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여론 수렴, 대법원과 차이 노무현·박근혜, 여론대로 결정 결정 시점에 여론, 누구 편일까
조선(朝鮮). 동성동본 혼인은 꿈도 못 꿨다.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패륜이었다. 1912년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1958년 대한민국 민법에 반영됐다. 세상이 조금씩, 꾸준히 변했다. 기본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법원은 계속 ‘금혼’으로 판결했다. 이걸 바꾼 게 헌법재판소다. 금혼 반대 여론을 받았다. ‘동성동본 금혼 조항 위헌’(1997년). 헌재가 이렇다. 여론을 수렴해 결정 한다. 대법원과 따로 헌재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대통령 탄핵은 어땠을까. ‘노무현 탄핵’의 여론은 시종일관 반대였다. 국회 의결부터 역풍이 불었다. ‘탄핵의 광기’라며 국민이 분노했다. 전국 여론이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섰다. 헌재도 ‘노무현 탄핵 기각’을 선택했다. ‘박근혜 탄핵’의 여론은 찬성이었다. 연설문 게이트, 최순실·최태민 게이트, 세월호 7시간, 블랙리스트.... 언론이 그 분노를 키워갔다. 탄핵 촛불 집회도 멈추지 않았다. 헌재도 여론과 같은 탄핵이었다.
매번 법리(法理)는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 지지 발언을 했다.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은 명백했다.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 율사들이 이 위법을 들이댔다. 하지만 헌재 결론은 여론과 같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팀도 화려했다. 헌재 재판관 출신까지 가세했다. 기본적으로 내우외환의 죄가 아니었다. 국정농단이 유죄로 확정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헌재가 내린 결론은 ‘탄핵’이었다. 두 탄핵의 공식은 ‘헌재=여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됐다. 담화로 법리 대응을 천명했다. ‘야당 횡포에 맞선 선택이다’,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다’,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 이 주장에 동조하는 이도 많다. ‘입법 횡포가 계엄을 유발했다’, ‘내란죄 구성 요건에 안 맞는다’. 헌재 재판관들의 이념 분포도 거론된다. 흥분이 잦아들면 법리가 보일 거라고도 한다. 여기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추억’도 있다. 직무정지를 법리로 이겼던 그다. ‘탄핵 기각’ 희망론이다.
하지만 더 많은 전망은 ‘탄핵 인용’이다. 헌재가 여론과 달리 가지 않을 거라고 본다. 윤 대통령 지지율 11%, 탄핵 찬성 75%, 내란 인정 71%, 여당 지지율 24%.... 한국갤럽이 13일 발표한 수치다. 이와 크게 다른 여론 조사는 없다. 이게 맞다면 이 순간은 ‘탄핵의 시간’이다. 오늘 결정한다면 ‘윤석열 탄핵’이 유력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윤 대통령은 헌재의 재판출석 요구서를 받지 않고 있고, 야당은 빨리 받으라고 난리다.
그래도 몇 달은 걸릴거다. 그때의 여론은 누구도 모르는 거고.
여론 대결은 벌써 시작됐다. 헌재가 찬반에 포위 당했다. 자유게시판 글만 5만건을 넘었다. 오프라인 대결도 총력전이다. 진보성향 단체가 매일 모인다고 했다. 보수성향 단체의 집회도 커질 전망이다. 칼럼이 이럴 때 가야 할 방향을 안다. ‘국론 분열은 안 된다’, ‘차분히 지켜보자’.... 하지만 그런 덕담이 씨도 안 먹일 상황이다. 헌재 결정과 여론의 관계가 경험 속 공식으로 나와 있다. 웬만한 국민이 다 눈치챘다. 말린다고 듣겠나.
헌정 76년에 딱 세 번 있는 대통령 탄핵이다. 그 세 번을 모두 기사(記事)로 쓰고 있다. 돌아보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충격에서 위기로, 위기에서 적응으로. 국회 탄핵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극단적 국론 분열로 가는 출발이었다. 여야 정치가 그 갈등을 조장했다. 색깔 다른 언론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은 정치·언론이 판 골을 따라 끌려갔다. 집회 열고 구호 외치고, 갈등하고 미워했다. 그 경험에 기대서 결과를 추측하면?
결정문이 작성될 미래 어느 날, 그날의 여론을 따라 방향은 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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