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주민 한마음 이끌었죠”

하남문화예술회관 개관을 준비할 때에는 시의 광역화장장 유치에 따른 찬반 논란으로 주민들의 정서가 둘로 갈라져 엄청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예술회관을 매개로 문화예술을 통해서 주민들과 화합하며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 하남시에서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운 김태기 하남문화예술회관 관장(60).김 관장은 지난 7월29일 4년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그는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하남에서 다양한 장르의 기획공연 등을 선보여 경기 동부권의 대표적인 회관으로 성장시켰는가 하면 시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 관장은 지난 3년 동안(개관준비 1년) 샹트페테르부르크 아이스 발레단과 벨로루시 국립발레단, 국립모스크바 중앙인형극장, 조지 윈스턴 공연 등 수준 높은 내한공연을 유치했다.또한, 금난새와 함께하는 하남판타지와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정명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Ditto, 오페라 나비부인,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등 세계 유수의 클래식과 발레 등을 하남에 선보였다.이밖에 늙은 부부이야기와 신의 아그네스, 라이어 1탄, 강부자의 오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염쟁이 유씨, 에쿠우스, 난타, 넌센스 드로잉쇼,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 주옥같은 연극과 뮤지컬 공연 등 해마다 50여건의 기획공연을 펼쳐왔다.특히, KBS 전국 노래자랑(2007년)과 가요무대(2008년), 열린음악회(2009년), SBS 쇼! 노래하는 대한민국(2009년), 대한민국 트로트 페스티벌(2008년) 등은 김 관장이 아니면 유치에 엄두도 못냈던 행사들이다.김 관장은 지난 6월 제주도에서 열린 2010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의 2010 문예회관 운영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136개 기관 중에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이 재임 중 가장 기뻤다고 회고했다.한편, 김 관장은 KBS 예능국 PD(국장급)와 ㈜ETN-TV대표, ㈔독립제작사 협회 회장 등을 두루 거쳤다.

“4대강저지·GTX재검토 특위구성”

8대 전반기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에 고영인 의원이 선출됐다. 고 신임 대표의원은 지난 6월 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의원 경선에서 총 투표자 73명 중 44명의 지지를 얻어 29표를 얻는데 그친 신종철 의원을 제치고 8대 전반기 민주당 대표의원에 당선됐다.고 대표의원은 경선이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통해 7대 도의회에서 한나라당이 모든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에 대해 진정한 사과가 없으면 원 구성 협의를 할 생각이 없다고 못박았다.그는 이어 만약 한나라당이 승자 독식주의 원칙을 포기하고 새로운 원 구성의 원칙을 세우려면 이에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이같은 내용을 한나라당 이태순 의원과 정재영 당 대표에게 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통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고 대표의원은 교육의원이 교육위원장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교육위원장과 교육위원회 배치 문제가 가장 골머리를 썩게 할 것 같다고 전제한 뒤 민주당 제1과제인 무상급식 실현과 혁신학교 등의 사회적 실현과 확산, 교육과 연계된 포괄적 행정 등이 함께 숙고돼야 하기 때문에 교육의원에게 맡기는 문제는 좀 더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그는 자리 나눠먹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임위 및 특위 부위원장 폐지에 대해 상임위원회에 부위원장이 신설되면서 간사의 역할이 무력화되는 등 부작용만 유발했다며 폐지할 뜻을 분명히 했다.고 대표의원은 이어 남북교류추진특위와 중소기업지원특위와 같이 민생문제나 사회적 과제와 관련된 특위를 제외한 불필요한 특위에 대해 정리작업을 진행하겠다며 대신 4대강 저지특위, GTX재검토특위, 민생대책특위 등을 새로 구성하겠다고 밝혀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마찰을 예고했다.고 대표의원은 끝으로 여소야대의 기묘한 상황에서 도민들의 메시지를 잘 읽고 대응해 나가겠다며 반 서민적, 반 민주적 행태를 교정하고 보편적 복지 확대와 이에 대한 예산반영에도 충실하겠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조만간 부대표단 7~8명과 대변인단 4~5명을 구성, 기본적인 계획을 짜기 위한 논의에 나설 예정이며 초선 의원들의 의견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민 행복 생활서비스 정치”

정재영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신임 당 대표의원은 제2 창당의 정신으로 단합하고 바꾸어 새롭게 새출발하자고 강조했다.정 대표의원은 62지방선거의 패인은 한마디로 민심이라는 거대한 강물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환골탈태의 각오로 이명박 대통령만 빼고 전부 바꿔야만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그는 여소야대 국면과 관련, 민심은 천심이라 했는데 이번 선거 결과는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며 이번 선거의 근본적 패인은 국민과 정치, 국민과 정부간에 소통이 먹통이 돼 상호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정 대표는 이어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 우리 한나라당과 정부, 청와대 모두 성난 민심을 깊이 성찰하고 대오각성해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변화하고 창조, 도전하는 이 길에 42명의 의원 동지들이 똘똘 뭉치고 일심단결해 주실 것을 강력하게 부탁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정 대표는 8대 전반기 의회 운영과 관련해서는 우선 단결과 화합, 즉 단합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며 특히 공개, 공정, 공평 등 3공 원칙을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3실주의는 실사주의실용주의실천주의를 바탕으로 1천200만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 서비스 정치를 구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정 대표는 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동목표는 도민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추구에 있다며 대화와 협상을 함에 있어 합리적 원칙과 소신, 투쟁과 명분, 실리,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 나감에 있어 교만하지 않고 최선책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그는 무상급식 등으로 김상곤 교육감과의 소원해진 관계에 대해서는 김 교육감의 교육정책에도 사안에 따라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중의 인기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과 교육의 발전을 저해하는 하향평준화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 저지하고 대처해 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정 대표는 특히 도청과 교육청이 도민들로부터 비난받고 지탄받는 예산낭비성, 전시성 사업 추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견제감독해 의회의 기능과 의원의 역할을 충실하게 지켜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4대강 사업 저지특위 설치할 것”

허재안 신임 경기도의회 의장은 소통하는 의회, 견제하는 의정활동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경기도의회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허 신임 의장은 특히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도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철저히 하라는 도민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며 집행부와 대등한 위치에서 강력한 견제와 비판을 하되 상생을 기본 원칙으로 협력할 것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허 의장은 또 의장은 도의회를 대표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충실하게 그리고 신명나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그것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그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경기도와의 관계 전망에 대해 경기도와 반드시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도와 주겠다면서 국가가 추진 중인 4대강 사업은 국민의 70%가 반대하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해선 과감하게 대응하겠지만 긍정적인 사업은 도와 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무상급식 특위 구성과 관련, 허 의장은 여야간 머리를 맞대어야 할 사안이다. 힘겨루기를 해서는 안된다. 어린이들을 상대로 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며 서로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안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며, 여야간 협력을 통해 기초단위의 예산을 확보하겠다. 그것을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교육위원장 선출을 놓고 교육의원들의 반발이 심한 것과 관련해 도의회는 교섭단체에 의해 정당정치가 이뤄지는 곳으로, 교섭단체에서 상임위원장 배분에 대해 합의한다며 서운할 진 모르지만 교육의원들은 교섭단체 임원이 아니다. 가장 큰 경기도 교육을 책임질 교육위는 정당에서 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허 의장은 이어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의장 출마에 대해 의장직 출마를 공약으로 내세웠다며 그동안 의장은 서울시가 계속했고 그때만 해도 (서울의)인구가 많았지만 지금은 경기도 인구가 1천174만명이나 된다. 서울은 1천40만명으로 경기도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현재 전국 광역의회 의장 중 민주당이 8명, 한나라당 6명, 자유선진당 2명이라며 광역협의체 의장은 중앙정부가 잘못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제재해야 하며, 자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4대강 사업과 GTX 건설에 대해 허 의장은 4대강 사업은 국민의 70%가 반대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 강행은 위험하다. 수도권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GTX 건설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경기도가 아니라 국가가 주도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허 의장은 끝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광교 신청사 이전에 대해서는 이미 부지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옮기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면서도 성남시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사례를 본보기 삼아 우리 실정에 맞게 청사를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갤러리 안에서 벗어난 문화예술활동으로 주목

안양시의 재래시장인 석수시장에 위치한 보충대리공간 스톤 앤 워터(Stone&Water)(관장 박찬응). 석수시장의 석수를 영어로 옮긴 이름과 시장통에 자리잡은 의도에서 알 수 있듯 활동 영역을 갤러리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지역과 생활 속에서 예술을 펼치는 활동을 해 왔다.1층은 교육공간, 2층에는 전시공간과 사무실, 옥상은 야외무대로 구성, 전시와 교육, 공연 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지난 2002년 개관 이래 숨은 작가 발굴과 작가의 작품 활동 지원, 사회 각 분야와의 네트워크 구축, 문화상품 개발, 자료보존사업 등에 주력하고 있다.대표적 프로젝트인 안양천프로젝트와 석수아트프로젝트(SAP)-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 등을 통해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됐던 안양천과 붕괴 위기에 처한 재래시장 등에 예술을 접목시킨 획기적인 발상을 선보여 왔다.이들의 활동은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석수시장과 여러 지역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레지던시는 국가 경계를 넘어 지역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글로컬(Glocal)의 개념을 구현해 왔다.올해는 지난 3월부터 오는 10월까지 2010 석수아트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만안(萬安)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시장을 넘어, 시장이 위치한 만안구를 조망한다는 것이 특징. 결과는 9월 초 오픈 스튜디오와 전시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지만 기간 중 작가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주민과 작가가 함께하는 파티 막수저 쌀롱이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서는 등 볼거리, 즐길거리로 가득하다.

금장카메라 등 마니아 놀랄만한 작품 소장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너무도 친근해진 카메라. 그렇다면 우리는 카메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카메라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과천시 막계동에 위치한 한국카메라박물관(www.kcpm.or.kr)은 김종세(59) 관장이 100여개 나라를 다니며 꾸준히 모은 카메라를 전시해 놓은 사설 카메라 전문 박물관. 카메라와 렌즈, 유리원판필름, 그리고 각종 액세서리를 통틀면 1만5천여점이 된다.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김 관장이 30여년간 수집한 유물 중에는 카메라의 원조인 옵스큐라, 카메라 루시다에서부터 1839년 카메라와 은판 사진술이 세계 최초로 발명된 때부터 현재까지 카메라 발전사에 기여한 카메라들로 가득하다. 660m남짓의 박물관 규모 때문에, 실제 전시품은 전체 중의 10% 수준. 따라서 매년 4~6회 특별전을 개최해 순환 전시하고 있다.지하와 지상 2개층은 특별전시관으로, 특정한 테마를 갖고 진행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입체카메라 특별전에선 입체사진을 만드는 방법을 강의하고 즉석에서 입체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이와함께 연말까지 소형카메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2층은 상설전시관으로 금장카메라 등 마니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모델이 즐비하다. 1830년대 박스형태의 목재카메라를 시작으로 10년 단위로 감상할 수 있다. 단체인원이 예약하면 안내원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각종 체험학습이 가능하다. 문의 (02)502-4123

화려함과 클래식함 동시에 갖춰

많은 예비부부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식장, 웨딩촬영, 웨딩드레스, 웨딩헤어, 부케 등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길고 긴 인생에서 한번뿐인 결혼식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신랑과 신부, 즉 예비부부들이기 때문이다.안양에서는 이 같은 행복한 고민을 한번에 해결할 곳으로 웨딩 앰배서더 라프로메사 웨딩홀이 손꼽힌다.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1056에 위치한 라프로메사 웨딩홀은 1층과 3층에 동시예식이 가능한 호텔급 수준의 웨딩홀이다.라프로메사 웨딩홀은 1층부터 눈길을 끈다.웨딩홀을 포함해 예약실, 미용실, 드레스실 등이 있는 1층은 로비에서부터 골드와 블랙컬러가 어우러진 인테리어로 고객들을 사로잡는다. 또한 140석 규모의 1층 웨딩홀은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해 모던한 이미지로 시시각각 변하는 LED조명을 활용, 마치 콘서트홀같은 황홀함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공주방처럼 꾸며진 신부대기실은 비밀스러운 계단을 통해 웨딩홀로 내려오는 구조여서 흡사 천사가 강림하는 모습을 연상케 해 신부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이와 달리 3층은 고풍스러운 호텔급 웨딩홀로 클래식이라는 말로 대변된다.원목으로 이뤄진 실내장식은 따스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지고 높은 천정은 웅장함을 자아내며 마치 성당을 연상시킨다.또한 결혼식과 식사를 겸하는 동시예식이 가능해 신랑신부의 부모님들이 선호한다.1층과 3층 예식홀 모두 예식도중 축가가 끝나면 마술사가 무대로 나와 하객들에게 화려한 마술쇼를 펼치는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특징이다.2층과 지하 1층은 연회장으로 각각의 호실로 분리돼 다른 하객들과 부딪힐 염려가 없으며, 음식은 코너별로 구성돼 있다. 스시, 초밥, 캘리포니아롤 등의 제공 코너가 따로 있으며, 생맥주 및 와인코너도 별도로 운영하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이로인해 연외장은 결혼식 피로연뿐만 아니아 돌잔치, 고희연 등 각종 연회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이와함께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과 인근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을 경유하는 셔틀버스를 운영, 방문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김영훈 전무는 이 곳을 찾은 하객들이 새로운 고객으로 되는 경우도 많다며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흥갯골축제 주민참여축제로 열려 주목

시흥갯골축제가 수도권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했다.8월 1315일까지 시흥시 장곡동 갯골생태공원에서 열린 갯골축제에는 수 많은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찾아 염전체험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축제는 머드염전체험, 해수물놀이, 갯골 생태체험교육, 문화예술공연 등 다채롭게 펼쳐 졌다. 축제기간 동안 관광객들은 염생식물과 퉁퉁마디, 방게, 농게 등 동식물을 직접 관찰하고 생태탐방로를 걸으며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도 가졌다.올해로 다섯번째를 맞는 갯골축제는 기획부터 프로그램 운영에 이르기까지 주민참여형태로 열려 주목을 받았다.시민위주의 축제운영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지역 NGO 단체들이 갯골여행, 갯골늠내길 탐방, 갯골습지보호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했다. 또 공무원일반시민 등 자원봉사자 1천여명이 관람객이 아닌 축제진행 도우미로 참여해 성공적 개최에 한몫을 했다.그러나 편익시설이 부족해 관광객들이 다소 불편을 겪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축제가 열린 갯골생태공원 일원이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샤워장과 주차장, 그늘막 등 편익시설을 충분히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50만6천㎡ 규모의 갯골생태공원은 경기만 유일의 내만 갯골을 간직한 곳으로 옛 염전, 소금창고의 모습을 볼수 있는 자연생태공원이다.김종순 관광축제계장은 갯골, 갯벌, 소금이라는 콘텐츠의 축제를 통해 시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나타낼 수 있는 시흥의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시흥의 랜드마크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축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군 전사자 3만6,900명 그들은 말한다 “Freedom is not free”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참전을 결정한다. 1950년 7월1일 미 육군 제24사단 21연대가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남한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의 주축이었던 미국은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총 178만명이 참전했고, 3만6천90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9만2천여명이 부상을 당해 이들 중 일부는 아직도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낯선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치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미국 참전용사.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임진각에 있다. 미국군 참전 기념비는 망배단이 세워져 명절이면 북쪽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 서서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Freedom is not free)을 웅변하고 있다.미국군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임진각 평화공원 앞 끊어진 철길 위에는 수십년째 달리고 싶다는 염원을 간직한 철마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화공원 안에는 이름에 걸맞게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 625 전쟁를 기념하기 위한 갖가지 조형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 중 하나가 미국군 참전 기념비다. 이 기념비는 625 전쟁 당시 참전했던 미국 장병들의 희생과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국방부가 지난 1975년 10월3일 건립한 것. 현재는 파주시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를 맡고 있으며, 주말이면 수천명의 사람들이 찾는 만큼 주변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유엔 참전 16개국의 깃발이 걸린 50개의 깃대가 비를 둘러싸고 있으며, 1m 정도 되는 4개의 삼각형 부조는 서로의 꼭지점을 맞댄 채 미국군 참전 기념비라고 새겨진 비석을 감싸고 있다. 삼각형 안쪽 면에는 미군의 생생한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참전비 전문에 따르면 4개의 삼각형 부조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참전을 의미하며, 삼각형들의 꼭지점이 연결된 것은 단결을, 내부 가운데 비석은 영령들을 국민 모두가 보호 안치함을 상징한다고 적고 있다. 또 50개의 깃대는 참전 당시 미국의 50개 주를 뜻한다.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전쟁 기간 중 미국은 제1제9제10 군단 등 3개 군단, 제1기병사단을 비롯한 8개 육군사단, 1개 해병사단, 3개 연대 전투단 등을 속속 투입함으로써 미군 전투병력은 최고 30만2천명에 달했고, 총 참전병력은 178만명에 이르렀다.그 결과 625 전쟁 중 거의 대부분이 미군의 지휘 및 작전통제 하에 이뤄진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의 주도로 수행된 주요 전투 및 작전은 140여개에 달하고, 작은 전투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200여개에 달한다.미군은 1950년 7월 5일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오산전투를 비롯해 대전전투, 진주하동전투, 영산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평양탈환작전, 군우리 전투, 지평리 전투, 불모고지 전투, 포크 찹 고지 전투, 저격능선 전투 등 수없이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한미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한미 해병대 행주도강 전투는 유엔군이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서울을 탈환수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투다. 9월19일 경인가도를 따라 서울로 진격하던 한미 해병대는 한강 남단에 도착한다. 서울 탈환을 위해 한강을 건너야만 하는 해병대는 한강 도하 작전을 세웠다.이날 밤 8시14분, 14명의 해병 수색대가 두 개의 고무보트에 나눠 타고 강 건너를 수색했지만, 별다른 적정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포비행장을 탈환당한 북한군은 서둘러서 1개 대대 병력을 이날 밤 늦게 행주산성 정상 부근에 배치했다.수색대로부터 보고를 받은 수색대장 호튼 대위는 상부에 이상 없음을 보고한다. 이 정보에 해병대 5연대장 머레이 중령은 그날로 야간 도하 작전을 감행한다.미 해병대 5연대 3대대 1중대가 교두보 확보를 위해 개화산 뒤에서 대기하던 수륙양용장갑차에 승차하여 출동한다. 그러나 장갑차가 강을 중간쯤 건너자 행주산성 쪽에서 박격포탄과 기관총이 비 오듯 날아왔다. 당황한 연대본부는 도강 중인 부대를 즉각 퇴각하라고 지시하지만 2대의 장갑차가 좌초되고 정찰대원 1명이 행방불명 되는 피해를 입는다.성급하게 서두르다가 좌절을 맛 본 미 해병대는 다음날인 20일 새벽 다시 도강 작전을 전개한다. 이 작전에서 미 해병대는 북한군 200여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해병대도 43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이날의 전공을 기리는 한미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가 행주산성 서북쪽 산록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현장을 찾아서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우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0년이 흘렀다.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의 의거는 조선과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해 일본의 침략을 저지, 동양평화를 이룩하고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이어지는 세계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경기일보 과천자사 자문위원회는 지난 6월24~27일 안 의사의 의거 현장을 탐방했다.◇일본의 침략야욕을 경고하다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 러시아와 맞닿은 중국의 변방 도시 기차역 플랫트폼은 러시아제국 군악대와 의장대, 청나라 군대, 일본 관리와 러시아 관리 등 수백명이 운집해 있었다. 특별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정치 거물은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거만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때, 갓 서른을 넘긴 검은색 양복 차림의 훤칠한 조선 청년이 러시아제국 군대 뒷편에서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탕~탕~탕~ 플랫트폼에 모였던 군중은 비명들을 지르며 흩어졌고 일본의 정치 거물은 고개를 떨궜다. 조선 청년은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 대한국 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당시 추밀원 의장)를 저격한 의거는 이렇게 시작됐다. 청일전쟁(1894~1895년)과 러일전쟁(1904년) 등으로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시점에서, 조선의 본격적인 무장독립투쟁을 예고하는 총성이었다.◇100년 지난 의거현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2010년 6월26일 오전 9시, 하얼빈역 플랫트폼. 시간만 1세기만 흘렀을뿐, 다롄(大連)역을 출발해 밤을 꼬박 세워 달려온 열차가 토해낸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등 그날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열차에서 내려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제복을 갖춰 입은 여성 열차 승무원들도 100년 전 그때처럼 일렬 종대로 대오를 이룬 채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었다. 그 뒤편으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들었던 현장이 보였다. 보도블럭에 엷은 자주색 페인트로 사격방향을 알려주는 마름모 형태의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6년 전 중국 당국에 의해 뒤늦게 표시된 역사의 흔적이었다. 낯선 타국에 우리의 독립투쟁 현장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숱한 중국인들이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며 지나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북방의 햇볕은 따가웠다. 안 의사는 의거 직후 하얼빈시 화위엔졔(花園街) 351호에 위치한 옛 일본영사관으로 압송된 뒤 다롄역을 거쳐 뤼순으로 압송됐다. 다롄역은 검은 연기를 뿜어대던 증기기관차가 디젤기관차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강산이 열차례나 바뀌었는데도 예전과 거의 비슷했다.◇타국의 하늘 아래에서 독립을 염원하며중국 북방의 해양도시 뤼순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었다. 이곳의 정확한 행정구역 명칭은 다롄시 뤼순코우치(旅順口區). 청년 안중근이 재판을 받았던 관동주법원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롄시 뤼순코우치 황허루(黃河路) 베이이강(北一巷) 33호가 정확한 주소. 안 의사는 관동주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뤼순감옥으로 옮겨졌다. 러시아는 18세기 이후 이 도시를 장악한 뒤 정치범들을 위한 형무소를 조성했었고,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이 일대를 확보한 뒤 이미 설치된 러시아 감옥을 증축했다. 다롄시 뤼순코우치(旅順口區) 상양졔(向陽街) 139호에 위치한 뤼순감옥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완공됐다. 여순일아감옥구지(旅順日俄監獄舊址)라고 쓴 푯말이 이방인들을 맞고 있는 뤼순감옥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청년 안중근은 이곳에서 4개월 정도를 보낸 뒤 1910년 2월14일 순국한다.◇안중근 의사와 칸트의 평화론청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유는 명쾌했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명성황후 살해죄와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을 천명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이 모든 죄는 결국 동양평화 파괴로 귀결된다.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과 중국 등 동양의 평화가 깨졌고 러시아 등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전쟁의 참상이 조선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아시아를 지키고, 뤼순에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동양평화회의를 설치하며, 3국 공동 은행을 창립해 공용 화폐를 발행하고, 3국 청년들로 공동 군대를 편성하며 상대방 언어를 교육하자는 게 그의 동양평화론이다. 이같은 사상은 독일의 비판 철학자인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일맥 상통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 핵심은 공화제와 평화로 압축된다. 칸트는 전쟁 방지를 위해 국가 간 조약으로 평화연맹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청년 안중근도 모든 국가들이 자주독립을 실현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재정적 권력을 공유하는 평화회를 조직하고 뤼순을 거점으로 삼자고 주창했다. 그의 평화론은 1세기가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탐방단=이승규 경기일보 전무이사, 전봉학 경기일보 과천지사 자문위원회 위원장, 곽흥섭 위원, 정재훈 위원, 이종길 위원, 박성일 위원, 허행윤 기자, 김형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