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약소국 ‘몽골’의 근세 역사를 생각하며

오후 테를지국립공원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행복한 뉴스가 전해져 일행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일행이 울란바토르 자동차정비소를 전부 뒤져 중고 부품 터보를 구해 고장난 터보를 교체했다고 한다. 모두가 부품 교체에 환호했다. 오늘 저녁식사는 테를지국립공원 근처 식당에서 몽골 전통 요리 ‘후르헉’ 요리를 먹는다. 후르헉 요리는 양 한 마리를 분해해 커다란 양철통 속에 넣고 불에 달궈진 700~800도 뜨거운 돌을 양철통 속에 계속 넣어 익힌 몽골 전통요리다. 자동차 수리 소식에 모두가 귀한 한국 소주를 마시며 “가자! 이스탄불”을 합창한다. 이제는 몽골고원과 고비사막 통과에 걱정이 없어졌다. 점심으로 삼겹살에 이어 저녁에 양고기 후르헉을 먹게 되니 배가 불러 귀하게 준비한 후르헉 요리를 거의 남겼다. 숙소는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라 매우 깨끗하다. 오랜만에 밀린 빨래를 했다. 건조한 사막성기후라 속옷을 빨아 걸어 놓으면 금세 마른다. ■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는 몽골고원의 분지로 해발 1천300m 이상에 있는 도시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 1911년 청나라 멸망 후 몽골은 왕국으로 독립했다. 1919~1920년 중국 군대가 침략했다. 수흐바타르 장군이 러시아군 도움으로 중국 군대를 격퇴했다. 붉은 영웅 수흐바타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도시 이름을 울란바토르로 바꿨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한자 우매할 ‘몽(蒙)’을 사용해 야만인으로 비하하는 ‘몽고(蒙古)’로 부르는데 몽골인들은 이 호칭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몽골공화국과 우리가 1990년 국교 수립 후 우리나라에 국호를 ‘몽골’로 표기해 달라고 외교적으로 부탁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한국 브랜드 편의점, 커피숍 등이 매우 많다. 몽골 국민 가운데 한국을 다녀간 사람이 매우 많아 한국 브랜드의 가게가 잘된다고 한다. 몽골인의 꿈은 한국에 가는 것인데 한국 입국비자 받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생아의 70%가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다. 몽골인에게 약간의 동질감을 느낀다. 유전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실제로 우리 민족과 가장 닮은 종족은 만주 여진족, 일본인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 몽골의 티베트불교 역사 아침 일찍 울란바토르 시내 중심부를 통과해 고비사막 방향으로 향한다. 오늘은 몽골 남쪽 고비사막 국경도시 자민우드까지 약 680㎞를 가야 한다. 일정이 빡빡해 티베트불교 사찰인 ‘간단 사원’ 지붕을 멀리서 보며 지나간다. 몽골고원 초원을 가는 도중 마을에서 많은 티베트불교 사원을 자주 보게 된다. 몽골이 16세기 티베트불교 도입 후 몽골 주민 대다수는 티베트불교 신자다. 안내를 맡은 앙케 양에게 언제 절에 가는지 물어보니 음력 설날, 경조사 등 특별한 날에만 간다고 한다. 우리에게 대승불교는 익숙하지만 티베트불교는 낯설다. 1571년 몽골의 왕(알탄 칸)이 당시 활불(活佛)로 소문났던 티베트 라싸의 승려 소남 갸초를 몽골로 초청하고 달라이라마 명칭을 하사했다. ‘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으로 달라이 라마는 ‘지혜의 바다’, ‘전 세계의 스승’이라는 의미다. 티베트불교는 환생과 윤회를 믿음으로 한다. 현재 인도에 망명한 티베트불교 수장은 14대 달라이라마다. 현재 몽골공화국 영토는 과거 몽골제국의 영토에서 북쪽의 초원지대인 바이칼호 주변 초원은 17세기 러시아에 빼앗기고 남쪽의 내몽골 스텝 초원은 중국에 빼앗겼다. 과거 몽골제국의 3분의 1로 줄어든 가장 척박한 ‘외몽골’ 사막지대가 현재 몽골이다. 근세 몽골은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있다가 1991년 소련 해체 후 독립국이 됐다. ■ 몽골고원, 고비사막의 광야를 달린다 한가롭게 몽골고원의 단조로운 초원을 보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몽골 사람은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하다. 과거 초원에서 외롭게 혼자 살다가 오랜만에 친구나 손님을 만나면 독한 술을 밤새워 마신다고 한다. 오늘 사막의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가시거리가 무한대로 나온다. 몽골 사람의 평균 시력이 3.0이고 최고 좋은 사람의 시력은 5.0이라는 말이 있다. 고비사막의 넓은 광야는 야성미와 장엄미의 멋진 조합이다. 수백㎞의 단조로운 초원과 사막을 지나가고 있다. 내려놓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평안한 마음이다. “배움의 추구는 날로 더해가는 것이고 도(道)의 추구는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無爲)에 이르게 된다.” 경계선이 없는 끝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2500년 전 중국 노자의 말이 불현듯 가슴에 와닿는다.

[삶, 오디세이] 시인은 시집을 사지 않는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을 낼 때마다 산고의 고통을 겪는다. 노트북 앞에서 스스로 불행하고 고독한 자가 돼 현상을 들여다본다. 시의 목표는 랭보가 말한 것처럼 “미지의 세계에 도달함이며,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것”이다. 시인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저주받은 자로 만든다. 이렇게 내면의 세계로 집중해 한 편의 시가 창작된다. 그런데 이런 시집을 정작 시인이 사서 읽지 않는다. 다수의 인천시인협회 회원들이 매년 시집을 발간한다. 작년 연말에는 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원도이 시인이 ‘토마토 파르티잔’을 출간했고 지난달에는 인시협의 원로 임경자 시인이 81세의 나이에 두 번째 시집 ‘어우렁그네’를 출간했다. 이달에는 이승예 시인이 ‘코드를 잡는 잠’으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최휘 시인은 문학동네로부터 두 번째 동시집 출간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올해 문화재단 지원금에 선정돼 출간 준비 중인 시인이 여러 명이다. 이토록 힘들게 시집을 출간하는데도 시인들조차 시집을 직접 구매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출간한 시집을 시인이 무료로 사인해 주는 문화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인들 스스로 시집은 무료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문화는 시인의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중견인 정진혁 시인이 어느 날 필자에게 “시집에 사인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보낼 때 시인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며 우울하게 말했다.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출간한 시집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것이다. 또 어떤 시인은 정진혁 시인과는 상반되게 아는 시인이 시집을 발간했는데 자기에게 무료로 사인본을 주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했다. 필자는 아는 시인이 시집을 발간하면 가능한 한 구매해 읽는다. 특별한 경우는 수십권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시집을 줄 때는 저자의 사인을 받아 소장 가치가 있도록 한다. 한 권의 시집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출간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시인협회에서는 시집 사서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뜻을 함께하는 시인들이 시집 사서 읽기 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앞장선 것이다. 그리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시집을 사서 읽게끔 서로 독려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인시협상에 응모하려면 한 해 동안 발간된 회원의 저서 모두를 각각 한 권 이상씩 구입해야 한다. 필수 조건이므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시협상은 본상인 ‘오늘의시인상’과 작품상인 ‘인천시인상’이 있다. 두 상 모두 작품성을 평가해 회원들에게 수여하므로 명예롭다. 오늘의시인상은 문학적 성과가 높은 시인에게 수여하고 인천시인상은 한 해 동안 발간된 시집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시집 한 권의 가격은 한 끼 식사나 차 한 잔 정도인 대략 1만2천원이다. 시집은 가격에 비해 읽어서 얻는 효용가치가 매우 높다. 한 시인의 시적 세계에서 사고의 지평이 끝없이 넓혀지기 때문이다. 또 고립되고 파편화된 현대인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시 한 편마다 삶을 성찰하는 예술적 아포리즘이 가득하다. 이런데도 시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시집을 사서 읽지 않는다. 문화강국답게 시인 모두 시집을 사서 읽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한 끼 식사는 몇 시간의 포만감에 그치지만 잘 쓴 한 권의 시집은 평생 정신적 포만감을 준다.

[경기만평] 꿀잼 대진표 확정...

[사설] ‘대법 희망 돌리기’, 보수가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고심 진행이 주목된다. 사건을 대법원 2부에 배당한 게 22일 오전이다. 그리고 두 시간 만에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심리 속도는 보다 더 이례적이다.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22일 오후에 첫 심리를 열었다. 이틀 뒤인 24일 두 번째 심리를 연다고 발표했다. ‘이례적 속도’라는 데 법조계 이견이 없다. 이쯤 되다 보니 예상은 비슷하게 모아진다. 대법원이 ‘신속한 결론’을 낼 것 같다는 중론이다. 현실적 정치 시계는 6월3일이다. 대선일이다. 더 현실적으로는 5월12일이다. 공식선거운동 시작일이다.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는 경우다. 이 대표가 절대 유리해지는 상황이다. 파기 환송하는 경우다. 유죄 취지겠지만 후보 자격은 유지된다.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이 파기자판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이 아예 형량까지 선고하는 경우다. 부담이 워낙 커 현실성은 작아 보인다. ‘오늘 투표한다면’ 1위 유력은 이 후보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이다. 국민의힘 후보 누구도 근접하지 못한다. 국민의힘에는 추격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과제는 흥행과 단일화다. 진행 중인 당내 경선이 흥행해야 한다. ‘8인-4인-2인’의 절차도 그래서 마련했다. 그 뒤에 단일화 이벤트도 있다. ‘빅텐트’ 또는 ‘그랜트 텐트’ 구상이다. ‘한덕수 카드’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때 등장한 대법원 변수다. 흥행에는 적신호다. 당장 22일 흥행 몰이부터 틀어졌다. 4강 대진표가 확정되는 날이었다. 김문수·안철수·한동훈·홍준표 4인이 됐다. 정통 보수라고 할 나경원 의원이 탈락했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결과다. 하지만 23일 오전 주요 뉴스는 ‘대법원’이었다. 24일 심리 속행 발표가 23일 오전에 나왔다. 이날은 국민의힘 후보들의 미디어데이였다. 소신과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소식도 또 밀려났다. 온통 대법원 재판 예측이다. 국민의힘 스스로도 한몫하고 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23일 논평을 냈다. “사법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 대표는) 법꾸라지 행보를 멈추라.” 사라졌던 사법리스크 되살리기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희망 돌리기다. 여기에 개인 방송이 또 가세하고 있다. 보수 유튜버들의 희망 키우기다. 헌재에서 이긴다며 희망 고문을 했었다. 8 대 0 인용 10분 전까지 기각·각하를 장담했었다. 그들이 띄우는 ‘유죄 희망’이다. 민주당은 다르다. ‘경계’와 ‘긴장’ 일색이다. “사법부가 이상하다”(정청래 의원·22일), “안심할 수 없다”(김승원 의원·23일). ‘법꾸라지 멈추라’, ‘빨리 선고하라’는 경박한 논평과 비교된다. 대법원 결정은 빨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유·무죄는 아무도 모른다. 판결 아닌 결정의 여지도 있다. 모두 판사의 영역이다. 정당에 주어진 과제는 선거다. 좋은 공약 내고 치열하게 경선해야 한다. 이 도리가 먼저이고 ‘희망’은 그 다음이다.

[사설] 10년 만의 최다 건설 폐업... 부양책 시급하다

인천 건설업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업계를 리드하는 종합건설업체들 폐업이 줄을 잇는다. 최근 10년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종합건설업체가 문을 닫으면 그 파급효과는 연쇄적이다. 전문건설업은 물론 건설자재 제조·유통, 인테리어, 이사업계까지 이어진다. 결국 취약계층의 일자리·소득 감소로 나타난다. 물론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설경기에 숨통을 틔워줄 특단의 대책이 시급한 때다. 올해 1분기 중 폐업 신고를 낸 인천지역 종합건설업체가 13곳에 이른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분기 중에 두 자릿수의 폐업이 나온 것이다. 2015년 1분기에는 2곳뿐이었다. 이어 2016년 5곳, 2017년 1곳, 2018년 0곳, 2019년 2곳, 2020년 1곳 등이었다. 건설 불경기가 나타난 2021~2024년의 매 1분기에도 3~5곳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올 한 해 50곳 이상의 지역 종합건설업체가 줄폐업할 전망이다. 13곳 종합건설업체의 폐업 사유는 대부분 ‘사업 포기’다.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우선 사업 수주가 없다. 여기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리 등은 가파르게 오른다. 최근 수년간 가까스로 버티던 업체들도 올들어 손을 드는 것이다. 지역 종합건설업체는 대부분 대형 건설사와 공동도급 형태로 사업에 참여한다. 따라서 종합건설업 폐업은 지역 건설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지역 건설업계는 올해도 건설 경기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부동산 경기 위축에 따른 신규 수주·착공 물량 감소, 인건비와 원자재값 상승, 부동산 PF 리스크 등이 계속될 전망이어서다. 여기에 최근 전국구 대형 건설사들의 잇따른 기업회생절차 신청도 악재다.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다. 이들로부터 공동 사업 또는 하도급을 받는 인천 종합건설업체들의 폐업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들 종합건설업체의 폐업은 전문건설업체들까지 위태롭게 한다. 상하수도, 실내건축 등 지역 전문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종합건설업체로부터 일감을 받는 하도급 계약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철강 등 건설 자재 제조·납품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타격받는다. 건설업은 전후방 연관 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다. 심지어 음식업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내총생산(GDP) 비중 15%의 내수산업이다. 일자리 감소, 소비 위축 등으로 서민·소상공인 가계까지 옥죈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내수산업을 살리려면 건설 경기 진작이 필수적이다. 조기 대선 등 정국 변동에 가려 변변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집값 걱정’은 경기 부양 이후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지대] ‘폭싹 속았수다’ 신드롬이 남긴 것

바야흐로 콘텐츠의 전성기인 요즘이다. 그중 전 세계를 울린 작품, ‘폭싹 속았수다’의 열풍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51년생인 문학소녀 오애순을 시작으로 68년생 양금명, 그리고 그의 딸 01년생 새봄이까지 이어지는 소녀의 성장기는 전 세계 39개국 넷플릭스 톱10을 점령하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폭싹 속았수다’는 신기하게도 나의 이야기였다가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 같다가, 다시 또 나의 이야기 같은, 세대를 관통하는 울림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니 살면서 이렇게까지 펑펑 울어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였다. 그중 스무살 때부터 혼자 타지 생활을 시작한 필자가 가장 공감한 건 금명이가 불쑥 제주의 고향 집으로 왔을 때 아버지 관식과 어머니 애순의 반응이다. 밥 있다고, 새 밥 금방 된다고 분주하게 주방으로 향하는 애순. 날이 춥다고 서둘러 방석과 난로를 가져와 금명에게 건네는 관식.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활짝 피어난 웃음까지, 6개월에 한 번 집에 갈 때면 늘 보던 모습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100g도 사라지지 않게 했다.’ 그렇게 매번 나의 100g을 지키느라 전전긍긍하는 부모님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거는 그 몇 분을 아까워했다. 전화가 와도 후다닥 끊느라 바빴다. 말이 길어지면 늘 마지막은 짜증이 따라 붙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나서는 아주 조금, 부모의 인생에도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걸,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컸음도 알았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이들이 지금 당장 전화를 걸었으면 한다. 수화기 넘어 언제라도 나의 편이 돼 줄 그들의 행복을 바라며.

[경기시론] 트럼프발 관세 전쟁, 어떻게 대응하나

트럼프발(發) 관세 정책으로 세상이 난리다. 이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미국 내 제조업의 부흥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각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역흑자의 이득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사실상 관세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미국민이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향유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이번 관세 폭탄은 패권을 쥔 미국의 지나친 횡포로 읽힌다. 한편 이번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에 엄청난 불이익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수 기관들은 트럼프 2기 관세 부과 정책이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트럼프발 관세 정책 발표가 있고 나서 미국 시장에서는 주식·국채 투매가 속출하는 등 금융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고 수입물가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재임 시의 관세 부과 정책을 살펴봐도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정책으로 미국 무역적자는 오히려 2016년 7천350억달러에서 2020년 9천억달러 이상으로 23%나 증가했다. 더 나아가 미국의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 달성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그런 만큼 미국 입장에서 관세 정책은 지속해 갈 수 있는 사안이 못 된다. 트럼프 정부 또한 이러한 점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적절한 시점에 관세 카드를 접을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이 대중(對中) 패권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관세 정책이 전략적으로 유효한 수단이기에 미국은 자국에 손해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관세 카드를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정책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는 앞으로도 심각한 양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되고 이 싸움이 간단히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렇듯이 중국은 미국 관세 부과에 맞불 관세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맞서 1차 재보복으로 50%, 2차 재보복 조치로 21%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더니 급기야 최대 245% 관세 부과를 명시하기에 이르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전면 발효 13시간여 만에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하고 국가별 상호관세는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중국과 다른 나라를 분리해 대응하는 관세 정책 카드를 뽑아 쓰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이 중국처럼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을 대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으로서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미국의 관세 부과 면제를 끌어내는 것이 최선이다. 미국이 중국과 다른 국가를 갈리치기 하는 전술적 행보를 하고 있기에 미국과의 협상은 적절한 우리 측 카드를 제시하면 유효한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개별 기업 차원의 미국 내 투자 발표가 답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미국에 먹히는 우리 측 카드는 무엇이어야 할까.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의 산업 분야에서 무관세를 관철시킬 수 있는 카드여야만 한다. 이 분야 중국 내 제조 기업들의 입지와 저렴한 인건비 및 양질의 인력이 있는 시장을 한국, 더 나아가 한반도에 조성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은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라 할 때 이것이 미국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단기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미국과 힘을 합쳐 차차 이뤄가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추후 관세협상은 새로운 대통령이 주도할 사항이다.

[함께하는 미래] 야생동물, 공존 넘어 상생 바라볼 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는 나무 구멍에 긴 나뭇가지를 넣었다. 잠시 후 꺼낸 가지 끝에는 흰개미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레이비어드가 흰개미를 잡은 이유는 단 하나,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다.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은 처음 다가온 침팬지에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1961년 유인원 관찰 캠프인 탄자니아 곰베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어졌지만 침팬지 또한 도구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사실이 구달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생명을 존중하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에서 비롯됐다. 구달은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홀로코스트 이후 인간성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했다. 너그러운 어머니와 현명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자연과 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 생명과 생명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려면 서로의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젊은 구달은 곰베에 도착하자마자 바위 숲을 올랐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빛과 노을이 숲의 계곡 사이로 퍼지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연구를 멈추지 않은 그는 침팬지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가치를 재발견했고 지금도 전 세계를 순회하며 환경과 인권을 위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달 박사처럼 자연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담아 연구하고 행동한 이들이 없었다면 지구 환경과 생명 파괴는 훨씬 더 가속화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깨어 있는 선각자들의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류는 기후변화, 전염병, 기근, 자연재해, 대멸종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결국 자연과 야생동물을 대하는 인류의 오랜 태도와 생각이 누적돼 나타난 결과다. 그러나 구달 박사는 말한다.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야생동물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생각한다면 결코 늦은 때는 없다고. 간절한 바람을 품은 인간의 힘은 무한하며 실제로 인류는 그 끈기와 용기로 수많은 기적을 이뤄 왔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성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기꺼이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규범 속에서 질서 있는 공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공존은 함께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받는 상생(相生)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갈 때 뜻밖의 도움과 따뜻한 배려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야생동물에 대한 인류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태초부터 무수한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유지된 아름다운 지구를 떠올려보자. 그 속에서 야생동물이 지닌 고유한 존재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보다 넓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자연과 야생동물이 지닌 가치를 직접 느껴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당장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푸르른 참나무 잎의 살랑거림과 참새의 지저귐에 잠시 귀 기울여 보자. 그렇게 자연 속에 나를 놓아두는 일이야말로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돕는 상생의 문을 여는 가장 따뜻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천자춘추] 당신의 두 다리가 의사

‘일어나 걸어라. 걷지 않으면 건강은 없다. 대자연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 다리가 의사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은 워커 이강옥 박사의 걷기 철학이다. 우리의 인생은 걸을 수 있으면서 삶이 시작되고 걷지 못하면서 결국 삶이 끝나기도 한다. 걷기는 인류의 창조 때부터 직립해 두 발로 걷는 것에서 시작했다. 두 발로 걷기는 인간이 오래전부터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운동 양식으로 완벽에 가까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운동은 체력 향상과 면역기능을 높여주고 건강을 유지·증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일본의 이시하라 박사는 “암보다 무서운 병이 운동부족병”이라고 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걷기 운동으로 심장병을 치료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도 걷기 운동만으로 천식을 치료했다고 한다. 걷기 운동은 근육을 강화시키고 지방을 연소시키며 심장이나 모든 관절을 부드럽게 자극해 주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일정한 속도와 강도로 20분 이상 일주일에 2~3회 걷기 운동은 심혈관도 강화한다. 걷기 운동은 매우 안전한 운동이며 부상이 없는 운동이지만 매일 걷게 되면 다른 근육보다 특정 근육군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므로 근육을 충분하게 스트레칭하지 않으면 그 근육이 뭉치게 되고 통증 및 충격을 유발할 것이다. 걷기 운동은 부상이 없는 운동이지만 무리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 강도로 자세를 바르게 해 자연스럽게 걸어야 한다. 잘못된 자세는 다양한 신체 부위에서 근육의 불균형을 초래하므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걷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부산 오륙동해맞이공원에서 ‘2025년 상반기 걷기 여행 주간 선포식’을 개최했다. 걷기 여행 주간은 국민적 걷기 여행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걷기 여행길을 소개했다. 이제 날씨도 걷기 운동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최근에는 지역의 보건소 및 구청 등에서 바르게 걷는 걷기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오랜 시간 통증 없이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잘 단련된 체력과 바른 자세가 필요한 만큼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걷기의 과학과 운동 처방의 원리를 배우고 실천하며 오늘부터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바른 자세로 걷기 운동을 시작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힘차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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