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틀 무렵 어김없이 장호원장의 아침을 깨우는 ‘탕탕탕’소리. 그러나 이제 그 망치 소리를 들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아버지를 거쳐 120년 3대째 가업을 잇고있는 장호원장의 대장장이 김용식씨(62)는 “이제 망치를 놓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 ‘거센 불길과 숱한 매질, 거기에 장인의 혼을 담아 빚어내는 불과 강철의 예술인 대장간.’농사가 천하지대본이었던 시절, 대장간은 단순한 눈요기감이 아닌 농민과 서민들 생활에 깊숙히 파고든 생활예술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농촌이 근대화되고 중국산 농기구가 싼값에 수입되면서 김옹의 손길을 찾던 농부들의 성화도 사라졌다. 7남매중 장남인 김씨는 어릴적부터 아버지 김익겨옹의 영향을 받아 철과 불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9살때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내려치다 쇠조각 파편이 오른쪽 눈에 정통으로 박혀 실명했다. 병원에서 겨우 치료를 받고 남의 눈을 넣는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김씨는 끝내 자기눈을 넣겠다고 고집, 50여년간 세상을 한 눈으로 살아왔다. 철과 불이 두번 다시 보기 싫었건만, 손님들이 찾아와 “잘 됐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는 실명이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잊기위해 더욱더 세게 철을 두들겼다고 회고했다. “1천200℃가 넘는 화덕에 쇠를 달구고 정성을 모아 망치로 내려칠 때는 아무 잡념이 들지 않았어, 그래서 더욱 집중하고 연마했지.” 도안(쇠자르기), 불관리, 절단, 담금질, 열처리 등 여러 공정 중에서도 김씨는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의 손끝 감각을 으뜸으로 친다. 대장간에는 김씨의 손을 거쳐 제모습을 갖춘 조선낫·호미·삽·양귀호미·갈퀴, 호구, 갈꾸리, 곡괭이 등 200여종의 연장 및 농기구가 구비됐다. 그의 아내는 동네 주민이나 농부들이 갖고 온 낫·칼·호미 등을 쓰기 적당할 만큼 갈아주며 잔일을 돕는다. “4남매를 뒀어. 그러나 가업을 되물림해야 겠다는 생각은 없어.” 대장장이의 되물림 단절과 함께 장호원장을 묵묵히 지켜왔던 김씨의 작은 포항제철의 망치소리와 가마의 불꽃이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고영규기자 ygk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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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2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