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이 1921년 발표한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서열과 권위주의에 지친 주인공은 이렇게 한탄한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요.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적이 정신이 바루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보겠다고 애도 써보았어. 그것이 모다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서열과 권위주의에 좌절하는 ‘술 권하는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한 가지 ‘빚 권하는 사회’가 추가됐다. ‘빚투’, ‘영끌’이란 신조어의 등장과 2030세대의 주식, 코인, 부동산 열풍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일확천금을 손에 쥔 이들의 ‘성공 신화’가 전단지처럼 뿌려져 많은 이들을 현혹했다.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어쩌다 투자로 이득을 보게 돼 ‘초심자의 행운’에 취해 도박과 같은 욕망의 덫에 걸려 한순간에 삶의 위기에 처한 이들도 비일비재하다. ‘성공 신화’에서 말하는 ‘성공’은 물질적 차원에 국한되고 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의 일부를 넘어 전부가 돼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한 거주와 아름다운 가족이 목적인 ‘집’은 얼마가 오르고 떨어지는가의 투자가치로 수단화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삶의 목표는 건물주가 되거나 신속히 100억을 모아 영앤리치가 돼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이 됐다. 곳곳에서 돈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배금주의, 돈을 신앙하는 돈교가 성행하면서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는 때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형제와 유산을 나누게 해달라는 사람에게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며,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비유로 하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어 걱정하면서, “내 곳간을 헐어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겠다”고 결심하고는 자기 영혼에게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한다. 이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신다. 부자는 여러 해 쓸 것들, ‘물질’에만 관심했고, 하나님은 오늘 밤 네 ‘영혼’, 즉 내면에 관심하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면서 외적인 것이 아닌, 영혼과 내면에 관심하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철학자 푸코는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을 말한다. 푸코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권력과 지식, 물질에 얽매인 이들로 생각하면서, 외부적 요인들에 몰입해 자신의 가치를 파악한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자기 소외와 체념, 좌절과 열등감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 배려’인데, 주도적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밖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자기 내면으로 돌리기 위한 방법들은 자기 몰입과 자기 통제, 지속적인 의식의 점검, 경청, 독서, 글쓰기, 명상, 산책, 친구와 대화하기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성장 신화를 좇아 빚 권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인생은 베팅이 아닌 배려가 필요하다. 여러 해 쓸 ‘물질’보다 오늘 내 ‘영혼’에 더 관심해야 한다. 이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실천할 때 자기 혁신과 가치 있는 삶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양승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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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2-10-27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