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헌재는 법리보다 여론을 따랐다, 이번에는?

조선(朝鮮). 동성동본 혼인은 꿈도 못 꿨다.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패륜이었다. 1912년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1958년 대한민국 민법에 반영됐다. 세상이 조금씩, 꾸준히 변했다. 기본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법원은 계속 ‘금혼’으로 판결했다. 이걸 바꾼 게 헌법재판소다. 금혼 반대 여론을 받았다. ‘동성동본 금혼 조항 위헌’(1997년). 헌재가 이렇다. 여론을 수렴해 결정 한다. 대법원과 따로 헌재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대통령 탄핵은 어땠을까. ‘노무현 탄핵’의 여론은 시종일관 반대였다. 국회 의결부터 역풍이 불었다. ‘탄핵의 광기’라며 국민이 분노했다. 전국 여론이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섰다. 헌재도 ‘노무현 탄핵 기각’을 선택했다. ‘박근혜 탄핵’의 여론은 찬성이었다. 연설문 게이트, 최순실·최태민 게이트, 세월호 7시간, 블랙리스트.... 언론이 그 분노를 키워갔다. 탄핵 촛불 집회도 멈추지 않았다. 헌재도 여론과 같은 탄핵이었다. 매번 법리(法理)는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 지지 발언을 했다.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은 명백했다.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 율사들이 이 위법을 들이댔다. 하지만 헌재 결론은 여론과 같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팀도 화려했다. 헌재 재판관 출신까지 가세했다. 기본적으로 내우외환의 죄가 아니었다. 국정농단이 유죄로 확정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헌재가 내린 결론은 ‘탄핵’이었다. 두 탄핵의 공식은 ‘헌재=여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됐다. 담화로 법리 대응을 천명했다. ‘야당 횡포에 맞선 선택이다’,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다’,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 이 주장에 동조하는 이도 많다. ‘입법 횡포가 계엄을 유발했다’, ‘내란죄 구성 요건에 안 맞는다’. 헌재 재판관들의 이념 분포도 거론된다. 흥분이 잦아들면 법리가 보일 거라고도 한다. 여기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추억’도 있다. 직무정지를 법리로 이겼던 그다. ‘탄핵 기각’ 희망론이다. 하지만 더 많은 전망은 ‘탄핵 인용’이다. 헌재가 여론과 달리 가지 않을 거라고 본다. 윤 대통령 지지율 11%, 탄핵 찬성 75%, 내란 인정 71%, 여당 지지율 24%.... 한국갤럽이 13일 발표한 수치다. 이와 크게 다른 여론 조사는 없다. 이게 맞다면 이 순간은 ‘탄핵의 시간’이다. 오늘 결정한다면 ‘윤석열 탄핵’이 유력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윤 대통령은 헌재의 재판출석 요구서를 받지 않고 있고, 야당은 빨리 받으라고 난리다. 그래도 몇 달은 걸릴거다. 그때의 여론은 누구도 모르는 거고. 여론 대결은 벌써 시작됐다. 헌재가 찬반에 포위 당했다. 자유게시판 글만 5만건을 넘었다. 오프라인 대결도 총력전이다. 진보성향 단체가 매일 모인다고 했다. 보수성향 단체의 집회도 커질 전망이다. 칼럼이 이럴 때 가야 할 방향을 안다. ‘국론 분열은 안 된다’, ‘차분히 지켜보자’.... 하지만 그런 덕담이 씨도 안 먹일 상황이다. 헌재 결정과 여론의 관계가 경험 속 공식으로 나와 있다. 웬만한 국민이 다 눈치챘다. 말린다고 듣겠나. 헌정 76년에 딱 세 번 있는 대통령 탄핵이다. 그 세 번을 모두 기사(記事)로 쓰고 있다. 돌아보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충격에서 위기로, 위기에서 적응으로. 국회 탄핵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극단적 국론 분열로 가는 출발이었다. 여야 정치가 그 갈등을 조장했다. 색깔 다른 언론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은 정치·언론이 판 골을 따라 끌려갔다. 집회 열고 구호 외치고, 갈등하고 미워했다. 그 경험에 기대서 결과를 추측하면? 결정문이 작성될 미래 어느 날, 그날의 여론을 따라 방향은 정해질 것이다.

[김종구 칼럼] 계엄보다 이재명이 더 싫다는 사람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11%로 나왔다. 한국갤럽이 6~7일 실시한 조사 결과다. 눈에 띄는 것은 무응답의 소멸이다. ‘지지도 반대도 아니다’가 단 1%다. 평가에 망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표는 부정(86%)으로 몰려갔다. TK, 50대 이상까지 돌아섰다. 돌아설 민심은 다 돌아선 셈이다. 그래서 ‘11%’가 궁금하다. 계엄군(軍)을 찬양하는 것일까. 아님 여전히 놓치 못하는 연유라도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게 뭘까. 7일 밤, 국민이 모였다. 국회 앞 국민은 촛불을 들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경찰 추산 15만9천명이었다. 그 시각 광화문에도 국민이 모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이다. 경찰 비공식 추산 집계로 2만명이었다. 15만9천명이야 대세라 치자. 여기서도 궁금한 건 탄핵 반대 2만명이다. 탄핵 표결이 무산되자 ‘이겼다’며 환호까지 나왔다. 설마 계엄이 승리했다고 부른 만세는 아닐 것이고. 이 환호의 의미는 또 뭘까. 복잡한 문제 아니다. 계엄도 싫지만 이재명이 더 싫은 거다. 광화문 구호에서 다 드러난다. ‘이재명 구속하라’ ‘종북세력 작살내자’ ‘계엄령 내린 대통령보다 민주당 횡포가 더 화난다’…. 이재명 대표가 싫은 것이다. 여기에 싫은 사람이 또 있다. 조국 대표다.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검찰은 내란 수사에서 손을 떼라.’ 거친 반응이 쏟아진다. ‘대법 판결 받고 감옥 가라’ ‘더러운 입 놀리지 말라’…. 계엄보다도 싫은 조 대표다. 지금 여론은 ‘86%와 16만’이 끌어가고 있다. 윤석열을 식물 대통령으로 밀어냈다. 국민의힘을 폐족(廢族)으로 내몰았다. 대세를 견인하는 7년 전 기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사건’의 프로세스다. 2016년 12월 9일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고, 2017년 5월 9일 대선이 치러졌고, 야당 후보가 무혈입성 하듯 당선됐다. 그 흐름의 반복이라면 대통령은 이재명이다. 비명(非明)은 사라졌고 중도도 투항 중이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이재명 싫다’는 그들이다. 그들이 기대하는 희망도 있다. ‘5월 게임’이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인 이 대표 선거법 사건이다. 3심까지 유지되면 출마 못한다. 그 경계 시점이 5월 말이다. 국민의힘의 ‘질서 있는 퇴진’도 결국은 이 고민이다.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재판 연기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형량이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이걸 붙잡고 있다. 그만큼 이재명 대통령이 싫은 거다. 정치적 소신이다. 집회의 자유도 있다. 다만, 그들도 답답한 게 있다. 그날 밤, 윤 대통령이 말했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국민은 없다. 이재명 대표를 지목한 것일 거다. 5개 재판을 받고 있으니까. 조국 대표도 지목한 것일 거다. 항소심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있으니까. 명백한 오류고 과한 표현이다. 법률 전문가인 대통령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모를 리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이재명·조국을 범죄자로 명명했다. 국회를 범죄자 소굴로 확정지었다. ‘반(反) 이재명’ 국민의 논리도 이것을 빼 닮았다. ‘범죄자 이재명’이라고 외치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은 안 된다’는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이제 대통령 본인을 옭아 멨다. 내란 혐의 고발이 들어왔다. 고발 됐으니 사건 번호가 붙었다. 자연스런 입건(立件)의 절차다. 이런 통상의 명칭을 언론은 ‘현직 대통령 최초 입건’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범죄자로 몰렸다. 그의 논리니 할 말도 없다. 범죄자 이재명, 범죄자 조국. 그리고 범죄자 윤석열. 모두가 범죄자가 됐다. 2022년 대선 경선(競選), 홍준표 경선 후보가 말했다. “(윤석열·이재명) 누가 돼도 한 사람은 잡혀가게 될 이상한 선거다.” 그리고 2년 반 만이 지났다. 우려는 최악으로 다가 왔다. 수사는 둘 다 받게 됐고, 거리는 다시 증오로 넘친다.

[김종구 칼럼] 이 와중에 ‘윤석열은 우리가 잡겠다’는 검경 싸움

휴대전화 확보는 모든 수사의 기본이다. 휴대전화를 숨기는 건 피의자의 기본이다. 그만큼 휴대전화의 증거능력이 절대적이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수사는 더욱 그렇다. 12월3일 밤 모든 게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휴대전화를 두 기관이 나눠(?) 가졌다. 검찰 특수본이 8일 새벽 한 대를 압수했다. 김 전 장관을 긴급체포하면서다. 경찰 특수단은 8일 오전 다른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김 전 장관 집, 사무실 압수수색을 통해서다. 메신저 등 대화 확인을 위해 포렌식이 필요하다. 검찰 특수본과 경찰 특수단이 따로 한다. 정보 등을 공유할 계획은 전혀 없어 보인다. 기자들의 취재가 양쪽을 동시에 향한다. ‘어느 쪽 휴대전화에서 증거가 잡힐까’. 이게 무슨 컴퓨터 수사 게임도 아니고. 검경의 포렌식 경진대회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던 내란 수사다. 현직 대통령을 입건한 전대미문의 수사다. 이런 수사에서 벌어지는 증거 쟁탈전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12월3일 밤까지 윤석열은 인사권자였다. 검찰총장도 임명했고 경찰청장도 임명했다. 부장검사 인사, 총경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랬던 인사권자가 권력을 잃었다. 임기마저 남의 손에 맡겨 놓은 처지가 됐다. 내란이라는 어마무시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 수사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맞붙었다. ‘성역 없는 관련자 엄벌’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 그 대상은 ‘윤석열’이고, 그 엄벌은 ‘구속’이다. 결국 ‘우리가 윤석열 잡겠다’는 싸움이다. "윤통도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거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올린 글이다. 문맥으로 봐 한동훈 저격용 같다. 검경을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건 그렇게 볼 사안도 아니다. 국가원수의 내란 혐의를 파헤치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을 소환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 구속이라는 상황도 상정돼 있다. 이런 수사에 ‘휴대전화 쟁탈전’이 말이 되나. 국방장관 신병 달라, 못 준다고 싸울 건가. 장군(將軍) 먼저 체포해 가기 경쟁이라도 할 건가. 수사가 복잡하지 않다.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범죄 모의를 파악할 대상과 절차가 간단하다. 선포 이후의 활동도 두 세 시간이었다. 국회와 선관위 등에서만 상황이 있었다. 명령 흐름 단계가 비교적 간단하다. 대통령 윤석열, 국방장관 김용현, 계엄사령관 박안수, 특수전사령관 곽종근,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 방첩사령관 여인형이 수사 대상이다.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도 대상이다. 언론에는 이미 많이 나왔다. 법률 검토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우선 계엄 선포의 위법성은 수없이 제시됐다. 헌법 77조에 그 내용과 정도가 잘 적혀 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그날 밤 우리나라에는 어떤 비상사태도 없었다. 계엄이 국가에 끼친 내우외환의 예는 널려 있다. 쏟아지는 외신(外信) 보도가 그 단면이다. ‘대만에 더 뒤처질 위기’(블룸버그), 투자 리스크 증폭(모건스탠리)…. 환율 폭등과 주식 폭락도 증거다. 벽(壁) 없이 갈 수사다. 어쩌면 수사 속도가 정치 속도를 따라 잡을 수도 있다. 대통령 소환이 모두의 짐작보다 빠를 수도 있다. 이걸 검경 수사권 논쟁이 막고 있다고 보지 않나. 검찰은 경찰의 사건 관련성을 얘기한다. 특수본 본부장이 “이 사건에서 가장 관련자가 많은 데가 경찰”이라고 했다. 실제로 위법성이 확실한 국회 통제에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도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그렇다고 검찰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법무장관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많다. 검찰 출신 대통령에 대한 정서적 불신도 있다. 검경 누구든, 서로 내칠 입장이 아니다. 12·3 계엄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거기엔 대통령의 탐욕이 있었다. 계엄 수사권 충돌도 그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여기엔 검찰과 경찰의 기관 탐욕이 있다.

[김종구 칼럼] 대통령 윤석열의 남은 길, 통합 위한 밀알

현실 정치에서 저만치 떨어져 지낸다. 정치도 여론도 그를 잊어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12월3일 밤은 충격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대통령 윤석열’.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중단하고 일어섰다. 급한 마음에 국회로 차를 몰았다.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있었다. 다시 용산으로 차를 돌렸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다시 돌려 왔지만 역시 조용했다. 그렇게 대통령실 앞을 세 번 오갔다. 그가 말했다. “큰일났다. 통합해야 한다.” 다들 그랬다. 처음에는 공포였다. ‘계엄 선포’, ‘계엄군 통제’, ‘영장 없이 체포’, ‘위반 시 처단’…. 기자들에게는 ‘언론 출판 계엄군 통제’까지. 3시간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를 했다. 계엄군이 고개를 숙이며 돌아갔다.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심장 박동을 두드리던 공포는 누그러졌다. 대신 그 빈자리에 분노가 채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분노였다. 밝아 온 12월4일 구호는 이미 정해졌다. ‘윤석열 탄핵’, ‘윤석열 처벌’. 이때까지는 ‘안쓰러운 이해’도 있었다. 비상 계엄 선포의 이유를 두둔하는 논리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나왔다. 김민전 최고위원이 ‘야권의 무도함을 알리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울먹였다. 인요한 최고위원은 ‘야당이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에게 몰아붙인 점을 기억하자’고 했다. ‘정치가 아닌 의사로서의 소견’이라고 했다. 20% 미만 지지층의 측은지심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는 동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나 이런 배려도 한순간 사그라들었다. ‘국회 무력화 기도’다. 계엄군의 첫 번째 작전은 국회 점거였다. 계엄하에서도 국회 탄압은 안 된다. 이 자체가 계엄법 위반 행위다. 여기서 더 나간 주장도 나왔다. 중요 정치인에 대한 체포 시도 주장이다. 그 속에 놀라운 대상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와 한 몸인 여당의 한동훈 대표다. ‘무도한 야당의 횡포’가 계엄의 사유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여당의 대표를 체포하려 했다. 말이 되나. 체포 지시가 있었네 없었네 말은 많다. 하지만 한 대표를 체포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 대표도 윤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 돌아온 답은 ‘그랬다면 계엄군이 포고령 위반 때문에 그랬을 것’이었다. 국민의힘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정치 목소리는 사라졌다. 조기 퇴진을 위한 로드맵이 공식 화두가 됐다. 7일 국회가 탄핵을 의결했다. 불발됐지만 또 한다고 한다. 탄핵 또 탄핵…. 정권은 이미 무력화됐다. 그날, 모두가 봤다. 국민이 둘로 갈라졌다. 국회에 온 국민은 탄핵 찬성을 외쳤다. 광화문에 온 국민은 탄핵 반대를 외쳤다. 탄핵 좌절에 눈물을 흘리는 국민이 있었다. 탄핵을 항의하며 몸에 불 붙인 국민이 있었다. ‘12·3 계엄’이 잘못됐음은 모두가 안다. 위법성과 무모함을 토론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국민은 둘로 갈라졌다. 이 이유를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계엄 정국이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大選)의 셈법이다. ‘탄핵 찬성’. ‘이제 대통령은 이재명이다’는 목소리가 있다. ‘탄핵 반대’. ‘죽어도 이재명에겐 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있다. 계엄 정국에 더해진 대선 전초전. 경험 못한 분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서두(序頭)의 화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의원, 장관, 지사, 당 대표를 했던 그다. 무력하게 헤맸다는 3일 밤 광화문 거리다. 그의 우려가 사흘 만에 현실이 되고 있다. ‘국민 분열이 걱정이다. 통합해야 한다.’ 숱하게 들었던 ‘통합’. 지금처럼 무거웠던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임기를 정치권에 맡겼다.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에게도 마지막 명령권은 있다. 이 혼란을 초래한 계엄에 속죄할 명령, 그 자신을 향한 명령이다. ‘국민 통합의 밀알이 되겠습니다.’ 그 내용·방식은 정해져 있다. 국민도 알고, 대통령도 안다. 그걸 그가 하면 된다.

[김종구 칼럼] 계엄 정당성에 의료 사태를 써 먹다니

탄광 정리를 결심하고 있던 대처 수상이다. 우려했던 강성 노조위원장이 선출됐다. 진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탄광이 파업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석탄 발전소다. 석탄 재고량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동력자원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탄광 파업이 시작되면 시위대가 석탄 반출을 막을 것이다. 발전소로 수송이 가능한 위치에 석탄을 가져다 놓아야 했다. 기름, 원자력, 가스 발전소도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준비한 대처의 승리로 끝났다. 대처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가 소신으로 꽉 찬 방향성이다. 강성 노조를 내부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이들을 눌러야 영국병을 치유한다고 했다. 이 판단에는 토론이 필요 없었다. 직(職)을 건 통치 판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준비된 추진력이다. 노조가 기마병 진압에 항의했다. 다음에는 탱크를 보내겠다고 답했다. 괜한 허풍이 아니었다. 발전소를 충분히 돌릴 석탄을 이미 쟁여 놨다. 노조가 꺼낼 무기를 미리 빼앗은 것이다. 1984년 영국 탄광 사태와 2024년 한국 의료 사태. 출발은 닮았다. 정부 의지가 분명했고, 여론 지지가 높았다. 2025년 의대생을 2천명 늘린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정부의 과업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여론이 지지를 표했다. 의료개혁이 80%, 의대 증원이 70% 언저리였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보는 눈은 싸늘했다. 의료계 ‘험악한 입’도 고립을 자초했다. 금방이라도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 여론이 변한다. 의료 파행 장기화에 대한 여론을 물었다. 정부·여당 책임 49%, 의료계 책임 35%다(엠브레인퍼블릭 조사·10월 말). 불과 4개월여만에 반전이다. 의료개혁 자체에 대한 지지가 바뀐 것 같지는 않고. 결국 사태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다. 전공의 집단 사퇴가 줄을 잇는다. 사실상의 진료 거부가 횡행한다. 의대생들은 계속해 수업을 거부한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은 없다. ‘의료계 위법에 엄정 대응’이라던 대통령의 경고는 오간 데 없다. 그 사이 등골이 오싹할 통계들이 쏟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5월 통계도 그 중 하나다. 외래·입원 진료 환자가 209만명 줄었다. 전년 대비 -1.8%다. 진료 후 사망한 환자는 2천명 늘었다. +2.9%다. 의료 공백 결과가 아니라고 할 텐가. 그러면 우리 옆에서 벌어진 참상은 어찌 설명할 건가. 수원에 사는 16살 A군이 쓰러진 건 지난달 15일 0시다. 병원 4곳에서 받기를 거부했다. 6시간을 헤맨 끝에 수술에 들어갔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응급실 자리가 없다’ ‘수술 인력이 없다’…. 환자 가족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겠나. 생떼 같은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다. 그의 절규가 듣는 이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남편이 저한테 그냥 보내주자 했어요. 고생했으니까 보내 주자고.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고.” 병원을 못 찾던 순간을 설명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이러다 잘못되겠다. 결국은.” 진료 거부인가. 의사를 입건(立件) 조사해야 한다. 의료 공백인가. 주무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탄광 노조가 석탄을 끊을 걸 알았다. 그래서 대처 수상은 석탄을 쟁여 놨다. 그래서 밀어붙였고 영국을 살렸다. 의료계 파업을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정책 집행은 밀리고 환자는 죽어 나간다. 대책이 이 정도로 없을 수 있나. 그 없던 대책이 황당한 곳에서 튀어 나왔다. 3일 밤 새벽 계엄 포고문 1호다. ‘전공의들은 즉각 복귀하라’며 처단하겠다고 했다. 의료 개혁을 계엄 정당화에 써 먹겠다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아픈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윤석열 정부의 파국, 그 끝에서 의료 정책 무능을 본다.

[김종구 칼럼] 차라리 AI 법관을 모시든지

A는 작은 기업의 상무로 재직 중이다. 공직에 있을 때는 노조위원장을 했다. 노조의 흔한 정치적 성향과는 다르다. 정치를 즐겨 입에 담지 않는다. 그래도 어제는 정치가 술안주로 등장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인 재판 얘기였다. 현직 공무원 B와 C는 듣기만 했다. 박사 D와 필자가 주로 말했다. 이재명 무죄가 옳은가 유죄가 옳은가. 막판에 A가 말했다. “이래도 싸우고 저래도 싸우고, 이럴거면 AI로 재판하는 게 좋겠다”. 술자리 해답은 그걸로 채택됐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법관이다. 이재명 대표 사건에 대해 판결도 이미 내렸었다. 위증교사 사건만 쭉 모은 통계를 들이댔다. 2022년 이후 위증교사범의 83.1%가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었다고 소개했다. 실형 비율이 35.2%라고 했다. 최근 내려진 판례도 등장했다. 지난 6월 전 안산시장 P의 재판 결과다. 위증교사를 시킨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논리의 끝은 ‘이재명 징역형’이다. 근데 틀렸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여기서는 유무죄를 논하지 않겠다. 최종심이 남았고 변수도 많다. 다만, 유죄 예측의 근거를 좀 보고 가려 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건이 있나. 위증교사가 1만건이면 1만건 다 다르다. 83.1%와 이재명 사건은 무관하다. P시장의 예도 그렇다. 당시 판결문에 이런 부분이 있다. “피고인은 증인들에게 위증 연습까지 시켰다.” 증인과 통화했던 이 대표 혐의와는 다르다. 이 대표 유죄의 근거로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걸 보수정치, 유튜버들이 써 먹는다. 보름 전 선거법 위반 사건도 보자. 이 대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이 나왔다. 야권에서 재판이 잘못됐다고 난리다. 이 대표는 고(故)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했다. 이는 인식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반박했다. ‘골프 회동은 부인한 적도 없다. 하지도 않은 주장을 전제로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 직후 민주당에서 나온 입장이다. 야권 진영이 이 주장을 기초로 삼고 있다. 정치검찰에 놀아난 법원이라는 비난의 근거로 삼는다. 역시 유무죄는 말하지 않겠다. 이 역시 항소심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재판부의 판결문은 볼 필요가 있다. 이 대표 측의 주장을 하나하나 짚고 있다. 김 처장을 모른다는 주장은 그대로 인정했다. 부분 무죄라고 봤다. 그 대신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짚었다. “조작한 거죠” 등의 발언이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까지로 받아들여졌다’고 판시했다.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까지 붙이고 있다. 그런데도 야권은 딴소리다. 정치권이 왜 이러는지 뻔하다. 여론을 몰고 가려는 작전이다. 여론 재판으로 옥죄려는 술수다. 불행히도 이런 수가 통하는 세상이다. 이제 재판부 뭉개기는 충성 경쟁의 척도다. ‘위증교사는 100% 유죄로 바뀔 것이다’-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다. ‘선거법 항소는 반드시 무죄가 될 것이다’-진보 진영의 영웅이된다. ‘항소심을 겸허히 기다리자’고 썼다간 좌우에서 몰매 맞기 딱이다. 정치가 법치의 모든 걸 빼앗았다. 판결의 신뢰, 판사의 권위 다 없어졌다. 8년 전인가. 바둑에서 알파고를 만났다. 인간계(界) 최강 이세돌 기사와 붙었다. “아직은 AI가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 그의 자신감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세돌 1승, 알파고 4승. 세계 바둑계 어디서도 이 승부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세돌은 3년 뒤 바둑계를 떠났다. 그가 지난 7월 NYT와 인터뷰를 했다. “인간의 창의성, 독창성, 혁신성도 AI 등장으로 사라졌다.” A가 툭 던진 AI 법관이 해법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동의는 하루도 못 돼 철회됐다. 한국 정치가 AI 법관인들 가만두겠나. 좌파 AI, 우파 AI로 가르려 들 텐데.... 아예 AI 법관의 코드를 뽑자고 덤빌지도 모르고. 정치가 만들어가는 법치 망국이다.

[김종구 칼럼] ‘3호선 연장’ 날아갔고 핑계만 남았다

전해진 13일 상황은 이랬다. -도청사에서 시장군수협의회가 열린다. 후반기 의장 등 선출을 위한 자리다. 용인시 직원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경기도청 직원이 이걸 강제로 빼앗으려 한다. 두 공무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를 본 용인시장이 항의한다. 빼앗겼던 피켓을 다시 찾아온다. 이후 김동연 도지사가 행사장에 들어선다. 이 시장이 김 지사에게 항의한다.- 도(道)와 시(市) 공무원 간의 몸싸움이었다. 도대체 어떤 피켓이었을까. 별 것 아니다. 시장 4명과 도지사가 활짝 웃고 있다. 광역철도망 추진을 위한 협약 사진이다. 언론에 나온 지도 오래인 이걸로 싸웠다. 바로 이상일 시장의 도지사 공격용이라서다. “협약 때 도민에게 한 시간씩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중앙부처에 건의도 앞장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사업 순위에서 뒤로 밀었다”, “이제 4개 시장과의 미팅도 기피하고 있다”.... 경기남부광역철도망 구축 사업 얘기다. 김 지사가 어쨌길래. 도와 협약이 있었던 건 지난해 2월이다. 그 후 4개 시가 공동용역을 했다. 경기남부광역철도 노선을 도출했다. 서울종합운동장역에서 화성까지 50.7㎞다. 4량 정도의 전철로 운영하는 안이다. 예상 사업비는 5조2천70억원 정도다. 비용대비편익(B/C)이 1.2다. 사업성 있다는 값이다. 이걸 도에 올려 국토부 건의를 부탁했다. 그런데 경기도가 건의에서 후순위로 밀었다. 민선 8기에 가시화되기 어려워졌다. 정말 도는 성의가 없었을까. 이쯤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성남·용인·수원·화성시장이 서울에 갔다. 전철 연장의 키를 쥔 오세훈 시장이다. 자존심 버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거기에 김동연 지사는 없었다. 수도권 단체장끼리 면식이 많다. ‘시골 시장’들 가는 데 거들어 줬으면 좋았다.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김종구 칼럼: 김 지사는 거기 왜 안 갔나·2023년 5월4일). 이 시장의 원성이 근거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김 지사 무성의만 문제였을까. 꼭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경기남부광역철도 구상의 등장 배경이다. 2023년 2월 협약식의 행사명은 이런 거였다. ‘서울 3호선 연장·경기남부광역철도 추진 협약식’. 그 앞서 2022년 6월 시장선거의 공약엔 이런 게 있었다. ‘3호선 연장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렇다. 선거 당시 공약은 ‘3호선 연장’이었다. 이게 당선 뒤 조금씩 바뀌었다. 협약으로 남부광역철도가 끼어들더니 용역으로 3호선 연장이 사라졌다. 요상한 흐름 아닌가. 첫 공약은 3호선 연장이었다. 이게 물거품이 됐다. 두 번째 대안이 광역철도망 구축이었다. 이것도 요원해졌다. 그럼 책임에도 순서가 있다. 3호선 연장 불발 책임이 먼저다. 경기남부광역철 지연은 다음이다. 당연히 먼저 따질 건 3호선 연장 불발이다. ‘3호선 연장 공약이 불가능해졌습니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4명 시장 누구도 이런 실명을 안 한다. 대안이었던 광역교통망 문제만 강조한다. 이런다고 유권자의 기억도 없어지나. 시장들의 책임은 명확하다. ‘3호선 연장’은 끝난 얘기였다. 용역 결과 사업성 없었고, 기지창 부지 없었고, 서울시 계획 없었다. 민선 7기가 확인했고 손 털었다. 그걸 이 ‘시장’들이 다시 들고 나왔다. 희망 고문의 부활이었다. 우려는 맞았다. 3호선 공약은 사라졌다. 사과해야 한다. 무모한-유권자를 우롱한- 공약에 대해 사과 해야 한다. 그런데 안 한다. 지사와 싸우고, 장관과 사진 찍고, 성명서 뿌리고 있다. 핑계 자료 쌓아가는 중일까. ‘3호선 축 여론’은 냉정하다. 4년 허송에 또 2년을 속았다. 경기도 대안? 광역교통망 구축? 그런 거 모른다. 오로지 ‘3호선 연장’만 따질 것이다. ‘3호선 오나 안 오나, 못 지킬 약속 왜 했나’. 여기에 무슨 핑계가 통하겠나. 통렬한 사죄 말고는 답 안 보인다.

[김종구 칼럼] 돈 벌 대통령, 돈 쓸 대통령-트럼프 교훈

우리에겐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 돈을 벌어올 사람으로 여겨졌다. -현대에 취직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능력을 발휘해 고속 승진을 했다. 본인 결혼식에도 회사 일 때문에 늦었다. 세계 공사판을 누비며 외화를 벌었다. -여기까지가 일반인 유권자가 아는 이명박이다. 더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돈 벌어올 대통령감이면 족했다. 때마침 상대는 자칭 폐족(廢族)이었다. 역대 가장 압도적 표 차이가 났다. 박근혜 후보에게도 비슷한 기대는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향수였다. 여전히 인기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가발 수출’, ‘독일 광부·간호사’, ‘중동 건설’.... 외화벌이에 모든 걸 걸었던 지도자다. 아버지의 피가 안 있겠냐는 기대였다. 문재인 후보와의 박빙의 승부에서 이겼다. 하지만 벌어온 돈 없이 탄핵됐다 -탄핵 얘기를 여기서 따질 것은 아니고-. 그 후 ‘돈 벌어올 보수 후보’가 있었을까. 홍준표·윤석열 후보. 둘 다 아니었다. 민주계, 진보 진영은 더 없다. ‘돈 쓰겠다’는 선거로 일관했다. 2010년 즈음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의 등장이었다. 말은 그럴싸한데 결국 돈 쓰자는 거다. 밥 주겠다, 교복 주겠다, 지원금 주겠다.... 밥값, 옷값, 현금 퍼주기다. 나라 곳간에서 돈 빼 먹자는 정책이다. 그 곳간을 채우겠다는 목소리는 없거나 묻혔다. 임금 인상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소주성’까지 등장했다. 이제 한국 정치가 트럼프 현상과 만났다. 미국 표심의 쏠림이 충격적이다. 우리에게 닥칠 파고가 걱정이다. 너도나도 트럼프를 끌어다 붙인다. ‘김종구 칼럼’도 방향을 잡아봤다. 내게 별다른 정보가 있을리는 없다. 가장 일반화된 주제다. ‘트럼프는 경제동물이다’, ‘트럼프는 타고난 협상가다’, ‘트럼프는 돈 앞에 피도 눈물도 없다’. 막말, 파격까지 다 덮어 버린 트럼프의 무기다. 표심은 자명하다. ‘돈 벌어올 대통령’을 뽑았다. 트럼프의 시작은 2016년이다. 세계를 향해 금전 독촉장을 날렸다. 우방이건 동맹이건 필요 없었다. ‘(한국·일본은) 자발적으로 미군 주둔 비용을 올려라. 한국은 50억, 일본은 80억이다. 달러($)다’, ‘나토가 돈을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게 될 것이다’. 돈과 공장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성과는 수치로 확인됐다. ‘2017년 일자리 210만개 창출, 실업률 4.1% 감소’. 미국 민주당은 그때부터 질식했다. 우리도 트럼프를 말하고는 있다. 그런데 목적에 따라 방향이 제각각이다. 사법리스크를 이겨낸 트럼프, 더불어민주당 목소리다. 정통 보수의 승리,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반은 공감하고 반은 반대한다. 왜 안 그렇겠나. 어차피 두 쪽으로 갈린 진영논리다. 비틀 필요 없다. 세상 다 아는 교훈 그대로 받으면 된다. 수출을 늘릴 후보, 일자리를 만들 후보, 실업률을 떨어뜨릴 후보. 그게 트럼프였다. 우리 정치가 배워야 한다. 11일, 이재명 대표는놀라운-적어도 내게는-발언을 한다. “성장이 곧 복지다.” 경제인과 만난 자리였다. 복지 지상주의자로 알았는데.... 언론은 ‘이재명의 우(右)클릭’이라고 쓴다. 트럼프 승리에서 배운 것 아닐까 싶다. 반면, 국민의힘은 조용하다. 미국 보수에 올라탈 만도 한데.... ‘돈 버는 트럼프, 한국 보수가 하겠다’고 할 법도 한데.... ‘퍼주기’ 흉내 10년, 보수의 본질까지 잊은 것 같다. 2024년 미국 대통령선거. 미국인의 선택이 얄밉도록 부럽다. 2027년 대한민국 대통령선거. 우리도 그런 화두로 덮이길 소망한다. -‘돈 벌 대통령’인가, ‘돈 쓸 대통령’인가-.

[김종구 칼럼] 한 대표의 김 여사 공격, 기괴하다

왜 하필 강화도를 찾았을까. 당선 사례라면 17일이어야 했다. 선거 다음 날 인사하는 거다. 한동훈 대표는 22일에 갔다. 하루만 지나도 썰렁한 선거판이다. 6일 늦은 방문이 흔한 일은 아니다. 세상은 그 의도를 다 알고 있다. 대통령과의 회동이 21일이었다. 빈손 회동, 모욕 회동.... 언론에서 굴욕적인 평가가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그게 강화도 방문이었다. 의미심장한 한마디도 남겼다. “이제부터 국민만 보고 가겠다.” 10·16 승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당 대표? 섣불리 재단할 게 아니다. 정답도 오답도 없다. 굳이 따진다면 기준치는 있다. 보궐선거 득표율이다. 당(黨)·정(政) 지지율은 30%, 20% 근방이다. 승리한 두 곳의 득표율이 다 높았다. 강화군수 국민의힘 후보는 51%다. 금정구청장 국민의힘 후보는 61%까지 갔다. 윤석열 정부, 한동훈 정당의 지지율과 동떨어진다. 이러다 보니 해석이 많다. 서로 끌어다 붙이기 좋다. 한 대표는 본인의 승리로 해석한 모양이다. ‘굴욕적 회동’ 직후 방문이 그렇게 보였다. 또 다른 승리의 땅, 금정구도 찾았다. ‘민심을 받들어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해석은 다른 듯하다. 압승 직후 통화가 알려졌다. “거봐, 열심히 하면 된댔잖아”. 박수영 의원이 받은 눈치다. 그 금정구를 대통령이 찾아갔다. 한 대표가 강화에 가던 날이다. 대통령 역시 승리의 땅에 징표를 남기고 왔다. 결과는 시간차로 중계된 결별의식이었다. 거기서 대통령의 범어사 발언이 있었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업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업보’에 해석이 제각각이다. 누구는 검찰총장 시절 수사를 얘기한다. 권력을 겨눴던 수사의 추억이다. 누구는 국민의힘으로의 합당을 얘기한다. 권력을 향한 변신의 추억이다. 답은 화자(話者)인 윤 대통령만 알 것이다. 토론 없이 짐작될 건 하나 있다. 모든 업보는 김건희 여사에서 증폭됐다는 점이다. 주가조작, 핸드백, 명태균, 공천개입.... 한 대표가 이걸 직격하고 있다. (김 여사가) 공식 석상에서 물러나라고 한다. (김 여사의) 측근들을 정리하라고 한다. (김 여사 살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고 한다. 오늘(30일)도 또 나아갔다. “국민 우려를 과감히 해결하겠다.” 나쁘지 않은 정치 승부다. 민심은 윤 대통령을 떠났다. 김 여사 의혹에 대한 분노다. 그 표심에 향한 구애가 필요하다. ‘김건희 지우기.’ 그걸 한 대표가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어색하지 않나. 한 대표가 김 여사를? 2020년 7월29일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한동훈 검사장이 정진웅 부장검사에게 폭행 당했다. 한 검사장의 휴대폰 비밀번호 때문이다. 김 여사와의 문자가 있다고 알려졌다. 한 대표는 끝내 열지 않았다. 그렇게 김 여사는 영부인이 됐다. 또 있다. 민주당이 도이치모터스 수사를 촉구했다. 이번에는 법무장관 한동훈이 막아섰다. “(전 정권 검찰이) 2년 간 수사했던 사건”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 장관 내내 김 여사 수사는 없었다. 문자 내용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게 감춰졌고 그 공은 한 대표라는 거다. 주가 조작 유무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 수사가 지연됐고 그 공도 한 대표라는 거다. 그 한 대표가 확 바뀌었다. 명태균 문자를 비판한다. 도이치모터스를 기소하라고 한다. 여론을 좇는 것이 정치인이다. 다수 여론이 그렇게 간다. 하지만 그게 한 대표인 건 기괴하다. ‘영부인 김건희’ 탄생의 기여자 아닌가. 수사 지연의 옹호자 아닌가. 먼저 받아야 할 질문이 있을 것 같다. ‘비밀번호 풀어 김 여사 문자 공개할 생각 없나’, ‘도이치모터스 수사를 막았던 이유는 정당했나’, ‘그래야 김 여사 공격이 정당하다고 보지 않나’. 여당은 곤란해서 못할 거고. 야당은 아끼느라 안 할 거고. 내 주위의 평민들만 모였다 하면 열심히 떠든다.

[김종구 칼럼] 김동연스러운 국감을 보다

삼겹살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식당 앞인데 취기는 시작된다. 동반자의 환한 얼굴이 보인다. 설렘으로 심장이 간지럽다. 윗분이 하는 권주사가 있다. “김 주필은 술을 마셔야 글이 잘 나온대.” 오늘에서야 얘긴데, 틀리셨다. 나는 글부터 써야 술이 맛있다. 어제도 사설 끝내고 식당으로 갔다. 그 흥겨움을 깨는 울림이 왔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다. 미간부터 찌푸려진다. 10년 넘게 생긴 관성이다. 퇴근 후 회사 전화는 나쁜 일이다. 아니면 귀찮거나. 예감에는 반복된 경험이 있다. 역시 그랬다. “사설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정 부장’의 걱정은 이랬다. 낮에 경기도 국정 감사가 있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출석했다. 그걸 쓴 사설인데 이런 제목이다. ‘여당 의원이 존경한다고 한 김동연 국감.’ 기자의 기사는 느낌이 달랐다. ‘민생 실종...이재명·김건희 재탕 삼탕.’ 같은 청문회, 달리 보이는 두 글이다. 사설 제목을 고쳤다. ‘非·反 이재명 피해간 김동연.’ 정서의 차이가 좁혀졌다. 술맛은 다 떨어졌다. 국감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없다. 경기일보 생중계를 종일 틀었다. 하나 얻어 걸리기를 기대했다. 국회의원과의 거친 설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 언론이 찾는 먹잇감이다. 여기에 김동연 국감만의 특수도 있다. 非이재명 또는 反이재명 발언이다. 중량은 달라도 둘 다 잠룡이다. 상호 견제가 인지상정이다. 최근 김 지사 입에서 잦아졌다. 부지런한 기자는 대략 써 놨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기대로 봤다. 그 국감에 대한 기자와 나의 품평이다. 취재 기자 평도 옳다. 민생이 사라진 국감이다. 서로 이재명·김건희에만 매달렸다. 했던 말 재탕하고 삼탕했다. 알맹이 없는 헛물 국감이다. 알고 보면 그럴 이유가 있다. 민주당 도지사다. 공격할 정당이 안 보인다. 행안위 22명 중 국민의힘은 8명뿐이다. 그나마 경기도 지역구는 한 명도 없다. 서초구 국회의원이 뭘 알겠나. 부산 국회의원들이 무슨 질문을 하겠나. 아는 것도 없고, 의욕도 안 보였다. 긴박감도 없었고,열기도 없었다. 맹탕 국감. 그렇다고 내 촌평을 철회할 건 아니다. 시청 어느 순간부터 관점은 달라졌다. 답변하는 도지사의 능력을 채점하게 됐다. 도정을 논함에 막힘이 없었다. 전날 패소한 일산대교 무료화를 묻자 이용자들의 실태와 필요성을 설명했다. 대북 전단 살포 대책을 물었더니 접경지 위험구역 설정 검토를 밝혔다. 반도체 클러스터 도로 질문에는 현황과 구상을 두루 밝혔다. 취임 전의 업무라고 빼지도 않았다. 채무 증가, 지역화폐 논란.... 다 상세히 답했다. 억지 이슈 만들기도 없었다. 언론은 非·反이재명을 기대(?)했다. 여기엔 9월에 던져 놓은 불씨가 있다. ‘전 국민 25만원’에 대한 이견이다. ‘어려운 계층 지원이 낫다’고 했다. ‘2020년 지원금도 소비랑 연결되는 게 높지 않았다’고도 했다. 여권은 환영했고 야권은 당황했다. 국민의힘이 다시 간극 벌리기를 시도했다. 예산편성권 침해 가능성과 소비 진작 효과 의문을 제기했다. 대답은 ‘문제 없다’, ‘소비진작 효과 크다’였다. 국감장은 조용해졌다. 질문이 맹탕이어도 답변은 충실했다. 재탕하는 질문에도 반복해 답변했다. 경청의 도리는 끝까지 지켰다, ‘유념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챙기겠습니다’.... 잘 못 들었을까-. 상대 정당에서 갑작스러운 말이 나왔다. ‘존경합니다’, ‘답변도 잘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이다. 그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청문이고 국감 아니었나. 언론이 난장 국감장을 부추긴 게 아닐까. 우리가 잊었던 표본이 이거일 수도 있다. 확 끄는 기사가 없으면 어떤가. 도민의 궁금증 많이 풀어줬는데. 정쟁이 없어 좀 닝닝하면 어떤가. 보는 국민 편하게 해줬는데. 어젯밤 괜히 제목을 바꿨다. ‘여당 의원이 존경한다고 한 김동연 국감.’ 그냥 둘 걸.

[김종구 칼럼] ‘주 4.5일제’를 왜 경기도가 선도하나

누구나 가는 여름휴가다. 앞뒤 섞어 일주일쯤 썼다. 곧이어 민족 명절 추석 연휴다. 9월16, 17, 18일 쉬었다. 국군의 날, 제헌절, 한글날이다. 10월1, 3, 9일 쉬었다. ‘퐁당퐁당 데이’라는 연휴다. 그 두 달, 일은 며칠 했을까. 9월은 31일 중 18일 했다. 출근 비율 58%다. 10월은 이보다 많아 21일 했다. 67%다. 솔직히 휴일 반납한 건 없다. 쉴 거 다 쉬고, 놀 거 다 놀았다. 그렇다고 찜찜함까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이런 생각이 여러 번 났다. 경기도가 주 4.5일제를 추진한다. 원래 경기도의 화두가 아니다. 민주당의 대선·총선 공약이었다. 노사의 예민한 화두이기도 하다. 그걸 경기도가 끌어왔다. 정확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끌고 왔다. 8월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구상을 밝혔다. ‘국가 어젠다화를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경기도가 하겠습니다’. 이후 사업 진행이 속도감 있게 가고 있다. 민간 기업 50개 참여를 결정했다. 기업에 장려금을 주는 방식도 만들었다. 이제 공론화다. 공청회를 열었다. 방향이 분명하다. 시민단체 패널이 제도의 장점을 강조했다. 중소기업 대표는 성공담을 소개했다. 오간 토론도 전제는 실행이다. 경기도 관계자가 시범실시의 내용을 소개한다. 격주 주 4일, 내년 1년, 민간 기업 50개, 금요일 반 근무.... 대략의 정책 방향으로 보면 될 듯하다. 12월까지 용역이 실시된다고 했다. 거기서 뭐가 더 나올지 모르겠다. 용역 방향이 이것과 다를 거 같진 않다. 이쯤 되면 내년 실시로 보인다. 참 빨리 간다. 김 지사가 ‘선도적 역할’을 말했다. ‘선도’를 푸는 통상의 뜻이 있다. ‘남보다 앞서’ 또는 ‘제일 먼저’다. 이 의미라면 선도는 제주도에 빼앗겼다. 7월1일부터 주 4.5일제 실시에 들어갔다. ‘13시의 금요일’이라는 닉네임도 자랑했다. 금요일 오후 1시에 퇴근한다는 얘기다. 억지로 ‘전국 최초’에 매달린 듯하다. 제주도와 행정시·공공기관만 시행한다. 그것도 의료원 등 일부 기관은 제외했다. 경기도는 50개 기업에 돈 주고 시행한다. 다를 것 없다. 더 무거운 주제도 있다. ‘주 4.5일제’는 그냥 정책이 아니다. 노동과 자본에 대한 정치적 현시(顯示)다. 그 자체가 정치이자 이데올로기다. 금융노조가 주 4.5일제를 파업 조건으로 걸었다. 쟁의행위 찬반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93.4%가 찬성했다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월에 설문을 했다. ‘제22대 국회에 전하는 경영인들의 바람’이다. 막아 달라는 첫 번째 요구가 주 4.5일 실시다. 이 예민한 선택을 경기도 행정이 하겠다는 거다. 왜. ‘놀 욕구’는 늘 ‘일할 욕구’를 누른다. ‘주 4.5일’은 뒤로 못 간다. 한 번 시작하면 ‘5일’로 못 온다. 산업 전반을 지배할 것이다. ‘주 5일 회사’로 누가 가겠는가. 모든 기업이 직접 또는 간접 영향권에 들어가는 거다. 소상공인도 그 속에 들어간다. 70만 경기도 소상공인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 35%가 망해 나갔다. 경쟁력 잃고 근근이 이어간다. ‘주 4.5일’이 달가울 리 없다. 그걸 왜 경기도가 앞서 부르짖을까. 베네수엘라에 크리스마스가 왔다. 올해만 10월1일이다. 마두로 대통령이 ‘명령’으로 베푼 선물이다. 2013년부터 두 번 연임했고 세 번째다. 산업 국유화, 무상복지 정책 등을 밀었다. 재임 중 물가상승률이 6만5천%다. 인구의 30%인 770만명이 고국을 떠났다. 이래놓고 또 하겠다며 버틴다. 민심이 동요하자 꺼내 든 공휴일 선물이다. 퍼주다 퍼주다 이제는 성탄절까지 퍼주는 나라다. 이제 국민이 안 받는 모양이다. AFP가 현지 시민 말을 옮겼다. “우유 살 돈도 없는데 무슨 공휴일이냐.”

[김종구 칼럼] CJ 대응, K-컬처밸리 원안에서 멀어지나

알려졌던 CJ 측 대응은 쟁송(爭訟)이었다. 피해 구제를 위한 재판을 준비했었다. 국내 굴지 법무법인 K였다. 7월 초 수임제안서가 오갔다고 한다. 법무법인이 CJ에 보낸 의향서다. 소송 전 법률 검토를 시작했다고 들렸다. 대략 8월 말 즈음 전언이다. 그런데 9월5일 깜짝 놀랄 발표가 나왔다. CJ가 관련 협약 해제를 통보한 것이다. 경기도의 협약 해제에 동의하는 법률 절차다. ‘장기간 소송에 따른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급전환이다. 여론-이 글에서 여론은 고양시민 여론이다-은 그때까지 CJ와 뜻을 같이했다. 그도 그럴 게, 해제는 경기도 결정이었다. 6월28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타당하고 충분한’ 사유가 있다고 했다. 그때 든 게 ‘CJ 의지 부족’이다. 지체상금 감면 문제를 거론했다. 여론과 CJ는 여기 동의하지 않았다. 국토부 중재가 있었고, 감사원 컨설팅 의뢰 중이었다.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해제를 선언했다. 여론은 경기도를 비난했다. 다 들고 일어났다. 시위에 내걸린 구호가 이거였다. ‘K–컬처밸리, 원안대로 추진하라’. 시민들이 말하는 원안은 뭔가. 32만6천400㎡짜리 컬처밸리다. 거기엔 아레나 공연장이 있다. 콘텐츠 경험시설, 문화 콘텐츠 업무 시설, 랜드마크 시설도 있다. 사업비만 2조원이 넘는다고 했다. 연간 250만명이 찾을 거라고 했다. 경제효과 30조원에 달할 거라고 자랑했다. 그 약속, 그 규모 그대로 추진하라는 거다. 사업 주체의 연속성은 당연했다. 다 CJ를 챙긴 이유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됐다. CJ가 경기도에 동의했다. 협약 해제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들어간 돈이 수천억원이라더니.... 법률적 쟁송도 각오한다더니.... 갑자기 경기도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묘한 제안을 섞어 넣었다. ‘공사가 진척 중인 아레나 사업을 최대한 신속히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공정 17%인 공연장은 계속 짓겠다는 거다. 말이 협의지 경기도에 부탁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고양시민 뜻이 아니다. 이쯤에서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다. CJ 측은 그동안 ‘공정 17% 추진 중’을 강조했다. 경기도는 ‘전체 공정 3%’를 얘기했다. 김동연 지사가 직접 ‘8년간 3% 공정’을 언급했다. CJ 측의 사업 의지가 부족하다는 근거였다. 같은 얘기인데 이렇게 달리 풀었다. 돌아보면 CJ는 아레나를 많이 챙겼다. 전체에서 떼어 내 아레나를 말했다. 그러더니 ‘그 아레나만은 하고 싶다’고 밝혔다. 상징성 크다지만 따로 떼어 논할 부분은 아닌데. 이해 안된다. 곧 경기도의회 특위가 시작된다. 계약 해제 과정을 살피겠다고 했다. 경기도의 잘못을 찾겠다고 했다. CJ 측 의견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CJ가 경기도에 동의했다. 법적으로 완벽히 끝나 버렸다. CJ에 들어줄 게 있는지 궁금하다. 피해 당한 을(乙)로 계속 볼지 의문이다. 더구나 아레나 사업을 도에 부탁하는 입장이 됐다. 특위-특히 도지사를 벼르는 쪽-가 원하는 증언이 나오기나 할까. 아마 없을 것 같은데. -협약 해제 받아 줄테니 아레나 공사 달라-. 이 말에 다 못 담을 경영적 고려사안은 많을거다. 하지만 여론에게는 그다지 달리 보이지 않는다. 고양시민들에게는 더 그래 보인다. 그렇다면 경기도의회가 CJ에 물어야 할 질문도 바뀌는 게 옳다. ‘CJ가 정말로 공사 지연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CJ에 지체상금 감면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가’, ‘공정 3% 업체가 공정 17% 사업만 떼 가는 특혜가 옳은가. 규정에도 없는데...’. 고양시민의 여름은 유독 더웠다. 160리 길 달려가 경기도에 항의했다. 펄펄 끓는 도로를 차량으로 덮었다. ‘원안 추진’을 향한 투쟁이었다. 거기서 기업이 떨어져 나갔다. ‘회사 이익 챙기겠다’며 반대로 갔다. 고양시민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지만, 비빌 곳은 점점 사라질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김종구 칼럼] 김동연 ‘25만원 견해’에 동의한다

고맙게도 칼럼을 읽어주는 구독자다. 그제 술자리에서 이런 지적을 들었다. “진보 진영 비판이 많은 것 같다.” 이념에 관심 없던 검찰 출신 ‘A’다. 모처럼 지적에 성의껏 대답했다. “절대로 진보의 가치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래된 원칙을 가지고 있다. 퍼주기 복지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거다. 이런 형태의 복지가 주로 민주당 쪽에서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주장도 써라.” 퍼주기 복지와의 전쟁. 세상 몰라주는 나만의 역사였다. 그 시작의 시기와 동기가 명확하다. 2009년이었고, 무상급식이었다. 한국 보편적 복지의 효시다. 복지 패러다임을 일순간 바꿨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반대를 썼다. 무책임한 퍼주기라고 지적했다. 복지 망국의 경쟁을 부를 거라고 비판했다. 말처럼 퍼주기 복지로 옮아갔다. 성남시 청년 배당이 등장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어 경기도 행정과 대선판에는 기본소득이 등장했다. 표심(票心)이 그쪽으로 갔다. 반대토론의 공간은 갈수록 좁아졌다. 무상복지 반대는 부도덕한 게 됐다. ‘그러면 아이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좀 더 지나자 금기어가 됐다. ‘감히 무상복지를 반대하나.’ 요즘에는 불경죄에 가까워졌다. ‘계속 토를 달면 손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십수년이다. 예산 구멍이 현실로 왔다. 경기도에는 기본소득 빚잔치다. 지역개발기금에서 3조원을 끌어다 썼다. 올해부터 2천억~4천억원씩 상환이 시작됐다. ‘잘 사는 경기도’도 옛말이다. 누적 지방채 추이가 심상찮다. 2022년 3조3천862억원으로 3조원을 넘었다. 2023년에는 4조5천676억원으로 또 늘었다. 당해 연도 발행액을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1년 이후 계속해서 1조원을 넘는다. 당연히 도민 1인당 채무액도 늘었다. 2020년 13만2천원에서 2023년 33만원까지 늘었다. 예산 대비 지방채 비율, 도민 평균 채무액이 잘 관리되던 경기도였다. 이런 기조가 위험해지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 지사는 도정 살림의 책임자다. 그가 엊그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국민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두텁고 촘촘하게 주는 것이 맞다... 2020년 재난지원금도 소비와 연결성이 높지 않았다... 13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 국민 25만원’ 얘기다. 이재명 대표의 공약에 대한 반대 견해다. 경기지사 이전에 경제부총리였다. 국가 살림을 책임지는 위치였다. 그런 그가 본 ‘25만원’이다. 논평할 자격 충분하다. ‘어려운 사람에게 두텁고 촘촘하게’. 새로운 기준이 아니다. 그의 도정에 이미 녹아 있다. 가난한 예술인, 못 버는 농업인.... 이들에 주는 김동연표 기회소득이다. 모든 예술인, 모든 농업인에게 주는 기본소득 조건과 다르다. 이런 기조로 해석하면 된다. 정치적 목적이 왜 없겠나. 그렇더라도 논리적 확신이 없다면 못 꺼냈을 거다. 그래서 그 논리만 떼어내 평해 볼까 한다. 이날 김동연 견해에 동의한다. 딱히 빼거나, 더할 부분도 없다. 아마 2010년 망년회였을 거다. 김상곤 교육감 측근과 나란히 앉았다. 그가 나의 무상급식 비판 논조를 희롱했다. “위험한 길을 왜 혼자 가려고 하세요?” 인정하기 싫지만 그 말은 맞았다. 그 이후 한국은 무상복지로 갔다. 모든 선거에서 퍼주기 복지가 승리를 담보했다. 언제부턴가 진보·보수의 구별도 없어졌다. 한쪽이 ‘30조’ 지르면 다른 쪽이 ‘50조’ 질렀다. ‘재원이 있느냐’는 지적은 가장 철없고 듣는 이 없는 객소리로 취급됐다. 그걸 알면서도 미련 못 버리고 쓴다. 이번에는 김동연 견해를 소재 삼는다. 경제부총리를 했던 전직 관료. 경기도 예산을 꾸리는 현직 지사. 이런 김 지사가 당연히 낼 법한 견해다. ‘13조원을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여기에 올라타서 쓴 답변을 독자 A에게 붙인다.

[김종구 칼럼] ‘경기지사 김문수’ 때 열정과 몰입이면

그가 스스로 말했다. “제가 689대 관찰사다. 조선시대부터 최장수다.” 불출마 이유를 돌려 말한 것이다. 말처럼 그는 최장수 경기지사였다. 2006·2010년 두 번 모두 당선됐다. 그전에는 부천 국회의원을 했다. 15·16·17대 총선에도 모두 이겼다. ‘경기도 정치인 김문수’의 성적표다. 경기도민은 어떤 선거든 그를 지지했다. 이제 그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됐다. 경기도민의 추억이 그래서 다른 곳과 다르다.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성명이 있었다. “김 후보자는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노동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노동계의 현안에 대해 지원하는 등 도지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를 좋아하지 않는 한노총이다. 경사노위위원장 때 세게 충돌했다. 노총위원장의 이런 지침도 있었다. ‘(김 위원장이 가면) 만나주지 마라.’ 그 한노총의 경기지역본부가 특별한 추억을 꺼낸 것이다. ‘소통 잘하던 도지사’. 그래봤자 결론은 부정적이다. ‘광장 정치인 김문수’를 말한다. 태극기 집회 등에서의 ‘강성 김문수’다. 반노동적 발언이 여럿 있다. ‘불법파업엔 손배 폭탄이 특효약’, ‘쌍용차 노조는 자살 특공대’, ‘노조는 머리부터 세탁해야 한다’.... 굳이 행간의 의미를 논할 것도 없다. 장관의 품격으로 안 맞는 말이다. 노동장관엔 더욱 안 맞는다. ‘소통 잘하던 도지사’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소통하는 장관’이 된다. 그가 했던 2010년의 이 말도 있다. “무상급식은 무조건 배급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교육감표 무상복지였다. 경기도에 600억원 청구서를 내밀었다. 여론은 찬성으로 쏠렸다. 이때 던진 ‘사회주의’ 발언이다. 진보 진영으로부터 맹폭을 당했다. 그 발언에 김 교육감이 말했다. “김 지사는 한번 시작하면 그 끝까지 간다. 학생운동 때도 그랬다”. 둘은 서울대 운동권 선후배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유일한 이념 언급이었다. 도정 8년에서 더 이상 이념 발언은 없었다. 이념 잊고 뛴 만큼 성과도 많았다. 지금의 GTX, 그때 처음 시작됐다. 역대 최대 삼성전자 고덕산단 100조원 투자, 그때 이뤄졌다. 광역단체 최초의 수출 1천억달러 달성, 그때 기록이다. 전국의 48%인 경기도 일자리 87만9천개 창출, 그때 성적이다. 행정에만 몰두했던 때다. 이념·일본 버리고 장관직에만 몰두해야 한다. 장관 청문회 직후 ‘톡’이 왔다. 홍승표 전 용인부시장이다. -퇴임 인사차 지사공관에 들렀다. “홍 부시장은 퇴임하면 연금 받지요?” “네”, “저는 선출직이라서 전직 국회의원 연금 120만원 빼곤 별다른 수입원이 없습니다.” 속으로 생각했다. ‘지사 퇴임 후, 생활 걱정을 하는구나?’ 아니었다. “그동안 꽃동네나 나자로마을 등에 수백만 원을 기부해 왔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청문회에서 딸 얘기가 나왔다. “내 딸은 도지사공관에 살지도 않았다.” 그 딸 혼인이 지사 때 있었다. 누구에게도 안 알려 아무도 몰랐다. 도지사 8년의 사생활이 그랬다. 골프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셨다. 실없는 농담은 하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았다. 그런 그를 출입기자들은 재미없어 했다. 여기에 임기 내내 들어야 했던 도정 구호가 있다. ‘청렴하면 살고 부패하면 죽는다(淸廉永生, 腐敗卽死)’. 아마 부패로 장관직을 망칠 것 같진 않다. ‘잘했던 도지사야...’, ‘인간미는 없었지...’. 추억의 방향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견 없는 평가는 있다. ‘깨끗했고, 부지런했고, 일만 했던 도지사다’. 그렇게 추억하는 경기도민들이 요즘 걱정이다. ‘망신 당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이념 전투력 접고 일만 해야 할 텐데...그러면 장관도 잘 할 사람인데....’

[김종구 칼럼] 정답 없는 건국절‚ 노동 청문도 덮다

경기도 언론에 사진과 기사로 남아 있다. 2007년 2월12일 경기도청 농협출장소. 김문수 도지사가 계약을 하고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 주식 30주다. 범도민 하이닉스 주식 갖기 운동이다. 하이닉스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도민의 뜻을 보여주자’며 시작됐다. 그 주식이 17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노동부 장관 후보 재산 목록에서다. ‘SK하이닉스 보통주(583만원)’. 주가가 4배쯤 올랐다. 팔면 돈 될텐데.... 왜 그런지 쭉 갖고 있다. 장관 후보자들이 주는 실망이 있다. 과다 주식 보유, 상상 초월 수익이다. 대법관 후보, 헌법재판관 후보가 그랬다. 하차한 후보도 있고, 임명된 후보도 있다. 위장 전입은 귀에 딱지가 앉았다. ‘자식 둔 부모 마음’에 호소하기도 한다. 십중팔구는 대충 넘어간다. 병역 면제 특혜, 영농직불금 편취, 법인카드 횡령 등도 있다. 잘못이지만 역시 어물쩍 넘어간다. 김문수 후보에는 이런 게 없다. 그런데도 파문은 역대급이다. 말(言)이 문제다. ‘쌍용차 노조는 자살 특공대다.’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동부 장관 후보라서 더 잘못이다.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자들....’ 입에 담지 못할 말이다. 장관이 국민에게 아픔 주면 안 된다. ‘뻘건 윤석열이다.’ 지금 그로부터 장관 지명을 받았다. 국무위원석에 같이 앉기에 민망할 것 같다. 한데 묶어 사과했다. ‘집회를 하다 보면 격한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정치인에게 집회 언어가 따로 있나. 조건 없이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동의하기 어려운 비난이 있다. 김 후보자의 ‘대일(對日) 역사관’ 논쟁이다. 건국절 부정에 야당이 맹공을 가했다.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다’, ‘반국가적·반역사적 발언이다’.... 일제 치하 국적 논란도 비난을 샀다. ‘일제 시대 때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했다. 야당이 ‘일본 지배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급기야 야당이 청문회를 중단시켰다. ‘계속할 이유가 없다’며 일어났다. 초유의 청문회 중단 사태다. 건국절은 논쟁 중인 화두다. 여당 권성동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과거 민주당 지도자들도 1948년 건국을 인정했다...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라고 했고...2007년 노무현 대통령도 ‘62년 전 해방됐고 3년 뒤 나라를 건설했다’고 했다....” 틀린 거 없다. 건국절은 문재인 대통령 때 제시된 화두다. 그렇다고 앞선 두 대통령이 틀렸다고 안 한다. 문 대통령의 선점 화두는 맞지만 이견 없이 정립됐다고 보기 어렵다. 국가보훈부 장관의 답변이 그래서 확 온다. “너무나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우리는 헌법·법을 따른다...법을 만드시는 의원님들이 정리해줘야 한다.” 이게 정답이다. 법으로 확정된 건 없다. 헌법 속 선언은 ‘임시정부 정통성’이다. 곧바로 ‘건국절’로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미완료 화두로 장관 자격을 추궁하려고 한다. ‘1919 건국’이라면 자격이 있고, ‘1945 건국’이라면 자격이 없다고 한다. 동의받기 어렵다. 그 옛날 무즙 파동이 있었다. 1965년 중학교 입시 문제다. 엿기름을 대신할 재료를 물었다. 요구된 답은 ‘①디아스타제’다. ‘②무즙’을 택한 학생의 엄마들이 들고일어났다. 교육청에 몰려가 무로 엿을 만들어 보였다. 재판으로 갔고 ②도 인정받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그만큼 무겁다. 논란의 여지 없는 명제로 출제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①1919 건국 ②1948 건국’를 물으면. 문제부터 명제가 아니다. 당연히 답도 없다. 국가보훈부 장관이 이거 해 달라는 거다. 법을 만들어 정리 좀 해 달라는 거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맨날 학술대회만 한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 청문회도 그러다가 끝나버렸다.

[김종구 칼럼] 극일 이룩한 국민‚ 반일 멈춰선 정치

1848년 공산당선언이 출현했다. 이념 분쟁의 서막이었다. 구호로 시작해 구호로 끝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1917년 이 선언이 국가로 탄생했다. 러시아 10월 혁명이었다. 이 천지개벽의 무기도 구호다. ‘농민에게 땅을!’, ‘군인에게 종전(終戰)을!’. 구호가 행동을 불러낸 시대였다. 노동력이 착취당하던 19세기였다. 노동자를 향한 구호가 주효했다. 농민 빈곤과 전쟁 피로의 러시아였다. 볼셰비키 구호가 먹혀들었다. 우리 좌파 역사에도 구호가 있다. 항일·반일. 그도 그럴 게, 일제 잔재가 여전했다. 친일과 항일이 혼재해 있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구호였다. 죽창가 선창하면 우르르 따랐다. 때로는 우파가 태클을 걸어봤다. ‘지금이 어느 땐데 친일 논쟁이냐.’ 하지만 본전도 못 찾고 물러났다. ‘항일 아니면 친일이냐’는 반격에 할 말을 잃었다. 좌파에는 백전백승, 우파에는 백전백패. 이유는 간단하다. ‘항일’, ‘반일’은 애초부터 좌파가 설계한 구호다. 올 광복절도 그랬다. 유난스러웠다.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이 있었다. 쪼개진 기념식 논란이 있었다. 대통령 기념사 논란이 있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 논란이 있었다. 여진이 지금까지 계속된다. 지지율 30% 언저리의 대통령이다. 여기서도 대책 없이 밀렸다. 친일파 관장이란 구호. 무능한 정부란 구호. 친일 기념사란 구호. 숭일(崇日) 대통령실이란 구호로 밀려났다.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한데.... 논쟁할 가치는 별로 없다. 딱 하나의 구호가 남는다. 광복절 기념사 중 한 부분이다. “작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고...올해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는 역대 최저인 35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새로운 수치가 아니다. 7월 말에 이미 나왔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3만6천194달러다. 일본보다 401달러 많다. 가구당 순자산(2022년)도 한국이 일본보다 3천500달러 많다. 광복절에서는 처음 듣는 구호다. 광복절 기념사의 공식이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 규탄하고, 철저한 자기반성 요구하고, 실질적 보상 촉구하고, ‘그래야 희망찬 미래로 갈 수 있다’고 맺는다. 우리가 똑같으니 일본 반응도 똑같다. 한국 내부 정치용이라며 빈정대고, 야스쿠니신사 몰려가며 약 올리고, ‘보상은 끝났다’며 무시한다. 이 익숙한 공식과는 낯선 구호였다. ‘국민소득 이겼다’고 선언했다. ‘수출도 이긴다’고 장담했다. 공개적으로 밝힌 극일(克日) 구호다. 앞선 대통령 12명은 항일을 말했다. 13번째 대통령에서 나온 극일이다. 어찌 윤석열 정부만의 공인가. 13명 대통령이 완성한 역사다. 군인 대통령과 민간 대통령의 공이고, 영남 대통령과 호남 대통령의 공이고, 우파 대통령과 좌파 대통령의 공이다. 윤 대통령 밉다고 이것도 흠집 잡는다. 통계 기준이 어떻고, 엔저 현상이 어떻고.... 배 아픈 일본이 파고들 흠집이다. 이걸 왜 우리 정치가 대변해주나. 이거야말로 친일이고 숭일이다. 덧없는 게 정치 구호다. 후쿠시마 구호도 1년 됐다. 세슘 우럭은 없다. 방사능 중독도 없다. 일본 방어 2배, 일본 홍어 3배 늘었다. 항일·반일 구호가 대개 이렇다. 확 떠들다가 훅 사라진다. 떠든 좌파는 무책임하고 못 막은 우파는 무능하다. 2024년 광복절의 구호-먹고사는 문제에서 일본 이겼다-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정치가 만든 구호가 아니니까. K-반도체 연구자들, K-자동차 연구자들이 반백년 동안 만든 위대한 결과니까. 그들의 구호가 기업사(史)에 남아 있다. ‘반드시 일본을 이긴다!’, ‘타도 소니(SONY)!’, ‘타도 도요타(TOYOTA)!’. 이 피눈물이 만든 극일 광복절이었다. ‘1919·1945 건국’에 박제된 정치 광복절은 없는 게 좋았다.

[김종구 칼럼] 25만원과 사회주의

레몽 아롱(Raymond Aron·佛)은 자유주의자다. 중도 우파로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싸웠다. 대한민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6·25에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유럽 사회에 남침설을 정설로 세운 것도 그다. 청년들에게 국민연금 재앙이 온다. 청년들도 완벽하게 눈치챘다. 2030의 75.6%가 ‘안 믿는다’고 했다. 연금 속 노후는 저들의 노후가 아니다. 앞세대 먹여 살릴 태생적 짐이다. 세대 간 연대에 동의하지 않는다. 뒷세대가 앞 세대를 부양한다니. 앞세대의 뒷세대 착취로 보고 있다. 누리고 뽑아 먹고 간 세대다. 소득 대비 9% 보험료율이 26년째다. 단 1%포인트도 올리지 않고 뽑아만 먹었다. 그 구멍을 청년들에 넘겼다. 잔혹한 연금 시간표는 이미 나와 있다. 약탈 수준의 보험료율이 계산돼 있다. 2061년에 35.6%에 간다. 100만원 월급이면 35만6천원을 뗀다. 2078년이면 43.2%까지 간다. 100만원 월급에서 43만2천원 뗀다. ‘64년생 용띠’에도 10대는 있었다. ‘서기 2024년’이 까마득해 보였다. 하지만 그 60세가 순식간에 왔다. ‘2000년생 용띠’도 벌써 20대다. ‘서기 2060년’이 까마득해 보인다. 하지만 이 60세도 금방 온다. 미래세대라고 돌릴 것도 없다. 이미 사회의 어엿한 주체다. 공적 부담의 고통을 겪고 있다. 취업 1년차 ‘95년 돼지띠 청년’이다. 1년 넘게 월급 명세서를 받고 있다. 받을 때마다 허망함에 빠진다. 지급 총액 400만원이다. 입금된 돈 315만원이다. 공제된 돈이 85만원이다. 국고로 직행하는 소득세가 30만원이다. 국민건강보험료 15만여원, 국민연금 20만여원.... 월급의 20%가 넘는다. 떡값 달엔 30%도 넘는다. 그가 말한다. ‘이건 사회주의야.’ 틀린 소리 아니다. 공적 영역 100%는 공산주의다. 그 아래 넓은 영역이 사회주의다. 사회 초년생 월급인데 20~30%를 떼고, 그중 60%가 국가세금이고, 나머지도 사회보장성 공제다. 넉넉히 사회주의다. 국가 부채가 계속 는다. 2023년에 총부채 6천조원을 넘었다. 지금도 늘고 있다. 표 떨어질까 봐 부채로 쌓아뒀다. 곧 공포의 연금 시대까지 겹친다. 월급 절반을 떼 가는 세상이 온다. 정치가 초대한 사회주의다. 2010년 무상 복지가 그 신호탄이었다. 보편적 복지의 탈을 쓴 정치 구호였다. 명백한 사회주의적 발상이었다. 이후 수많은 공약이 행정을 접수했다. 현금성 복지의 퍼주기가 급증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과정에 국민 뜻이 있다. 선거마다 유권자가 선택했다. 2010년 이후 ‘퍼주기 공약’은 패배한 적이 없다. 이제 좌우 없이 쏟아 내고 있다. 그 15년 사이 사회주의가 도둑처럼 스며들었다. 이제 ‘전 국민 25만원’이다. 민주당이 총선에 던진 공약이다. 역시 압승으로 유권자가 동의했다고 본다. 민주당이 1호 당론으로 정했다. 민생회복지원금이라고 명명했다. 들어갈 돈만 대략 13조원이다. 비슷한 이름의 지원 선례는 있다. 2020년 재난지원금, 2021년 상생지원금. 하지만 내용은 달랐다. 세계 공통의 근거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 회복이다. 이건 다르다. 비상도 아닌데 현금 뿌리겠다는 것이다. ‘부자감세’가 명분으로 등장했다. ‘초부자 감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생명력 질긴 마르크스 지침이다. -부자(富者)는 타도해야 할 계급, 부(富)는 몰수해야 할 생산수단-. ‘25만원’을 그렇게 풀어간다. 여론은 이번에도 환영한다. ‘25만원 언제 나오느냐’며 고대한다. 또 하나의 청년 빚더미다. ‘2015년생 양띠’는 연금만 35% 내야 한다. 이들 월급에서 60%를 뺏는 건 계산서에 나와 있다. 완벽한 사회주의 세상이다. 이 정치인들은 이걸 아나 모르나. 레몽 아롱이 답한다. ‘모순 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40년 전 그의 정의가 2024년 대한민국에 답을 주고 있다.

[김종구 칼럼] 즐거운 올림픽 시상식, 이것도 한류다

‘간장 장수 아들의 승리.’ 언론은 그렇게 스토리를 만들었다. 가난하고 고된 아버지의 직업이다. 아들이 그 힘들다는 유도선수다. 한때 간염으로 선수 생활 위기도 겪었다. 이겨내고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다. 애국가가 울렸고 태극기가 올랐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유도 금메달. 1984년 LA 올림픽의 영웅 안병근(62)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겐 ‘간장 장수 아들’로 더 기억된다. 그 아버지가 했다는 말이다. “꽁보리밥이라도 밥을 먹어라. 라면만 먹으면 힘을 못 쓴다.” 눈물 금메달이 많았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고(故) 김원기(62). 애국가 부르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레슬링 자유형 유인탁(66). 목발에 의지해 눈물을 쏟았다. 그 시절 금메달은 대개 이랬다. 전후 베이비붐세대 선수들이다. 전쟁을 치른 세대가 부모들이다. 못 먹고, 못 입었다. 선수들은 그저 악으로 버텨야 했다. 불암산 지옥 훈련이 그때부터다. 태릉선수촌 앞 509.7m 산을 토하며 올랐다. 그 시절 금메달은 곧 가족의 생계였다. 어찌 눈물로 범벅되지 않겠나.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 ‘계몽적’ 정치 환경이다. 독재를 덮어 줄 여론이 필요했다. 눈물의 시상식은 더없는 도구였다. 세상을 탓하지 않는 순종적 철학, 전체에 개인을 묻는 맹목적 국가관.... 무던한 운동 선수가 딱이었다. ‘각하의 축하 전화’도 빠지지 않았다. 언론의 주작(做作)도 한몫했다. ‘배가 고파 라면을 불려 먹었다’(안병근). ‘라면만 먹고 뛰었다’(임춘애). 훗날 당사자들이 오보라고 밝혔다. 그래도 역사다. 특히 나 같은 ‘꼰대’에겐 그렇다. 모든게 옛말이 됐다. 울지 않는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다. 혼합 복식 탁구 시상식이 개최됐다. 한국의 두 팀이 공동 3위에 올랐다.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 옷을 여며줬다. 중국 관중들이 환호했다. 이어 볼 하트 인사가 이어졌다. 더 큰 환호가 나왔다. 선수들은 몇 번을 더 재연했다. 이 영상이 각국에서 편집됐다. 금·은메달 중국 선수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중국 누리꾼들의 이런 댓글이 많았다. ‘우리(중국) 선수들은 왜 한국 선수처럼 즐기지 못하나.’ 지금 2024년 파리 올림픽도 그렇게 가고 있다. 넘어진 상대를 손 잡아 준 오상욱(펜싱). 시상식은 즐겁고 당당했다. 10회 연속 우승의 역사를 쓴 여궁사 삼총사(양궁). 시상식은 즐겁고 아름다웠다. 9.6점에 가슴 졸이게 했던 16세 소녀(사격). 시상식은 즐겁고 상큼했다. LA에서 파리까지 40년이다. 금메달이 바뀐 건 없다. 달라졌다면 메달을 받는 우리 선수들이다. 더는 애국가에 눈물 섞지 않는다. 가정의 역경을 짜내지 않는다. 스스로 즐기고 모두를 즐겁게 한다. 일본이 올림픽 딴지를 걸었다. 극우 인사의 자국 내 칼럼이다. ‘파리 올림픽은 침한(침몰하는 한국)의 상징’이라며 빈정댄다. 빌미를 준 건 있다. 한국 구기 종목이 한꺼번에 추락했다. 축구·야구·농구·배구가 전부 못 나갔다. 팬이 많은 종목이다. 많은 이들이 불편하다. 해당 협회 잘못이 크다. 엘리트 체육 정책도 문제다. 협회와 국가가 크게 각성할 일이다. 하지만 이걸로 일본이 오만 떨 일은 아니다. ‘즐기는 한국 스포츠’를 ‘사생 결단 일본 스포츠’가 이해하겠는가. ‘항저우 행복 시상대’의 주인공 신유빈. 귀국 후 찾은 곳이 있다. 수원의 한 노인복지관. “수원시에 늘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셨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메달 보상금을 후원금으로 내놨다. 2천만원이다. 즐거운 시상식에 이어진 훈훈한 미담이다. 즐길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MZ세대다. 지금 그들이 파리를 적신다. 즐겁고 행복한 시상식을 만든다. 세계인이 젖어 든다. 음악·영화 한류, 음식 한류.... 이제 시상식 한류를 상상해볼 차례다.

[김종구 칼럼] 양승태 무죄 보고도 김명수 구속하려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소환될 것 같다. 검찰 출두 통보가 갔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가 수사한다. 3년5개월 접수된 고발사건이다. 실제 조사는 다음 달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017년9월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2023년 임기 6년을 마쳤다. 퇴임 1년여 만에 피의자 신분이 됐다. 대법원장 출신으로 두 번째다. 처음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 김 전 대법원장의 전임자다. 두 대법원장이 차례대로 피의자 신세다. 김 전 대법원장을 고발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직권 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다.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 관련이다. 2020년 민주당이 임 부장 탄핵을 추진했다. 그러자 임 부장이 탄핵에 앞서 사표를 냈다. 김 당시 대법원장이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정당한 이유 없는 수리 거부였다. 사건의 본질은 거짓말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탄핵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임 부장이 녹음기를 틀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 사법적 판단을 떠나 민망한 일이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이다. 법 수호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건 그런데, 이게 대법원장을 잡아넣을 일인가. 보복의 역사가 어른거린다.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8년 구속됐다. 그 수사에 김 전 대법원장의 역할이 있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법원이 자체 조사를 진행됐다. 세 차례 조사했는데 결론은 같았다. ‘형사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을 키웠다. 2018년 9월의 한마디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 곧바로 검찰이 강제 수사에 들어갔다. ‘김명수 법원’이 자료 일체를 검찰에 내줬다. 법원행정처 컴퓨터, 내부 인사 자료, 각종 보고서.... 훗날 양승태 구속 영장에 요긴히 쓰인다. 2021년 국민의힘이 김 전 대법원장을 고발했다. 망신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거짓말 논란이다. 보복의 그림자다. 나는 2018년 11월 이렇게 썼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재판 거래가 됐다. 범죄를 구성하기 위해 요건이 세워졌다. 재판 거래의 객체가 상고법원이란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이었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청와대와 거래를 했다고 한다. 이게 죄가 되는가. 상고법원은 사건 적체를 해결하는 제도의 영역이다. 그걸 범죄 거래의 객체로 본다는 게 말이 되나-. 칼럼의 제목은 ‘양승태 상고법원 과욕은 감옥 갈 일 아니다’였다. 구속은 정해져 있었다. 문재인 검찰이 47개의 혐의로 엮었다. 김명수 법원이 그 영장을 받아들였다. 이후 지난한 재판이 이어졌다. 290번의 재판이 있었다. 5년 만인 올 1월 선고가 났다. 무죄다. 두 상급심이 남아 있긴 하다. 그래도 무죄 내용이 일방적이다. 어떻게 47개 혐의가 몽땅 무죄가 되나. 이 정도면 무리한 기소로 봐야한다. 그때 판단에서 뺄 말이 없다. 양승태 구속은 잘못이었다. 2024년 7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죄도 부풀려져 있다. 사법의 명예를 실추시킨 거짓말이긴 하다.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포토라인에 서 망신 당해도 마땅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구속시키려고 안달하면 안 된다. 법조항 탈탈 털어 혐의 늘리려 들면 안 된다. 녹음기 숨겨 놓고 유도한 대화다. 일방 역시 법원 최고위직 판사 다. 선량한 피해자와 거리가 멀다. 거짓말이 전부라면 구속은 안 된다. 양승태 대법원장 구속. 김명수 대법원장 소환. 어느 한 진영은 만세를 부른다. 다른 진영은 보복의 이를 간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대법원장을 노린다. 이 공식에 법원 신뢰만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질 나쁜 잡범들조차 판사 이념을 말한다. ‘좌파 판사’라서 어떻고, ‘우파 판사’라서 어떻고. 걱정이다.

[김종구 칼럼] 현철의 20년 고난, 지금 가수들은 모른다

‘거대와 춤을 처요 증다웁게~.’ 도대체 글로 써서는 알 수 없는 노래다. 음(音)을 들으면 7080 노래다. ‘아이 워즈 메이드 포 댄싱(I was made for dancing)’. 미국의 팝 가수 레이프 개릿이 노래했다. 금발의 머리를 늘어뜨린 미모다. 유니섹스한 청순함으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우리에겐 ‘책받침 스타’로 유명했다. 그 노래를 ‘현철과 벌떼들’이 저렇게 불렀다. 막걸리 걸친 듯한 목소리. 진한 경상도 사투리억양. 그게 현철의 등장이었다. ‘중고 신인’이라는 말의 시초였을 게다. 1942년 생으로 이미 불혹의 나이였다. 1969년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다. 후배 나훈아(1947년생), 남진(1946년생)에게 밀렸다. 반짝 출연조차도 그에겐 행운이었다. 얼마 뒤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룹의 마지막 곡이 대박을 터뜨렸다. ‘고이요한 내가쓰메 나비츠럼 날라와스어....’ ‘사랑은 나비인가 봐’다. 가요계를 강타했다. 팝이 지배하던 대세를 뒤집었다. 대한민국 제2의 트로트 열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1989년 가요대상을 받았다. 무명 생활 20년 만의 성공이었다. 중년의 현철이 무대에서 펑펑 울었다. 훗날 그가 추억한 무명 시절 얘기를 보자. -징그럽게 가난했었다. 집사람이 나를 대신해 돈을 벌었다. 하나 팔면 3천원 남는 카세트테이프 장사였다. 아들 젖이 안 나와 우유로 근근이 키웠다. 사글세 3천원부터 시작해 열두 번 옮겼다. 구들장이 틀어져 있는 방이었다. 집사람과 연탄가스에 중독됐다가 겨우 살았다.-(2011년 아침마당에서) 그의 음악에는 고집이 있다. 음악이 바뀌어도 창법을 바꾸지 않는다. 누구도 흉내 못 낼 독특한 창법이다. 허스키하면서도 고음이 시원하다. 마이크도 감당 못할 만큼 비음이 강하다. 모든 마디의 시작을 절묘하게 늦춘다. 바이브레이션의 진폭이 누구보다 크다. 당신(1974년), 그대와 춤을(1980년), 사랑은 나비인가봐(1982년), 봉선화 연정(1989년).... ‘가요-번안곡-트로트’로 변화한 그의 노래다. 이 모든 노래를 똑같은 창법으로 소화했다. 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2007년 한 공연 리허설에서 추락사고를 당했다. 갈비뼈 3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2016년 디스크 수술로 재활치료에 들어갔다. 2020년 뇌경색까지 더해지며 투병에 들어갔다. 2020년 이후에는 그를 본 사람이 없다. 그리고 7월15일, 82세로 사망했다. 참으로 고달팠을 가수 생활이다. 20년의 무명, 십수년의 인기, 다시 십수년의 투병, 그리고 사망이다. 한국 산업화 시대와 닮아도 많이 닮은 일생이다. 얼마 전 가수가 구속됐다. 음주운전 논란이 일었다. 허위 자수 종용 등의 죄목이다. 성악에서 트로트로 전향했다. 경연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회 10억 원이 넘는 공연도 했다. 수입이 정확히 계산도 안 된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의 짧은 과거에서 감동을 찾긴 어렵다. 학폭과 일탈 등의 분노가 일고 있다. 그가 벼락출세하는 과정은 짧고도 간단하다. 방송사와 기획사가 찍어낸 단막 드라마다. 20년 무명의 눅눅한 역사와는 다르다. 케이팝이 세계를 지배한다. 이 시대에도 사연은 있다. 오늘에 이른 추억을 저마다 말한다. 몸매 관리를 위한 여자 연습생의 고생, ‘치킨을 2년 동안 못 먹었어요’. 오랜 합숙생활에서 오는 고생, ‘군만두 더 먹으려고 싸웠어요’. 그들의 고생을 가볍다 하지 않겠다. 그렇대도 고인이 된 현철의 굶주리던 역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현철이 그때 방송에서 남긴 투박한 교훈이 있다. “젊은 세대에게 참고 하다 보면 언젠가 이긴다카는 걸...(보여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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