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가 칼바람을 대동한 설날 오후,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백사마을을 찾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조악한 집들이 얼기설기 애환의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골목길엔 양철 굴뚝으로 새어나오는 연탄가스가 메케하게 폐부로 스며들었다. 수많은 목숨을 채어간 가스지만 밥 짓고, 세숫물 데우고, 아랫목 달궈준 연탄불이었다. 떼떼 옷 입은 아이들이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가는 언덕길은 가난해도 좋은 정겨움이다. 백사마을은 청계천 개발 때 철거된 이주민들이라고 한다. 고 육영수 여사로부터 국수를 배급받아 먹던 서러운 이들이 이제 또 재개발이란 미명에 떠나야 한다. 그들에게 이곳은 아쉬운 상실일까, 그리운 추억일까, 새로운 희망일까.
찬바람이 얼굴에 얼어 불던 날 겨울바다를 찾았다. 물위에 떠 있는 배들도 추위에 떨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온건 30년 전이었고 비포장도로였다. 허공엔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고 잘 포장된 도로는 넓게 펼쳐졌다. 이곳에서 경기 국제보트쇼가 매년 개최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선착장을 거니는 겨울 나그네의 시선위에 뜻하지 않은 파란 하늘이 냉면 발 같은 흰 구름을 휘저으며 저문다. 비린내마저 얼어붙은 혹독한 겨울 바다에 횟집을 찾았다. 정남에 은거하신 도인(?)을 알현하려 횟감을 골랐다. 싱싱한 우륵이 도마 위에서 퍼덕이다가 장렬히 순교한다. 함께할 후배들도 오늘밤은 거룩한 제물 앞에 승천의 축배를 즐기리라.
떡갈비 징하게 먹었지만 방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분홍불빛이 새어나오는 야시시한 러브호텔에서 잘 수도 없고, 겨우 찾은 곳이 청소년 수련회 때나 사용할 교실 같은 숙박시설이다. 혼자 자기에는 너무도 널찍한 방에 어색한 잠을 청하고 이른 아침부터 여정에 올랐다. 송강정에 올라 기개를 다지고 면양정 거처 소쇄원으로 갔다. 도가적 삶을 꿈꾸었던 조선 선비들이 한담을 나누던 사적지 입구는 대나무 숲이 폐부를 열어준다. 석영정 언덕의 소나무도 멋지고 죽녹원 앞 대통밥도 맛났다. 나는 담양을 남도 답사 1번지라 부르고 싶다. 메타쉐콰이아 길을 지나 관방제림을 걸을 땐 이 도시의 품격이 더욱 걸쭉히 우러났다.
중생대 백악기에 습곡운동을 받아 융기된 역암이 침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산으로 형상이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마이산(馬耳山)으로 불린다. 탑사 뒤의 80여개에 달하는 돌탑은 대단한 내공이 쌓인 걸작이다. 비바람 눈보라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것은 구도자의 충일한 원력 때문일 것이다. 차디찬 바람의 피부는 거칠고 낡은 나의 표면도 거칠다. 올 한해도 모든 사람의 여정이 순탄하길, 작은 돌탑 쌓으며 빈다. 그리고 긴 계단을 오르며 한해의 행장을 차곡차곡 꾸린다. 유목민처럼 토방에 앉아 소망의 결정체 고도를 기다리며. 꿈꾸는 자여! 복 많이 받으시길.
멀고 먼 순천만은 해가 기울고 있었다. 유람선도 가지 않고 나는 갈대숲을 조급하게 거닐다가, 동행한 M을 두고 산위로 치달았다. 결사적으로 뛰어 바다가 바라보이는 용산전망대 앞에 섰다. 잠긴 노을 아래 하얀 S자형 수로가 누드처럼 드러났고 연보라 빛으로 변한 갈대숲은 포근히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 달성에 의기양양하여 하산했으나 어둠에 파묻힌 M은 잔뜩 화가 난 듯했다. 여행에서만큼은 불가피한 이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 후조가 엘 콘도 파사를 구슬피 연주하는 어두운 길을 나섰다. 올 한해도 저물었다. 회한의 길에 눈보라 같은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망년회가 끝난 뒤 우리는 갈 곳이 없었지. 함박눈은 쏟아지는데
산책길 같은 이곳은 화성 팔경의 하나이다. 한 해도 저물어 가는 성탄절 앞, 허공엔 서릿발 같은 한줄기 삭풍이 지나간다. 1866년 무명의 교인들이 순교한 성지이며 1991년 한국 교회사상 처음으로 성모마리아 순례지역으로 선포된 곳이다. 신유박해, 병인박해 때 1만 여명이 순교했고, 이곳에서도 김 필립보, 박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가 교수형을 당한 성지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숲을 거닐다가 안온한 성모상 앞에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홍난파 선생의 고향 활초리를 비롯한 이곳은 1839년 이전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천주교 지역으로 추정된다. 성모께 기도한다. 나를 찾는 내가 되기를.
당기지 않는 순댓국을 혼자 먹다말고 낯선 여인숙에 행장을 푼다. 쓴 잠 일으킨 새벽 화순터미널로 나가 버스에 올랐다. 이른 아침 다다른 운주사는 추위가 살을 엔다. 매표소는 따뜻한 난로만 나그네를 그립게 할 뿐 비어있다. 본의 아니게 무료입장이다. 천불 천탑은 어디로 사라지고 70여개의 석불과 석탑들이 널브러졌다. 틀을 벗어난 조형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머슴바위의 정감어린 모습은 민화나 민중미술이 연상되고 민초들의 삶을 보듯 친숙한 느낌이다. 뒷산언덕 긴 와불이 와락 가슴을 친다. 상처받은 삶을 위로하듯 평안한 모습이 진실한 자애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정한의 곶감마을 노악산 남장사를 찾았다. 색 익은 낙엽 밟으며 만난 천년고찰, 어릴 적 소풍가던 추억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립다. 산 너머 고향집은 잡초가 무성했다. 공부하던 책과 책상은 아직 그대로인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빈 집은 우울증환자처럼 용도 상실에 주저앉고 있었다. 감나무가 떠난 주인에게 머쓱해 하는 뒤뜰에서 이런 시를 떠 올렸다.―빈집에 쌓이는 시간의 무늬에도/아름답고 쓸쓸한 생을 관통하던 추억 있다/집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었고/나는 길 위의 집에서 꿈을 꾸었다/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과/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옛 사랑의 그림자여 ―민병일 적멸 속에 빛나는 빈집
잿빛 하늘이 계절을 덮고 있다. 북아현동, 수유리, 그리고 플라타너스 큰 잎이 뚝뚝 떨어지던 청파동에서 연탄불 갈고 살던 기억들이 어렴풋하다. 내변산 등줄기를 차오를 때 푸르던 잎들이 단풍들고 이젠 앙상한 겨울이 왔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관음봉에 올라서니 보이는 것이 모두 발밑이다. 나는 다소 삐딱하게 염라대왕 같은 세월 앞에 겁없이 냉소를 보낸다. 깐 놈의 시간에 구차할게 뭐람. 그런데 내소사로 가는 내리막길이 브레이크가 잡히질 않는다. 근엄하신 부처님을 배알하고 불일치한 삶의 용서를 빈다. 전나무 숲길 내려와 젓갈냄새 풍겨오는 곰소로 간다. 아, 낙조 아래 허름한 횟집, 가제미회에 쐐주 한잔이 나를 울린다.
가을이 낙엽처럼 지는 날 청룡포를 찾았다. 서강이 에워싼 이 외딴 곳에 단종은 유배된 후 죽음을 맞았다. 장송들이 왕의 처소에 허리 굽혀 경배하며 애도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들은 묻혔지만 살아있는 시간들은 분주하다. 현재라고 정의할 순간은 없다. 그것을 말하는 찰라는 이미 사라진 과거가 된다. 정지된 시간은 죽은 시간,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영원한 현재인 매우 모순적인 생을 우리는 현재라고 칭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단종은 산자락 수려한 언덕에 그의 주검을 수습한 의인에 의해 영면하고 있다. 나는 장릉 앞 식당에서 스트레스 받은 육식동물처럼 곤드레 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추가로 한 그릇 더 먹었다.
1자가 6개나 되는 기념비적인 날 내장산을 찾았다. 11월은 몰골 자체가 외롭다. 저채도로 바뀌는 모호함이 더욱 쓸쓸하다. 단풍 구경 제대로 가겠다고 아껴둔 것이 때를 놓쳐 모두 낙엽이 되었다. 내장사 뒤란의 감주저리만 풍요롭다. 산을 오르는데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다. 아뿔싸! 구두를 신고 온 것이다. 정신없는 삶이 진저리가 나지만 상습적이라 자책마저 무모하다. 비자나무숲을 지나며 레바논 산맥의 아름다운 백향목이 생각났다. 가랑비 맞으며 불출봉정상에 오르자 운무가 사방을 뒤덮은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 멋진 순간은 한해를 잃은 단풍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하산 길은 젖어 있고 짓밟힌 낙엽은 총 맞은 카다피처럼 처참했다.
미시령 위에서 나의 존재성을 들여다본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을 넘기고 있다. 파란 하늘과 먹구름은 삶과 죽음처럼 접해있고 나뭇잎 반쯤 털어낸 산은 과묵하다. 하얀 억새가 11월의 휑한 공간에, 흐르는 마음처럼 나부끼고 있다. 내 안의 독소를 뺀다. 겨울잠에 들어가는 독사처럼. 나는 무언가 그립고, 무언가 허전한 텅 빈 함정 속에서 황량한 시 한 편을 끄집어냈다. 3평짜리 고시원에서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며 삶의 끈을 병원에 의탁한 시인의 비명처럼, 그로테스크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한쪽 다리에 찾아온다.(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중에서)
변두리 카페에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도망간 세월의 배신에 못내 흥분했다. 추억은 흑백 사진 같은 것, 지금 이 순간도 정지할 수 없는 색 바랜 과거가 된다. 푸른빛을 빼앗은 시간의 무늬는 형형색색으로 주산지를 물들였다. 이곳은 각종 야생동물의 서식지다. 150년을 물속에서 살아온 천연기념물 왕 버드나무는 섬유질 같은 검고 질긴 몸을 노출하고 있다. 사과냄새 풍겨오는 과수원 길 따라 주왕산으로 향한다. 대전사 앞 은행나무가 눈부신 노란빛을 발산하고 있다. 주왕산 정상을 돌아 계곡을 내려오며 온몸을 단풍에 적셨다. 빗방울이 피아노 소리처럼 떨어졌다. 나는 음표처럼 걸어 파전냄새 물씬한 주점에 자발적으로 입장했다.
가을비 오는 날 진흙길 걸어 민둥산에 올랐다. 정선에서 곤드레 막걸리 한잔 걸친 여세가 짓궂은 빗길에 힘이 되었다. 개 같은 날이라고 못마땅했지만 정상은 사방 천지가 운무에 휩싸인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무르익은 억새와 끝없이 펼쳐진 산들 사이로 구름은 신들의 승천처럼 하얗게 피어올랐다. 깊어가는 가을, 나는 문득 황동규의 시 철새의 한 대목을 떠 올렸다. 모든 나무의 선 그 흔들림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이 시월/ 무사무사의 이 침묵/ 아침, 거품 물고 도망하는 옆집개소리 /하늘을 들여다보면/ 무슨 부호처럼/ 떠나는 새들/ 자 떠나자/ 무서운 복수로 떼 지어 말없이/ 이 지상의 모든 습지/모든 기억이 캄캄한 곳으로
부석사 오르는 길은 나를 낮추는 해탈의 길이다. 나는 아직 겸하(謙下)치 못해 뻔뻔하다. 부처님 전에 부도덕하지만 오늘도 산채비빔밥에 반주로 안동쐐주 한잔 꺾을 수밖에 없다. 독한 주기가 온몸에 퍼질 때 길가에 사과 익는 산사에 오른다. 은행나무 도열한 울퉁불퉁 돌부리 박힌 흙길이 소박하고 정겹다. 고개 숙여 안양문을 오르니 아! 무량수전, 그 단아한 위엄이 가슴을 친다. 단청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품위, 문살과 배흘림기둥과 처마의 곡선에 반해 가져간 시간을 다 소모했다. 멀리 첩첩이 뻗은 소백산맥이 횡대로 누워 자리에 들 때, 숨 가쁘게 조사당을 배알한다. 이 절을 다시 오는데 십년이 걸렸는데 다음은 또 언제일까?
노오란 태양을 찾아 반 고흐는 정신의 열대 아를로 갔다. 나는 가을빛 익는 황금들판을 살아온 날들의 파편처럼 스쳐 보내며 하회마을로 간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구상나무 한그루 심어 놓고 간 충효당을 나서자 서양 젊은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길을 메웠다. 붉게 발기한 맨드라미가 타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어대는 골목길. 서애 유성룡의 빛나던 학문과 품격의 자취가 그윽이 풍겨올 때, 나는 휘돌아가는 강물 따라 천천히 걸으며 감미로운 생을 음미한다. 하회탈춤 공연장은 관객들이 고개하나 들이밀 틈 없이 울타리를 치고 있어 발길을 돌린다. 어디로 갈까? 나는 간 고등어 냄새 풍겨오는 하오에 다시 걸었다.
가을빛 따라 내설악 백담사에 갔습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 가는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걸어서 갔습니다. 한 시간 남짓 오르는 산길은 호젓하고 아름다웠으나 오 분 여 간격으로 내뿜는 매연에 헐떡였습니다. 그래도 백담사로 통하는 수심교(修心橋) 아래 하얀 자갈과 맑은 물은 마음속 침전물을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백담사엔 스님들이 혼신을 다해 법고를 치며 마음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나는 조용한 음악이 님의 침묵처럼 흐르는 만해 기념관에서 그의 웅혼한 시심 속을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산사를 거닐며 아아, 순정한 사랑과 잃어버린 청춘은 긴장감을 상실한 채, 내 곁을 영영 떠나갔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요즘 심리적 외상(外傷)에 고통 받다가 선운사를 찾았다. 만세루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대웅전에서 굽어보는 부처님 전에 반성문을 올린다. 산문밖엔 달궈진 프라이팬의 식용유처럼 사무침에 몸부림치는 붉은 상사화(꽃무릇)가 무리지어 가슴 치고 있다. 타죽어도 좋을 그리운 사람 있어봤으면 좋겠다 싶다가 상처받기 싫어 고개 저었다. 제기랄! 기상이 수미산을 덮을 만 하다고 추사가 칭송한 긍선, 그의 백파율사비가 있는 박물관은 문이 닫혔다. 홧김에 풍천장어에 복분자주 한잔 삼키고 메밀꽃밭으로 갔다. 코스모스와 메밀꽃과 해바라기가 하얀 솜구름이 뜬 푸른 하늘아래 펼쳐졌다. 얼마 후면 국화도 피어 하늘계신 미당의 시심이 누리에 전해지리라.
들에는 곡식 냄새에 섞여 들깨 향기가 넘쳤다. 들깨 향기는 그윽한 먼 생각을 가져 온다 나는 지금 들깨 향기에 젖은 분녀처럼 메밀꽃 향에 젖었다. 서른여섯 청춘에 삶을 다한 이효석, 그가 메밀꽃으로 쓴 문학의 향기는 긴 세월 보낸 지금까지 그리움의 잔해로 남아 있다. 봉평은 온통 메밀꽃으로 물들었다. 엽서를 쓰면 무료로 보내주는 행사가 눈길을 끈다. 예쁜 메밀꽃 엽서를 들고 주점에 앉았지만 마땅한 수취인이 없어 망설이다가, 메밀전병에 메밀 막걸리 한 사발 넘긴 후 몇 자 적어 빨간 우체통에 보낸다. 퇴화된 전설, 친구 같고 연인 같은 가을의 대명사 그대에게로.
장맛비처럼 후드득 지나간 여름 끝에 폭염이 뒷북을 치고 있다. 그래봐야 혁명군처럼 등장한 가을은 전격적으로 조석을 점거했다. 송림에 둘러싸인 천장호도 가을기색이다. 긴 출렁다리를 건너 산자락을 산책하는 것도 산뜻하다. 청양은 구기자 고추축제에 뜨겁고 전국장사씨름의 여자씨름은 특히 재밌다. 김치 만들기 체험, 보리밥 비벼먹기 체험 등의 행사가 옛 장터를 회억시켜, 막걸리 한 사발에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삼켰다. 본고장 고추의 눈물 쏟는 매운맛이 짜릿하다. 들길 따라 칠갑산 장곡사에 들렀다. 하대웅전의 소박한 모습이 단아하지만 이 절이 아름다운 건 보물 네 개에 국보를 두개나 소장하고 있는 품격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