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우리만 비켜간 2024년 산타랠리

해마다 이맘때면 각종 보너스가 집중된다. 또박또박 월급받는 직장인들의 얘기지만 말이다. 소비도 는다. 가족이나 친지 등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내수도 늘고 관련 기업 매출도 증대된다. 해당 회사의 주식 매입도 늘고 증시 전체가 강세로 이어진다. 이를 산타랠리라고 부른다. 변수도 있다. 국제적인 분쟁이나 유가 상승, 장기적인 경기 침체 등이 그렇다. 여러 요인으로 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새해를 맞으면 주식 분석가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주가 상승률이 다른 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1월 효과다. 쉽게 말해 과거 경험상 연말에 그리고 1월 주가 상승률이 높다. 사실 이는 논리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별로 없다. 증권시장에 따르면 26일 기준으로 코스피는 1.49포인트(0.06%) 내린 2,440.52로 약보합 마감됐다. 직전일 1.5% 오른 뒤 2,440 선에서 숨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도 6조7천407억원으로 지난해 11월24일(6조5천379억원)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외국인이 오랜만에 삼성전자 주식 순매수(1천30억원)에 나서면서 주가가 1.68% 오른 게 지수 하단을 지지했다. 달러 강세에 조선, 화장품, 음식료 등의 수출주가 강세를 보였지만 온기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진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뉴욕증시는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0.91%,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1.1%, 나스닥종합지수가 1.35% 오르는 등 일제히 상승했다. 테슬라(7.36%), 애플(1.15%), 아마존(1.77%), 메타(1.32%), 엔비디아(0.39%) 등 거대 기술주 기업 일곱 곳(매그니피센트7)이 모두 올랐고 브로드컴(3.15%)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대내외 불확실성과 높아진 환율 부담 등이 우리의 주식시장을 막고 있다. 2024년 산타랠리가 우리만 비켜가고 있다.

[지지대] 진화론과 비글호

식물과 동물은 처음부터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졌을까. 창조론의 얼개다. 종교의 영역이다. 반론도 있다.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 간다는 이론이다. 진화론이다. 과학의 영역이다. 진화론이 본격화된 시점은 19세기 중반이었다. 그 당시를 소환해 보자. 범선 한 척이 닻을 올렸다. 남미와 태평양이 목적지였다. 지질 조사와 해역 탐사 등을 위해서였다. 영국의 플리머스 항구에서 출항했다. 배의 이름은 비글호였다. 사냥개에서 유래됐다. 길이 27.5m에 무게는 242t이다.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범선의 이름이 길이 남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타고 있어서였다. 승선 당시 다윈의 나이는 22세였다. 의학에 싫증을 느껴 박물학과 지질학,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4년10개월을 남미와 태평양, 호주의 거친 바다와 섬들을 오가며 지질학과 생물학에 푹 빠졌다. 다윈은 귀국 후 3년이 지나자 창조론에 도전하는 저술을 내놨다. 진화론의 본격 출범이었다. 물론 출간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나이 50세에 발표된 ‘종의 기원’은 다윈을 뉴턴과 코페르니쿠스에 버금가는 학자 반열에 올려 놓았다. 비글호도 눈길을 끌었다. 진수된 해는 1820년. 영국은 비글호와 동일한 제원인 ‘체로키급’ 범선을 117척이나 건조했다. 척당 건조비로 7천800파운드가 들어간 체로키급은 지구촌 해양을 누비며 조사하고 다녔다. 대영제국의 척후병이었다. 제국의 확장을 목적으로 건조돼 자연과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다 1870년 고물상에게 불하돼 해체됐다. 하지만 배의 이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글이란 이름의 영국 해군 함정만 8척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우주 개발에 맞서 유럽연합이 지난 6월 쏘아 올린 화성 탐사선 이름도 비글호다. 1831년 12월27일 출범한 범선 한 척이 진화론을 대세 이론으로 만들어 냈다.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지지대] 온도차

분위기가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딱 1년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매년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을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내 집 안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뒀는데 올해는 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산타할아버지가 중학생까지 챙길 시간이 없어 못 오실 것 같아 선물을 포기했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럼 올해부터는 아빠가 산타할아버지 대신 필요한 선물을 나눠주는 ‘아빠 산타’가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딸아이와 집 근처 애플스토어에 가서 그렇게도 원하던 아이패드를 사줬다. 집에 돌아와 늦은 새벽까지 아이패드를 연구하는(?) 아이의 모습이 사뭇 낯설었다. 1년 전만 해도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겠다며 일찍 잠들던 초등학생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뀐 것은 비단 필자의 집에서만은 아닐 것 같다. 탄핵 정국으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가 대한민국 전체를 덮고 있는 요즘이다. 1년 전,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되고 맞았던 크리스마스는 거리마다 울리는 캐럴과 오랜만에 세상에 나와 행복해 보이는 이들의 아름다운 미소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올해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온도차는 작년과 크게 다르다. 나라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데 쓰이는 캐럴이 낯설고, 가족과 행복한 장소에서 함께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보다는 집회 현장에, 그리고 경기가 어려워 그저 방콕하는 가족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너나 탓할 것도 없다.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행복감을 심어 주기 위해 우리는 오늘의 차가운 이 온도를, 내년에는 온도계 최상단까지 끌어올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지지대] 고래를 좇는 사람들, 쫓는 사람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래 프로젝트 주의보’가 내려졌다. 여기서 말하는 고래 프로젝트는 최근 포항 인근 바다에서 시추 작업이 시작된 ‘대왕고래프로젝트’가 아니다. NH투자증권을 사칭해 벌이는 사기 행위, ‘고래협력프로젝트’와 그 일당을 일컫는다.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은 전 NH투자증권 대표 A씨 등 금융계 유명인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주식리딩방으로 유인한 뒤 자신들이 NH투자증권과 비밀리에 개발한 투자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를 유도한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개발했다는 사이트에 수천만원을 투자하고 해당 사이트에서는 높은 수익이 나는 것으로 표시되지만 사이트 자체가 모두 가짜다. 가짜 사이트에 투자를 했으니 당연히 실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돈을 인출할 수도 없다. 피해자들이 사기임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일당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의 사기 행위에 피해를 입은 사람만 수십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피해 규모가 최소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중에는 30년가량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한 이도 있다. 그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도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에게 사기당했다. 이들의 수법은 기존의 주식리딩방 투자와는 다르다. 고수익을 노리고 추천받은 주식에 투자했지만 손해를 입게 되는 주식리딩방 피해와는 달리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은 투자 자체를 하지 않는다. 명백한 사기다. 최근 경찰이 고래협력프로젝트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을 쫓는 경찰의 걸음이 큰돈이라는 거대한 욕망을 좇는 이들의 걸음 속도보다 늦으면 피해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 있다. 경찰의 강력하고도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지지대] ‘꽁꽁 얼어붙은 성탄절’

써늘하다. 을씨년스럽다. 물가는 자고 나면 뛴다. 자영업자들이 잇따라 가게문을 닫는다. 세금도 안 걷힌다. 정부의 곳간도 텅텅 비었다. 고령층에 제일 큰 문제는 기름값 인상이다. 조금만 가동해도 몇 달 치 식료품비에 맞먹는 고지서가 나온다. 정부가 난방비 보조금을 깎아서다. 냉혹한 겨울공화국이다. 며칠 뒤면 성탄절인데 말이다. 시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노래로 맞섰다. 위정자와 집권당을 풍자하는 노랫말을 담은 캐럴이 만들어졌다. 노랫말에는 엄동설한 정부의 난방비 삭감을 비판하는 내용도 담겼다. 가사를 음미해보자. “냉기로 가득 찬 집을 상상해보라. 집에 연료가 없어 이번 성탄절은 춥겠지. 집권층이 따뜻하게 지내는 동안 이번 성탄절은 춥겠지.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건 외국 전쟁들과 추위에 떨고 있는 노령 연금 수급자들....” 영국 얘기다. 외신에 따르면 성탄절을 앞두고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와 노동당 정부를 비판하는 패러디 캐럴이 나돌고 있다. 이 캐럴을 부른 주체는 영국의 패러디 밴드인 ‘스타머 경과 그래니 하머스’다. ‘꽁꽁 얼어붙은 성탄절’이 패러디 캐럴의 제목이다. 영국의 글램 록 밴드인 머드가 1974년 발표한 ‘외로운 성탄절’의 멜로디에 정부의 겨울 난방비 보조금 삭감 결정을 비판하는 가사를 얹었다. 앞서 영국 정부가 공공지출을 줄이겠다며 고령층에 지원하던 겨울철 난방비 대부분을 삭감하기로 한 걸 비판하고 있다. 영국에선 국가 연금 수급자는 소득과 관계 없이 해마다 겨울에 연료비를 지원받는다. 80세 이상은 300파운드(약 53만원), 66세 이상 80세 미만은 200파운드(약 35만원) 등이다. 정부가 이 지원비를 일부 저소득층에만 지급하기로 결정해 900만명 이상이 지원을 못 받게 됐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패러디 캐럴의 공식 뮤직비디오는 200만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성탄절의 온기가 얼어붙은 나라가 어디 영국뿐일까.

[지지대] 200년 전 어떤 역제안

이건 가상 상황이다. 한국이 신의주항과 압록강 자유이용권을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이 아예 만주 전체를 사가라고 제안했다.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서다. 주체는 프랑스였다. 뉴올리언스항과 미시시피강 항행권을 보장받으려는 미국에 루이지애나 전체를 사가라고 역제안했다. 1803년 12월20일이었다. 당시로 돌아가 보자. 루이지애나는 프랑스군의 철수로 미국 영토로 들어왔다.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이었다. 나폴레옹은 당초 미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꿈을 꿨다. 매각은 안중에도 없던 그를 코너로 몰고 간 건 1801년 프랑스 생도밍고(현 아이티)에서 발생한 흑인 노예들의 반란이었다. 정예 병력 2만여명을 파견했지만 끈질긴 저항에 봉착할 즈음 루이지애나를 위임 통치하던 스페인 총독이 미국 선박의 운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당시 물동량의 이동 경로 40%를 미시시피강에 의존하던 미국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항구 기착권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준비한 돈은 2만달러. 프랑스의 역제안 금액은 2천250만달러였다. 최종 가격은 1천500만달러. 에이커당 3센트에 불과한 헐값이었지만 미국 조야는 들끓었다. 일부 주는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의회의 비준도 없이 승인 도장을 찍었다. 이 거래 이후 두 나라의 행보는 극과 극이었다. 골치 아픈 식민지를 팔아넘겨 영국과 완충지대를 형성하겠다던 프랑스는 쇠락의 길을, 미국은 서부 대개척이라는 가도를 달리게 됐다. 협상 주역들의 여적도 흥미롭다. 미국 측 전권대사였던 제임스 먼로는 5대 대통령에 취임해 ‘먼로 독트린’을 남겼다. 프랑스 공사였던 리빙스턴은 증기선의 아버지인 로버트 풀턴을 후원했다. 미국의 비공식 대사로 활약한 듀폰의 아들은 세계적인 화학그룹 듀폰을 설립했다. 역사는 당시의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다. 계속 돌고 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역제안이 시사하는 의미가 묵직하다.

[지지대] 세계평화 외친 한국인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선 시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도청사나 시청사를 떠올려 보면 생경한 모습이다.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시청사 앞 광장과 부두의 평화로운 풍경만큼이나 사진에 담고 싶은, 바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였던 거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설레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년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한강 작가가 수상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건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검은색 드레스를 차려 입은 한 작가는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증서와 메달을 받아 들었다. 이후 블루홀로 자리를 옮겨 열린 연회에서 한 작가는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같은 날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그곳에도 한국인이 있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단체는 일본의 원자폭탄 생존자 단체인 ‘니혼히단쿄’(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였다. 원폭 피해를 증언해 핵무기가 사용돼선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 노벨위원회의 선정 이유다. 니혼히단쿄는 한국인 피폭자들과 해외로 이주한 피폭자들이 겪은 고통, 이들과 연대해 일본 정부에 지원을 요구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상식 대표단에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과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은 물론이고 한국의 피폭자와 후손은 오슬로에서 ‘비핵’과 ‘평화’를 외쳤다. 원폭으로 인한 피해와 공포를 고스란히 가슴에 품은 이들의 말은 결국 한 작가가 말했던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과 일맥상통한다. 내년이면 원폭 피해 80주년이다. 2025년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계엄과 탄핵이 휩쓸어 버린 혼란과 공포의 순간을 딛고 80년 피폭의 역사를 뒤로하며 평화의 날이길 기대해 본다.

[지지대] 율곡 종손의 독립운동

물건에만 있는 게 명품은 아니다. 가문에도 있다. 이런 집안을 명가라고 부른다. 명품이 유지되려면 소비자들로부터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명가도 나라와 사회의 신뢰가 계속돼야 한다. 명가를 들먹인 연유는 율곡 선생 가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종손들이 일제강점기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본보 16일자 10면)됐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이 이 같은 사실을 처음 발굴해 알렸다. 그가 정부에 제출한 독립운동 포상신청서를 살펴보자. 율곡 선생의 제12대 이종문 종손(1868~1945)은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족장, 그의 동생 종성은 2013년 8월 건국훈장 애족장, 제13대 이학희 종손(1890~1918)은 2020년 8월 대통령 표창을 사후에 받았다. 이종문·학희 부자는 소현서원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당시 의병장인 의암 유인석 선생을 율곡 선생의 종가가 있는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만나 의병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그러다 1914년 광복회 황해도지부가 설립되자 가담해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이학희 종손은 1918년 6월 두 번째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10월15일 순국했다. 이종문 종손은 아들 학희가 순국하자 동생 이종성(1871~1925)과 대한독립단 해주지단고문 및 지의장을 맡아 투쟁했다. 이후 친일파 은율군수 암살사건 등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동생 이종성은 단원들에 대한 숙식 제공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1925년 11월19일 서거했다. 아들에 이어 동생까지 잃은 이 종손은 율곡 유적보존회 이사로 소현서원을 지키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지내다 광복 후 2개월 뒤 별세했다. 율곡 선생의 종손 이외에도 대한민국 많은 명가들의 독립운동이 재조명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늠름하고 올곧은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다.

[지지대] 삼세번이면 족하다

“삼세번이야.”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삼세번을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번’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세번’에 익숙하다. 이는 단판에 결정해 아쉬움을 남기는 대신 세 번의 기회를 더 갖는 삼세번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 이유일 것이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꼬마 시절부터 삼세번은 너무 익숙했다. 그 흔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할 때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 “삼세번이야” 할 정도니. 헌정 사상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다.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선거 중립 의무 위반,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권한 남용. 8년이 지난 2024년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선포됐다. 탄핵소추안에는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비상계엄’이 탄핵 사유로 적시됐다. 이로써 헌정사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이후 절차는 자연스럽게 헌법재판소로 넘어갔고 헌재 역시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을 심리하게 됐다. 대한민국도 거대한 격랑 속으로 빠져들며 세 번째 큰 혼돈을 맞게 됐다. 경기 침체, 대외 신용도 하락, 진영 논리로 인해 극단적으로 쪼개진 민심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향방을 가를 헌재 결정만이 남았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세 번이면 족하다. 국론의 분열과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안돼”라는 염원을 담은 ‘만세삼창’이라도 외쳐야 하나.

[지지대] 3명 중 1명 1인 가구

정국이 어수선해 쓰고 싶지 않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국민 3명 가운데 1명이 1인 가구여서다. 통계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782만9천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가구의 35.5%다. 2019년 처음 30%를 넘긴 후 매년 역대 최대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원인은 뭘까. 청년들의 결혼이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난 가운데 배우자를 잃고 홀로 사는 어르신이 증가해서다. 연령대별로는 70세 이상이 19.1%로 가장 많았다. 29세 이하도 18.6%다. 60대 17.3%, 30대 17.3% 등의 순이다. 어르신 5명 중 1명이 홀로 지내고 있는 셈이다. 2022년까지는 29세 이하가 19.2%로 가장 많았지만 지난해부터는 70세 이상이 역전했다. 남성 1인 가구에선 70세 이상이 9.9%를 차지하는 반면 여성에서의 비중은 28.3%에 달한다. 홀로 생활한 기간은 어떨까. 5~10년 미만이 28.3%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20년 미만이 24.0%, 1~3년 미만이 16.5% 등으로 집계됐다. 연간소득은 3천223만원으로 전년보다 7.1% 늘었다. 전체 가구소득(7천185만원)의 44.9% 수준이다. 소득구간별로는 55.6%는 연소득이 3천만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1천만~3천만원 미만이 41.5%로 가장 많았고 3천만~5천만원 미만(26.1%), 1천만원 미만(14.1%) 등의 순이었다. 월평균 소비지출은 163만원으로 전체 가구(279만2천원) 대비 58.4% 수준이었다. 주거·수도·광열비(18.2%), 음식·숙박(18.0%) 순으로 지출이 많았다. 중요한 대목은 또 있다. 지난해 주택 소유율은 31.3%로 집계됐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높아져 70세 이상에서 49.4%로 가장 높았고 60대(43.4%), 50대(37.6%) 순이었다. 숫자는 거짓이 없다. 이처럼 우울한 통계의 나열이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지지대] ‘분노의 시대에서 희망 찾기’

극악 정치, 악덕 정치.... 영어 단어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의 사전적 풀이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이 단어를 키워드로 칼럼을 썼다. ‘분노의 시대에서 희망 찾기’가 주제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뉴욕타임스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타나고 있는 카키스토크라시에 맞서 싸운다면 결국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며 운을 뗐다. 이 대목에서 그가 가리키는 카키스토크라시의 함축된 의미는 한마디로 ‘저급한 자들에 의한 통치’다. 그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인들은 평화와 번영을 당연하게 여겼고 유럽에서도 정치·경제적 통합이 진행되는 등 상황이 잘 돌아가는 듯했다”고 이어갔다. 하지만 현재는 낙관주의가 분노와 원망 등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엘리트에 대한 신뢰 붕괴가 원인이라고 짚었다. 대중은 이제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하는 위정자들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고, 그들이 정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례로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저급한 자들이 권력을 잡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들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대중은 저급한 위정자들을 비난하는 상당수 정치인들도 실제로는 저급한 엘리트라는 점을 깨닫고 그들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나쁜 자들의 집권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대중은 언젠가 깨닫고 정의를 이룰 것”이라고 예고했다.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안으로 카키스토크라시에 대한 저항을 내세우기도 했다. ‘오늘의 범죄에 침묵하는 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준다’는 알베르 카뮈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의 지적이 꼭 미국의 정치만 가리킨 걸까. 우리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서다.

[지지대] 시스템을 재설치하시겠습니까?

컴퓨터를 운영하는 운영체제(OS)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라고 자꾸 권한다. 지금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더 좋은 게 있다며 유혹한다. 쓸지 말지 고민이라 요청을 묵살하고 있다. 컴퓨터만 운영체제가 필요한 게 아니다. 컴퓨터를 만든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더 오래되고 정교한 운영체제, 즉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법과 법이 규정한 국가, 공동체 의식, 도덕규범, 문화 등이 결합됐다. 한국 시스템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보면 된다.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면 한국 시스템을 떠나는 것이고, 해외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면 그 나라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나라 시스템 안에서 손님으로 머물다 보면 한국 시스템이 보인다. 귀국 비행기는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를 비행한다. 입국하면 다시 한국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2024년 말, 비상계엄에서 시작된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가의 운영체제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시스템을 재설치하시겠습니까?” 바꾼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우리 시스템의 근간인 헌법까지 바꿀 수 있다. 헌법의 최신 버전은 1987년 판이다. 바꾸자는 목소리는 전부터 있었다. 바꿀까, 말까.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국가 시스템 재설치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컴퓨터 재설치는 몇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재설치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컴퓨터는 운영체제를 재설치하고 재부팅하는 동안 아무것도 못 한다.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 변화가 일어나도 개인의 삶은 영위되고 조직은 운영된다. 돈은 흘러가고 경제는 돌아간다. 앞으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내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선택은 내게 달렸고. 옳은 선택이길 빈다.

[지지대] 둥쥔의 부패 스캔들

고향은 한적한 어촌이었다. 행정지명으로는 산둥성 옌타이다. 고기 잡는 배들을 보며 자랐다. 해군에 입대했고, 군함을 지휘하는 장교를 거쳐 국방 수장에 올랐다. 해군 출신 첫 장관이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인 둥쥔(董軍) 국방장관(국방부장) 얘기다. 장관으로 입성하기 전 그의 이력을 좀 더 들여다보자. 소장으로 진급하고 2년 만에 중장에 올랐다. 우리의 대장에 해당하는 상장 진급 후 해군 참모총장격인 해군사령원에 발탁된다. 2020년대 중반이었다. 해군사령원 재직 시절 베트남,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작전을 지휘했다. 그리고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7차 대회에서 중국의 14대 국방부장이 된다. 지난해 말이었다. 전통적으로 육군이 우위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해군 출신이 국방부장으로 임명된 건 이례적이었다. 대만과의 전쟁 등에 대비해 해군의 중요성을 높게 보고 해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출세의 길을 걷던 그에게 맞바람이 불어왔다. 지난 11월27일이었다. 미국 언론이 부패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타전했다. 중국 정부는 다음날 정례 발표를 통해 부인했다. 하지만 부패 혐의가 씌워졌다.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리고 또 스캔들이 터졌다. 이달 들어서였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이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것도 같은 날 뜬구름 잡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쓰면서 말이다. 포풍착영(捕風捉影)이다. 바람을 붙잡고 그림자를 쥔다는 표현이다. 중국 후한의 역사가 반고가 지은 지은 ‘한서’ 교사지(郊祀志)에서 유래됐다. 아무튼 오랜만에 나온 고사성어였다. 그것도 웬만해선 좀처럼 잘 쓰지 않는 워딩으로 말이다. 둥쥔과 포풍착영, 이 두 상수는 어떤 함수관계일까. 장롱에서 썩고 있던 표현을 인용한 배경이 궁금하다. 사유의 사치일까. 어수선한 정국에 말이다.

[지지대] 주인 행세하는 너구리들

무호동중 이작호(無虎洞中 狸作虎), 호랑이가 없는 고을에서 너구리가 호랑이 행세를 한다. 높은 사람이 사라지니 보잘것없는 이가 위세를 부린다는 뜻이다.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요즘, 생각이 한 가지 사실에 멈췄다. 그날 호랑이는 분명 그 고을에 있었다. 사상 초유의, 유례 없는, 그리고 뜬금없는 계엄령이었다. 평온했던 저녁, 한순간 대한민국을 둘로 가르며 일상을 침범했다. 그날을 떠올리며 가장 많이 한 말은 ‘이게 진짜야?’였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元首)다.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 그러나 분명 직위도, 권력도 모두 국민이 준다. 5년 간 나를 대신해 나의 고을을 잘 살펴 달라고 부여한 권한이다. 주인 행세하며 위세를 부리라고 준 권한이 아니다. 그런데 이 너구리들의 주인 행세가 도를 넘는다. 한밤중 국민은 느낀 적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며 헌법의 존엄 위로 군홧발을 디뎠다. 나는 물론이고 고을의 어떤 이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한 너구리가, 내가 다른 너구리에게 준 권한을 빼앗아 본인이 행사하겠다고 한다. ‘국정 공백’ 사태를 막겠다는 미명이 붙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이들은 누가 호랑이인 줄 모르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호랑이가 자리를 비운 적 없이 우리의 고을을 지키고 있었음을 잊은 듯하다. 평온하게 관전하던 호랑이의 일상으로 정치, 언론, 표현의 자유를 짓밟으며 들어오는 게 국정이라면 그깟 국정 공백이 좀 생기면 어떤가. 갈등은 분명, 국민이 원한 바는 아니다. 신속하게 통합의 길로 가야 하는 것 역시 맞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곳을 지켜본 호랑이, 주인은 국민이다.

[지지대] 저조한 식량자급률

통계는 명쾌하다. 단순히 숫자의 나열로만 보면 큰코다친다. 의외로 많은 과제와 숙제를 담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이 2022년 기준으로 20%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통계청의 분석 결과다. 식량자급률도 같은 해 기준 49%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곡물자급률은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는 만큼 식량자급률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물로는 식량을 자급자족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전쟁 등 유사시에는 대책이 없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곡물자급률은 10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10여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특히 밀과 옥수수의 자급률은 0%대다. 콩도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밀은 라면과 국수, 빵, 과자 등에 들어간다. 옥수수는 사료 원료여서 축산물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저조한 식량자급률로 먹거리 물가가 내년에는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식품 원재료 등을 외국에 의존하는 만큼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가격이 오르면 식품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환율 문제를 들여다보자. 원-달러 환율은 9월에는 달러당 1천300원대 초반이었지만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에 1천400원을 뚫은 이후 1천400원대로 굳어지고 있다. 더구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도 당국의 혜안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우리는 IMF 한파와 금융위기 등을 모두 이겨낸 민족이다. 현재의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지지대] ‘기다림의 미학’ 장 담그기 문화

그랬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놀라울 정도였다. 그 완결은 혀끝에서 막을 내렸다. 장(醬) 담그기 얘기다. 따로 길일도 택해야 한다. 햇살이 내려앉는 양지에서 작업도 해야 한다. 일각이라도 허비하면 허사다. 우리의 오래된 음식문화가 대부분 그렇다. 이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회의에서다. 정식 명칭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가 공동체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 연대를 촉진한다고도 분석했다.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 등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장은 오랫동안 우리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발효나 숙성 방식,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한 장이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장 담그기는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만들어지고 관리·이용 과정에서 전하는 지식, 신념, 기술 등도 아우른다. 콩을 발효해 먹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독특하다. 우리나라에선 장을 담글 때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친다. 중국과 일본과는 제조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문화다. 우리나라 장 담그기는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이 오롯이 녹아 있다. 콩을 삶은 뒤 으깨 일정한 크기로 뭉쳐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해도 최소 3개월 이상 걸려서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장맛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어수선한 정국에 맞이하는 근사한 소식이다.

[지지대] 인천의 진정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싱크탱크(Think Tank). 사회 정책을 비롯해 정치, 경제, 군사, 기술,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기관을 뜻한다. 대부분 비영리 조직이다. 소위 ‘두뇌집단’으로 불리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조사·분석 및 연구·개발을 한다. 인천에서는 인천연구원이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꼽힌다. 초빙연구원을 포함해 50명이 넘는 연구인력이 도시사회, 경제환경, 교통물류, 도시공간 등 각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이는 인천시 정책의 근거자료 등으로 쓰인다. 이 밖에 인천시 산하 기관에도 각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분야별 연구를 하면서 인천시의 정책을 만들고 있다. 과연 이들 연구기관이 진정한 인천의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는지는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들이 하는 연구의 대부분은 인천시의 정책을 뒷받침할 근거자료를 만드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즉, 연구기관이 인천의 미래 발전을 위해 스스로 고민해서 이뤄진 연구가 아니라 인천시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연구인 셈이다. 이는 인천시가 이들 연구기관의 예산이나 관련 지도·점검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인 탓에 인천시로부터 일방적인 연구 지시를 받는 연구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천시는 착수보고회에서는 정책의 기본 바탕을 정해 주고, 중간보고회를 통해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끌어가고, 최종보고회를 통해선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낸다. 이 절차에서 공무원은 연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제는 인천시가 연구기관 스스로 자율성을 갖고 인천의 진정한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계 정립부터 다시 해야 할 때다. 연구기관은 일 부려 먹는 하부 기관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다듬어 가는 동반자임을 알아야 한다.

[지지대] ‘삼일천하’ 갑신정변

조선이 근대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10년의 세월’을 잃어 버렸다. 역사학계가 내린 명쾌한 정의다. 갑신정변 얘기다. 그 현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서울 한복판에선 근대식 우편제도인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이 열렸다. 그때 우정총국 인근 민가에서 불길이 솟아 올랐다. 잔치가 열리던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른바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시작이었다. 1884년 12월4일이었다. 사태는 결국 피를 불렀다. 경우궁으로 피신한 고종을 찾아온 조영하와 민태호 등 대신 11명의 목도 잘렸다. 일본군 200여명을 등에 업은 개화파는 이튿날 곧장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정변 사흘째 오전 고종은 혁신책을 내놨다. 거사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을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군이 청나라 군대 1천500여명에게 밀려서다. ‘일본군 1명이면 청나라 군대 20명을 이길 수 있다’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첫 싸움에서 병사 30여명이 전사했다. 갑신정변은 ‘위로부터의 변혁’이었기에 혁명이라 불리지 않는다. 김옥균은 박영효와 서재필, 서광범 등과 패주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중의 분노는 심화됐다. 박영교와 홍영식이 백성들의 손에 살해됐다. 김옥균의 생가와 일본 공사관 등이 불에 탔다. 평가는 아직도 엇갈린다. 분명한 건 이 사태가 재정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고종의 위임장을 소지한 김옥균이 시도한 일본에서의 국채 발행이 ‘위임장은 위조’라는 수구파의 모함으로 무산됐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8개월 전의 일이다. 견제 세력이 없어진 수구파는 독일인 고문 묄렌도르프의 권고대로 악화(惡貨)인 당오전을 찍어 냈다. 인플레에 찌든 민초의 마지막 고혈은 왕처럼 군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위세를 업은 청상(淸商)에 의해 다시 짜였다. 특별한 자성과 노력이 없으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

[지지대] 인간관계의 소중한 가치

세 번의 스무살을 살아오면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35년을 살아오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왔다. 하루하루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었고 그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살아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을 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 속을 보는 눈이 생겼다. 첫인상과 몇 차례의 만남 속에 그 사람을 파악한 것이지 마음까지 완전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 섣불리 상대를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무턱대고 좋은 사람 같다고 해서 상대를 믿는 것도 안 되고 인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경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거친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사귐에 있어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살아왔다. 하나는 ‘신(信)’이고, 다른 하나는 ‘배신(背信)’이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처럼 아름답고 좋은 것은 없기에 신뢰를 최우선으로 인간관계를 맺어 왔다. 반대로 배신은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믿었던 사람이 그 믿음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기에 가장 싫어한다. 살다 보면 전혀 뜻하지 않게 좋은 사람(귀인)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의 심성은 제 각각이고, 좋은 사람이라도 처해진 환경이 그 마음을 변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배신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고 정(情)이 자신의 이익보다 후순위라 해도 사람 사는 사회는 서로 간의 신뢰가 우선시돼야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때 아닌 ‘情타령’을 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세태가 변해도 그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잊지 말자.

[지지대] 붕세권 지도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는 수정돼야 한다. 모양은 분명 붕어를 닮아서다. 아무튼 뭐니 뭐니 해도 붕어빵은 겨울철 서민들의 소중한 간식 중 하나다. 최근 붕어빵을 파는 장소를 알려 주는 온라인 지도가 MZ세대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붕어빵과 역세권을 합친 신조어인 ‘붕세권’ 지도가 그렇다. 어디를 가면 붕어빵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는 귀에 쏙 들어오는 요긴한 정보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한 온라인 중고물품 교환 사이트는 시즌 한정으로 2020년부터 운영해온 ‘겨울간식지도’ 서비스를 아예 ‘붕어빵 지도’로 초점을 맞춰 운영을 시작했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위치 정보를 등록하고 공유하는 오픈 맵 서비스다. 앞서 종전에는 붕어빵을 비롯해 어묵, 호떡, 군고구마 등 겨울 간식가게 및 노점들도 등록됐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붕어빵 노점들만 모아 놓았다. 과거 겨울 간식 지도에 등록된 장소 가운데 대부분이 붕어빵인 점, 동네지도 및 동네 생활 탭에서 붕어빵 검색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점에 착안해 오로지 붕어빵으로 주제를 한정한 셈이다. 이번 붕어빵 지도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겨울 간식 가게들은 동네지도 탭 내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객들이 직접 붕어빵 노점 위치 정보를 등록하거나 수정 또는 삭제할 수도 있다. 본인이 추가한 곳 외에도 이웃들이 등록한 붕어빵 판매 위치를 핀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영업시간과 가격대 등 기본 정보는 물론이고 아기자기한 후기도 올릴 수 있다. ‘팥을 많이 넣어 주셔서 좋아요’나 ‘슈크림 붕어빵이 맛있어요’ 등이 그런 댓글이다. 눈폭탄에 이어 찬 바람이 불어 온 지도 며칠 지났다. 이럴 때마다 붕어빵 노점이 반갑다. 붕어빵 노점이 보이지 않으면 어떨까. 그래서 어떤 곳으로 가면 살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이 온통 우울한 요즘에 따뜻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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