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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칼럼] 계엄 정당성에 의료 사태를 써 먹다니

목표만 있지 준비 없는 의료개혁
환자 죽어가는데 정부는 구경만
난데없이 계엄 정당화論에 등장

탄광 정리를 결심하고 있던 대처 수상이다. 우려했던 강성 노조위원장이 선출됐다. 진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탄광이 파업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석탄 발전소다. 석탄 재고량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동력자원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탄광 파업이 시작되면 시위대가 석탄 반출을 막을 것이다. 발전소로 수송이 가능한 위치에 석탄을 가져다 놓아야 했다. 기름, 원자력, 가스 발전소도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준비한 대처의 승리로 끝났다.

 

대처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가 소신으로 꽉 찬 방향성이다. 강성 노조를 내부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이들을 눌러야 영국병을 치유한다고 했다. 이 판단에는 토론이 필요 없었다. 직(職)을 건 통치 판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준비된 추진력이다. 노조가 기마병 진압에 항의했다. 다음에는 탱크를 보내겠다고 답했다. 괜한 허풍이 아니었다. 발전소를 충분히 돌릴 석탄을 이미 쟁여 놨다. 노조가 꺼낼 무기를 미리 빼앗은 것이다.

 

1984년 영국 탄광 사태와 2024년 한국 의료 사태. 출발은 닮았다. 정부 의지가 분명했고, 여론 지지가 높았다. 2025년 의대생을 2천명 늘린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정부의 과업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여론이 지지를 표했다. 의료개혁이 80%, 의대 증원이 70% 언저리였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보는 눈은 싸늘했다. 의료계 ‘험악한 입’도 고립을 자초했다. 금방이라도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 여론이 변한다.

 

의료 파행 장기화에 대한 여론을 물었다. 정부·여당 책임 49%, 의료계 책임 35%다(엠브레인퍼블릭 조사·10월 말). 불과 4개월여만에 반전이다. 의료개혁 자체에 대한 지지가 바뀐 것 같지는 않고. 결국 사태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다. 전공의 집단 사퇴가 줄을 잇는다. 사실상의 진료 거부가 횡행한다. 의대생들은 계속해 수업을 거부한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은 없다. ‘의료계 위법에 엄정 대응’이라던 대통령의 경고는 오간 데 없다.

 

그 사이 등골이 오싹할 통계들이 쏟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5월 통계도 그 중 하나다. 외래·입원 진료 환자가 209만명 줄었다. 전년 대비 -1.8%다. 진료 후 사망한 환자는 2천명 늘었다. +2.9%다. 의료 공백 결과가 아니라고 할 텐가. 그러면 우리 옆에서 벌어진 참상은 어찌 설명할 건가. 수원에 사는 16살 A군이 쓰러진 건 지난달 15일 0시다. 병원 4곳에서 받기를 거부했다. 6시간을 헤맨 끝에 수술에 들어갔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응급실 자리가 없다’ ‘수술 인력이 없다’…. 환자 가족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겠나. 생떼 같은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다. 그의 절규가 듣는 이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남편이 저한테 그냥 보내주자 했어요. 고생했으니까 보내 주자고.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고.” 병원을 못 찾던 순간을 설명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이러다 잘못되겠다. 결국은.” 진료 거부인가. 의사를 입건(立件) 조사해야 한다. 의료 공백인가. 주무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탄광 노조가 석탄을 끊을 걸 알았다. 그래서 대처 수상은 석탄을 쟁여 놨다. 그래서 밀어붙였고 영국을 살렸다. 의료계 파업을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정책 집행은 밀리고 환자는 죽어 나간다. 대책이 이 정도로 없을 수 있나. 그 없던 대책이 황당한 곳에서 튀어 나왔다. 3일 밤 새벽 계엄 포고문 1호다. ‘전공의들은 즉각 복귀하라’며 처단하겠다고 했다. 의료 개혁을 계엄 정당화에 써 먹겠다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아픈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윤석열 정부의 파국, 그 끝에서 의료 정책 무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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