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2. 경기도·인천 경제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2025년, 경기도와 인천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두 지역의 발자취는 소상공인의 눈물과 땀, 기업의 노력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대한민국 경제 역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작지만 고귀한 요소인 ‘사람’에서부터 그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복 이후 80년간 경기, 인천의 산업화 과정과 경제적 변화를 경제 통계와 지표를 통해 짚어봤다. ■ 수도권 경제를 움직인 거대한 흐름 ‘인구 이동’ 광복 이후 경기도와 인천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인구 이동’이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기록에 따르면 1949년 전국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 경기도 인구는 275만594명(13.6%)으로 집계됐다. 당시 경기도 행정구역에는 현재의 서울과 인천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인구는 5천121만7천221명이며, 이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인구는 2천604만 7천523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50.9%에 달한다. 전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천369만4천685명의 경기도 인구와 302만1천10명 인천 인구의 합은 1천671만5천695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32.6%를 차지한다. 수도권 인구 증가는 단순한 팽창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는 원동력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경기도는 서울과 맞닿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IT산업의 중심지로, 인천은 항만과 물류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더 많은 경제활동을 유발해 수도권 전체를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로 변화시켰고, 오늘날까지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 산업화와 공업 발전, 그리고 분리된 길: 경인 경제, 시대의 흐름을 타다 대한민국 경제가 기틀을 다지던 시기, 경기도와 인천은 빠르게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산업화의 출발점이자 경인 지역 경제의 토대가 형성된 1940년대 경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를 살펴봤다.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경기도에서는 다양한 업종의 공장이 활발히 가동됐다. 특히 ▲식품(45개) ▲화학(44개) ▲기계(30개) ▲섬유(20개) ▲요업(17개) ▲광업(17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 활동이 이어졌다. 이는 미군정 시기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 재산을 불하받아 운영된 공장들로,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도 경기도 산업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천 역시 산업화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1946년 3월 인천에서는 168개의 공장이 운영됐고 불과 3개월 후인 6월, 242개로 급증했다. 이는 인천이 빠르게 산업 중심지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천은 일본 식민지 시절 귀속된 공장들이 대거 분포했던 지역으로 당시 귀속 공장 201개 중 135개가 집중된 지역이었다. 1949년 ‘인천부(仁川府)’에서 공식적으로 ‘인천시’로 승격될 때까지도 인천은 경기도 산업의 핵심을 담당했다. 산업의 기틀을 다진 경기도와 인천에선 시대별 산업 변화를 눈여겨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경기도에서는 음·식료품, 섬유·의복 등 소비재 산업이 주를 이뤘으나,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바탕으로 기계 및 장비, 고무·화학·석유·석탄 등 중화학공업이 급성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한국 최대 규모의 경인공업지대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주요 대상 지역이 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이 시기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제품 수출 비중은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급증했다. 1981년, 인천이 경기도에서 완전히 분리돼 독립된 광역시로 재탄생했고, 경기도와 인천의 주요한 산업에도 변화가 일었다. 1980년대 이후 경기도는 IT,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성장하며 산업 구조가 고도화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평택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이 발전하고, 판교·광교테크노밸리 등 첨단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경기도 4차 산업의 특화도와 동태를 분석한 GRI연구논총에 따르면 경기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에서 ICT 제조업종의 비중은 2002년 24.3%에서 2012년 39.6%로 상승했다. 인천은 2000년대 이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을 발전시켰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인천항은 지난 2022년 컨테이너 물동량 335만 TEU를 처리했으며 2023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국제 화물 운송 실적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국제 비즈니스, 첨단 산업, 관광 레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지역 경제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 시장과 소상공인 시장과 소상공인의 변화는 단순한 상업 흐름을 넘어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시대별로 시장의 형태와 소상공인의 업종이 달라지며 경기도와 인천 경제의 구조도 함께 변화해 왔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에 따르면 1954년 경기도에는 111개의 시장이 운영됐다. 축산물과 농산물이 주된 거래 품목이었으며,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중심지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상설시장이 증가하고 수원과 인천 등지에 중앙도매시장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경기도의 상점 수가 2만851개로 집계됐으며, 이 중 법인 사업체는 330개였다. 농산물과 식료품 중심이던 시장은 점차 의류, 의약품, 건축자재 등 다양한 품목을 거래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에는 전통시장 수가 165개로 늘었고, 이 중 70개가 상설시장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슈퍼체인’(대형 마트 체인)이 등장하면서, 유통 구조도 커지는 흐름을 보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집계한 지난해 7월 기준 전통시장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150개의 전통시장과 2만3천40개의 점포, 인천에는 44개의 인증된 전통시장과 1만1천504개의 점포가 있다 ■ GRDP로 본 대한민국 경제 중심지 경기·인천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는 광복 이후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1940년대 후반, 공식적인 경제 통계가 부족했던 시기에도 연구자들은 간접추계를 통해 당시 경제 규모를 분석했다. 표학길·이근희의 ‘한국의 지역별 국내총생산(RGDP)의 간접추계’ 연구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84년까지 경기도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29%에서 51% 사이의 부가가치 비중을 기록하며 산업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부터는 현대적인 지역내총생산(GRDP) 개념이 도입되며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 규모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집계가 시작된 1985년 기준 경기도의 GRDP는 약 13조원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이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며 2014년에는 GRDP가 약 352조를 달성, 약 350조였던 서울의 GRDP를 초과하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실질 경제성장률이 서울의 3배에 달하는 성과를 기록하며 수도권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탈서울 현상, 신도시 개발, 교통망 확충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진됐다. 2023년 기준 경기도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35.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56.0%에 달하면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고 있다. 인천의 성장 속도도 눈에 띈다. 1985년 인천의 GRDP는 3조2천억원으로 전국 8위를 기록했다. 2017년 GRDP는 88조5천억원으로 특별·광역시 중 서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인천 역시 2023년 제조업 비중이 27.7%를 차지하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62.1%로 증가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문미성 경기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와 산업이 집적된 경인 지역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핵심 지역으로서 시대별 성장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과 교통 인프라를 제공하며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를 이끌었다”며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미래 성장을 주도하는 선도 지역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43
잿빛 폐허 위에서 희망을 설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광복과 전쟁의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과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일궈낸 이들. 우리는 그들을 ‘지역경제의 개척자’라 부르기로 했다. 1950년 삼백산업(三白産業)과 광공업의 불씨를 댕기고 중화학 공업과 IT·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세계 시장에 진출한 기업부터, 지역 주민과 호흡하며 삶의 애환을 나눈 소상공인의 이야기까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 경제의 개척자들을 조명해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그려본다. 편집자주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1. 불모지서 ‘기회의 땅’으로 “대한 독립 만세!” 1945년 8월15일. 억압의 어둠을 뚫고 두 손이 하늘을 갈랐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희망의 불씨가 뜨거운 태양 아래 솟구쳤다. 3·1운동으로 시작된 외침은 8월의 환희로 타오르고, 광복의 깃발이 억센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그날, 광장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함성을 품은 사람들은 무너진 폐허 위로 다시 일어섰다. 고난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새로운 역사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적은 경기도를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경제 심장부로 만들고, 인천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우뚝 세웠다. 대한민국 경제의 태동을 알리고 중심을 지켜온 지역 경제. 그 안에는 광복 전후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기업들이 숨 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40년대부터 지역 곳곳에서는 산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안양의 노루페인트는 광복과 함께 건설·산업 현장에 색을 입히며 성장했고, 삼성제약은 1950년대 국민 건강을 책임지며 국내 제약 산업을 선도했다. 1951년 인천의 공성운수와 이천 애경개발은 교통과 생활용품 산업을 기반으로 도시 재건의 초석을 다지며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한제분은 1952년부터 한국 밀가루 산업을 재건하며 국민 식생활을 책임지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대한전선과 가온전선은 전력과 통신망 구축을 주도하며 경제 회복의 기틀을 다졌다. 팍팍한 삶 속에서 꿋꿋이 희망을 노래한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도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오산 할머니집 설렁탕은 광복 전부터 지금까지 설렁탕 한 그릇으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왔다. 1945년, 의정부의 부흥국수는 피란민들이 모여드는 시장 한편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으로 자리를 잡으며 오늘날 국수 공장을 세우는 역사를 만들었다. 같은 해 문을 연 인천 영제한의원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침술을 이어왔고, 수원 만빈원은 1950년부터 짜장면 한 그릇에 고향의 맛을 담아내며 지역 경제의 뿌리를 지켜왔다. 이들은 단순 사업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역사의 증인이다. 1941년 설립돼 국내 전선 산업의 포문을 연 ‘대한전선’ 관계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헌신해 온 모든 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앞으로도 경기도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2025년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울림으로 남아있는 1945년 8월15일 그날의 함성. 그 80년의 역사 속 경기도와 인천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하며 성장의 발판이 된 기업들과 소상공인을 만나 이들의 역사와 시대상을 조명해 본다. ■ 광복 이후 ‘대한’의 이름으로…대한민국 불 밝힌 대한전선의 태동 대한민국 ‘빛’의 역사를 되짚어가면 국내 전선 산업의 시작을 알린 대한전선이 있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조선전선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조선전선’은 일본이 물러나며 대한민국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故 설경동 회장은 이를 불하받아 경기도 안양에 자랑스러운 ‘대한’의 이름을 내걸고 대한전선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한전선 초대 회장인 설경동 회장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업가였다. 설경동 회장이 1936년 세운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는 연 1천만원(현재 가치 1조원)에 달하는 동해안 정어리어업 및 가공 산업을 주산업으로 삼았다. 1945년에는 선단 70여척을 보유하면서 그 규모를 더욱 키워 나갔다. 그러나 설 회장은 광복 당시 친일파로 몰려 공산당에 재산을 몰수당했고, 남은 어선 몇 척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수산과 무역회사 대한산업을 설립했다. 당초 사업에 소질을 보였던 설 회장은 회사를 굳건히 성장시켰고, 수원의 성냥공장까지 인수하며 한국전쟁 전 성냥업계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전쟁과 함께 설 회장의 전 재산은 먼지가 돼 사라졌다. 그러나 설 회장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 대한방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 1954년에는 대동증권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설 회장은 일본의 잔재였던 조선전선을 불하받아 이듬해 대한전선으로 재창업했다. 굴곡진 설 회장의 인생처럼 주인을 찾지 못하고 내팽개쳐 있던 과거 조선전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전선으로 대한민국을 밝히기 시작했다. 대한전선은 ‘조선’이라는 사명(社名)을 벗고 ‘대한’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전무했던 전선 산업의 시초가 되는 등 여러 의미의 개척을 일궈냈다. ■ 어둠 속 한 줄기 빛…광복과 함께 전선 산업 선도한 ‘대한전선’ 광복 이후 1955년 조선전선은 현재의 사명인 대한전선으로 사명을 변경,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1957년 PVC 피복 전선을 생산했으며 1959년 국내 최초 용동 압연기 설치, 1961년 국내 최초 연피통신케이블 생산 등 ‘최초’의 기록을 세워나갔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에 들어서며 대한전선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1960년 초반 국가 주도의 인프라 구축 사업 등 수많은 현장에 전선을 공급했으며, 1964년 국내 최초로 전선을 해외에 공급하며 대한전선이라는 사명과 대한민국을 알리는 국위선양을 이뤄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8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대한전선은 당시 재계 5위까지 성장했다. 대한전선은 1969년 텔레비전을, 이듬해인 1970년에는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산업 발전의 고도화가 진행된 1970년대 후반, 대한전선은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초고압 OF 케이블 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초 광섬유를 개발하면서 전선 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국내외 전력 및 통신망 구축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전선은 1980년대에 ‘제2의 창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국내 전선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본격적인 기술 연구 및 생산을 위해 기술연구소와 안양 광통신케이블 공장을 설립, 해저용 광케이블과 누설 동축케이블, 국내 최초 Kraft 절연 345kV OF 케이블 등을 개발해 냈다. 대한전선은 기술력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하며 경기지역의 제조업에 한 획을 그었다. 수출 등 세계 무대로 영역을 확장한 대한전선은 1997년 제34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 해외에서 대한전선의 위상을 증명해 보였다. 세계 10대 종합 케이블 기업으로 성장한 대한전선은 자동화, 4차산업의 등장 등 전 산업에 변화의 파동이 일었던 2010년대에도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내공으로 흔들림 없는 성장세를 이어 나갔다. 지난 2011년 대한전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당진공장을 준공했으며 2023년 국내 최초로 525kV 전압형 XLPE HVDC 케이블 국제 인증을 받았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대한전선은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비전과 경영이념, 중장기 전략 등을 수립해 도약과 전진을 이뤄 나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을 채워 나간 대한전선은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과 세계 최고의 케이블&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 하에 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음도 치료합니다…1945년 의료 산업의 포문을 연 ‘영제한의원’ 경기인천지역의 경제를 이끌어 온 ‘지역경제의 개척자’는 기업뿐만이 아니다. 빽빽한 보도블록 틈에서도 푸릇한 새싹이 고개를 내밀 듯, 척박했던 광복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지역 경제를 성장시킨 소상공인도 주역이다. 현재는 구도심이 돼 버린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자리하고 있는 영제한의원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광복 이전 문을 연 영제한의원은 길 영(永), 구할 제(濟), 생명을 영원히 구한다는 염원을 담아 이름 붙여졌다. 이는 한의학의 핵심인 ‘구제창생(救濟蒼生)’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염원을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인간적이며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영제한의원 경영 방침이자 역사의 시작이다. 영제한의원은 노학영 초대 원장, 노두식 2대 원장, 노승조 3대 원장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대째 지역 주민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주치병원으로 자리 잡기까지 여러 시대적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창업주인 노학영 1대 원장은 대한민국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노학영 원장은 1940년대 초 인천 도원동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복숭아밭이 많아 ‘도산정(桃山町)’이라고 불렸던 도원동은 일제강점기 병참기지화로 노동자들이 살 집이 부족해지자 인천부 즉, 지방관청이 직접 집을 지어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난을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이 대거 도원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영제한의원을 찾는 일본인 환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길고 긴 일본의 통치가 끝난 1945년, 노학영 원장은 광복을 기념하며 1945년을 개원 원년으로 삼고 지금의 위치인 숭의동에 터를 잡았다. 노학영 원장은 ‘동의보감’, ‘변증기문’, ‘방약합편’ 등 한의학 처방 서적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일일이 옮겨 적거나 목판, 금속활자로 찍어내 의술을 연구했으며, 노 원장의 영제한의원은 광복의 감동과 함께 활짝 문을 열고 지역민과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됐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로의 모습을 갖춰가던 꽃 같은 시절이 지속될 줄 알았지만, 불과 5년 뒤 6·25전쟁이 발발하며 세상은 암흑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그 일대를 뒤로 한 채 무의도로 피난을 가게 됐고, 인고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영제한의원은 흔적도 찾기 어려울 수준으로 폐허가 돼 버린 상태였다. 절망만이 남아있던 노학영 원장은 영제한의원이 지역민의 웃음꽃이 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재건에 힘을 쏟았다. 노 원장은 전쟁 잔해를 정리하며 수천 번의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항상 그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응원해 준 주변 상인들과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숭의동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1978년 아버지인 노학영 원장으로부터 병원을 물려받은 노두식 2대 원장은 아버지 노학영 원장과 한의원이 80년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역에 대한 ‘애정’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두식 원장은 “아버지인 노학영 초대 원장에 이어 47년 동안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병을 잘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서 “‘영제’라는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힘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지역민과 함께하고, 지역 경제 역사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38
지난해 출생아 수가 늘어나는 반전이 나타났지만 지속되는 인구 감소 추세를 막지는 못했다. 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인구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는 12만명 자연감소했다. 출생아 수가 23만8천명으로 전년보다 8천명 증가했으나 사망자 수(35만8천명)가 여전히 출생아 수를 웃돌았다. 이 때문에 인구는 2020년 첫 자연감소 후 5년 연속 줄었다. 자연감소 폭은 2020년 -3만3천명에서 2021년 -5만7천명으로 늘어난 뒤 2022년 -12만4천명대 부터 지난해까지 3년째 -12만명대를 기록했으며 최근 5년간 인구 감소 누계는 45만6천명으로 집계됐다. 출생아 수 감소세도 이어지고 있다. 출생아 수는 1990∼1994년 352만7천명에서 2000∼2004년(266만9천명) 200만명대로 내려왔으며 이후 2005∼2014년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감소세는 2015∼2019년부터 가팔라져183만2천명을 찍고 2020∼2024년에는 125만명까지 줄었다. 출생 근간이 되는 결혼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2만2천건으로 2019년(23만9천건) 이후 가장 많았지만, 최근 5년간 누적으로는 역대 최소 수준으로 집계됐다. 일시적 출산율 반등에도 장기적인 인구 감소 추세는 계속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인구는 중위 추계 기준 2022년 5천167만명에서 2030년 5천131만명으로 줄어든 뒤 2072년에는 1977년 수준인 3천622만명까지 축소될 전망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의 경우 2072년에 절반 수준인 47.7%까지 커진다.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한 저위 추계에서 2072년 인구는 3천17만명까지 줄어드는 데, 이는 1967년의 인구 수준이다.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D-3 금고 클로즈업 完. 성남중부·안양동부새마을금고 다음 주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경기인천지역 233명의 후보자는 마지막 표심 잡기 대결이 한창이다. 이중 성남중부새마을금고와 안양동부새마을금고에는 각 2명의 동갑내기 후보자가 등록해 선거 열기를 더하고 있다. 성남중부새마을금고는 지난 1976년 설립됐다. 2000년 제1대 임원 취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역 금고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지점 개점을 통해 지역 조합원들과 더욱 가까이에서 풀뿌리 금융을 실현했다. 성남중부금고는 2020년 자산 1조원을 달성한 뒤 불과 2년 만인 지난 2022년 말 1조5천억원의 자산 성과를 기록했다. 현재 성남중부금고는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7개(수진1·태평1·태평3·분당구미·판교백현·위례광장·야탑) 지점을 관할하고 있다. 성남중부새마을금고에는 2명의 후보가 등록을 마쳤다. 이명구, 임대성 후보자는 1961년 동갑내기이며, 두 후보자 모두 성남중부새마을금고에서 전무를 지낸 바 있다. 동갑내기 후보자가 이사장직에 도전한 또 다른 경기지역 금고는 안양동부새마을금고다. 안양동부새마을금고 역시 지난 1976년 창립했다. 경쟁력을 갖춘 수익사업에 집중해 온 안양동부금고는 지난 2021년 말 3천232억원의 자산을 달성했다. 안양동부금고는 안양 동안구 관양동 소재 주사무소인 본점과 3개(래미안·임곡·동편) 지점으로 조직돼 있다. 안양동부새마을금고에 등록한 2명의 이사장 후보자는 김병윤, 이학재 후보자로, 두 후보자 모두 1968년생이다. 김병윤 후보자는 현재 안양동부금고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이학재 후보자는 안양동부금고에서 부이사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MG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는 “다음 주 예정된 선거에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중앙회도 선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목재 수입품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것을 지시하면서 새로운 관세 부과가 예상된다. 특히 원목이나 목재 수입품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수출한 목재를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 다시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싱크대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상무부에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원목, 목재 등의 수입에 따른 국가안보 영향을 조사할 것을 지시하는 명령서에 서명했다고 백악관 측이 밝혔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대통령이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백악관 관계자는 "동맹에 가혹한 일부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악의적 행위자들이 보조금을 통해 과잉 생산을 한 뒤 이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라면서 "이에 따라 우리는 국내 제조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에 목재 등을 덤핑하는 국가로 캐나다, 독일, 브라질 등을 거명한 뒤 "이들이 주요 행위자이지만 다른 나라도 많이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목재뿐만 아니라 파생 상품에도 같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면서 "우리가 수출한 원목이 (제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과 함께 "한국도 그렇게 한다"고 언급하면서 "주방 캐비닛(kitchen cabinet·싱크대) 등과 같은 것에 보조금을 많이 지원하고 있으며 그것은 벌목 산업뿐만 아니라 가구 회사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목재 등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이는 기존의 다른 관세에 추가된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에어포스원에 탑승한 기자들에게 목재 수입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가구류 전체 수출 규모는 3천만달러(약 438억원) 수준으로 미국의 이번 관세 부과 조치가 실행되더라고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32조 조사에 더해 목재 생산량 증대 등을 위해 관련 규제를 간소화하고 산림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D-4 금고 클로즈업 ⑩계산 새마을금고 오는 3월5일 치러지는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 선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계산새마을금고에서는 전·현직 이사장이 맞대결을 펼친다. 계산금고는 지난 1976년 8월30일 계양구 계산동에서 문을 연 뒤 현재 본점과 하나지점, 빛길지점, 귤현지점을 관리한다. 회원 중시 열린 경영, 경영 투명성 제고, 법·규정 준수 등의 경영 방침을 바탕으로 49년 동안 회원들의 자산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2014년 본점 신사옥의 문을 열었으며, 2017년에는 귤현지점을 설립하는 등 지역에서 영향을 넓히고 있다. 안정적 수익기반을 위한 건전여신 확보 등의 노력 끝에 2019년 12월 말 기준 자산 3천256억원을 달성했으며, 3년 만인 2022년 12월 말 자산 5천억원을 돌파했다. 계산금고는 지역과 함께 상생하기 위한 지역 밀착 사업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2022년에는 계양구가족센터와 업무 협약을 해 결혼이주여성 한국어교육 등 가족복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공간과 컴퓨터, 비품 등을 지원했다. 꾸준한 기부로 2024년에는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우리 구 착한 기업’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사회공헌사업 금융교육 우수금고 대상, 새마을금고 60주년 기념 사회공헌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주 마무리한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후보자 등록 결과, 계산금고에는 전·현직 이사장 2명이 입후보했다. 김인식 전 이사장(65)과 윤창후 현 이사장(60)이다. 김 전 이사장은 2016년 제16대 이사장으로 선출, 4년 동안 금고를 이끌었다. 윤 현 이사장은 그 뒤를 이어받아 2020년부터 제17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MG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는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며 “이번 선거에서 회원들이 적임자를 선출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책임경영을 한층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KZ트레이딩(옛 서린상사)이 사명 교체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가운데, 수익성이 대폭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증가와 함께 성장성까지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1일 고려아연 IR 자료에 따르면 고려아연 계열사인 KZ트레이딩은 지난해 연간 잠정 매출액 1조1천138억원, 영업이익 3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27.2%(4천152억원)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71.4%(125억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은 2023년 1.1%에서 지난해 2.7%로 상승하며 수익성이 대폭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KZ트레이딩의 전신인 서린상사는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1984년 비철금속 해외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립한 서린금속에서 출발했다. 이후 1994년 수출 영역 확장과 함께 서린상사로 사명을 변경하며 비철금속의 수출·판매 및 물류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장형진 영풍 고문의 차남 장세환 씨 등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경영진이 선임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영업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재선 대표이사 사장을 영입하고, 이승호 대표이사 사장, 백순흠 대표이사와 함께 삼각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과 KZ트레이딩 간의 시너지 극대화를 추진하는 한편, 1994년부터 사용해 온 서린상사라는 사명을 KZ트레이딩으로 변경했다. 이는 최대주주이자 사실상의 모회사인 고려아연(Korea Zinc)의 영문명을 반영한 것으로, 그룹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4분기 KZ트레이딩의 매출액은 3천108억원으로 전년 동기(3천128억원)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영업이익은 8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30억원) 대비 180.0%(54억원) 증가했다. 이는 경영진이 교체되기 전인 2023년 4분기와 비교했을 때 수익성이 현저히 개선된 수치다. 이는 수익성 위주의 영업활동에 주력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 결과라는 평가다. KZ트레이딩은 올해도 수익성을 더욱 높이고 성장성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KZ트레이딩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고금리 기조 완화로 판매량이 증가하며 매출이 늘었다"며 "금속 가격과 환율 등 대외 환경도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는 점진적인 판매량 증가가 예상돼 매출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KZ트레이딩의 실적 개선이 고려아연을 비롯한 계열사 전체의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면서 정체기에 있던 KZ트레이딩의 실적이 회복되고 있다"며 "고려아연뿐만 아니라 캐터맨 등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그룹 전체의 수익성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20년간 멈춰선 용인 역삼도시개발 사업이 정상화 궤도에 오를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28일 용인특례시에 따르면 장기간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용인 역삼구역(처인구 역북동 363번지 일원) 도시개발사업 시행자인 ‘용인 역삼구역 도시개발사업조합(이하 조합)’이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위한 임시총회를 열고 재추진을 위한 절차를 밟는다. 시는 조합 측이 지난 21일 시 누리집과 역북·삼가동 행정복지센터 게시판 등에 오는 4월19일 오후 2시 처인구청 대회의실에서 임시총회 개최를 공고했다고 밝혔다. 역삼 도시개발사업은 시청사 행정타운 주변 약 21만평에 상업지역, 주거지역, 녹지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앞서 2009년 도시개발구역 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이후 2011년 실시계획인가, 2017년 환지계획인가 등 사업 추진을 위한 행정절차는 완료됐으나, 역삼조합 내·외부의 법적분쟁과 갈등으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해 현재까지 지연되고 있다. 그동안 도시개발구역 내 기반시설 부지와 체비지에 대한 세금이 조합에 부과되고 있어 현재 조합은 막대한 체납액을 기록하고 있다. 또 각종 분쟁으로 인한 피해보상금 이자도 매년 증가하고 있어, 사업 정상화를 위한 집행부 구성이 시급한 상태다. 이에 수원지방법원이 지난해 6월 선임한 문병상 조합장 직무대행자는 임시총회 개최 절차를 진행해 지난해 12월에 선거관리위원을 확정하고, 지난 21일 임시총회 개최·소집을 공고했다.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된 조합 집행부 구성 문제가 해결되면 사업 진척이 기대되는 상황으로, 임시총회 개최를 위해서는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이 필수다. 이상일 시장은 “이번 임시 총회를 통해 역삼조합이 안정을 찾고 20년 이상 표류해온 역삼도시개발사업이 정상화돼 사업 추진의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며 “취임 후 지역의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 만큼 역삼 도시개발사업도 새롭게 구성될 조합과 적극 소통하며 정상화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주시가 현암1지구 도시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현암1지구 도시개발사업 사업비 1천290억여원을 투입해 31만 9천 813㎡ 규모로 개발하며, 여주시와 여주도시공사가 공동 시행할 예정이다. 여주시는 최근 현암1지구 도시개발사업 주민설명회를 오학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개최, 사업의 기본계획과 개발 범위, 추진 일정, 보상 및 환지 절차 등을 안내했다. 이번 설명회에는 토지주 및 지역 주민 80여 명이 참석해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암1지구 도시개발사업은 혼용방식(수용·사용+환지)으로 개발되며, 향후 경기도에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 수립을 요청한 후,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 및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 등의 행정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여주시는 이번 설명회에서 나온 의견을 검토해 사업 추진에 반영할 계획이며, 앞으로도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가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인 포뮬러원(F1) 그랑프리(GP) 대회 유치를 위한 타당성 용역에 나서는 등 시동을 걸었다. 다만, 지역 안팎에서는 F1 대회를 유치해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 자칫 전라남도 영암 F1 사례처럼 혈세 낭비 우려가 크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이번 용역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7일 시에 따르면 3억5천여만원 규모의 F1 그랑프리 기본구상 및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했다. 용역은 착수일로부터 총 5개월간 이뤄진다. 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F1 대회가 치러질 장소 및 세부적인 노선을 마련하는데 집중한다. 시는 송도국제도시와 청라국제도시, 영종국제도시 등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에 총 14만㎡(4만2천여평) 규모의 시가지 서킷을 만들기 위한 기초조사 및 여건 분석 등을 한다. 또 인천 F1 대회 기본 콘셉트를 정하고, 이와 관련한 인천만의 특화 전략도 짠다. 특히 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F1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 및 포뮬러원 그룹 등과 협의할 수 있는 관련 자료도 마련한다. 기본구상 및 레이스 트랙 디자인 성과는 FIA가 정한 ‘레이스 규정 1’에 따라 차량 규격과 경기 규칙, 요구 사항 등을 반영하도록 했다. 여기에 레이스 트랙이나 주요 건축물, 관람석 등의 디자인 콘셉트를 개발하고, F1 대회의 종합 마스터플랜 및 상세계획 수립, 경제성·재무성·환경적 사전타당성 검토 등도 함께 추진한다. 시는 이 같은 타당성 용역 결과를 토대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전타당성 검토를 신청할 방침이다. 문체부는 통상 지방자치단체 등이 국제경기 유치 등을 할 때 관련 법령 및 규정 등에 따라 지정 기관인 스포츠과학정책연구원에 검토를 맡긴다. 다만, 지역 안팎에선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인천의 F1 대회 유치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앞서 전라남도는 지난 2010~2013년 영암에서 열린 F1 코리아 그랑프리에 서킷 건설 비용 등으로 8천700억여원을 투입했으나 누적 적자가 1천900억원에 이르면서 중도 취소했다. 이광호 F1 개최 반대 인천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인천에 F1을 유치해도 개최료 5천억원, 시설비 3천억원 등 중계료와 운영비 등에 1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가 내놓은 도시경쟁력 상승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보다는 혈세만 낭비하는 영암의 사례를 반복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F1 대회 유치를 위한 기본 구상안이 나오면 상반기 중 F1과 양해각서(MOU)를 하고, 이후엔 오는 2027년 대회 개최를 목표로 문체부에 국제대회 유치 관련 행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각의 혈세 낭비 우려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F1 대회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도록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