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정치의 크기와 행정의 넓이

이강석 전 남양주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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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 그리고 시·군청 행정구역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도심의 건물과 아파트와 넓은 도로, 신호등, 대기업 연구동 등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일상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보니 행정이 이 모든 것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정치와 행정 외에 더 있음을 알게 된다.

 

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뀌고 도지사가 새로 취임하면 도 전체와 시정 전반이 크게 바뀌는 듯 야단법석을 떨지만 실제로 당해 행정구역 안의 국민을 위한 기반 시설은 늘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시설 중에는 시장 업무 소관 밖의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전기, 가스, 통신 등 시민의 일상생활에 필수 요소들은 민간에서 운영하거나 정부 투자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행정은 기본에 충실해야 성공한다. 시장과 공무원들은 거대한 홍보성의 정책만을 제시하기보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시설을 잘 구비하는 데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공무원이 어느 정당 색상의 누가 시장에 당선되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각자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는 행정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행정의 기본적인 업무가 모두 부각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시민을 위한 당연한 사업을 위한 행정에 시장과 공무원이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도지사와 시장이 관심 갖는 사업이 언론을 통해 홍보되고 자체 평가에서 고득점을 받는다. 그리고 승진 후보자를 추천하면 기관장은 일부의 후보자에 대해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탈락시킨다. 즉, 기관장 관심사업을 추진한 부서의 눈에 띄는 공무원을 우선 승진시키려 한다.

 

이에 민초 같은 공무원들은 슬프다. 공직은 평생 40년이고 선거직은 4년이다. 10 대 1 이상 차이가 나지만 기관장의 영향력은 1천배가 넘는다. 기관장의 권력은 막강하고 주무관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이래서는 행정이 발전하지 못한다. 몇 사람을 수직 승진시키는 성취감이 행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고생한 공직자의 상실감에 매몰된다.

 

강변 백사장은 골프공만 한 자갈과 좁쌀 같은 모래알로 예쁘게 구성된다. 모래밭은 부드럽고 자갈밭은 아름답다. 거대한 돌덩이만으로는 아름다운 하천을 꾸미지 못한다. 행정과 조직에서도 그렇다. 주무관은 기관장이 큰 바위 얼굴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관장은 존재 자체가 거대한 바위다. 따라서 기관장은 드넓은 백사장 어느 한 개의 조약돌이 돼야 한다. 기관장 스스로가 자갈과 모래가 돼 주무관과 함께 부대끼며 소통하고 어울려야 한다. 소통의 힘과 영향력은 바위보다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등 몇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과거의 정치 무대가 아니다. 행정 역시 단체장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빈 수레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인, 행정가보다 행정과 정치를 더 잘 알고 있고 정치인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민초가 돼 우리 사회를 바른 길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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