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 한ㆍ중서 '쌍끌이' 흥행 신기록

톱스타 장동건이 '태풍'과 '무극'으로 14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관객몰이 신기록을 세웠다. 14일 국내에서 개봉한 액션 블록버스터 '태풍'은 올해 개봉작 중 최고 오프닝 흥행 성적인 28만명을 기록했다. 또 같은 날 중국에서 열린 '무극'의 개봉 전야 유료시사회는 역대 중국 극장가 기록을 경신하며 150만 달러(약 15억3천만원)의 수익을 냈다. '무극' 홍보를 위해 아시아 투어 중인 장동건은 15일 오전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으며 '태풍'의 개봉 무대 인사를 위해 16일 저녁 일시 귀국한다. 장동건과 함께 상하이에 머물고 있는 소속사 스타엠엔터테인먼트의 홍의 대표는 국제전화를 통해 "14일 '태풍'과 '무극'이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신기록을 세워 너무 기쁘다"면서 "두 영화의 프로모션을 위해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로 움직이고 있는 데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홍콩, 대만에서의 환대에 이어 14일 들른 싱가포르에는 공항에 700명이 몰려들었고, 유료시사회에도 1천200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며 "투어를 위해 방문하는 나라마다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극'은 15일 중국 전역에서 500개 스크린에 간판을 내거는 것을 비롯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동시 개봉한다. 한편 2005년 오프닝 신기록을 세운 '태풍'은 한국 극장가 사상 초유인 전국 540개 스크린에서 대대적인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오프닝 기록의 여세를 몰아 극장가 '빅뱅'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홍 대표는 "국내에서는 '태풍'으로, 해외에서는 '무극'으로 동시에 '윈윈'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

MOVIE/태풍.섹스와 철학.애인

●태풍 장동건· 이정재 ‘카리스마’ 격돌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진일보했다. 지난해 ‘태극기 휘날리며’가 보여줬던 가능성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작품이 탄생했다. 지난 1년여 숱한 화제 속에 제작돼 온 ‘태풍’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액인 순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태풍’은 남·북한 모두에게 버림받은 탈북자 출신 동남아 해적 씬(장동건 분)이 남한을 향해 가공할만한 테러를 계획하는 이야기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UDT 출신 최정예 해군대위 강세종(이정재 분)이 투입돼, 태국과 러시아, 부산 등지를 오가며 씬과 추격전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살아 남은 씬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이미연 분)가 남한의 미끼로 등장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태풍’은 외형과 구조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일단 스케일이 크고 스케일에 어울리는 중량감과 볼 거리가 있다. 주인공에겐 절박한 미션이 주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선 주인공이 불사조가 된들 별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내용적으로는 한국화에 성공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아픈 현실을 무리없이 녹여냈다. 탈북자들의 아픔과 한은 창작해낼 수 없는 소재이며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남북의 처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이 블록버스터에 어울리게 응용됐다. 질퍽함과 촌스러움 등은 줄어든 대신 오락성과 감각이 더해졌다. 같은 신파도 이처럼 재료의 선택과 요리법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밑그림이 제대로 갖춰진 구조 속에서 장동건과 이정재라는 두 스타가 한판 신명나게 놀았다. 각자 여한이 없을 정도로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토해 냈음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깡마르고 까만 외모에 상처와 문신으로 장식된 얼굴과 몸, 입 등을 벌리면 번득이는 쇠붙이 치아와 긴 고수머리, 강한 이북 사투리. 이젠 내재된 카리스마를 끌어 내는 방법을 알게 된 장동건은 이러한 찬란한 외모에 힘입어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죽이게 했다. 여기에 이미연과의 상봉장면에서 눈에 핏발 세운 그의 울부짖음은 방심하는 사이 눈물을 왈칵 쏟아 내게도 한다. 그동안 남성미 넘치는 강인한 캐릭터에 목말라왔던 이정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스크린 속을 누볐다. 단정하고 절제된 모습의 이정재는 분출하는 장동건과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며 극을 안정시켰다. 애국심과 인간애 등으로 뭉친 해군 대위는 까딱하면 코웃음을 유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이정재는 그 수위를 잘 조절했다. 태국과 러시아의 로케이션과 동남아를 누비는 해적의 모습은 생생한 이국적 재미를 더하며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해양 액션 역시 크게 흠잡을데 없이 박진감 넘친다. ‘007 시리즈’의 악당이 아닌 한국인이 세상을 전복시키는 무지막지한 계획을 세우고, 주인공이 타고 있던 배에 어뢰가 터져도 살아나는 등 영화는 ‘태풍’이란 제목을 가질 만한 파워가 있다. 한국영화의 크기와 내실이 커졌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돼 반갑다. 이제 과제는 세계 시장이다. 이런 영화가 국내용으로만 소비된다면 그때는 분명 낭비될 것이다. 국내 시장은 기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힘에 부쳐했던 일을 ‘태풍’이 해내길 기대해본다. 단순 액션의 무협이 아닌, 김기덕 감독의 예술영화가 아닌, 한국 블록버스터의 성공 소식이 듣고 싶다. 오는 14일 개봉. ●섹스와 철학 마흐말바프의 ‘사랑에 관한 독백’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의 공세가 12월 극장가를 달구는 가운데 시류와 상관 없는 예술영화 한편이 조용히 개봉한다.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섹스와 철학’이 지난 9일 종로필름포럼(옛 허리우드 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았다. 영화는 마흔살 생일을 맞아 지나온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려는 한 댄스학교 교사 조언의 이야기다. 그에게 지나온 삶은 네명의 여자들로 요약된다. 사랑을 빼놓고는 삶을 논할 수 없다는 조언의 사랑에 대한 담론이 펼쳐지는 것. 이 과정에서 댄스학교 학생들은 꾸준히 집단 무용을 선사하는데 이 광경이 대단히 이색적이다. 특히 팔을 이용한 전위적인 동작들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애절하게 느껴진다. 조언은 생일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들 네 여인을 댄스학교에 초대한 후 한명씩 붙잡고 이들과의 사랑을 반추한다. “모든 사랑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돼”라고 믿는 조언은 네 여자와의 만남을 모두 운명이라고 여긴다. 제3자 시선으로 볼 때는 중년 남자의 젊은 여자 꼬시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육체적 사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대신 시적인 대화를 나눈다. 다른 서구 영화들과는 180도 다른 접근법. 이 중년 남자의 욕망은 한 여자와 춤을 추듯 손을 에로틱하게 포개는 단 한 장면만으로 표출될뿐 그 외에는 모두 대화를 통해 소화된다. 다분히 이란적(?)인 것. 결국 댄스학교 학생들의 온몸을 이용한 현대무용이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진정한 사랑의 순간은 단 몇초, 몇분 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며 결국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온 건 외로움뿐”이란 우울한 결론이 나온다.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진 한 중년 남자 하소연은 영화 앞뒤에 등장하는 맹인가수의 구슬픈 노래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단풍길과 눈밭은 스러져가는 중년을 상징한다. 그러나 찰나일지라도 사랑은 행복한 것. 지금은 모든 게 덧없다고 느끼는 주인공이지만 마흔살 생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부터 새 출발을 운운했던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애인 ‘쿨’한 척 만났지만 비틀거리는 男女 “날 갖고 놀아줘” 남자가 여자에게 내뱉는 말이다. 그것도 만난 지 불과 한두시간만에. 남자의 저돌성에 처음에는 기막혀 하던 여자도 이내 남자에게 끌린다. 둘은 만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서로에게 맹렬하게 빠져 든다. 한가지 특징은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시한부였다는 점. 남자는 다음날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고 여자는 7년 사귄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선 남녀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서로가 서로를 일탈의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하루동안의 불장난을 즐기자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둘은 섹스를 즐긴다. 어느 한쪽이 화대를 지불하지 않으니 둘은 연애하는 것이요, 둘의 관계는 애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성인 남녀간의 걷잡을 수 없는 끌림과 이어지는 섹스는 많은 멜로영화에서 묘사했던 이야기다. 대단히 도발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는만큼 그동안 빈번하게 영화화됐을 터. 그중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시 주연의 ‘데미지’같은 명작도 있다. 말초적 흥미를 넘어 가슴을 두드리는 감동까지 전해준 것. 그러나 ‘애인’은 아쉽게도 감동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제작사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가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가 50억원으로 치솟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순제작비 13억원으로 만들었다. 한국 영화의 모범답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영화의 짜임새는 그런 규모의 경제가 미덕으로 느껴지게 하지 못했다. 주연배우 성현아와 조동혁은 영화의 성적 코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으나 관객의 감정이입을 이끄는데는 실패했다. 이들의 짧은 사랑은 여행지에서의 그것처럼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란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으나 그들 사이의 대화나 교감 등은 지극히 단선적이다. 특히 여자가 사랑하지 않는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둔 상황인만큼 낯선 남자에 대한 끌림이 얼마든지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본능에서 시작된 사랑을 그리려던 둘의 원데이 스탠드는 채 끓기 전에 상에 내놓은 수프가 돼버렸다. 단순한 재료만으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는데도 불 조절 실패와 손맛 부족 등으로 제맛이 나지 못했다. 지난 8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이다해 "엽기ㆍ발랄 연기 기대하세요"

MBC '왕꽃선녀님', SBS '그린로즈'에서 무거운 역을 맡아 왔던 탤런트 이다해가 어떤 면에서는 엽기스럽기까지 한 발랄한 모습을 선뵌다. SBS 수목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의 후속으로 14일부터 방송될 '마이걸'(극복 홍정은ㆍ홍미란, 연출 전기상)에서 이다해는 '귀여운' 사기꾼 주유린 역을 맡아 그간의 이미지를 탈피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예정이다. 5일 SBS 공개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다해는 변신을 앞둔 설렘 때문인지 시종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이대에 맞는 밝은 역을 하고 싶었다"는 이다해는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정도로 엽기스럽고 발랄한 역"이라며 "애매한 것보다는 확실하게 발랄한 게 좋지 않느냐"며 털털하게 웃어보인다.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욕심을 냈던 역할이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촬영이 시작된 후 일주일간은 혼란스러웠어요.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코믹연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고 걱정됐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자신감을 갖고 연기하고 있어요." 사기꾼이 나오는 여러 영화를 봤지만 결국은 자기 안에서 끌어내는 연기에서 시작해 스스로 캐릭터를 설정해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시종 무겁고 진지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만나왔지만 이다해는 타로점에서 중국어와 필라테스를 배우랬다고 다음날 학원에 등록할 정도로 엉뚱한 면이 있다. 낯을 가리는 이동욱의 옆자리를 찾아가 앉았다가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니다"라는 말에 "내가 말을 잘하니까 대답만 잘하라"고 응수할 정도로 친근한 성격이기도 하다. 결국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기 안의 발랄함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가 연기 변신의 관건. 길을 잃어 하룻밤을 묵기 위해 마을 잔치에서 춤을 추고 트로트를 부르는 '마이걸'의 이다해가 금방 떠오르지는 않아도 색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변신을 꾀할 이다해를 기대해본다. /연합

장동건 "이제 선택과 판단만 기다린다"

5일 시사회를 통해 14일 개봉 예정인 영화 '태풍'(감독 곽경택, 제작 진인사필름)이 첫선을 보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견줄 만한 제작 스케일과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반도의 현실을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감성에 실어 2시간여 동안 보는 이를 끌어당겼다. 관객 앞에서 휘몰아칠 '태풍'이 줄 공감대가 지레 짐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는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아 한반도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드러내는 해적 씬(장동건)과 씬의 분노에 찬 질주를 막으려는 남한 장교 강세종(이정재)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장동건은 북에서 탈출해 남으로 건너오려 했으나 정치적 판단 때문에 다시 북에 되돌려 보내진 후 일가족이 몰살당한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긴 채 한반도를 향해 핵무기를 발사하려는 씬을 연기했다. 이를 통해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거푸 바꿔놓은 한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이 쓸 채비를 모두 마쳤다. 시사회가 끝나고 난 후 기자회견과 별도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는 "아직도 내 영화를 처음 보는 순간은 집중해서 볼 수 없다. 여전히 내가 나오는 장면에선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말로 영화 속과 전혀 다른 떨리는 마음을 표현했다. 장동건은 "우리가 전할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다고 믿는다"면서 "이제 선택과 영화에 대한 판단은 보시는 분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세종이 물이라면, 씬은 불처럼 폭발하는 배역이라고 했다. 시사회 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폭발하지 않고 꾹꾹 참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나 감독님의 의견을 좇아 역시 폭발시켰다"고 언급한 장면은 어린 시절 헤어진 누나 최명주(이미연)와 재회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씬이 왜 그토록 심한 복수심을 갖게 됐는지, 그러나 씬 역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대본을 받아쥔 순간부터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원래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연기했는데, 감독님 의견대로 폭발하는 게 씬을 설명하는데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장동건은 치밀어오르는 슬픔을 점점 더 충혈돼오는 눈과 그 눈에 맺힌 한방울 눈물로 표현한 후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물과 불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정재와의 대결 장면에 대해서는 "끝까지 나를 쫓아온 강세종을 두고 '저 놈도 나랑 똑같은 놈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그런 절정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긴장감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그래도 '친구'때보다는 (칼을) 덜 먹어서 그나마 낫지 않느냐"는 말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장동건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태풍'에 젖어살 것 같다"는 말로 지난 1년간 매달렸던 '태풍'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연합

<새영화> '섹스와 철학'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의 공세가 12월 극장가를 달구는 가운데 시류와 상관없는 예술영화 한 편이 조용히 개봉한다.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섹스와 철학'이 9일 종로 필름포럼(구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다. 영화는 마흔 살 생일을 맞아 지나온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려는 한 댄스학교 교사 조언의 이야기다. 그에게 지나온 삶은 네 명의 여자들로 요약된다. 사랑을 빼놓고는 삶을 논할 수 없다는 조언의 사랑에 대한 담론이 펼쳐지는 것. 이 과정에서 댄스학교의 학생들은 꾸준히 집단 무용을 선사하는데 이 광경이 대단히 이색적이다. 특히 팔을 이용한 전위적인 동작들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애절하게 느껴진다. 조언은 생일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들 네 여인을 댄스학교에 초대한 후 한 명씩 붙잡고 이들과의 사랑을 반추한다. "모든 사랑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돼"라고 믿는 조언은 네 여자와의 만남을 모두 운명이라 여긴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중년 남자의 젊은 여자 꼬시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들은 육체적 사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대신 시적인 대화를 나눈다. 여타 서구 영화들과는 180도 다른 접근법. 이 중년 남자의 욕망은 한 여자와 춤을 추듯 손을 에로틱하게 포개는 단 한 장면만으로 표출될 뿐 그 외에는 모두 대화를 통해 소화된다. 다분히 '이란'적(?)인 것. 결국 댄스학교 학생들의 온몸을 이용한 현대무용이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진정한 사랑의 순간은 단 몇 초,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며 결국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온 것은 외로움뿐"이라는 우울한 결론이 나온다.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진 한 중년 남자의 하소연은 영화의 앞뒤에 등장하는 맹인 가수의 구슬픈 노래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단풍길과 눈밭은 스러져가는 중년을 상징한다. 그러나 찰나일지라도 사랑은 행복한 것. 지금은 모든 것이 덧없다고 느끼는 주인공이지만 마흔 살 생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부터 '새 출발'을 운운했던 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연합

엘튼 존 21일 동성 연인과 결혼식 올려

영국의 팝스타 엘튼 존과 그의 연인인 데이비드 퍼니시가 21일 동성애 커플로 결혼식을 올린다. 동성애 커플에게도 일반 커플과 마찬가지로 세금, 연금 등에서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동반자법'이 발효되는 첫날 화촉을 밝히는 두 사람은 앞서 5일 정식으로 예식등록 절차를 마쳤다. 엘튼 존과 퍼니시는 이 자리에서 음악가와 영화제작자인 자신들의 직업을 비롯해 생년월일, 윈저시와 메이든헤드 등 주소를 `시민동반자 예식' 등록부에 직접 기록했다. 12년간 동성애 커플로 연인관계를 유지해온 이들이 혼례를 치르는 식장은 8개월 전 찰스 왕세자와 그의 '첫사랑'이었던 커밀라가 35년간의 불륜관계를 청산하고 부부로 다시 태어난 런던 서부 윈저시의 길드홀이다. 이에 앞서 엘튼 존은 최근 자신은 양가 부모들만 초청한 가운데 아주 검소한 결혼식을 치르길 원한다고 말했으나 정작 결혼식 피로연은 그의 1천200만파운드 짜리 대저택에서 화려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민동반자법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오는 21일 발효되며, 스코틀랜드에서는 20일, 북부아일랜드에서는 19일 발효된다. 이에 따라 이미 1천200쌍의 결혼식이 등록됐다. 영국정부는 이 법이 발효되는 첫해에 만도 무려 4천500 커플이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시민동반자법은 지금까지 법의 잣대로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커플들에게 법적 인정을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입법"이라며 "이 같은 법이 발효되길 기다리며 40여년간이나 살아온 커플도 있다"고 말했다. /연합

한ㆍ일 대표 가수 우정의 노래 대결

'한일 우정의 해 기념콘서트' 성황리에 개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ㆍ일 대중음악계 별들의 잔치였다. 6일 오후 7시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05 한일 우정의 해 기념콘서트-프렌즈'는 국내를 비롯해 일본ㆍ싱가포르ㆍ홍콩 등지의 팬 5천여 명이 참석해 아시아권 음악 팬들이 친구가 된 자리였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정치적으로 한ㆍ일 관계에 냉기가 흐르는 가운데 열린 이날 공연에서 한ㆍ일 가수와 팬들은 노래로 하나가 됐다. 배우 차태현과 일본인 탤런트 유민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는 보아, 비, 세븐, 휘성, 동방신기, 김종국, 김범수 등 한국 대표와 나카시마 미카, V6, 히라하라 아야카 등 일본 대표 가수들이 합동 무대를 꾸몄다. 이중 한ㆍ일 팬들에게 '공통 분모'가 있는 가수의 관객 호응은 대단했다. 짧은 흰색 팬츠를 입고 등장해 파워풀한 댄스를 선보인 보아는 올해 일본에서 베스트음반으로 첫 여성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가수답게 격렬한 댄스를 추며 매끄러운 라이브를 소화했다. '걸스 온 탑', '모토'에 이어 발라드곡 '메리 크리'를 열창한 그는 '역시 보아'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보아는 "이 무대에 서기 위해 일본에서 오늘 한국으로 왔다"며 "2005년 한ㆍ일 우정의 해를 마무리하는 무대에 참석해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보아에 맞서 '유키노 하나'(눈의 꽃)를 부른 나카시마 미카의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이 곡은 박효신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주제가로 리메이크해 이미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곡으로 팬들은 하나가 돼 노래를 따라불렀다. 평소 일본에서도 맨발로 라이브를 펼치는 나카시마 미카는 이날도 검정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맨발로 무대에 올라 흰 종이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감성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남자 대표 가수들의 경쟁도 불꽃 튀었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V6는 이미 오랜 한국 팬을 확보한 그룹답게 우렁찬 객석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한국 팬클럽과 일본에서 원정 관람온 팬들은 V6가 무대에서 텀블링을 선보이자 사진을 흔들며 열광했다. V6에 이어 '나쁜 남자'를 부르며 무대 위로 점프한 비는 T자 무대 곳곳을 누비며 관객과 친근함을 표시했다. 단단한 가슴 근육을 드러내고 섹시한 엉덩이 춤을 추며 'I Do' 일본어 버전과 '난', 'It's Raining'을 차례로 선사해 한국 대표 댄스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날 시선을 집중시킨 대목은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국 가수들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빛을 발했다는 점. '열정', '포에버', '크레이지'로 오프닝 무대를 꾸민 세븐은 능숙한 일본어 실력을 자랑해 객석을 놀라게 했다. 2월 일본 활동을 시작한 그는 "나와 데뷔 연도, 나이가 같다"며 히라하라 아야카를 소개했고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반대로 히라하라 아야카는 한국어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세븐은 일본어를무척 잘한다"면서 "한국 가수 중 신승훈, 엠씨더맥스, 세븐을 좋아하며 불고기, 삼계탕, 번데기가 맛있다"고 말해 객석의 웃음을 유발했다. 보아 역시 V6와의 인터뷰를 통역하며 한국 방문 소감,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 질문했다. V6는 "한국에 자주 왔는데 가수와 스태프 모두 친절하다. 보아와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한국 여성들이 무척 예쁘다. 한국은 최고다"라고 답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엔딩 무대를 꾸민 동방신기도 일본어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밖에도 일본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 '올인', '천국의 계단' 영상이 소개됐으며 김범수가 '천국의 계단' 주제가 '보고 싶다'를 선사했다. '한ㆍ일 우정의 해 2005' 실행위원회가 주최하고 MBC와 NHK가 제작한 이날 무대는 25일 MBC와 NHK를 통해 녹화 방송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