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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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시골 외과의사 토마시도 그랬다.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 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테레자나 화가이자 토마시의 불륜 상대인 사비나, 사비나의 연인 프란츠 등도 예외가 없었다. 전처와의 이혼 이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20여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얼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가 썼다. 청년 시절 읽었던 서양 소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들은 서로를 아꼈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건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방식 혹은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쿤데라가 별세 1년 반 만에 그의 조국에 묻힌다. 외신에 따르면 그의 유해가 사망 1년6개월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인 브르노로 옮겨졌다.

 

브르노 시장인 마르케타 반코바는 쿤데라의 유언을 집행하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로부터 유해를 넘겨 받았다. 그리고 “브르노의 영광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브르노시 당국은 작가의 유해를 모라비아 국립도서관에 임시 보관하다 중앙묘지에 안치할 예정이다.

 

작가는 공산주의 체제인 조국에서 프라하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1968년 일어난 민주화운동인 ‘프라하의 봄’으로 탄압받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을 박탈당했다. 2019년 국적을 찾았다. 민주화 이후 고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망명 후 줄곧 프랑스 시민으로 살았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됐지만 2023년 7월 파리에서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작가는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참담할 수 있는지를 고발했다.

 

2025년의 현실은 이 같은 쓰라림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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