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주홍글씨. 이프 온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주홍글씨

결코 벗어날 수 없어...어긋난사랑 그대가는...

트렁크 속에 갇혀 있는 남자. 총을 쏴봐도, 발길질을 해봐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안은 잔뜩 달궈져 땀은 비 오듯 흐르고, 같이 갇혀 있던 여자는 견뎌내기는 도저히 힘들 그런 고백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안있어 피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여자. 남자는 발버둥칠수록 피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단편 ‘호모비디오쿠스’와 첫 장편 ‘인터뷰’를 통해 주목받았던 변혁 감독이 두번째 장편 영화 ‘주홍글씨’(제작 엘제이필름)로 29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출연 배우들이나 감독이나 한결같이 얘기하듯 영화는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영화다. 인물들은 욕망을 탐닉하며 잘난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이면에는 비밀을 하나씩 담고 있고 결론도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은 하나씩 드러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몽롱할 뿐. 살인사건을 해결하려하는 남자도, 그의 아내와 정부도 그리고 의심스러운 용의자도 결국 향하고 있는 곳은 패배가 예정된 결말이다.

주변의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기훈(한석규). 사랑스러운 아내 수현(엄지원)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으며 열정적인 정부 가희(이은주)가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강력계 형사인 그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그만큼 성공도 눈에 잡힐 듯하다.

어느날, 그에게 살인사건 한 건이 배당된다. 살해당한 사람은 30대 남자. 살해당한 곳은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관이다. 시체는 무언가에 맞은 채 심하게 피를 흘린채로 발견됐고 신고자는 하얗게 얼굴이 질린 미망인 경희(성현아)다.

사건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의자를 체포한 기훈.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마침 아내 수현도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가희와 기훈의 관계를 눈치 챈 듯하다.

가희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기훈. 가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그녀에게서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고 상황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기만 한다.

“항상 장난같이 시작되는 유혹을 왜 피하겠는가”라는 기훈의 욕망에서 “당신은 같이 사는 사람이 견딜수 없어지는 적 없나요?”라고 묻는 경희의 미움까지, 영화 속인물들은 하나같이 일탈을 보이고 있지만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후반부 이들 위에 내려 앉는 운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옷이 다 벗겨질 때쯤 반전은 충격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촘촘하게 잘 짜인 스릴러나 잘 다듬어진 드라마의 틀도 영화의 장점. 깔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매력적인 편집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지만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지켜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 보인다.

이기적이고 나쁘지만 인간적인 기훈의 모습을 보여준 한석규의 연기도 기대를 넘어서고 있으며 세 여배우, 특히 이은주는 지금까지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상영시간 117분. 18세 이상 관람가.

■이프 온리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이프 온리(if only)’. 이별을 피할 수 없는 연인의 애절한 사연이 잔을 채우고 넘쳐 바다를 이룬다.

사랑에 ‘올 인’하는 낭만적인 여자와 사랑과 일을 구분하는 남자. 여자는 늘 자신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불만이다. 남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의 태도가 안타깝다.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그러다 여자가 남자와 레스토랑에서 다투고 나가면서 차사고로 죽는다.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자를 눈 앞에서 잃은 남자. 만일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프 온리’는 기적처럼 ‘어제’를 다시 얻은 남자가 자신이 이미 경험한(혹은 경험했다고 생각한) 끔찍한 미래를 막기 위해 자신의 여자에게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애정공세를 펼치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이며 왠지 어제가 반복되는 느낌. 게다가 벌어지는 일들이 비슷하기는 하나, 순간순간 주인공의 의지가 개입하면서 그 결말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프 온리’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 죽음마저 두렵지 않은 사랑을 역설한다. 어차피 사람은, 우리는 죽는다. 그렇다면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 아닌가. 영화는 이렇듯 ‘착한’ 명제를 단 하루의 시간에 가둬놓고 전개하면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사랑하는 이와 하루의 시간밖에 같이 보낼 수 없다면? “그녀(혹은 그)를 가진 것을 감사하며 사시오. 계산없이 사랑하시오.”(극중 택시 운전사의 말)제니퍼 러브 휴잇은 딱 푸들 강아지 같고, 뉴 페이스인 폴 니콜스는 머시 맬로우 같다. 둘의 연기는 모자람이 없다. 연인들이라면 이들에게 십분 감정 이입을 할듯. 그래도 너무 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달콤 쌉싸름한’ 러브스토리

29일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존재감은 올 가을 극장가에서 홍수를 이루는 ‘이래도 안 울래?’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영화 사이에서 영화는 ‘쿨’ 하면서도 슬픈, 달콤쌉싸름한 뒷맛을 남겨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장애인인 여주인공의 캐릭터.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구미코는 장애인 캐릭터의 전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조제가 느끼는 ‘장애’는 좀더 현실적인 편. 장애의 고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아픔이 드러나는 방식은 당찬 모습을 통해서다.

구미코와 쓰네오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잔잔하게 절제가 돼 있지만 가슴을 시리게 하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처음의 설렘과 사랑을 나눌 때의 행복감, 이별의 아픔까지 카메라는 계속 차분함을 유지하지만 관객의 마음은 요동 칠 수밖에 없다.

대학생 쓰네오는 어느날 이른 아침 한 노파의 비명소리와 함께 언덕길에서 달려내려오는 유모차와 마주친다. 이 낡은 유모차에 들어 있던 사람은 어린애가 아닌 다큰 소녀 구미코. 다리가 불편한 소녀를 할머니가 산책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구미코의 유일한 취미는 여기저기서 주워온 책을 읽는 것. 특기는 한번 먹어본 사람이면 다시 먹고싶게 만드는 음식 솜씨다. 서로 친구가 된 뒤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쓰네오가 부담스러운 구미코의 통보로 두 사람은 잠시 헤어져 있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둘 사이의 사랑의 끈을 다시 이어준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두 남녀가 ‘물고기들’을 만나는 장면. 사랑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 국도변의 러브호텔을 찾은 이들의 주변에는 물고기떼들이 맴돌고 있다. 감독은 국내에도 개봉한 ‘환생’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 이누도 잇신. 영화는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돼 당시 관객 사이에 ‘요란스러운’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쓰마부키 사토시는 ‘워터 보이즈’에 출연했던 떠오르는 ‘꽃미남’ 스타. 여주인공 이케와키 치즈루는 이 영화로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배우다. 상영시간 117분. 15세 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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