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놀라울 정도였다. 그 완결은 혀끝에서 막을 내렸다. 장(醬) 담그기 얘기다. 따로 길일도 택해야 한다. 햇살이 내려앉는 양지에서 작업도 해야 한다. 일각이라도 허비하면 허사다. 우리의 오래된 음식문화가 대부분 그렇다. 이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회의에서다. 정식 명칭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가 공동체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 연대를 촉진한다고도 분석했다.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 등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장은 오랫동안 우리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발효나 숙성 방식,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한 장이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장 담그기는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만들어지고 관리·이용 과정에서 전하는 지식, 신념, 기술 등도 아우른다. 콩을 발효해 먹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독특하다. 우리나라에선 장을 담글 때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친다. 중국과 일본과는 제조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문화다. 우리나라 장 담그기는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이 오롯이 녹아 있다. 콩을 삶은 뒤 으깨 일정한 크기로 뭉쳐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해도 최소 3개월 이상 걸려서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장맛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어수선한 정국에 맞이하는 근사한 소식이다.
오피니언
허행윤 기자
2024-12-06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