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목적
뻔뻔男과 앙큼女 발칙한 사랑
고등학교 교사 유림(박해일 분)에게는 6년 사귄 교사 애인이 있다. 그는 적당히 사회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앞에 교생 홍(강혜정 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자식 같고 부모 같은’ 애인과 결혼해서 크게 모난 것 없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홍의 출현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홍으로 인해, 그러니까 여자 때문에 멀쩡한 남자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불륜 혹은 치정 스토리에서 어김없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시선이다. 폭력적이고 남성 우위적인 시선. 이런 사건에서 여자는 대부분 ‘스토커’로 둔갑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조금 더 들여다보자. 홍에게는 번듯한 의사 애인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유림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럴 때 진실과 사실은 평행선을 달린다. 제목이 흥미롭다. 순진함을 가장한 발칙함이다. ‘연애의 목적’이라니. 사랑의 순수성을 처음부터 무시하는 뉘앙스다.
과연 연애의 목적은 무엇일까. 결혼? 섹스? 위안? 하긴 그렇다. 목적도 없이 연애하란 말인가. ‘사랑’ 그 자체도 ‘목적’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설득력 있게 드라마를 끌고 나간다.
누구에게나 빈틈은 있다. 정신나간 것 같은 유림의 저돌적인 애정공세가 홍에게 먹히는 까닭은 홍에게 치유하기 힘든
사랑의 상처가 있기 때문. 홍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실수로 모두 삭제해 버리는 유림의 기막힌 행동도 어쩌면 홍에게는 아픈 기억을 모두 지워주는 ‘운명적’ 사랑일 수 있다.
“같이 자자”, “키스 하자”는 유림의 유아적인 추근덕거림 역시 현재의 애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다. 홍의 의사 애인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거짓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홍이 유림의 행동에 ‘학을 떼면서도’ 밀고 들어오는 그의 입술과 응석을 때로는 받아주는 것은 그러한심리. 영화가 그저 그런 청춘 연애극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홍의 가슴에 뚫린 구멍과 그것을 꿰차는 유림의 행동은 명백히 ‘18세 관람가’다.
소녀적 환상에 호소한 한가한 연애담이 아니라 진한 성인 버전인 것이다. 그 고민도, 그 감성도, 그 섹스도 말이다. 이 지점에서 두 배우의 연기는 분명 눈길을 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영화에 올인한 노력이 스크린에 그대로 묻어난다.
기존의 해맑은 이미지에 보기 좋게 ‘배반을 때린’ 박해일의 변신도 그러하고, 강혜정의 아낌없는 연기도 또래 연기자들과 차별을 이룬다. 특히 칭얼대는 유림의 행동은 사랑의 욕망이 요의를 느끼는데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자의 절박하고 미칠 것 같은 심정과 다를 바 없음을 전한다. 10일 개봉.
■간큰가족
통일이여 내게오라!
단도직입적으로 김수로가 웃기고 신구가 울린다. 웃고 울리는 극단적인 감정이 일련의 슬랩스틱 코미디 속에 버무려져 있다. 그런 영화가 범작들에 비해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소재 덕분이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이기에 가능한 ‘통일 자작극’을 휴먼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죽기 전에 북한에 있는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것이 소원인 실향민 김노인(신구 분)이 어느날 몸져눕는다.
설상가상으로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데, 그와 동시에 그에게 50억원의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큰 아들(감우성 분)로서는 희소식.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야만 그 재산이 자식들에게 상속된다는 점이다.
‘간큰가족’의 자작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50억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에 통일이 된 것처럼 꾸며야하는 것. 큰 아들은 3류 에로비디오감독인 동생(김수로 분)에게 가짜 통일 뉴스를 만들게 하고 자작극을 시작한다.
그러나 다분히 한시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이 자작극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병상에서 오늘내일 하던 아버지가 가짜 통일 뉴스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명남 감독의 1997년 당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 ‘우리의 소원은’에서 출발한다. 항간에 떠도는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2003년)과의 표절시비를 일거에 잠재우는 증거. 그러나 둘 사이의 표절 시비는 애초부터 무의미하다.
통일된 독일을 무대로 여전히 분단 상황을 꾸미는 ‘굿바이 레닌’이나 그 반대를 그린 ‘간큰가족’의 이야기는 한민족,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 특수 상황 속 보편적 상상인 것이다.
통일뉴스, 남북 탁구대회, 평양교예단 공연 등 통일된 조국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김 노인의 바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족들은 몸을 던져가며 진땀을 뺀다. 다행히 이들의 가감없는 코미디는 식상함 보다는 정겨움을 안겨준다.
변장한 가족들끼리의 가짜 탁구시합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공도 없이 탁구 대회를 벌이는 광경은 그중 빛나는 아이디어. 김 노인의 시력이 나쁜 것에 착안, “공이 너무 빨라 안 보이는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사는 소재의 신선함을 뒷받침해 나간다. 9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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