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86가지 국회의원 특권… ‘더 평등한 어떤 동물’들인가

지난 17일 제헌절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빗속에도 한 집회가 열렸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 국민총궐기대회’다, 물난리에 가려지긴 했지만 “국민의 명령이다. 특권을 폐지하라”고들 외쳤다. 그러나 정작 그 특권의 당사자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필시 “아무리 떠들어 봐라” 했을 것이다. 이 나라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그 어이없는 특권들은 그들 스스로 입법권을 휘둘러 치장한 것들이다. 그들 특권을 확대하고 공고화하는 데에는 싸움질도 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하는 국회다. 그 농장의 일부 살찐 돼지들은 이렇게 강변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국회의원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까지 생겨났다. 현재 국회의원 특권은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186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하다못해 KTX 승차권 취소 위약금도 국민세금으로 때울 정도다. 지난 10년간 국회는 자신들이 쓰는 예산을 40%나 더 키웠다. 2017년에는 보좌진이 부족하다며 8급 비서관을 신설, 9명이나 거느린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이 허둥지둥할 때도 국회의원들은 그들 수당을 또 올렸다. 일본이나 뉴질랜드 의원들이 국민고통을 분담한다며 20% 삭감했던 시기다. 국회의원은 월평균 1천300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차량유지비와 기름값도 월 150만원에 이른다. 설과 추석에는 414만원씩 모두 828만원의 명절 휴가비를 받는다. 의원과 보좌진 9명의 인건비만 의원실 1곳당 7억원 가까이 나간다. 연간 1천여만원의 공무수행출장비도 쓴다. 주로 지역구에 내려가느라 KTX 등 기차를 타는 데 쓴다. 해외 출장을 갈 때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공항 귀빈실을 쓴다. 여간 부지런해서는 186가지나 되는 특권을 다 쓰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니 ‘그깟 정치 현수막 특권쯤이야’ 하며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버티는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구차하기까지 한 국회의원 특권들이다. 국민 세금이 아까워서도, 배가 아파서도 아니다. 문제는 그 과도한 특권 때문에 우리 국회의 품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기름진 음식일수록 쉬파리가 더 꼬이기 마련이다. 땀 흘려 일하는 선량한 시민들은 그 정치 쉬파리들을 당해내지 못한다. 쇠심줄같이 낯이 두껍고 질겨서다. 내년 총선부터는 국민들이 국회의원 단임제를 성취해내야 한다. 모두 물갈이하고 4년 후 또 바꾸는 식이다. 전문성, 국회의원은 필요없다. 건강한 시민적 상식인이면 족하다. 4년간 평균임금 수준만 받고 일한 뒤 본래의 생업으로 돌아가는 국회의원. 그나저나 칼자루를 온통 저들이 쥐고 있으니, 시름만 깊은 화두다.

[사설] 경기도내 상습 침수 지하차도, 전수조사 후 대책 세워야

지하차도 침수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5일 내린 극단적 폭우에 충북 청주의 오송 지하차도에서만 14명이 사망했다. 예고된 폭우였는데도 대비가 허술해 인명피해를 키워 안타깝고 황망하다. 오송 참사는 재난·재해 대응 기관들의 총체적 부실이 부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지하차도 침수는 수해 때마다 반복됐다. 2014년 부산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 2020년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로 시민들이 어이없게 숨졌다. 지난해 9월에도 태풍으로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주민 7명이 사망했다. 모두 쏟아지는 비에 순식간에 거대한 저수지로 돌변한 지하공간에서 일어났다. 경기도에도 상습적으로 잠기는 지하차도가 여러군데 있다. 수원의 화산 지하차도는 폭우 때마다 침수된다. 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찰 때를 대비해 8개의 배수펌프를 설치했지만 배수펌프 집수정의 용량이 작다. 여기에 인근 서호천으로 배수가 이뤄져 집중호우 시 하천 수위가 오르면 제대로 배수 기능을 하지 못 한다. 안산의 신길 지하차도도 큰비가 내리면 금방 물웅덩이가 생기고, 빗물받이와 하수구에 부유물이 쌓인다. 지하차도가 신길천 수위보다 낮게 설계돼 우수 유입량이 과다하면 배수펌프가 제 구실을 못 하게 된다. 경기도내 지하차도는 모두 288곳이다. 비교적 지대가 높은 일부 지하차도를 제외하고는 지하차도의 물을 배출시키는 배수펌프가 설치돼 있다. 배수펌프는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며, 수위 변동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된다. 문제는 단기간 내 지하차도 수위가 오르면 펌프가 배수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천 가까이에 위치한 지하차도는 배수를 하천으로 하게 되는데 폭우로 하천 수위가 높아지면 배수 자체가 원활하지 않다. 기계식 배수펌프가 있는 곳은 침수로 인한 배전선 고장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각 지자체에선 폭우 때 실시간 모니터링과 현장 통제 등으로 지하차도 침수를 예방한다고 하는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배수펌프 처리 용량을 늘려야 한다. 일정량의 비가 내릴 경우 이를 알리는 전광판과 자동차단시설도 설치하는 등 다각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양시는 도내 처음으로 6개의 지하차도 입구에 행정안전부 재난대응 시스템과 연계되는 차량 차단봉과 전광판을 설치했다. 도로가 20cm 이상 침수돼 차량 운행이 어려울 경우 차단봉을 내려 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전광판에 안내 문구를 띄우는 방식이다. 집중호우로 인한 자연재해를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지만, 철저히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다. 도내 상습 침수 지하차도를 전수조사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오송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

[사설] 이천시립 화장장, 위법∙부당 행정이었다

경기도가 의미 있는 감사 결과를 밝혔다. 이천 시립 화장장 건립 과정을 살펴본 감사다. 당초 2010년부터 추진됐던 사업이다. 주민 갈등으로 무산된 뒤 2019년 재추진됐다. 공모를 통해 2020년 8월 후보지를 선정했다. 이천시 부발읍 수정리를 후보지로 선정했다. 17만9천㎡ 부지에 화장로 4기를 갖춘 시설이다. 350억원을 들여 2024년 12월 준공 예정이었다. 이 사업 추진이 위법과 부당행위 투성이였다. 모든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정도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 11월 투자 심사 결과를 시에 통보한다. ‘재검토’다. 관련 예산을 편성하면 안된다. 그런데 이천시는 2022년 예산에 시설비 45억원을 편성한다. 2022년 6월3일 다시 ‘재검토’가 통보된다. 역시 편성한 관련 예산을 감액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천시는 또다시 예산을 살렸고 2023년 예산으로 이월한다. 실무투자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투자 사업을 심사해야 하는 절차도 위반했다. 행안부 지시 위반과 자체 절차 무시였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질 나쁜 위법 행정이 있다. 화장장은 현실적으로 대표적인 주민기피시설이다. 그래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천시는 이걸 하지 않았다. 최소한 소홀히 다루고 넘어갔다. 화장시설 건립 관련 전략환경영향평가 수행 과정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의 공고 시 게시물 첨부파일에서 초안의 내용을 누락했다. 사업지는 이천시와 여주시 경계 지역이다. 그런데 이천시 주민만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 4월 여주시 매화리 주민들이 삭발식을 했다. 이천시의 화장장 사업을 강력 규탄했다. 여주시민은 모르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100억원의 토지 보상금 문제도 거론됐다. 이때만 해도 통상적인 화장장 건립 갈등 정도로 봤다. 이천시장도 “화장장 입지 변경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주민감사청구다. 166명의 시민이 연대해 법률적 요건을 구비한 감사를 청구했다. 경기도가 감사했고 심각한 실태가 드러났다. 행안부 지시도 ‘무 잘라 먹듯이’ 무시했다. 없애야 할 예산 세우고, 이월시켰다. 주민 설명회는 귀찮았는지 생략해 버렸다. 이천시민과 여주시민을 차별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편하고 빨리 가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어떤가. 경기도 감사 책임자가 설명했다. “이 사업 추진을 위해선 다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실상 백지화라는 것이다. 이천시 행정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 다시 추진한들 동의를 얻을 수 있겠나. 화장장 행정의 어려움은 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해선 안 됐다. 장사(葬事) 행정의 나쁜 예가 됐다.

[사설] 서울 광역버스 하루 6천원, 정부 ‘요금인상’ 뒷짐만 질건가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광역버스 비용 부담이 30%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조정안’에 따르면 8월12일부터 광역버스 기본요금이 기존 2천300원에서 3천원으로 700원 오른다. 무려 30.4% 인상이다. 순환·차등버스(1천100→1천400원, 27.3% 인상), 간·지선버스(1천200→1천500원, 25.0%), 심야버스(2천150→2천500원, 16.3%)보다 높은 인상률이다. 서울 지하철 요금도 10월7일부터 1천250원에서 1천400원으로 150원 오른다. 내년 하반기 150원을 추가로 올릴 예정이다. 2차 인상분까지 고려, 1천550원을 적용하면 지하철 요금 인상률은 24.0%다. 광역버스 요금만 30% 넘게 올라 수도권 승객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매일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하루 왕복 6천원이 든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추진하자, 다른 지자체에서도 줄줄이 인상 계획을 내놓고 있다. 앞서 인천·광주시가 지하철 요금을 이달 1일부터 올렸다. 서울과 교통망이 이어져 있는 경기도도 수도권 전철 통합요금제에 따라 지하철 요금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시도 시내버스 요금을 다음 달 최대 19.6% 인상하며, 대구·부산시도 하반기 지하철·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지난해 말부터 예고돼 왔다. 서울시는 운송원가 상승에다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등으로 지하철 및 버스 운영기관의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기획재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기재부는 지하철 요금 및 무임승차 허용 여부 등은 지자체 고유 사무라며, 이에 따른 손실보전도 지자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전기요금 인상을 제어했고, 라면·제과 등의 가격 인하를 위해 민간기업을 압박하는 등 물가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이에 반해 서울시 교통요금 인상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고물가시대를 맞아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고 불안하다. ‘시민의 발’인 버스와 지하철 요금까지 오른다니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크다. 가계소득은 정체 또는 퇴보 상태인데, 대중교통 요금까지 오르면 살림살이는 더 피폐해진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최대한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정부는 남의 일처럼 팔장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

[사설] 政治, 양평 없는 양평 싸움/郡民, 주민투표 투쟁해야

아무것이나 주민투표에 부칠 수는 없다. 주민투표법에 조건이 정해져 있다.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 주는 일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반면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항도 있다. ‘국가 사무 사항’이 대표적이다. 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중대한 일이다. 양평주민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주민투표 해야 맞다. 하지만 지방 사무 아닌 국가 사무다. 국가철도망 계획으로 국가가 정했다. 사업에 투입되는 돈도 국가 예산이다. 법률상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2020년 6월5, 6일 주목 받는 투표가 있었다. 코로나 속에 치러진 울산 북구 주민투표다. 모두 34개 투표소가 설치됐다. 5월28일과 29일 사전 투표도 진행됐다. 6월1일, 2일 온라인 투표도 있었다. 이 투표,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행위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투표’다. 원전 폐기물 사업과 관련된 국가 사무다. 그럼에도 투표는 강행됐다. 1천872명의 투표 종사원 등 3천여명이 동원됐다. 주민 5만479명이 투표했다. 결과는 청와대 앞으로 갔다. ‘반대 94.8%’라는 수치를 펼치고 사업 반대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하라.’ 울산 북구 주민투표운동본부, 진보당, 탈핵시민운동,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등이 함께했다. 이 투표는 뒤에 ‘백서’로까지 남겨졌다. 법에 근거 없는 주민투표, 그래서 법적 구속력도 없는 주민투표, 그걸 울산 북구 주민은 치렀다. 지역 불이익에 대한 자기 의사 표현이었다. 그게 주민투표다. 지역민에게 허락된 아주 작은 투쟁. 빗속에서도 양평주민의 투쟁은 계속된다. 떨어진 현수막 찾아 이어 붙인다. 이 힘든 싸움의 목적은 간단하다. ‘정치는 양평 고속도로에서 빠져라’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철회하라’. 간혹 결이 다른 목소리가 있다. ‘아무개 특혜’라는 현수막이다. 순수한 주민의 목소리가 아니다. 정치하는 양평군민, 정치하려는 양평군민 구호다. 이 양평에 주민투표 얘기가 등장했다. 정치권이 서로 특혜라 비난하는 ‘원안’과 ‘수정안’이다. 주민투표로 선택하자는 주장이다. 훌륭한 차선(次善)이다. 지금의 정치로는 타협에 이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로드’로 밀어붙인다. 대통령 영부인의 특혜라며 정권을 조준하고 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국정조사까지 밀고 간다고 한다. 국민의힘도 역공에 나섰다. ‘전직 군수 게이트’라 맞받아치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 유영민 전 청와대 실장까지 등장시켰다. 대부분의 특혜는 실체가 없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총선이 열 달 남았다. 열 달 끌 것 같다. 2025년 착공 예정이었다. 기약 없이 미뤄졌다. 2033년 완공 보게 될지 모르겠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건 양평군민이다. 예상컨대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이 이랬을 것이다. 울산 북구 주민 속만 타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 울산 북구는 주민 투표를 집어 들었다. 근거 없는, 효력 없지만 주민투표를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청와대·정치권을 압박했다. 그렇게 양평에도 주민투표가 필요하다. 주민 분노를 표한 통계가 필요하다. 정치권에 던지는 여론이다. 정치권 반응은 시큰둥하다. 야당의 영남 중진 의원이 말했다. ‘이미 확정됐고 동의 받은 사안이다’ 진보 진영 인사가 말했다. ‘양평군민들 싸움 붙이는 나쁜 짓이다.’ 결론은 둘 다 주민투표 반대다. 말이 안 된다. 양평 고속도로 노선은 검토 상태다. 뭐가 확정됐다는 건가. 양평 지역 싸움은 정치권이 붙였다. 그 싸움 끝내자는 것이다. 진짜 주민 생각 물어보자는 것이다. 이걸 왜 반대하나.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혹시 혼란 상태가 유리하다고 보나. 2014년, 삼척 주민투표도 있었다. 원전 유치 문제였다. 2018년, 제주 강정마을 주민투표도 있었다. 국제관함식 개최 문제였다. 앞서의 울산 북구 주민투표와 같았다. 모두 국가 사무였다. 법적 권원도 없었고, 행정 구속력도 없었다. 하지만 모아진 관심은 컸다. 표출된 뜻도 존중됐다. 출구도, 대안도, 희망도 없는 양평 고속도로 논란이다. 오로지 열 달 뒤 표 셈법만 판치는 ‘양평 없는 양평 논쟁’이다. 주민이 시작해야 할 주민투쟁은 곧 주민투표다.

[사설] 보디빌더 영장 기각, 설명 필요하다

영장 발부는 사법부 고유의 판단이다. 사건 전체가 아닌 부분적 사실만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통상 ‘구속 및 도주 우려’ ‘증거 인멸’을 영장 기각의 기준으로 표현한다. 이걸 두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사건 전체 및 모든 정황에 대한 고찰 기회가 일반인에게는 없다. 피상적인 모습만 인지한 상태에서 전체를 두고 판단한 판사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논란을 생각하게 하는 상황이 또 생겼다. 이른바 ‘인천 보디빌더 폭행사건’이다. 주차장에서 시비가 붙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전직 보디빌더 A씨 사건이다. 사건은 5월20일 오전 11시쯤 발생했다. A씨가 인천 남동구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서 30대 여성 B씨를 여러 차례 폭행했다. 현장에는 A씨의 부인과 남성 지인이 있었다. 사건 이후 피해 여성은 전치 6주의 병원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면이 블랙박스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영됐다. 시청자들의 공분이 일면서 경찰수사도 본격화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바로 이 영장이 15일 기각됐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 상해다. A씨의 아내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인천지법 영장 전담 이규훈 부장판사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피의자의 주거·직업·가족관계와 증거 수집 현황 등을 고려했다”, “피의자의 진술 태도나 출석 상황 등을 봐도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경우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없다’로 간단히 표현된다. 이번 사건에 쏠린 많은 시선을 감안한 배려 내지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밝혔듯이 법원의 구속영장 처리는 고유 영역이며 섣부른 논쟁화는 지양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논쟁이 많다. 체육인 출신의 건장한 남성이 여성 주부를 상대로 폭행했다. 머리 끄덩이를 잡아 땅바닥에 끌었다. 충격적이게도 쓰러진 여성에게 두세 차례 침까지 뱉었다. 폭행과 모욕, 모멸의 끝판이다. 이 장면이 블랙박스에 녹화됐다. 더구나 그 영상이 전국에 방영됐다. 영장 기각 소식에 이견이 쏟아질 만한 여건이다. 이 정도 폭행은 구속이 안 되냐는 질문, 묻지 마 폭행에 대한 공포감 등이 얘기된다. 우리도 이 문제를 논평하는 데 조심스러운 점은 있다. 불가피하게 사건 상황을 묘사하면서 특정인에게 불리한 측면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판사는 사건 전체를 고찰했는데, 우리에게 공개된 정보는 극히 일부분뿐일 수 있다. 그럼에도 다수 국민이 갖는 의아함과 궁금함을 전달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 기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주거, 직접, 가족관계의 어떤 면이 영장 기각의 사유가 됐는지 조금 더 설명해 줘야 한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법원이 그렇다. 그럼에도 여론은 원한다. 판사는 법으로 재판하고 결정한다. 그 법은 다수 국민이 만들었다. 많은 국민이 궁금해한다. A씨의 행동이 법에 맞는 행동인지, 국민이 용인할 행동인지, 그리고 구속 영장이 기각돼야 할 행동인지. 설명해줘야 한다.

[사설] 여야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확정하라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의원 31명이 지난 14일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이런 선언이 나온 것은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당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1호 혁신안인 ‘불체포특권 포기’ 수용 여부를 논의했으나, 의원들의 추인을 받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한 반발로 나왔다. 이들은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 입장문을 통해 “체포동의안이 제출될 경우 구명활동을 하지 않고 본회의 신상발언에서도 불체포특권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겠다”고 했다. 또한 현역 의원 40여명이 참여하는 더좋은미래(더미래)도 14일 성명서를 발표, 오는 18일로 예정된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하자고 촉구했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미 당대표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선언했다. 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19일 대표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수사에서 불체포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으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지난달 20일 행한 대표연설에서 “우리 모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제안합니다”라고 말해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는 여야가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항이다. 공개적으로 당대표가 약속한 사항임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는 6월23일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와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1호 혁신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박광온 원내대표가 13일 의총에서 혁신안 추인을 호소했으나, 일부 의원들은 “헌법상 권한을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며 반발함으로써 불체포특권 포기 결의가 불발됐다.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보장하는 헌법상 제도다(헌법 제44조). 정권의 탄압에 대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갖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국회의원들의 ‘특권’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지난 4월16일 출범식을 개최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국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는 등 불체포특권과 같은 특권을 포기하도록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헌법을 바꾸지 않는 한, 규정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이를 개인의 ‘방패막이’로 삼지 않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서약이다. 민주당은 이미 대선 때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한 바 있으며, 국민의힘 역시 당대표 연설에서 약속했다. 오늘은 제헌절 75주년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제헌절 기념식만 거창하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해 국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

[사설] 한 정당 두 대표, 경기도의회 도민의짐 당이다

좀 그만 싸울 수 없나.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없나. 정당 대표 자리가 뭐라고.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내홍이 또 불거지고 있다. 11일 새로운 대표에 김정호 의원을 선출했다. 초선인 김 의원은 그동안 국민의힘 정상화추진위원회에서 대표 의원 직무대행을 맡아 왔다. 곽미숙 대표의원의 자격 논란으로 출범한 비상 기구다. 이번 투표에는 78명의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53명이 참여했다. 단독 출마한 김 의원이 찬성 42표를 얻었다. 반대 9표, 기권 2표였다. 절차상 문제 삼을 소지는 없다. 임기 1년이 정상적으로 시작됐다. 대표의원으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대표단을 형평성에 맞게 구성하고 재선·삼선 의원님들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총선 승리를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도 했다. 하반기 의장을 ‘되찾아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다 좋은데 사무실이 이상하다. 대표의원실이 있는데 이를 사용하지 못한다. 회의실에 임시 대표의원실을 차렸다. 12일 오후 의원들과의 회의도 이 임시 회의실에서 했다. 원 대표의원실에는 또 다른 대표가 있다. 곽미숙 ‘대표의원’이다. 정상화추진위원회 출범의 기본 취지는 곽미숙 체제 부정이다. ‘곽 대표’를 선출한 지난해 6월 투표가 위법하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직무가 정지됐다. 본안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곽 대표’는 본안 소송이 나와야 법적 판단이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김 대표 선출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부당하다”는 내용의 입장문까지 발표했다. 길게 보면 지난해 6월부터 이어지는 싸움이다. 그 1년 중에 1년을 싸웠다. 그 끝자락에 ‘대표’가 두 명인 정당이 된 것이다. 백번을 양보해 그동안 싸움은 집안 잡음이었다고 치자. 이제부터는 아니다. 도민 앞에 두 동강 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이게 됐다. 안 그래도 의석수가 78 대 78로 같다. 한목소리를 내도 버거운 구도다. 이런 때 대표직 싸움으로 무기력을 초래했다. 도지사가 야당 대우 안 한다고 뭐라 했다. 도지사실 농성도 있었다. 그런 불만 얘기할 자격 있나. 이젠 대표성마저 모호해졌다. 도지사가 ‘대화 상대 없다’고 문 닫아 걸어도 할 말 없게 됐다. 도민의 짐이다. 김정호 대표와 곽미숙 대표에게 주문한다. 대화라도 해봐라.

[사설] 문제 산적한 노후 산업단지, 애물단지로 방치 안 된다

국가경제 발전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전국의 산업단지가 크게 노후화됐다. 낙후된 시설로 인해 어떤 산업단지는 이번 ‘극단적 폭우’에 물난리를 겪고 있다. 낡은 산업단지는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일반산업단지·도시첨단산업단지·농공단지 등 4가지로 나뉜다. 20년 넘은 산업단지는 ‘노후 산단’으로 분류되는데 전국에 470여개나 된다. 경기도에도 192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그중 48개가 노후 산단이다. 안성시가 13개로 가장 많고 이어 평택 8개, 파주 7개, 화성 4개, 김포·양주 각각 3개 등이다. 인천에도 16개의 산단이 있는데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부평·주안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가 대표적 노후 산단이다. 이들 노후 산업단지는 시설 낙후 등 인프라 부족, 청년층 기피, 생산성 및 효율성 둔화 등의 공통 문제를 안고 있다. 노후 산단의 문제는 얽히고설켜 있다. 인프라와 시설 노후화는 청년층 기피 현상으로 인력난을 유발하고, 오래된 시설 탓에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도내 대표적인 노후 산단인 반월시화산업단지는 전체 근로자 중 청년층(15~34세) 비중이 12.6%다. 젊은 근로자가 부족한 자리를 중장년층과 외국인 인력이 메우고 있다. 인천의 남동국가산단과 부평·주안한국수출산단도 문화·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청년층에 외면 당하고 있다. 남동산단은 일일 불법주차 대수가 1만여대에 육박할 정도로 주차난이 심각하다. 산단의 노후화로 성장성도 떨어지고 있다. 경기연구원의 ‘경기도산업단지 생산성 및 효율성 분석’에 따르면 노후 산단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기술 수준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2014~2017년 도내 산단의 생산량 증감률은 평균 3.4%였지만 2018~2021년에는 1.6%로 감소했다. 산업단지는 공장이 모여 있어 밀도가 높다는 게 장점이지만, 시설이 낙후되고 각종 편의시설이 부족하면 청년층을 끌어들이기 어렵다. 청년들이 들어오지 않는 산단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노후 산단을 활성화시키려면 인프라 개선, 산업 재구조화, 규제 완화, 적극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부분적으로 빈 공장 등을 새로운 복합형 산업시설로 탈바꿈시킬 필요도 있다. 이를 산업단지 내 공장들이 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공적 자금만으로는 구조 고도화 등 리모델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사설] ‘읽고 걷고 쓰고’... 명품 교육정책 브랜드 기대한다

20여년 전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 독서계를 풍미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퇴직 후 그는 700여년 전 마르코 폴로가 떠났던 실크로드 횡단에 도전한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부터 중국 시안까지. 1만2천㎞의 이 길을 1천99일간 걸었다. 1999년 시작해 2002년 마침내 시안에 입성했다. 그 무렵, 실크로드 지역은 정치정세나 치안이 매우 불안했다. 대부분 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수도 없이 길을 잃었다. 도둑과 들짐승의 위협,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원칙은 단호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떠나기 전에는 관련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힘들여 걷고 난 후에는 그 체험들을 드라마처럼 써내려갔다. 그 기간 그는 ‘쇠이유’ 협회를 설립했다.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이 낯선 나라에서 3개월 동안 2천㎞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성공으로 평가받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위대한 그 무엇이라는 소신이다. 서두가 길어진 것은 ‘읽·걷·쓰’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읽고 걷고 쓰고, 인천시교육청의 정책 브랜드다. 읽기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쌓는다. 걷기를 통해 신체적 건강과 사유의 힘을 기른다. 쓰기를 통해 자신 또는 타인과 소통하고 성찰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습역량과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학생들의 통합 또는 개별 활동이다. 왜 읽·걷·쓰인가. 도성훈 교육감이 설명한다. “챗GPT가 답을 주는 시대, 내 생각을 찾는 교육이 필요하다.” 걷기는 낯선 세계로 건너가 질문하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합 활동은 함께 글이나 책을 읽고 관련 장소를 답사하거나 생각하며 걷는다. 개별 활동은 읽기 걷기 쓰기가 분절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으로, 더 자율적인 방식의 학습이다.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시민 누구나 자발적으로 개인 또는 단체별로 읽·걷·쓰에 참여토록 했다. 개인은 자기 SNS에 그날 활동을 기록하고 #읽·걷·쓰 해시태그를 달아 참여한다. 그간 교육 정책도 정치에 물들어 소리만 요란했다. 우리는 우선 이 정책 브랜드가 학생들의 일상에 변화를 끼칠 수 있는 구체성에 주목한다. 단순히 편의점에 가기 위한 걷기가 아닐 것이다. 자기 성찰의 과정이 뒤따르는 오랜 걷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읽·걷·쓰가 처음의 취지대로 퍼져나가 인천의, 나아가 대한민국의 교육 브랜드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다만, 관료주의가 끼어들어 겉치레 실적 위주로 흐르는 것은 미리부터 경계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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