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올림픽 이념과 노력의 가치

바야흐로 올림픽 시즌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땀 흘리며 노력해 온 전 세계 선수들의 활약상이 연일 눈부시다. 이겨서 메달을 받기도 하고 아쉽게 패하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체만으로 가슴이 뭉클하다. 어쩌면 우리가 선수들의 웃음과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삶의 궤적은 달라도 마음에 품은 뜻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그리고 외로운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근대 올림픽의 역사는 프랑스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영향으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4년마다 개최되면서 점차 세계적인 종합 스포츠 대회로 성장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홈페이지에서는 올림픽 이념을 탁월함(excellence), 존중(respect), 우정(friendship) 세 가지 가치로 설명한다. 탁월함을 추구하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 되도록 격려하는 것, 상대방과 규칙·대중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해 다양한 방식으로 존중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특별한 행사에서 우정을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의 현대적 의의다. 올림픽 이념의 세 가지 가치를 찬찬히 살펴보면 성공과 결과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보다는 탁월한 수준에 오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절차탁마의 자세, 자신과 타인은 물론이고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를 존중하는 자세,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우애를 다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어쩌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내용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진부한 사실이라고 해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공과 결과는 시선을 빼앗기 쉽고, 그만큼 수많은 도전과 노력의 가치는 간과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전과 노력의 가치가 간과돼서는 안 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일상에서 우리는 매일 도전하고 노력한다. 올림픽 시즌을 맞아 올림픽 이념을 상기하며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도전 및 노력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 본다면 어떨까. 올림픽 경기장에 선 선수들에게 박수갈채와 응원을 보내듯이 지금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마땅히 박수갈채와 응원이 필요하다.

[경기시론] 양보와 배려라는 유행병

우리는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와 직장에서 늘 사람과 소통하면서 살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소통의 센서인 배려와 양보라는 씨줄과 날줄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인간사회에 품성에 의한 배려와 양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와 다름없을 것이다. 1981년 공무원 9급으로 지금 지방서기관, 4급에 해당하는 도청 과장을 강사로 초빙해 승용차로 안내하게 됐다.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에는 이미 사무실 선배 공무원 2명이 타고 있었다. 따라서 과장과 함께 승차하면 만원이 되는 상황이었다. 뒷자리 2석이 비어 있으므로 과장을 잘 모신다고 차 문을 열고 먼저 타도록 했다. 하지만 과장은 머뭇거린다. 다시 한번 권하자 과장은 먼저 타라 한다. 과장이 차 문을 열어주고 먼저 차에 오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제대로 된 승차의전은 앞자리에 타고 있는 직원이 내려 뒷좌석 차 문을 열고 대기하면 가장 후임인 필자가 가운데 타고 나서 과장이 차에 오르면 정중하게 차 문을 닫고 앞좌석에 탑승 후 출발하는 것이다. 나중에 승용차 승차예절을 이해하고 그날의 해프닝을 마음에 새기고 후배 공무원들에게 주법과 함께 승차 질서에 대한 잔소리를 많이 했다. 최근 신도시에 건립된 청년들을 위한 원룸을 방문했다. 방호문 앞에서 우물쭈물하는데 이미 안쪽에 들어선 청년이 잠깐 이쪽으로 걸어와 센서를 터치하니 문이 열렸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에도 청년은 먼저 타라는 몸짓으로 안내해 줬다. 정중하고 우아한 몸짓에 반했다. 그리고 5층까지 숨을 멈춰 가며 올라갔고 청년은 내리면서 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수고하시라 답 인사를 했다. 청년의 인사를 받고 잠시 놀랐던 것이다. 그리고 6층 옥상층에 내리는데 하늘에서 빛이 보였다. 기분이 좋으면 폭염의 햇빛도 기분 좋게 얼굴에 닿는다. 이때 생각났다. 수년 전에 아파트 방호문 안에 들어선 다섯 살 아이가 밖에 도착한 주민을 위해 폴짝 뛰어와서 센서를 건드리니 문이 열렸다. 아이는 부모가 그리하라 교육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아마 자신의 몸이 센서에 가면 문이 열리는 것이 재미있어 그리했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 봤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다른 이를 위한 배려를 실천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식은 부모를 보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그래서 30대에도 다른 이를 위해 온몸으로 방호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인사를 하는 젊은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이 더 많기를 기대한다. 그런 습관이 MZ세대의 새로운 유행병으로 도지기를 기원한다. 배려하고 양보하는 미덕이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원한다.

[경기시론] 공공성과 수익성이 조화된 공유재산관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가 보유한 재산을 국유재산이라고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을 공유재산이라고 한다. 공유재산의 규모는 2022년 결산액(현재액)을 기준으로 1천38조4천107억원이다. 지방재정의 세출 규모가 2022년 결산 기준 452조4천446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유재산의 규모는 지방재정의 2배가 넘는다. 경기도는 226조7천875억원의 공유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17개 시·도 중 가장 큰 규모다. 모든 사람이 아는 것처럼 재산은 보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개인재산이 예금·적금, 주식, 임대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도록 관리하는 것처럼 공유재산 역시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 공유재산은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궁금해진다. 공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공유재산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 공유재산은 수익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사유재산과 달리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공유재산은 지방공공재이기 때문에 공공성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공유재산을 활용해 대부료 등과 같은 세외수입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라는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공유재산은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공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수익성만 강조해서도 곤란하다. 그러나 현행 공유재산 관리는 수익성에 기반해 관리되고 있다. 이는 공유재산관리가 주로 매각 등과 같은 소극적인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또 재산을 대부할 때 받는 대부료는 시가를 반영한 해당 재산 평정 가격의 연 1천분의 10 이상의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고정된 대부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법을 통해서는 공유재산이 보유하고 있는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조화시키려면 현행 대부료 산정 방식을 민간에서 활용되고 있는 매출액 기반 수입배분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매출액 기반 수입배분 방식으로 전환하면 영세사업자는 고정된 대부료 방식에서 부담했던 금액보다 작은 규모를 부담하고 대규모 사업자는 더욱 많은 임대료를 부담하게 된다. 매출액 기반 수입배분 방식은 영세사업자에게 감면의 효과를 부여하게 돼 공공성의 성격을 충족하며 대규모 사업자에게는 더욱 많은 대부료를 받을 수 있어 수익성의 성격을 충족한다. 이외에도 공공성의 성격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과의 상생 및 협력 방안으로 공유재산의 사용⋅수익 허가 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우선권을 주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지방재정 규모보다 더 큰 규모를 보이는 공유재산은 공공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경기시론] 햇빛발전소를 완공하며

넓은 주차장 위로 햇빛이 쏟아진다. 땅 깊이 콘크리트 기초를 다지고 구조물의 뿌리가 될 앵커를 심는다. 콘크리트가 단단하게 굳기를 기다렸다가 부식 방지 도금된 철제 기둥을 앵커에 고정하고 그 위에 역시 도금된 철 구조물로 된 받침대를 얹는다. 햇빛을 받을 태양광전지를 올리고 전선을 연결한다. 전기가 필요한 곳마다 나눠주는 ‘배전망’에 연결하기 위해 땅 밑으로 전선이 지나갈 길을 만들고 모세혈관과 주 혈관처럼 각 역할이 있는 전선을 연결한다. 연결 위치마다 필요한 전기적 특성 요소를 변환하고 고장과 외부 영향으로부터 배전망과 발전시설 그리고 사람의 안전까지 지켜줄 각종 전환장치, 보호기기, 차단장치, 개폐기 등을 설치하고 이것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할 수 있는 통신기기도 설치한다. 새로운 발전소가 들어선 곳은 ‘수원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로 수원의 대표적인 농수산물과 생필품 유통센터다. 1년 매출이 2천억원 내외로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이다. 주차장 허가 면수도 1천면이 넘는다. 이곳 야외주차장에 평상시 이용객들에게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고 비를 막아주는 편리를 제공하고 깨끗한 전력까지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했다. 수원시 소유이면서 민간유통회사가 위탁 운영하는 공간에 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이 함께 들어선 수원의 대표 장소가 탄생한 것이다. 대부분 수원시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건립비 50% 이상을 ‘시민햇빛펀드’로 마련했고 나머지는 지역 기반 재생에너지 상생발전금융과 경기도 기후위기 특별보증(경기신용보증재단)을 활용했다. 이렇게 생산된 전력은 전력거래소를 통해 판매되고 가까운 배전망 안에서 수원시민들이 사용한다. 매출은 발전소 건립비 조성에 기여한 조합원에게 원금과 이익으로 돌아가고 지역금융 비용과 시설의 유지관리비, 협동조합의 고유사업인 재생에너지 시설구축과 기후위기 시민대응을 위한 지역사회 공익활동에 사용된다. 지역사회와 이익 공유로 연결된 협동조합은 시민 조합원 각각이 매우 좁게 기능화된 단조로운 삶을 넘어 직접 필요를 조달할 수 있는 종합적인 ‘생활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사업과 교육, 학습과 훈련 기회를 만들어 협동사회의 기반을 구축한다. 아무리 치열한 생존경쟁과 경제성장이 만능인 사회라도 그렇게 함께 사는 가치와 기반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다. 이렇듯 특정한 시대와 시기에 사회가 필요한 하나의 실체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사회의 현상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특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후 위기, 경험은 없지만 문명과 사회가 자초한 위기이기에 ‘그 위기’ 속에 원인과 해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문제, 그 문제 자체에 답이 있는 현상을 놓고도 매우 ‘똑똑한’ 인류는 흔들리고 있다. 인지 능력을 넘어선 고도화된 사회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연생태계와 사회의 망으로 연결됐다. 큰 힘이 들지라도 일시에 그물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 이를 외면하는 국가와 정부와 정치 따위가 불필요할 뿐이다.

[경기시론] 여름철 재해 방지 대책에 만전 기해야

지난 4일 기상청에 따르면 6월 전국 평균기온은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22.7도로 52년 중 1위를 기록했고 폭염 발생 일수도 역대 1위를 경신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20일부터 6월9일까지의 온열질환자가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3% 증가했다. 폭염 뒤에 찾아오는 폭우 또한 문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맞물려 폭염과 폭우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는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폭염과 폭우에 대비하는 재해 방지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최근 경기도는 폭염에 대비해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하고 방문, 전화, 재난도우미 활동 등을 통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한편 옥외노동자와 농업인을 중심으로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을 진행했다. 또 여름철 집중호우에 대비해 산사태 취약지역, 해체가 진행 중인 공사장 등을 안전점검하고 전화 등을 통해 재해 취약가구에 대한 안부를 확인하는 한편 주택, 지하차도, 배수펌프 등에 대한 점검을 하는 등 선제적 조처를 했다.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사명이자 의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는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제2조). 대법원은 재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문제 된 사안에서 국가의 초법규적 의무를 일관적으로 인정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대해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 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어 국가가 그러한 위험을 제거하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폭우, 폭염과 같은 자연재해의 경우 재해의 특성상 사고 발생의 예측이 어렵고 공무원의 대처와 실제로 발생한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부정될 수는 없다. 과거에 비해 달라진 기후 상황 속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강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책이 더욱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재해 발생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시민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재해 방지 대책에 만전을 기해 올해에는 미온적인 대처 때문에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더 이상 없기를 기대한다.

[경기시론] 진천 농다리와 행정 역할

충북 진천군 문백면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농다리를 처음 방문했다. 진천농다리는 1천년 전인 고려시대에 임씨 성의 장군이 축조했다고 하는데 아마 장군 혼자서 축조한 것은 아닐 것이고 군사와 백성이 함께 만들고 군사작전은 물론 농사와 백성들의 소통에 소중한 인프라로 활용했을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은 농다리를 이용해 농산물을 나르고 보부상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거리를 돌아가지 않고 편안하게 인근 마을로 이동했을 것이다. 근세에는 흰옷을 입은 국민들이 개헌 국민투표,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을 직접 뽑기 위해 농다리를 지나갔을 것이다. 설명을 보면 농다리는 작은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후 지네 모양을 본떠 길게 늘여 만들어 졌으며 별자리 28수에 따라 총 28칸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전체 폭은 넓은데 28칸은 중앙에 조금 큰 돌판으로 길을 연결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중앙에 연결된 돌판으로 걸어서 오간다. 멀리서 바라보면 구둣발, 운동화, 조선시대 짚신의 발자취와 사람들의 흔적이 검은색 돌의 표면을 갈아서 조금 밝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며 그 선을 따라가면 거대한 지네, 뱀이 지나가는 듯한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 1천년 후의 후손들은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정자를 세우고 나무 덱(deck)으로 길을 내고 성황당 고갯길에 용을 세웠다. 여의주를 만져보라 한다. 여의주가 나그네에게 행운을 줄 것이란다. 깔끔하고 세련된 조형물이 풍성한 나무와 풀, 산자락과 어우러진다. 인공을 가미했지만 자연스러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니 나그네의 기분이 좋다. 농다리 상류 10m 지점에는 군청 공무원이 설치한 듯 보이는 부교가 있다. 긴 다리를 관광하는 인원이 많을 경우 부교를 이용해 오가도록 배려한 시설이겠다. 좁은 다리를 건너기 불편한 분들이 부교를 이용하면 좋겠다. 다만 장마철에 물살이 거세지면 이 부교를 밀고 내려온 강물이 농다리를 흔들까 봐 걱정된다. 농다리 주차장을 출발해 7시30분께 식당 앞에 주차하려는데 착한 얼굴의 주인장이 창문으로 인사를 한다. “재료가 소진돼 식사가 안 됩니다.” 이제 고작 오후 7시30분인데 마감이란다. 얼마나 손님이 많으면 이럴까.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손님이 많은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지만 이 식당의 손님 대부분이 농다리 관광객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1천년 전 장군과 군사와 백성들이 건립한 농다리가 있고 그 주변을 진천군수와 공무원들이 깔끔하게 정비한 덕분에 손님이 늘어난 것이리라. 다음 번에 도착한 상가 건물의 손님 많은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또 다른 부부 손님이 들었다.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니 농다리 관광객이다. 여기까지도 농다리의 관광 효과는 지속된다. 비전문가가 봐도 이 지역 식당들이 성업하는 힘은 자신들의 맛집 노하우도 있겠지만 농다리와 주변을 개발한 진천군 당국의 재정적 투자 효과로 보인다. 그래서 주장한다.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역량을 ‘농다리 사례’에 집중하자. 행정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바로 진천군의 ‘농다리 행정’에 있음을 공감하자. 더불어 진천 농다리 주변 4㎞ 이내 잘되는 식당 사장님께 한마디 전한다. “매년 한 번 진천군수님과 진천군 공무원들에게 감사장을 전하라. 진천군 선진행정의 홍보대사를 자임하라.”

[경기시론] 정부 간 관계 재구축 필요

지방자치제가 재실시되기 이전의 한국은 지방정부의 장을 국가에서 임명하는 방식이었고 지방의회는 없었다. 국가로부터 임명을 받은 지방정부의 장은 지역주민보다는 임명권자인 국가의 명령을 집행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부 간 관계는 오징어 모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오징어의 머리를 중앙정부 그리고 10개의 다리를 지방정부(주민, 기업 포함)라고 가정하면 과거의 한국은 중앙정부에 있는 소수의 엘리트가 명령을 내리고 지방정부가 이를 집행하는 중앙정부 우위형의 정부 간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1년 지방의회의원선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제가 재실시됐다. 주민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방정부의 장과 지방의회의원들은 자신을 선출해 준 주민과 지역의 기업이 원하는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의 정부 간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오징어 모형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필자는 정부 간 관계를 새롭게 구축할 때 적용해 볼 수 있는 모형으로 세발자전거 모형을 제안하려고 한다. 세발자전거 모형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정부 간 관계에 세발자전거의 원리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세발자전거는 1개의 앞바퀴와 2개의 뒷바퀴 그리고 안장으로 구성돼 있다. 세발자전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동력전달 기능을 수행하는 안장이다. 여기에 주민이 앉을 수 있도록 하자. 주민들이 원하는 행정을 하기 위해서는 명령권자가 주민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 앞바퀴는 세발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의 기업이 위치하도록 하자. 기업은 지역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므로 앞바퀴에서 끌고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뒷바퀴 두 개가 남아 있다. 특징적인 것은 세발자전거를 구성하고 있는 2개의 뒷바퀴 크기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한쪽의 바퀴가 크면 그만큼 안정성을 해친다. 뒷바퀴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위치시키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주민이 행복하고, 기업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 이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 둘째, 새로운 한국의 정부 간 관계를 설계할 때 서두르지 말자는 것이다. 세발자전거의 속도는 기존의 교통수단과 비교하면 매우 느리고, 평지의 이동 수단으로 설계했기 때문에 제동장치도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속도를 내기 위해 내리막 경사가 있는 곳에서 타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새로운 정부 간 관계를 구축할 때 우주선을 타고 가는 속도로 급하게 결정하면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세발자전거가 움직이는 것과 같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때로는 쉬어가기도 하면서 충분히 논의해 결정하자는 것이다. 환경의 변화는 정부 간 관계의 전환을 요구한다. 새로운 정부 간 관계는 세발자전거의 원리를 적용해 재구축될 수 있도록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경기시론] 에너지 전환 기반이 무너진다

지난달 31일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했다. 전기본은 국가 중장기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해 2년 주기로 수립하는 계획으로 향후 15년간 전력 수급의 기본방향과 장기전망, 발전설비 계획, 전력수요 관리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전기본의 핵심은 전력수요 전망과 공급능력이다. 경제성장, 인구, 기후변화(온도), 전체 에너지 사용의 전기화 추세, 산업변동, 수요관리 목표, 적정예비율(22%), 재생에너지 등을 고려해 확정 설비를 산출하고 전력수급 전망에 따른 설비계획을 수립한다. 재생에너지는 설비용량에서 실효용량을 반영하고 비계량 태양광은 추정치를 반영한다. 현 정부가 밀고 있는 ‘무탄소’ 개념은 무역과 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 관계에서 어떤 공식적 위치도 없다. RE100만으로 부족한 부분, 탄소중립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으니 수요의 유연한 운영관리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원이 주류가 되는 추세에 적응하고 노력한다는 개념(CFE)을 알고도 오용한 것이다. ‘태양광·풍력 3배 이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꼴찌의 다른 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에 머물던 집권 초기, 이전 정부가 세운 2030년 30% 목표를 21.6%로 싹둑 잘라 현 시점 대비 ‘3배 달성’하겠다고 호도하던 것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현재 OECD 회원국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이미 30%를 웃돈다. 수요 과다 산출, 수요관리 하향, 재생에너지 목표 하향, 설비 목표 상향, 액화천연가스(LNG)발전 확대, 대형 신규 핵발전소 계획으로 이어지는 경직되고 무거운 에너지시스템의 층을 쌓고 있다. 멍에가 씌워지고 발목이 잡힐 것이다. 핵발전은 RE100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은 경기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수백조원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아직 지난 정부 때 발표한 계획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 RE100 달성을 위한 자구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고 현 정부도 ‘핵발전 과몰입’에 빠져 손을 놓고 있다. 그걸 핑계로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 투자 계획을 해외로 돌릴 것이 명확하다. 3배를 달성하겠다는 재생에너지 발전은 마치 ‘자연 증가율’을 고려한 듯 전망치만 내놓고 10년 이상이 걸리고 수십조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대형 핵발전 프로젝트는 정부가 납세자의 돈으로 보증하고 지원하며, 일괄 계획하고 승인한다. 아직 개발 중이고 실존하지 않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은 10년도 더 후에 실증을 위해 계획에 반영했다. 기후위기 대응은 몇 번 시행착오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전환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고 기회를 잃고 있다. 아직 권한이 미약한 국회 보고와 공청회가 남아 있는데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기시론] 아동의 놀 권리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아동의 양육과 생활환경, 언어·인지 발달, 정서적·신체적 건강, 아동안전, 아동학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동복지법 제11조에 근거해 실시된 이 조사는 이번이 세 번째로 우리 사회 내 아동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정책 수립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시행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은 전반적인 아동 삶의 만족도가 2018년 조사 당시에 비해 향상됐고 인지발달과 언어발달 수준, 가족관계와 친구관계, 아동의 안전이 개선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부정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동의 비만율이 증가하고 정신건강 고위험군이 존재하며 아동의 놀 권리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의 여가 활동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보면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기를 원하지만 같이 놀지 못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많이 하고 있으며 신체활동인 운동을 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는 모든 아동은 적절한 휴식과 여가를 즐기며,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레크리에이션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해 이른바 ‘아동의 놀 권리’를 규정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온전하고 조화롭게 성장해야 하는 발달 단계에 있으므로 아동에 법적 보호를 비롯한 특별한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의식에 기초해 아동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제사회의 협약으로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이번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아동의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숙제나 시험, 성적, 대학입시 또는 취업에 대한 부담 등이 지적됐는데 어릴 때부터 경쟁적인 분위기와 실수나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면 이런 부담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아동은 적절한 휴식과 여가 생활을 통해 정서·신체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창의성과 사회성을 기르면서 한 사람의 행복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아동이 자유롭게 놀이하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 아동의 놀 권리에 관한 사회적 인식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도에서는 2019년 경기도 아동의 놀 권리 증진을 위한 조례를 마련한 바 있다. 아동에게 놀이와 휴식은 단순한 놀이나 쉼이 아니라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자 기초라는 점에서 아동의 놀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경기시론] 간부 공무원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라

1980년 ‘서울의 봄’이라는 말이 정치권에 회자하던 시절에 공무원 9급으로 근무 중 입대해 병역을 마치고 화성군 팔탄면사무소에 발령받았다. 전임 회계 담당 역시 입대 휴직한 상황이어서 다른 면 출신이었지만 그리도 중요하게 친다는 회계담당자가 됐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총무계 직원 3명 모두가 9급이었고 경력상 선임이어서 자연스럽게 회계주사가 됐다. 당시에는 9급, 8급이 회계업무를 담당해도 ‘주사’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계장급에 속하는 주사로 격상해 회계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총무계장과 산업계장이 장기근속으로 인해 상호 간 자리를 바꾸게 됐다. 회계서류를 준비하고 결재를 받게 됐다. 당시 23세, 공무원 3년 차 9급 공무원이 사비로 총무계장 도장을 새겼다. 결재를 올리고 인주를 대령한 후 새로 준비한 도장을 드렸다. 결재를 위한 도장을 받은 총무계장의 기분 좋은 환한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송구하지만 지금부터는 2차분 자기 자랑이다. 팔탄면사무소에서 1년여를 근무하고 다른 기관으로 발령받았다.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화성군에서 후임자를 보내지 못한 상황이어서 회계업무를 총무계장이 담당하게 됐다. 당시에는 매월 20일 봉급을 주려면 5일 정도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주판으로 계산하고 먹지를 넣고 3부를 복제했다. 다른 기관으로 전근한 후 5일을 내리 퇴근해 팔탄면 공무원 봉급 서류를 준비했다. 다음 달에도 같은 작업을 했다. 교통이 불편해 환승 할인이 없던 시절에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저녁 출근을 했다. 이 일로 총무계장은 필자를 위한 칭찬 대변인이 됐다. 주변의 공무원을 만나면 팔탄면 근무했던 전출 공무원 이야기를 전했다. 늘 크게 칭찬했다. 지인들로부터 여러 번 계장의 칭찬에 대한 전언이 있었다. 작은 일을 크게 키워 칭찬해 주니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훗날 생각해 보니 계장의 분에 넘치는 칭찬이 긍정의 마인드로 작용했나 보다. 이후 공직생활에서도 계장의 칭찬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4년 공무원 8급 신입 시절, 새로운 일이 나오면 각 팀의 차석들이 업무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최근의 공직사회에서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허가가 가능한 규정을 찾기보다는 불허가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단다. 더 이상 이런 자세로는 이 시대 행정을 선도하기 어렵다. 후배 공무원 모두에게 좀 더 역동적인 선진행정, 미래지향적인 적극 행정을 주문한다. 젊은 공무원들이여! 부탁드린다. 우리의 국장, 여러분의 과장, 바로 위 팀장에게 자랑스럽게 ‘호부호형을 허하라!’

[경기시론] 지방재정의 지출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

한국 지방정부의 살림살이는 자체적으로 징수하는 지방세와 세외수입,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이전해 주는 지방교부세, 국고보조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그리고 지방채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정부의 살림살이는 지출해야 하는 금액을 결정하고 수입액을 정하는 양출제입(量出制入)의 원칙과 수입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지출을 결정하는 양입제출(量入制出)의 원칙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로 들어오는 수입이 충분할 때는 양출제입의 원칙을 준수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지출해야 하는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양입제출의 원칙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처한 현재의 재정 여건을 고려한다면 그동안 활용했던 양출제입의 원칙에서 벗어나 양입제출의 원칙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방재정은 중앙재정과 달리 양입제출의 원칙으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결해야 할 추가적인 숙제가 있다. 지방재정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재원이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에 의해 지방정부로 이전되는 국고보조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는 지출해야 하는 용도가 지정돼 있어 지방정부가 지출하고자 하는 용도로 지출할 수 없다. 지방자치제의 실시 목적이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뽑아 자기 부담에 의해 처리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주민의 복리를 증진하는 데 있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이전해 주는 재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체 재원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규모가 용도가 지정돼 내려오는 중앙정부의 이전 규모보다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지방재정 현황을 보면 지방세와 세외수입이 일반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재정자립도가 2015년 44.20%에서 점차 하락해 2022년에는 39.73%가 됐다. 이는 지방재정의 지출 자율성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제를 재실시한 지 3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자립도가 3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지방재정의 지출 자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중앙정부는 지방재정의 낭비와 비효율성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다수의 재정관리제도를 도입해 지방재정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지방정부에 부여된 재정지출의 자율성은 재정자립도에서 보는 것처럼 30~4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다수의 재정관리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모든 정부는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분권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정자립도에서 보는 것처럼 개선의 정도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지방정부에 재정의 지출 자율성을 향상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경기시론] 기후정치 스트레스

불안하고 염려스럽다. 이번 세기 동안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로 제안하자는 지구적 협약은 ‘21세기’라는 거대한 단어가 무색하게 그 시작 단계에서부터 다음 목표로 후퇴했다고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 시나리오 과정으로 가고 있다. 두려움이 앞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문제일까, 감정의 불꽃을 태울 만한 풍요로운 성장의 열망과 다르게 최대 목표가 겨우 ‘자기 유지’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는 화석연료를 아낌없이 태웠던 그 열망과 동기 이상의 것을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사실만을 만천하에 알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인간이 발견하고 발전시켜 온 물리적 이론과 과학, 기술은 문명의 시야를 지구적, 우주적 차원까지 끌어올렸지만 뛰어난 지능과 사회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로서 인간의 보편적 인지는 생활의 울타리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 대량생산 산업체계의 관성적 사고방식 안에 머물기가 훨씬 익숙하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를 경험한 적이 없고 그 범위와 차원 때문에 얼어붙듯 멈춰 서는 게 지극히 정상적일 수도 있지만 지독한 스트레스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방향을 돌릴 집단적 열망과 동기가 필요하다. 이 또한 역사적 경험일 수밖에 없겠지만 변화를 열망하는 에너지가 가장 크게 분출됐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자. 물질적 소유관계와 이념, 사회적, 경제적 자유와 평등, 인권, 공정, 이런 것들의 이해관계에서 ‘나는’, 내가 속한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더 많은 것을 쟁취할 수 있는가. 마음을 쏟아 살아왔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자. 이 중에 지속할 수 있는 것들은 획기적인 기준점 조정으로 유효할 수도 있고 아예 폐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기준을 정하는 자리에 항상 정치가 있었다. 그 위치에서 흔들리고 멈춰 서 있다. 인간의 관성적 생활권과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구생태계를 구분은 하되 자기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자해적 생명체로 남지 않기 위해 어떤 이념과 가치를 열망해야 하는가. 다수의 시민이 지구생태계를 사회와 경제의 공통 기반으로 보는 정치이념을 갖고 행동하는, 민감한 정치 고관여층이 돼야 한다. 뚜렷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구조적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철 지난 ‘무슨 무슨’ 출신이다, 정치권력을 좇는 세력들이 선거철만 되면 시민들을 상전 모시듯 하다가 투표가 끝나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선민의식에 찌든 정치엘리트들부터 퇴출해야 한다. 지금까지 주류 정치권력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효과적인 모습이라도 보여준 세력이 있는가. 오히려 각성한 시민들이 앞서 행동하고 요구하고 있다. 기후 국회와 정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보다 강제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촛불항쟁 이후에 직업적인 정치인들에게 시민여론에 의한 정치적 퇴출의 압박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기시론] 악성 민원과 정보공개청구

지난 2일 정부는 ‘악성 민원 방지와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악성 민원 등으로 인해 공무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민원인의 폭언, 폭행 등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할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진 상황에서 민원 공무원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악성 민원 방지와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의 주요 내용은 악성 민원 사전 예방과 조기 차단, 악성 민원 대응과 피해 공무원 보호, 민원 처리 여건 개선과 서비스 품질 제고, 민원 공무원 사기 진작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악성 민원의 개념을 정립해 어떤 행위들이 악성 민원에 해당하는지 유형화하고, 유형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방법이 제시됐다. 또 종결 가능한 민원의 대상을 확대하고 부당하거나 과도하게 제기되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는 심의회를 거쳐 종결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악성 민원 발생 시 기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고 피해 공무원에게 충분한 피해 회복 시간을 부여하는 등 여러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특히 정보공개청구의 경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과도한 정보공개청구로 인한 업무 부담 증가 등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지고(제5조), 공공기관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을 위해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함이 원칙이다(제3조).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제도적 의의가 있다. 만약 오직 공무원의 업무 부담을 과도하게 증가시키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악용한다면 이는 정보공개법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다. 현행 정보공개법 제11조의 2는 정보 공개를 청구해 정보 공개 여부에 대한 결정 통지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해당 정보의 공개를 다시 청구하는 경우 등 반복된 청구에 대해서는 해당 청구를 종결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했으나 이 규정만으로는 이른바 악성 민원을 사전에 예방하고 조기에 차단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에 이번 악성 민원 방지와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에서 부당하거나 과도하게 제기되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는 심의회를 거쳐 종결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이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의 권리 보장과 행정에 대한 적법성 통제 기능 차원에서 정보공개청구의 순기능과 제도적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행 정보공개법 체제하에서도 공공기관은 자신이 보유·관리하는 정보가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해 공개하지 않고 국민이 이를 다퉈 결국 공개함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받는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폭언, 폭행 등과 같은 명약관화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정보공개청구와 같은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 어느 정도까지를 악성 민원으로 볼지는 정보공개법의 입법취지와 기능, 해당 청구로 인한 부작용 등을 비교 형량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경기시론] 기후정치는 가능한가

새로운 국회가 출범한다. 구도는 4년 전과 비슷하다. ‘촛불’의 열망이 민주당의 정치적 과점으로 투영됐던 상황을 단순한 승리로 오판한 ‘국회의원들’과 국정농단의 원흉이라는 심판대에서 다시 생존과 재기를 노려야 하는 구 정치세력의 싸움에서, 정치적 오판의 안일함과 생존의 절박함 사이에서 양날의 검으로 쓰인 소수의 정치 검사들이 국가 경영의 기회를 얻었지만 그 욕망과 실제 실력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결과다. 이런 유형의 얽힘이 역사적으로 반복될 소지는 있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학습과 판단력과 결행 능력도 동시에 향상돼 민주주의 동학은 느리게나마 시민 주도로 바뀌고 있다. 밀도가 높은 에너지원을 계속 쏟아부어야 유지가 가능한 대량소비 산업생산 체제라는 지구적 공통의 기반 위에서 자원과 정치경제, 외교, 군사적 역학관계에서 생존 우위와 세계적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관성적인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특정 국가 대 국가 간 벌어진 일로만 명명하기에는 곤란한 두 개의 ‘세계전쟁’이 이 같은 힘의 구도를 뒷받침하면서 민주주의는 각 국가 차원에서나 국제관계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얹힌 ‘기후 위기’라는 난제는 관성적인 경쟁 구도 재편이 반복해 가능하게 했던 저렴한 화석연료와 자원 식민지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지구적 무게로 인해 아예 새로운 문명의 창조를 강제하는 판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지구적 무게 앞에서 아무리 인간이 위대한 지배종일지라도 몸과 자연을 통한 물질대사 활동을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릴 힘은 없다. 우리가 태워 사용하고 버린 화석연료는 지질 활동의 차원에서만 생성이 가능한 고밀도의 개념이고 에너지다. 그 시간만으로도 인류가 이룩한 역사와 문명에 영원의 시간이다. 그래서 태양, 바람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인간의 시간’ 또는 ‘현재의 시간’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이 시간을 만들고 통제할 수는 없지만 측정하고 깨달을 수 있는 생명체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어떤 특정 방향으로 행위를 줄이고 전환할 수는 있다. 우리가 정치를 이야기하고 그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후 정치를 겨루는 장 위에서 누군가는 생존으로 포장한 관성적 지배만을 주장하는 퇴행적 세력이 있을 것이고, 중간 위치에서 심판 행세나 하려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을 멈추거나 지속하고 또 필요한 새로운 행위를 만들고 실천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역사의 시각에서 퇴행마저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나마 관성적 주도권 싸움이라도 선명하게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기후 정치라는 새로운 토양을 일구면서 빠르게 성장을 멈춰야 할 것들과 지속해서 성장해야 할 것들, 좋은 삶을 위해 튼튼히 해야 할 사회 기반과 인간이 사회와 생명체로서 착근하고 있는 자연생태에 대한 인식과 태도로 함께 겨뤄보기를 희망한다.

[경기시론]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책임성

한국의 지방자치제가 재실시된 지 30여년이 지났다. 민법 제4조에서는 19세면 성년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년은 미성년자와 달리 독립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그렇다면 30여년의 지방자치제 재실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지방정부는 자율적으로 행정행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지, 그리고 지방의회와 지역주민은 지방정부의 자율적 행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가졌는지가 궁금해진다. 지방정부의 자율성은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치권에는 자치입법권, 자치사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이 있다. 자치입법권은 지방정부가 필요한 법령을 스스로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고 자치사법권은 자치법원을 보유하면서 사법적 권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치행정권은 지방정부가 사무, 조직, 인사 등의 권한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의미하고 자치재정권은 수입과 지출의 관리, 예산의 편성·집행·관리를 위한 자율적 권한을 의미한다. 지방정부의 책임성은 지방정부의 자율적인 행정행위에 대해 누가 책임을 묻는지를 기준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의회, 지역주민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의 지방정부는 자치입법권, 자치사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과 같은 자치권의 수준이 높지 않으며 재정 책임성을 확보하는 장치 역시 지방의회나 지역주민이 아닌 중앙정부에 편중돼 있다. 즉, 한국의 지방정부는 충분한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며 지방정부의 행정행위에 대한 책임은 지방의회나 지역주민이 아닌 중앙정부가 묻고 있다. 이러한 여건이라면 지방정부는 지방의회와 지역의 주민이 아닌 중앙정부를 바라보고 일할 수밖에 없게 돼 지방자치제를 재실시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지방자치제의 재실시 목적에 부합하려면 자치권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가사무의 지방정부 이양, 지방정부의 기구 수와 공무원 수의 결정 주체를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전환, 국세의 지방세 이양, 신세원 발굴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지방정부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만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처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책임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지방의회와 지역주민이 지방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방의회와 지역의 주민이 지방정부에 책임을 물으려면 다른 지방정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하므로 중앙정부가 관련 정보를 생산해 지방의회와 지역주민에게 배포해야 한다.

[경기시론] 새빛민원실 베테랑 팀장

공무원의 직업병에는 치료약이 없고 발병되면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직업병이 도져서 하는 말이다. 이 병은 관공서를 찾아가 이야기하기보다는 글로 적어 주변에 알리는 것이 효율적인 치유 방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사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남양주시에서 ‘다산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다산 선생님이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이야기다. 이 편지를 자자손손 보존하면서 분실, 훼손 위기를 여러 번 넘긴다. 아내의 색 바랜 치마폭에 편지를 적었다고 해서 ‘하피첩’이라 불리는 편지 묶음은 총 4편으로 구성됐는데 아쉽게도 네 번째 편이 분실됐다. 그래서 남양주시에서 이 시대 어른들의 말씀으로 채워 넣는 백일장 행사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 태조의 건원릉,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홍유릉 등 조선왕 27분의 왕릉 미니어처를 남양주시에 만들어 초·중·고교생을 위한 역사 공부의 메카로 조성하자는 제안도 글로 올린 바 있다. 하지만 남양주시 공무원들이 이 의견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세월 지난 퇴직 공무원의 직업병 증세 정도로 평가받는 아쉬움도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지난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데 현업에 바쁘다 보니 기관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기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성공적인 사례도 있다. 수원특례시 새빛민원실 베테랑 팀장의 사례다. 팀장 5인의 직렬은 다양하지만 담당하는 일에는 구분이 없다. 공무원이 필요하고 시정이 나가야 할 곳에는 발 빠르게 달려간다. 수원시 광교호수공원을 출발해 수원비행장 인근 황구지천으로 흘러가는 원천천의 삼성연구소 인근 지점에서 발견된 물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고사위기의 각목버드나무를 구해 호수 주변에 이식하는 일을 ‘시정의 업무’라 생각한 것이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버드나무가 최소 3년 이내에 수원시민 다수가 그 존재를 알게 될 것을 확신한다. 공직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조례와 규칙이 정한 업무를 처리함은 물론 미래의 간부 공무원으로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데도 힘을 써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9급 신규 공무원의 퇴직이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더 좋은 공직, 기업의 좋은 자리로 옮겨가는 퇴직자가 있을 것이고 대안 없이 공직을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과거 선배 공무원 중 한번 들어선 공직을 평생 열정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의무인 줄 알았던 분들이 많았다. 선배들은 공무원을 안 했으면 어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직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들 선배와 같은 그런 자부심과 자긍심을 이 시대 후배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일부는 이어받기를 바란다. 후회 없는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랑스럽게 퇴직하는 그날을 위해서도 지금 40대 공직자라면 자신의 공직관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리하면 더 큰 공직의 발전이 이어질 것임을 확신한다.

[경기시론] 자살 예방에 대한 국가의 책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통해 자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한편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한다. 이 법에 따르면 국민은 자살 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됐다고 판단할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살예방정책을 수립·시행하는데 적극 협조해야 하며 자살할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발견한 때에는 그가 구조되도록 조처할 의무를 갖는다(제3조).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자살예방 등을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했다는 것이다(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살 위험자를 위험으로부터 적극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자살의 사전 예방, 자살 발생 위기에 대한 대응 및 자살이 발생한 후 또는 자살이 미수에 그친 후 사후 대응의 각 단계에 따른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자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최근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군인이 군 복무 중 자살한 사안에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과 장병의 자살예방 대책과 관련한 부대관리훈령 등의 규정 내용을 종합해 각급 부대의 관계자가 자살예방 관련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속 장병의 자살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 자살 사고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을 때 해당 관계자의 직무상 의무 위반과 이에 대한 과실이 인정되고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배상책임을 진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자살을 예방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할 국가의 책무를 다시금 환기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의 발로, 극단적 선택 또는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고 사회적 또는 국가적 위기로 인식해 자살 예방을 위해 적극적이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 경기도 정신건강복지센터 내 부설 경기도 자살예방센터를 설치·운영하면서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을 조기에 발견해 전문기관에 연계하는 생명지킴이를 양성하고, 자살 유발 정보의 유통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청년 생명사랑 모니터단을 운영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비를 지원하는 마인드 케어 사업의 대상을 확대하는 등 여러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같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노력이 지속돼 이른바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경기시론] 정치의 크기와 행정의 넓이

우리 사회는 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 그리고 시·군청 행정구역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도심의 건물과 아파트와 넓은 도로, 신호등, 대기업 연구동 등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일상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보니 행정이 이 모든 것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정치와 행정 외에 더 있음을 알게 된다. 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뀌고 도지사가 새로 취임하면 도 전체와 시정 전반이 크게 바뀌는 듯 야단법석을 떨지만 실제로 당해 행정구역 안의 국민을 위한 기반 시설은 늘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시설 중에는 시장 업무 소관 밖의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전기, 가스, 통신 등 시민의 일상생활에 필수 요소들은 민간에서 운영하거나 정부 투자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행정은 기본에 충실해야 성공한다. 시장과 공무원들은 거대한 홍보성의 정책만을 제시하기보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시설을 잘 구비하는 데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공무원이 어느 정당 색상의 누가 시장에 당선되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각자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는 행정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행정의 기본적인 업무가 모두 부각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시민을 위한 당연한 사업을 위한 행정에 시장과 공무원이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도지사와 시장이 관심 갖는 사업이 언론을 통해 홍보되고 자체 평가에서 고득점을 받는다. 그리고 승진 후보자를 추천하면 기관장은 일부의 후보자에 대해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탈락시킨다. 즉, 기관장 관심사업을 추진한 부서의 눈에 띄는 공무원을 우선 승진시키려 한다. 이에 민초 같은 공무원들은 슬프다. 공직은 평생 40년이고 선거직은 4년이다. 10 대 1 이상 차이가 나지만 기관장의 영향력은 1천배가 넘는다. 기관장의 권력은 막강하고 주무관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이래서는 행정이 발전하지 못한다. 몇 사람을 수직 승진시키는 성취감이 행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고생한 공직자의 상실감에 매몰된다. 강변 백사장은 골프공만 한 자갈과 좁쌀 같은 모래알로 예쁘게 구성된다. 모래밭은 부드럽고 자갈밭은 아름답다. 거대한 돌덩이만으로는 아름다운 하천을 꾸미지 못한다. 행정과 조직에서도 그렇다. 주무관은 기관장이 큰 바위 얼굴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관장은 존재 자체가 거대한 바위다. 따라서 기관장은 드넓은 백사장 어느 한 개의 조약돌이 돼야 한다. 기관장 스스로가 자갈과 모래가 돼 주무관과 함께 부대끼며 소통하고 어울려야 한다. 소통의 힘과 영향력은 바위보다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등 몇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과거의 정치 무대가 아니다. 행정 역시 단체장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빈 수레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인, 행정가보다 행정과 정치를 더 잘 알고 있고 정치인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민초가 돼 우리 사회를 바른 길로 이끌고 있다.

[경기시론] 저출산과 보충적 출생지주의

한국이 저출산 국가라는 것은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이라는 사실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국민의 대다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의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저출산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고령사회를 촉진하게 되며 지방소멸로 연계될 수 있어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고령사회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했으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이 새로운 정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정책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중 하나는 국적 취득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규모가 250만명을 초과했다는 사실로부터 논의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국적을 취득하는 방식에는 선천적 취득 방식과 후천적 취득 방식이 있다. 선천적 취득 방식에는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가 있고 후천적 방식에는 인지, 귀화, 국적회복 등의 방식이 있다. 혈통주의는 부모의 혈통을 기준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다. 혈통주의는 동일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혈통에 의해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출생지주의는 국적을 취득하기를 희망하는 자가 국적 취득을 희망하는 국가에서 출생했을 경우 해당 국가의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제적 추세를 보면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의 양극단을 고집하는 국가는 감소하고 있고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를 병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혈통주의에 의해 국적을 취득한다. 국제적 추세에 부응하고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인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혈통주의에서 벗어나 출생지주의를 병용하는 방식, 즉 보충적 출생지주의로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과거 참여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을 논의했으나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4월에는 법무부에 의해 국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입법 예고됐으며 여기에는 2대 이상 한국에 살고 있거나 우리와 혈통을 같이하는 영주권자의 국내 출생 자녀가 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가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하려면 강한 혈통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국민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심도 있게 논의한 후 국민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또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복수국적, 병역, 참정권 등 다수의 쟁점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충적 출생지주의의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경기시론] 기후정치

사회와 개인에게 필요한 공통의 것을 함께 만들어 나누며 그 과정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며 순환하는 것, 개인의 필요 욕구에서 출발하지만 집단적인 목표와 협의와 조정을 통해 공통의 필요를 만들어 가는 것, 각 개인이 ‘우리’가 돼 더 좋은 이기심을 발현하는 것, 정치는 그 자체가 공통의 필요이기도 하지만 공통의 필요를 만드는 모든 행위와 제도, 규범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시민들이 각자 또는 함께 발전시켜 온 역량과 열정으로 같은 방향의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는 인간의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각자 생각이 달라도 큰 틀에서 ‘우리’가 돼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 고비에서 정치가 실패했을 때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항상 한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라. 오늘 마음이 가는 옷과 먹고 싶은 것에서부터 같은 회사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작업 스타일, 일관된 선호와 지역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것들, 한 나라 차원의 시스템과 제도, 세계적이고 지구적 차원의 체제 문제까지 연쇄적인 되먹임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라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가. 아마 기후변화가 그런 문제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모두 ‘우리’가 돼 성공과 번영을 위해 몰입했던 덕분에 우리는 단 하나의 문제이면서 전체의 문제를 마주 대하게 됐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 생산과 소비 시스템이라는 너무도 명백하고 체계적인 원인이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공통의 지름길들 또한 있으나 해결의 줄기로 이어지는 간선은 아직 희미하다. 공통의 것을 만들지 못하는 ‘우리 정치’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파리기후협약이 지구 평균온도 1.5도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국가별로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행할 것을 결의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저렴한 화석연료는 쉼 없이 채굴 중이고 새로운 유전, 가스전, 탄광을 찾아 지구를 헤집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세계적인 ‘공통의 것’인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보라. 태양광에너지산업은 그 기반까지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현 정부의 ‘태양광 때리기’와 내수시장을 지탱해 온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RPS), 한국형 소형태양광 고정가격계약제도(FIT) 등 재생에너지 지원 제도가 동시에 축소 또는 일몰됐다. 신재생에너지 국가 목표도 축소됐고 3년 전 연간 신규 발전시설이 5GW에 달했던 것도 반 토막 났다. 시민들은 4월10일 이후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치가 우리를 비극이 없는 공유지, 태양과 바람 에너지로 안내할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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