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토지거래허가구역 미등기 전매한 경우

B는 A가 소유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소재 토지를 관할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매입해 수 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이를 C에게 전매했다. C는 A로부터 매수한 것처럼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했다. 이 사실을 안 관할세무서는 B에 대하여 양도소득세를 추징하는 한편, 관할서에 B를 조세포탈 혐의로 형사고발 조치했다. B는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않은 거래는 법적으로 무효인데, 양도소득세를 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과연 B의 주장은 타당할까? 이에 관해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종전 대법원은 매매계약이 무효인 이상 그 매매대금이 양도인에게 지급됐다 해도 양도소득세 부과대상인 자산의 양도에 해당한다거나 자산의 양도로 인한 소득이 있었다 할 수 없으므로 양도소득세 부과대상이 아니다고 판시해 B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결론을 내린 바도 있다(대법원 98누18383 전원합의체 판결 등).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2010두23644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와 같은 종전 견해를 변경했다.즉, 대법원은 양도소득세는 자산의 양도로 인한 소득에 대해 과세되는 것이므로, 그 매매 등의 계약이 처음부터 무효이거나 나중에 취소되는 등으로 효력이 없는 때에는, 양도인이 받은 매매대금 등은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원상회복으로 반환돼야 할 것이라 이를 양도인의 소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의 과세대상으로 삼을 수 없음이 원칙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소득세법에서 양도라 함은 자산에 대한 등기 또는 등록에 관계없이 그 자산이 유상으로 사실상 이전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원인이 된 계약이 법률상 유효할 것까지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면서 매매 등 계약이 처음부터 토지거래허가를 배제하거나 잠탈할 목적으로 이루어져서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사이에서는 그 매매 등 계약이 유효한 것으로 취급돼 매도인 등이 그 매매대금 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종국적으로 경제적 이익이 매도인에게 귀속된다고 할 것이고, 그럼에도 그 매매 등 계약이 법률상 무효라는 이유로 매도인 등이 그로 인해 얻은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그 매도인 등으로 하여금 과세없는 양도차익을 향유하게 하는 결과로 되어 조세정의와 형평에 심히 어긋난다고 판시했다(다만, 위 대법원 판결에는, 변경 전 판례와 견해를 같이 하는 6명의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음).이후 선고된 대법원 2007도9143 판결도 위 판결과 동일한 취지에서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중간의 매도인을 조세포탈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현재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C 앞으로 경료된 이전등기가 말소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고, B가 수수한 매매대금도 그 C에게 반환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면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따라서 이러한 경우, B는 추징된 양도세를 납부해야 하고, 조세포탈의 점에 대해 조세범처벌법 또는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법무법인 마당 김영숙 변호사

[新문화허브를 만드는 CEO] ②이윤희 삼호아트센터

대한민국에 7세 미만 어린이가 입장 가능한 공연장이 있다. 게다가 공짜다. 어느 누가 싫다하겠는가. 그래서 5년째 매공연마다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한국 공연계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바로 수원 최초 기업지원 공연장 DSD삼호아트센터(이사장 이윤희)다.격식과 매너, 그리고 조용함까지 요구되는 클래식 공연장에 8세 미만의 어린이는 입장을 불허한다라는 일반적인 법칙을 깨고 누가 꼬마관객들을 초대한 것일까. 어린이전용극장도 아닌데 말이다.이는 이윤희 이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왜 무모한 시도를 했던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 위험한 도전을 한 것일까.지난 달 28일 인계동 삼호아트센터 공연장에서 만나 이윤희 이사장의 답변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했다.# 음악교육도 예술이다 경험은 길을 안내해 주는 램프다는 카뮈의 말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인생의 작은 램프가 되고 싶어요. 초창기 때, 어린 아이들 입장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관람객들도 있었고 공연 도중 출연진들이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하기도 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죠.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삼호아트센터에서만큼은 어려서부터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뿐입니다.연극, 뮤지컬, 콘서트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공연마저도 관람등급을 매겨놓고 나이제한으로 관람객을 골라(?) 받는 우리나라 공연계에 이윤희 이사장의 시도는 파격 그 자체였다. 소위 말해 꼬맹이 녀석들이 클래식 연주를 듣고 이해를 하든 못하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알든 모르든 그냥 공연장의 문을 활짝 열고 문턱을 낮춘 것. 공연계에서는 모험이라고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삼호아트센터를 찾는 단골 꼬마관객은 어엿한 신사숙녀로 변신해 어른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질서를 잘 지키고 최고의 매너를 선보이고 있다. 반응은 뜨거웠다. 매공연마다 객석 340석이 꽉꽉 들어차고 예비석도 부족해 관람객들이 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보기도 여러 번. 그래서 이윤희 이사장은 지난 2007년 6월 개관 이래 5년 동안 단 한번도 편하게 앉아서 공연을 본 적이 없다.그냥 서서 보는 게 편합니다.(하하)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어린이들이 의젓하게 앉아서 공연에 푹 빠져 있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고 뿌듯하고 공무원으로, 건설사 대표로 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 중입니다. 이들 중에 세계적인 음악가가 나올지 누가 알겠어요?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키다리아저씨같은 현재의 삶에 만족해요.이 이사장의 이런 애정 덕에 삼호아트센터에는 7세 미만의 어린이가 부모가 손을 잡고 다함께 클래식 공연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방귀소리도, 하품소리도, 기침소리도 화음이 된다. 그 누구도 야단치지 않고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몇 해 전, 공연 보고 나온 한 녀석이 아저씨, 의자가 불편해요. 자꾸 삐그덕 소리가 나서 공연에 집중이 안 돼요.라고 말하군요. 그래서 억 대의 돈을 들여 국내 공연장 중 최고를 자랑하는 의자로 전면교체했어요.삼호아트센터를 찾는 40%가 7세 미만의 어린이라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 관객들의 감동과 흥분으로 5년 우뚝이윤희 이사장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삼호아트센터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공연장이다. DSD삼호건설의 창업주인 김언식 회장이 연간 10억원 가량을 후원하며 수준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삼호아트센터는 그야말로 지역 사회에 환원한다는 독특한 기부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모델이다.이윤희 이사장이 1979년 수원시청 도시과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그 당시 김언식 회장은 사무실도 없는 영세한 건설업자로 공무원과 민원인 신분에서 친구가 됐다. 오랜 인연이죠. 그 때 연을 바탕으로 지난 2007년 2월 인계동 1124번지의 건물 중부국세청 2층 강당을 리모델링해 삼호아트센터가 문을 열게 됐고 어느새 5년째가 됐어요. 회원만 2천800여명으로 삼호는 단순 공연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천국이고 수원시민들의 자존심이고 생각합니다.관객동원의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공연장이 비싼 티켓값을 부르며 유명한 예술인을 선호하고, 전통음악보다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흥행위주의 대작을 무대에 올리는 풍토가 만연한 가운데 삼호아트센터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클래식공연부터 전통음악, 뮤지컬, 오페라 등 시즌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작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챔버오케스트라,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바리톤 우주호와 음악 친구들, 스페인 빌바오 국제 콩쿨입상자, 영국의 폴포츠 등 국내외를 넘나드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매회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비싼 공연이 꼭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원시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 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어요. 성실하게 준비한 공연들은 전율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데 중국 속담에 성실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화폐라는 말이 있는데 삼호아트센터 무대에 서는 출연진들의 성실한 연습과 연주, 그리고 공연을 준비하는 스텝진들의 열정이 온몸이 전율할 만한 감동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이윤희 이사장은 한 때 정치에 뜻이 있었다. 그래서 삼호아트센터가 정치적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봄, 이윤희 이사장은 돌쟁이 손녀딸 재롱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평범한 할아버지요, 어린이 관객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공연장을 지키는 아저씨일뿐. 클래식 공연계가 금기시하는 8세 이하 어린이의 입장을 과감히 없앤 삼호아트센터는 5년째 관객들의 감동과 흥분을 양분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중심에 이윤희 이사장이 서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그림읽어주는 남자] 송창의 ‘침묵-어머니’

제주 강정의 구럼비가 부서졌다. 1km의 통바위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넣어 산산조각내고 있다. 사람들은 생명평화를 소리치며 파괴와 살육의 공사강행에 저항하지만 듣지 않고 침묵한다. 제주를 생성시키며 탄생한 이 거대한 신생대 바위도 침묵이다. 4대강을 살리겠다는 정부정책이 입안되자마자 시작된 보 설치와 강바닥 준설, 강폭 확장작업은 4년간 계속되었고 이제 끝났다. 우리의 근대화가 그렇듯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공사는 단기간 내에 효과를 극대화하듯 보여준다. 현대적 건축공법이 보여주는 웅장하고 화려한 보와 생태공원, 자전거길, 강변 둑. 사람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과 자연의 더불어 삶의 생명평화를 소리쳤으나 듣지 않았고 침묵했다. 수 천 년을 흘러 온 강도 침묵이다. 1952년, 전쟁이 한창이던 그 해 임진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송창은 최근 초상화 연작을 선보였다. 1백호 크기에 얼굴 하나를 전면화한 거대한 초상들은 표현주의 형식에 리얼리즘 미학을 결합한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주제는 침묵이다. 겨울의 질펀한 논바닥 흙이나 세월의 이끼가 안착한 화강석의 질감처럼 거칠고 투박한 색칠과 검푸른 얼굴들은, 그 침묵이 수행자의 것이거나 구도행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어린 시절 빨치산 남부군과 토벌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깊은 밤 지리산 손님이 찾아와 잠을 깨운 뒤 머리를 좌우로 돌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도록 했다는 것인데, 한 번의 판단으로 생사가 갈리는 참혹한 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1982년 <임술년>에 참여하면서 쉼 없이 분단을 주제화했던 그가 최근의 한국사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실존이고 그것의 표출이 침묵연작이란 생각이다. 침묵-어머니는 드넓은 한반도의 대지일 터. 어머니 대지는 침묵하고 있다. 낮게 우리를 응시하며 바라본다. 신생대의 바위, 도도한 강물의 시선이 저 눈빛이다. 우리는 저 침묵의 초상 앞에서 무엇을 고백해야 할까?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미술평론가

[창작의 산실] 사진작가 구본창

제일 관심이 가는 건 시간이나 경험이 만든 흔적이에요. 소재가 바뀌고, 표현 방법이 달라지더라도, 늘 관심 있는 건 새것 보다는 오래되고 먼지 앉은 것들이죠. 낡고 오래된 것. 굴곡지고 변해가는 것. 구본창은 세월에 깃든 이야기를 사진에 담는다. 애처롭다거나 구구절절한, 구체적인 줄거리는 없다. 하지만, 규율과 법칙을 잊은 채 낯설고 새롭게 작업한 사진은 보는 이를 조용히 끌어당긴다. 곧바로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 혹은 무심히 지나쳐온 이야기는 이윽고 그의 사진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작가의 눈에 담긴 새로운 세상사진작가 구본창(59)은 국내 현대사진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다. 80년대 중반 홀연히 등장해 사적이고 내면적인 세계를 조망하며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때까지 국내 사진계는 전쟁 후 가난한 길거리의 사람들, 탑골공원의 노인과 같이 삶의 애환을 드러낸 사진이나, 낙조와 철새 등 풍경 사진 일색이었다. 이 가운데 구본창은 사회 현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신 작가의 눈으로 새로이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렇게 벌써 30여 년. 순탄치 않은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길을 닦아왔다.구본창의 성남 작업실을 찾았다. 공간 한쪽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었고, 화려한 색감의 포스터와 흑백사진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그가 입은 진청색 스웨터에서는 적당히 낡은 것이 더 멋스럽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했다. ■낡은 것에 귀 기울이다그는 경영학과 출신이다. 미술을 좋아했지만, 부모님의 바람대로 상경대에 진학했고 일반 회사에 취업도 했다. 스스로 규율에 맞춰 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6개월 남짓.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로 탈출했다.책으로만 접한 독일은 신세계와도 같았다. 국내에서 컬러사진을 접하기조차 어려웠던 당시 독일에는 다채로운 포스터와 이미지가 거리마다 붙어 있었고, 끝없이 줄지어 선 박물관은 진귀한 유물이 산을 이뤘다. 그렇게 일 년 여의 정찰기를 가진 끝에 속도감 있게 뭔가를 바로 잡아낸다는 사진의 매력에 끌려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6년간 공부했다. 과목을 여러 개 배우는데 사진이 재밌었어요. 카메라가 어느 순간 내 눈처럼 움직여줬고, 내가 보고 느낀대로 따라준다는 데 확신이 들었죠. 겉으로 껍데기를 보는 게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좀 더 꿰뚫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우면서 그런 작품을 찍고자 마음먹었습니다.1985년 귀국한 구본창은 시간이나 경험이 만든 흔적을 찍기 시작한다. 오래된 탈, 빛바랜 천장, 먼지 앉은 구석 등 긴 세월에 걸친 흔적을 찍었다. 인물, 풍경 중심으로 작업이 일원화된 국내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92년 in the beginning(태초에) 시리즈는 독특한 기법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체 사진을 찍은 인화지를 암실에서 재봉해 대형 인화지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한 것. 저항하고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복잡한 재봉선과 겹쳐진 인화지를 통해 깊숙이 다가가도록 했다. 전에 없이 새로운 시도는 스냅 사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며 유행을 좇는 작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쿨하게 응대한다.난 짜장면만 좋아하고, 설렁탕만 먹고 이런 것과는 무관한 사람이에요. 변화가 있고, 재미있는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표현하려는 대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을 찾고, 그런 기법으로 사진을 찍어요. 자신의 생각과 표현하고자 하는바,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보여주는 게 순수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사진으로 존재하는 작가사진 외에도 그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임권택 감독과 배창호 감독의 영화 포스터를 만들었고, 1988년 사진, 새 시좌전으로 시작해 아!대한민국(1992), 정해창(1995), 신체와 성(1995) 등 굵직한 국내 사진전을 기획한 데 이어 국외에서도 Thresholds of Time(2000, 덴마크 오덴제 사진 페스티벌), Awakening(2001, 호주 시드니 ACP) 등의 전시기획을 맡았다. 최근에는 대구 경일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에 대해선 대중과 만날 수 있는 많은 길을 반길 따름이라고 정리한다. 그는 최근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을 찍고 있다. 3년여 전 625 행사 관련 사진을 찍으면서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101세 할머니를 수소문 끝에 찾아 사진을 찍게 된 것이 계기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머니로 시야를 넓히면서 올 초 미국 서부를 찾아 숨진 미군의 어머니들을 만났다. 이라크나 아프간도 기회가 되는대로 찾을 예정이라고. 대표적인 인기 작가라는 점에 대해선 조용히 손사래를 치며, 현역에서 27년간 쉼 없이 작업했던 데에 사람들이 호감을 느낀 게 아닐까 한다고 겸손하게 대답한다.인터뷰 말미에 던진 진부한 질문, 구본창에게 사진이란 무엇일까.내가 사진을 하지 못했다면 삶의 의의가 없어요. 사진을 통해서 활동할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존재의 가치라고 할 수 있죠.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생활상식]건조한 봄, 불꽃이…헉!

아이들이 후우-. 하고 불고 놀던 알록달록한 색의 풍선.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 때면 머리카락이나 몸에 슥-슥- 문질러 머리카락을 띄우거나 종이 조각을 풍선에 붙이면서 신기한 장면을 보여주곤 했다. 이는 머리카락에 문지른 풍선과 머리카락이 서로 다른 전하를 띠고 있어, 서로 당기는 힘이 생긴다. 풍선을 문지르는 순간, 전자가 머리카락에서 풍선으로 이동하여 풍선은 양성자보다 전자가 더 많아져 (-)전하를 띠고, 머리털은 양성자보다 전자가 더 작아져서 (+)전하를 띠게 된다. 이처럼 두 물체를 마찰시킬 때 발생하는 전기를 마찰 전기라 하고 이 때 발생한 전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전기 라고 한다. 정전기는 겨울, 봄의 건조한 날씨에 잘 일어난다. 습한 여름에는 공기 중의 수증기가 전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정전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정전기는 우리 생활에서 아이들이 쉽게 이용해 놀이 도구나 과학 교육의 일부분으로 아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전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28일 충북 청원군 오창읍의 한 스티로폼공장에서 스티로폼으로 인한 정전기로 인한 화재가 발생, 2억3000만 원의 재산피해를, 작년 경기도 의왕의 한 화장품 케이스 제조업체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따뜻한 3월의 봄, 정전기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행복한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생활 팁] 생활 속에 일어나는 정전기 방지하는 방법 2가지 1. 전기가 흐르는 물체나 금속물질을 만질 때 바로 잡지 않고 몇 회 두드려 줍니다. 2. 몸이 건조하지 않도록 손과 얼굴에 로션을 잘 발라주어 항상 수분을 유지해줍니다. 3. 실내가 너무 건조하다고 느껴지면 가습기를 잠시 틀어주거나 젖은 수건을 달아둡니다. ※가습기 보다 젖은 수건이 안전하고 좋습니다.

'춤 인생 60년' 무대 펼치는 조흥동 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을 만나다

걸음걸이는 사뿐 하지만 손에 쥔 부채는 절도있게 폈다 접힌다. 느릿하게 리듬을 타다가도 박력 있게 몸짓을 이어간다. 흥과 아련함이 뒤섞인 아리송한 표정, 손끝과 발끝에도 긴장감이 서려 있다. 한국무용의 대가(大家) 조흥동(71)의 한량무다.춤 인생 6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조흥동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을 만났다.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바람으로 춤을 추던 그는 의상은 수선실에 다시 보냈다며 뭘 입었건 관계없이 늘 춤춘다고 소탈하게 웃었다.조흥동은 전통춤의 남성화를 꾀하며, 새로운 춤사위를 개척해온 한국무용의 대가다. 특히 남성춤의 대명사 한량무는 조흥동의 명무로 꼽히며 담백미와 절제가 조화를 이룬다는 평이다. 1962년 본격적으로 춤 무대에 오른 이래 지금까지 150여 회의 작품에 출연하고, 30여개 작품을 안무했다. 무용 외길을 걸으며 한국춤의 표현영역을 확대한 것은 그의 굵직한 공적으로 꼽힌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량무, 초립동 등 아홉 가지 춤이 무대에 오른다. 이천 출신으로 누나만 위로 넷을 둔 그는 9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유성기에서 노래가 나오거나, 굿판이라도 벌어지면 춤추기 바빴다. 중학교 1학년 서울로 유학 오고 나서는 무용연구소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춤을 배웠다. 부모님이 판검사가 되라며 입시학원비로 부쳐주는 돈은 무용연구소 교습비로 고스란히 나갔다. 여학생들만 가득한 연구소에서 까까머리 남학생은 단연 돋보였 다. 서라벌예대에 남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무용전공으로 입학하고 나서도 남자가 무슨 춤이냐는 수군거림은 그친 적이 없었다.수줍음도 많고, 소심한 성격인데 이상하게 춤만 추면 그런 게 없어지더라고요. 팔자 같아요. 손가락질당하고, 놀림받아도 춤을 안 출 수가 없으니까.여성 일색의 무용계에서 남성 무용가로 자리 잡는 과정은 수월치 않았다. 학창시절부터 30대까지는 전국 방방곡곡 전통춤 대가를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다. 17명의 스승에게 사사한 춤사위가 수천 가지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춤의 표현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남자는 왜 춤추면 안되냐는 반발심은 박력과 절도가 있는 남성무 창작으로 이어졌다.이번 공연에서 음악을 맡은 사람은 13명이다. 보통 4~5명 규모를 세배로 키워 전통악기를 모두 모았다. 9살에 처음 배운 초립동과 60년간 갈고 닦은 한량무는 조흥동의 춤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처음과 끝이다. 이 외에도 그가 12년째 몸담은 경기도립무용단의 무용수들도 함께 무대에 올라 풍성한 공연을 꾸린다.제 인생은 춤사위를 익히고,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60년 세월을 담아 정식 전통춤이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공연 조흥동의 꿈의 세계는 9~10일 이틀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볼 수 있다. VIP/5만원 S석/3만원 A석/1만원. 문의 3668-0007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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