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 대행, “거취 하등 중요하지 않다” 직(職)을 던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즉각 탄핵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관련 절차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마은혁·정계선·조한창 후보자 임명안을 처리했다. 27일 오전까지 한 대행의 임명 여부를 지켜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한 대행이 2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임명 보류를 발표하자 즉각 탄핵으로 선회했다. 민주당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격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권한 대행’이 아니라 ‘내란 대행’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사실 민주당으로서도 한 대행에 대한 탄핵은 부담이 있다. 탄핵 남발이라는 계엄 논리에 정당성을 줄 우려가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를 둘러싼 논쟁도 있다. 재적 의원 과반(151명)과 3분의 2(200명)로 견해가 갈린다. 그럼에도 탄핵을 꺼내들 정도로 반발이 컸다. 담화의 어떤 부분이 그랬을까. 한 대행은 한국 정치의 ‘진영’을 언급했다. 큰일이 닥쳐도 늘 넘어서 왔고 그것은 ‘정치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영의 유불리를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었다’고 했다. 현 정치 갈등의 근저에 깔린 이념 갈등을 건드린 것이다. 또 과거 정계 거인들을 언급하며 ‘타협하는’ 역사의 교훈을 말했다. 우원식 의장, 이재명 대표, 권영세 비대위원장 지명자를 거명하며 그런 슬기와 용기를 당부하듯 말했다. 헌법재판관 임명 불가의 근거도 조목조목 적시했다. 대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를 자제하고 안정된 국정 운영에만 전념하는 것이 헌정 질서의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단 한 명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헌법재판관 충원 문제에 대해 “여야가 불과 한 달 전까지 다른 입장을 취했다”며 “이 순간에도 정반대로 대립하고 있다”고 비교 설명했다. 표현의 완곡함 속에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쏟아낸 듯하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언급이다.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 헌법기관 임명이라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라며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있다”며 “개인의 거취나 영역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야권의 탄핵 추진을 그대로 맞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이 부분이 민주당과 정면으로 충돌한 지점으로 보인다. 결국 탄핵으로 가는 듯하다. 직을 던진 한 대행과 칼을 빼든 민주당. ‘한덕수 탄핵’은 ‘윤석열 탄핵’과 또 다르다. 그래서 이를 평가할 여론의 향배도 앞서 적기 어렵다.

[사설] 김동연의 외교 경제 챙기기, 특별하고 의미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24일 오후 회동한 두 사람은 최근 한국 정국에 대해 얘기했다. 김 지사는 골드버그 대사에게 한국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와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첨단산업 교류 등 경제 협력에 긴밀히 소통해 나갈 것도 약속했다. 또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한 한미 동맹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뜻을 함께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하루 전인 23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김 지사는 24일 영국 대사관도 방문해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를 만났다. 김 지사가 작금의 정치 혼란을 한국이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 중임을 설명했다. 크룩스 대사도 한국의 헌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을 평가했다. 한영 양국 간 글로벌 파트너로서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특히 기후 변화 대응과 첨단산업에서 지속적인 협력을 유지하자고 합의했다. 계엄 이후 크룩스 대사가 이 대표와 만난 적은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23일 골드버그 대사와 만났다. 김 지사는 여야 정당을 대표할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핵심 우방이라 할 미국 및 영국대사와 잇따라 회동했다. 중앙정치와 다르고, 광역자치단체장과도 다른 행보다. 국내 정치의 현실에서 차별화하려는 김 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듯 보인다. 경제 전문가로서 국익까지 챙기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것 같다. 김 지사의 이런 차별화는 이미 계엄 상황에서도 목격됐다. 계엄 선포 하루 뒤인 4일 2천400명의 외국인에게 서한을 보냈다. 외국 지도자, 각국 대사, 투자 기업 등 김 지사와 ‘친분’ 있는 인사들이다. 환율·주식 시장이 충격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서한에서 김 지사는 ‘안심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계엄 선포 직후 가장 큰 우려는 국제 신인도 추락이었다. 모두가 계엄 파국에 빠져 있을 때 그가 보였던 것이 바로 외교 경제인맥 동원이었다.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서한을 받은 외국 인사들의 답장이 소개됐다. 브루노 얀스 벨기에대사는 “지사님의 신속하고 투명한 상황 대응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페터르 반 데르 플리트 주한 네덜란드대사도 “연락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사려 깊은 서한과 굳은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뜻을 인편에 전했다. 김 지사가 서한으로 보여준 무관(無官) 외교의 한 단면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기업을 옥죄고 있다. 경제단체 회원들이 미국까지 날아갔다. 환율·주식 시장의 불안이 계속 이어진다. 자본의 탈(脫)한국 현상은 그래도 계속된다. 국민 걱정도 서서히 내수 부진과 수출 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내전 중이다. 외교장관까지 국회에 앉혀 놓고 말싸움 중이다. 이제 누구라도 나서 외교를 말하고 챙겨야 하지 않겠나. 김 지사의 외교 행보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도 이런 때문일 것이다.

[사설] 예측 실패로 코로나 백신 1천400억원어치 버렸다

3년 전, 나라는 코로나19 백신에 아우성이었다. 국가의 능력 평가도 코로나19 백신이었다. 얼마나 백신을 확보하느냐가 모든 걸 평가했다. 그 중심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있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을 겸하던 그가 반복한 설명도 같았다. 2021년 3월29일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능한 한 백신 공급 일정을 앞당기고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범정부적인 노력을 하겠다. 수요와 수급에 대한 관리, 백신 확보 노력을 최대한 진행할 것이다.” 2025년 12월24일, 경기일보가 이런 통계를 보도했다. ‘코로나 백신 연 60만회분 폐기...혈세 줄줄 샌다.’ 불과 3년 만에 ‘백신 확보’가 ‘백신 폐기’로 바뀌었다. 2023, 2024년 2년간 경기도에서 폐기된 코로나19 백신이 123만여회분이다. 2023년 69만8천828회분, 2024년(10월10일 기준) 53만1천882회분이다. 이걸 돈으로 따지면 1천400억원이다. 전체 폐기량의 96%는 유효기간 경과였다. 맞을 사람이 없어 그냥 버려진 것이다. 3년 전 상황을 잠시 돌아보자.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백신의 양은 확보 가능한 대로 우선 사들였다. 그 과정에 선금 지급 등의 경쟁까지 벌어졌다. 그러다가 2023년 6월에 엔데믹이 선언됐다. 방역 당국이 감염자 추세, 전파 속도 등을 판단해 내린 결정이었다. 상당 기간 감염자가 줄고 있음을 추적했을 것이다. 백신 접종자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바로 그 방역 당국이 백신 수급과는 미스매치를 빚은 것이다. 수요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본보 기자가 확인한 의료 현장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한 병원 관계자는 “코로나 백신 접종은 급격히 줄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보건소에서도 2023년 이후 백신 수요량 급감을 한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질병 당국은 여전히 조(兆) 단위 백신을 구입했고, 그걸 지자체에 배분했고, 엄청난 폐기량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필요할 땐 구하지 못하고, 남아돌 땐 쌓아 둔 꼴이 됐다. 그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왔다. 지자체가 모든 걸 알아서 결정한다. 예산은 지자체와 질병관리청이 각 50%씩 부담한다. 경기도도 내년도 관련 예산을 세웠다. 654억여원을 세웠고, 100만명분을 구입한다고 한다. ‘너무 많이 잡은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기간별 구매 등의 대책을 설명했다. 혈세 낭비의 폐단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해마다 거칠 질병 정책 아닌가. 데이터 관리 체계 등이 필요해 보인다.

[사설] 민주당 경기도당의 ‘상인 살리기’ 구호 의미 있다

민주당 경기도당 김승원 위원장(수원갑)이 말했다. “내란과 탄핵 여파로 어려웠던 지역경제에 더 큰 한파가 불고 있다. 지금은 지역경제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할 시기로, 당력을 총동원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겠다.” 새로울 것 없는 진단이고, 당연히 해야 할 결정이다. 하지만 그 울림이 작지 않다. 지금 중앙정치는 정쟁의 끝단을 달리고 있고, 지자체까지 그 싸움에 끼어들어 뒤섞여 버렸다. 이럴 때 발표된 상권 살리기 구호다. 발표된 ‘골목상권 살리기 캠페인’은 전통시장·골목상권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캠페인 전개 지역은 도내 60개 전 지역구다. 지역상권에서 간담회 및 행사 개최, 지역 상권 내 선물·생필품 구매, 지역화폐 사용 활성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캠페인 확산이 실천 내용이다. 광역·기초의원들에게도 연말연시 소규모 모임을 활성화하라는 당부를 전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먹어주고, 마셔주고, 팔아주자는 운동이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다. 현 정국의 핵심 키워드는 계엄이고 탄핵이다. 정치 공학은 정권 사수와 정권 탈환이다. 국민까지 둘로 갈라놨다. 탄핵 찬성 국회 집회와 탄핵 반대 광화문 집회가 팽팽하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지역 상인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국회 주변과 광화문 거리를 차라리 부러워한다. ‘컵라면이라도 팔릴 거 아니냐’며 탄식한다. 그만큼 지역 상권이 주저앉았다. 연말 모임, 친목 모임이 대거 취소됐다. 연말 특수는커녕 계엄·탄핵 저주에 휘청인다. 걱정인 것은 이 고통이 오래갈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가 몇 차례 지적했던 내수시장 위축 전망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의 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의 소비자동향지수(CSI)가 10월 102.7, 11월 96.0, 12월 94.3, 2017년 1월 93.3이었다.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후인 2017년 4월에야 101.8로 100을 넘겼다. 그 흐름이 이번에도 적용된다면 골목 상권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오죽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에 “송년회·신년회 취소하지 마세요”라는 권고문을 발송했겠나. 민주당은 경기도 전체 지역구 가운데 53곳이 현역이다. 국민의힘(6곳)·개혁신당(1곳)과 비교 안 될 지배력이다. 이런 도당에서 모처럼 계엄·탄핵이 아닌 민생 구호가 들렸다. 당을 떠나 그 취지를 높이 산다. 현장을 반영한 민생 정치라고 본다. 중앙정치에는 수권 능력의 잣대가 될 것이고, 시장·군수에게는 본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인들이 전해 오는 훈훈한 성과를 고대한다.

[사설] 尹대통령·李대표, 수사·재판 지연은 권력 특혜다

수사나 재판 당사자의 목표는 이기는 것이다. 민사재판의 승소, 형사재판의 무죄가 그것이다. 그 방법 중에 수사·재판 지연술이 있다. 이기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경우 동원한다. 현실에서는 웬만해선 통용되기 어렵다. 이유 없는 지연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체포, 강제 구인, 재판 속행 등이 그런 제재다. 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꼼수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꼼수를 지금 국가 지도자들이 선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통지를 받지 않고 있다. 헌재가 지난 16일부터 탄핵 심판 출석 통지서 등을 발송했다. 비상계엄 국무회의 회의록 등을 내라는 공문도 보냈다. 5일째 받지 않고 있다. 서류는 대통령실과 관저 두 곳에 보내졌다. 전달 방법도 사람, 우편, 전자 발송 등 세 가지로 갔다. 하지만 모두 반송됐다. 사유는 ‘수취인 부재’, ‘수취 거절’ 등이다. 공조수사본부의 출석 요구서도 수령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 측에서 해명을 내놨다. “(탄핵 재판에 대비해) 필요한 게 여러 가지 있다.” 실제로 탄핵 소추에 맞서는 자료는 방대할 수 있다. 계엄에 이르게 된 다양한 입법 횡포를 하나하나 증명해야 한다. 탄핵 남발을 열거하고 부당함을 설명해야 한다. 삭감 예산 횡포도 일일이 적시해야 한다. 관련 부처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직무 정지된 대통령의 소송 자료를 부처에서 지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게 심판 출석 통지서 거부의 이유는 아니다. 탄핵 심판 출석은 재판의 시작을 의미한다. 자료 미비로 인한 재판 연기는 그 후에 하면 된다. 앞서 지난 12일 담화에서 법적 대응을 천명했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통지서 수령 거부를 당당하다고 볼 국민이 몇이나 될까.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양비론을 펴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관련 서류 전달도 두 차례 실패했다. 실제 주소가 다르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고의 지연 의혹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고의 지연 의혹은 이 말고도 많다. 대북 송금과 관련해 법관 기피 신청을 냈다. 백현동 사건, 대장동 사건은 본격적인 재판도 안 열렸다. 공범 가운데는 3심이 확정된 사람까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들이다. 그런 둘의 재판 지연술을 보는 국민의 박탈감이 크다. 일반 국민이 저런 기술을 썼어도 이렇게 통용되겠나. ‘무서운 판사’를 아는 국민이라면 다 알 것이다. 절대로 통용되지 않을 기술이다. 이건 법 불공평이고 권력 봐주기다. 재판 지연의 법 기술을 부리는 두 지도자를 탓할 단계는 지났다. 그걸 봐주는 재판부가 엄정해지기를 바란다.

[사설] 불안한 경제, 더 이상 추락하면 미래 없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제환경이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경기 활성화를 기대했던 서민경제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점차 쇠락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등 정부의 총력 방어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지난주 이틀째 1천450원대를 기록하고 있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약 16년 만에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다. 1천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고환율은 최대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주식 시장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등을 비롯한 일본과 유럽의 주식 시장은 비교적 활황이지만 올해 들어 국내 주식 시장의 경우 코스피는 9%, 코스닥은 무려 23%나 하락했다. 더구나 지난 18일 미국 연방준비은행(Fed)이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를 단행해 한국과의 금리 격차는 더욱 벌어져 외국 투자가들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런 한국 경제의 비관적 전망은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발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도 나타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2026년 잠재성장률은 2% 수준으로 추정돼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잠재성장률이 2040년부터 0%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대외 경제여건은 더욱 악화일로에 있다. 앞으로 1개월 후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지만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각종 연설 등에서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패싱되고 있다. 비상계엄 직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한국이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전망할 정도로 불확실하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정쟁에 매몰돼 있다. 벌써부터 차기 대선 운운하면서 여야가 정치공학에만 함몰돼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위기관리의 사령탑을 맡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탄핵’을 거론하면서 흔들어 대고 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자중지란으로 민심과는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경제환경은 더욱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권은 민생경제 안정 없이는 정국 안정도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가지고 여야는 물론 행정부가 상호 협력해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금요일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민생과 안보 협의를 위한 여야정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여야정은 협의체를 조속히 출범, 가동해 국민들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요망한다.

[사설] 탄핵 지원금? 공무원 송년회 자제부터 풀자

경제 흐름이 완만한 회복세였다고 본다. 물가도 1%대로 비교적 안정세였다. 고용률 또한 양호한 개선 흐름을 보였다. 여전히 불안한 건 소비심리 위축이었다. 건설 경기 위축 등이 여전했다. 그런 상황에서 계엄 사태가 터졌다. 탄핵 정국으로까지 이어졌다.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모두 긴장하고 있다. 당연히 내수 시장 위축이 제일 걱정이다. 과거 탄핵 정국에서 나타났던 흐름도 있다. 내수 시장의 충격이 가장 크고 지속적이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기다. 당시 소비자동향지수(CSI)가 있다. 10월 102.7이었는데 11월 96.0, 12월 94.3, 2017년 1월 93.3으로 주저앉았다. CSI는 기준값을 100으로 둔다. 100보다 크면 낙관적,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CSI는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후인 2017년 4월에야 101.8로 다시 100을 넘겼다. 그 흐름대로라면 이제부터 헌재 결정까지 계속 나빠질 것이다. 일부 지방정부에서 내수 시장 대책이 나왔다. 지역민에게 소비 지원금을 나눠주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에서는 광명시가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섰다. ‘소비 촉진 지원금’을 검토했다고 한다. 받은 돈을 지역 내에서 소비하게 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사태 때 준 지역 재난지원금 방식이다. 광명시민 모두에게 주면 277억원, 가구별로 주면 114억원이 든다고 한다. 정읍시, 김제시, 남원시는 서로 ‘최초’, ‘최다’라며 경쟁적으로 추진한다. 옳은 선택일까. 박승원 광명시장이 배경을 설명했다. “탄핵 시국이 민생 경제를 차갑게 얼리고 있다. 연말 모임조차 실종돼 소상공인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골목상권 활성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 위기 진단은 정확하다. 하지만 꼭 현금성이어야 하느냐는 토론으로 남는다. 유동성 잔치는 반드시 인플레이션 고통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지원금은 윤석열 정부의 고물가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적으로 증명된 철칙이다. 식당, 주점, 노래방 등이 계엄·탄핵 정국에 직격탄을 맞았다. 대목이어야 할 연말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송년회, 회식, 술자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국에 대한 적응은 공직사회가 가장 빠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공직사회의 자제가 소상공인에게는 치명타가 된 것이다. 200억원 쓸 의지가 있다면 직원들에게 송년회를 적극 권장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소상공인에게는 그게 미덕이고 배려다. 지역 상인에게 고객은 지역민이고, 그 지역민의 대표가 지역 공무원이다. 공직사회의 송년회 자제는 그래서 지역 상인에게 치명타다. 탄핵이라서 먹고 마시는 연말이 더 필요하다. 언론도 ‘탄핵 시국에 송년회 빈축’이라는 단편적 접근은 버려야 할 것이다.

[사설] 계엄·탄핵 때문에 경기도금고 은행 선정이 연기되나

경기도의 연간 예산은 대략 40조원이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모두 합해서다. 이 돈을 예치하는 금융기관이 도 금고다. 도 입장에서는 금융업무, 금리, 기여도, 협력성 등을 따져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 40조원 고객 유치다. 역할이 큰 만큼 선정 절차가 엄격히 규정돼 있다. 약정 기간은 4년이다. 현재 약정은 2025년 3월31일로 끝났다. 3개 시중은행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계엄·탄핵 탓이란다. 금고지정심의위원회 연기만 벌써 두 번째다. 당초 19일에서 20일로, 다시 30일로 미뤄졌다. 공식적인 연기 사유는 정족수 미달이다. 위원회 재적 위원은 9인으로 3분의 2가 출석해야 한다. 도의원 2명이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도의회 예결위와 겹친 일정 때문이다. 그 이유가 계엄·탄핵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또 다른 위원 일부도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하게 됐다고 알려졌다. 민간 위원인 듯하나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관련 조례 제8조에 위원회 회의 규정이 있다. 위원장이 회의 개최 3일 전까지 각 위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19, 20, 30일 세 번 정해졌다. 규정대로 매번 기일 통지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이나 ‘3명 미달’로 연기됐다. 기일 확정 전에 참석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기일이 잡힌 뒤에 이를 번복한 것일까. 도의원 2명 이외 위원의 불참 이유는 확실치도 않다. 도의 설명은 그냥 ‘일부 위원’이고 ‘일정상 이유’다. 개운찮고 궁금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부정한 이유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경기도 관계자도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건 도금고 선정이다. 40조원를 유치할 은행을 정하는 일이다. 시중은행의 경쟁이 상상을 초월한다. 은행 고위직의 인사가 달려 있기도 하다. 그런 만큼 모든 절차가 감시 대상이다. “심의를 미룬 진짜 이유가 (도의회 일정이 아니라) 달리 있는 건 아닌가.” 경쟁 중인 은행의 관계자가 벌써 의혹을 언급했다. 위원회에 불참한 도의원의 결정은 당연히 부적절했다. 도의회 예결위가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금고선정심의위원회 역시 막중한 일이다. 자신의 불참으로 성립조차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심의 연기가 불필요한 의혹을 살 개연성도 불보듯 했다.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임했어야 했다. 행정 행위의 공정성은 절반이 절차에서 온다. 그 절차가 이상하면 결정도 이상하게 보인다.

[사설] 폭설 붕괴 비닐하우스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18일자 경기일보 1면에 사진 3장이 실렸다. 무너진 철근 사이로 소 떼가 위태롭게 오가고 있다. 과수와 방조망이 쓰러져 흉물처럼 버려져 있다. 햇빛가림막이 바닥에 인삼을 덮쳐 황폐화됐다. 이런 지경에 이른 건 지난달 27일 폭설 때다. 본보 사진기자가 사진을 촬영한 건 17일이다. 폭설 피해 20일이 지난 현재 모습이다. 소 떼는 위험하고, 비닐은 날아갔고, 인삼은 눌려 있다. 2024년 12월 경기도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다. 폭설 당일 긴급 회의를 열던 시장 군수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긴급 복구에 총력전을 펴라던 지시가 언론에 남아 있다. 그랬던 화성시, 수원특례시, 이천시의 현재 모습이다. 소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과는 생육 기간 3~5년을 완전히 망쳤다. 땅속 인삼의 피해는 내년에 봐야 확인이 가능하다. 피해 조사나 보상 규모가 정해지지 않아 손댈 수도 없다. 하루짜리 폭설 피해가 20일짜리 영농 말살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폭설에 피해가 집중된 곳은 경기도다. 전체 농작물 피해 면적이 271.93㏊다. 이 중 경기지역이 211.22㏊다. 포도 등 시설하우스 피해가 28㏊, 인삼 등 과수 시설 피해가 182㏊다. 시설 농가의 폭설 피해는 여름철 농작물 피해와 규모부터 다르다. 기본적인 농작물 피해 말고도 수천만~수억원이 투입된 시설 피해가 심각하다. 복구도 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중장비 등이 투입돼야 한다. 국가, 시·군이 나서 줘야 해결된다. 피해 지역에 대한 재난지역 선포 약속이 있었다. 시장과 도지사가 건의를 약속했다. 그게 20일이 흐른 18일에야 지켜졌다. 정부는 계엄·탄핵 정국 때문이라고 치자. 이에 앞서 지자체가 해야 할 재난 행정이 있다. 복구 지원, 피해 조사, 보상 집행과 예산 수립 등이다. 얼마나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수원 상광교동의 시설 피해 농민의 탄식이 절절하다. “지난해 수해 때도 와 보기만 하고 그대로다. 애초 기대도 안 했지만 너무한다.” 계엄 규탄 집회에 참여하는 단체장들이 많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시의회가 시정에 집중하라는 지적도 한다. 그럼에도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런 곳의 폭설 피해 현장을 살폈더니 저 지경이다. 행정 절차 지연으로 남은 농축산물까지 다 망치고 있다. 시장 군수의 본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본분 무시해도 정치권에 기웃대는 게 도움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미국 등 선진국에서 눈만 늦게 치워도 낙선감이다. 폭설 피해 늑장 복구·지원은 당연히 퇴출감이다. 우리도 유권자가 지켜보고 있다.

[사설] 경찰 특수단의 경찰 초토화, 명분 알지만 過하다

특수단의 방향이나 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수사 객관성을 증명하려는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식구도 봐주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 주려 했을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큰 수사인만큼 필요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 있다고 균형을 깨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가 수사 왜곡일 수 있다. 결과에 있어 모두에게 공평한 수사가 돼야 한다. 지금 진행되는 경찰 특수단의 계엄·내란 수사를 향한 걱정이다. 이번에는 김준영 경기남부청장이 피의자가 된 것 같다. 김 청장은 앞서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았다. 별다른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랬던 그의 신분이 이번에 피의자로 바뀐 것이다. 조지호 경찰청장의 지시를 받고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수원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 경찰력 투입을 지시했다는 혐의다. 신분 전환의 동기는 민변의 고발이다. 또 한 명의 경찰 간부 구속이 오나. 특수단 수사로 경찰 수뇌부는 이미 초토화됐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함께 구속했다. 현직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의 동시 구속은 사상 처음이다. 이들의 혐의는 위로부터 지시를 받고 국회를 통제했다는 것이다. 조 청장은 ‘세 번의 명령 거부’를 들어 억울함을 말했다. 김 서울청장은 경찰청장의 지휘하에 있다. 경찰력 동원에 갖는 비중이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특수단은 다 구속했다. 경기남부경찰청도 뒤숭숭하다. 계엄군이 진주한 선관위 관할이라서다. 경기청장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불려갔다. 과천경찰서장, 수원서부경찰서장, 경기남부경찰청 공공안전부장과 경비계장 등이 조사를 받았다. 경기남부청에 대한 압수수색도 있었다. 많은 직원들이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당했다. 10일 이후 거의 매일이다. 일부에서 ‘이게 감찰이냐. 왜 경찰 내부만 들쑤시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시작부터 요란했다. 특수단발(發)로 대통령 직접 수사 가능성, 소환 가능성, 심지어 체포 가능성이 연속해 보도됐다. 하지만 실현된 것은 없다. 17일에는 대통령에 출석 통지를 했지만 이것도 여기까지다. 윤 대통령 부분을 공수처로 이첩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도 넘겼다. 겉으로 나타난 제일 큰 마무리는 경찰 수뇌부 초토화다. 수사 초기 검찰 특수본과 수사 주도권 싸움을 했다. 경찰 특수단이 받는 공격이 있었다. ‘경찰이 많이 관련됐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경찰 잘못부터 손을 댄 것 같다. 특수단에는 효과가 있었다. ‘경찰이 수사하라’는 우호적 여론을 얻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특수단 아닌 일반 경찰’이 받은 상처가 크다. 수사의 최종 지점에서는 균형이 맞춰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특수단 수사는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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