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호의 보물읽기](27)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때 거란의 침입을 받자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판각되었으며 처음 새겼다하여 초조(初雕) 대장경이라 부른다. 송나라 대장경의 내용과 체재를 토대로 하였으나 고려 독자적으로 판각 인쇄술과 송 대장경에 탈락된 내용을 보충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중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 따르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2년(1011)에 시작하여 선종 4년(1087)까지 70여 년 동안 6천여 권을 판각하였다고 한다. 고려수도인 개경의 현화사 등지에서 판각하여 흥왕사 대장전에 두었다가 대구 부인사로 옮겨 보관하던 중 고종 19년(1232)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초조대장경판은 지금 전해지지 않지만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은 국내에 약 300여권과 일본의 난전지(南禪寺)와 쓰시마 등에 약 2천500여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불경은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1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223.5㎝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중 하나다. 초조대장경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 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인쇄본에서도 경(敬)자의 한 획이 빠져있는 점, 각 장의 글자 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와 다른 점, 책의 장수 표시로 장(丈)자를 쓰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등에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 제1로, 1천년전인 11세기경에 인쇄되었음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장덕호의 보물읽기]26. 요지연도(瑤池宴圖)

요지연도는 중국의 주나라 목왕(穆王), 또는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서왕모(西王母)의 거처인 곤륜산(崑崙山)의 요지(瑤池)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전설을 그린 그림으로, 환상적인 곤륜산 요지에서 아름다운 여신 서왕모와 지상의 인간이 만나 연회를 즐기는 장면을 8폭 병풍으로 그린 것이다. 제1폭에서 제8폭까지 파노라마식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구성으로 이러한 형태는 궁중에서 애호한 병풍화로서 화면 구도나 포치법, 각 도상에서 십장생도와 같은 궁중회화와 관련성이 있어 요지연도는 주로 동궁의 처소에 베풀어졌다고 한다. 화면은 험준한 곤륜산의 암벽과 함께 3천년에 한 번 열린다는 복숭아와 소나무, 괴석, 사슴, 학, 공작 등에 둘러싸여 궁녀와 시종을 거느린 채 각각 잔칫상 앞에 앉아 있는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이 중심이다. 이들은 제4폭과 제5폭에 그려져 있는데, 봉황과 선녀들의 주악과 가무를 감상하며 여흥을 즐기는 모습이다. 제3폭의 아래쪽에는 목왕이 끌고 왔다는 8마리의 준마와 수레가 있다. 요지연도에 나타나는 그림의 소재들은 하나하나 모두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진채를 조화롭게 사용하고 있어 화려하고 세밀하다. 화면 전체에는 장수(長壽)의 상징적 의미가 내포된 인물과 반도(蟠桃 복숭아)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들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특히 파노라마식 화면 구성은 독특하면서도 웅장하고, 구도는 안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청록의 채색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청록과 적색의 대비를 통하여 강렬하면서도 차분한 효과를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통일된 색감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유명화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현전하는 많은 요지연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지연도는 탄생 축하와 혼인용 및 축수용 병풍으로 많이 그려졌던 그림이다. 전통사회에서 탄생, 혼인, 회갑은 삶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고, 잔칫상 주변에 둘러치던 그림인 요지연도는 요지의 신선들처럼 불로장생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자주 등장하던 화재(畵材)이다. 즉 옛 사람들은 제약된 현실에서 벗어나 요지 같은 신선세계에서 살고 싶어했다. 이 그림은 그런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문화원에서 놀자]<7>안산문화원 '안산향토사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연작을 전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본래 식물원이었지만 수련 전시에 초점을 맞춰 1999년부터 6년간 건물 개조공사를 벌인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모네의 소망대로 길게 펼쳐진 수련 연작을 자연 채광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작품을 위한 미술관'으로 구축한 것. 겉만 웅장하고 화려하게 완성한 전시공간과 그 품격이 다른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갑자기 왜 머나먼 이국 땅의 미술관 타령인가. 도내 한 문화원이 이처럼 유물을 수집한 후 그에 맞춰 정체성이 뚜렷한 전시공간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실 그 규모와 역사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수많은 공연미술공간과 문화교육센터의 등장에 갈 길을 잃고 휘청거리는 문화원이 '선 소프트웨어, 후 하드웨어'를 지향하며 마련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위를 따질 수 없을만큼 의미가 깊다. ■ 도내 문화원 중 유일한 '등록 박물관'을 아시나요 "저희가 자랑거리가 아주 많아요. 다른 문화원하고 비교하면 안되죠. 이렇게 잘 지은 문화원 건물에 향토사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도 있잖아요. 지역 교사와 학생의 놀이터나 다름없어요." 22년간 안산문화원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우(59)씨는 연신 자랑에 침 마를새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안산 시민의 생생한 역사 교과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박물관의 유물 대부분이 이씨가 20여년전부터 직접 수집하고 매입한 것들이다. 도내 문화원 중 최장수 사무국장으로 꼽힐만큼 오랜 경력과 전문성을 자랑하는 이씨는 지난 1991년부터 도시개발사업에 사라져가는 안산의 마을 곳곳에서 '고물'을 주웠다. "헐리는 마을에서 나온 것은 우리 지역의 생활사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인데 막 찍어버리고 묻어버리니까 아깝더라고요. 그렇게 수천점을 모으고 기증받아 향토사료관을 만들었어요." 포크레인을 동원해 땅 속에 묻혀있는 '연자방아'를 꺼내고 버려지다시피 야산에 방치되다시피 버려져있던 '태실'도 수거했다. 이 태실은 왕가의 태를 묻은 석실로, 안산 단원구 고잔2동 주공아파트 8단지에서 출토됐다. 또 제보를 받고 찾아간 안산 반월동의 한 빈집에서 찾은 고문서와 고서적 300여권을 발견, 주인을 찾아 문화원이 위탁관리하기로 했다. 안산문화원은 그렇게 10여년간 모으고 모은 것을 보여주는 향토사료관을 운영하는 한편, 꾸준히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과 기록물을 수집하고 매입했다. 2008년에는 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하기에 이른다. "도내 문화원이 운영하거나 추진중인 향토사료관은 있지만 등록박물관은 유일하죠. 그 요건을 갖추기가 만만치 않거든요. 예산 지원이요? 그것보다 전문가가 평생 직장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최우선이에요." 전국에서도 유사 모델을 찾기 어려운 '문화원이 등록한 박물관'은 전문 인력 확보에서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역시 사람이 힘이다. 지역문화원들이 하나같이 '예산 지원에 대한 간절함'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전문인력의 안정적 수급'을 주장하는 것이, '정답'임에도 낯설고 색다르다. 그 색다름은 '지자체장 변화에 따른 문화원 인력 물갈이'와 같은 불편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저라고 왜 자리 내놓으라는 압력이 없었겠어요? 초창기부터 향토사에 푹 빠져 안산을 샅샅이 뒤지고 기록했는데 그게 다 제 머리에 있으니 힘들게 살아남은거죠. 문화원장이 바뀌거나 자치단체장 변화에 상관없이 문화원의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근무한다면 1종 박물관 등록이 어렵겠습니까." ■ 박물관이 연중무휴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교과서 11일 오전 10시. 새소리와 닭울음소리가 허공을 가르던 문화원이 시끌벅적해졌다. 인근 어린이집의 4~5세 원아 20명이 문화원 1층의 안산향토사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자못 진지했던 아이들은 체험공간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쉴새없이 조잘거리며 낯선 옛 물건을 서로 만지며 까르르 웃는다. 시간이 흘러 한산해진 박물관에 또 다시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방과 후 들러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친구들과 전시장을 구경한 후 떠난다. 이같은 초등학생들의 방문이 오래됐나보다. 박물관 정수기에는 종이컵 대신 약수터에서 볼 수 있는 바가지 하나가 걸려 있다. 최현호(석호초 4년)군은 "지난번에는 엄마랑 같이 왔었는데 재미있었다"며 "그 이후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가끔 들러 전시를 본다"고 말했다. 연중무휴 어린이의 놀이터이자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안산향토사박물관은 1종 박물관으로 등록한 후 도비와 시비 1억원을 지원받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건평 약 2천200m규모의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수장고 등이 있다. 보유 유물 2517점 중 300여점을 상설 전시하며 매년 2~3회에 걸쳐 주제별 유물을 돌아가며 선보인다. 이 곳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선사시대, 삼국시대에 안산에 사람이 살았음을 방증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현재 주요 시설과 지정문화재 등을 모형과 멀티미디어 자료로 보여준다.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민속유물을 의식주로 나눠 전시하는 한편, 안산의 전통놀이인 둔배미 놀이를 소개하면서 지역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박물관은 또 맷돌과 다듬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역사적 의미가 깊은 유물부터 실제로 매일 알을 낳는 닭을 키우는 전통가옥 등을 만날 수 있는 야외전시실도 있다. 야외전시실에서는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폐능지에서 출토한 '석양'과 왕가의 태를 묻었던 '태실', 직접 돌릴 수 있는 연자방아 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보고 즐길 것이 많으니, 조영주 학예사의 "한 번 와도 다 익히고 놀고 갈 수 없어요. 끊이없이 아이들이 몰려온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안산문화원은 향토사박물관에 대한 인기에 힘입어 시에 대형버스 구입 지원을 요청했다. 앞서 관내 교장 선생님과 3학년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박물관 견학과 버스투어 프로그램을 초등학생으로 확대 운영하기 위함이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과정 '우리 고장 알기'와 연계해 안산 지역의 어린이가 자신이 사는 곳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김봉식 안산문화원장은 "안산향토사박물관은 문화원의 정체성을 집약해 보여주는 공간이자 전통문화의 보존 전승과 시민들의 문화공간 등 본 기능을 수행하는 효자"라며 "지역에서 높아진 문화원의 위상만큼 더 질적 수준이 높은 교육 프로그램과 기획전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031)415-0041~2 박정임기자 bakha@kyeonggi.com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 별세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3일 오전 1시54분 통일교 성지인 가평 청심국제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문 총재는 지난달 14일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 현대의학으로 병세 호전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에 따라 31일 가평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겨졌다. 고인은 1920년 1월6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일본 와세다대 전기학과를 졸업하고 625 전쟁 휴전 다음해인 1954년 통일교를 창시했다. 1957년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선교의 닻을 올린 통일교는 1972년 미국에 진출, 해외 선교를 본격화하는 등 불과 50여년 만에 전세계 194개국 300여만명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 단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고인 자신을 메시아로 보는 통일교의 교리 때문에 늘 이단 시비에 휘말렸으며, 이승만 정권 시절을 비롯 모두 6차례나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 총재는 이단 시비를 비롯한 각종 논란에도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고도의 사업 수완을 발휘해 전세계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다. 선화예술중고교, 청심국제중고교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세계일보, 미국 통신사 UPI 등 언론기관, 일화, 용평리조트 등도 문 총재가 운영하는 곳이다. 세계평화라는 화두에 일생을 바친 고인은 1991년 12월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을 비롯한 남북경제교류에 합의했고, 2010년에는 유엔을 대체할 평화 기구로 부모 유엔을 창설했다. 지난 1991년 11월 10일자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0세기를 만든 1천명의 인물로 이승만 대통령, 북한 김일성 주석과 함께 문 총재를 선정하기도 했다. 문 총재가 수십 년간 메시아를 자칭하며, 1인 카리스마로 교단을 이끌어 온 만큼 그의 부재로 인한 포스트 통일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통일교는 최근 소위 왕자의 난으로 불린 형제간 다툼으로 한바탕 술렁였다. 장남과 차남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사실상 장남 자리를 맡고 있는 3남 문현진씨(43)는 애초 유력한 후계자로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4남 문국진씨(42)는 통일교 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을 맡아 한국일본 조직을 장악했다. 형제 중 유일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는 7남 문형진 목사(33)는 2008년 4월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됐다. 이런 가운데 형제간 헤게모니와 재산 문제 등에서 불거진 갈등은 결국 법정 소송으로도 이어졌다. 한편 문 총재의 장례는 13일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의 7남인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이 성화(聖和)위원장을 맡고 각계 성화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신도와 일반 참배객은 특별정성기간 3일이 끝난 뒤인 오는 6일부터 13일까지 8일간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 내에 마련된 빈소에서 참배가 가능하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장덕호의 보물읽기] 25. 조영복 초상(趙榮福 肖像)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조영복(趙榮福 16721728)은 숙종 31년(1705)에 과거에 합격하여 동래부사개성유수한성부윤 등의 벼슬을 지냈다. 이 초상화는 동생인 관아재 조영석이 그린 것으로 다른 초상화와 달리 주인공이 바닥에 앉아 있는 전신상으로 조선 초상화에서는 드물게 양손이 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영복 54세때 유배지인 영춘에서 그려진 것으로 하얀 사방건(四方巾)에 무색 도포를 입고 양손을 노출시킨 채 앉아있는 모습이다. 유풍(儒風)이 짙게 배어있는 사대부의 모습을 생생하고 실감있게 담아냈던 17~18세기 전반으로 이어지는 사대부상(士大夫像)의 한 유형으로써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그림이다. 특히 조영복의 영정은 시복본(時服本)과 유복본(儒服本)의 두 가지 본이 전해지는데 시복본은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전문화가인 진재해(秦再奚)가 그린 것이며, 유복본은 조영석이 그린 것으로 동일 인물을 같은 시기에 전문화가가 그린 것과 사대부가 그린 것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이 그림을 그린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 16861761)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문인화가로 그림을 매우 잘 그려 조선후기 문인화의 최고봉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과 더불어 문인화의 삼재(三齋)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또한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풍속화의 시조로서 일상생활속에서 포착한 소재들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조선후기 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나타내는 데 일조하였다. 그는 세조와 광해군의 어진 모사를 하라는 영조의 명에 불응하여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숙종어진 모사에 감독관으로 참여하였으나 실제 그림을 그리라는 영조의 명에 사대부가 어진을 그리는 것은 선비의 도가 아니다라 하여 사양할 만큼 굳은 심지와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어진을 그리라는 왕명을 거부한 인물이 그린 초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94년 함안조씨 참판공파 종중에서 보관해 오던 많은 유물과 함께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됐다.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경기도문화원연-경기문화재단, 29일 道문화유산원형 토론회 개최

한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지회장 정상종)와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엄기영)이 29일 오후 2시 재단 3층 다산홀에서 경기도 31개 시군 문화유산원형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도내 각 시군의 토속적인 문화유산원형을 간직한 다양한 상징을 선정, 지자체의 특화된 문화자원으로 개발해 문화유산에 대한 도민의 이해를 높이고, 이에 대한 보존 및 활용의 필요성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마련됐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광명, 구리, 시흥, 의왕, 파주 등 5개 지역 문화원의 실무를 맡고 있는 사무국장들이 해당 지역별 특정 문화원형에 관한 주제로 사례발표에 나선다. 먼저 이효성 광명문화원 사무국장은 오리 이원익 선생님과 청백리 도시 브랜드化에 대해 발표를 하고, 이어 윤승민 구리문화원 사무국장의 동구릉의 활용과 관광자원화 개발과 하세용 시흥문화원 사무국장의 사라져가는 마을조사 연구사업, 오세진 의왕문화원 사무국장의 역사와 함께하는 왕림마을, 서교승 파주문화원 사무국장의 연극으로 만나는 율곡이야기 등의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2부 종합토론에서는 심승구 한체대 교수, 이택광 경희대 교수, 유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1부에서 발표된 사례를 중심으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정상종 한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 지회장은 이 토론회가 세계속의 경기도를 만들기 위한 큰 걸음을 한 발 성큼 내딛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31)239-1020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장덕호의 보물읽기]24.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있는 용암사(龍岩寺) 경내에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석불입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쌍미륵 석불입상으로 천연바위벽을 이용해 제작했다. 전체 높이가 17.4m로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그 위에 목, 얼굴,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놓아 위압감이 느껴진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불상(원립불)은 목은 원통형으로 당당한 가슴을 드러냈으며 몸체는 법의(法衣)로 감싸고 있는데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비록 바위의 제약으로 목과 가슴이 아주 자연스럽지는 못하나 사각형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안동마애석불과 비슷하다. 오른쪽의 네모난 갓을 쓴 불상(방립불)은 합장한 손모양만 다를 뿐 조각된 수법은 왼쪽의 불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조각했다. 원립불은 남상(男像), 방립불은 여상(女像)으로 전하는데 고려 선종(宣宗)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으나 여전히 왕자를 낳지 못했다. 어느날 밤 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인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하고 사라져 버렸다 한다. 꿈에서 깬 궁주가 왕께 고하자 왕은 바로 장지산으로 사람을 보내니 다녀온 사람이 왕께 고하기를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있습니다하였다. 왕은 바로 장지산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원신궁주와 불공을 드리니 그 해에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995년에 발견된 명문에 의해 이 석불입상이 고려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1465년(세조 11년)에 왕과 왕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한 것이라는 학설도 있으나, 이 쌍석불은 웅장한 크기에 비해 신체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투른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경기도ㆍ말레이시아 지도자, 수원서 평화통일 교류행사

한국 GPF(Global Peace Festival)재단 경기도본부(회장 정인석)가 최근 한국ㆍ말레이시아간 우호 증진 및 정치ㆍ경제ㆍ문화ㆍ외교ㆍ사회 등 다양한 협력의 장을 마련하고자 Dato Azman Hassan 말레이시아 수상청 국가통합부 사무총장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지도자 35명을 초청, 글로벌 피스 리더십 교류 행사를 가졌다. 지난 16일 수원 리젠시 호텔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이찬열 국회의원, 혜성 무학사 큰스님, 이용민 민주평통 수석부회장, 유경희 GPF 중앙회장, 홍성관 수원시 자치행정국장, 차충근 G.P문화환경연합 상임대표 등 120여명의 각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 참석에 앞서 말레이시아 방문단은 광주 서하리 새마을 운동 성공마을 견학을 시작으로 수원 김치공장 견학했으며, 이어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를 방문해 도내 지도자들과 만담을 가졌다. 정인석 회장은 이 자리에서 GPF재단은 지난 1년간 한국의 말레이시아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 등 많은 것을 함께 고민해 왔다며 GPF재단이 오랫동안 중간자 역할과 활동을 통해 민간차원에서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하며 앞으로 그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탄 스리 이스마이 GPF 말레이시아 회장은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새마을 운동 같은 긍정적인 부분을 밴치마킹해 말레이시아에 적용할 수 있도록 양국간에 앞으로 더욱더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통일기부서약서를 작성하고, 행사가 끝난 뒤 수원화성을 둘러봤다. 한편 GPF재단은 23개국에 지부를 두고 제3세계 개발지원 및 평화운동을 벌이는 비영리 국제민간기구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장덕호의 보물읽기]23. 허전 초상(許傳 肖像)

허전(許傳 1797~1886)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포천 출신이며 본관은 양천, 호는 성재(性齋)다. 39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교리,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사관을 거치면서 임금에게 유교 경전을 강론했다. 1862년에는 전국적인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삼정의 개혁을 주장했고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등을 거쳐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실학의 거장인 이익안정복황덕길을 이은 기호(畿湖)의 남인계 학자로서 성호학파의 마지막 종장(宗匠)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투철한 개혁 정치인이었다. 저서로는 성재집종요록철명편과 선비의 생활의식을 집대성한 사의(仕義)가 있다. 초상화는 흑관을 쓰고 심의를 입고 의연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허전 앞에는 입식 서안이 놓여 있으며 그 위에는 주자대전이 포갑 채 놓여 있고 그 중 한 권은 빼내어 책상위에 펼쳐 놓았는데 펼쳐진 쪽의 글자까지 세밀하게 적어 넣었다. 이 초상화는 조선조 문신 초상화중 유복본 초상화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또한 우리나라 초상화론에서 가장 중시되는 핵심 개념인 전신사조(傳神寫照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형상 재현에 그치지 않고 정신까지 담아내는 일로 동양에서 초상화를 그릴 때 가장 중시하던 가치)가 잘 이루어진 작품으로서 허전의 생김새만이 아니라 예학에 정통하였던 그의 특유한 기질과 성정, 그리고 노학자로서의 관록 등이 화면에 잘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문중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초상화는 생전에 임금의 명으로 그려져 본가에 보관해 오다가 1891년 문집 본판이 완성된 후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경상남도 산청군에 세운 재실인 이택당의 물산영당(재실내 영정을 모셔놓은 건물)에 1916년 이안됐다가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100여년 만에 고향인 경기도로 귀향한 문화재이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남한산성사료총서 제1권 '역주 남한등록' 출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단장 전종덕)은 남한산성 역사자료 조사 정리 및 총서 발간 사업의 일환으로 사료총서 제1권 역주(譯註) 남한등록(南漢謄錄)을 발간했다. 사료총서는 2011년부터 사업단이 추진한 남한산성 역사문화 집대성 사업의 첫 결실이다. 남한등록(南漢謄錄)은 수어청에서 정리한 남한산성에 관한 기록이다. 남한산성 관리를 위해 수어청이 설치됐던 1626년(인조 4년)부터 1720년(경종 즉위)까지 100여년 동안을 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남한산성에 관한 자세한 조선 정부의 공식 기록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돼 있으며 수어청 관하 제도(制度)성지(城池)기계(器械)군량미(粮餉)군병(軍兵)상벌(賞罰)과거(科擧) 등 각 항목별로 그 내용을 시대의 순서에 따라 정리하고 있어 해당 항목에 대한 사실들이 어떤 배경에서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총서는 원문을 번역 정리하고, 주요한 특징을 검토한 해제를 수록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원문을 실었다. 전종덕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단장은 사업단은 남한산성의 UNESCO 세계유산 추진과 더불어 역사문화의 구심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전시 기획, 심포지엄 개최, 연구총서 및 사료총서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들 사업 중 남한산성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문헌 자료를 분석연구하는 사료총서를 매년 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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