랭키가 내뱉은 대사가 관객들의 마음을 강하게 때렸다. 온·오프라인상 공감의 글과 말이 이어졌다. 대사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 시국을 관통하는 말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라고 했다. 이런 ‘이등이’를 안중근 의사는 “까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저격했다. 대한민국 현 시국에서 과연 영웅은 누구일지 되뇌게 하는 장면이다. 나라가 두 동강 났다. 하지만 2025년 현재 그 두 동강 난 나라가 다시 두 쪽이 난 모습이다. 서로가 적이다. 이 나라가 상대할 진짜 적은 누구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지지대] “훈춘사건을 아십니까”

느닷없이 총을 든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명분은 마적 토벌이었다. 그런데 끔찍했다. 처참한 학살도 이어졌다. 끊임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였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이상한 점이 있다. 습격을 감행한 병력이 일본인들만 골라 무차별 살해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영사관에서 일본 경찰 간부의 가족 등이 이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전대미문의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건이 발생한 건 중국 만주의 한복판인 훈춘이었다.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동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다.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에선 조선인이 많이 건너와 상주하던 곳이다. 주민의 80%가 조선인이었다. 3·1독립운동 이후로는 더 많은 조선인이 이주했다. 그래서 독립군도 결성되고 항일 무장투쟁도 펼쳐졌다. 총독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던 곳이다. 그러자 일제는 이들을 없애기 위해 병력을 투입할 구실을 꼼꼼하게 찾기 시작했다. 아주 흉악한 모략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 중인 중국인 마적 수령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해 마적단 400여명이 훈춘을 공격하도록 종용했다. 마적들은 최우선으로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그리고 시부야(渋谷) 경부의 가족 등을 포함해 일본인 9명을 살해했다. 그것도 부녀자들을 말이다. 일제는 이 사건을 빌미로 마적 토벌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나남사단(羅南師團)을 비롯한 대규모 군대를 훈춘으로 출동시켰다. 이어 조선인과 독립운동가를 무차별 사살했다. 한민회와 독립단조직 등도 철저하게 파괴했다. 독립군의 활동 기반으로 여겨지던 조선인 학살에 역점을 뒀다. 훈춘에서 조선인 242명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을 시발로 일본군의 만행은 그치지 않았다. 105년 전인 1920년 이맘때 발생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또다시 아픔을 겪는다는 교훈은 그래서 오늘도 유효하다.

[지지대] 군(軍) 본연의 임무

군(軍)에겐 오래된 임무가 있다. 물리력으로 국가를 방어하는 일이다. 군은 합법적으로 물리력, 폭력을 쓴다. 예전에는 칼, 창, 화살 등 화약을 쓰지 않는 무기, 즉 냉병기(冷兵器)를 썼다면 현대는 화약을 쓰는 화기(火器)를 사용한다. 화기는 냉병기와 비교도 안될 만큼의 강력한 살상력을 지녔다. 대한민국 군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화력을 지녔다. 세계에서 보기 힘든 휴전 상황이 수십년간 이어지다 보니 군비를 축소하던 서방과 달리 한반도의 남북은 군비경쟁을 계속해 왔다. 이런 경쟁이 K-방산을 만들고 군을 강하게 무장시켰다. 군은 정부기관 중 합법적으로 물리력, 화력, 폭력 등 힘을 쓸 수 있는 집단이다. 군의 물리적 힘이 세다 보니 군은 국방부에 소속돼 민간의 통제를 받는다. 지상 최강의 힘을 지닌 조직은 문민 통제 속에서 국가방어라는 본연의 임무를 매일 수행하고 있다. 이런 바탕이 있어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 달 동안 과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고 있다. 군통수권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가 몇 시간 만에 이를 해제하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용산에서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참사가 또 일어났다. 이 모든 일이 한 달 동안에 벌어졌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제대로 수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의 성실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일을 정하는 동안 군은 충실하게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바란다.

[지지대] 역대급 독감 확산세

이 정도면 가히 역대급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증하는 독감 환자가 딱 그렇다. 밤마다 한 집 건너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확산세가 무서울 정도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첫째 주 표본감시 의료기관을 찾은 외래환자 1천명당 인플루엔자 증상을 보인 의심환자 수는 99.8명으로 1주 전의 73.9명에서 1.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난주에도 2016년(86.2명)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그보다 환자가 더 증가한 셈이다. 2016년을 기점으로 질병관리청 호흡기감염병 표본감시체계에 참여한 기관이 100곳 미만에서 200곳 이상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최근 독감 유행은 현재와 같은 수준의 감시체계 구축 이후 최고 수준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행 속도도 빠르다. 이번 절기 유행기준(1천명당 8.6명)에 도달해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게 불과 20일 전인 지난해 12월20일이었다. 그런데 그 직전인 지난해 49주 차 7.3명에서 4주 만에 13.7배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든 연령대에서 환자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13~18세에서 1천명당 177.4명, 7~12세 161.6명 등으로 아동·청소년층이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독감으로 입원하는 환자도 늘어 지난해 연초 795명(표본 의료기관 기준)에서 올해 1천452명으로 1.8배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독감이 유행하지 않으면서 항체가 없는 사람이 지역사회에 많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질병관리청의 분석이다. 코로나19가 잦아들고 2022년 9월부터 22개월간 독감이 유행했는데도 그간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연말까지 기온이 예년보다 높다가 최근 갑자기 떨어진 데다 인플루엔자 세부 유형 중 A(H1N1), A(H3N2)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 중인 점도 환자 급증 요인으로 분석됐다. 그러잖아도 가뜩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이 독감을 키운 게 아닌지 걱정된다. 단순한 기우일까.

[지지대] 여전히 가파른 물가 오름세

김밥, 짜장면, 비빔밥.... 이는 서민들이 큰 부담 없이 먹고 즐길 수 있어 가장 많이 찾는 외식 메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 식당 문을 여는 발길이 주춤거리고 있다. 알게 모르게 가격이 뛰어서다. 새해가 밝았는데도 가파른 오름세는 여전하다. 물가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민들이 좋아하는 음식값이 평균 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1월 소비자 선호 8개 외식 메뉴의 수도권 기준 평균 가격 상승률은 4.0%였다. 메뉴별로는 김밥이 2023년 1월 3천323원에서 지난해 11월 3천500원으로 5.3%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짜장면은 7천69원에서 7천423원, 비빔밥은 1만654원에서 1만1천192원으로 5.0% 각각 올랐다. 가격 상승률은 냉면의 경우 1만1천385원에서 1만1천923원으로 4.7%, 칼국수는 9천38원에서 9천385원으로 3.8%, 삼겹살은 200g을 기준으로1만9천429원에서 2만83원으로 3.4%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삼계탕은 1만6천846원에서 1만7천629원으로 2.5% 올랐다. 김치찌개백반은 8천원에서 8천192원으로 2.4% 뛰면서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덜했다. 상승폭도 가팔랐다. 삼겹살(200g 기준)은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첫 2만원 시대를 열었다. 삼계탕도 지난해 7월 1만7천원 문턱을 넘었다. 이 같은 상승 기조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수입 물가가 불안해진 점도 이 같은 오름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때 1천440원 선을 넘은 원-달러 환율은 1천430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해외에서 들여오는 각종 식재료값이 오르면서 시차를 두고 외식 물가를 더욱 힘차게 밀어올릴 수 있다. 정말 큰일이다.

[지지대] 약속의 무게

얼마 전 ‘약속’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맺을 약(約)에 약속할 속(束)을 쓰고, ‘남과 앞으로의 무엇인가를 그렇게 하기로 정해둔 내용’을 뜻하는 말이라고 나왔다. 이 약속이란 단어, 참 신기한 습성을 가졌다. 말로 한 약속은 ‘언약’이라 불리고, 맹세하며 약속하는 일에는 혼인이나 사랑 같은 소위 달달한 단어가 따라 붙어 ‘서약’이라 불린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 등 쌍방이 일정한 규정을 정하고 이를 지키기로 하는 일에는 법률적 효력이 생겨 ‘계약’이 된다. 이 외에도 상약, 면약, 기약, 가약 등 다양한 약속을 이르는 단어들이 존재 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약속 중 하나인 ‘공약’은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하여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로 정치인이 하는 약속으로 여겨지다 보니 이상하리만큼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 붙어 ‘공약(空約)’으로 느껴지곤 한다. 지난해 12월13일 경기도의회에서 민주당 소속 한 도의원이 사직서를 냈다.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대통령 탄핵 표결 투표함마저 열지 못한 뒤 화력을 모으려던 민주당의 의원총회장에서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신상 발언을 불허해 막았다. 벌써 여러번 막혔다’고 했다. 지역구 의원의 갑작스런 사직. ‘비례도 아닌 지역구 의원 아니냐’고 하자 그제야 ‘주민들이 이런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처음으로 주민을 입에 담았다. 그런 그가 다시 입장을 냈다. 사직서는 ‘비상계엄을 사회적 혼란 정도로 표현한 경기도의회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고…(중략)신상발언 불허에 대한 좌절 표현’이었다며 이를 철회했다고 했다. 오해가 풀려서라고 했다. 비상계엄 당시 도의회 민주당 의원들은 즉시 국회로 달려갔고, 의장은 늦은밤 의회로 와 의장실을 지키며 도지사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사회적 혼란 정도로 여긴 이는 없다. 혹여나 이를 사회적 혼란이라 여기거나 그리 표현했다 한들 그것이 진정 주민과의 약속을 내던져도 될 사유가 될까. 주민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그 전에 대화를 나눌 순 없었을까. 그의 입장문 말미 이런 약속이 담겼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시민들의 선택을 호소하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이번에는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정치인의 약속을 약속으로 보지 않는 상황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지지대] 구석에서 꺼낸 ‘홍범 14조’

자주 독립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갈수록 열강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대였다. 지방관제 개혁과 지방관리 권한 제한 등도 시급한 어젠다였다. 신분제도 폐지와 평등사회 구현도 빼놓을 수 없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현실이 그랬다. 이 와중에 등장한 게 ‘홍범 14조’였다. 교과서 한구석에서 끄집어낸 역사의 한줄기다. 고종이 선포했다. 앞서 영의정 김홍집은 갑오개혁을 추진했다. 바로 1년 전이었다. 이후 나온 법률이었다. 정치제도 근대화와 독립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제정된 국가 기본법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개혁 방향이 명확하게 제시됐다.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정치·사회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주력했다. 당시로 돌아가 보자.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다. 외부적으로는 청나라와 일본의 세력 다툼 속에서 국가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조선이 국가의 존립을 위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선포했다. 정치개혁 측면에선 왕권과 신권 조화를 추구하며 입헌군주제 기초가 마련됐다. 기존의 전제적 왕권에서 탈피해 법에 근거한 통치가 지향됐다. 관료제 개선을 통해 부패를 근절하고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구축 의지도 담겼다. 경제개혁 측면에선 조세제도 개혁과 재정의 투명성이 강조됐다. 신분제도 폐지와 평등사회 구현 등도 제시됐다. 모든 국민이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한 권리를 갖추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도 정리됐다. 전통적인 신분제를 극복하고 근대적 시민사회로의 전환도 모색했다. 고종은 세자와 대원군, 종친 및 백관을 거느리고 종묘로 가 독립의 서고문(誓告文)을 알리고 선포했다. 근대 최초로 순한글체와 순한문체 및 국한문 혼용체 등 세 가지로 작성됐다. ‘열 네 가지의 큰 법’이라는 뜻을 지닌 법률은 그렇게 이 세상으로 나왔다. 1895년 1월8일이었다.

[지지대] 인천 정치인의 입에 쏠린 눈

기자에게 유명 정치인의 발언은 매우 중요하다. 소위 좋은 기삿거리다. 가십에 불과해 잠깐 이슈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그들의 발언이 나온 동기나 대상, 그리고 함의 등까지 해석할 수 있기에 의미 있는 소재다. 게다가 이 유명 정치인이 만약 중앙정치에서 차기 대선 후보 등으로 유력하다면 그의 발언은 언제 국가 정책 등으로 변해 시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동안 인천은 중앙정치의 변두리에 머물러 왔다. 인구 300만명의 대도시인데도 국회의원은 고작 14명에 불과하고 광역단체장인 시장 1명, 기초단체장인 군수·구청장 10명까지 모두 더해도 25명에 그친다. 이들 모두 중앙정치에서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니, 목소리를 내도 기자들이 유명 또는 유력 정치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중요한 발언으로 취급 받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천지역 정치인들의 발언이 전국 뉴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에서 많은 미디어가 인천 국회의원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유명하고 유력한 정치인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은 2명뿐이지만 1명은 5선의 중진 의원인 데다 또 다른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으면서 중앙정치에 발을 깊게 담그고 있다. 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까지 있다. 국회의원의 꽃이라 불리는 3선도 무려 4명이나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의 발언 대부분이 여야의 정치 싸움 등 중앙정치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눈 씻고 찾아봐도 인천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 분명 인천시민이 인천을 위해 뽑은 일꾼인데 국회에 들어만 가면 인천은 후순위로 밀린다. 그들의 입에서 싸움을 위한 발언보다는 인천의 발전을 위한 발언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지지대] 삼합리 이야기

말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어깨를 마주치며 살 수 있을까. 수도권에 그런 곳이 있다. 경기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三合里)가 그렇다. 이 마을 이름의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세 개가 합쳐진다는 뜻이다. 지리적으로는 마을 세 곳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전국적으로 그런 곳이 흔하지 않아서다. 이 마을 앞으로 강이 흐른다. 주민들은 이 강을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여주의 가람이란 의미에서다. 남한강의 지류다. 이 강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첫 부분에도 나온다. 이 강을 끼고 경기도와 강원도, 충북 등이 만난다. 아주 오래전부터다. 강 건너편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다. 그 남쪽은 충북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다. 지리적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이곳에선 남한강과 그 지류인 섬강, 청미천 등이 합쳐진다. 오갑산 능선의 꼬리 부분에 위치한다. 자연 마을로는 단진개, 중간말, 대오 등이 있다. 단진개는 장마가 지나면 강의 하상이 드러나 붉은색을 띠므로 단진개(丹津)라고도 부른다. 청미천 맨 끝 하구에 위치하므로 단진(斷津)개라고 불렀다. 중간말은 단진개와 오리골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오는 깊은 오지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여강을 놓고 보면 여주에선 남녘이고, 충주에선 북녘이며, 원주에선 서녘이다. 애주가들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자정 무렵이면 다리 하나 건너 술자리를 이어 갔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충북에만 통행금지가 없어서다. 이들 세곳의 주민들은 지금도 봄과 가을이면 돌아가며 운동회를 열어 화합을 다지고 있다. 이들은 강원도 주민도 아니고, 충청도 주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기도 주민도 아니다. 남한강 주변 이웃일 뿐이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졌던 사회·정치적 상황들이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삼합리 주민들의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자. 그게 상생이다.

[지지대] 신년사 방송 배경 왜 바꿨나

빼곡하게 들어찬 서적, 책장, 사진, 필기도구.... 지구촌 어느 국가 지도자의 신년사 방송 배경이다. 적어도 지난해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올해는 확 달라졌다. 그것도 확연하게 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얘기다. 2025년 신년사 방송에서다. 우선 책장과 가족사진 등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성홍기로 대표되는 국기와 만리장성이 떡하니 들어섰다. 집권 이후 매번 단골로 선보였던 집무실 풍경이 확 달라진 셈이다. 시 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3년 이후 집무실에서 책장을 배경으로 짙은 색 나무 책상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뒤에 걸린 국기는 그대로지만 만리장성 그림 양옆에 있던 우람한 책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전보다 더 큰 만리장성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책장이 사라진 게 가장 눈에 띈다. 그는 신년사 방송 때마다 책장에 놓인 사진 20여장에 변화를 주며 그해 역점과제를 에둘러 표현해 왔다. 이 때문에 신년사 때 사진은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창구로 여겨져 왔다. 더구나 지난해는 사진 중에서도 가족사진의 비중을 늘렸다.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의 부친인 시중쉰 전 부총리,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 어린 딸과 함께한 가족사진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심리적인 포석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외부의 비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가 권위를 강조해 내부 단결을 꾀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회주의 정권이어서 더욱 그렇다. 시 주석은 올해 신년사 방송에서 강대국의 위상을 강조했다.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도전과 신구(新舊) 동력 전환 압박 등 몇 가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한 해 펼쳐질 중국의 대미정책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지대] 새해 덕담이 현실이 되기를

‘푸른 뱀의 해’ 2025년 을사(乙巳)의 새 아침이 밝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해돋이 명소를 찾아 붉게 떠오르는 새 아침의 태양을 보며 소망을 빈다.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희망의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해의 아쉬움과 어려웠던 일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기대감이 가장 큰 때가 바로 신년 벽두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민들은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청룡의 해’로 상서로운 기운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출발했던 2024년. 많은 국민이 청룡처럼 힘차게 비상하는 부푼 꿈을 안고 새해를 출발했으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시대 상황은 이 기대감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국내 정세는 장기 불황에 따른 물가 상승과 의료대란,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등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희망으로 힘찬 새해 첫발을 내디뎠던 많은 사람은 상실감과 절망, 분노, 슬픔으로 가득찼다. 이제 그 고통과 슬픔의 해를 넘기고 새로운 해가 열렸다. 아직도 국내 정세는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국민의 가슴속에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의 새싹이 움트고 있다. 새해를 맞아 건네는 덕담에 담겨진 건강과 안녕, 행복과 번영은 국민 모두가 추구하는 바람이다. 어둠의 끝은 반드시 오기에 그 여명의 시간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놀라운 응집력과 지혜로 위기를 극복했다. 21세기 들어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이 시기에도 새해 설계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정치권이 새해 덕담에 담긴 국민의 소망과 기대감을 결과물로 담아낼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새해 붉게 떠오른 태양이 환하게 이 세상을 비출 수 있도록.

[지지대] 한 해의 마지막 날

이소영 작가의 그림책 ‘겨울별’에서 혹독한 계절로 빗대어지는 겨울의 색다른 면이 나온다. 청록빛을 띤 회색의 모형이 긴긴 잠에서 깨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내가 오면 사람들은 겨울이 왔다고 해. 내 이름은 아마, 겨울?” ‘겨울이’는 사람들 속에서 결코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조용 움직이고 가만가만 지켜보며 추운 겨울을 바라본다. 봄을 맞이하기 위한 강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머금은 채. 설렘으로 시작했던 한 해가 저문다. 유난히 시린 겨울이다. 저마다 크고 작은 꿈을 가슴에 안은 채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걷고 걸어 완성한 2024년이다. 누군가는 2024년 12월을 삭제하고 싶다 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비상계엄으로 몇 주간 가슴이 뛰고 자다가 깨며 마음이 불안하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국민의 집단적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나왔다. 정국 불안 속 대형 참사까지 일어났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제야의 종 타종식과 해넘이·해맞이 행사는 추모 분위기 속에 잇따라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슬픔을 나누는 추모 행렬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엘리어트 시인은/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생각해보라/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은가/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우리가 새 기분으로/맞이하는 것은/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천상병 시인은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라는 긴 제목의 시에서 12월을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12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다고 한 까닭에 12월은 시작이고 희망이다. 또 정치의 혼돈 속 빛난 성숙한 시민의식, 누군가의 아픔에 깊이 애도하고 잠시 멈추는 공감의 공동체를 지닌 우리는 그 자체로 강한 에너지를 가진 ‘겨울이’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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