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내 인생의 활력소”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수해지역 등 다양한 분야에 사랑의 손길을 전하고 있는 봉사의 달인이 있어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부끄럽습니다. 저는 신문에 나면 안되는데. 집에 있으면 몸이 아프네요. 그러나 봉사를 하면 몸도 쌩쌩해지고 마음은 날아 갈 것 같아요. 32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봉사를 하며 살아온 송춘실 한국자유총연맹 연천군지회 여성회장(61여). 연천지역에서 봉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송 회장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봉사의 달인으로 통한다. 송 회장의 고향은 강원도 평강이지만 평생 반려자인 오준영씨(63)를 만나 지난 1973년 청산면 궁평리에서 터를 잡은 이래 작은 봉사 속에 큰 행복을 느낀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송 회장의 봉사는 지난 1978년 청산면 궁평초등학교 어머니 회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그 당시에는 모두가 먹고 살기에도 어려웠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운동장도 변변치 않고 그렇다고 학교 예산이 많은 것도 아니라 어머니들이 직접 리어카와 삽을 들고 운동장을 만들고 아이들이 다칠까봐 수시로 돌 고르기 등을 하면서 아이들이 생활하기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갔습니다. 힘든 줄도 몰랐어요. 내 자식이 그저 배운다는 자체가 기쁜 시절었으니까요.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에 시작한 봉사가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는 송 회장은 요즘도 매월 15일 전후로 평일을 택해 주변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전곡읍 양원리 섬김의 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이불 빨래를 비롯, 청소며 치매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목욕봉사를 통해 사랑의 손길을 전달하고 있다.그 뿐만이 아니다. 요양보호사 자격과 미용기술을 갖고 있는 송 회장은 1년에 한번 정도 5사단 신병교육대를 찾아 신병들의 이발을 해 주고 있다. 또한 연말연시에는 독거노인들과 군부대 장병들에게 떡만두국을 제공하고 지역 내 거주하는 새터민들에게도 나눔 봉사를 실천해 오고 있다.제 몸이 움직일 수 있다면 봉사를 해야지요. 남들을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데요라는 송 회장은 봉사는 저에게 활력소가 된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신나는 트로트풍 노래로 가요계에 도전장

걸그룹, 아이돌그룹 등이 앨범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요즘 가요계에 풋풋한 감성의 발라드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신나는 트로트풍 노래로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인가수가 있다. 175㎝의 키에 55kg의 몸무게. 다소 야윈듯해 보이지만 운동으로 다듬어진 근육질 몸매에 허스키한 보이스가 서른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그가 바로 18세 때 100kg의 몸무게를 자랑하던 고등부 역도선수에서 그저 노래가 좋아 40여 kg의 몸무게를 줄여가면서 10여년간 무대에 선 베테랑 가수 이완(수원시 매산동)이다.나이가 꼭 젊어야만 신인가수인가요? 노래가 신선하고 좋다면, 그래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레퍼토리로 꾸준히 불려진다며 그거야말로 진정한 대중가요계의 샛별인거죠.이완은 지난 1996년부터 그룹 수와진의 멤버로 연주를 병행하며 노래를 부른 지 올해로 14년째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넘을 시간을 지냈음에도 첫 앨범 발간이 마냥 설렌다는 그는 이를 계기로 새로운 각오로 다지고 있다.7월 1일 첫 선을 보인 앨범은 중국풍의 애절한 사랑노래 살아보면 알겠죠(가칭작사작곡 석성주) 등 신곡 2곡과 이씨가 평소 즐겨 부른다는 리메이크곡 8곡이 담긴 싱글앨범이다.살아보면 알겠죠는 떠나간 연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리고 돌아와 사랑은 나에게만 줄 것을 약속하는 노랫말이 가슴을 잔잔하게 파고들어요. 여기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떠나려는 연인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보내준다는 속삭임이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와 잘 어울리는 곡이예요.이씨는 신곡도 그렇지만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중 유독 귀거래사(김신우 곡)와 마이웨이(윤태규 곡)에 애정이 간다고 했다. 인생풍파를 담아낸 노랫말과 남자들의 우정과 야망을 그린 점이 지난 과거를 생각케 한다는 것.그는 앨범 발매에 맞춰 같은 소속사 식구인 트로트 가수 리라(본명 김재원)와 듀엣곡을 넣은 옴니버스 앨범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각종 라디오, 케이블방송 등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안양, 수원 등 수도권 인근에서 거리공연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조폭 143명 잡은 ‘열혈여경’ 1계급 특진

어떤직장, 어떤부서도 힘이 들지만 즐기면서 하자는 것이 오늘날 저를 있게 한 버팀목 이었습니다. 여경창설 64주년을 맞아 7월 1일 으뜸 여경대상을 수상하고 1계급 특진한 고양경찰서 형사과 강력1팀 박수진 경사(34여).박 경사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경기북부지역 4개 폭력 조직원 143명을 검거해 조폭 킬러 여경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베테랑 형사다.그 공로로 으뜸 여경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경사로 특진하는 영광을 안았다.지난 199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 1999년 특전사 부사관으로 전역한 박 경사는 경찰특공대에서 여경 1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경찰특공대를 선택했다. 어릴적부터 체력이 좋아 고교 때 격투기를 배우기도 했던 박 경사는 검은색 베레모에 선글라스, 어깨에 둘러멘 소총까지 폼나는 대테러 요원으로 8년간 근무했다. 지난 2008년 11월 일반 경찰관으로 전환하면서 선택한 보직은 당연히 강력팀 형사였다. 경찰의 꽃은 형사라는 믿음을 가졌던 박 경사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범인 검거에 열중하는 강력팀 생활은 딱 들어맞았고 현재까지 경기북부지역의 4개 폭력조직원 143명을 검거하는 등 수사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태권도 3단에 합기도 1단으로 무술에 능한데다 경찰서 내부의 체력왕 선발대회에서 여경부문 1위를 놓치지 않는 강한 체력이 그녀의 원동력이다.사건처리 과정도 힘든 부분이 있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시민들의 크고 작은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이라는 박 경사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여경의 모습을 통해 부드러우면서 강한 여성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여경에 대한 편견을 깨고 강력계 형사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박 경사는 경찰이 하는 일들은 다른 누가 대신해 줄 없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후배들도 자부심을 갖고 긍정적인 사고로 최선을 다하면 어떤 힘든 일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헌 선배처럼 멋진 배우 되고 싶어요”

아직 소속사도 없고, 아역을 하기엔 나이도 많지만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겁나지 않아요. 5년 안에 최고가 될 자신 있습니다.7월 11일 기껏해야 중학생으로 보이는 얼굴에 생글거리는 미소가 매력적인 신인 배우 박용수(19수원 화홍고 3년)가 본사를 찾아 왔다. 아직 낯선 얼굴이지만 이미 MBC를 통해 방송중인 625 특별기획 드라마 로드 넘버 원을 통해 전파를 탔다. 김하늘의 오빠로 나오는 김진우(김수혁 분)의 아역으로 등장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 이후 연예 포털 사이트에는 그에 관한 검색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로드 넘버 원은 전쟁의 참상 속에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을 그린 휴먼 멜로 드라마로 박용수에겐 드라마 데뷔작이다. 사실 그의 꿈은 가수였다.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들어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비보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전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진로를 변경했다.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하면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충격이었어요. 연기를 하는 연기자의 모습이 너무 즐겁고 재밌어 보였어요. 그 매력에 빠져 저도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요.한번 마음먹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보컬과 연기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어머니와 달리 입시준비나 하라는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쳤다. 사실 비보이를 비롯해서 탭댄스, 아크로바틱 등은 아버지께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반항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매일같이 꾸중하셔서 마음이 아팠죠. 그는 학원과 집을 오가며 밤늦도록 반복되는 트레이닝에 지치기도 했지만 아버지께 결과를 보여드리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로드 넘버 원 캐스팅 소식에도 처음엔 무관심했다고. 엑스트라를 뭐하러 하냐고 했지만 드라마 엔딩 자막에 아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단순한 엑스트라가 아니었다는 걸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매니저를 자처하며 이미지메이킹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박용수에게 로드 넘버 원은 첫 드라마라는 것 외에도 큰 의미가 있다. 작년 말 2010년도엔 드라마에 출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배우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한지 채 2년도 안돼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학원 선생님이 추천해준 로드 넘버 원의 오디션을 보게 된 것. 오디션 자체가 처음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날 밤에 연락이 왔고 다음날 찾아간 오디션장에서 즉석 연기를 해보이고 결국 캐스팅이라는 행운을 안았다.그는 배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학원 연극무대에도 여러 번 올라 햄릿, 싱글즈, 지하철1호선 등의 작품을 두루 연습했다. 그때는 무대에 서는 게 떨린다기 보다 올라가서 재밌게 놀고 오자, 신나게 즐기자 라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진짜 드라마 촬영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니 긴장감을 감출수가 없더라구요. 모든 카메라와 스텝들의 눈길이 집중돼 감독의 큐소리도 듣지 못하고 NG를 내기 일쑤였지만 그때마다 배우면서 성장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드라마가 방영되고 난 후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다며 예의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는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이병헌을 꼽는다. 이씨처럼 강하면서도 다양한 부드러움을 연기하는, 변신에 능한 배우가 되고 싶어서다. 앞으로 5년 후의 계획을 모두 짜놓았어요. 제가 생각한 연극과 영화를 만들어 무대에 올릴 거예요. 연기는 물론 당연히 잘해야죠. 그래도 첫 번째가 배우인데. 다만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의 저와 같은 후배들에게 박용수처럼만 해라. 연기든 기획이든 무엇을 맡겨도 박용수가 제격이야 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조금 욕심이 많죠?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그에게 드라마는 겪어보지 못한 현실을 배울 수 있는 현장이 되고 있다.

주민과의 소통 최우선 과제, 섬세한 의정 약속

수도권 지역에서 최초로 민주노동당 소속 여성 시의장이 탄생했다. 7월 1일 열린 하남시의회 임시회에서 상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홍미라 민주노동당 의원(48)은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섬세한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3선 고지에 오른 홍 의장은 이날 민주당(3명)과 민노당(2명) 의원 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임시회에서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출됐다.부의장에도 초선 출신의 여성인 민주당 소속 방미숙 의원(43)이 선출돼 하남시의회는 의장단 모두가 여성으로 채워졌다.홍 의장은 이날 시의회 개원 화두로 윤리소명의식을 바탕으로 무엇이 지역을 위한 최선의 결정인가라는 대의명제 하에 동료 의원들간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의 의한 의회상을 정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이어 그동안 하남시의회는 광역화장장 유치를 둘러싼 문제로 큰 갈등을 겪었다면서 이제 새로운 시의회는 그런 갈등을 넘어 화합과 소통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모범적인 의정운영으로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시의회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특히 그는 주민들 속에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집행부와도 배척하지 않고 지역을 위해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겠다고 전제 한 뒤 이번 의회에서 만큼은 진정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혔다.홍 의장은 지난 4년 동안(제5대)은 집행부의 주요사업에 대해 꼼꼼히 점검하고 감시와 견제는 물론 낭비성 예산에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할 정도로 뒤도 안보고 칼질(삭감)했다고 회고한다.화장장 유치 반대투쟁과 중증장애인 자립을 위한 지원조례 제정, 학교급식지원에관한조례제정 등을 발의하다 집행부와는 싸우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러다 보니 (백년전쟁 당시)프랑스를 구한 애국 소녀 잔다르크를 빗대어 주민들이 그를 홍 다르크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홍 의장은 2008년 5월 정당과 정파를 초월, 전국 기초광역자치단체 현역여성의원들로 구성된 전국여성지방의원 네트워크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홍 의장은 충남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 동문이면서 경제학과 출신인 동기와 결혼, 10여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2002년 하남시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하남민주연대 여성위원장과 함께 나누는 민들레 가게 대표 등을 역임했고 현재 광주하남교육청 하남무상급식 추진위원, 지역아동센터 민들레꽃피우기 운영위원 등 다수의 직책을 맡고 있다. 남편 나두열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2006년과 2008년 서울매일신문사 등으로부터 의정대상을 수상했다.

“간판문화 선진화 이끌 터”

군포시청 주택과 공무원 3명이 옥외광고사 2급 자격증을 전원 취득해 화제다. 주인공은 주택과 광고물관리팀 김명필 팀장(행정6급)을 비롯한 직원 김민배(시설7급), 김세진씨(시설7급). 이들은 지난 6월21일 국가공인 옥외광고사 2급 자격증 시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광고물 자격증은 광고업 운영자가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이지만 이들은 공무원 신분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도전했다.직원 모두가 업무의 전문성을 길러 보다 체계적인 광고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이들은 지난해부터 의기투합, 옥외광고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기로 하고 그동안 틈틈이 실무와 이론을 익혔다.그러나 정작 광고물관리법, 광고경관, 광고디자인, 설계와 시공 등 다소 생소한 과목의 책자와 실기 상황에 부딪힐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하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지난 5월23일 서울 디자인고등학교에서 치러진 시험에 응시, 성공의 결실을 거뒀다.특히 이들의 노력은 광고물 인허가 규제와 불법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로 항상 민원인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 기피부서에 근무하기 때문에 더욱 칭송받고 있다.김명필 팀장은 평상시 근무를 마치고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직원 모두가 합격해 너무 기쁘다며 실무와 이론으로 무장하다 보니 민원인에게 업무를 설명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고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홍재섭 주택과장은 직원 모두가 자격증을 취득해 시가 추진 중인 간판문화 선진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몸으로라도 막아라”… 사흘간 격전끝 중공군에 첫 대승

제1, 2차 세계대전의 무대가 된 프랑스. 그 곳 젊은이들은 전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신생 독립국 코레(Cor'ee)는 미지의 세계였다. 프랑스 참전군은 마르세유 항을 출발한 지 36일 만인 1950년 11월 29일 부산항에 도착해 14후퇴 다음 날인 1951년 1월 5일 전선에 배치됐다. 이후 지평리전투(1951년 2월 1315일), 단장의 능선 전투(1951년 9월 13일10월 13일), 화살머리 고지 전투(1952년 10월 610일) 등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세 차례 3개 대대를 교체하며 연인원 3천421명이 참전한 프랑스군은 262명이 사망했으며 1천8명이 부상을 입었고 7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오직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젊음을 바쳤다. 단 한 사람도 내 허락 없이 물러나지 마라! 총알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막아라!전투 재연을 통해 60년 만에 몽클라르 중령의 용맹한 외침을 다시 듣게 된 노병(老兵)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날이 떠올라서다. 건장했던 청년은 전쟁의 흔적 만큼이나 굵은 주름이 패인 노인이 됐지만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는 전쟁이다.지난 5월 26일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열린 625전쟁 발발 60주년 기념 지평리 전투 상기행사에는 지평리 전투에 참가했던 프랑스 참전용사와 가족 82명, 미국 참전용사 100명, 한국군 참전용사 141명을 비롯해 국내 프랑스인보훈단체 등 2천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실감 넘치는 전투장면이 재연돼 주위를 숙연케 했다.20기계화보병사단 장병 1천여 명과 전차 12대, 헬기 2대가 투입된 이번 전투 재연은 1951년 2월 중공군 4차 공세에 맞서 사흘간 지평리를 방어한 지평리 전투를 바탕으로 했다.지평리 전투는 중공군 참전 이후 패배를 거듭하던 유엔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처음 대승을 거둔 전투로, 유엔군이 재차 반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의 발지전투와 함께 대표적인 사주방어 전투사례로 평가받고 있다.당시 중공군과 맞써 싸웠던 미 제2사단 23연대, 프랑스 대대의 무훈과 충성스러운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 바로 지평리지구전투전적비다.지평리지구전투전적비는 지평리의 중심인 지평초등학교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서 용문산을 바라보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먼저 150㎡ 규모의 공터 좌우측에 프랑스군과 미군 참전 충혼비가 나란히 서 있다. 2006년 2월15일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맞아 설립된 비석들이다. 또 다시 계단을 오르자 기단과 탑의 높이가 각각 2m 정도 돼 보이는 전적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문에는 단기 4290년 7월 15일 제5사단 세움이라는 글자가 양각돼 있다. 휴전 직후인 1957년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전적지 고지에서 바라본 지평리 일대는 따뜻한 봄날만큼이나 평온했다. 국방부의 625전쟁 60주년 7대 전투 기념행사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격전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지평리는 인근의 험준한 용문산과는 달리 주변 일대는 300m 내외의 크지 않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평리 마을 중심 지역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후좌우로 보이는 것은 온통 작은 고지뿐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이 당시 아군에게는 사주방어를 편성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지평리 인근 20사단은 매년 2월 15일 전적비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6월 25일에는 지평리 청장년회가 주축이 돼 제사를 지내며 전사한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지평리전투는미군과 프랑스군, 한국군이 병력과 화력의 열세에도 인해전술을 펼치던 중공군 5만여 명의 파상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 한국전쟁 10대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1950년 10월 중국의 개입으로 14 후퇴 후 한강 이남까지 밀린 유엔군은 서부지역에서 반격으로 전환해 1951년 2월10일 한강 남쪽에 진출, 서울 재탈환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한강을 건너려면 서울의 동쪽 측면을 압박해야 했다. 유엔군은 지평리에서 중공군을 흡수격파할 계획을 세우고 지평리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도록 했다. 이들의 총 병력은 5천600여명. 5만 여명으로 추정되는 중공군의 병력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었다.2월13일 밤, 지평리를 포위한 중공군이 새까만 개미 떼처럼 공격을 개시했다. 사흘동안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아군의 막강한 화력에도 불구, 밀물처럼 몰려드는 중공군의 공격을 감당하기엔 벅찼다. 몽클라르 중령의 프랑스 대대는 철모를 벗어 던지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두른채 총검과 개머리판으로 중공군을 물리쳤다. 다음날 크롬베즈의 제5 기병연대가 2개 전차중대와 2개 포병대대로 무장, 지평리에 투입됐으며, 15일 제23연대와의 통로를 구축할 수 있었다.아군의 증원부대가 지평리에 투입되자 사기가 떨어진 중공군은 더이상 공격을 포기하고 15일 밤 슬그머니 철수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은 중공군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38선 회복을 위한 큰 밑천이 됐다.

“사람냄새 풍기며 오랜 친구로 질주”

젠틀(Gentle)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랄까요?젠트라(Gentra)X 클럽 인천지역장을 맡고 있는 이성철씨(30)는 우리는 같은 자동차를 탄다는 이유로 모이게 됐지만 기름냄새가 아닌 사람냄새 풀풀나는 동호회를 만들고 있다며 자동차 동호회를 넘어서 취미활동까지 함께 하는 오랜 친구같은 동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젠트라X 클럽은 GM대우의 젠트라X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뭉친 인터넷 동호회.인천지역은 활발히 활동하는 10여명을 중심으로 5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전국 지역별로 모임이 만들어져 있지만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눈길을 끄는 건 단연코 인천지역이다. 회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다른 지역클럽의 부러움을 한몸에 살 정도로 젠트라X 클럽 인천지역의 열기는 뜨겁다.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로만 이야기를 나누는 다른 인터넷 동호회와는 달리 온라인오프라인 모임이 모두 활성화돼 있는 것도 젠트라X 클럽 인천지역만의 자랑거리.자동차 동호회답게 초보운전자들에게는 엔진오일 교환시기나 세차할 때 주의할 점, 연비를 높이는 법,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하는 점 등을 알려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거나 저렴하게 자동차용품 구입하는 법, 자동차 꾸미는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있다.특히 같은 자동차를 타다보니 차를 타면서 겪게 되는 비슷한 경험들이 많아 자동차정비소를 찾지 않더라도 차의 이상 징후를 알 수 있고 어느 정비소가 친절한지, 정비기술이 좋은지에 관한 정보도 풍부하다.이밖에도 함께 세차를 하거나 단체 드라이브를 나서기도 하고, 야구경기나 월드컵 경기 응원전을 여는 등 다양한 생활의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이성철 지역장은 다들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나서 술을 마시더라도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며 앞으로는 급출발급가속급제동 하지않기, 교통질서 지키기 등 젠틀한 운전습관을 공유하는 동호회라는 명성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 화랑 기치 젊은 작가 전시 지원

2008년 6월 수원지역의 전문 문화 화랑을 기치로 문을 연 씨드갤러리(대표 김윤미). 중동사거리에서 팔달산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66㎡ 남짓한 아담한 공간으로,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 이곳은 그림을 사랑하는 평범한 세 사람 김윤미 대표와 김영환 실장, 홍완의 컬렉터가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다. 이들 3인방은 자주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를 찾아 미술 작품을 감상하곤 했다. 김 대표는 제자들과도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싶어 수원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전시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된다. 좋아하는 그림을 더 가까이서 자주 보고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수원에 부족한 문화 공간을 창조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사명감이 갤러리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갤러리 이름 씨드(seed씨앗)처럼, 척박한 문화의 땅에 씨앗을 뿌려 젊은 작가들이 마음껏 창작활동을 펼치고, 더 큰 무대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대관 전시는 없고 100% 초대전으로만 진행한다. 따라서 이들은 잠재력이 풍부한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 그 결과 문막 창작촌 젊은 작가전, 그림 속 동물전, 중국수인목판화가 자오하이펑전, 수원미술아카이브전 등 내실 있는 전시를 일궈왔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전시회가 열리며 기간은 3주 정도다. 이와함께 시민들을 대상으로한 무료미술감상교실 그림, 쥐뿔만큼만 알자 등을 펼치며 문화저변 확대를 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031)247-3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