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사교육 뺑뺑이

한국의 저출생 이유 중 하나로 사교육비를 지목한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이 27조1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3월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 대비 1조2천억원(4.5%) 증가했다. 학생 수가 전년 대비 1.3% 감소했음에도 사교육비 총액은 첫 조사를 진행한 2007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교육 참여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55만3천원을 지출했다. 2022년(52만4천원)보다 5.5% 올랐다.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보건복지부도 며칠 전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에 18세 미만을 양육하는 아동 가구 5천753가구(빈곤 가구 1천가구 포함)를 직접 방문해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6~17세의 월평균 사교육 비용은 43만5천500원으로 5년 전인 2018년(31만6천600원)보다 11만8천900원 증가했다. 9~17세 아동의 70%가량은 영어·수학 사교육을 받았다. ‘방과후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응답(42.9%)은 절반에 가까웠지만 그런 현실을 누리는 아이(18.6%)는 매우 적었다. ‘사교육 뺑뺑이’를 돌고 있는 10명 중 7명의 아이들은 신체활동이 줄어든 만큼 비만율이 높아졌다. 비만율은 2018년 3.4%에서 지난해 14.3%로 급증했다. 우울감을 경험했거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정신건강 고위험군도 늘었다. 한국의 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 몸과 마음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 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할 아이들을 종일 책상에 붙들어 놓는 건 정상이 아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미래 사회가 밝다. 저출생에 아이들이 자꾸 줄어드는데, 그 아이들을 더 이상 불행하게 만들면 안 된다.

[지지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쓴 유대인 소설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1883~1924년) 이야기다.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이 이상하게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몸이 어느 사이에 무수한 다리를 지닌 한 마리 커다란 벌레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라고 생각해 보았으나,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필자는 고교 시절 이 작가의 ‘변신’ 첫 구절을 보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한마디로 경이로웠다. 카프카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문학작품과 별도로 친구나 연인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 편지를 통해 문학세계를 엿볼 수도 있는 작가다. 최근 카프카가 쓴 편지가 최고가에 경매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 돈으로 1억6천만원이다. 외신에 따르면 국제경매업체인 소더비가 그의 한 장짜리 편지에 대한 경매를 런던에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시인이자 친구였던 알베르트 에렌슈타인에게 보낸 독일어로 된 한 쪽짜리다. 편지에는 “걱정이 내면에 침투해 글쓰기를 중단했다”는 고백도 담겼다. 소더비 측은 이 편지는 그가 깊은 불안과 작품의 무익 등에 대한 걱정과 씨름하면서 썼다고 분석했다. 글쓰기가 그에게 얼마나 강렬한 욕구였으며 깊은 내적 힘을 요구했는지를 보여 준다고도 평가했다. 카프카가 이 편지를 썼을 때 결핵을 앓고 있었지만 체코의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밀레나 예센스카와 열애를 시작했다. 건강 악화에도 예센스카의 지원으로 문학적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이 편지에서 3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지금 출판된 건 오래된 것들이며 다른 작품도 없고 새로 쓰기 시작한 작품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불안과 절망, 고립 등과 싸웠지만 창작 과정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신록이 짙어 가는 계절에 들으니 애달프다.

[지지대] 제69회 현충일

흔히 이날의 유래에 대해선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전쟁은 멈췄지만 그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때 나왔다. 고(故)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중 산화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했다는 설이다. 6월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달이자 많은 국군 장병이 전쟁의 포화 속에 스러졌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전쟁의 아픔과 함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두 번째는 망종 유래설이다. 당시 이날은 음력으로 망종이었다. 이때는 보리가 막 여물고 모내기가 시작된다. 농경사회에선 이 절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고려시대 현종 임금 때부터 이 시기에는 전쟁터에서 숨진 병사를 추모하는 풍습도 있었기에 이를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현충일 이야기다. 그래서 이날은 단순히 전사한 장병들을 애도하는 날을 넘어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기고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한다는 건 관심을 갖는 것이고 존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건 주는 것이다. 미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일은 69번째 맞이하는 현충일이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선열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고(故) 조지훈 시인이 붙인 ‘현충일 노래’의 가사가 귓전을 맴돈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날이 갈수록 아아 그 충성 새로워라.”

[지지대] 고달픈 ‘마처세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 이를 ‘마처세대’라 한다. 주로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와 586세대(1960년대생)에 속하는 중장년층이다.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80~90대 노부모 부양과 함께 자식에게 주거, 교육은 물론 손자녀 돌봄까지 떠맡으며 온갖 지원과 책임을 다하는 ‘낀 세대’다. 이들은 젊어서는 자식 치다꺼리와 내 집 마련에 올인했고, 자녀를 키우고 나니 이젠 부모님이 편찮으시다. 스스로 돌봄이 필요한 나이가 됐는데 아직도 돌봄을 요구받는다.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했지만, 이중 부양의 짐에 또 다른 경제활동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재취업 시장을 떠돌아야 하는 60년대생을 ‘노마드족’이라 일컫는 이유다. 가족주의의 덫에 갇힌 마처세대의 삶은 피곤하고 버겁다. 한국은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비율이 전체 인구 대비 19%에 이른다.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라 하는데, 2025년이면 본격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10명 중 2명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펴낸 ‘고령층 고용률 상승요인 분석’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취업자의 약 40%가 근로빈곤층이다. 고령층 경제활동은 자식에게 아파트를 사주려는 ‘능력 있는’ 부모가 목표가 아닌, 장성한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부모로 남고 싶은 몸부림 같은 것이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지난달 1960년대생 98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10명 중 3명이 자기 자신이 고독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10명 중 5~6명은 부모나 자녀, 혹은 양쪽 모두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퇴직자의 경우 절반가량이 평균 2.3개의 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노후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89%가 본인이라고 답했지만, 62%만 현재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처세대의 과도한 부담과 희생은 가족간 갈등을 부르고 가족유대를 깰 수도 있다. 노년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지지대] 신상털기

지난달 23일 오후 강원 인제의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 중 한 훈련병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다른 훈련병 5명과 연병장에서 완전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틀 뒤 사망했다. 숨진 훈련병은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떠들었다는 이유로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도는 ‘얼차려’를 받았다는데 훈련병의 안색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보고했음에도 계속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육군은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직권남용가혹행위 등 혐의로 경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훈련병 사망사고 뒤 군기훈련을 지시한 중대장의 신상정보가 온라인에서 유포돼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엔 중대장의 이름과 나이, 출신 대학, 학번이라는 내용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SNS 주소와 과거에 찍었다는 사진도 함께 퍼졌다. 중대장이 여성으로 알려지며 남초·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군이 완전군장을 해본 적이나 있겠냐”, “장교 성별이 남자였으면 이런 일 없었다” 등의 관련 글도 다수 올라왔다. 과도한 신상털기다. 앞서 지난 3월 한 김포시 공무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채 발견된 뒤, 온라인에는 ‘가해자 신상’이란 글이 퍼졌다. 김포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사망 공무원의 정보를 온라인 카페에 공개한 사람의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됐다. 직업과 가족관계 등 주변인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일반인 신상털기가 잇따르는 데엔 별 제한없이 열람할 수 있는 각종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누적되고, 검색이 쉽기 때문이다. 해킹이 아닌 인터넷 검색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했더라도 타인의 신상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특정인 신상털기는 정의감이라기 보다 내면의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이버 폭력행위의 일종이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신상털기는 갈등과 사회적 소모만 더한다.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법을 찾는 데에도 방해가 될 수 있다. 자제해야 한다.

[지지대] 외신에 비친 은둔형 외톨이 청년

전쟁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의 바람이어서다. 휴전 후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길이 없었다. 직장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선택한 게 도피였다. 김승옥 작가 ‘무진기행’의 주인공 이야기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도 은둔하는 청년들이 상당했다. 병역 기피가 요인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연도 많았다. 1980년대 들어 민주화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공안 당국의 감시를 피해 외딴 시골이나 벽지 등으로 은신했다. 나라의 미래였던 청년들의 안타까웠던 민낯이 그랬다. 외신이 집에 숨어 지내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짚었다.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정서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21세기 은둔 청년들을 조명한 셈이다. 헤드라인도 요란하게 달았다. ‘움츠러드는 삶: 일부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물러나는 이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19~34세 인구 중 2.4%가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 24만4천여명 규모다. 전문가들은 은둔 청년 증가와 관련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 속한 많은 이들이 ‘완벽주의적 걱정’을 하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비판에 민감하고 지나치게 자기 비판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낙담하고 불안해한다고 진단했다. 청년소외문제에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대가족이었고 형제자매가 많아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는데 생활 환경이 바뀌면서 예전보다 공동체적 관계 형성 경험이 적다”고 짚었다. 외신은 “정부와 단체들이 은둔형 외톨이 젊은이들의 사회 재진입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우리만의 현실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어깨를 활짝 펼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른들의 마땅한 의무다.

[지지대] 진짜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어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네.” 흔히 쓰는 표현이다. 가령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가 상대 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골을 놓쳤다고 치자. 그럴 때 가장 먼저 찾는 동물이 바로 원숭이다. 원숭이를 빗대 아무리 능숙한 사람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다는 속담을 풀어낸다. 실제로 원숭이는 나무를 타다가 추락사하거나 지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적절한 비유다. 그런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사체로 발견되고 있다. 멕시코 이야기다. 멕시코 환경부는 이달 들어 남부 타바스코와 치아파스에서 발견된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사체가 157마리로 확인됐다고 최근 밝혔는데,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폭염을 지목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에 지쳐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숭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최근 멕시코 지역을 강타한 불볕더위 속에 원숭이들이 온열질환 또는 영양실조 등으로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만 남부와 중미 북부를 중심으로 한 열돔(Heat Dome·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면서 기온이 오르는 현상) 영향으로 멕시코 곳곳에서 한낮 최고기온이 40∼45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원숭이를 포함해 앵무새와 박쥐 등 동물 폐사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더위가 이어지면 동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현지 생태공원 책임자의 말처럼 자연을 이기는 생물체는 없다. 우리는 더 편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미명(美名) 아래 자연에 ‘파괴’라는 비수를 끊임없이 꽂아 왔다. 기온 상승과 기상 이변은 그에 대한 결과인데도 “내 시대 일은 아닐 것”이라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원숭이처럼 가장 잘하는 것에서 실수할 때, 그때가 가장 무서울 때일 것이다. 더 이상 자연에 꽂은 비수를 방관하지 말자. 더 큰 재앙은 바로 오늘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지대] 한강의 독도 이야기Ⅱ

사뭇 다르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말이다. 아침이면 햇살이 기슭에 잔뜩 내려앉는다. 뉘엿뉘엿 지는 땅거미도 근사하다. 조정래 작가의 ‘한강’에서 보이는 표현이다. 한강의 풍광은 이처럼 곱고도 수려하다. 산업화 물결에 밀려 오염된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한강이 임진강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낯익은 무인도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 동해 외딴곳을 홀로 지키고 있는 독도와 동명이도(同名異島)다. 한자로도 홀로 ‘독(獨)’에 섬 ‘도(島)’를 쓴다. 외로워 보이는 까닭이다. 이 섬의 정식 행정지명은 ‘경기도 김포시 걸포동 423-19’다. 이 같은 내용의 표지판이 초소로 활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벽면에 걸려 있다. 이 건축물이 발견된 건 지난해 7월이었다. 통행료 문제로 홍역을 않고 있는 일산대교도 지척이다. 한강의 독도 역사를 복기해 보자. 조선 중기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도 ‘동여도’에 같은 이름으로 김포군 소속의 섬으로 표기됐다. 김포팔경의 하나로 갈대꽃이 있었을 만큼 문화적인 가치도 높았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대홍수로 파손된 제방을 축조하기 위해 채석장으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섬의 형태가 점점 작아지고 기억 속에서도 차츰 사라져 갔다. 이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 온다. 한강의 독도가 국토정보맵 등 국가 지도에 공식적으로 등재(본보 28일자 2면)될 수 있어서다. 김포시의 발 빠른 움직임 덕분이다. 경기도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토지리정보원에 공식 명칭으로 결정됐고 국가지도에도 반영된다. 김포시는 국방부의 ‘국방개혁 2.0과제’인 군 시설(철책) 철거사업도 진행 중이어서 이와 연계해 독도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한강의 독도가 시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국가지도 등재는 한강의 외로운 섬, 독도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지지대] 서러운 ‘노실버존’

체력이 떨어지거나 기운이 없는 경우 원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이럴 때 공진단이나 경옥고 등을 먹는 이들이 있다. 경옥고는 허준의 ‘동의보감’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보약 처방이다. ‘늙은이를 젊어지게 하며, 온갖 병을 낫게 해준다. 정신이 좋아지고, 오장이 충실해지며, 힘이 넘쳐 말처럼 뛰어다니게 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도록 하는 명약 중의 명약’이라고 적혀 있다. ‘견옥고’도 있다. 개(犬)를 위한 프리미엄 건강기능식품이다. 반려견을 ‘가족같이’ 생각하다 보니 오래 함께하기 위해 건강을 챙긴다. ‘견옥고’의 상품 종류가 상당히 많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반려동물 100만 시대,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호텔, 수영장, 미용실, 카페, 건강식품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어느 카페에선 어린이나 어르신은 안 되고 반려견은 환영하는 곳도 있다. 카페에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 ‘노실버존’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는 걸 종종 보게 된다. 반면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펫존’은 증가 추세다. 사회 곳곳에 ‘노OO존’이 만연해 있다. 카페와 식당을 중심으로 ‘노키즈존’이 성행하더니 요즘은 ‘노실버존’이 크게 늘고 있다. 호텔, 캠핑장, 헬스장에서도 고령층을 거부한다. 한 음식점에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은 적도 있다. 업주들이 ‘노실버존’을 내거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게 운영에 타격을 주고,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카페나 식당에서 직원에게 반말을 하고, 소리 지르고, 때로는 컵을 던지는 등의 ‘진상’ 고객 때문이란다. 물론 극히 일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식당의 ‘노키즈존’ 방침이 어린이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종교와 나이, 외모 등을 이유로 차별하면 ‘평등권 침해’라 했다. 이에 따르면 ‘노실버존’도 차별이다. 노실버존은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한다. ‘나이든 게 죄도 아닌데’ 차별 당하는 입장은 서럽다. 여러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게 차별과 혐오를 이해로 바꿔 나가는 정책이 절실하다. 누구나 늙는다.

[지지대] 육아응원근로제

문샷(moonshot)은 미국의 달 착륙 프로젝트 ‘아폴로 계획’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연구나 도전을 뜻한다. 본뜻은 ‘우주 탐사선을 달에 보낸다’는 것인데, 최근엔 의미가 확장돼 각국의 장기 연구개발(R&D) 정책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문샷 프로젝트’라고도 한다. 우리 사회에 문샷 프로젝트가 필요한 부문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저출생 문제다. 정부가 저출생 대응에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투입된 예산이 총 379조8천억원이다. 하지만 2020년 0.84였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로 떨어져 0.6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경기도의 ‘러브아이’ 정책 패키지도 김동연 지사의 ‘문샷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김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인구 문제 해결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특정 부서의 일이 아니라 경기도 전체가 매달려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는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육아응원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주 4일 출근, 6시간 근무, 1일 재택근무를 실시한다. ‘4·6·1 육아응원근무제’는 27일부터 시행된다. 이 근무제는 임신기 직원부터 0~10세 육아∙돌봄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임신기 직원은 1일 2시간 모성보호시간을 의무적으로 사용해 주 4일은 6시간 근무를, 주 1일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0~5세 육아를 둔 직원은 주 2회 이상 1일 2시간의 육아시간을 사용해 6시간 근무, 1일은 재택근무를 한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6세에서~8세까지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복무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다. 경기도는 이를 10세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복무조례 개정을 통해 주 2회 이상 1일 2시간 단축근무 여건을 마련한다. 제도 확산을 위해 육아응원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육아응원근로제가 경기도에서 성공을 거둬 전국의 지자체와 공공기관, 민간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문샷 프로젝트’는 많고 다양할수록 좋다.

[지지대] 팔당댐, 그리고 이후

모든 동력이 경제개발에 집중됐던 시절이 있었다. 1974년 오늘 강을 끼고 있어 풍광이 수려했던 서울 근교에 거대한 시설이 축조됐다. 팔당댐 이야기다. 산업화 역사의 편린이다. 이 댐은 남양주 조안면과 하남 배알미동에 걸쳐 있다. 한복판으로 양평 두물머리 앞에서 합쳐진 북한강과 남한강이 도도하게 흐른다. 한국전력공사 전신인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착공했다. 1966년 6월이었다. 그리고 8년 만에 완공됐다. 주 목적은 전력 생산이었다. 산업시설에 대한 전기 공급을 위해서였다. 수력발전시설이었던 셈이다. 국내에서 처음 채택됐던 저낙차 밸브형 발전 방식으로 운용됐다. 너비 20m, 높이 16.75m 규모의 수문 15개도 웅장했다. 텐더식 수문으로는 동양 최대였다. 연간 발전량은 3억3천800만㎾h였다. 댐이 건설되기 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시늉만 내던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많은 인구가 서울로 몰리면서 인구도 폭증했다. 그래서 떠오르던 현안도 있었다. 수돗물 공급이었다. 팔당댐에는 그런 과제도 포함됐다. 이후 팔당댐을 중심으로 10㎞ 근방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수도법에 따른 조치였다. 팔당상수원 보호를 위해 수질오염총량제도 발효됐다. 이 제도는 수계를 단위 유역으로 나누고, 단위 유역별로 목표 수질을 설정한 후 설정된 목표 수질을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오염물질배출(허용)총량을 정했다. 그 시점은 1990년이었다. 환경보전법에서 분리돼 제정된 수질환경보전법이 근거다. 현재는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행 중이다. 홍수조절 기능도 담당한다. 수도권 홍수 방어의 최후 보루 역할이다.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은 이처럼 복합성을 지녔다. 오늘의 발전은 결코 허투루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 제법 묵직하다.

[지지대] 해외 직구, 이대로 둘 순 없다

지난 주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KC(국가인증통합마크) 인증’. 논란을 정리해 보면, 지난 16일 정부가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내용의 ‘해외직구 안전 대책’을 발표했고, 이후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20일 대통령실은 직접 브리핑을 열고 “국민들께 혼란과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공식 사과했다. 충분한 논의와 여론 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이번 대책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해외 직구는 특정인들의 소비가 아닌 일반적인 소비 패턴으로 자리매김했다. 관세청 전자상거래 물품 수입 통관 현황을 보면 2009년 251만건이던 해외 직구는 지난해 1억3천144만3천건으로 52배로 급증했고, 같은 기간 금액도 1억6천684만5천달러에서 52억7천841만8천달러로 30배 이상 늘었다. 2021년 기준 해외직구 이용 인구는 1천308만명에 달한다는 관세청 통계도 있다. 특히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쇼핑플랫폼이 국내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고, 국내 물가가 전방위로 오르고 있어 해외 직구를 활용하는 소비자들은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품에서 국내 기준치의 최대 56배에 달하는 발암물질이 검출되는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KC 인증 논란을 국내 기업들의 문제가 아닌 ‘국민 안전’의 시각으로 다시 접근해야 한다. 어떠한 가치도 안전보다 우선 될 수는 없다. 정부는 앞으로 위험 우려가 있거나 소비가 급증하는 해외 직접구매 제품에 대해 각 부처가 직접 안전성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조사·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임시 방편일 뿐이다. 해외 직구 소비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또 안전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지대] 어르신 빈곤율

객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간다. 통계가 과학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어르신 빈곤율이 또 최대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처분 가능소득 기준(가처분소득)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38.1%였다. 처분 가능소득 잣대는 개인소득에서 세금 등을 빼고 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을 보태 마련된다. 한마디로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이다. 성별로는 남성 31.2%, 여성 43.4%다. 여성 어르신이 훨씬 더 빈곤하다. 국내 전체 상대적 빈곤율 14.9%나 근로연령인구(18~65세)의 상대적 빈곤율 10%(남성 9.6%, 여성 10.3%)보다 월등히 높다. 그동안 어르신 빈곤율은 2011년 46.5%, 2012년 45.4%, 2013년 46.3%, 2014년 44.5%, 2015년 43.2%, 2016년 43.6%, 2017년 42.3%, 2018년 42.0%, 2019년 41.4%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다 2020년 38.9%로 처음으로 30%대로 내려왔고 2021년에는 37.6%로 2020년보다 1.3%포인트 떨어졌다. 사실 국내 어르신 빈곤율은 2011년 이후 대체로 완화되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최고 수준이다. 2020년 기준으로 66세 이상 소득 빈곤율은 40.4%다.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OECD 가입국 중 노인의 소득 빈곤율이 40%대에 달할 정도로 높은 국가는 우리밖에 없다. 연금 소득대체율(연금 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도 31.6%다. OECD 평균(50.7%)의 3분의 2에도 못 미친다. 어르신 빈곤에 대처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의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지지대] 잠 퍼자기 대회

친구 중에 ‘잠’ 예찬론자가 있다. 잠을 잘 자야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며, 잠을 생활의 1순위로 꼽는다. 그는 은퇴 이후 하루 평균 8~9시간씩 잔다. 고3 때도 8시간은 잤다고 한다. 잠 잘자는 비결을 물으니,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됐단다. 아버지가 9시 뉴스가 끝나면 ‘이불 펴라’ 하셨다고.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잠 퍼자기 대회’가 열렸다. 한강 야외에서 평온하게 잠에 빠진 진정한 잠의 고수를 찾는 행사였다. 서울시가 ‘멍 때리기 대회’에 이어 마련한 이벤트다. 잠 퍼자기 대회는 직장 생활, 공부 등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날 대회에는 잠옷 차림의 시민 100여명이 참가했다. 저마다 안대와 마스크, 베개, 담요 등을 챙긴 뒤 에어 소파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처음엔 한낮에 야외에서 잠을 자는 게 어색한 듯 뒤척이는가 싶더니 하나둘 숨소리가 커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대회 우승자는 잠을 자면 심박수가 떨어지는 점에 착안해 기본 심박수와 평균 심박수 간 변동 폭이 가장 큰 참가자로 결정했다. 잠이 들면 심박수가 20∼30% 떨어지는데, 대회 시작 전과 비교해 심박수의 편차가 큰 참가자를 우승자로 정했다. 이를 위해 참가자들은 팔목에 밴드를 찼다. 이날 ‘잠 최고 고수’는 용인에 사는 대학생 양서희씨가 뽑혔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평소 침대 맡에 두던 ‘잠만보(포켓몬 캐릭터)’ 인형을 안고 온 양씨는 “버스만 타면 자는 편”이라며 “버스에서 졸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종의 마인드컨트롤을 했더니 깊게 잠들 수 있었다”고 했다. 수면 부족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2018년 85만5천25명에서 2022년 109만8천819명으로 28.5% 늘었다. 각종 스트레스와 스마트폰 과다 사용 등으로 불면증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부족한 수면 시간과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신체와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다. 잠 잘 자는게 능력이고, 복이고, 보약이다.

[지지대] K라면의 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4관왕 등을 수상한 명작이다. 영화에는 한우 채끝살을 넣은 ‘짜파구리’가 나온다. 농심 라면인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요리다. 영화가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짜파구리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매출이 폭증했고, 농심은 세계 소비자들의 관심과 요청에 짜파구리를 실제 제품으로 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카데미 수상 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해 쇠고기 채끝살 대신 돼지고기 목살을 넣어 만든 짜파구리 오찬을 대접했다. 짜파구리는 영화 ‘기생충’ 덕분에 한국을 알리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한국 라면이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K라면’ 수출액이 월간 기준 1억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라면 수출액은 1억859만달러(약 1천470억원)로 전년 동기(7천359만달러) 대비 46.8% 증가했다. 라면 수출액은 2015년부터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전반적인 수출 부진에서도 라면업계는 웃고 있다. 라면의 해외 진출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삼양라면이 1969년 베트남에 처음 수출됐다. 1970년대 중반까지 유럽·북미 일대, 중동에 삼양라면이 진출했다. 농심도 1996년 중국 상하이 공장을 시작으로 칭다오·선양 공장, 미국 1·2공장 등에서 라면을 생산하고 있다. 해외 라면 시장은 유튜브 같은 미디어 플랫폼 덕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2014년 2월 유튜브 ‘영국남자’에 올라온 삼양 ‘불닭볶음면’ 시식 영상이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왔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정상급 여성 래퍼 카디 비가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을 조리해 먹는 영상을 틱톡에 올려 화제가 됐다. 그녀는 30분을 운전해 까르보불닭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며,“재미있는 제품(fun product)”이라고 평했다. ​케이팝과 드라마·영화 등 K콘텐츠의 인기가 K푸드 산업으로 연결돼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K라면이 세계를 휩쓸며 농식품 수출을 견인한다니 흐뭇하다. 맛과 재미를 함께 주는 K라면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지지대] 넷제로(Net-Zero)

휴일 아침 공원을 산책하다 ‘넷제로(Net-zero)’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공원 한 편에 영어로 글자 모양을 만들어 예쁜 꽃들과 함께 조성한 공간이 있었다. 다소 생소한 단어라 집으로 돌아와 검색해 봤다. 넷제로는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6대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제로화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서 규정한 이산화탄소(CO2), 메테인(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등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6대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제로화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기후중립(Climate Neutral)이라고도 한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고 현재까지 배출된 온실가스는 흡수해 순배출량을 제로화하기 때문에 탄소중립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보다 넓은 범위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활동을 요구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는 파리협정 목표에 부합하는 감축을 위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를 감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 2050~2052년 탄소중립이 돼야 하며 2063~2068년엔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며 목표 기간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했으며 탄소중립 목표를 2022년 9월 법제화했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단연코 기후위기다. 6대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화는 인류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구 안에 모든 생명체는 ‘넷제로’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

[지지대] 부업 뛰는 ‘N잡러’ 50만

본업 외에 직업을 하나 더 가진 사람을 ‘투잡스(Two Jobs)’라 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투잡’을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식이다. 굴지의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등 고용불안이 심화된 데 따른 현상이었다. 요즘은 2개로는 부족하다는 듯 ‘N잡러’가 유행이다.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의미하는 ‘잡(Job)’, 사람에게 붙는 접미사 ‘~러 (-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N잡러는 청년층에서 높은 증가율을 보인다. 저녁의 삶과 휴일을 포기하고 부업을 택한 40~50대 직장인도 많다. 생활비 부족과 노후 대비 등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자영업자들도 투잡에 뛰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 취업자는 월평균 55만2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1분기(월평균 45만1천여명)보다 22.4% 늘었다. N잡러가 50만명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N잡러의 증가는 고용 형태의 다변화, 코로나19 장기화, 비대면 문화 확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2018년 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을 메우기 위해 부업을 하기도 한다. N잡러 증가세는 배달라이더로 대표되는 플랫폼 일자리와 관련 있다. 플랫폼 일자리의 상당수는 시간 제약없이 일할 수 있고 기존 일자리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유튜버처럼 시간·장소 제약 없이 PC만 있으면 가능한 정보통신업 관련 일자리도 대표적인 부업 중 하나다. 고금리·고물가 시대에 월급만으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고, 원하는 삶을 살기 힘들어 여러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요즘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이는 청년층 이직이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N잡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지대] 쇼핑 난민

도심에는 편의점이 너무 많다. 골목에 있던 작은 마트까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공정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편의점 가맹점 수는 5만5천43개에 이른다.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반면 농촌으로 갈수록 구멍가게 하나 찾기 어렵다. 인구가 줄다 보니 운영이 어려워 점점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식료품, 일용품 하나 사려면 버스 등을 타고 나가야 할 정도다. 일본에선 ‘쇼핑 난민’이란 말이 유행이다. 상점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거동, 교통이 불편해 상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이른다. 특히 고령자를 가리키는 말로 ‘쇼핑 약자’라고도 한다. ‘식품 사막’이란 말도 있다. 사막에서 물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을 의미한다. 특히 채소, 과일, 우유 같은 신선식품을 살 수 있는 마트나 각종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없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사는 이들은 쇼핑 난민으로 전락한다.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쇼핑 난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쇼핑 난민이 80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지자체별로 무료 쇼핑버스 지원, 이동슈퍼 운행, 생필품 구매 대행 자원봉사 지원을 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식품 사막, 쇼핑 난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가 거의 없고 고령자가 많은 마을에서 슈퍼마켓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다. 장을 보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하루에 몇 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게 쉽지 않다. 이런 마을들은 온라인으로 신선식품 배송이 되지 않는 지역인 데다 음식 배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다. 고립된 고령층 쇼핑 난민은 경기도내 연천, 양평, 여주 등에도 있다. 쇼핑 난민에겐 단순히 식료품 공급이 안 되는 문제뿐 아니라 사회와도 단절된다. 식품 사막, 쇼핑 난민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됐다. 찾아가는 마트 운영이나 푸드뱅크 사업 등을 통해 고립된 노인들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지대] 조팝나무 단상

이맘때면 들녘에 수두룩하다. 새하얀 꽃들이 무리를 지어 핀다. 그 모양새가 제법 호들갑스럽다. 흰빛이 눈부시다. 그래서 때 늦은 눈이 내린 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봄날의 산하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조팝나무 이야기다. 조선 후기 고전소설 ‘토끼전’에도 나온다. “조팝나무에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 멍청이 별주부가 토끼의 꼬임에 빠져 처음 육지로 올라왔을 때가 마침 봄이었다. 조팝나무 꽃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피지만 별주부가 토끼를 꼬여 내던 그 시절에는 더욱 흔했을 터이다. 잘 보일 것 같지 않은 별주부의 작은 눈에도 육지에 올라오자마자 금세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이름은 좁쌀로 지은 조밥에서 유래됐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쌀, 보리, 조, 콩, 기장 등 오곡(五穀)으로 대표된다. 조는 땅이 척박하고 가뭄을 타기 쉬운 메마른 땅에 주로 심었다. 오곡의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곡식이었다. 조밥은 하얀 게 아니라 되레 노랗다. 하지만 그릇에 담아둔 조밥처럼 작은 꽃이 잔뜩 핀 모양을 비유했다. 원래 쓰임새는 관상용보다 약용식물로 더 유명하다. 동의보감에는 여러 가지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침을 잘 뱉게 하며 열 오르내림을 낫게 한다고 설명했다. 대기 환경에 특별히 민감하다. 고온다습한 곳에선 잘 자라지 않는다. 양립력이 강하다. 이 같은 특성으로 도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재목이나 판목 등으로도 사용된다. 가구, 울타리, 건축재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다른 나무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해 가구 제작에 적합하다. 이 식물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다. 특징과 활용 방안 등을 살펴보면 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가 며칠 내리더니 조팝나무 꽃도 시들고 있다. 봄날도 가고 있다.

[지지대] 늘어난 사전 경기... 빛바랜 ‘道체전’

9일 파주시에서 개막돼 3일간 펼쳐질 제70회 경기도체육대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대회다.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접경지역 파주시에서 처음 열리는 종합 스포츠 행사이자 고희(古稀)의 대회다. 지난 2021년 대회를 유치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한 뒤 3년 만에 다시 열려 감회가 남다르다. 경기도 4대 종합 체육행사는 시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2017년부터 도체육대회 개최지에서 도장애인체전, 도생활체육대축전, 도장애인생활체육대회를 2년 동안 순차적으로 치르고 있다. 이에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종합대회 유치는 도시의 스포츠 인프라 구축과 지역 발전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또 대회 유치를 통해 증가한 체육시설은 훗날 주민들의 생활체육 시설로 이용된다. 더불어 대회 기간 2만명이 넘는 시·군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개최지를 찾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한다. 하지만 파주 대회의 경우 사전 경기가 너무 많아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년 대회 때마다 전국대회 일정과 일부 부족한 시설 등으로 5개 안팎의 종목이 사전 경기를 치렀다. 이번 대회는 전체 27개 종목 가운데 37%에 달하는 10개 종목이 대회 개막 전에 일정을 마쳤다. 사전 경기로 인해 1부의 경우 우승 경쟁을 벌이는 팀들의 순위가 일찌감치 가려져 ‘김빠진 대회’가 됐다. 사전 경기 선수들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경기를 마친 것을 아쉬워한다. 시·군 체육회도 많은 사전 경기로 인해 2주 연속 현장을 찾아야 하는 이중고를 호소한다. 파주시 입장에서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여러 의미를 갖고 유치한 첫 대회가 반쪽짜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앞으로 대회를 유치한 가평군과 광주시, 그리고 경기도체육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