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으로 당선된 김학준 신임 교총회장이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원정년 환원’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거듭 공언했다. 정계와 교육계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현재는 시립인천대학교 총장인 김 회장이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도 그렇지만 전체교원 40여만명중 27만6천여명이 가입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교원정년 환원론은 교육계는 물론 국민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된 교원정년의 환원주장은 김학준 교총회장 뿐만이 아니라 교총회장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들의 공약사항이어서 앞으로의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그만큼 시급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교직사회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하에서 단행된 교원정년 단축은 사실 교권을 크게 흔들었고 교원 당사자는 물론 수많은 가족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다. 교원정년 단축은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었지만 3만여명의 교원들이 교단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원들이 부족해 교사자격증 소지자를 기간제교사로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교육정책이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2000학년도 초등교사가 1천여명 이상이나 부족한 현실이 그 실례중 하나이다. 교권확립차원에서 교원연금을 공무원연금에서 분리하고,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교육자치 거론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정면으로 반대, 비판하고 나선 김학준 교총회장의 주장을 우리는 전체 한국교원의 목소리로 생각하고자 한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교원정년 단축을 찬성하고 희망하는 많은 학부모들과 교육대학생들의 반발 등 이견 차이를 어떻게 좁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없는 학교와 교원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일선에 있는 교원은 직장인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초월한 그 어떤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활동을 특히 주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국이 새마을운동으로 한창 달아 올랐던 70년대엔 웬만한 건물 외벽에는 큼지막한 고딕체로 써놓은‘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말은 국민의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 돼야 산업 경제 수출 등 당대가 추구하는 선진국으로 향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자극을 불어넣기 위해 누군가 머리를 짜낸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들 경찰의 꽃으로 외근 형사를 꼽는다. 이는 화려해서가 아니라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범죄의 범법자들을 색출하고 검거하는데 최일선에서 사방팔방으로 고된 몸을 움직이는 그들을 지칭해 붙여진 것이다. 이런 꽃들이 격무와 피로에 누적돼 안스러울 정도로 지쳐 있다. 경찰은 88올림픽 성료후 80년대말부터 매주 수요일 일정시간을 체력단련의 날로 지정, 외근형사는 물론 전부서 직원들이 개인별 특기종목이나 기타 운동을 통해 체력을 보강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경찰관들의 체력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시행됐던 체력단련의 날이 처음 몇년은 그런대로 지켜졌지만 언제부턴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얼마전 화성경찰서 외근형사로 맹활약하다 파출소로 근무지를 옮긴 30대 경찰관이 최근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진찰결과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수년간 외근형사로 활동하면서 쌓였던 피로가 환경변화로 다소 긴장이 풀리면서 나타난 증세가 틀림이 없다고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노동과 운동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격무와 피로에 지친 이들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체력을 적절하게 유지토록 하는 시간적인 배려일 것이다. /화성=조윤장기자(제2사회부) yjcho@kgib.co.kr
동무, 벗, 친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민중서림 국어대사전은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동무),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하게 사귄 사람’(벗),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벗’(친구)이라고 풀이했다. 그말이 그말같아 구분이 잘 안된다. 지지대子의 일상개념으로는 동무나 벗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친구(親舊)는 한자 외래어가 아닌가 싶다. 또 동무는 유·소년시절의 친구이며, 벗은 성년이후의 친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무따라 강남간다’고도 했고 ‘어깨동무’란 말이 있다. 이 좋은 ‘동무’란 낱말이 마치 금지곡처럼 금기시된 것은 이데올로기시대의 산물이다. 광복직후 좌우익의 격동, 한국전쟁전후 북측 노동당과 남측 남로당 사람들 사이엔 서로의 호칭을 ‘동무’라고 불렀다. ‘김동무…’ ‘박동무…’하는 바람에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동무!’라고 하는 웃지못할 일이 잦았다. 같이 힘써 일한다는 뜻의 조어로 ‘同務’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아무튼 이바람에 유·소년간의 동무소리가 차츰 사라지면서 친구라고 부르게 됐다. 중국에서 이데올로기용어인 ‘퉁즈’(同志)라는 말이 퇴조하고 있다고 한다. 공문서나 공식행사에서는 아직도 ‘퉁즈’가 쓰이긴 하지만 공산당원들까지 일상생활은 ‘셴성’(先生) ‘뉘스’(女史) ‘샤오제’(小姐)등 호칭이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동무란 말이 이데올로기 용어로 들리지 않은지는 벌써 오래됐다. 이 좋은 우리말을 활성화시켰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부터 사용돼야 한다. 아이들간의 동무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정서상 걸맞지 않다. ‘동무’란 말보단 아무래도 정감이 덜하다./白山
마녀란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요녀를 말한다. 악마와 결탁하여 마약(魔藥)을 쓰거나 주법(呪法)을 행하여 인명을 해치는 것으로 믿었다. 마녀재판이라는 것이 있었다. 중세말기 이후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 종교재판으로 로마교황의 공인아래 시행됐다. 가장 심했던 1590년∼1680년사이엔 약 10만명이 처형되었다. 이단으로 몰리면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녀로 다루어졌다. 쇠로 만든 반장화를 불에 달구어 신기거나 두 팔을 뒤로 결박한채 발목에는 무거운 추를 단 다음 두 겨드랑이를 로프로 묶어 도르레로 천장높이까지 매달았다가 갑자기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100년 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구국의 소녀 잔 다르크가 1455년 영국에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이라는 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이단의 누명을 벗고 성녀(聖女)에 오른 것은 465년만인 1920년이다. 마녀재판은 18세기들어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없어지게 됐다. 근래 ‘마녀사냥’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마녀재판을 빗댄 말로 이를테면 언론보도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권력층에서 즐겨쓴다. DJ가 옷사건을 두고 ‘마녀사냥식으로 몰면 안된다’고 말한적이 있다. 무혐의 허위보고내용을 그대로 믿어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이만저만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마녀사냥’질책을 보며 옷사건 관련자들이 내심 얼마나 쾌재를 불렀겠는가 생각하면 너무나 잔인한 코미디다. 지금 세상에 ‘마녀사냥’이란 당치않다. 언론보도의 여론을 ‘마녀사냥’으로 몰아치는 권력의 속성이 두렵다. 현자(賢者)는 권력에 중독되는 것을 스스로가 부단히 경계한다./白山
의왕시의회가 지난 26일부터 시의 각 실·과·소·동에 대해 행정사무감사를 벌이고 있다. 1년동안 펼쳐온 행정에 대한 평가를 받는 행정사무감사장은 열기로 가득차 있다. 잘못된 행정에 대해 예리하게 파고들어 지적하는 일부 시의원과 잘못된 행정의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소신있는 답변으로 감사를 받는 일부 공무원들의 수감태도 또한 보기좋은 모습들이다. 하지만 감사장에서는 감사가 한창 진행중인데도 여기저기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전화를 받기위해 밖으로 나가는 시의원이 있는가 하면 슬리퍼를 신고 감사장을 왔다갔다하며 산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시의원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감사를 받는 일부 공무원들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 업무파악이 제대로 안돼 뒤에 앉아있는 담당들의 쪽지에만 의존하는 일부 과장들. 언제 시로 승격됐는지, 허가사항인지, 신고사항인지 등 기본적인 업무조차 파악이 안돼 질문에 대해 얼버무리는 모습에 동료공무원들조차도 낯을 붉히는 모습을 볼때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저녁식사도 거르며 감사에 열중이던 지난 29일에는 시의 고위간부가 어디서 마셨는지 거나하게 한잔하고 감사장에 들어와 벌개진 얼굴을 하고 앉아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까지 있다. 이같은 일부 잘못된 모습들은 감사에 열심인 시의원과 공무원들의 사기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오전일찍부터 감사장에 나와 감사를 마치고도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다른과의 감사를 흥미없이 들으며 감사가 끝나는 밤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 또한 시의원들의 지적만 있고 대안제시가 없는 감사 역시 시의 발전을 위한 감사가 아닌, 지적을 위한 감사로 전락하는 점을 고려할때 개선돼야 할 것이다. /의왕=임진흥기자(제2사회부) jhlim@kgib.co.kr
1999년 12월 첫날이다. 금세기를 보내는 마지막 달이다. 새천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느달과 다른 소회가 없을 수 없다. 무엇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왔다. 세태는 하루가 멀다하고 깜짝깜짝 놀랄일이 터져 온통 뒤숭숭하기만 하다. 지구촌은 더욱 치열한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싹수 있는 나라에선 저마다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에게 21세기의 희망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국가나 사회적으로 아무리 돌아봐도 뾰족한 희망이 없다. 그날이 그날이고, 그달이 그달이며, 그해가 그해라면 새천년인들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서민들은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다. 세태를 탓하기에는 당장 살아가는 일이 절박해 누굴 탓할 틈조차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공헌이며 국가에 대한 기여다. 그런데도 중산층이 붕괴돼 영세민화한 서민은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참고 견디면 앞날이 새롭게 트일 조짐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사회도의는 피폐하고 나라기강은 극도로 문란해져 일탈현상이 우심하다. 사회위기 수준은 구심점을 갖지 못해 마냥 치닫는 양상이다. 타락한 권력의 부도덕성은 아무리 그럴싸한 말잔치에도 신뢰를 상실했다. 정직한 사람이 대우받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이 제대로 된 국가사회다. 그렇지 못한 현실은 오로지 상층구조의 난맥에 그 책임이 있다.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내일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먼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제반의 민생을 당장에 다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다만 바라는 것은 가능성만을 보여주어도 희망을 걸 수 있는데 있다. 상층구조에서부터 뼈를 깎는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국민에게 개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이젠 정부가 국민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기전에 정부가 먼저 그 무엇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지배계층이 앞서 의식을 개혁하고 실천에 옮길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말로만이 아니고 행동으로 옮겨보일 것인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하지만 기왕 그러고자 하는 비장한 결심이 선다면 이 해가 가기전에 새천년이 오기전에 신뢰가 가는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연례행사처럼 진통을 겪고 있는 사립대 등록금문제가 내년에도 예외는 아닐것 같다. 서울소재 대학들이 이미 내년도 등록금을 15%인상키로 한 가운데 도내 대학들도 10∼15%정도 올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측은 IMF관리체제 이후 경제난을 감안한 정부의 등록금 동결권고에 따라 2년간 동결했기 때문에 내년엔 10∼15%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생측은 올해의 물가인상률보다 훨씬 높게 잡은 등록금 인상은 학부모들의 가계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운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전체 사립대 80% 이상이 등록금에 의존하는 실정에서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한 일이다. 더욱이 지난 2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던 대학들로서는 내년도 인상폭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동결은 IMF관리체제에서 고통분담이라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만큼 이를 보충이라도 하듯 대폭 인상하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등록금 인상의 기준이 되어온 물가인상률을 따져볼 때 올해는 1%미만으로 예상되고 있고, 내년은 3%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을 10∼15%나 올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도내 일부 대학에선 지금도 학생들이 기성회비 납입 거부운동을 벌여 학교측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이다. 이런 터에 내년 등록금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대폭 인상한다면 대학가가 등록금 인상반대투쟁으로 다시 분규가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교육부가 지난 89년부터 등록금 인상을 완전 대학에 맡긴 등록금 자율화가 곧 대학의 일방통행식 인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화에 따른 대학경영의 투명성과 재원확보에 대한 별도의 노력없이는 학생들의 반발만 키울 수가 있다. 등록금 문제는 어느 일방의 고집과 주장만으로는 풀 수 없다. 먼저 대학은 예산집행의 공개성·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고, 등록금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게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후에 인상의 불가피성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득함으로써 학내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막아야 할 것이다.
수원에 본부를 둔 치매미술치료협회와 영실버아트센터가 마련한 ‘나의 사랑 나의 가족展’이 어제 끝났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부남(扶南)미술관 대전시실에서 열린 ‘나의 사랑 나의 가족전’은 끝날에도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 부남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노재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노재순, 류삼렬·강상중·서해창·선희규·장인희·이태희 화백 등 34명의 한국화단 중견들 작품을 둘러 본 뒤 다른 벽면에 걸린 ‘어린이들의 그림’을 유심히 관람했다. ‘설날’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 ‘가을 운동회’ ‘동지팥죽’ ‘호박넝쿨’ ‘진달래꽃’ ‘팽이치기’ ‘연날리기’ ‘정월대보름’ ‘오월 단오절’ ‘빈대떡’ ‘단풍놀이’ 등 화제(畵題)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사람은 늙으면 어린 아이가 된다’고 하였다. ‘어린이들의 그림’은 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그린 작품들이었다. 70대는 보통이고 80대, 90대의 노인들이 그린 작품은 사람들을 흐믓하게 행복하게 만들었다. 화가들로 구성된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이들 노인들의 그림을 신현옥 회장은 ‘추억의 간이역’이라고 이름 지었다. 추억의 간이역? 과연 그렇다.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은 그림 그리는 치매노인들을 ‘노인 작가’라고 존칭했다. ‘치매미술치료’는 인지기능이 떨어진 노인에게 미술을 통해 현재 또는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영혼의 예술’이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는 데 며칠이 걸린 어르신도 계시지만 도화지와 크레파스만 주면 신통하게도 과거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버드나무 아래서 남녀가 고개 숙이고 있는 그림은 ‘첫사랑’이고, 젊은 시절 군인이었던 어르신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그립니다”라고 했다. ‘봉숭와꼿’ ‘오욀 단워 근녜탄는 광경이요’라고 그림설명을 써 놓는 노인들의 작품도 보였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전’은 제목 그대로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봉사하는 치매미술치료협회 봉사 활동의 한 과정이다. 한국미술협회·영실버여류작가회·촛불봉사단연합회·평화의 모후원·동서문화교육원·현우도회의 후원도 큰몫을 했지만, 14일간 전시회를 무료사용토록 하고 도록까지 제작해준 부남미술관의 협조가 특히 컸다. 봄날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임병호 논설위원
김장김치가 발효식품으로 비타민의 보고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상들이 겨울식품으로 과학적인 김치를 생각해낸 것은 생활의 지혜라 할 것이다. 비록 과학이 뭣인지는 몰라도 오랜 체험으로 생활과학을 응용할 줄 아는 슬기를 터득했던 것이다. ‘김장김치는 반 겨울양식’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배추만도 한·두접(접당 백포기)씩 담궜다. 여러가지의 무·배추 김장을 했다. 초겨울 이맘때쯤이면 품앗이로 김장을 담는 동네 아낙들의 노고가 컸다. 요즘은 김치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김장은 여전히 빠뜨릴 수 없는 겨울채비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김장 담을 일부터 먼저 생각하곤 한다. 전같지 않아 먹거리가 많으며 채소 또한 철을 가리지 않고 나오므로 이젠 김장을 적게 담는게 보편화됐다. 보통 열포기 스므포기 정도다. 김장을 이처럼 적게 담다보니 되도록이면 늦게 담는다. 괜히 일찍 담갔다간 따뜻한 날씨로 국물이 부풀어 오르고 김치가 시어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김치공장이 김장김치 주문으로 꽤나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나 신세대 주부들의 주문이 많다는 것이다. 편리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치맛을 보면 그 집안의 음식솜씨를 안다고 했다. 가족들을 위한 주부의 정성과 솜씨가 흠뻑 담긴게 김장김치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가족들을 위해 김장김치를 손수 담그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인스턴트식품이 식탁을 잠식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白山
옷사건은 마침내 김태정 전 검찰총장 및 법무부장관, 박주선 전 청와대법무관, 김 전 총장부인 연정희씨 등을 사법처리하는 단계에 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상관없다”던 사람들이 더는 사건의 배후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옷사건은 신동아 ‘구명로비’의 깃털에 불과하다. 단순히 옷사건에 그치지 않는 몸통접근이 필요하다. 신동아로비스트 박시언씨는 지난해 6·7월 김 전총장과 박 전 비서관을 수차 만나 최순영 회장의 구명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나중엔 보고서 사본을 복사해 갔을 정도였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금품로비를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지만 그같은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 그간 보아온 경험법칙이다. 신동아측의 금품로비가 확인될 경우 정치권까지 불똥이 튀어 일파만파로 번질 공산이 있으나 이를 두려워해선 안된다. 외화 유출혐의가 드러나자 학맥·인맥을 총동원, 구명운동을 전방위로 벌인 적이 있다. 외자유치를 구명카드로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수사가 유보됐다가 재수사로 반전하는등 한동안 혼선을 벌인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옷사건이 나왔으나 사직동팀에 이어 검찰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한통속 종결을 지었다. 그러나 특검수사로 옷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은 역순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신동아로비의 실체를 벗겨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문책하겠다’(11월 25일)고 했다. 이에 앞서서는 ‘잘못 없는 것으로 수사결과 판명됐다’(6월 10일)고 했고, ‘마녀사냥식으로는 안된다’(6월 1일)고도 했다. 사태를 잘못 파악한 책임을 진실로 지고자 한다면 옷사건에 국한하지 않는 로비 전반에 걸친 지위고하 불문의 엄중 문책이 있어야 한다. 검찰은 우선 수사범위를 보고서 유출에만 국한하고 있는듯 하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검찰의 은폐수사에 대한 자체조사와 신동아 로비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는 실추될대로 실추된 만신창이의 검찰위상을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이며 국가기강확립의 길이기도 하다. 만약 이마저 잘못되면 검찰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맞게 될 것이다. 실패한 로비도 로비다. 실패했다고 하여 덮어두어서는 거센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