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목적 뻔뻔男과 앙큼女 발칙한 사랑 고등학교 교사 유림(박해일 분)에게는 6년 사귄 교사 애인이 있다. 그는 적당히 사회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앞에 교생 홍(강혜정 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자식 같고 부모 같은’ 애인과 결혼해서 크게 모난 것 없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홍의 출현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홍으로 인해, 그러니까 여자 때문에 멀쩡한 남자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불륜 혹은 치정 스토리에서 어김없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시선이다. 폭력적이고 남성 우위적인 시선. 이런 사건에서 여자는 대부분 ‘스토커’로 둔갑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조금 더 들여다보자. 홍에게는 번듯한 의사 애인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유림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럴 때 진실과 사실은 평행선을 달린다. 제목이 흥미롭다. 순진함을 가장한 발칙함이다. ‘연애의 목적’이라니. 사랑의 순수성을 처음부터 무시하는 뉘앙스다. 과연 연애의 목적은 무엇일까. 결혼? 섹스? 위안? 하긴 그렇다. 목적도 없이 연애하란 말인가. ‘사랑’ 그 자체도 ‘목적’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설득력 있게 드라마를 끌고 나간다. 누구에게나 빈틈은 있다. 정신나간 것 같은 유림의 저돌적인 애정공세가 홍에게 먹히는 까닭은 홍에게 치유하기 힘든 사랑의 상처가 있기 때문. 홍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실수로 모두 삭제해 버리는 유림의 기막힌 행동도 어쩌면 홍에게는 아픈 기억을 모두 지워주는 ‘운명적’ 사랑일 수 있다. “같이 자자”, “키스 하자”는 유림의 유아적인 추근덕거림 역시 현재의 애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다. 홍의 의사 애인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거짓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홍이 유림의 행동에 ‘학을 떼면서도’ 밀고 들어오는 그의 입술과 응석을 때로는 받아주는 것은 그러한심리. 영화가 그저 그런 청춘 연애극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홍의 가슴에 뚫린 구멍과 그것을 꿰차는 유림의 행동은 명백히 ‘18세 관람가’다. 소녀적 환상에 호소한 한가한 연애담이 아니라 진한 성인 버전인 것이다. 그 고민도, 그 감성도, 그 섹스도 말이다. 이 지점에서 두 배우의 연기는 분명 눈길을 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영화에 올인한 노력이 스크린에 그대로 묻어난다. 기존의 해맑은 이미지에 보기 좋게 ‘배반을 때린’ 박해일의 변신도 그러하고, 강혜정의 아낌없는 연기도 또래 연기자들과 차별을 이룬다. 특히 칭얼대는 유림의 행동은 사랑의 욕망이 요의를 느끼는데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자의 절박하고 미칠 것 같은 심정과 다를 바 없음을 전한다. 10일 개봉. ■간큰가족 통일이여 내게오라! 단도직입적으로 김수로가 웃기고 신구가 울린다. 웃고 울리는 극단적인 감정이 일련의 슬랩스틱 코미디 속에 버무려져 있다. 그런 영화가 범작들에 비해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소재 덕분이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이기에 가능한 ‘통일 자작극’을 휴먼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죽기 전에 북한에 있는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것이 소원인 실향민 김노인(신구 분)이 어느날 몸져눕는다. 설상가상으로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데, 그와 동시에 그에게 50억원의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사채업자에게 기는 큰 아들(감우성 분)로서는 희소식.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야만 그 재산이 자식들에게 상속된다는 점이다. ‘간큰가족’의 자작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50억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에 통일이 된 것처럼 꾸며야하는 것. 큰 아들은 3류 에로비디오감독인 동생(김수로 분)에게 가짜 통일 뉴스를 만들게 하고 자작극을 시작한다. 그러나 다분히 한시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이 자작극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병상에서 오늘내일 하던 아버지가 가짜 통일 뉴스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명남 감독의 1997년 당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우리의 소원은’에서 출발한다. 항간에 떠도는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2003년)과의 표절시비를 일거에 잠재우는 증거. 그러나 둘 사이의 표절 시비는 애초부터 무의미하다. 통일된 독일을 무대로 여전히 분단 상황을 꾸미는 ‘굿바이 레닌’이나 그 반대를 그린 ‘간큰가족’의 이야기는 한민족,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 특수 상황 속 보편적 상상인 것이다. 통일뉴스, 남북 탁구대회, 평양교예단 공연 등 통일된 조국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김 노인의 바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족들은 몸을 던져가며 진땀을 뺀다. 다행히 이들의 가감없는 코미디는 식상함 보다는 정겨움을 안겨준다. 변장한 가족들끼리의 가짜 탁구시합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공도 없이 탁구 대회를 벌이는 광경은 그중 빛나는 아이디어. 김 노인의 시력이 나쁜 것에 착안, “공이 너무 빨라 안 보이는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사는 소재의 신선함을 뒷받침해 나간다. 9일 개봉, 12세 관람가.
■안녕, 형아 “형, 내가 지켜줄게”라는 카피의 생명보험 CF에서 설경구는 병상에 있는 아픈 형에게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빡빡머리 형아 내가 구할테야! 영화 ‘안녕, 형아’는 바로 그 CF처럼 아픈 형을 둔 동생의 이야기다. 다만 영화속 형제의 나이가 CF 주인공들보다 스무살 가량 어릴 뿐. 영화 속 9살 꼬마는 12살형에게 ‘제주도’ 대신 ‘유희왕 카드’를 선물한다. 큰 마음을 먹고서. 아픈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만큼 찢어지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픈 아이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부모의 시선은 새로울 것이 없다. 보편적이지만 새삼스럽지 않은 것. 이에 반해 ‘안녕, 형아’가 선택한 철부지 동생의 시선은 독특하다. 아픈 형으로 인해 침울해지는 영화의 분위기를 상쇄하는 동시에 제약없는 동심의 세계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뇌종양에 걸린 장한별(서대한 분). 그의 모습은 예상 가능한 수순대로 진행된다. 심하게 아픈 증세를 보이다 결국 삭발을 하고, 소아암병동에서 위험한 고비를 넘나든다. 맞벌이 부모는 아들의 병간호에 허리가 휘고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영화는 최고의 골목대장인 9살 한이(박지빈 분)가 아픈 형 한별과 그로인한 가족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렌즈를 맞췄다. 말썽부리다 그만 바지에 똥을 싸버린 한이를 씻겨주고 그의 온갖 장난을 받아주던 한별. 한이는 그렇게 한없이 착한 형이 아파서 입원하자 심심해 한다. 질투와 심술도 부린다. 부모의 관심이 온통 형에게 쏠리는데다, 형은 병원에서 사귄 시골아이 욱이에게 잘해주기 때문. 한이는 자기 분에 못 이겨 한별을 때리기도 하고 밀치기도 한다. 이러한 한이의 행동은 영화가 단순한 최루성 드라마로 흐르는 것을 막는다. 영화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아홉살 꼬마의 움직임을 어드밴처 무비로 표현하는 영리함을 보여줬다. 자신만을 알던 꼬마가 누군가를 배려하고 돕겠다는 마음을 먹는 과정이 꽤 역동적으로 표현된 것. 특히 울창한 숲속을 뛰어다니고 ‘타잔 아저씨’를 만나 ‘날아다니는’ 모습은 우울해지려는 관객의 기분을 밝게 만든다. 마치 ‘E.T.’를 보는 느낌. 이기적인 한이에게 형의 병치레는 ‘외계’를 만나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다행히 그 ‘외계’는 한이에게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영리하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9살 꼬마의 한계는 분명한데 스크린 속 한이의 모습은 자로 잰 듯 빈틈이 없다. 울고 싶은데, 힘든데 계속 ‘씩씩하자’고 파이팅을 외치는 것 같다. 27일 개봉, 전체관람가./연합 ■링2 저주의 원혼 깃든 사마라와 ‘맞장’ 지금까지 미국에서 개봉한 공포영화 리메이크작 흥행순위를 살펴보면 베스트 5 내에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무려 3편이나 들어있다. ‘링’(2002), ‘링2’(2005)와 ‘그루지’2004)가 그것. 각각 1위, 5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공포영화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할리우드판 ‘링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나오미 왓츠와 데이비드 도프만이 모자지간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감독은 바뀌었다. 전편은 미국의 고어 버빈스키가 연출했지만 이번 속편은 원작의 감독 나카타 히데오가 맡았다. ‘그루지’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과 마찬가지로 나카타 히데오 역시 할리우드 시스템에 일본 공포영화의 감각을 접목한 것.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할리우드판 ‘링2’에서도 특유의 기분 나쁜 스산함을 유지했다. 일본판과 마찬가지로 링의 원혼인 사마라의 정체가 밝혀진다. 영화는 들어가는 문에서부터 긴장시킨다. 어두운 밤 바다의 검고 푸른 물의 출렁거림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중간중간 검은 화면을 내보내는 것. 그 검은 화면에서 관객은 순간 숨을 멎었다가 다시 일렁이는 바닷물이 화면을 채우면 숨을 내뱉게 된다. 효과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인상적인 도입부다. 레이첼은 사마라의 저주를 피해 에이단을 데리고 소도시로 이사한다. 그러나 사마라는 그곳까지 이들 모자를 쫓아온다. 에이단의 체온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익사직전의 사람처럼 34.1℃로 떨어지고 사마라는 이제 공공연히 이들 앞에 나타난다. 결국 레이첼은 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사마라 퇴치에 나서고, 사마라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친다. 6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 ■PM 11:14 이 영화의 키워드는 우연과 소동이다. 모든 일은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결과는 엄청난 소동으로 이어진다. 한가지 필연이 있다면 성급함이다. 이 영화의 교훈이라면 ‘성급함은 화를 자초한다’는 것. 또 하나. ‘밤길운전 조심하자’. 한날 한시라도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억가지다. 영화를 관통하는 ‘밤 11시 14분’ 역시 등장인물의 머리 수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쪼개진다. 이 영화의 오락성은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빛을 발한다. 덕분에 러닝타임 85분의 이 짧은 스릴러는 경쾌한 몸집을 유지한다. 영화는 ‘일단 뛰어’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처럼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극과 유사한 모양새다. 등장인물 모두가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시작은 돈이고, 주인공들이 겪는 소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만취한 채 운전하던 잭은 그만 젊은 남성을 치고, 여자친구의 임신중절 수술비를 구해야하는 더피는 편의점에서 권총 강도를 모의한다. 집 근처에서 처참한 시체를 발견한 프랭크는 시체가 딸의 남자친구임을 알고는 범죄를 은폐하려 하고, 폭주족 ‘양아치’ 셋은 도로 위에서 온갖 ‘미친 짓’을 벌이다가 그만 한 여자를 치어버린다. 이 모든 사건이 한 마을에서 벌어지고 그 시각은 밤 11시 14분이다. 영화는 이들 사건을 긴박하게 보여주며 초반 40분을 확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다. 6월 2일 개봉, 15세 관람가.
■‘스타워즈:에피소드Ⅲ’ ‘별들의 전쟁’ 28년 대장정 끝내다 ‘스타워즈:에피소드Ⅲ’는 경쟁의 긍정적인 효과를 여실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만일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없었더라도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처럼 완벽한 작품을 선보였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상상력과 CG의 왕이지만 경쟁 상대가 없었다면 스스로의 목표치는 지금보다 다소 낮았을지도 모른다. 위용을 드러낸 ‘스타워즈’ 시리즈의 완결판 ‘에피소드Ⅲ’는 예상대로 대단했다. ‘에피소드Ⅳ·Ⅴ·Ⅵ’이 먼저 나온, 결말을 미리 아는 상태에서 보는 영화는 태생부터 벌점을 먹고 들어가는 경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주 공간을 중심으로 상상력과 CG의 향연을 펼치는 스타워즈만의 매력 역시 그간 숱한 ‘아류작’들을 통해 희석된 상태. 그러나 돈과 집념은 많은 부분을 해결했다. 1977년에 선보인 ‘에피소드Ⅵ’ 이후 무려 28년만에 등장하는 ‘에피소드Ⅲ’는 28년의 세월이 주는 진보와 성장의 긍정적인 자양분만을 듬뿍 빨아들인 모습이었다. 마치 고관대작 가계의 우성인자만을 물려받은 모습. 2002년 ‘에피소드Ⅱ’에 이어 선보인 100% 디지털 화면은 넋을 쏙 빼놓을만큼 매끈하고 매력적이다. 조지 루카스는 조(兆) 단위의 재산을 굴리는 ‘그릇’ 답게 CG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여기에는 2천300개에 달하는 특수효과가 등장한다. 28년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린 ‘스타워즈’의 드라마는 이번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결말이 나와 있음에도 ‘에피소드Ⅲ’가 흥미진진할 수 있는 것은 ‘스타워즈’ 시리즈 중 가장 궁금한 대목에 대한 비밀을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아이콘은 역시 분노와 욕망이다. 덧붙여 사랑까지. 파드메가 임신을 알리자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던 아나킨이 시스에 굴복하는 것도 사랑 때문이고, 자신의 스승인 오비완을 죽이려 덤비는 것 역시눈 먼 욕망 때문이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나킨이 수많은 감정 중 가장 먼저 분노를 키우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현란한 화면 중에서도 현기증을 일으키는 전투기 조종신과 화산 용암이 분출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오비완과 아나킨의 결투신은 압권이다. 또한 화면 곳곳에 숨어있는 각종 캐릭터 디자인의 향연도 쏠쏠한 눈요기. 사랑을 잃는 두려움은 악마와도 손을 잡게하고, 1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혈육의 정을 나눈 동료도 몰라보게 한다. ‘에피소드Ⅲ’가 ‘스타워즈’ 시리즈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정점에 이른 특수효과와 함께 단순 명료하면서도 보편적인 메시지가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26일 개봉, 전체관람가. ■극장전 뒤섞인 ‘영화와 현실’ 선배의 영화를 보고 나온 극장 앞, 영화 속 여주인공과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의 하루 이야기를 담은 영화. 홍상수 특유의 현실과 밀착된 대사는 영화 ‘극장전’에서도 여전한 특징이다. 영화는 ‘영화 속 영화’와 그 영화의 영향 속에서 현실의 하루를 지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두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올해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된 ‘극장전’이 27일 개봉된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년) 이후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란(그것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 영화는 감독 자신의 영화처럼 현실에 ‘처절하게’ 가까운, 그래서 ‘귀여운’(영화 속의 표현대로)영화고, 이 영화를 본 영화 속의 남자는 자신의 현실과 영화 속 이야기를 착각한다. 이쯤 되니 주인공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냥 실제였고 어떤 부분이 영화를 의식한 행동일까.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은 수능시험을 막 마친 상원(이기우)이다. 형에게 용돈을 받아 주머니가 두둑한 그날, 우연히 안경점에 일하고 있는 첫사랑 영실(엄지원)을 만난다. ‘담임이 미친놈이라’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영실. 어색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술자리에 이어 여관에까지 동행하지만 이날따라 상원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안되는데 왜 자꾸 하려고 그래”. 영실의 이 말에 상원의 입에서는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뚱맞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 영화를 본 동수(김상경). 영화는 암투병 중인 선배 형이 감독했던 단편이다. 마침 극장에서는 그 선배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선 극장 앞, 뜻밖에 영화 속 여주인공인 영실이 있다.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커피숍을 들른 그는 저녁에 그 선배의 후원모임이 열린다는 연락을 받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다시 무작정 걷게 된 거리에서 동수는 영화 속의 안경점에서 다시 영실과 마주친다.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영실에게 동수는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네고, 영실은 그런대로 성의있게 그의 말상대를 해준다. 영화는 감독의 작품들 중 가장 말끔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하다. 영화와 현실 속의 두 주인공은 누가 모방자며 누가 피모방자인지, 어떤 쪽이 영화고 어떤 쪽이 현실인지를 오가다가 결국 ‘둘 다’로 수렴된다. ‘외계인의 지구인 구경하기’ 같은 감독의 시선은 한결 유쾌해진 반면 덜 냉소적이 됐다. 이 부분에서는 ‘생활의 발견’ 이후 다시 홍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김상경의 덕이 크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역시 그의 영화에는 김상경이 제일 좋았다는 기억을 새삼 떠올릴 수밖에 없다.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89분.
■킨제이보고서 니들이 性을 알아? “배변을 원활히 하고 성경을 읽을 것. 고환을 찬 물에 담그고 앉을 것. 그리고 모성애를 되새길 것.” ‘멀고 먼 옛날’, 몽정을 막는 요령으로 이런 것들이 권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막아야 되는 이유는? 정액 1g을 잃는 게 혈액의 40g을 흘리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피해를 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지는 오해를 낳고 오해가 만든 관습은 사람들을 억압한다. 지금은 터무니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잘못된 지식은 한때 상식이었다. 적어도 이 ‘섹스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에는 성(性)에 관해서는 말이다. 킨제이 보고서로 ‘성(性) 혁명’을 일으킨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킨제이 보고서’(원제 Kinsey)가 13일 개봉한다. 영화는 그가 장애물을 뛰어넘고 결국 보고서를 내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지만, 결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청교도적’이라는 시대의 장애물에 있다. 영화 속 킨제이 박사의 말처럼 만약 미국에 온 사람들이 청교도인들이 아니라 건달과 난봉꾼이었으면 어땠을까? 순결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을 겁주고 겁먹은 과학자들은 ‘정액은 피와 같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가 킨제이 박사(리암 니슨)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 있다. 그의 아버지는 선생님이며 목사님이었던 보수주의자. 엄격한 신앙심을 가졌던 아버지는 그가 공학자가 되기를 바랬지만 박사의 관심은 기계보다는 말벌 같은 생물에 있었다. 결국 생물학과에 진학해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제자이며 지혜로운 여자 맥밀란(로라 리니)을 만나 결혼한다. 이미 스스로의 성적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한 바 있던 그가 본격적인 섹스 연구가가 되기 시작한 것은 교내에서 결혼강좌를 맡으면서부터다. 성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은 생물학자인 그에게는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미신이었고 이에 대한 학술적인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섹스 리서치를 ‘감행’하기 시작한다. 주위의 우려 속에 연구는 진행되고, 결국 ‘킨제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미국 사회는 충격과 혼란 속에 빠져든다. ‘플레이 보이’를 앞지르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결국 오해를 깨는 데 성공하지만 박사는 원치 않은 논쟁에 휩싸인다. 결국 연구비지원도 끊기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킨제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실을 왜곡했으며 이혼율 및 성병의 증가와 포르노물 범람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비판론자들과 성적인 자유에 이바지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옹호론자들 사이에서 엇갈린다. 이 영화가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했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킨제이 박사처럼 ‘성’(性)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대해 당찬 태도를 견지한다. 인물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성에 대한 지식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충분히 솔직한 편. 여기에 리암 니슨이나 로라 리니 같은 ‘좋은’ 연기자들의 열연은 상황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인물의 도전과 역경, 극복이라는 전기영화의 흔한 줄거리가 그렇게 흡인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흥미로운 출발에 비해 갈수록 줄거리의 힘이 떨어져가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갓 앤 몬스터’와 ‘시카고’의 각본을 썼던 빌 콘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18분. ■우리 사랑일까요? 사랑이 별건가 지금을 즐겨라! 애쉬튼 커처(27)는 이래저래 연상의 여인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모양이다. 현실에서는 16살 연상의 데미 무어와 결혼설을 낳고 있는 그가 영화에서는 6살 연상의 아만다 피트와 닭살 돋는 연애를 펼쳤다. ‘우리, 사랑일까요?(원제:A Lot Like Love)’는 애쉬튼 커처를 내세운 맞춤 상품이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한창 물이 오른 잘 생긴 스타의 매력을 한껏 부각시킨 로맨틱 드라마인 것. 상대적으로 아만다 피트의 얼굴에서 ‘나이’가 느껴져 균형이 좀 깨지긴 하지만 영화는 확실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 상품으로서 그다지 손색이 없다. 더도 덜도 아닌 ‘선남선녀의 예쁘고 화사한 연애’를 그린 이 영화의 목적은 그것을 보며 유쾌해지고 싶은 관객을 모으는 것이다. ‘우리, 사랑일까요?’는 7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 남녀의 이야기다. 대학을 갓 졸업한 패기 넘치는 젊은이 올리버는 치밀하게 사업구상을 하며 6년 후를 기약한다. 그때는 반드시 성공한 사람이 돼 있겠다는 것. 반면 실연했다는 이유로 처음 본 남자와 비행기 화장실에서 관계를 맺을만큼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아가씨 에밀리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두 사람은 비행기 화장실에서의 관계 이후 하루 동안 짧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아듀. 3년 후 다시 만난 이들은 또다시 불같은 감정에 휩싸이지만 역시 하루뿐, 다시 2년간 소식도 모르고 지낸다. 그 사이 둘은 각기 다른 상대와 사랑을 했고, 헤어진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매번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은 ‘세렌디피티’ ‘해리가 샐리가 만났을 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뻔하고, 공식 그대로다. 그러나 주인공이 다르다. 이 점은 주인공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로맨틱 드라마에서는 큰 차별점이 된다. 또 배경과 에피소드가 다르지 않은가. 영화는 커처와 피트의 사랑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리며 귀에 익은 음악을 적절하게 들려준다. 절로 따라하거나 장단을 맞추고 싶을만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반면 인연은 돌고 돌아도 결국 만나게 된다. 절망에 빠진 커처에게 그의 농아 형이 “그게 인생이야. 지금 이대로를 즐겨”라고 수화로 애정어리게 충고하는 대목은 이 뻔한 영화에서 그래도 콧등을 찡하게 만든다. 또 국립공원에서의 ‘달밤 퍼포먼스’는 꽤 신선하다.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에쥬케이터 세상불만 가득한 청춘들의 대반란 일단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보다는 한결 산뜻하고 현실적이다. 똑같이 거침 없는 젊음, 피 끓는 혈기를 그렸지만 ‘에쥬케이터’와 ‘몽상가들’의 요리법은 대단히 다르다. 취향 나름이겠지만 ‘에쥬케이터’ 쪽이 좀 더 먹기 편하다. 제목 ‘에쥬케이터(edukator)’는 에듀케이터(educator)의 독일식 발음. ‘무소불위의 젊음’ 피터(스티페 에르켁 분)와 얀(다니엘 브륄 분)은 스스로를 부르주아의 ‘교육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밤마다 부자들의 집에 무단침입, 마치 설치 미술을 하듯 가구와 물건들을 재배치 해놓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도둑질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해괴망측한 행동을 통해 부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돈이 너무 많다’는 죄명을 씌우는 이들은 침입한 집에 ‘풍요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 에쥬케이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는 이 메시지를 비교적 충실하게, 또 현실적으로 다뤘다. 피터와 얀, 그리고 피터의 여자친구 율(율리야 옌치)은 자유주의와 청년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부의 편중에 따른 사회 부조리를 깨기 위해 청년들은 뭐라도 해야한다는 것. 그게 미약할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하이덴베르그(버그하르트 클로즈너)의 존재다. 30여년 전에는68세대의 선봉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대저택에서 명차를 몇대씩 굴리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하이덴베르그를 내세워 이상과 현실, 세월에 따른 변화를 부담없이 그렸다. 일이 꼬이는 바람에 하이덴베르그를 납치하게 된 주인공들은 뚜렷한 대책도 없이 하이덴베르그와 기이한 동거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하이덴베르그와 청년 셋은 조금씩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 사이에 놓인 벽은 유명무실해진다. 하이덴베르그는 청년들의 모습에 자신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청년들은 순수한 이상을 위협하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에 흔들린다. 과거에는 혁명의 핵이었으나 지금은 두말없이 보수당에게 한표를 던지는 하이덴베르그의 모습은 어쩌면 이들 청년의 미래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는 모른다. 설사 안다 해도 지금의 청년은 청년이어야 한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 9월 개봉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두번째 인권영화인 ‘다섯개의 시선’과 첫번째 인권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가 9월께 극장에서 개봉한다. 같은날 선보일지 1주 간격으로 개봉할지는 미정이지만 이들 두 영화는 소재가 인권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각 감독의 다양한 개성을 담은 단편영화들이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다섯개의 시선’에는 ‘미소’의 박경희, ‘주먹이 운다’의 류승범, ‘해피엔드’의 정지우, ‘아는 여자’의 장진, ‘송환’의 김동원 등 다섯명이 참여했으며 ‘별별이야기’에는 이성강, 박재동, 이애림, 유진희, 권오성과 5인 프로젝트팀(김준 외) 등 여섯팀이 연출했다. ■‘가문의 영광2’ 주연에 김원희-신현준 김원희와 신현준이 영화 ‘가문의 영광2’의 남녀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가문의 영광’ 1편에 이어 속편도 제작하는 태원엔터테인먼트는 “김원희, 신현준, 김수미의 캐스팅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2002년 9월 개봉, 전국 500만 관객을 모은 ‘가문의 영광’은 엘리트 사위를 들이려는 조폭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 김정은과 정준호가 주연을 맡았다. ‘가문의 영광2’는 전편의 구조를 살짝 비틀어 엘리트 며느리를 들이려는 여수조폭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원희가 검사로 출연하며, 신현준이 조폭 집안의 맏형 역이다. 김수미는 신현준의 어머니를 연기한다. ■프랑스 ‘자크 드미’ 감독 특별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 극장)는 11~19일 프랑스의 자크 드미(Jacques Demy·1931~1990) 감독의 특별전을 마련한다. ‘쉘부르의 우산’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드미 감독은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중 가장 로맨틱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초기작 ‘롤라’와 ‘천사들의 해안’에서부터 ‘추억의 마르세이유’, ‘쉘브르의 우산’ 등 대표작 일곱편이 상영되며 ‘자크 드미의 세계’를 비롯해 동료 아네스 바르다 감독이 드미 감독에 대해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 편이 선보인다.
■WHITE NOISE 우리가 모르는 게 여기 또 한가지 있다. 바로 죽는다는 것.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죽은 사람이 되돌아 올 수 없는지, 그리고 죽은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는 짐작을 하거나 믿을 수는 있어도 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백색 공포’ 속으로… 8일 개봉한 영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의 남자 주인공 조나단(마이클 키튼)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아내 안나(찬드라 웨스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백합과 초콜릿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조나단. 하지만 아내는 늦게 돌아올 것이라는 음성메시지만 남겨둔 채 외출 중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는 나타나지 않고 결국은 해변 도로에 차만 남겨둔 채 사라졌다는 소식을 통보받는다. 한 주, 두 주 실종 기간이 늘어가는 가운데, 어느날 레이몬드(이안 맥니스)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찾아온다. 죽은 안나의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는 게 그의 주장. 남자에게 면박을 주고 되돌려보내지만 얼마 후 안나의 시체가 발견되고 죽은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는 등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화려한 스펙터클이나 특유의 잔인함을 없지만 ‘화이트 노이즈’는 대신 영리함과 소름끼치는 무서움을 담고 있는 공포 영화다. 공포의 매개체는 비디오와 TV 화면 속에 흐르는 ‘찌지직거림’(노이즈)이다. 다시 레이몬드를 찾아간 조나단은 TV 화면과 VTR을 이용해 죽은 사람과 교신하는 방법인 EVP(Electronic Voice Phenomenon)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다. EVP는 죽은사람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 년 간 행해져 왔다. 이를 알게 된 조나단에게도 이 방법은 안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다. 레이몬드와 함께 안나의 신호를 기다리는 조나단. 하지만 어느날 레이몬드가 갑작스럽게 죽고 브라운관을 통해 죽은 사람들을 만났던 이들이 우연히 죽음을 맞게됐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안나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나 소재가 일본 공포물 ‘링’과 비슷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영화는 군데 군데 등장하는 반전이나 톱니바퀴 들어맞듯 잘 짜여진 줄거리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며 두려움 속으로 끌어들이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다. 감독은 영국의 TV 드라마 연출가 출신인 제프리 삭스. 상영시간 98분. 15세 관람가. ■쿨 뮤직비즈니스계 그려 ‘펄프 픽션’의 춤 장면을 기억하는가. ‘V’자를 그린 채 흐느적거리며 트위스트를 추던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 이들이 11년 만에 다시 같은 무대에서 만났다. 바로 8일 개봉한 영화 ‘쿨!’(원제 Be Cool)에서다. ‘쿨!’은 뮤직 비즈니스계를 다룬 영화. 두 주인공은 고리대금업자 출신의 성공한 영화 제작자 칠리 팔머(존 트래볼타)와 러시아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남편 대신음반 사업에 뛰어든 이디 에이슨(우마 서먼). 두 사람은 함께 힘을 합쳐 사업을 벌여나가고 이들이 발굴한 신인가수 린다 문(크리스티나 밀리언)은 주변 인물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톱스타가 된다. 흥미로운 두 주인공이 만난 데다 쇼비즈니스의 뒷세계라는 소재도 관심을 끌 만하지만 영화가 전해주는 재미는 아쉽게도 기대에 못미치는 편이다. 관심을 모았던 춤 장면도 지극히 평범한 편. 인물들의 성공담과 개성 강한 주변사람들의 모습이 종과 횡으로 얽힌 줄거리는 산만하게 전개된다. 타란티노 감독 스타일의 산만함과 하드보일드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결국 너무 느리게 전개되는 게 단점이다. 때문에 산만함은 더 심해졌고 인물은 더 비현실적이며 짧지 않은 상영시간(112분)은 더 부담스러워졌다. 더 락, 데니 드비토, 하비 케이틀 등 탄탄한 조연진에 록그룹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 중견 배우 제임스 우드 등의 풍부한 카메오 등 캐스팅이 화려하지만 그만큼 집중도는 떨어진다. ‘재키 브라운’의 원작자인 엘모어 레오나드의 소설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게리 그레이가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판에 염증을 느끼던 칠리는 어느날 자신의 눈앞에서 음반 사업을 하는 친구 토미(제임스 우드)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으로 죽은 친구의 섹시한 미망인 이디를 만나고 그 자리에서 그는 함께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한다. 사업의 첫 프로젝트는 신인 가수 린다문을 발굴해 음반을 출시하는 것. 하지만 음반 출시까지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린다의 전속권을 주장하는 전매니저 라지와 토미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나타난 프로듀서 러셀이 바로 그들. 여기에 토미를 살해한 마피아들과 이들을 추적하는 경찰들까지 끼어들며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15세 관람가. ■인터뷰-역전의 명수 정준호 “공공의 善 돌아섰죠” ‘공공의 적2’에서의 악랄한 ‘공공의 적’으로 최근 황금촬영상 연기대상을 수상한 배우 정준호가 이번에는 ‘공공의 선’으로 돌아섰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역전의 명수’에서다. 3개월만의 180도 변신이다. 정준호는 “‘공공의 적’에서 ‘공공의 선’으로 돌아섰다? 좋다. 좋아. 그 표현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정준호에 따르면 ‘역전의 명수’는 모두가 제작을 반대한 영화다. 그와 강우석감독, 그리고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만 빼고. 그 정도로 시나리오의 느낌은 상당히 독특하다. 어쩌면 그 독특한 느낌은 주인공이 오락 영화의 대명사 정준호이기에 보다 증폭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우석 감독이 편집에 관여하면서 영화의 코믹한 색깔이 더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정준호는 영화에서 음담패설과 적나라한 베드신을 서슴없이 소화했다. “시나리오가 무척 독특하다. 특별한 반전도 없고 트릭도 없다. 그냥 편안하게 흘러가는데 재미있다.” 명수는 목포역 앞에서 명물로 통하는 건달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엄마를 위해서는. 그는 엄마의 부탁에 현수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한다. 정준호는 명수와 현수, 1인 2역을 펼쳤다. ▲주인공 명수는 일생을 차별받으며 자란다. 엄마는 오로지 현수뿐이다. 실제 정준호는? “이 영화 보면서 한 풀이하는 사람들 많을 것 같다”며 웃은 정준호는 “그러나 실제의 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 동생들이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명수처럼 효자였을까. “스물다섯살까지는 안 그랬다. 군대 갔다오기 전까지는 엄마 말을 참 안 들었다. 우리 엄마는 매학기 수업료를 두번씩 주셔야했다. 속으면서도 주신거지. 책값도 두배씩 줬다.(웃음) 그러나 제대 후 철들어서 지금까지는 엄마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한번도 없다.” 다만 한가지. 이제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만큼 장가 문제만큼은 불효하고 있다. ■영화배우 이성재가 7일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도쿄 등지에서 열리는 ‘제1회 한류영화제’의 한국 대표 배우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제1회 한류영화제’는 9일부터 한달 동안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열린다. 일본의 영화 수입사인 SPO가 기획한 행사로 모두 22편의 한국 영화가 한꺼번에 소개된다.
■달콤한 인생 사랑은 달지만… 인생은 ‘쓰다’ 영화는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고 말한다. 그래놓고 제목은 ‘달콤한 인생’이란다. 1일 개봉한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봄)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딛고 근사하게 폼을 잡았다. 사나이들의 어두운 세계를 그린다는 느와르를 표방하며. 선우(이병헌 분)는 문과 무를 겸비한 냉철한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호텔 지배인. 정확히 말하면 ‘조폭’으로, 보스의 오른팔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주먹질일지언정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스스로의 매무새도 늘 단정하다. 힘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야경이 관통하는 스카이라운지 통유리창을 마주보고 나르시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인생은 달콤한 것일까. 여기까지는 아니다. 보스에게 인정받고, 스카이라운지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달콤할까. 선우는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진다. 보스(김영철 분)의 어린 애인 희수(신민아 분)를 감시, 보고하라는 지시를 어기고 바람난 희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모든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보스는 선우를 용서하지 않는다. “백번 잘해도 한번 실수하면 끝이야.” 김지운 감독은 선우와 보스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한가지 퀴즈를 던진다. 과연 선우가 희수를 봐준 것은 보편적인 인류애, 혹은 측은지심의 발로였을까. 이 점은 보스 역시 의문을 품은 대목이다. 그는 선우에게 묻는다. “왜 그랬니? 진짜 이유를 말해봐.” 결국은 사랑이 사단이었다. 사실 선우가 잠깐 만난 희수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희수로 인해 잠시나마 달콤함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희수의 미소와 천진난만한 눈동자, 귀 뒤로 넘어가는 긴 생머리가 선우를 설레게하고 환하게 미소 짓게 한 것은 사실이다. “너 사랑 안해봤지?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야”라는 보스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생을 달콤하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달콤한 선택은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피범벅 러브 스토리’라는 김 감독의 설명 때문일까. 느와르라고 하기에는 발화점이 너무 시시하다. 물러설 수 없는 사나이들의 비장한 대결을 그려야할 느와르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동기가 허무하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욕심들이 불협화음을 이룬다. 김 감독은 처절하고 극악무도한 싸움을 그리면서 능청스러운 웃음을 넣으려했고, ‘때깔’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동남아 괴한들을 등장시켜 이국적인 분위기도 연출했고 주인공들에게 근사한 ‘총질’도 시켰다. 그러나 욕심들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흩어졌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등 전작에서 빛났던 김 감독 특유의 감각이 아쉽다. 이병헌은 죽을 고생을 했겠다. 이 잘난 젊은이는 스크린에서 온갖 수난을 겪는다. ■미스 에이전트2 섹시발랄 여형사 ‘떴다’ 산드라 블록은 할리우드에서 건강과 밝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전형적인 미인의 기준에서는 한참이나 곁길로 새지만 그는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다. ‘미스 에이전트2’가 기획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 전편의 성공을 발판삼아 5년만에 선보이는 속편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편이 미스 USA 선발대회를 무대로 했던 만큼 그보다 더 화려한 곳을 수배하자니 라스베이거스가 적당했으리라. 미스 USA 선발대회에 위장 출전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FBI요원 하트(산드라 블록 분)는 더이상 비밀작전을 수행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180도 이미지 변신, ‘미스 FBI’가 된다. FBI의 마스코트가 돼 전국을 돌며 홍보 활동을 하는 것. 지저분한 몰골에 웃을 때면 ‘돼지 우는 소리’를 내던 터프한 하트는 이때부터 미스 USA 뺨치게 ‘환골탈태’한다. 범인 색출 대신 립스틱 색깔에 신경쓰는 ‘여자’가 된 것. 이때 사건이 터진다. 그와 절친하게 지내던 미스 USA가 납치당한 것. 하트는 만사를 제쳐놓고 사건 해결에 뛰어든다. 산드라 블록은 ‘잠복근무’의 김선아처럼 위장잠입이 주 특기다. 그는 이번에도 전공을 살려 아기 엄마, 휠체어 탄 노인, 게이 댄서 등으로 옷을 갈아입고 현장에 뛰어든다. 영화는 코믹 영화로서의 위치에 충실했다. 미국에서는 별반 평판이 좋지 않지만이 정도면 치고 빠지는 할리우드 오락 영화의 평균치는 된다. FBI, 위장, 납치, 여성 보디가드, 라스베이거스 등의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못 만들기도 어려웠으리라. 아카데미 수상작 ‘레이’에서 제이미 폭스의 상대역을 맡았던 레지나 킹이 성질사나운 보디가드로 출연해 산드라 블록과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새로운 볼거리. 또 돌리 파튼과 티나 터너를 안다면 영화의 재미는 배가된다. 1일 개봉, 12세 관람가. ■더티댄싱2 “춤은 내 인생의 모든 것” 1987년의 ‘더티댄싱’을 기억하는가. 일탈을 꿈꾸지만 온실밖에 나서길 주저하는 부잣집 큰 딸과 리조트 아르바이트생이 춤을 통해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풋풋한 사랑과 열정적인 춤에 많은 이들이 박수치고 환호했다. 이제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멋지게 경쾌한 리듬을 탔던 패트릭 스웨이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주름살이 생겼다. 터져버릴 것 같았던 춤사위는 우아하고 깊이있는 파드되가 인상적인 발레로 바뀌었다. ‘더티댄싱2’는 가족잔치다. 제작까지 한 그와 공동 작업을 한 이는 실제 부인인 리사 나이미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어머니인 안무가 패치 스웨이지는 안무를 담당했다. 리사 나이미는 주연과 각본, 감독까지 하는 등 무용수 출신 영화인으로서 하고싶은 것을 모두 풀어낸 듯하다. 영화는 지극히 예측가능하다. 드라마틱한 장면이라고는 세 주인공이 돌아가며 큰 소리 한번씩 치는 것이 전부다. 천재 안무가 알렉스가 사망한다. 그를 추도하기 위해, 내심으로는 무용단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7년전 올리지 못했던 알렉스의 작품 ‘침묵의 몸짓’을 올리기로 한다. 이 작품의 주역 무용수였으나 막이 올리기 직전 갈등이 폭발하며 뿔뿔이 흩어진 트래비스(패트릭 스웨이지), 크리스(리사 나이미), 맥스(조지 드라 페나)가 다시 모인다. 상영시간 93분. 15세 이상 관람가. 1일 개봉. ■독도 소재 영화 나온다 최근 독도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의 제작이 추진 중이다. 제작사 퍼즐필름은 최근 독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지난 2003년부터 추진 중에 있으며 현재는 프리프로덕션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독도 인근에 매장돼 있는 청정연료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우익 단체간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올해 6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연말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제작사는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될 것”이라며 “전국민에게 독도수호의 중요성을 재인식 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친절한 금자씨 日·홍콩 ‘러브콜’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며 이영애의 스크린 복귀작인 영화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의 촬영장에 일본과 홍콩 기자 110여 명이 방문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영화의 촬영세트가 마련된 파주시의 아트서비스 종합촬영소에는 지난 31일 오후 촬영장 첫 공개를 맞아 아사히, 요미우리, 닛케이, 마이니치 등 유력 종합지와 니칸 스포츠, 산케이 스포츠 등 스포츠 신문, 후지TV와 NHK 등 공중파 방송을 포함해 모두 23개 매체 70명의 일본 언론인이 방문했다. 또 홍콩에서도 TVB TV와 홍콩데일리 등 15개 매체가 취재에 나섰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미 홍콩의 파노라마사와 일본의 도시바 엔터테인먼트에 각각 고가로 판매된 바 있다. 두 국가의 취재진들이 대거 촬영장을 방문한 것은 ‘친절한 금자씨’와 박찬욱 감독, 이영애에 대한 해외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이들의 취재는 현지 영화 수입사와의 동행취재로 이뤄지기는 했지만 1시간 가량의 짧은 촬영장 공개에도 영향력 있는 매체들이 대거 참석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10여년간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한 여자가 자신을 가둔 남자에게 펼치는 복수를 다룬 영화. 이날 촬영분은 교도소에서 출감한 금자(이영애)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죄를 뉘우치며 기도를 하는 장면이다. 성모마리아를 연상시켰던 영화의 티저 포스터와 비슷한 이미지를 담은 이 기도장면은 이영애가 입은 흰 드레스와 붉은색 초, 무릎 아래 깔은 푸른색 수건, 검정바탕에 붉은색 무늬가 있는 벽지가 시각적인 대조를 이뤘다. 박 감독은 촬영 중간중간 기자들에게 “오늘 진도가 너무 안나가네”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으며 이영애와 연기에 대해 논의하면서 “처녀보살 같다”며 밝게 웃기도 했다. 현재 촬영이 70% 정도 진행된 ‘친절한 금자씨’는 다음달 중에 촬영을 마치고 7월께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고두심 주연 ‘엄마’는 어떤 영화? 7일 개봉하는 영화 ‘엄마’ (제작 필름뱅크ㆍ청어람, 감독 구성주)는 어지럼증으로 차를 탈 수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평생 별 탈 없이 살았던 이 할머니에게 새로 부여된 과제는 막내딸 결혼식 참석이다. 문제는 결혼식장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는 사실인데….
■윔블던 ‘사랑의 힘’ 기적을 만들다 ‘윔블던’은 영국 중산층의 사랑에 대한 팬터지를 참으로 적절하게 그리는 워킹타이틀의 향기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다. 이보다 더 영국적일 수 없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소재로 남녀 테니스 스타의 사랑과 승부를 상큼하게 그린 것. 젊은 후배들한테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32세의 노장 테니스 선수 피터(폴베타니 분)는 현재 세계랭킹 119위다. 최선을 다해도 이제는 실력이 더 이상 늘지않으니 은퇴나 해야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나온 세월이 서글프다. 운동한답시고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봤고 그렇다고 우승 트로피 한번 안아본 적 없다. 그런 그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사실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또다시 윔블던대회에 출전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세계 1위를 다투는 여자 테니스 스타 리지(커스틴 던스트)가 쿨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합 전 섹스가 경기에 어떤 결과를 미칠 지 아니? 가볍게 즐기자”면서. ‘와이 낫(Why Not?)’ 영화는 워킹 타이틀이 지금껏 주장해왔듯 사랑의 힘을 설파한다. 어디서나 실력차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랑은 기적을 발휘하는 법. 물론 진짜 사랑일때 말이다. 카메라는 단정하고 우아한 윔블던 코트를 매력적으로 잡는 한편 소박한 영국의 전원 생활과 어촌에도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와 여물어 가는 핑크빛 사랑을 교차하며 관객을 너그럽게 만들고, 동시에 혹독하게 딸을 조련하는 리지의 아빠와 낱알처럼 흩어졌던 피터 가족의 변화도 밉지 않게 담아냈다. ‘윔블던’의 이야기는 2001년 10월 맺어진 앤드리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 커플덕에 아주 허무맹랑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애거시는 결혼으로 세계 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부진의 늪에서 탈출, 주요 대회 우승을 휩쓸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했던 것일까. 감탄고토하는 얄미운 에이전트를 통해 특유의 위트를 과시하고, TV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등의 ‘전기감전요법’으로 관객의 입맛을 돋우긴 하지만 영화는 왠지 모르게 정형화된 느낌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너무 쉽게 답습한 듯한 인상. 알싸한 봄바람처럼 영화는 보는 이의 기분을 업 시킨다. 살갗이 찌릿찌릿 흥분되기도 하고, 주책맞게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워킹 타이틀만의 톡 쏘는 맛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요소요소 작위적인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도 두손 들어주고 싶은 부분은 할리우드 스타 커스틴 던스트를 캐스팅했음에도 그녀에게 기대지 않았다는 것. ‘기사 윌리엄’의 주정뱅이 폴 베타니의 스타 탄생이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잠복근무 웃음·액션·감동 3박자 골고루 부담없이 즐기기에 ‘안성맞춤’ 6:3:1쯤 될까? 17일 개봉한 ‘잠복근무’는 코미디와 액션, 로맨스가 6:3:1 정도로 적절하게 섞여있는 영화다. 적어도 팝콘이나 오징어를 사다 들고 객석에 등을 파묻은 채 부담없이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가장 ‘믿음’이 가는 여배우인 김선아가 등장하는데다, 코믹과 액션이 적절히 뒤섞여 있고, 풍부하고 알찬 에피소드들에, 제 몫을 충분히 해내는 조연들의 연기까지, 상차림이 풍성하니 7천원의 관람료가 아깝다는 식의 실망감이 관객의 입에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학창시절 문제아였고 경찰이 되서도 사고뭉치이며 결국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 그 문제아적 ‘성깔’로 학교를 평정하는 여형사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설정. 여기에 실은 경찰이 꿈이었던 담임 선생님을 연기하는 박상면과 조카가 항상 불안하기만 한 삼촌 천반장역의 노주현, 매력적인 악역을 만들어 낸 오광록 등 조연들의 매력도 풍성하다. 다혈질이지만 사고뭉치인 ‘문제적’ 여형사 천재인(김선아)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삼촌인 천반장(노주현)으로부터 여자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임무는 이 학교의 우등생 차승희(남상미)와 친해져 그녀 아버지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 아버지 차영재(김갑수)는 폭력조직의 소탕을 위해 법원에 증언을 할 중요참고인이다. ‘지옥 같았던’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데, 한 술 더 떠 재인은 잘못된 설정으로 이제 우등생 행세까지 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 학교에 있던 ‘기존의’ 문제아들은 재인의 학교 생활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담임선생님의 배려도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승희와 친해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이렇게 ‘뻑뻑한’ 학교 생활을 하던 중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청량음료 같은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몸짱에 매너도 좋고 싸움까지 잘하는 강노영(공유)이다. 승희와 재인의 주위를 맴도는 노영. 하지만 그 역시 학생 같지 않은 수상함을 지니고 있다. 뻔한 재료에 흔한 공식의 상업영화이지만 영화는 상당량의 웃음과 어느 정도의 액션, 그리고 약간의 감동이라는 의도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매끄러움을 갖췄다. 곳곳에 억지스럽게 짜 맞춰진 설정과 인물, 과장된 에피소드들이 숨어있지만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다. ‘퇴마록’을 만들었던 박광춘 감독이 2002년 ‘마들렌’ 이후 3년만에 내 놓은 신작이다. 111분. 15세 관람가. ■호스티지 ‘휴먼영웅’ 10년만에 컴백 브루스 윌리스가 ‘다이하드’ 시리즈를 끝낸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부지런히 액션 블록버스터에 출연해왔지만 진정한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영웅에 대한 갈증. 윌리스는 ‘호스티지’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스티지’는 제목이 노출하듯 인질과 그 인질을 구출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최상의 조건. 윌리스가 동명의 소설을 보자마자 영화화 욕심을 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따지자면 이 영화는 스케일과 스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제프 탤리(브루스 윌리스 분)는 LA 경찰국 소속 최고의 인질범 협상가. 그러나 지독한 자만감에 인질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 이후 그는 시골마을 경찰서장이 돼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 조용한 마을에 생각지도 않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대저택에 갇힌 세명의 인질과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명의 범인. 이제는 더 이상 네고시에이터가 아닌 탤리는 연방경찰이 맡은 사건을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괴한들이 돌연 탤리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간다. 괴한들의 요구사항은 인질범들이 장악한 대저택에 침투, 자신들이 찾는 물건을 빼내오라는 것. 탤리는 인질범은 물론 동료 수사관들마저 따돌려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다. 윌리스는 ‘다이하드’의 영광에 ‘식스 센스’의 울림을 양손에 쥐고 싶어했다. 곳곳에서 돈 냄새가 묻어나는 난공불락 요새 같은 호화로운 대저택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네고시에이터와 가장으로서의 인간적인 고뇌를 진하게 표현하려 했다. 영화 속 인질 사건의 이중구조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 실제로 치밀하게 설계된 부잣집은 인질 중 한명인 8살 꼬마가 악당을 상대로 펼치는 컴퓨터 게임 같은 무대가 되준다. 또 인질범과 심리전을 펼쳐야하는 와중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면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는 탤리의 모습은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범인과 협상을 하고 물건을 빼내와야 하는 탤리의 상황이 국가와 세계를 구해야하는 여타 할리우드 영웅들보다 인간적인 것은 사실. 여기에 원없이 터져주고 쏴주는 액션 장면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니 영화는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제 50대에 접어든 윌리스는 말이(혹은 생각이) 많아졌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잉’의 혐의가 짙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느낌이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오늘 ‘아이엔지 영화제’ 일상속 진한 감동…‘단편영화의 즐거움’ 독립 영화, 혹은 단편 영화의 즐거움은 그 메시지에 있다. 깨끗한 영상이나 화려한 움직임, 섬세한 감정 표현 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투박한 일상과 우리가 흔히 지나쳐 버릴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한 번 푹 빠지면 더욱 진한 감동을 얻는다. 대학교 영상 관련 단체들이 만든 작품을 상영하는 ‘아이엔지 영화제’가 19일 오후 2시 안성에 위치한 한경대학교 공동실험실습관에서 마련된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동국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 상명대학교 영화학과 인디스토리 등이 참여한 이번 영화제에는 총 15여 개의 작품이 선보여진다. 제3회 서울 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쟁부문 우수상을 차지했던 ‘사이코 드라마’부터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분 초청작 ‘으랏차차 라스트 매직’, 제56회 칸느 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올랐던 ‘원더풀 데이’ 등 수준 높은 단편영화 들이 참여할 예정. 각기 다른 소재로 삶의 다양한 의미를 짚어내는 이들 작품은 영화의 또 다른 참맛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의 670-5114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연극배우 출신으로 ‘학생부군 신위’, ‘301·302’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방은진<사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공주’가 지난 14일 촬영을 시작했다. ‘오로라공주’(제작 이스트필름)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물. 잇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현장에는 ‘오로라공주’ 스티커가 유일한 단서로 발견된다. 이를 발견한 오형사(문성근)은 1년 전의 악몽 같은 사건을 떠올리고, 범인이 정순정(엄정화)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6월말까지 촬영된 뒤 10월 개봉할 예정이다.
Japanese Movie 전통적인 비수기인 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2월 말부터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한 일본 영화는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다섯 편 이상.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영화에서부터 순애보를 담은 최루성 멜로물,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쿨(cool)’한 묘사를 담은 청춘물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2월 말부터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한 일본 영화는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다섯 편 이상.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영화에서부터 순애보를 담은 최루성 멜로물,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쿨(cool)’한 묘사를 담은 청춘물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한류 열풍이 일본 내에서 뜨거웠던 지난해, 일본 영화의 국내 성적은 평균 1편당 3만2천명(서울 관객 기준)이었으며 점유율은 2.1%에 그쳤을 정도로 그다지 좋지못했다. 국내에서 일본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속설. 하지만 이들 영화는 ‘역한류’ 혹은 ‘조용한 대박’을 노리며 국내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피와 뼈(血と骨, 2월 25일 개봉)= 양석일씨의 베스트 셀러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10대 중반 ‘재패니스 드림’을 안고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온 남자 김준평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력적이며 탐욕적으로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은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했으며 스즈키 교카는 폭력적인 남편이 없어지기만을 바라며 평생을 살아가는 부인 이영희 역을 맡았다. 최근 내한한 최양일 감독은 “이 영화에는 ‘인간의 피와 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바이브레이터(Vibrator, 3월 4일)= 메마른 도시에서 만난 고독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쿨’하게 그린 로드 무비. 기댈 곳을 찾으며 부유하는 젊은 캐릭터들의 매력, 주인공 여성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 감각적인 편집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 내리던 밤. 술을 사러 편의점에 들른 르포라이터 레이(테라지마 시노부)의 머리 속에는 오늘도 무수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들었던 말들, 잡지 속의 문장, 내면 어디에선가 흘러오는 속삭임 등은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들. 술을 먹고 토하는 ‘취미’는 이런 ‘목소리들’을 잊기 위해 생긴 그녀만의 톡특한 습관이다. ▲69(3월 25일)=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무라카미 류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안도 마사노부나 쓰마부키 사토시 등 ‘꽃미남’ 스타들이 출연한다. 청춘과 록 음악, ‘뻥’을 키워드로 하는 빠르고 감각적인 영상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배경은 1969년 규슈 지방의 한 고등학교. 지역에서 최고로 꼽히는 일류고등학교지만 문제아 겐(쓰마부키 사토시)은 사사건건 선생님들의 지도에 반항을 한다. ‘인생을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그의 신조. 이 학교 최고의 미녀 마쓰이 가즈코(오타 리나)를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그는 ‘데모나 바리케이드를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 ‘거사’를 도모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3월 25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함께 지난해 일본에서 순애보의 열풍을 이끌며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6주간의 아름다운 재회가 기둥 줄거리로, 100만부가 넘게 팔린 동명의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주인공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나카무라 시도)과 엄마를 잃은 아들(다케이 아카시). 1년 후 비의 계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엄마(아내·다케우치 유코)는 약속대로 장마철에 이들 가족에게 돌아온다. ▲아무도 모른다(4월 1일)=‘원더풀 라이프’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으로 당시 12살이었던 주연배우 야기라 유야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부모 없이 남겨진 네 명의 아이들을 차분하고 과장되지 않은 카메라로 담고 있다. 각각 다른 아버지(혹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도 한다)와 같은 어머니를 가진 네 아이들은 어머니마저 떠나버리자 스스로 생활해 나가야 하는 곤란에 빠지게 된다. 가장 노릇을 하게 된 큰아이라고 해봐야 12살 어린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생활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방문했던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본 뒤 세상에 나와 이런 아이들을 봤을 때, 한동안 그들에게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면 성공하는 셈”이라며 연출 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여자 정혜 아픈 상처 지우는 ‘사랑의 묘약’ 우편 취급소와 TV 홈쇼핑, 고양이… 이 여자, 정혜(김지수)의 일상은 까닭없이 평화롭다. 직장인 우편물 취급소에서의 단조로운 일과와 TV 홈쇼핑으로 사들인 물건들로 채워진 작은 집,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 온 어린 고양이. 이것들은 그녀만의 작은 세상을 구성하는 몇 안되는 것들이다. 각박하고 폭력적인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조용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사실 지금의 세상과의 소통을 막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다. 영화는 여성의 내면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여주인공 김지수의 열연, 사랑과 상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등으로 이들 영화제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배우 김지수의 발견’ 혹은 ‘2004년 한국 영화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흔히들 하는 얘기지만, 사실 의심스러운 말이다. 아픔을 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듯한 소란스러운 세상, 이 속에서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또 다른 부담일 수 있다. 과연, 영화가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무표정 속에서 속시원한 결론을 보여주고는 있지 않지만 영화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여자와 그녀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내던 이 영화는 희망의 희미한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정혜에게도 사랑이란 보이지 않을 듯 희미해 보이는 가능성 같은 것이다.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들과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가 불행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사실 과거는 고통이라기보다는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막고 서 있는 어떤 것들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황정민)가 그녀의 일상에 끼어든다. 작가 지망생인 그는 자신의 원고를 부치기 위해 정혜의 우체국을 찾는다. 정혜는 그에게 묘한 설렘을 느끼고 용기를 내서 말한다. “저희 집에 오실래요?” 언뜻 보기에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지만 영화는 우리 일상 속에 공존하는 불안과 폭력, 그리고 행복과 희망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자극적인 영화보다도 더 진한 울림을 준다.특히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과거의 슬픔과 고통이 분출되는 후반부는 극장 문을 나서고 나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공감 속에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주인공 정혜를 연기하는 여배우 김지수의 힘과 100% ‘들고 찍기’로 촬영해 순간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카메라의 덕이 크다. 특히 그동안 TV 드라마에서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지수라는 배우를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 보게 되는 것은 관객으로서도 큰 기쁨이다. 단편 ‘우리 시대의 사랑’을 만들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이윤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제 3회가 방송됐음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MBC TV 월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위트 있게 꾸며 방문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첫방송한 ‘안녕, 프란체스카’는 막강한 SBS TV ‘야심만만’이 버티고 있음에도, 최근 시트콤 부진에도 불구하고 호평 속에 일명 ‘프란체 폐인’까지 등장시키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첫 방송 시청률이 7.4%(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결과)였고, 2회 7.9%에서 지난 14일 3회 방송에서는 9.6%로 조금씩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청자들은 흡혈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색다른 설정에 허를 찔리는 재미를 느끼고, 출연진들의 고른 호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안녕, 프란체스카’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재미있는 글들이 실려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우선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고 있는 ‘노도철 PD의 제작일지’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노도철 PD는 시트콤 연출가답게 재미있는 글솜씨로 네티즌들을 이끌고 있다. 12일 올려놓은 글에서는 주촬영장인 ‘프란체 하우스’의 장소 헌팅 과정을 소상히 적었다. 촬영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기본 개념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놓아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두근두근 체인지’를 통해 시트콤 연출가로 나서게 된 노 PD는 “별 부담없이 시작한 것인데 관심을 많이 가져 주고 있어 이젠 큰 부담이 된다”며 “‘안녕, 프란체스카’를 어머니와 딸이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어르신들이 만화 같은 코믹 연기를 받아주시는 것 같아 기분 좋다”고 말했다. 특히 시트콤 게시판답지 않게 눈에 띄는 건 배경음악에 대한 칭찬과 궁금증. 노 PD는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은 늘 비슷한 톤이었는데 전문 선곡자를 영입해 고급스러운 색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연합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을 맞아 KBS·MBC·SBS는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한국영화부터 국제영화제 수상작, 할리우드 대작영화까지 다채로운 영화를 마련했다.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을 맞아 KBS·MBC·SBS는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한국영화부터 국제영화제 수상작, 할리우드 대작영화까지 다채로운 영화를 마련했다.¶KBS 1TV는 설을 맞아 가족이 즐겁게 볼 수 있는 만화영화 특집 ‘7080 추억의 만화방’을 8-11일 오후 5시 10분(11일 오후 4시 45분)에 방영한다. ‘딱따구리’와 ‘미래소년 코난’, ‘독수리 5형제’, ‘독고탁의 다시 찾은 마운드’가 차례로 방송된다. ‘아시아 영화 걸작선’은 7-10일 11시 이후에 방송된다. 캐나다에 사는 인도인 가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결혼 이야기 ‘발리우드 할리우드’부터 량차오웨이(梁朝偉) 주연의 ‘사랑은 방울방울’과 이란영화 ‘칠판’, 일본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이 시청자를 기다리고 있다. KBS 2TV는 최근 상영돼 호평을 받았던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화를 내보낼 예정. 8일 오후 9시 40분에는 윌 스미스 주연의 ‘맨 인 블랙2’가, 이어 오후 11시10분에는 송강호 주연의 ‘효자동 이발사’가 방송된다. 9일 오후 10시에는 전쟁을 다룬 ‘블랙 호크 다운’이, 밤 12시 30분에는 전도연이 1인 2역을 맡은 ‘인어공주’가 전파를 탄다. 10일에는 오전 12시 30분에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이 방송되고 오후 9시40분에는 이나영·장혁의 코믹한 러브스토리 ‘영어완전정복’이 편성됐다. 초대형 스케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오후 11시 45분에 방송된다. MBC도 설 연휴를 맞아 ‘어린신부’, ‘올드보이’ 등 화제작을 포함한 다양한 특집영화들을 방송한다. 8일에는 오후 2시10분부터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SF영화 ‘미이라’가 방영되며, 오후 9시40분부터는 지난해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김래원·문근영 주연의 영화 ‘어린신부’가 방송된다. 오후 11시50분부터는 웨슬리 스나입스의 화려한 액션이 돋보이는 ‘블레이드2’가 마련된다. 설인 9일 오후 9시50분부터는 지난해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최민식 주연의 ‘올드보이’가 편성됐고 밤 12시15분부터는 류승범, 공효진, 임은경 등이 출연한 ‘품행제로’가 방송된다. 10일에는 오후 2시30분에 오우삼 감독과 톰 크루즈가 호흡을 맞춘 액션스릴러 ‘미션 임파서블2’가 방영된다. 조재현·차인표 주연으로 목포 폭력조직에 잠입한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목포는 항구다’가 마련된다. 오후 6시30분부터는 하지원과 김재원이 코믹 연기를 펼친 ‘내사랑 싸가지’가, 9시40분에는 국내 최초로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한 영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방영된다. 밤 12시15분에는 차태현, 손예진 주연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내보낼 예정. 11일 오후 9시55분부터는 김하늘, 강동원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그녀를 믿지마세요’가 시청자들을 기다린다. SBS는 할리우드 대작 영화와 재미있는 한국 영화를 고르게 준비했다. 7일 오후 8시 55분에는 임창정과 김선아의 백수연기가 일품인 ‘위대한 유산’을 시작으로 8일 오후 1시 50분에는 권상우·김하늘의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이어진다. ‘해리포터’ 시리즈 2편으로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은 8일 오후 8시 30분에 방송되고 뒤이어 주지사로 변신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터미네이터 3’가 전파를 탄다. 9일 오후 1시 50분에는 산드라 블록 주연의 유쾌한 코미디 영화 ‘미스 에이전트’, 오후 9시 50분에는 권상우와 한가인이 1980년대로 돌아간 ‘말죽거리 잔혹사’와 엽기적인 자객들의 이야기 ‘낭만자객’이 연이어 방송된다. 10일 오후 6시 10분에는 카메론 디아즈 등 미녀 삼인방이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미녀삼총사’가 방송되고, 오후 9시 30분에는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본 역사이야기 ‘황산벌’이 브라운관에서 선보일 예정.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김정은·임원희·김수로의 ‘재밌는 영화’는 11일 오후 5시 5분에 전파를 타고 밤 12시 15분에는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편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