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참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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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인권(人權)은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보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국민의 권리가 헌법의 기본권으로 존재한다. 각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기 위해서 어려움과 고통과 피곤함을 이겨내 간다.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부모들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자녀들은 미래의 행복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의 삶을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幸福)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흐뭇하도록 만족해 부족이나 불만이 없음.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한다. 사전적인 의미만 놓고 본다면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만족한다는 뜻이 된다. 원래 우리말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었고 이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다. ‘행복’이라는 말은 19세기에 일본의 학자들이 서구의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로서 그 후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이다. ‘행복’은 일본에서 번역된 언어로 만들어낼 때 가장 고심했던 단어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영어의 ‘happiness’라는 단어는 어원상 ‘하나님이 허락한 좋은 시간’으로 기독교적인 하나님의 개념에서 출발된 단어였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고에는 없는 개념이었으므로 일본의 번역자들은 물질적 풍요와 관련이 있는 두 글자인 ‘다행 행’과 ‘복 복’자를 붙여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결과, 행복은 다분히 샤머니즘적인 개념으로 이해가 된 단어가 됐다. 그래서 기독교 안에서조차 이 행복의 개념이 성경 속에서 나오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행복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헛된 행복을 잡으려고 3가지 가짜 행복에 속아 살아가고 있다.

첫째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는 잘못된 착각이다. 둘째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남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착각이다. 그리고 셋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가 이 땅에서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우리는 착각된 행복을 잡으려 할수록 더욱 참 행복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참 행복은 내 안으로 무엇을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무엇인가가 밖으로 흘러 나가는 것으로 행복이라고 가르친다. 서로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얻게 되고 그 사람들과 함께 보람을 경험하는 것이 참 행복이라고 가르친다.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가 타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Post Modernism이라는 후기 현대 사회다. 모든 것들이 원칙이 없어져 가는 각 개인주의가 흘러 넘쳐가고 있다. 우리들이 날마다 접하는 새로운 소식들은 희망보다 절망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전쟁의 고통과 경제의 압박감과 무서운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때가 아닐까? 치열한 삶의 경쟁 속에 지쳐있는 내 옆에 있는 그 한 사람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 줄 때 그 때가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거창하게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격려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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