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을 만드는 과학자… 기술로 세상을 바꾼다
권 교수의 대표적 기술은 ‘초고속 확장형 생물검증 플랫폼’. 질병진단과 신약개발과 관련해 수없이 반복하는 실험을 작은 분석 키트 안에서 한꺼번에 수행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이다.
현재 안식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실과 실험실, 해외 학회, 그가 창업한 벤처기업 콴타매트릭스를 바쁘게 오가는 권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에게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 탓에 잘 알아듣지 못할 과학용어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재미’였다.
-‘초고속 확장형 생물검증 플랫폼’ 연구에 착안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요즘에 맞춤의학이라는 게 많이 발달을 해서 가시화되고 있어요. 가령 폐암이라고 하면 기존에는 전체적으로 쓰는 약이 있고 그 약이 맞는 환자가 10%쯤 되는 게 보통인데, 이제 각 개인에 맞는 여러 약을 만들어내게 된 거죠.
하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대량으로 똑같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승인받는 것도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정보와 기술이 발달해도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약이 나오기 어려워요. 그래서 이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하게 됐어요. 맞춤의학을 앞당길 수 있는 기술들인 셈이죠.”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의용공학을 전공했는데, 관심사가 바뀐 건가요.
“맞아요. 저는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정도로 그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창시절에도 전자공학박사가 되고 싶었고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때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40일 넘게 입원을 하게 됐어요. 그 때 MRI나 CT 이런 것들을 다 처음 보게 됐거든요. 이런 의료기기들이 신기하고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게 전자공학의 일부라는 걸 알았죠. 그걸 계기로 대학원에서 전공을 바꾸게 됐어요.
석사때는 휴대용 의료장치나 이런 걸 많이 연구하다가 박사 과정에서 바이오 센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쪽 연구를 많이 했어요. 포스닥(박사 후 과정)에서는 또 생명과학자(life scientist)들이 연구할 때 필요한 장치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됐고요.”
“그렇죠. 연구했던 것들이 다 쌓여서 나오는 거니까. 경계를 여러번 넘어보다 보니까 융합을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건 더 명확해졌죠. 새로운 걸 만들 때는 융합이 좋은 방법 중 하나죠.”
-서른 두살에 교수가 됐으니 천재라는 소리도 꽤 많이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천재라는 얘기는 별로 못들어 봤는데….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 태도는 좋은 것 같아요.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굉장히 몰입하는 편이고요. 그렇게 몰입할 정도가 아니면 아예 신경쓰는 걸 싫어하고요.”
-그럼 오로지 연구에만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좋아하는 게 되게 많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당구나 골프 치는 것도 좋아해요. 연구가 그 중에서도 재밌는 거죠.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미친 친구들은 아마 일주일에 100시간도 할걸요, 그런거랑 똑같은 거예요. 일의 특성상 몰입을 해야 하는 거니까, 사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딴생각 하면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가는 길 자체가 뼈를 깎으면서 간다가 아니고 즐기면서 간다는 거죠. 재미없는데 억지로 하면 몸이 고장나는 거거든요. 근데 몇십년을 해도 아무렇지도 안잖아요.”
-그래도 무슨 일이든지 오래 하다보면 하기 싫고 싫증날 때가 있지 않을까요.
“근데 연구는 그런게 없어요. 아무도 안해본 걸 하는 거고 계속 새로운 걸 도전하는 거니까. 융합연구는 끝도 없이 배워야 되고 그래서 싫증나진 않는 것 같아요. 재밌고 중독성 있는 일이고요, 여럿이 열심히 하다보면 친구가 되고 전우애같은 것도 생겨요. 워낙에 하는 일이 잘 안 되니까, 열 번에 아홉 번은 실패하거든요. 오히려 이런 과정에서 수련도 되고(웃음) 참을성도 길러지고 여러모로 좋아요.”
-젊은 교수님이라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을 것 같은데.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웃음). 격의없이 편하게 같이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저런거 만들어주기도 하고(권 교수는 기자의 등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뒤를 돌아보자 권 교수와 학생들의 얼굴 사진을 동그랗게 오려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대학원생들이 스승의 날 때 동영상도 만들어주고,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우리나라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이공계 좋다더라 하면 가고 의대 좋다더라 하면 가고.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걸 하고 싶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야 몰입해서 하고 재밌게 하고 잘 할 수 있고 그런 건데. 사회 통념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공무원하려는 학생도 많고 공기업 가려는 학생도 많고, 하겠다는 이유가 한전에 가서 우리나라 전력을 다 바꿔버리겠다 이런 거면 괜찮은데 그런 것도 아니고. 거기 가면 오래 안정적으로 벌 수 있으니까 선택한다는 거 자체가 좀 안타깝죠.”
-그런 맥락에서 새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강조하지만 우리나라가 창조가 가능한 제반 환경이 갖춰져 있나 하는 의구심도 들어요. 특히 교육적인 면에서요.
“완전 반대로 가고 있죠. 저도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아이들 교육시키면서 좌절인데. 왜냐하면 하도 이상한 걸 주위에서 다 하니까, 안하긴 뭐하고 하자니 제가 볼 때 이건 완전히 아닌 것 같고. 공산품 찍듯이 만들거든요. 자기를 파악할 시간도 없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갔다와서 학원가고 주어진 일을 하는데도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 됐기 때문에, 다양하게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자기를 알아가야 하는데 굉장히 수동적이 되는 거죠.”
-교수님의 최종 목표는 뭔가요.
“과학자로서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거죠.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얼마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의료비 부담은 나이가 들수록 커지고 그쪽 부분에서 혁신이 있어야 의료비를 낮출 수 있는 거고. 그게 결국 효율성 있는 맞춤 치료를 해야 한다는 건데, 거기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생명과학자들이 저희 툴을 쓰면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거죠. 망원경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결과가 나온 것처럼, 망원경 만든 사람이 그런 것들을 다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잖아요. 그런 툴을 만들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학생들이나 멤버들과 함께 도전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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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교수는…
1998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의대에서 의용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버클리 로렌스 국립연구소에서 나노기술 분야를 연구했다. 2006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지난해 서울대의 ‘창의선도 연구자’ 8명 중 한 명으로 선정돼 매년 2억5천만원씩 3년간 ‘특별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됐던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콴타매트릭스’라는 벤처 회사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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