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강의 새 지평 연 사교육의 희망… “창조교육은 창의교사가 키워드”
고교 1학년 때, 나름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에는 영 젬병인지라 시험만 보면 60점대에 머물렀다.
점수를 올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메가스터디’라는 단어를 들었다.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과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싼 강의료에,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과학 강의를 수강했다.
그리고 지난 2006년, 교육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의에 불타오르는 사범대 학생이던 기자에게 이 책은 보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고교 시절 숱하게 인터넷 동영상 강의로 만나던 이범(43)의 얼굴이 표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범, 공부에 반(反)하다’는 당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사교육의 신화 메가스터디의 창립 주역이자 연봉 18억원의 스타강사에서,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자 동분서주하는 ‘교육평론가’로 변신한 특별한 이력을 지닌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만났다.
■ 메가스터디를 만들다
이범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강사이면서, 사교육계를 송두리째 바꾼 주인공이다.
‘손사탐’으로 유명한 손주은, 국어논술을 가르치던 故 조진만 선생과 함께 지난 2000년 7월 창업한 온라인 강의 사이트 ‘메가스터디’.
지금은 대표 온ㆍ오프라인 학원으로 자리 잡았으나, 처음 설립할 때만 해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씨는 “그때만 해도 컴퓨터는 고3이 되면 방에서 치워야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컴퓨터로 공부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온라인 강의 사업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고, 이 확신은 결과로 나타났다.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유명 스타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수험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컴퓨터를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라 수업을 듣는 보조교재로 만들었다.
이씨는 “당시 오프라인에서 40만원 정도인 강의를 12만원에 들을 수 있어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가져왔고, 산골짜기에서도 컴퓨터가 있으면 강남 대치동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사교육계를 떠나 무료 강의를 시작하다
메가스터디를 성공시키며 연봉 18억의 스타강사로 우뚝섯지만, 지난 2003년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며 무료 강의를 하기 시작한 이씨.
그는 왜 자신의 손으로 만든 메가스터디를 그만두어야만 했을까.
“2002년 게시판 알바사건이 터졌습니다. 지금의 댓글 알바의 시초라 보면 되는데, 특정 강사의 강의는 띄우고, 경쟁 강사의 강의를 폄하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메가스터디의 한 국어강사가 학생한테 게시판에 글을 쓰게 하다 걸렸고, 가서 노발대발하면서 따지기도 했죠. 하지만, 몇달 뒤 이분만 그러던 게 아니라 알바를 쓰지 않은 강사가 몇몇 꼽을 정도로 암암리에 퍼져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를 알고 몇 달 동안 굉장히 괴로웠다고 한다. 강의가 영리행위이긴 해도 지켜야 할 상도의를 무너뜨렸고, 회사에서도 공정하게 처리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번갯불에 맞은 듯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 그만두면 되잖아!’
■ 前 학원강사에서 ‘교육평론가’가 돼다
2004~2005년에는 서울 강남구청에서 강의를 하며 보내던 이씨는 2006년 4월, ‘이범, 공부에 반(反)하다’라는 책 한 권을 내게 된다.
처음에는 출판계 아는 사람이 책 한번 내보라 해서 시작했지만, 배운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이 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방송에도 출연하고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신문에 칼럼도 쓰게 되자 그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
“저를 전직 학원강사 혹은 EBS 강사로 소개하는 것은 지금 하는 일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교육평론가’로 명명하고 지난 2008년에 처음 사용했습니다. 나름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사람으로 이 명칭은 제가 처음 쓰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교육평론가로 활동하며 주로 강연과 기고, 책 내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교육평론가로서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 떠도는 교육정보의 양은 많지만, 중립적 정보가 없다고 말한다. 사교육 업체는 재가공 후 유포하는 정보가 많고, 공교육은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는 데 정작 필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교육 업체는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고, 공교육은 핵심 정보는 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반 학부모와 학생들은 중립적인 교육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교육평론가인 저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 아닐까요.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없고 중립적 정보 제공이 힘든 안타까운 현실의 반대급부인 것이지요”
■ 교육평론가 이범이 말하는 ‘창조교육’
올 2월,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는 ‘창조 경제’. 창조경제의 짝이 있다면 ‘창조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이씨는 국내 창조교육의 어려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바로 ‘교사’의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집 교육 첫 타이틀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육 정책도 바로 학생에게 전달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드시 그 중간 매개체인 ‘교사’를 거치게 돼 있는 건데,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에는 항상 이 교사가 배제돼 있었습니다. 교사의 창조력은 다 억압돼 있는데, 어떻게 아이들의 창조력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국내 교육은 일률적으로 평가해 학년별로 석차를 매기고 평균을 냅니다. 시험을 모두 똑같이 내고, 가르치는 것도 똑같이 가르치는 시스템입니다. 혁신교사가 있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 때문에 아예 학교를 통째로 바꾸자, 해서 혁신학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의 창조 교육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게서 두 가지의 제안을 들을 수 있었다.
“객관식 시험을 없애고 학생들이 자기 의견,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교육이 돼야 합니다. 객관식 평가는 제대로 된 평가라 보기가 어렵죠. 물론 힘든 일이긴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객관식과 다르게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교사의 전문가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산업은 새로 만들어내는 창조경제 시대를 맞이했지만, 창조적인 교육은 창의체험이나 방과 후 활동으로만 해결하려는 현실에, 근본적으로 국영수사과 중심의 교육 과정을 손봐야 한다는 그는 앞으로의 교육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향후 5~10년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변화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의 젊은 층 교사에게서 동력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 젊은 교사를 보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게 돼 다행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교육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그와 같은 사람이 있기에 교육이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년 교육감 선거에 대한 새로운 의제 설정에 여념이 없다는 그를 보며 창조 교육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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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는…
메가스터디의 창립 멤버에서 공교육 살리기에 뛰어든 대한민국 1호 교육평론가. 현재 활반한 강연ㆍ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이범, 공부에 反하다’ ‘우리교육 100문100답’ ‘이범의 교육특강’ 등이 있다.
이관주기자 leekj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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