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비디오 한편 어때요~

서울 YMCA의 건전한 비디오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건비연)은 최근 설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비디오(DVD 포함) 10편을 선정해 발표했다. 언론인 이중한씨를 비롯해 한국 디지털위성방송 강현두 사장, 서울YMCA 강태철회장,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 가톨릭대 사회학과 이영자 교수, 한양대 영화학과 정용탁 교수, 영화평론가 옥선희씨가 선정위원으로 참여해 사회 교육적 측면에서 볼만한 이슈를 가지고 있으며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영화, 토론과 논의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영화 등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추천작 10편은 다음과 같다. ▲아타나주아 (자카리아스 쿠눅, 드라마·15세) ▲천공성의 라퓨타<사진>(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전체) ▲슈렉2(앤드루 애덤슨, 애니메이션·전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바흐만 고바디, 드라마·전체) ▲베른의 기적(쇤케 보르트만, 코미디·전체) ▲웨일 라이더(니키 카로, 드라마·전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누도 잇신, 드라마·15세) ▲뽀로로의 대모험(김현호, 애니메이션·전체) ▲이슈파텔 애니메이션 베스트 콜렉션 DVD(이슈파텔, 애니메이션·전체) ▲NFBC 애니메이션의 거장들 DVD(캐롤라인이프 외, 애니메이션·전체)/연합

MBC ‘슬픈연가’ 시청률 상승 가속도

총 20부작으로 기획된 MBC TV 수목드라마 ‘슬픈연가’(극본 이성은·연출 유철용)가 반환점을 돌면서 시청률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절반에 해당하는 10부가 방송된 지난 3일 19.4%(TNS미니어코리아 조사)로 첫 방송 이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20% 고지를 바라보게 된 것. ‘슬픈연가’는 사실 방송 이전부터 권상우 김희선 등 톱스타의 출연, 송승헌의 도중하차와 연정훈의 투입, 호주에서의 홍보용 뮤직비디오 촬영과 뉴욕에서의 해외촬영 등으로 숱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첫회 18.1%를 기록한 이후 시청률이 점차 하락해 최저 13.8%까지 떨어졌다. 시청자들은 느린 스토리 전개로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 고조되기까지 너무 오랜시간이 걸린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그때마다 이 드라마의 열성 팬들은 “성인연기자를 본격적으로 투입하면 나아질것”, “뉴욕 촬영 방송 장면이 나가면 달라질 것”, “주인공 세 명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시청률이 오를 것”이라며 인내심을 발휘해온 셈이다. 마침내 9회와 10회 방송에서 앞을 못보던 혜인(김희선)이 눈을 뜨고, 세 주인공이 마주치면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시청률 곡선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극 전개가 빨라지는데다 권상우 김희선 연정훈의 연기력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일단은 초반의 아쉬움을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11회 방송분부터 ‘슬픈연가’의 시청률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거리다. 16일부터는 ‘유리화’ 후속으로 조재현 차인표 송윤아 등이 출연하는 SBS 수목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가 방송된다. 여기에 30%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KBS 2TV ‘해신’도 건재하다. 설 연휴기간 동안 특집방송 편성으로 방송을 쉬는 ‘슬픈연가’가 새로운 구도의 3파전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주목된다.

‘닭띠 연예인’ 주목하세요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2005년이 더욱 알차고 희망찬 시간이 되도록 누구나 가슴 속에 소망을 품어본다. 연예계에는 유난히 닭띠 스타들이 많다. 벌써 관록을 갖춘 배우, 가수들이 있는가 하면 한창 앞을 보고 달리는 81년생 스타들이 있다. 이들의 새해 소망을 들어보았다. ◇69년생 ▲하희라=무엇보다 소중한 건 가족의 건강이다. 아이들 아빠(최수종)가 촬영중인 드라마 ‘해신’이 늘 위험해 걱정이다. 무사히 드라마가 끝나길 기도할 뿐이다. 그래고 올해엔 큰 아이 민서가 유치원에 가 나 역시 설렌다.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한다. 나도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길 희망한다. ◇81년생 ▲조인성=‘봄날’이 당장 8일부터 방영되니 좋은 평가를 받기 바랄 뿐이다. 작년에는 ‘발리에서 생긴 일’로 많은 분들이 연기자로 날 인정해줘 기분 좋은 한 해였다. 올해는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장)동건 형처럼 연기력으로 굳건히 자리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유진=지난 한 해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가수와 연기자 둘 다 어느정도 성과를 이룬 것 같아서 흐뭇하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내년 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끝나면 일단 휴식을 취한 후 솔로 3집 준비와 연기자 활동을 계속하겠다. ▲성유리=지난 해 MBC TV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년에는 지금까지 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개성있는 역을 맡고 싶다. 연초에는 연기 활동 계획이 없고 여름께 활동을 시작할 생각이다.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겠다. ▲박정아(쥬얼리)=내년이 닭띠해고 내가 닭띠니까 내년에 모든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끝나고 2개월 정도 쉬었는데 드라마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는 2월에 발표하는 새 음반이 잘 되어서 가수로서 더욱 활발히 활동하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브라이언(플라이 투더 스카이)=올 한해는 안 좋은 사건 사고가 많았다. 새해에는 사건 사고 없이 평화로운 한해가 되고 모두들 웃을 수 있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노래 실력도 더 늘었으면 좋겠고 여자친구도 생겼으면 좋겠다. ▲봉태규=지금 출연 중인 MBC 주말드라마 ‘한강수타령’이 시청자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영화에 출연하게 될 것 같은데, 영화에서도 많은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MOVIE/클리어링 (The Clearing).투 터프 가이즈.신석기블루스

■클리어링 (The Clearing) 남편이 묻는다. “날 사랑해?” 아내가 대답한다. “네.” 남편이 다시 말을 잇는다. “내겐 그거면 충분해.”(영화의 엔딩장면) 내년 1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클리어링’(The Clearing)은 심리 스릴러 영화다.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기업가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로버트 레드포드, 윌렘 데포, 헬렌 미렌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고 ‘러브액츄어리’ ‘물랭루주’ 등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크레이그 암스트롱이 음악을 맡았다. 남편이 묻는다. “날 사랑해?” 아내가 대답한다. “네.” 남편이 다시 말을 잇는다. “내겐 그거면 충분해.”(영화의 엔딩장면)¶내년 1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클리어링’(The Clearing)은 심리 스릴러 영화다.¶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기업가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로버트 레드포드, 윌렘 데포, 헬렌 미렌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고 ‘러브액츄어리’ ‘물랭루주’ 등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크레이그 암스트롱이 음악을 맡았다.¶영화 ‘인사이더’ ‘히트’ 등을 제작한 피터 얀 브루게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는 성공한 기업인 웨인 헤인즈(로버트 레드포드)가 출근길에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그의 아내 일레인(헬렌 미렌)은 웨인에게 저녁에 손님을 초대했다며 일찍 귀가할 것을 부탁한다. 손님이 오고 식사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실종신고를 내고 FBI가 사건에 가담하면서 극이 전개된다. 남편 웨인을 납치한 사람은 실직자 아널드 맥(윌렘 데포)이다. 그는 예전 웨인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해고됐다. 아널드는 웨인에게 “나는 심부름꾼이다. 당신을 납치한 사람은 따로 있다. 나는 숲 속 산장까지 당신을 데려다 주는 임무를 맡았다”며 거짓말을 한다. 영화는 숲속 산장으로 끌려가는 웨인과 납치범 아널드와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와 웨인의 행방을 찾으려고 FBI와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레인과 자녀들의 몇 주동안의 에피소드를 병치하면서 전개된다. 웨인을 찾는 과정에서 숨겨진 그의 사생활이 드러난다. 웨인은 여전히 정부(情婦)를 만나고 있었다. 웨인의 회사에 근무했던 그의 정부는 일레인의 종용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그 이후로도 웨인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 절망하는 일레인. 웨인은 그의 두 자녀에게 “아빠는 엄마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일레인은 FBI요원에게 웨인과 정부와의 관계를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산장으로 가는 웨인과 아널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널드는 장인 집에 얹혀 살며 아내를 출근시키는 실업자의 고통을, 웨인은 젊은 날 성공을 위해 일에만 매달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었던 과거를 얘기한다. 웨인은 아내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는다. 산장으로 가는 길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더 확실하게 느끼는 웨인과 납치보다더 충격적인 남편의 사생활에 절망하는 일레인.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들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웨인은 아널드에게 아내에게 쓴 편지를 부쳐줄 것을 부탁하고 일레인은 남편이 아널드에게 죽임을 당한 뒤 그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내 사랑은 변함없어”다. 영화 제목 ‘The Clearing’은 우리 말로 ‘확실히 하기’ 정도가 될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의심했던 아내에게 남편의 편지는 미소며 기쁨이다. 영화 ‘클리어링’은 스릴러 영화지만 드라마에 더 충실하다. 영화에서는 가족과 사랑, 삶의 고통 등 우리네 인생이 그대로 녹아 난다. 쫓기 쫓기는 스릴러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적격이 아니다. 그러나 극장을 향하면서 박진감보다 감동과 여운을 기대하다면 스릴과 감동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클리어링’에는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자아내는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없다. 그러나 삶의 역경을 이기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을 눈과 표정으로 그대를 담아 내는 주름살 많은 노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해 굳이 흠을 잡자면 다소 지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투 터프 가이즈 다소 모자란 인물들이 한탕을 노리고 범죄를 모의한 탓에 그 과정이 엉망진창이 되고마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업영화의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31일 개봉하는 스페인 영화 ‘투 터프 가이즈’ 역시 그런 영화다. 메이드인 할리우드가 아닌 까닭에 영화는 매우 독특한 분위기다. 돈 냄새도 안나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인공 남자들이 워낙 볼품 없어 관객들 역시 처음부터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된 수순을 밟지 않는 덕분에 끝까지 시선을 붙드는데 성공한다.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연출이 웬만한 허점은 넘겨버리게 한다. 직업이 킬러라지만 성공률이 거의 제로인 40대 아저씨 파코와 체면이나 눈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대책없는 말라깽이 청년 알렉스. 두 사람은 백만장자 장인의 유산을 차지할 속셈으로 아내를 납치해 달라는 한 남자의 의뢰를 받고 사건에 뛰어든다. 그런데 엉뚱하게 젊은 창녀 타티아나가 처음부터 끼어들어 얼결에 이들은 삼인조가 된다. 물론 이들의 범죄 전개 과정은 초장부터 망가진다. 설상가상으로 납치극은 의뢰인의 사기로 밝혀지고, 일당은 여인을 곱게 풀어준다. 문제는 그 여인이 마피아의 두목이라는 사실. 전세는 역전돼 이 마피아 두목의 추격전이 펼쳐지고, 비밀을 간직한 타티아나를 쫓는 또다른 세력이 가세한다. 영화는 얼굴에 끔찍한 화상을 입히고 손목을 싹둑 자르는 잔혹성도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날렵한 블랙코미디의 즐거움을 준다. 이 영화의 수입사가 영화를 코엔형제의 ‘파고’와 비교하는 것은 그 때문. 타티아나 역을 맡은 엘레나 아나야는 ‘반헬싱’에서 섹시한 드라큘라 신부로 출연했던 인물. 이 영화에서도 소녀 같으면서도 섹시한 묘한 매력을 풍긴다.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는 범죄 상황극의 기본적인 요건을 비교적 만족시키는 영화다. ■신석기블루스 한날 한시에 태어난 두 남자가 있다. 둘은 이름도 같고 심지어 직업도 같다. 이쯤되면 사주팔자가 똑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웬걸. 둘은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과 건강, 인간성이 다르다. 자연히 누리고 있는 인생도 판이하게 다르다. 할리우드판 ‘인생극장’을 그린 ‘나비효과’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그 바통을 이어 30일부터는 극장에서 ‘신석기’ 버전의 ‘인생극장’이 펼쳐진다.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잘생긴 신석기(이종혁 분)는 기업 M&A 전문 변호사다. 매력적이지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다. 반면 뭐하나 가진 것 없는데다 못생기기까지한 신석기(이성재 분)는 서민들의 송사를 해결하는 변호사. 볼품 없지만 정 많고 따뜻하다. 이 두 사람이 불가사의한 엘리베이터 사고로 서로의 몸을 바꿔치기 당한다. 그나마도 한 사람은 의식불명이 되고 한 사람만 간신히 깨어나는데, 깨어난 이는 잘생긴 신석기.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몸은 180도 달라져 있다. 졸지에 생김새가 달라진 것도 억울한데, 그 생김새 때문에 어디를 가도 박대를 당해 도무지 옛 권력과 부를 되찾을 길이 없다. 게다가 꼼짝없이 적응해야 하는 못생긴 신석기의 인생은 바퀴벌레가 드글드글한 서민 아파트에, 수임료 한푼 제대로 못받는 지지리도 가난한 변호사. 이성재는 자신의 열번째 작품에서 연기의 폭을 대폭 넓히며 배우로서의 욕심을 한껏 부렸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천식까지 있는,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약골인데다가 추남 중에서도 추남으로 변신한 그는 스스로 그러한 변신이 무척 즐거운듯 스크린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이었다. 구부정한 자세에 팔자걸음, 뻐드렁니에 파마 머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임팩트가 강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거부감 없이 캐릭터로의 몰입을 안내한다. 9편의 작품을 거치면서 키워진 내공이 꽃을 피우는 기회를 만난 것. 우스꽝스러운 분장 탓에 자칫 가볍게만 치달을 수 있었던 영화가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주연배우 스스로가 ‘알 깨기’의 희열을 만끽한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또 이종혁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를 괴롭히는 선도부장으로 출연했던 그는 ‘잘나가는 신석기’를 맡아 관객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신석기 블루스’는 매순간 다음을 예상할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비교적 재치있는 소재이고,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호흡이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 이상 새로움은 없는 것. 탱고까지는 아니어도 탭댄스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텐데, 영화는 마치 기본 스텝만 밟는 약식 왈츠 같다. 너무 안전한 길만 택했다. 결론은 물론 개과천선. 신석기가 순진하고 착한 회사 안내 데스크 여직원(김현주 분)을 통해 사랑에 눈을 뜨고 참된 인생에 눈을 뜨는 과정은 예정된 수순을 밟으며 무난히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지적할 것도 없지만 이성재의 성공적인 변신 이상으로 감흥을 일으키는 것도 없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외치는 이 영화는 무해하다. 그런 무해함이 반드시 맛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존재 가치를 상실한 영화들이 종종 등장하는 극장가에서는 그것 역시 미덕으로 작용할 수 있다.

MOVIE/2004 한국영화계 결산.하울의 움직이는 성.서바이빙 크리스마스

해외영화제 품에 안았다 0%에 육박하는 자국영화 점유율,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초대박, 세계 3대 영화제의 잇따른 석권 등 올해 한국 영화계는 적어도 외형적으로 국내외에서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해외 수출 총액도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2천500만 달러(약270억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부쩍 커진 체격에 비해 내실이 없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저예산 제작, 소규모 상영관의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작품들의 ‘대박’ 이후 한해 내내 뚜렷한 화제작이 없었다는 점은 호황 속의 불황이라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관객 1천만명 시대 ‘빛과 그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잇따라 전국 1천만명을 돌파하는 등 상반기 호황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의 올 한해 시장 점유율은 58%(IM픽처스 추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1천만명 이상을 동원한 ‘큰 물고기’ 두 편이 휩쓸고 간 한국 영화계는 그다지 뚜렷한 화제작 없이 1년을 보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를 제외하고는 서울 관객 100만명을 넘은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102만명) 한 편 뿐이었으며 ‘어린 신부’(서울 88만명), ‘내 머리속의 지우개’(79만명), ‘범죄의 재구성’(78만명), ‘아라한 장풍대작전’(76만 명), ‘귀신이 산다’(75만명),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67만명), ‘효자동 이발사’(66만명), ‘우리형’(66만명), ‘바람의 파이터’(64만명), ‘늑대의 유혹’(61만) 등 ‘중박’규모의 히트작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높아지는 한국 영화 위상= 올해 한국 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과 베니스, 칸 영화제에서 잇따라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와 ‘빈 집’으로 각각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올드보이’(박찬욱)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또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 페스티벌에서도 한국 작품 ‘오세암’(성백엽)이 대상을 차지했다. 영화제를 통해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편 해외 마켓에서도 호조를 띠며 상반기에 이미 3천250만 달러의 해외판매 수익을 거둬들여 올 한해 수출 총액 400만 달러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TV 드라마에서부터 불어닥친 한류 열풍은 일본내에서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같은 스타를 탄생시켰고 ‘태극기 휘날리며’(약 90만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약 70만명), ‘실미도’(약 50만명) 등의 히트작을 낳으며 한국 영화의 몸값을 올려놓고 있다. ▲실존인물 소재 영화 제작 붐= 연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는 실존 인물과 과거의 역사에 눈을 돌렸고 이는 올해 전체를 감도는 가장 뚜렷한 제작 경향이었다. 안중근 의사(도마 안중근), 극진 가라테의 고수 최영의(바람의 파이터),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원년 프로야구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슈퍼스타 감사용) 등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태어난 실존 인물들이지만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드디어 ‘사랑’에 눈을 떴다. 23일 개봉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성 라퓨타’ 등으로 40년 애니메이션 인생을 꽉 채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과 평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너’를 지키고 싶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 18살의 소녀 소피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꽃미남 마법사 하울을 만난다. 그러나 소피는 그와 함께 한 잠깐의 공중 데이트 때문에 마녀의 마법에 걸리고 쭈글쭈글한 90살의 할머니가 된다. 집을 나온 소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청소부로 들어간다. 밤마다 상처입은 몸으로 들어오는 하울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소피. 그러던 중 매일 벌어지는 전쟁에 지쳐버린 하울을 위로해주고 하울 대신 국왕을 만나러 간다. 감독이 그려낸 환상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선다. 집과 철근으로 만든 ‘움직이는 성’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지친 몸을 달래주고 외로운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는 아지트 역할을 해낸다. 불꽃 악마 ‘캘시퍼’와 외발로 통통 뛰어다니는 무대가리 허수아비, 어수룩한 변신을 즐기는 제자 ‘마르클’, 철없는 악마 ‘황야의 마녀’ 등 톡톡 튀는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꽃미남 마법사 하울과 할머니가 된 소피, 가장 환상적인 이 둘의 캐릭터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커다란 새로 변신해 잔인하게 적을 해치우는 파괴력을 가진 마법사지만 머리카락 색깔 하나에 하늘이 무너질 듯이 괴로워하는 중증 왕자병 환자인 하울. 동시에 소피의 잠든 모습을 훔쳐보는 로맨틱함을 간직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소피는 젊은이의 열정과 할머니의 지혜로움을 모두 갖고 있다. 60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상상력을 갖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가 되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거나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운 적이 없다’는 소피의 말에서 ‘나이 듦’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마음가짐에 따라 30대, 40대 또는 10대로 돌아가는 소피의 얼굴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이 둘의 사랑은 따뜻하다. 하울과 소피가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 뒤 하늘을 두발로 걸어다니는 장면에는 비행기 같은 기계의 힘 없이 오직 서로의 팔에 의지해 중력을 거스르는,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하야오 감독 작품 최초의 키스신도 볼 수 있다. ‘키스신’보다는 ‘뽀뽀신’에 가깝지만 둘의 사랑을 그려내기에는 충분했다.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 관심에서 호감으로,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단계가 조금은 서툴러 보인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이 될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이 작품으로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을 걸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 마법을 푸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니까 말이다. 상영시간 119분. 전체관람가.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하는 ‘서바이빙 크리스마스’(Surviving Christmas)는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보낼 위기에 처한 한부자 싱글 남자가 돈으로 ‘크리스마스用’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애인과 피지로 날아갈 꿈에 부풀었던 드루 래덤(벤 애플렉 분)은 애인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한다”고 딱지를 놓으면서 졸지에 외로움이 사무치는 신세가 된다. 래덤은 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돌연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찾아가고,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를 가족처럼 보내는 조건으로 25만달러(약 2억6천만원)를 제안한다. 삶의 무게에 치여 이혼 위기에 몰렸던 부부는 이 돈으로 잠시 상처를 봉합하기로 하고 연휴동안 래덤의 부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법. 조금 전까지만해도 능력있고 자신만만한 남자였던 래덤은 엉겨붙을 부모가 생기자 갑자기 유년으로 퇴행한듯, 잇따라 억지스러운 요구를 한다. 불쑥 궁금해졌다. 밴 애플렉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가족주의를 설파하자는 의도라면 그는 이미 ‘저지걸’에서 가족의 가치를 역설한 바 있다. 애플렉은 이 영화에서 한발 더 나가 몸을 던지며 가족을 부르짖는다. 블록버스터 스타의 변신이가상하다. 그러나 ‘저지걸’ 출연이 감독 케빈 스미스와의 막역한 친분 때문이었고 영화 역시 저예산영화의 미덕을 어느 정도 발휘했던 것에 비해 이번 ‘서바이빙 크리스마스’는 다소 생뚱맞다. 유년과 가족에 대한 상처를 안은 캐릭터라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요란스러운 크리스마스 연휴를 홀로 보내야 하는 공포감은 외로운 싱글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소재. 그러나 주인공이 돈이 많아서였을까. 영화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기 보다는 10여㎝ 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나. “참 아이러니다. 난 돈을 쓰면서 끼어들려는 가족을 버리려들다니…”라는 래덤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 이 영화의 주제는 살갑다.‘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표어가 사무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설지 궁금하다.

MOVIE/영 아담(Young Adam).까불지마.인터뷰-이병헌

■영 아담(Young Adam) 욕망과 운명의 굴레에 갇히다 성행위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남과 여. 천장을 향해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젖꼭지에는 파리가 손을 비비며 앉아 있고 비스듬히 여자를 보고 있는 남자의 성기는 초라하게 늘어져 있다. ‘파격적인 성기 노출’ 식의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3일 첫선을 보이는 영화 ‘영 아담’(Young Adam)은 그다지 야하지 않은 영화다.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큰 땀구멍이나 겨드랑이에 삐쳐나와 있는 털, 너저분한 침대 시트, 그리 유쾌하지 않는 이미지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데다 성행위라고 해봐야 담배 한대가 다 타기 전에 끝나니 훔쳐보는 즐거움을 느끼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은 후반부 안개가 가득한 강가를 항해하는 바지선(Barge船)의 이미지에 있다. 범인을 쫓지 않는 스릴러며 야하지 않은 에로물인 이 영화를 보다보면 ‘성이란 혹은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규범과 일탈, 도덕과 비도덕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식의 질문에 빠져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 혼란스럽지만 인간과 그가 살아가는 삶의 깊은 곳을 엿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체 모를 남자 조(이완 맥그리거)가 영국의 한 마을로 흘러 들어온다. 남자가 일자리를 구한 곳은 석유 등의 물건을 나르는 바지선. 배에는 선주이기도 한 여자엘라(틸다 스윈튼)와 그녀의 나이든 남편 레스(피터 뮬란)가 일을 하고 있다. 이 바지선에서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엘라와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사를 나누는 관계가 된다. 레스의 눈을 피해 서로 정을 통하던 남녀, 점점 과감해지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의 시선조차 무시하기 시작한다. 한편, 어느날 오후 이들 앞에 벌거벗은 젊은 여자의 익사체가 한 구 떠오른다. 타살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그러던 중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에 검거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비트 작가(Beat writers; 50년대 반사회적 작가 그룹)인 알렉산더 트로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트래인스포팅’의 이완 맥그리거, ‘올란도’의 틸다 스윈튼이 욕망과 운명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남녀주인공을 맡았다. /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7분. ■까불지마 넘버2 vs 넘버3 3일 개봉하는 영화 ‘까불지마’는 인기시트콤 연기자며 왕년의 액션배우였던 오지명(65)의 감독 데뷔작으로 제작 발표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주인공 삼인방인 벽돌과 개떡, 삼복으로 변신한 사람은 최불암, 오지명, 노주현 등 세 명의 중견 배우. 여기에 그룹 UN의 김정훈과 ‘청담동 호루라기’로 알려진 방송인 이진성, 신인 연기자 임유진 등이 합세했다. 마치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에서처럼 영화의 미덕은 탄탄한 캐릭터에 있다. 벽돌(최불암)은 따뜻함과 의리를 지닌 인물이다. 별명처럼 벽돌같은 묵직함이 장점. 셋 중에서는 가장 철이 들어 보이며 슬픔도 안고 있다. 반면 개떡(오지명)은 단순, 무식, 과격을 콘셉트로 한다. 성격만 ‘개떡’같을 뿐, 기억력, 상황 판단, 참을성 모두 제로에 가깝다. 취미는 ‘삥 뜯기’, 싸움에서는 날렵한 주먹이 강점이다. 셋 중 막내인 삼복(노주현)은 이들 둘 사이의 중간 지점 같은 역이다. 장점은 빠른 상황 파악과 잔머리. 잘생긴 외모가 돋보이며 형들 사이에서 재롱도 ‘좀’ 피우는 편이다. 영화는 벽돌과 개떡의 ‘맞장’ 장면에서 시작된다. 은퇴를 선언한 보스가 넘버2와 넘버3인 두 사람에게 함께 조직을 맡으라고 말한 것이 발단. 두 사람은 강 둔치에서 한판 붙기로 하고 심판으로는 동생 삼복이 나선다. 하지만, 이 틈에 계략을 짜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참 ‘쫄따구’인 동팔(김학철)이다. 결국 동팔의 음모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벽돌과 개떡. 감옥 속에서 복수의 칼날을 간지 15년 되던 해 드디어 출소를 하고 삼복은 두부를 사들고 이들을 맞이한다. 15년 묵은 복수를 시작하는 삼인방. 하지만 웬걸, 동팔도 경찰서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동팔은 이들에게 자신의 딸 은지(임유진)를 보호해주면 거액을 내놓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한다.방송과 영 화계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지만, 65세 노장 신인 감독의 연출 실력은 어느 정도 될까?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영화는 탄탄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꽤 짜임새 있게 진행이되는 편이다. 웃음과 감동, 볼거리, 여기에 중견 배우들의 망가지는 모습까지 영화는 심심풀이 코미디의 기본은 갖추고 있다. 문제는 감독의 유머가 관객들과 통할지 여부. ‘털어서 나오면 십원에 백대씩’ 혹은 ‘정화조? 성이 정씨인가 보네?’라는 식의 유머가 관객들에게 먹혀들 수 있을까? 배꼽을 쥐기를 바랐었다면 지나친 기대일 듯 싶다./3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인터뷰/‘달콤한 인생’ 뵨사마 이병헌 김지운 감독의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제작 영화사봄)을 찍고 있는 ‘뵨사마’ 이병헌. 그는 올 하반기 일본에서 사진집 15만부, DVD 10만 세트, 캘린더 10만부를 각각 판매하며 ‘욘사마’에 비견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달콤한 인생’ 잘 진행되고 있나.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영화의 특성상 내가 95% 정도 등장하니 거의 스태프나 마찬가지다. 현재 75% 진행됐는데, 연말까지 마치는 게 목표다. -얼마전에 한남대교 위에서 촬영했다. ▲어유, 짜릿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촬영했는데 차량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많았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확실히 불황은 불황인가보다. 막연히 심야의 한남대교에서는 강 양쪽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감상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완전히 암흑이었다. -액션 연기가 많은데 다치지는 않았나. ▲초반에 허리를 잠시 삐끗한 이후에는 괜찮다. (하도 촬영이 고되서) 오히려 촬영이 없을 때 아프다. 나는 촬영장에서 ‘천하무적 김실장’으로 통한다. 극중 내이름이 김선우 실장인데, 10월 초였나 무려 14일간 밤마다 비를 맞는 신을 찍었다. 영화에는 겨우 6~7분 등장하는 신일텐데, 용케 안 쓰러지고 버텼다. 담요를 아무리 갖다줘도 부들부들 추운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땅속에까지 묻혔다가 나왔다. -그래도 이 영화에 대단히 애정을 갖고 있다. ▲촬영 끝나면 열심히 공부한 후 방학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보람을 많이 느낀다. -얼마전 도쿄 팬미팅 열기가 대단했다. ▲어린시절 이후에는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 행사장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짜 대단하더라. 만석의 축구장에서나 나올법한 함성이었다. -NHK 10시뉴스에도 생방송으로 출연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동시통역의 도움을 받으며 했는데, 독특한 경험이었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곧바로 귀에서 일어로 통역하는 소리가 들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NHK 10시 뉴스는 90개국으로 나간다고 들었는데, 작은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나겠다 싶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이왕 하는 것 차분하고 자신있게 하자고 생각했다.-한류의 거품론이 제기된다. ▲그건 배우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배우는 그저 연기를 열심히 하면된다. 좋은 작품만 계속 나온다면 걱정없다. 결국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감독은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지금 한류가 대단하다고 그것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한다면, 그것은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다. 지금 일본인들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완성도 높은 다양한 작품만이 길이다.

MOVIE/내 머리 속의 지우개.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우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사랑의 기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깔끔한 정통 멜로 영화가 탄생했다. 오는 5일 개봉하는 톱스타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편지’ ‘접속’ ‘약속’ 등 1990년대 후반 스크린을 평정했던 멜로 영화의 바통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았다. 이 영화는 드라마, 스타일,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고루 90점을 넘어선다. 최루성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통속적이지만 그 나름의 신선함이 배어난다. 여기에 스타성은 A+. 상업 멜로 영화로서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마지막 손맛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넌 너무 자신만만해. 인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 극중 철수(정우성 분)와 수진(손예진 분)이 결국 번갈아 가며 내뱉는 이 대사는 영화의 통속성을 상징한다. 예상대로 사랑은 핑크빛이 아니고 두 배우는 잇따라 눈물 흘리기 경쟁을 펼친다. 철수와 수진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에 골인하지만 수진이 스물일곱 나이에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리면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뻔함을 불식시킬 만큼 색이 잘 들었다. “내가 대신 다 기억해줄게, 내가 네 기억이고, 영혼이야” 철수가 자신을 떠나려는 수진을 달래며 하는 말. 이 말이 ‘닭살스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전개된, 둘이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그만큼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유부남 상사와 도망치려다 버림받은 수진이 건설판 일꾼 같은 철수와 사랑에 빠지는 세세한 에피소드와 광고 같은 화면이 차곡차곡 쌓여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멜로영화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스타일과 연기의 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정우성과 손예진은 같이 있는 모습이 하나의 CF였으며,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서 진짜 서로 사랑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요미우리TV에서 방송한 12부작 드라마 ‘퓨어 소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여성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여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할리우드 클래식 ‘러브 스토리’의 전형성을 빗겨간다. 그럼에도 감독은 ‘최루성’이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이재한 감독은 “말초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울음이 메아리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13살 소녀→‘서른살 킹카’ 꿈 이루다! 13살 소녀들은 꿈꾼다. 멋진 아가씨가 되는 꿈을. 지금은 가슴이 ‘평면’이고 치아에는 보철을 했지만 나도 언젠가는 모델 같은 아가씨가 될 테야. 오는 5일 개봉하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의 여주인공 제나는 아가씨 중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위치에 있는 서른 살을 꿈꾼다.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서른 살의 커리어 우먼. 그녀에게 딱 한가지가 없다면? 영화의 원제는 ‘13 going on 30’.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 중하나인 ‘16 going on 17’가 문득 떠오르는데, 제나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차근차근 먹는 것이 아니라 무려 17년이나 건너뛴다. 13살 생일에 소원을 빌었더니 다음날 아침 30살로 깨어나는 것. 소원대로 근사한 서른 살이 된 제나. 과연 그의 삶은 행복할까.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주는 뉘앙스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 그러나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박자감, 음감이 아주 괜찮은 팝송으로 경쾌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톰 행크스 주연의 ‘빅’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마이클 J.폭스 주연의 ‘백 투더 퓨처’의 장점만 모아 만들었다. 성의없는 아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영화는 매력적인 소재들을 대단히 깔끔하게 버무리며 A급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서른 살이 된 제나에게는 근사한 남자친구와 멋진 직장이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제나는 13살 때의 단짝 이웃집 소년 매트를 수소문해 찾아간다. 그러나 매트는 지난 17년 간 제나가 안겨준 상처로 가슴앓이를 해왔다. 힘든 일이 있을때마다 매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제나는 결국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매트에게 점점 빠져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13살 소녀의 유치한 소원에서 출발했지만 그 전개는 지극히 성인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것. 소녀의 감성과 순수함을 계속 환기시키며 서른살 어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달콤하게 그렸다.‘데어데블’의 여전사 제니퍼 가너가 담백한 매력을 과시하고, 무엇보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을 남자 주인공 마이클 러팔로가 ‘별볼일 없어 보이는데 멋진’ 남성으로 그려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극중 러팔로는 외양은 평범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스위트’한 남성이다. ■우작 터키의 낯설은 풍경… 곳곳에 숨은 매력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우작(Uzac)’이 5일 서울 코엑스아트홀 등에서 뒤늦게 선보인다. ‘우작’이 극장을 쉽게 잡지 못한 까닭은 단지 흥행 가능성이 낮다는 것. 대다수 극장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작’은 배우들의 얼굴도 낯설고 형식도 생경하며 줄거리 전개도 지루해 보인다. 그러나 칸을 비롯한 많은 영화제의 심사위원들과 유수 언론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곳곳에 매력이 담겨 있다. 영화는 시골 마을의 들판에서 점으로 시작된 한 사람이 차츰 카메라로 가까이 걸어오는 롱테이크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스프는 일자리를 찾아 이스탄불에 있는 사촌 형에게 가는 길이다. 배경은 바뀌어 사촌형 마흐무트의 집. 사진작가인 그는 아내와 헤어진 뒤 정부와 가끔 정사를 즐기다 유스프가 찾아오자 사생활을 방해받는다. 처음에는 고향 안부도 궁금한 데다 며칠만 있으면 선원으로 취직할 것이라는 기대로 기꺼이 맞아주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일자리를 구할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자신만의 생활 공간에 그가 차지하는 자리가 점점 넓어지자 짜증을 내고 만다. 유스프도 형의 이중적인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유스프와 마흐무트의 갈등은 마흐무트가 회중시계를 둔 곳을 잃어버려 유스프를 의심하면서 폭발하고 만다. 등장인물도 단출하고 줄거리도 단순한 데다 대사마저 거의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법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의외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공동체 파괴와 구직난 등 터키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슬람 세계답지 않게 성적 관심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대목도 웃음을 자아낸다.

MOVIE/주홍글씨. 이프 온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주홍글씨 결코 벗어날 수 없어...어긋난사랑 그대가는... 트렁크 속에 갇혀 있는 남자. 총을 쏴봐도, 발길질을 해봐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안은 잔뜩 달궈져 땀은 비 오듯 흐르고, 같이 갇혀 있던 여자는 견뎌내기는 도저히 힘들 그런 고백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안있어 피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여자. 남자는 발버둥칠수록 피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단편 ‘호모비디오쿠스’와 첫 장편 ‘인터뷰’를 통해 주목받았던 변혁 감독이 두번째 장편 영화 ‘주홍글씨’(제작 엘제이필름)로 29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출연 배우들이나 감독이나 한결같이 얘기하듯 영화는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영화다. 인물들은 욕망을 탐닉하며 잘난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이면에는 비밀을 하나씩 담고 있고 결론도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은 하나씩 드러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몽롱할 뿐. 살인사건을 해결하려하는 남자도, 그의 아내와 정부도 그리고 의심스러운 용의자도 결국 향하고 있는 곳은 패배가 예정된 결말이다. 주변의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기훈(한석규). 사랑스러운 아내 수현(엄지원)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으며 열정적인 정부 가희(이은주)가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강력계 형사인 그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그만큼 성공도 눈에 잡힐 듯하다. 어느날, 그에게 살인사건 한 건이 배당된다. 살해당한 사람은 30대 남자. 살해당한 곳은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관이다. 시체는 무언가에 맞은 채 심하게 피를 흘린채로 발견됐고 신고자는 하얗게 얼굴이 질린 미망인 경희(성현아)다. 사건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의자를 체포한 기훈.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마침 아내 수현도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가희와 기훈의 관계를 눈치 챈 듯하다. 가희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기훈. 가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고 상황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항상 장난같이 시작되는 유혹을 왜 피하겠는가”라는 기훈의 욕망에서 “당신은 같이 사는 사람이 견딜수 없어지는 적 없나요?”라고 묻는 경희의 미움까지, 영화 속인물들은 하나같이 일탈을 보이고 있지만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후반부 이들 위에 내려 앉는 운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옷이 다 벗겨질 때쯤 반전은 충격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촘촘하게 잘 짜인 스릴러나 잘 다듬어진 드라마의 틀도 영화의 장점. 깔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매력적인 편집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지만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지켜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 보인다. 이기적이고 나쁘지만 인간적인 기훈의 모습을 보여준 한석규의 연기도 기대를 넘어서고 있으며 세 여배우, 특히 이은주는 지금까지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상영시간 117분. 18세 이상 관람가. ■이프 온리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이프 온리(if only)’. 이별을 피할 수 없는 연인의 애절한 사연이 잔을 채우고 넘쳐 바다를 이룬다. 사랑에 ‘올 인’하는 낭만적인 여자와 사랑과 일을 구분하는 남자. 여자는 늘 자신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불만이다. 남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의 태도가 안타깝다.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그러다 여자가 남자와 레스토랑에서 다투고 나가면서 차사고로 죽는다.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자를 눈 앞에서 잃은 남자. 만일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프 온리’는 기적처럼 ‘어제’를 다시 얻은 남자가 자신이 이미 경험한(혹은 경험했다고 생각한) 끔찍한 미래를 막기 위해 자신의 여자에게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애정공세를 펼치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이며 왠지 어제가 반복되는 느낌. 게다가 벌어지는 일들이 비슷하기는 하나, 순간순간 주인공의 의지가 개입하면서 그 결말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프 온리’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 죽음마저 두렵지 않은 사랑을 역설한다. 어차피 사람은, 우리는 죽는다. 그렇다면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 아닌가. 영화는 이렇듯 ‘착한’ 명제를 단 하루의 시간에 가둬놓고 전개하면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사랑하는 이와 하루의 시간밖에 같이 보낼 수 없다면? “그녀(혹은 그)를 가진 것을 감사하며 사시오. 계산없이 사랑하시오.”(극중 택시 운전사의 말)제니퍼 러브 휴잇은 딱 푸들 강아지 같고, 뉴 페이스인 폴 니콜스는 머시 맬로우 같다. 둘의 연기는 모자람이 없다. 연인들이라면 이들에게 십분 감정 이입을 할듯. 그래도 너무 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달콤 쌉싸름한’ 러브스토리 29일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존재감은 올 가을 극장가에서 홍수를 이루는 ‘이래도 안 울래?’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영화 사이에서 영화는 ‘쿨’ 하면서도 슬픈, 달콤쌉싸름한 뒷맛을 남겨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장애인인 여주인공의 캐릭터.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구미코는 장애인 캐릭터의 전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조제가 느끼는 ‘장애’는 좀더 현실적인 편. 장애의 고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아픔이 드러나는 방식은 당찬 모습을 통해서다. 구미코와 쓰네오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잔잔하게 절제가 돼 있지만 가슴을 시리게 하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처음의 설렘과 사랑을 나눌 때의 행복감, 이별의 아픔까지 카메라는 계속 차분함을 유지하지만 관객의 마음은 요동 칠 수밖에 없다. 대학생 쓰네오는 어느날 이른 아침 한 노파의 비명소리와 함께 언덕길에서 달려내려오는 유모차와 마주친다. 이 낡은 유모차에 들어 있던 사람은 어린애가 아닌 다큰 소녀 구미코. 다리가 불편한 소녀를 할머니가 산책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구미코의 유일한 취미는 여기저기서 주워온 책을 읽는 것. 특기는 한번 먹어본 사람이면 다시 먹고싶게 만드는 음식 솜씨다. 서로 친구가 된 뒤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쓰네오가 부담스러운 구미코의 통보로 두 사람은 잠시 헤어져 있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둘 사이의 사랑의 끈을 다시 이어준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두 남녀가 ‘물고기들’을 만나는 장면. 사랑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 국도변의 러브호텔을 찾은 이들의 주변에는 물고기떼들이 맴돌고 있다. 감독은 국내에도 개봉한 ‘환생’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 이누도 잇신. 영화는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돼 당시 관객 사이에 ‘요란스러운’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쓰마부키 사토시는 ‘워터 보이즈’에 출연했던 떠오르는 ‘꽃미남’ 스타. 여주인공 이케와키 치즈루는 이 영화로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배우다. 상영시간 117분. 15세 이상관람가.

MOVIE/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에어리언vs프레데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스크린 가득~회화를 물들인 소녀 머리에 파란색 두건을 한 채 비스듬히 뒤를 돌아보는 소녀. 옷차림으로 보면 부잣집 딸이라기보다 하인쪽에 가까운 듯. 입술은 번득거리며 홍조를 띠고 있고 유난히 커서 뭔가에 놀란 것처럼 보이는 눈은 무언가에 대한 갈망과 슬픔을 함께 비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메르 반 델흐트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화가의 일생만큼이나 베일에 싸여 있다. 일생동안 30여편의 작품만을 남긴 베르메르의 삶은 출생이나 가족관계 정도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거의없다.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그림 속의 소녀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추측만 있을 뿐이다. 3일 개봉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원제 Girl with Pearl Earring)는 배경이 알려지지 않은 이 유명한 그림에서 시작된다. 한 장의 그림에서 확대돼 나오는 시대상이나 로맨스, 질투 등의 이야기 구조가 매력적인 것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원작 소설(국내에는 ‘진주 귀걸이 소녀’로 출판)의 덕이 커보인다. 하지만 파랑과 녹색, 빨강과 노란색으로 대비되는 색감이나 밝음과 어둠의 조화는 장면장면 명화(名畵)를 감상하는 듯 관객의 눈을 매혹하며, 그 시대를 살다 나온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실감있게 묘사됐다. 텔레비전 드라마 연출자 출신 피터 웨버 감독이 연출했으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스칼렛 요한슨과 ‘러브 액츄얼리’로 친숙한 콜린 퍼스가 소녀와 화가로 각각 출연한다. 가난한 집안의 소녀 그리트는 화가 베르메르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이것저것 낯설지만 터번으로 머리를 감싼 단정한 모습으로 묵묵히 집안일을 하는 그리트. 신경질적인 아내와 돈밖에 모르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베르메르의 집안사정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 작업실에서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고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는 그리트. 베르메르에게도 그녀는 영감을 주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물감으로 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며 서로에게 끌리는 두 사람.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신분의 차이때문에 이들은 서로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다. 상영시간 95분. 15세 이상관람가. ■에어리언 vs 프레데터 외계괴물 ‘맞장’ 흥미진진 에일리언과 프레데터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이런 궁금증은 ‘청룽(成龍)과 리샤우룽(李小龍) 중 누가 더 쎌까?’ 또는 ‘람보와 코만도 중 싸움을 잘하는 쪽은 누구?’ 같은 사춘기 이전 수준의 의문처럼 유치한 것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나 그렇지 사실 청룽과 리샤우룽이 굳이 만나 혈투를 벌일 이유도 없고, 국적이 같은 람보와 코만도가 총알을 튀기며 싸울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이 눈 앞의 화면에 펼쳐진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두 사람이 만날 개연성이 없으면 어떠랴. 펼쳐지는 대결이 신날 뿐. 그리고 슬슬 궁금해진다. 누가 이길까? 3일 개봉한 영화 ‘에이리언 VS. 프레데터’(Alien Vs. Predator)는 다소 황당한 듯하지만 두 외계인 사이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둘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아이디어는 갓 성인이 된 프레데터들이 지구를 방문해 전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에일리언 사냥을 벌인다는 것. 지구는 프레데터의 서바이벌 게임장이고 인간은 프레데터가 에일리언의 번식을 위해 이용하는 숙주다. 2004년 10월. 한 기업의 광물탐사 위성이 남극 빙하에서 이상 고온을 감지한다. 이 기업의 이름은 웨이랜드. 회장인 찰스 웨이랜드(랜스 헨릭슨)는 이 곳에 다양한 문명의 양식들이 섞인 피라미드 유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환경운동가이자 모험가인 렉스(새넌 래이든)와 고고학자 세바스찬(라울 보바), 화학자 밀러(이완 브렘너)등을 모아 남극으로 간다. 남극에 도착한 일행. 발굴을 하려 하지만 누군가가 이미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열어놨다. 하지만 이상해하는 것도 잠시, 얼마 안 있어 이들에게 에일리언의 무차별공격이 시작되고 에일리언들은 인간을 숙주삼아 기하급수로 번식한다. 생존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쫓기던 일행은 우연히 들어간 재단에서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한다. 100년을 주기로 외계의 프레데터들이 에일리언 사냥을 계속 해왔다는 것. 이제 막 성인이 되는 프레데터들은 용맹성을 시험하러 지구에 왔고 인간들은 이들의 사냥감이 될 에일리언들의 번식을 위해 숙주로 던져졌다. 뒤이어 피라미드에 도착하는 프레데터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은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두 우주 종족 사이의 싸움을 내세우고 있지만 영화는 이들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한 무리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재난 영화의 틀을 갖고 있다. “단독행동을 금한다”, “영웅심을 버려라” 등 일행이 정한 행동원칙은 재난영화의 캐릭터들에게는 금기로 등장하는 단골 메뉴. 하지만 인물의 개성이 부족한 만큼 이야기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보다 영화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두 외계인의 싸움이 본격화하는 후반부에 있다. 가급적 CG를 빼고 실제 모형으로 촬영한 격투 장면은 외계 괴물 사이의 싸움이라는 스펙타클을 보려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기대는 채워주고도 남을 만하다. 감독은 ‘모탈컴뱃’, ‘레지던트 이블’의 폴 W.S.앤더슨. 상영시간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피의 학살사건, 칸 진출작 ‘카란디루’ 10일 개봉하는 ‘카란디루’는 2002년까지 브라질에서 실제로 있었던 카란디루 감옥의 이야기를 다룬다. 1992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폭동 사건. 진압과정에서 111명의 죄수가 학살됐고 이후 당시 진압을 지휘했던 경찰간부는 징역 632년을 선고받았다. 상영시간 145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