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처벌 강화법’ 끊임없이 발의됐지만… 국회서 낮잠 [집중취재]

최근 5년간 경기지역 음주운전 재범률이 40%를 넘어선 가운데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히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음주운전 관련 처벌 수위를 높이는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19년에 이른바 ‘윤창호법’이 통과, 시행됐다. 이 법은 음주운전으로 인명피해를 낸 운전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음주운전의 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가 추진됐지만 오히려 재범률은 급격히 증가했다. 법 개정 도입 전인 2018년의 전과 1회 재범 비율은 3.8%에 불과했지만 2019년 18.1%, 2020년 47.8%, 2021년 46.6%로 대폭 상승했다. 특히 음주운전 처벌 관련 법안이 끊임없이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운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같은 당 윤창현 의원 역시 지난해 5월 어린이보호구역 내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사고 발생 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특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두 개정안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과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해외처럼 음주운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의 경우 음주운전 사망 사고 시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하거나 상습 음주운전자의 신상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음주운전자와 동승자, 술을 권한 이들까지 처벌하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주는 음주운전을 A급 중범죄로 취급, 최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대만의 경우 10년 내 두 번 이상 음주운전이 적발될 경우 상습 음주운전자로 간주, 이름과 얼굴 사진을 교통국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은 여러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하고 처벌 규정이 약하다. 이 때문에 다시 음주운전 재범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처럼 음주운전 적발 시 당장 면허를 취소하고 재범의 경우 음주운전자의 신상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책 없는 재개발 반대” 인천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빨간불’ [집중취재]

“한 동네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주민들이 견원지간이 됐어요.” 19일 오전 10시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 94의1 제물포역 북측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구역 일대. 곳곳에 ‘사업을 즉각 취소 하라’ 등 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골목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뤄진 일대 지장물 조사에 반대하는 ‘주인 허락 없이 지장물조사 시 경찰 고발’ 현수막도 있다. 이곳에는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각자 단체를 만들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주민 A씨(54)는 “이 곳을 떠나 살만한 사람들은 찬성하는데, 남고 싶은 주민들은 반대하고 있다”며 “사촌보다 친한 주민들이 이젠 얼굴만 봐도 싸운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부평구 부평동 910의5 일대 굴포천역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구역도 마찬가지. 다가구주택 곳곳에는 사업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주민대표에게 항의하는 사업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 곳도 주민 단체가 2개로 나뉘면서 서로 갈등도 극심해지고 있다. 주민 B씨(60)는 “세입자 원주민은 동네를 떠나야 하는 탓에, 토지주는 보상가가 낮아 다른 곳에 비슷한 땅을 못 사기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이 주민 갈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9일 국토교통부와 인천시 등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인천도시공사(iH)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나서 역세권 노후·저층 주거지를 재개발, 청년과 신혼부부 위주의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29~2031년까지 제물포역 인근 9만9천612㎡(3만132평)에 3천410가구, 동암역 5만㎡(1만5천125평)에 1천730가구, 굴포천역 주변 8만6천133㎡(2만6천여평)에 2천530가구 등이 들어선다. 하지만 사업 승인 및 보상 단계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공공개발인데도 아파트 분양가가 비싸 원주민들이 계속 이곳에 정착하기 쉽지 않은데다, 보상가도 낮아 타 지역으로 이주해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입자들은 이사비 지원만 있다보니, 생활환경이 보다 열악한 원도심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 A씨는 “뒷편 빌라에는 홀몸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데, 다들 개발된다는 소문에 뒤숭숭하기만 하다”며 “제 집 없는 어르신들이 또 이사를 가야한다는 소식에 울상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건설비 급증과 함께 부동산 경기 악화 등으로 사업 추진 동력이 약해지면서, 이들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구역에선 주민들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현재 이들 사업들은 모두 준공 및 입주시점인 2029~2031년의 기한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 안팎에선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의 장점인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해선 주민간 갈등 해소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윤환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은 “개발에 주민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공공개발인데도 원주민 재정착 위주의 이주대책이 없다보니 주민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 보상이나 이사비 지원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에 원주민의 일정 비율을 보장해 갈등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iH 관계자는 “보상 단계에서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등 갈등을 최소화 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세입자 이주 관련 문제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LH 관계자 역시 “원주민 재정착 등을 염두해두고 주민들과의 협의하겠다”며 “사업을 속도감 있게 끌고 나가겠다”고 했다.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民民갈등 엉킨 실타래 푼다 [집중취재]

인천시가 주민 반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을 중점 갈등 관리 대상 사업으로 선정, 이들 사업의 추진을 위해 속도를 낸다. 19일 인천시에 따르면 최근 원도심 역세권을 중심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중점 갈등 관리 대상 사업으로 선정했다. 인천시는 ‘인천시 공론화 및 갈등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공공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민원 반발 사업 등을 중점 갈등 관리 대상 사업으로 정한 뒤 이를 해결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인천시는 사업 추진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나 반대가 있는 제물포역·굴포천역·동암역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에 대해 갈등 관리에 나선다.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원도심 지역 역세권 중심의 노후화한 주택들에 용적률 혜택 등을 통해 공공이 재개발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대부분 민간재개발 사업이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것에 비해 빠른 행정절차 등으로 5~7년 안에 준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인천시는 사업에 대한 갈등을 풀기 위해 갈등관리전문가를 1:1로 지원하고, 갈등영향분석, 갈등조정, 숙의경청회, 주민설명회 등 다양한 형태로 맞춤형 갈등관리 및 지원에 나선다. 인천시는 이를 통해 사업을 둘러싼 주민들의 의견 차이를 조정하고,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본래의 취지를 살려 사업의 속도감을 확보할 방침이다. 현재 인천시는 인천도시공사(iH)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해 공공재개발의 형태인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3곳의 지역 모두 지구지정 단계는 마쳤으나 주민 갈등과 공사비 상승 등으로 인해 복합사업 승인 등의 절차는 늦어질 전망이다. 서울시 역시 최근 사업대상지 대부분의 시행을 맡는 LH와 함께 장기화하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나섰다. 인천시 관계자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의 장점 중 1개인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갈등을 선제적으로 해결 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 갈등영향관리사 등을 통해 주민간의 의견차이를 좁혀나갈 수 있도록 할 구상”이라고 했다. 이어 “복합사업 승인 등의 절차는 최대한 올해 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돌봄 정의, 지역 맞춤형 고민⋯"함께 머리 맞대야" [커뮤니티케어 중간진단③]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돕는 정책’인 커뮤니티 케어를 실현하려면 다각적인 노력이 동시에 펼쳐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별개로 나서 움직일 일이 아니고, 하물며 노인·정신질환자·장애인 등 모든 대상자를 합쳐 논의할 일도 아니다. 경기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모형 개발을 통한 시·군·구 보급 ▲추가조직 및 예산 지원 방안 마련 ▲전담 전문가 지정·운영을 통한 사업 추진 과정 컨설팅 및 성과평가 등으로 추려진다. 동시에 기초지자체와 민관협의체 등이 주거·의료·요양보험·통합재가·응급서비스 등 인프라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 고민하고, 제각각의 방안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아울러 제도권은 정책적으로 '돌봄'에 대한 명확한 용어를 정의해야 한다. 사업 대상과 범위를 진단해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를 마련해 가야 한다는 의미다. 원미정 경기복지재단 대표이사는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시·군 입장에선 기존에 하던 돌봄 사업과 서비스 및 대상자가 중복되는 경우가 있어 많은 어려움을 토로한다"며 "이전까지의 돌봄 사업은 중앙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기초지자체에 내려주는 식으로 수행했다. 앞으로는 기초지자체가 각자 설계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텐데 이 과정에서 광역지자체의 지원과 정보 공유 등이 보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경기도는 31개 지자체가 전부 다 다른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잘하는 지자체', '손도 못 대고 있는 지자체'도 많다. 이 부분을 풀어가는 게 경기도의 굉장한 고민"이라고 전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복지재단은 올해 의료돌봄 통합형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 계획을 세운 상태다. 다만 경기도형 모델에 대한 부분, 지역사회에 끼칠 영향 등은 아직 미지수인 상태다 보니 최소한의 테두리로 '농촌형', '도시형' 등의 유형만 세워뒀다. 원미정 대표이사는 "경기도가 기본적인 (커뮤니티 케어) 틀을 제시해 준다면 시·군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시·군들은 커뮤니티 케어 전국화에 대비해 각 지역 특색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부천시, 안산시는 꾸준히 관련 경험을 쌓고 있어서 2026년 전면 도입까지 남은 기간 동안 두 지자체의 노하우를 (도내) 현장에 잘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방석배 보건복지부 통합돌봄추진단장은 “지난 정부의 선도사업은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추진됐다. 현 정부 시범사업은 타깃팅을 한층 명확히 하고 정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을 노인에 한정하게 된 것”이라며 “선심성 대책이 아닌 지역 주도성 대책을 이끄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방 단장은 “지역돌봄, 장기요양, 의료서비스를 삼각형으로 그린다면 그 가운데에 ‘노인’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연계해 틀을 갖추고자 한다”면서 “(현재 시범사업을) 다양한 지자체 돌봄 서비스 등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면서 국민건강보험 등과 함께 2026년 전국 도입의 세부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명칭·지원 제각각… 갈길 먼 ‘커뮤니티 케어’ [커뮤니티케어 중간진단②]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의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사업 명칭이 달라지고, 지원 대상이 축소되는 등 정책이 혼란을 겪고 있어서다. 전국 시행까지 2년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현재 시급히 손봐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경기도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하는 부분이 있을지 살펴봤다. ■ 올해 초고령화 사회 진입…'요람에서 무덤까지' 될까 커뮤니티 케어를 설명하려면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초고령화 사회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 이상을 차지할 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고령인구비율은 지난해 11월 18.9%에서 올해 1월 19.1%, 4월 19.3%로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면 올 연말 20%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했던 일본, 스웨덴 등 국가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정책을 통해 커뮤니티 케어를 미리 준비해왔다. 이게 커뮤니티 케어의 시작점이었다. '커뮤니티 케어'는 노인·장애인·정신질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의 사회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한 정책을 말한다. 돌봄이 필요한 대상을 사회복지시설에 입주시키고 말 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재가서비스 확대를 통해 가족처럼 수발 및 가사를 보조하고, 학대 및 방임 등에서 보호하고, 직장 및 교육에서의 관계 제한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내용이다. 초고령화 사회 가속화와 함께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데에 대비하기 위해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게 선진국형 시각이다. ■ 정부 바뀌며 사업명·지원예산 변경...예산은 '뚝' 국내에서도 커뮤니티 케어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돼 왔다. 다만 아직은 전국 확장에 한계가 있고, 지자체와 의료기관 등의 연계가 버거워 '흉내내기'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지난 2018년 보건복지부는 커뮤니티 케어 도입을 발표하고 이듬해(2019년·문재인 정부)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으로 이름올 바꿔 선도사업을 실시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 들면서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시범사업이 추진 중이다. 문제는 사업명과 함께 지원 대상, 예산이 제각각 달라졌다는 점이다. 2021년(지역사회 통합돌봄)에는 만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전국 16개 지자체에 국비 181억8천800만원이 투입됐는데, 2023년(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에는 사실상 만 75세 이상 노인에 한정해 35억원이 소요된 식이다. 경기도에서도 선도사업 당시엔 ▲남양주시 ▲부천시 ▲안산시(이상 노인분야) ▲화성시(정신질환자 분야) 등 4개의 지자체가 참여했지만, 현재는 부천시와 안산시만이 남았다. 지원 대상이 축소됨에 따라 사업 위상은 낮아지고, 정책 취지 또한 흐지부지된 셈이다. 특히 현재 시범사업이 내년 말 종료되고, 이후(2026년)부터는 전국 시행이 예정돼 있어 조속한 대안이 요구된다. ■ "경기도형 커뮤니티 케어 준비하자" 전국화까지 남은 시간은 약 1년6개월이다. ‘살던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지역 내 다양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연계’하기에는 촉박한 감이 있다. 이 속에서 경기도만이라도 선제적·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주된 이유는 '노인인구 규모' 때문이다. 올해 4월 기준 전국에서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217만4천125명)로, 서울(176만2천839명), 부산(75만7천781명), 경남(68만1천880명) 등을 앞질렀다. 경기도 안에서도 고양시(17만6천993명), 용인시(16만9천297명), 수원시(16만1천380명) 순으로 노인인구가 많다. 반면 고령화율을 보면 연천군(31.8%), 가평군(30.6%), 양평군(30.0%) 등이 압도적으로 높다. 경기북부 상당수 지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상태다. 경기도 역시 상황을 인지해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 여건에 적합한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시하고, 노인 돌봄의료복합시설 등을 만들기 위해 오는 5월 중 ‘돌봄의료원스톱센터 및 혁신형 공공병원 모델개발’ 연구를 시작(경기일보 4월29일자 2면)한다는 방침이다. 이 안에 지역별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는 의견이 더해진다. ‘초고령화’ 사회인 경기북부의 한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저희 지역의 경우 군(郡)내 700여 명의 어르신을 관리하는 사회복지사, 생활지원사 등 인력이 총 57명이 불과하다. 직원 1명이 어르신 12명을 살펴야 하는 셈”이라며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인력 확충과 인프라 확대는 점점 더 절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남부와 달리 북부는 ‘의료’, ‘요양’ 등 외에도 ‘교통’ 등의 문제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돌봄 대책) 관련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면 지역별 맞춤형 대책도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살던 곳에서 여생 보내고 싶어”⋯‘커뮤니티 케어’ 어디까지 왔나 [커뮤니티케어 중간진단 ①]

경기도의 한 지자체에서 20여년간 건축직 공무원으로 지냈던 종훈 씨(58·가명)는 불의의 사고로 양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퇴사를 결심했다. 안정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불안정한 나날을 보낸 게 올해로 벌써 8년째다. ‘장애를 얻은 이상, 장애인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종훈 씨는 경기남부권의 한 장애인 관련 단체를 제2의 직장으로 선택했다. 주요 업무는 "병원을 가야 하는데 차가 없으니 택시 한 대만 불러주세요", "밤에 화장실을 가다 넘어졌는데 보호사 선생님 좀 연결해주세요" 등 연락에 응대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종훈 씨는 “주로 혼자 사시는 분들이 저희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다. 그런데 장애 여부를 떠나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서 “‘무엇을 먹느냐’보단 ‘어디서 먹느냐’가 중요하고, ‘그 요양병원 시설이 어떻냐’보단 ‘집에 안전바와 유도등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즉, 삶이 외롭고 힘들어도 내 집에서 살다가는 인생을 선호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순옥 씨(89·가명)도 공감한다. 실제로 순옥 씨는 5년 전 요양병원에 들어갔다가 버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안산시 상록구 집으로 돌아왔다. 순옥 씨는 "한평생 8남매와 부대끼며 살아서 ‘나는 외로움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구나’ 싶었다. 근데 2019년 남편과 사별한 후 고독함이 찾아와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외로워 요양병원에 들어갔는데 모르는 사람하고 얼굴 맞대면서 불편하게 사려니 오히려 더 쓸쓸한 마음이 들더라. 나오는 밥도 입맛에 영 맞지 않아서 몸무게가 15㎏ 넘게 줄었다. 한 달 정도 있다가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또래 모임 등을 참여했는데 이젠 건강이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다행히 순옥 씨의 집에는 주 2회씩 상록노인복지관에서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며 말벗이 되어주고, 집안일을 도와준다. 입버릇처럼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옥 씨는 “시설에 들어갔을 때 ‘임종만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복지관에서 저를 찾아주는 것처럼 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끔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훈 씨, 순옥 씨의 이야기처럼 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게끔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독립생활을 통합 지원하는 정책,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이야기다.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가 논의되기 시작(2018년)한 지 올해로 6년 차, 그리고 전국 도입(2026년)까지 남은 시간은 약 1년6개월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커뮤니티 케어는 어느 단계까지 진전됐을까. ■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란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독립생활을 통합 지원하는 정책을 말한다.

참여기업 0곳… ‘경기북부 물류센터’ 표류 위기 [집중취재]

경기도가 남·북부 균형발전과 중소기업 물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계획했던 ‘북부 스마트공동물류센터’ 건립이 대내외적 경제 환경 등의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기업·교통 인프라가 집중된 남부에 비해 기반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은 북부권에 물류센터를 짓겠다는 기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도는 공공 주도로 물류센터를 건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마저도 선뜻 나서는 기관이 없어 장기간 표류될 전망이다. 17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민선 8기 경기도는 경기 북부 인프라 집중 투자를 위해 ‘스마트공동물류센터’ 건립을 계획했다. 중소·중견기업 동반성장과 중소기업 물류비 절감으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스마트공동물류센터는 물류 인프라 확충이 어려운 중소 물류기업이 저렴한 임대료로 공동 이용하는 센터로, 이를 통해 도는 경기 남·북부균형발전과 기업 투자유치를 이끌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런 계획에 따라 도는 지난해 까지 북부권에 스마트공동물류센터 사업대상지를 선정하고, 오는 2026년까지 착공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도의 이 같은 구상과 달리 스마트공동물류센터를 짓겠다는 기업은 단 한 곳도 나오지 않고 있다. 북부권은 남부권에 비해 고속도로 등 교통편이 불편한 데다,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남부에 위치하면서 물류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은 데 따른 문제다. 물류센터는 교통 편의와 비교적 낮은 지가에 따라 기업 수요가 움직이는데, 이 같은 영향으로 북부권에 공동물류센터를 짓겠다는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도는 분석하고 있다. 실제 도내 주요 물류센터는 28곳 중 18곳이 경부·영동고속도로가 인접한 경기 동남부 권역에 위치했다. 도는 물류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기업이 나오지 않자 도 산하 공공기관 등에 공공주도 사업을 유도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최근 금융상황이 악화돼 사업 타당성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선뜻 참여하겠다는 기관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도 관계자는 “물류센터 건립은 기업 의사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라며 “지속해서 사업 참여 기업을 찾고, 공공이 민간과 함께추진하는 방향 등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북부권 물류수요 태부족… 교통망 확충이 우선 [집중취재]

경기도가 남부·북부 균형발전과 중소기업 물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추진하는 스마트 공동물류센터 건립이 지연되자 전문가들은 교통 인프라·물류 수요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내 물류센터가 남부권에 몰리는 것은 충분한 교통·기업 등의 수요가 뒤따르는 만큼, 북부권에 이 같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세혁 평택대 국제무역행정학 교수는 17일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소기업 물류비 절감으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동물류센터 조성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충분한 교통 인프라와 물류 수요 확보가 우선”이라며 “하지만 이런 기반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물류센터를 조성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류센터는 기업 수요에 따라 움직이는데 경기 북부권은 불편한 교통 접근성과 생산·수요자가 많은 남부에 비해 열악한 만큼, 투자 경쟁력 확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물류센터 부지 확보가 어려울 경우, 도유지 등 국유지 활용을 통한 입지 제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경기연구원은 지난 2022년 발간한 ‘경기도 스마트 공동물류센터 조성 방안 연구’를 통해 “북부권은 기업 등 물류센터와 직접된 수요가 많지 않은 만큼 교통 인프라 확충과 충분한 물류수요 확보를 위한 경제·산업 활성화 추진이 우선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경기연구원은 도내 유휴부지나 기존 산업단지 및 물류단지 등 미활용 용지를 발굴, 활용하는 개발 방식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진 교수는 “물류센터는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는 인식이 강한 만큼, 기업에게 교통·기업 활동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는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행정 기관이 기업 투자 리스크를 줄여주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경기 북부는 남부권에 비해 교통편이 불편한 만큼, 이를 극복할 재정 혜택 등을 기업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물류센터 조성은 기업 의사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이익이 따르는 지역에 수요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북부권이 남부권에 비해 여러 기반 시설 등이 부족해 수요가 따르지 않는다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재정 등 행정적 지원이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류 열풍 타고… 불법 스튜디오 ‘우후죽순’ [집중취재]

K-콘텐츠의 민낯 BTS, ‘오징어 게임’,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등 음악부터 드라마까지 전세계적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 시장이 커지는 사이 정작 제작 환경에는 불법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파주와 고양 등 수도권 인근 지역들이 K-콘텐츠의 제작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공장이나 창고로 허가 받은 건물들은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틈을 타 불법 스튜디오를 운영되며 K-콘텐츠 제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K-콘텐츠가 세계 문화 시장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민낯을 들여다 보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도심에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파주시 탄현면의 A스튜디오. 건축물대장상 공장이 있어야 할 이곳에는 스튜디오가 버젓이 영업 중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주변 이웃을 위해 소음 발생이 안 되도록 야간 시 촬영 관계자분들의 주의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창문에는 촬영에 방해되지 않도록 검은색 시트지를 붙여놨다. 내부에는 촬영이 이뤄지는 공간과 분장실, 대기실 등 각종 시설까지 갖췄다. 무대장치를 만들기 위한 페인트와 목재뿐만 아니라 조명장치, 기계 제어장치 등 기본적인 촬영 장비도 있었다. 화면상 왜곡이 생기지 않도록 벽면을 굴곡지게 만든 것까지 엄연한 스튜디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지난해 6월 불법 용도변경이 확인돼 ‘위반 건축물’로 지정, 원상복구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버젓이 스튜디오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근에 있는 파주시 월롱면의 B스튜디오도 마찬가지. 건축물대장상 창고가 있어야 할 곳이지만 건물 외벽에는 ‘티브이 제작센터’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건물 앞쪽에는 촬영에 쓰이는 지미집과 사다리, 조립식 틀비계 등이 널브러져 있었고, 내부에는 음향시설과 모니터 등 방송장비가 가득했다. K-콘텐츠 산업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경기북부 일부 지자체들이 스튜디오 불법 영업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공장과 창고시설로 허가받은 건축물이 영상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로 쓰이는 등 불법행위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건축물대장상 용도가 ‘방송통신시설’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관할 지자체로부터 이행강제금 부과 등의 시정명령을 받게 되지만, 일부 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영업을 버젓이 이어가고 있다. 한 스튜디오 관계자는 “창고를 스튜디오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용도를 변경해야 하는데, 기준을 맞추기 위한 추가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 부족한 K-콘텐츠 제작 인프라… 불법 양성의 원인 한국의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국내 제작사들은 왜 불법 스튜디오를 선택할까. 이는 OTT 시장이 도입되면서 영상 제작 공간의 수요와 공급 사이 불균형이 생겼기 때문이다. 28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과거 영화관이나 TV 등을 통해서만 콘텐츠가 공급됐던 것과 달리 현재는 OTT(Over-the-top)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콘텐츠 수요가 확대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3년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를 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의 77%가 OTT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만 해도 66.3%에 그쳤지만 2021년 69.5%, 2022년 72%로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국내외 OTT 플랫폼 이용자의 급증은 콘텐츠 소비 환경 자체를 바꿨다. 공급자가 정해진 시간에 영상을 제공하던 것과 달리 수요자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영상을 소비하는 문화가 생긴 셈이다. 이는 곧 다양하고도 방대한 양의 콘텐츠가 필요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각 플랫폼의 오리지널 콘텐츠 작품을 비롯해 작품 제작 편수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제작사들의 스튜디오 수요도 급증했다. 또 특수영상(VFX) 등 후반 제작 작업의 비중이 전에 비해 확대되면서 실내 스튜디오를 찾는 경우도 늘었다. 그러나 대형 스튜디오의 필요성과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높은 초기 구축비용과 운영 예산 부담 때문에 스튜디오의 공급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 방송영상 산업백서’에는 2022년 기준 전국 753곳의 방송영상 독립제작사가 199개의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의 제작사는 자체 시설이 없어 스튜디오를 임대해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이 되는 사이 스튜디오의 공백은 공장과 창고의 불법 용도변경으로 채워졌다. 경기일보 취재진이 경기북부지역 스튜디오 20곳의 건축물대장을 무작위로 발급해 본 결과, 14곳(70%)이 공장과 창고시설로 등록돼 있었다. 하지만 관할 지자체는 불법 용도변경 스튜디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단속에도 손을 놓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확인 후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면서도 “단속 인원에 한계가 있어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는 위반 건축물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불법 용도변경 스튜디오…무엇이 문제인가 불법 용도 변경된 스튜디오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안전사고 위험뿐 아니라 불법업체의 가격 구조 왜곡으로 시장성 저해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이는 곧 K-콘텐츠 제작 환경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28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스튜디오는 촬영 장소 구성을 위한 가연성 물질 사용으로 화재 위험 등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내재된 공간이다. 이 때문에 건축법상 창고를 방송통신시설인 스튜디오로 사용하려면 불꽃감지기, 방염, 피난구 유도등, 시각경보기 등의 안전설비를 갖춰야 하지만 불법 용도변경 시설은 이 같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지난 2014년 연천군내 드라마 촬영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약 44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또 지난 2020년에는 파주시에 있는 한 드라마 스튜디오 창고에서 불이 나 7시간 동안 진화 작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경기북부지역 소방서들은 봄철 화재예방대책에 방송통신시설의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현장 컨설팅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정작 대다수를 차지하는 창고나 공장시설 용도의 불법 스튜디오는 이 같은 컨설팅을 받지 못한다. 용도 자체가 방송통신시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소방이나 전기 등 안전점검 규제를 받지 않는 불법 스튜디오들은 K-콘텐츠 제작 환경을 위험에 몰아넣을 수 밖에 없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이와 같은 불법행위가 지속되면서 스튜디오 시장 자체가 불법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업체가 스튜디오 임대 가격을 20~30% 낮추면서 정상적인 시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제작사들의 입장에서는 더 저렴한 스튜디오를 찾게되는 만큼 정상적으로 허가를 받고 운영 중인 스튜디오는 점점 더 사지로 내몰리게 된다. 결국 이들도 다시 불법시설로 변모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으면서 허술한 관리·감독이 스튜디오의 불법 운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불법업체들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스튜디오로 허가받고 운영하는 사람들만 억울한 것”이라며 “방송영상 콘텐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튜디오 산업의 건전성 확대를 위해서는 불법업체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제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 “K-콘텐츠 발전과 건전화위해 정책적 대안 필요”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K-콘텐츠가 위상에 걸맞은 제작 환경을 갖기 위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심영섭 교수는 “콘텐츠 제작시설을 새로 짓는 것보다 기존 산업시설을 개조·증축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용도 변경과 승인 없이 임시방편으로 창고나 공장 시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불법 용도 변경은 소방시설 등 안전시설 미비로 사고를 유발할 수 있어 안전한 방송 제작 환경 조성을 위해서라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제작 현장에서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지방정부가 지역광고 효과에만 치중할 뿐, 도시개발이나 지역기반시설과 연계하는 K-콘텐츠 제작시설을 확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성과에 욕심을 내기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무분별한 불법 용도 변경의 해법으로 공동시설 구축을 꼽았다. 심 교수는 “K-콘텐츠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작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며 “수요에 맞춰 시설을 증축할지, 신축할지 계획을 세운 후 공동시설을 확충한다면 건전한 문화산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산업은 꾸준한 투자와 더불어 창의적인 영역에서 얼마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느냐가 핵심”이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기반 시설 투자 등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K-콘텐츠 제작시설이 허브를 형성하면서 내는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K-콘텐츠는 정부 주도로 성장한 것이 아닌,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생산되고 유통된 것”이라며 “정부 역할은 시장에서 확보한 국제 경쟁력을 더 키우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기존에 있는 시설을 고려해 수요에 맞는 지역별 제작시설을 분산 관리하는 게 우선”이라며 “상암DMC부터 일산, 파주까지 연결된 K-콘텐츠 제작을 위한 허브 또한 주변 교통인프라와 연결해 산업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출퇴근 30분시대 ‘활짝’... 시간제 버스전용차로 도입 [수도권 남부 교통대책]

정부가 경기 남부권 ‘시간제 버스전용차로’ 등을 도입해 버스가 서울로 원할히 달릴 수 있는 도로 여건을 조성한다. 부족한 버스전용차로로 도민들의 교통불편이 극에 달했기 때문인데, 정부는 시간제 버스전용차로를 도입해 출퇴근 시간 최대 30분가량 줄인다는 구상이다.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2일 이 같은 내용의 ‘수도권 남부지역 교통편의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국토부는 경기 남부권에서 버스가 원활히 달릴 수 있도록 만든다. 내년 하반기 경기 남부 지역∼사당·양재 간 주간선도로인 지방도 309호선 청계 IC에서 과천 IC까지 총 6.3㎞, 왕복 8차로 구간에 출퇴근 시간만 운영되는 시간제 버스전용차로를 도입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현재 경기도와 협의 중인 전용차로 도입을 통해 사당·양재역 등으로 이동하는 수도권 남부 지역 총 27개 노선버스의 출퇴근 운행 시간이 최대 24분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또 성남시에 구도심(남한산성)∼서울 복정역 구간(10.2㎞) 간선급행버스(BRT)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총 67개 노선버스의 운행시간이 최대 14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올해 중 성남 BRT 사업에 착공해 내년부터 단계적 개통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수원(1개), 용인(2개) 일반 광역버스 노선에는 주요 정류장만 정차하는 급행버스를 처음 도입한다. 기존 노선 대비 운행시간은 최대 30분 단축된다. 국토부는 오는 7월 관련 법령을 개정해 광역 DRT를 제도화해 공급 확대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교통 사각지대에 있거나 수원, 용인 등의 정규노선 신설이 곤란한 입주 초기 지역에는 광역 DRT를 운행 중이다. 이 밖에도 국토부는 광역버스 공급 확대를 위해 올해 활용할 수 있는 71인승 2층 전기버스 50대 중 40대(80%)를 수원, 화성, 용인 등에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2층 전기버스는 용인에 14대, 수원·화성에 각 10대, 안산에 3대, 시흥에 2대, 오산에 1대 투입된다. 이를 통해 하루 광역버스 수송력을 1만8천401명 높일 것으로 기대했다. 국토부는 남부 지역에 5개 이내의 광역버스 노선 신설도 추진한다. 오는 6월 노선위원회를 거쳐 확정된다, 강희업 대광위원장은 “수도권 전 지역 출퇴근 30분 시대 실현을 위해 북부권 및 동부권 교통대책 등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버스 전용차로 손질… 대중교통 지형 ‘확’ 바꾼다 [수도권 남부 교통대책]

정부가 경기 남부권 전용차로·광역버스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경기도도 도내 시내버스 전용차로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아 나선다. 도는 신도시 건설 등으로 교통량이 늘어나는 지역을 중점적으로 전용차로 신설·개선 방향을 찾을 방침인데,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떨어진 노선에 대해 중점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2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이달부터 도심 속 차량 정체 등을 해소하고, 대중교통 이용객의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도내 버스전용차로 개선 작업에 착수한다. 도는 이를 통해 오는 2030년 이후 도내 신도시 입주 계획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버스전용차로를 개선·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도내 23개 구간에 길이 83.1㎞의 가로변 버스전용차로가 있다. 가로변 차로는 도로 중 가장 우측 차로 파란선을 그어 만들어 버스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운영 방식으로, 지난 2004년부터 BRT가 확대되면서 가로변 버스전용차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도내 BRT 구간은 총 18곳, 길이는 173.7㎞에 달한다. 2기 신도시 개발 등으로 경기도 전체 인구의 약 55.8%인 761만명이 거주하는 수원, 화성 등 경기 남부권에는 하루 평균 32만9천여명이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오가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경기도 광역교통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도민들의 대중교통 이용률은 41.9%로 나타났는데, 특히 주거 분산정책인 1·2기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출퇴근 대중교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도는 기존 도로·기반시설이 신도시 입주로 인한 인구 증가로 대규모 교통량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이 같은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버스전용차로 도입 여건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수시로 바뀌는 도시 상황과 교통 여건 등으로 버스전용차로 신설·개선을 모색할 시점”이라며 “도로 여건 등 시대 변화를 반영,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최적의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은 기존 도로 확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상습정체구간에 대한 전용차로 활용도를 높이고 흐름이 원활한 구간에 모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혼합차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 교수는 “수도권 도심 도로 확장은 사실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버스전용차로 개선을 희망하는 전체 구간에 차량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 통행량을 섬세하게 조사해 시간대 별로 운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텅 빈 인천 도서관' 개선 혁신 TF 가동…예산 확보 과제 [집중취재]

인천의 공공도서관 이용률이 급락(경기일보 4월22일자 1면)한 가운데, 인천시가 도서관 혁신을 통한 복합지식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25일 시에 따르면 최근 도서관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이용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도서관을 모든 세대가 찾을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을 마련했다. 시는 우선 노후한 도서관의 환경 개선을 통해 쾌적한 도서관 환경을 조성하고, 종전 지어진 독서실 형태의 열람실을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공유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인천의 공공도서관 64곳 중 49곳(76.5%)에 이르는 도서관이 지어진 지 10년 이상 지난 노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 및 환경개선 등이 필요하다. 시는 우선 6억3천여만원을 들여 미추홀도서관의 열람실에 오픈형의 북 카페 등을 조성하고, 스터디 카페처럼 열린 공간으로 변화시킬 방침이다. 이를 통해 서로 상호 교류하면서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형태로 탈바꿈한다. 또 시는 도서관에서 다양한 전시회 및 공연, 작은 음악회 등을 여는 ‘(가칭)요기조기 음악회’를 통해 지역의 주민들이 문화 예술을 즐기러 도서관을 찾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인천문화재단 등과 협력해 젊은 청년 예술인들을 활용, 이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시는 인천의 총 인구 중 55~65세 은퇴자가 18%(55만명)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도서관 수요 계층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인천고령사회대응센터와 연계, 도서관에서 은퇴자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일자리·사회활동 지원 프로그램 등을 확충 및 신설한다. 다만 이 같은 시의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중·장기적인 도서관 개선 계획과 지속적인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시는 우선 앞으로 3년 간 5개 도서관을 개선하는 단기계획을 추진한 뒤, 나머지 도서관에 대한 장기계획 등도 마련할 방침이다. 이강구 인천시의원(국민의힘·연수5)은 “현재 공공도서관이 위치한 곳들은 대부분 고령화가 이뤄지면서 이용하는 사람도 줄고, 지역에서 잊혀져 가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많다”고 했다. 이어 “조용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도서관에서 분명히 필요하다”며 “다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도서관에 다양한 연령층이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과 문화가 공존하고, 좀 더 열린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시민들의 인식 개선 등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남 시 문화정책과장은 “도서관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복합지식문화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가겠다”며 “도서관의 기능을 넘어 도서관이 모든 세대를 아우를 거점공간으로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곳간… 김동연표 민생사업 ‘비상등’ [집중취재]

경기 침체 지속으로 경기도가 세입 감소에 직면하면서 민선 8기 주요 사업이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는 부동산 시장 악화 탓에 취득세를 중심으로 세입 감소를 겪고 있고, 31개 시·군에 지방교부세를 내려주는 정부 도 감세 정책과 내수 부진이 겹치며 총세입 축소를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분기(1~3월) 도 세입 실적은 지난해 같은 분기 수준인 3조6천억여원이다. 지난해 1~3월 도는 부동산 시장 악화로 취등록세 징수액이 줄어든 탓에 2022년 1분기 세입(3조9천692억원) 대비 8.6% 감소한 3조6천287억원을 거둬들였는데, 올해도 비슷한 실적을 보인 것이다. 정부 역시 올해 국세 수입 예상치를 지난해 본예산안(400조4천570억원) 대비 8.3% 낮은 367조3천750억원으로 잡았다. 올해 법인세가 전년 대비 26% 감소하고 내수 부진으로 여타 세입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해와 같은 세수 결손 상황이 없다는 가정하에 지방교부세의 원천인 내국세(개별소비세·부가가치 등) 징수 규모가 전년 본예산 대비 10.2% 줄 것으로 전망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국세 감소 이유는 정부의 법인세를 비롯한 감세 정책 여파와 내수 경기 부진”이라며 “지방교부금은 내국세의 19.24%가 할당되는 구조로 내국세 감소는 교부세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자 도는 주요 사업에 대한 재원 부족 우려에 봉착하고 있다. 지난 23일 경기도의회는 김동연 지사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최대 성과로 꼽히는 ‘판교 4차 산업혁명센터 건립’ 관련 동의안을 심의, 보류 결정했다. 세수 부족으로 추가경정예산조차 편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 30억원의 운영비를 지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도는 세입 부족 상황에다 8월 도의회 후반기 원 구성 일정이 겹치면서 다음 달 시·군과 시행하는 대중교통 정책 더(The) 경기패스, 지역화폐 인센티브 국비 매칭 등 추가 재원을 요구받는 사업에 대한 추경 시점을 정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1분기 세입 감소 추세가 올해 계속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와 도의 공통된 시각이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8월 전후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경제 정책이 발표되는 등 경기 변동 요인은 하반기에 집중된다”며 “올해 경기가 지난해 수준까지 나빠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지만 아직은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도 관계자는 “1분기 세수 확보 실적이 지난해 수준으로 좋은 편은 아닌 상황”이라면서도 “세수 부족 여부를 파악하려면 2분기까지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주거빈곤 아이들 "곰팡이 핀 반지하... 집이 더 괴로워요" [집이 무서운 아이들]

“엄마, 집에 들어가기 무서워요. 우리 집은 왜 곰팡이가 가득해요?” 23일 오전 10시 수원의 한 주택가. 허름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이 나온다. 성인 4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 화장실과 부엌의 경계가 모호한 거실,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여러 번 덧바른 벽지와 장판, 낮에도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아홉 살 희진이의 집이다. 매일같이 고장나는 보일러 탓에 집에서도 양말을 두세겹씩 신어야 하며 추운 겨울이 되면 수돗물이 얼어 세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곰팡이가 핀 벽지 때문에 매일 밤 가려운 피부를 벅벅 긁어 희진이의 온몸엔 새빨간 상처가 가득하다. 여덟 살, 열 살인 지연이와 지혁이 남매에게 허락된 공간은 안성의 33㎡ 남짓인 한 주택. 비좁은 공간에 들일 수 있는 가구는 엄마와 몸을 포개고 잘 수 있는 매트리스가 전부인 상황에서 지연이와 지혁이의 방은 꿈도 꿀 수 없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면 담배 냄새가 좁은 집안에 가득 차 마음 편히 열 수 없다. 얼마 전 친구 집에 다녀온 지혁이는 요새 부쩍 말 수가 줄어들었다. 커다란 텔레비전이 놓인 아늑한 거실,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방, 방마다 놓인 침대와 가구. 지혁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아늑한 집이었다. 따뜻한 온기로 아동을 안전하게 품고 보호해야 하는 집이 취약계층 아동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공간이 됐다. 주거 환경이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아동주거빈곤가구의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아동주거빈곤가구는 지하, 옥탑방, 쪽방 등 비주택이나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거주하는 만 19세 미만 아동 가구를 의미한다. 이 같은 가구는 지난 2021년 기준 경기도내 10만1천657가구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 정확한 현황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과거 통계도 명확한 조사가 아닌 가구당 비율로 예측한 수치인데,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경기도는 실태 파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현숙 서정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법적으로 정해진 주거 환경에서 지내지 못하는 아동 가구가 많지만 아직까지 잘 드러나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좋은 집에서 자랄 수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이 보호자에게만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이들을 발굴해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맞춤 지원 전무… 주거급여로 생활 개선 ‘역부족’ [집이 무서운 아이들]

경기도내 주거 빈곤을 겪는 아동들이 최소 1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는 중위소득 47% 이하에게 주거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경제 활동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임차료를 지급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구별 1인 가구 25만5천원에서 6인 가구 48만2천원 등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아동주거빈곤가구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기초생활수급비, 아동수당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각종 수당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아동주거빈곤가구를 위한 수당은 없다. 그나마 경기도에서 이들을 위한 지원 사업은 집을 청소하고 도배 및 장판을 새로 해주는 ‘클린 서비스’ 단 한 개에 그친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문제인 주거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은 뚜렷하지 않다. 이처럼 아동가구가 주거 환경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이 아동들은 집에 대해 안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2021년 경기도 아동가구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내 주거 빈곤을 겪고 있는 아동가구 중 63%는 현재 주택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주거비 부담으로 식비 등 다른 지출을 줄인 경험이 있는 비율은 주거빈곤아동가구가 61.7%로 아동가구(27.5%)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된 집이 아닌 곳에 살아가는 것도 버겁지만 이를 위해 식비까지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각 지자체마다 아동주거빈곤가구에 대한 지원 근거가 상이한 상황이다. 도내 31개 시·군 중 20곳은 주거복지 지원 조례에 아동주거빈곤가구를 지원 대상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관련 지원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특히 아동인구가 18만여명에 이르는 수원특례시조차도 주거빈곤을 겪는 아동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이를 개선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군포, 부천 등 나머지 11곳의 경우 이들에 대한 지원 조례가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 복지 체계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동주거빈곤가구를 위한 주거 급여를 개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승은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복지 시스템에선 아동의 빈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동들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빈곤은 대물림 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 의료, 교육 등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린다. 아동주거빈곤가구에 대한 명확한 실태조사와 아동 주거 급여 등 아동을 위한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경기도 관계자는 “도내 아동주거빈곤가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인력 문제 등으로 인해 정확한 실태 조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클린 서비스 이외에 이들 가구에 대한 지원책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동주거빈곤가구를 발굴하고 알맞은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돈맥경화에… 경기 지방도 사업 지연 ‘악순환’ [집중취재]

경기도내 시·군 곳곳을 잇는 지방도 건설사업이 예산 투입과 보상 지연, 재설계 등의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 매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장이 늘다 보니 전체적으로 사업 진행 속도가 더뎌지는 데 따른 문제로, 경기도는 지난해보다 사회적간접자본(SOC) 예산이 대폭 상승한 만큼 조기 착공·준공 사업장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21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지난 2021년 고시한 ‘제3차 경기도 도로건설계획’(2021~2025년)에 따라 20개 지방도 건설사업을 확정했다. SOC 예산을 투입해 지방도 건설사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도내 시·군 간선도로망을 연결해 지역간 균형발전을 이루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도는 파주, 양평, 연천 등 도내 각 시·군에서 총사업비 8천111억원을 들여 64.33㎞의 지방도 확포장, 개량 등을 계획했다. 문제는 도의 지방도 예산이 적기에 투입되지 못해 단 한 곳의 사업도 준공되지 못한 데 있다. 지방도 사업은 100% 도 자체 예산으로 진행되는 만큼 한정된 지방비 예산을 여러 사업장에 배분하다 보니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아울러 매년 도내 공시지가가 상승하면서 토지 보상에도 난항을 겪는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지방도 건설사업이 지연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도내 토지 가격은 12.31% 상승했다. 이 때문에 제3차 도로건설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지방도 사업은 지난달 기준으로 2개 사업장만 착공된 실정이다. 일례로 제3차 도로건설계획에 포함된 용인 완장~서리 지방도 321호선 4차로 확장사업(총 연장 4.61㎞·사업비 640억원)은 지난해 착공 예정이었지만, 예산 투입이 늦어지면서 투자심사를 받는 중이다. 또 안성 양기~양지(지방도 302호선) 4차로 확장(총 연장 2.13㎞·사업비 211억원)도 보상비 상승 등의 문제로 올해 설계를 진행할 예정이다. 파주 축현~내포(지방도 359호선) 4차로 확장사업(총 연장 2.66㎞·사업비 318억원)은 2022년부터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도로 안전기준이 변경돼 선형(노선)을 다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재설계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도 관계자는 “지방도 건설사업은 도내 모든 시·군에서 진행돼 예산 안배가 골고루 투입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개통이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착공과 준공을 차례로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민 삶과 밀접한 SOC… 예산 적기 투입 필요” [집중취재]

경기도내 지방도 건설사업에 예산이 제때 투입되지 못해 지연되자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편성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자체 예산은 복지 등 수요가 높은 곳에 우선 투입되기 때문인데, 도내 주요 도로 간선망을 이어주는 지방도 건설사업도 도민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경기도가 SOC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자원 조달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진세혁 평택대 국제무역행정학 교수는 21일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방도 건설사업은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구조상 사업 적기 추진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결국 예산 투입이 늦어져 곳곳에서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에 따른 도내 불균형 발전과 사업비 증대 등의 우려가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도는 지난해보다 2천181억원 많은 4천445억원의 지방도 관련 예산을 올해 편성했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지방도 건설사업은 SOC 사업 일환으로 추진되는 만큼, 예산이 우선 집행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통해 사업 적기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지방도 건설사업은 도내 지역 간 균형발전을 이끄는 핵심 사업으로 볼 수 있기에 도가 예산 편성에 있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지방도 사업별 시급성을 따져 도 자체적인 자원 조달 계획을 마련해 도가 추구하는 균형발전을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 교수는 최근 지자체 세수 결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도 건설사업 중요도를 분석, 적기 추진을 위한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매년 도내 토지 비용이 상승하는 만큼, 토지 보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토지 매입에 나서야 하는 필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예산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면 도시 불균형 문제는 물론 주민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며 “이는 도내 시·군 간 도시 연결성과 연속성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SOC 사업 적기 추진을 위해 자체적인 단계별 예산 투입 계획 등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주민 편의성 향상과 사업 적기 추진을 위해 사업 단계별 로드맵 등을 마련, 이에 따른 사업 추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텅텅 빈 ‘공공도서관’… 인천지역 문화복합공간 탈바꿈 시급 [집중취재]

“요즘 누가 멀리있는 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봅니까? 그냥 집 앞 카페나 독서실을 가죠.” 21일 오후 4시30분께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학나래도서관 열람실. 시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한 20여개의 좌석이 모두 텅 비어있다. 열람실 밖에 있는 6인용 책상 5개에는 고작 4~5명이 앉아있고, 그마저도 책이 아닌 노트북 등을 켜 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윤선영씨(39)는 “아이들과 함께 매주 도서관을 오는데, 언젠가부터 열람실은 텅 비어 앉아서 책 보는 사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며 “밖에 있는 공용 책상에도 대부분 태블릿 등을 쓰는 사람들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젠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도 옛말”이라며 “학생들도 스터디카페를 가기에 도서관에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남동구 구월동 미추홀도서관도 마찬가지. 책이 가득한 3층 자료실에는 6인용 책상 18개가 있지만, 8~9명의 시민들만이 태블릿을 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지하 1층 열람실엔 334개의 좌석이 있지만, 20여명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인천지역 공공도서관이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코로나19 전후로 노트북·태블릿 등이 확산하면서 책을 읽는 시민들이 줄어들어 도서관 이용률이 급감한 것은 물론 원도심 등 도심 외곽에 있다보니 인구 감소 등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역 안팎에선 인적이 끊겨가는 공공도서관을 많은 시민이 찾을 수 있는 문화 복합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인천지역 64곳의 공공도서관의 방문자 수는 지난 2019년 1천580만8천85명에서 해마다 줄어 지난 2022년 867만5천659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계양·연수·중앙도서관 등 대형 도서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1곳 당 1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0명 미만에 그친다. 공공도서관 중 열람실이 있는 30곳의 공공도서관은 1일 5천96명이 이용 가능한 규모지만, 이용 인원이 적어 사실상 많은 공간을 놀리고 있다. 시는 이 기간 코로나19로 이용자 수가 줄어든 것은 물론 모바일·디지털 매체 확산, 인구 감소, 도심 외곽 위치 등 복합적인 현상으로 공공도서관의 이용률이 급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원인을 빼더라도 해마다 이용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며 “지난해 이용객의 최종 통계를 확인해봐야 하지만, 계속해서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안팎에선 점점 쇠퇴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을 사회 변화에 발맞춰 주민들이 찾을 수 있는 지역 거점 공간으로 바꾸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라북도 전주시는 이 같이 쇠퇴하는 공공도서관을 책과 문화,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전주지역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에 각종 체험프로그램까지 연계, 많은 시민이 도서관을 찾도록 하고 있다. 이상정 미추홀도서관장은 “인천의 대표 도서관이지만, 크기에 비해 찾아오는 사람이 계속 줄어들어 공간 활용이 좋지 않다”며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까지 찾아올 수 있도록 전반적인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도서관을 확장한 개념의 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켜 지역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국 봉화 종착지… ‘수원화성 봉돈’ 불꽃 되살리자 [집중취재]

1796년 9월,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이를 외호하기 위해 수원화성을 설계했다. 아버지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정조가 수원에 자주 머물게 되면서 성 안의 유일한 봉수대인 ‘봉돈(烽墩)’은 남산의 봉수대와 함께 ‘제2의 한양’을 지키는 전국 봉화의 종착지가 됐다. 봉수는 횃불(봉)과 연기(수)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다. 높은 산에 올라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그 신호를 알렸다. 평상시엔 1개의 봉수가 피어올라 나라의 안녕(安寧)을 상징했다. 적국이 국경 가까이 나타나면 2개가 올라 위급함을 알렸고, 국경에 이르면 3개, 침범 시 4개, 전투를 시작했을 땐 5개의 봉수가 모두 올랐다. ‘육지’에선 부산 동래 다대포에서 피어오른 불이 용인 건지산과 석성산을 거쳐 수원으로, ‘바다’에선 전라도 순천의 횃불이 안성 흥천대에서 서봉산을 통해 시속 100㎞로 달려와 봉돈의 불을 밝혔다. 이렇게 전국의 횃불이 수원까지 모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 남짓. 매일 오후 8시가 되면 전국에서 쏘아올린 ‘이상 없음’을 뜻하는 1개의 봉수가 봉돈에 도착해 어김없이 행궁을 비췄고, 이를 본 백성들은 무사히 두발 뻗고 잘 수 있었다. 봉돈은 지금도 수원화성의 동이포루와 동이치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있는 것과 다르게 봉돈은 행궁을 마주보기 위해 유일하게 성벽에 맞물려 성곽 중간에 만들어졌다. 20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벽돌을 쌓아 올려 정교하게 지어진 예술적 특징은 여전하다. 이러한 ‘봉돈’은 1896년까지 100년간 불을 밝혔지만 왜구의 침입 가능성이 적어지고 전신(電信)이 생기면서 불이 꺼졌다. 1971년부터 2단계의 복원정비사업을 거쳐 보존됐으나 그 가치는 희미해진 지 오래다. 수원화성이 경기도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지만, 봉돈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의 새로운 콘텐츠 요소로 ‘봉돈’을 재조명해 화성을 더욱 알리고,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해득 한신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 시대 전국엔 650개의 봉수대가 있었지만 종착지로서의 봉수는 남산과 화성 단 2곳 뿐이었다”며 “봉돈의 건축 특징, 가치 등을 알리는 것은 역사문화적으로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년째 판박이 관광사업… 관광객 발길 ‘뚝’ [집중취재]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의 관광특화사업이 수년째 정체되면서 내·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안팎에선 수원화성의 성곽 등을 활용한 새로운 전통문화·관광 콘텐츠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수원문화재단에 따르면 수원화성의 관광객은 지난해 103만901명으로, 지난 2016년(166만9천847명)과 비교해 38% 감소했다. 특히 같은 기간 외국인은 14만6천648명에서 4만796명으로 72%나 대폭 줄었다. 관광객이 7년째 꾸준히 줄고 있지만, 수원화성의 관광 사업은 매년 제자리걸음이다. 정조대왕 능행차·행궁동 왕의 골목여행·국궁장 등 관광체험시설·화성어차 탑승 등의 관광사업이 수년 간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1년부터 화홍문 등에 미디어아트쇼를 추진하는 사업이 만들어진 정도다. 특히 1979년 수원시가 화성의 성곽을 모두 복원해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성곽을 홍보, 활용한 관광 사업은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수원화성을 다녀간 관광객 홍기배씨(75)는 “중학생인 손자와 수원화성에 왔다가 ‘왜 봉수대가 아닌 봉돈이라고 부르느냐’, ‘봉돈에 왜 연기나 불이 없느냐’는 등의 질문을 들었다”라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성곽, 봉돈을 그대로 놔두기 보다, 실제 연기를 피우거나 그게 어렵다면 불꽃 모양의 전등 등을 달아 밤에 멀리서도 환하게 보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원화성만의 시그니처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봉수대를 활용한 관광사업이 활발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서울시는 수원 봉돈과 함께 전국 봉수의 집결지이던 ‘남산’ 봉수대에서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 12시에 연기를 피운다. 지난 2006년부터 서울시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사업 중 하나로 1구의 봉수대에 10분간 연기를 피워 봉수대의 역할을 알리고, 남산을 홍보하고 있다. 시민들이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뿐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강릉시 역시 지난해 9월 ‘소동산’ 봉수대에서 거화의식을 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봉수의 면모를 재현해 홍보에 전념할 계획을 세웠다. 안국진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수원화성에서 ‘정조대왕 능행차’ 행사를 큰 규모로 하기 때문에 봉돈에도 불꽃을 피워 능행차와 맞물려 홍보하고, 세계적인 문화 관광 이벤트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성곽이 보존돼 있지만, 성곽에 대한 홍보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봉돈의 역할과 기능, 성곽에서의 신호 체계, 성곽의 기능 등 교육하고 홍보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마케팅 대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문화재단 관계자는 “수원화성이 세계유산인 만큼 시설물에 인위적인 조작을 하려면 문화재청의 심의가 있어야 한다”며 “수원화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봉돈을 이용한 이벤트를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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