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의 구럼비가 부서졌다. 1km의 통바위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넣어 산산조각내고 있다. 사람들은 생명평화를 소리치며 파괴와 살육의 공사강행에 저항하지만 듣지 않고 침묵한다. 제주를 생성시키며 탄생한 이 거대한 신생대 바위도 침묵이다.
4대강을 살리겠다는 정부정책이 입안되자마자 시작된 보 설치와 강바닥 준설, 강폭 확장작업은 4년간 계속되었고 이제 끝났다. 우리의 근대화가 그렇듯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공사는 단기간 내에 효과를 극대화하듯 보여준다. 현대적 건축공법이 보여주는 웅장하고 화려한 보와 생태공원, 자전거길, 강변 둑. 사람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과 자연의 ‘더불어 삶’의 생명평화를 소리쳤으나 듣지 않았고 침묵했다. 수 천 년을 흘러 온 강도 침묵이다.
1952년, 전쟁이 한창이던 그 해 임진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송창은 최근 초상화 연작을 선보였다. 1백호 크기에 얼굴 하나를 전면화한 거대한 초상들은 표현주의 형식에 리얼리즘 미학을 결합한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주제는 ‘침묵’이다.
겨울의 질펀한 논바닥 흙이나 세월의 이끼가 안착한 화강석의 질감처럼 거칠고 투박한 색칠과 검푸른 얼굴들은, 그 침묵이 수행자의 것이거나 구도행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어린 시절 빨치산 남부군과 토벌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깊은 밤 지리산 손님이 찾아와 잠을 깨운 뒤 머리를 좌우로 돌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도록 했다는 것인데, 한 번의 판단으로 생사가 갈리는 참혹한 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1982년 <임술년> 에 참여하면서 쉼 없이 ‘분단’을 주제화했던 그가 최근의 한국사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실존’이고 그것의 표출이 침묵연작이란 생각이다. 임술년>
‘침묵-어머니’는 드넓은 한반도의 대지일 터. 어머니 대지는 침묵하고 있다. 낮게 우리를 응시하며 바라본다. 신생대의 바위, 도도한 강물의 시선이 저 눈빛이다. 우리는 저 침묵의 초상 앞에서 무엇을 고백해야 할까?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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