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외길 25년 웬만한 작품은 모두 거쳐가 아직도 무대 오르면 심장 두근”
“그게 뭔데?”, “너는 왜?”, “정말?”
뮤지컬 배우 최정원에겐 ‘물음표’는 익숙할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뮤지컬 배우가 뭐 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를 때 그걸 하겠다고 덤빈 여고생.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하며 자연출산법을 알렸던 어머니.
많은 이가 멀티플레이어를 지향하며 무대와 스크린ㆍ브라운관 등을 드나들 때 오직 한 길을 걸어온 고집스러운 한국 뮤지컬 대표 여배우. 자신의 삶,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온 최정원을 따라다니는 말이다. 뮤지컬 분야에 발을 디딘 지, 25년.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공연하기 위해 무대로 향한다. 처음 그때처럼 ‘행복한 지금’과 ‘무대 위 죽음’을 꿈꾸며 말이다.
- 뮤지컬 배우, 최정원. 다른 수식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삶의 절반 이상을 뮤지컬 배우로 살아왔다. 돌아보면 어떠한가.
친구들조차 “뮤지컬 배우? 뭐 한다고?”라고 물었었다. 농담삼아 “내가 만든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연기도 하고 모창도 잘했지만, 뮤지컬 배우는 알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뮤지컬 영화를 보고선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에 매료됐다.
서점에서 뮤지컬 관련 자료를 구입해 독학했다. 내 안에 숨겨진 배우를 향한 꿈이 일순간에 깨어났다. 무대 위에서 최정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연습생 기간 거쳐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공식 데뷔했으니, 뮤지컬을 하며 산 날이 더 많은 나이가 됐다. 불모지였던 뮤지컬 분야에서 시작했는데, 최근 시민게시판을 비롯한 거리 곳곳에 뮤지컬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는 등 대중화된 것을 보면 뿌듯하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맘마미아의 ‘도나’역이 기억에 남는다. 예쁜 여배우에서 씩씩하고 유머러스한 여자로 변신할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다. 많은 여배우가 비련의 여주인공이나 여성성이 두드러진 주인공을 원한다.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면서도, 무대 위에서는 그것을 거부한다. 나는 맘마미아와 도나역을 통해 변신할 수 있었다.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게 됐다.
스스로 나이 들면서 더 재미있고 깊어지는 느낌이다. 맘마미아만 1천 회 가량 공연했는데, 지난해에는 208회 공연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했다.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록이라더라. 자랑스럽고, 특별하고, 관객에게 받은 사랑 때문에 울컥하고, 내겐 정말 따뜻한 작품이다.
- 뮤지컬 대중화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많이 변했다. 최근 티켓 파워나 한류 문화 등의 이유로 아이돌 출신이 진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대는 혼자 잘해서 박수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함께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어떤 분은 새로운 스타와 함께 서면 주눅이 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오히려 같이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우리 쪽(뮤지컬)을 보고 하고 싶다고 느끼니 고맙기도 하다. 연예인 중에서 잘하는 친구가 무대에 함께 서면 거꾸로 내가 팬이 된다. 나처럼 삶을 바쳐 할 수 있는 사람이 오고, 잘해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뮤지컬은 앙상블이 중요한 만큼 너무 실력 없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서로 에너지를 끌어올려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곤란하다.
-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는 동료는 뮤지컬 대표 커플남인 남경주가 떠오른다.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상대 배우와의 호흡으로 1+1이 2가 된다면, 남경주씨와는 1+1가 10도 되고 100도 된다. 항상 상대배우의 컨디션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다. 후배 중에서는 최근 ‘레베카’로 공연하는 김보경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했다. 가수 출신인 옥주현씨도 열심히 하고 좋은 에너지를 가졌다. 남자 중에서 클래식과 방송쪽이었던 임태경씨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보며 물이 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나.
병원을 찾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산모만이 행복하게, 행복을 위해 병원을 가는 사람이지 않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아픈 환자처럼 수술대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다. 배우로서도 가장 몸에 좋은 것을 찾았다.
그것이 수중분만이었다. 외국 사례도 많이 찾고 공부했다. 당시 매일 하혈을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아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병원에 다녔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 본래 창조적이고, 도전적이고, 남다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나.
남이 한다고 똑같이 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다. 지금 유행하는 ‘배기 팬츠(baggy pants)’나 ‘똥 머리’ 등 내가 좋아서 했고 그게 상대적으로 빨랐던 것 같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나한테 맞는 것을 하는 것이 편했다. 뮤지컬도 그렇다.
누군가는 ‘똑같은 대본을 또 읽느냐’고 묻는데, 내겐 몇천 번 본 것도 매순간 다르다. 똑같은 단어도 슬프면 슬픈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그 느낌이 다르다. 어떤 날은 ‘이런 대사가 있었나’ 싶은 것도 있고 관객과의 호흡에 따라 매 공연, 매 장면이 달라진다. 매일 똑같은 작품을 해도 매일 도전이고 창조적인 순간이다. 그래서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이 궁금해진다. 몇 살까지 무대 위에 설 수 있을 것 같은가. 계획과 꿈을 밝혀달라.
아프지 않을 때까지 하겠다.(웃음) 11월에는 영화 ‘사랑과 영혼’을 뮤지컬로 제작한 ‘고스트’를 공연한다. 우피 골드버그(흑인 영매 오다메 역)가 되어 코믹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최정원으로 사는 인생도 즐겁지만 이렇게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뮤지컬 배우로 사는 한, 오늘 당장 죽는다 해도 괜찮다. 죽어도 좋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꿈은 할머니 역할을 할 때까지 무대에 서는 것,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있더라도 무대 위에서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 당장 죽더라도 후회 없을 정도라니 부럽다. 행복한 삶의 비결이 뭔가.
좋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다. 팬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었다.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버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밖에 없었는데 우연히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내가 애드립을 치면서 따뜻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고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없어서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제까지 내 팬이고 잘살고 있다. 나는 배우이지만 철학자라고도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는 불이 되고 물이 되고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로지 공연에만 몰두한다. 출연 계약이나 출연료 조정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공연에만 매진하려고 뮤지컬 배우 중 국내 최초로 매니저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개런티도 정확히 모른다.
나는 늘 최고의 출연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좋아서 죽을 만큼 온 힘을 다할 때 내게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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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은…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올해로 햇수로만 뮤지컬 인생 25년째다. 한국 뮤지컬 역사의 산 증인이자 여제로 불릴 정도로, 국내 주요 작품에 출현해 왔다. 2010년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현재 뮤지컬 ‘시카고’에서 여죄수 ‘벨마 켈리’역을 열연 중이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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