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 해의 마지막 날

정자연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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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작가의 그림책 ‘겨울별’에서 혹독한 계절로 빗대어지는 겨울의 색다른 면이 나온다. 청록빛을 띤 회색의 모형이 긴긴 잠에서 깨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내가 오면 사람들은 겨울이 왔다고 해. 내 이름은 아마, 겨울?” ‘겨울이’는 사람들 속에서 결코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조용 움직이고 가만가만 지켜보며 추운 겨울을 바라본다. 봄을 맞이하기 위한 강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머금은 채.

 

설렘으로 시작했던 한 해가 저문다. 유난히 시린 겨울이다. 저마다 크고 작은 꿈을 가슴에 안은 채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걷고 걸어 완성한 2024년이다. 누군가는 2024년 12월을 삭제하고 싶다 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비상계엄으로 몇 주간 가슴이 뛰고 자다가 깨며 마음이 불안하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국민의 집단적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나왔다. 정국 불안 속 대형 참사까지 일어났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제야의 종 타종식과 해넘이·해맞이 행사는 추모 분위기 속에 잇따라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슬픔을 나누는 추모 행렬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엘리어트 시인은/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생각해보라/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은가/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우리가 새 기분으로/맞이하는 것은/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천상병 시인은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라는 긴 제목의 시에서 12월을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12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다고 한 까닭에 12월은 시작이고 희망이다. 또 정치의 혼돈 속 빛난 성숙한 시민의식, 누군가의 아픔에 깊이 애도하고 잠시 멈추는 공감의 공동체를 지닌 우리는 그 자체로 강한 에너지를 가진 ‘겨울이’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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