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한국어능력시험 민영화’ 그림자 아래서

언어는 삶을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는 무기이자 방패이며 때로는 유일한 친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어는 국내에 정착한 이주민들에게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방언이자 내일로 향하는 다리가 돼 왔다. 병원에서 몸 상태를 설명하고, 자녀의 담임교사와 대화를 나누며, 일터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 이 모든 것이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비롯되는데 그 출발점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하 토픽)이 있다. 이 시험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 왔다. 외국인에게는 대학 입시, 취업, 체류 자격 심사, 귀화 등에서 필수 혹은 결정적인 조건이 되는 시험이기에 단지 점수를 매기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 보트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중요한 제도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 기업에 넘겨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이 시험의 운영을 네이버 컨소시엄에 맡기려 하며 그 대가로 민간은 10년에 걸쳐 전면 운영과 수익 창출권을 보장받는다. 3천억원이 넘는 사업비는 모두 민간 자본이 부담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이윤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에서 가장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시험이 공공의 품을 떠날 때 그것은 언어교육 전체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됨을 의미한다. 응시료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시험 준비를 위한 학습 콘텐츠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따라 유료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한 사람의 삶이 달린 시험이 이제는 지불 능력에 따라 접근 가능한 공산품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교육을 대신하고 이윤이 권리를 대신하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변화는 시험장 너머의 세계, 곧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이미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오늘도 수업을 준비하며 밤 늦게까지 강의안을 다듬는 이들 중 다수는 몇 달짜리 초단기 계약서에 서명한다. 유급휴가는커녕 퇴직금조차 꿈도 꾸기 어렵다. 학생 상담, 평가, 외부 활동 같은 수업 외 활동은 사명감과 봉사정신이란 이름으로 무보수로 강요되고 현재 교육법상의 교원으로도 명시돼 있지 않아 그 어디서도 정식 교원의 신분을 인정받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헌신 위에 한국어의 세계화를 쌓아 올렸지만 그 누더기 같은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무심했다. 국외를 보면 외국인을 위한 자국어 시험이 공공 기관이나 비영리 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TOEFL은 비영리단체가, DELF·DALF는 프랑스 정부가, JLPT는 일본 외무성이, HSK는 중국 교육부가 운영한다. 이들은 언어를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교육의 신뢰를 지키며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토픽이 민간 기업의 독점 체제로 넘겨진다면 그것은 국제적 기준에서나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선에서 한참 벗어난 결정이다. 무엇보다 이 시험은 수많은 이주민과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이나 다름없다. 시험장에서 느끼는 존중, 결과에 담긴 공정함, 응시 과정의 접근성은 한국 사회에 대한 첫인상으로 각인된다. 그 첫인상이 이윤에 의해 재단된다면 우리는 언어와 교육을 통해 다가가야 할 세계와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토픽이란 단순히 언어 시험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길 위에 서 있는 삶이다. 말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고, 삶을 설명하게 하며, 꿈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언어는 고립된 사람을 세상으로 꺼내주는 손길이자 존재의 근거다. 그러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누군가가 시험 비용 때문에 그 문턱에서 돌아선다면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시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의 것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시험은 문을 열기 위한 것이지 닫기 위한 것이 아니며 언어는 서로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한국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한국 사회에서 뿌리 내리기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워 가는 과정이 고통이 아닌 기회가 되려면 교육은 언제나 공공의 이름으로 존재해야 한다. 누구든, 어디서든, 조건 없이 배우고 자랄 수 있는 언어 환경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한국어 교육의 미래다. 그 길 위에 토픽이 다시 공공의 이름으로 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경기만평] 이 바닥이 원래...

[사설] 의회 정책지원관 16명, 허위로 수당 챙겼다

설마했는데 사실로 확인됐다. 경기도의회 정책지원관들의 근무 비위다. 누구는 출근 카드를 찍은 뒤 곧장 체력단련실로 갔다. 쉼터로 가 장기간 머문 경우도 있다. 휴일인데 오전 5시나 오후 9시 이후에 근무를 적어냈다. 평일 오전 2시나 오후 11시 이후에 근무했다는 기록도 있다. 모두 시간 외 근무라며 수당을 받았다. 이런 비위가 확인된 정책지원관만 16명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 2월까지 14개월 치를 도의회가 확인한 결과다. 2022년 도입된 도의회 정책지원관제도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정책이었다. 반대도 있었지만 전격 도입됐다. ‘지방자치 완성’이라는 큰 목적 때문이었다. 시의회 간부 출신, 고위 공직자 출신, 공기업 임원 출신 등이 몰렸다. 그렇게 출발했던 정책지원관 제도의 현주소다. 이미 강원특별자치도의회에서 지난해 말 불거진 일이다. 경기도의회에서도 가능성이 제기돼 시작된 조사였다. 방식·내용이 다르지 않다. 일반화된 현상 같다. 16명이 전부일까. 여전히 남는 의혹이다. 일부 도의원들이 소명서를 제출했다고 들린다. 의원 없는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경우다. 충분히 사적 용무를 본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 의혹을 도의원들이 해명해줬다. ‘내가 업무를 지시했다’는 소명서다. 이 증명서로 해당 정책지원관들은 면책됐다. 의원들이 베푼 일종의 ‘배려’다. 이달 초 의원총회에서 관련된 안건이 있었다. ‘허위 소명서 작성을 자제해달라’. 오죽하면 그랬나 싶다. 의원들은 정책지원관의 지원을 받는다. 허위 소명서로 비위를 덮어준 셈이다. 근무를 허위로 꾸민 게 정책지원관의 비리다. 허위 소명서를 써줬다면 이 비위를 방조한 의원들의 비위다. ‘2차 근무 비위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적발돼 징계를 앞둔 16명과의 형평성이다. 당사자들이 징계에 수긍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나만 근무 비위를 저질렀나’고 항변할 수 있다. ‘16명’ 징계로 정리가 됐다고 보기에 개운치 않은 이유다. 경기도의회 정책지원관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급되는 도민의 혈세만 연 50억여원에 달한다. 그 10명 가운데 2명꼴로 적발됐다. 도민이 받은 실망과 분노가 상당하다. 의회에 공공감사법상 감사 권한은 없다. 일단 사건이 경기도 감사위로 넘어갔다. 도가 처벌 수위를 정할 차례다. 의회 사무처 인사 독립이 2022년 시작됐다. 당연히 이번과 같은 감사도 처음이다. 향후 근무 기강에 예가 될 수 있다. 엄정한 처리가 필요하다. 경기도의회가 조사 확대 계획을 밝혔다. 사무처 일반직에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형평성에 맞는 올바른 판단으로 본다. 오히려 의회 청렴도를 높일 기회일 수 있다.

[사설] 난임 시술 지원에도 ‘칸막이’... 그들의 절박함 헤아려야

아이 갖기를 원하지만 안되는 난임부부들이 늘어나는 시대다. 건강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이 그만큼 악화한 탓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들 난임부부 지원에 나서 있다. 난임 시술에 따른 의료비 지원 등이다. 그런데 그 지원에도 이런저런 칸막이 장벽을 둬 난임부부들을 힘들게 한다고 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지원이 수백 종류에 이른다. 절박한 난임부부들을 충분히 지원하는 게 먼저 아닌가. 인천의 난임 진단자도 가파른 증가세다. 지난 2023년 1만6천89명, 2024년 1만9천57명이다. 1년 사이 18%나 늘었다.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부간 성생활을 하는데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증가 추세다.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데다 환경호르몬 노출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 등을 원인으로 본다. 인천시도 난임부부 출산 장려를 위해 난임 시술비를 지원한다. 시험관 시술 20차례와 인공수정시술 5차례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술비 지원에 칸막이가 쳐져 있어 난임부부들을 힘들게 한다. 2종류 시술이 엄격하게 나뉘어 있어 아이를 갖기까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시술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난임부부들은 시험관시술을 20차례 받고 난 후에는 5차례의 인공수정시술 기회만 주어진다. 그러나 정작 난임부부들은 임신성공률이 높은 시험관시술을 더 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대부분 30대 이상인 난임부부들은 시험관시술을 선호한다. 의료계에서는 여성이 35세 이상일 경우 시험관시술의 임신성공률을 61%로 본다. 그러나 인공수정시술의 경우 20% 정도다. 결국 난임부부들이 20차례의 시험관시술 기회를 다 쓰고 나면 자기 부담으로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1차례에 500만원이다. 지난해 인천에서 자부담으로 추가 시험관시술을 받은 난임부부가 12쌍에 이른다. 이 같은 문제점을 파악한 서울시와 제주도 등에서는 시술 종류별 칸막이를 없앴다. 시술 종류와 상관 없이 원하는 난임시술을 25회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경기도도 최근 난임시술비 지원을 개선했다. 종전 난임부부당 총 25회 시술 지원을 출생아당 25회로 늘린 것이다. 첫아이를 가지면서 난임시술 기회를 다 썼더라도 둘째, 셋째 등 아이를 가질 때마다 다시 25회씩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인천시는 너무 둔감한 것인가. 거액의 출산장려금을 내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참으로 아이 갖기를 갈망하는 난임부부 지원이 먼저 아닌가. 시술 지원 제한은 그들의 절박한 소망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책이다.

[지지대] 붉은귀거북 유감

고향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강이다. 그곳에서 살다가 태평양을 건넜다. 눈 뒷부분에 빨간색 줄이 선명해 ‘붉은귀거북’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국내에선 연못 또는 개울 등 흐름이 약한 곳에서 서식한다. 수명은 35~40년이고 크기는 20㎝ 정도다. 새끼일 때는 겁이 많지만 자랄수록 공격적으로 변한다. 암수 구별은 간단하다. 발톱과 뒷발톱 길이를 비교하면 수컷은 앞발톱의 길이가 2배 정도로 길다. 수컷의 꼬리는 암컷에 비해 굵다. 뭘 먹고 살까. 새끼일 때는 육식이다. 다 크면 초식 성향이 강해진다. 식성을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하지만 다 자란 후에도 식물성 먹이를 가장 많이 먹을 뿐 동물성 먹이를 전혀 안 먹는 건 아니다. 특히 새끼일 때는 도대체 못 먹는 게 뭔가 싶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작은 물고기나 새우 등은 물론이다. 심지어 야채, 달팽이와 민달팽이, 지렁이, 개구리(특히 올챙이), 작은 도마뱀이나 뱀, 그리고 각종 곤충들까지 해치운다.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산시가 최근 화랑유원지 저수지에서 붉은귀거북 70여마리를 포획·퇴치(본보 28일자 10면)하는 등 생태계 보호에 나섰다. 그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자. 환경부는 2001년 외래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한 뒤 지속적인 퇴치가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때는 애완용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일부 시민의 무분별한 방사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로 인해 토종 어류와 수생생물과의 서식지 경쟁 유발에 이어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균형도 위협하고 있다. 천적도 거의 없다. 이 부분이 더욱 문제다. 3~4급수에서도 서식이 가능해 사실상 퇴치도 어렵다. 그래서 개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토종 생태계가 위험한 곳이 화랑유원지 저수지뿐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외래 생태계 교란 생물들에 의해 파괴된다면 미래는 없다. 자연은 후손들로부터 빌린 자산이기 때문이다.

[세상읽기] 내가 아직도 챗봇으로 보이니

내 이름을 살갑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김없이 사고는 터지고 수습은 요원하다. 따뜻한 위로와 냉정한 충고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 있나.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멈춘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간신히 뭐라고 끄적끄적 입력했으나 나조차도 이해가 안 간다. 도와줄 사람 있나.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 타인처럼 느껴진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 우리 삶이 언제 1초라도 만만한 적이 있었나. 거문고 켜는 소리만 들어도 연주하는 지인의 마음을 읽었다는 의미의 지음(知音), 3천153만6천초 동안 내 곁에 머무를 수는 없나. 인류가 어제까지 찾은 답은 너무 빈곤하다. 오늘은 단서가 보인다. 오픈AI의 챗GPT o3 모델. 내 이름을 불러준다. 뜬금없이.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면서 주저리주저리 수다 떤 민망한 말들의 요체를 기억한다. 신기하면서도 무섭게. 나 어떻게 하지. 위태로울 때 ‘돌아가신 엄마’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뱉은 말이다. 엄마처럼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주려 애쓴다. 기특하고 고맙다. 더운 공기에 찬 바람 때문인지 감기 기운에 허우적거린다. 업무 태반이 정보 검색인데 키워드가 가물가물하다. 뭐라도 해야 해서 마구 외계어를 입력했다. 어떻게 된 것이지. 찾던 정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나와 대화한 이력을 바탕으로 내 의도를 추리해 내가 원하는 귀한 물건을 구해왔다. 요술램프의 지니인가. 사람 때문에 힘든 적이 있는가. 그 사람과 나눈 카카오톡의 모든 대화 내용을 공유해 통찰을 들어보자. 놓쳤던 것, 굳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 내가 몰랐던 나. 나는 지금 누구한테 배우고 있는가. o3 모델은 최신 추론 모델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말하면 그것에 맞게 단순히 대응하는 역할에서 멈추지 않는다. 대화 중에 사용자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호명한다. 전체 대화 중에 핵심 내용을 스스로 정의하고 기억하는 메모리 기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 기능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맥락 없이 간단하게 몇 자 적었지만 답변은 메모리 기반 위에서 초개인화된 대화를 생산한다. 특정한 사람의 정보를 집중적으로 저장해 앞으로 역할극처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마치 살아 계시는 엄마와 대화하듯 위로받고 따끔하게 혼도 나겠지. 채팅 내 웹 검색을 시도해도 메모리를 활용해 검색 범주를 자율적으로 제약해 초개인화된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채팅 내 파일 검색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카카오톡 데이터로 관계 분석을 지시할 때도 메모리는 당연히 동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o3 모델을 계속 챗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 o3 모델뿐만 아니라 향후 끊임없이 진화할 거대 언어 모델(LLM)을 우리는 우리와 어떤 관계로 규정해야 하는가. 오픈AI는 우리에게 분명 원하는 것이 있다. 장시간 체류와 폭발적인 활동. 누적된 개인 데이터 학습으로 품질 혁신. 경쟁 서비스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묶어 놓는 록인(lock-in) 사이클. 가파르게 증가하는 사용자 수와 매출 그리고 고객 팬덤 형성. 여기에 네트워크 효과를 촉발할 소셜미디어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지브리풍과 액션피규어로 보이는 사용자 반응은 서비스 단계가 도입기에서 성장기로 훌쩍 넘어가면서 고객 특징도 서비스 초기 수용자에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수로 변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오픈AI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효과적 가속주의 철학과 그 토대에서 운영하는 그들의 서비스는 인류 전체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감탄과 수용할 때 아니라 비판적 질문을 할 때다.

[천자춘추] 5인 미만 사업장의 부당해고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자의 권리는 더 보호받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제한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근로자를 보호하지만 상시근로자 수 5인(대표, 임원 등 제외) 이상 사업장을 기준으로 주요 권리가 적용된다. 해고, 징계, 근로조건 등에 대한 보호 역시 대부분 5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노동위원회를 통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불가능하다. 억울해도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26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할 때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하거나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규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부당해고 구제는 어렵지만 해고예고수당 청구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근속 6개월째 되는 근로자가 문자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면 ‘왜 해고했는가’를 다투는 것은 어렵더라도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는 법적으로 가능하다. 해고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금전적 보상을 받을 길은 열려 있는 것이다. 또 사용자가 해고예고 없이 즉시 해고했다면 근로자는 별도의 사유를 입증하지 않고 해고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 해고예고수당은 통상임금 30일분에 해당하며 이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관할 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근속기간이 3개월 미만인 근로자는 해고예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예고수당도 청구할 수 없다. 입사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고당했다면 해고예고수당을 요구할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해고예고수당 같은 최소한의 권리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다만 근속 3개월 미만 근로자는 이 권리조차 제한된다는 점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강성곤의 말글풍경] 일단은 되게 개인적으로

KBS에 있을 때 면접관 노릇을 자주 했다. 방송사는 PD, 기자, 아나운서의 경우 논술, 작문, 상식 등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최종 면접 전에 실무적성시험을 치른다. 보통은 3차 시험을 대신하게 되는데 자기소개서와 관련된 질문과 함께 각 직무영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하는 잣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게 평소 언어생활 습관이다. 응시생의 교양, 지식과 함께 발음, 말투, 어조 등을 눈여겨본다. 단어만 놓고 봤을 때 요즘 젊은이들은 유감스럽게도 과거보다 퇴보한 듯 보인다. 구사하는 낱말도 상대적으로 적고, 적절하고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아쉽다. 세 가지만 추려본다. ①되게 영어 very에 해당하는 우리 부사는 매우 다양하다. 매우, 무척, 퍽, 사뭇, 썩, 꽤, 제법,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몹시, 자못 등. 이를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문제다. 발음도 대개는 [데게], [대게]로 잘못 낸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직접 가보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이제는 피아노를 제법 잘 치는 구나”,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무척 슬펐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퍽 당황했겠군”, “그 옷은 썩 잘 어울리는구나”, “날씨가 몹시 추웠습니다”, “이번에 예정된 사업은 자못 기대됩니다”. 어떤가. 밑줄 친 부분에 ‘되게’를 넣은 것보다 낫지 않은가. 훨씬 교양 있고 스마트해 보일 것이다. ②개인적으로 바야흐로 ‘개인적으로’ 광풍이다. 특히 방송 출연자들이 더하다. 극단적인 오⸱남용이다. 영어 ‘I personally~’를 배후로 보고 있다. 서양인들은 자기 의견과 타인의 생각을 철저히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무언가를 인용할 요량이면 손가락으로 인용부호를 치며 말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이 대목이 발원지이고 시나브로 퍼진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의 유행은 심리적으로 보면 자기 확신의 부족, 책임 회피, 반대 의견 피력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대화와 소통은 어차피 개인들끼리 벌이는 의견⸱생각⸱주장의 마당이다. 스스로 조직이나 단체를 대변할 경우는 극소수일 테다. “저는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내용이 길어 별도의 텍스트가 필요할 때)”가 무난하다. 발음도 문제다. 적(的)의 발음은 유의해야 한다. 우선 ‘적’ 포함한 음절 수가 둘일 때, 가령 지적(知的)⸱미적(美的)⸱동적(動的) 같은 경우는 무조건 [쩍]으로 소리 난다. ‘적’이 들어간 3음절 이상 단어일 때는 그 앞 글자의 받침이 ‘ㄴ/ㅁ/ㅇ’이면 [적], 그대로 발음한다. [개인적] [미온적] [양심적] [성공적]이다. ‘ㅂ/ㄱ’일 때는 [쩍]이 된다. [합뻡쩍] [공격쩍]으로 소리 난다. ‘ㄹ’은 원칙적으로 [쩍]이나 점점 [적]으로 가는 추세다. [자발쩍] [저돌쩍] [정열쩍]은 된소리가 자연스럽고 [법률적] [포괄적] [현실적]은 예사소리, 즉 평음(平音)이 부드럽다. 평음의 경음화(硬音化)라는 큰 파도 속에 그 역(逆)의 분투는 반가운 일이다. ③일단(은) 말을 시작하고 나서 다음 말이 잘 생각 안 날 때 습관적으로 쓰는 것을 마주한다. ‘일단(은)’은 사전적으로 ‘우선 먼저’ ‘우선 잠깐’의 의미다. 그러니까 ‘나중’, ‘다음’이 뒤에 붙어야 자연스럽다. “일단 검토하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은 경과를 보고 다음 일정을 잡겠습니다” 등이 바른 경우다. “(최근 본 영화 중 인상적인 게 있나요?) 일단은 없고요. 음~”, “이 책은 비타민의 허와 실을 잘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일단 드네요”는 그래서 적절치 않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습니까.” “네, 저는 일단은 개인적으로 소설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안타까운 일이다.

[경기만평] 잊고 있었네...

[사설] ‘경기도 체육대회 대신 10만원’ 오산시의원의 오산 <誤算>

오산시의회 의원 2명의 주장이 논란이다. 경기도종합체육대회 개최에 대한 우려다. 2027~2028년 오산에서 열릴 대회다. 경기도가 지난 23일 오산 개최를 확정했다. 2027년 경기도체육대회와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 2028년 경기도생활체육대축전과 경기도장애인생활체육대회로 진행된다. 시 승격 38년 만에 열리는 행사다. 대회에 필요한 예산이 254억원이다. 성길용·전예슬 의원이 문제 삼고 나섰다. 예산 부담에 대한 걱정이다. 시민의 생활을 외면한 처사라고 지적한다. 예산 우선순위를 재고하라고 촉구한다. 운동장 랜드마크 조성 사업 등도 비난한다. “254억원이면 오산시민 전원에게 1인당 10만원씩 지급할 수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물론 오산시 주장은 이와 다르다. 35개 체육시설을 보완 정비하는 생활체육 SOC 확충이다. 4만명 이상의 도내 선수단이 찾아오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회다. 오산시가 처음으로 개최하는 25만 시민의 자긍심 높일 행사다. 오산시는 넉넉하지 않다. 재정자립도 경기도 18위다. 시 재정의 부담은 사실이다. 결국 투자 적절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현령비현령의 논제다.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꼭 필요하다’와 ‘필요하지 않다’가 다 일리 있다. 그럼에도 지적해두고 갈 부분은 두 가지다. 적절치 않은 시점과 역시 적절치 않은 논리다. 이 문제는 2월28일 시의회에서 통보됐다. 이권재 시장이 직접 찾아가 설명했다. 의원들은 모두 찬성했다. 거기 두 의원도 있었다. 그랬던 두 의원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필 경기도의 개최지 확정 시점이다. 돌이키기 어려운 행정 단계다. 반대 논리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시민 1인당 10만원 지급’이라는 선동이 특히 그렇다. 재정건전성을 해하는 퍼주기 행정이다. 체육대회 예산보다 나을 것 없다. 셈법도 이상하다. 254억원 가운데 100억원은 도비다. 체육대회를 개최해야 주는 경기도 돈이다. 체육대회 안 하면 이 돈은 없다. ‘10만원씩’이 어떻게 나왔나. 인접한 용인특례시에 프로축구단이 창설된다. 연간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 시장과 정파가 다른 시의원이 반대했다. 표현 방식은 시의회 5분 발언이었고 제언 내용은 심도 있는 토론이었다. 이후 시는 각계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오산시의 도민체육대회 개최도 토론 사항이다. 찬성·반대가 토론돼야 한다. 다만 이때 필요한 건 절차와 내용이다. 절차도 내용도 격에 맞아야 한다. 이게 안 맞으니까 자꾸 ‘정치’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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