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다. 공자가 제자들과 천하를 떠돌다가 돈과 식량이 떨어져 고생한 적이 있다. 일주일이 넘도록 쌀 한 톨 입에 넣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제자 안회가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는데, 식사를 기다리던 공자가 문득 부엌을 내다보니 안회가 솥을 열고 밥을 집어먹고 있었다. ‘다들 굶주리고 있는데 자기 배 먼저 채우려 들다니!’ 공자는 괘씸했지만 모른 척했다. 그리고 안회가 밥상을 차려오자 “조금 전 낮잠을 자다가 꿈에서 아버님을 뵈었다. 먼저 아버님께 제사를 올린 뒤에 식사하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회는 놀라며 “안 됩니다. 아까 뜸이 잘 들었나 보려고 솥을 열었을 때 천장에 있던 그을음이 떨어졌습니다. 밥을 버리는 것이 상서롭지 못해 제가 걷어내어 먹었으니 제사에 쓸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안회를 오해한 것이다. 공자는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그동안 눈으로 본 것은 믿어 왔지만 완전히 믿을 게 못 되는구나. 그동안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의지해 왔지만 완전하게 의지할 수는 없구나. 너희들은 직접 보고 들었다 해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화가 주는 교훈만큼은 공자가 평소 강조해 왔던 내용에 부합한다. 논어 ‘자한’편에 따르면 공자는 평생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제멋대로 억측하지 않았다는 ‘무의(毋意)’,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는 ‘무필(毋必)’,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무고(毋固)’,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내세우지 않았다는 ‘무아(毋我)’. 요컨대 자기 판단이나 생각만 옳다고 여기지 않고 편견에서 벗어나 항상 사안의 참 모습을 보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어떤가. 내 생각이나 믿음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잘못된 나의 인지를 바로잡기는커녕 확증편향으로써 부조화를 제거하려 드는 경우가 있다. 반대되는 증거가 쏟아져 나오더라도 부정하거나 외면한다.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로 이어지고, 그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든다. 내 멋대로 억측하고 반드시 이럴 거라며 단언하게 만든다. 이 지경에 이르면 잘못 행동하면서도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릇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내가 인식한 대로만 억측하고, 내가 생각한 대로만 단언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 정신의 편향은 갈수록 심해져 진실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말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제멋대로 억측하지 않은 공자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내가 본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전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공자 같은 성현도 자기가 본 것을 믿고 안회를 오해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공자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잘못된 길로 빠지진 않을 것이다.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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