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열대야 유감

“따갑긴 따갑네.” 어렸을 적 어른들은 쏟아지는 햇볕을 보고 혼잣말로 그러셨다. 우리의 전통적인 여름 더위는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햇볕에 습기가 스며들고 있다. 공기가 눅눅해지고 있다. 습도가 오르고 있어서다. 습도는 공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의 양 또는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다. 예전에는 한여름 길어야 며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불쾌지수도 오른다. 불쾌지수는 온도, 습도, 풍속 등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정도의 수치다. 자꾸 옛날 이야기를 꺼내 민망하지만 그땐 낮에 불쾌지수가 높아도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 줬다. 요즘은 밤에도 그렇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열대야 얘기다. 원래는 일본 기상청 용어였다.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밤을 뜻했다. 일본의 기상수필가 구라시마 아쓰시가 처음 썼다. 단, 일본 기상청이 통계로 잡았던 건 야간 최저 기온에 의한 열대야가 아니라 하루 중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이었다. 최근에는 도시 열섬 현상의 영향으로 매일 불쑥 찾아온다. 적어도 서울에선 하루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이 1940년대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연간 10일가량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선 거의 매일이다. 장맛비가 그치면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출근길 시민들의 얼굴이 퀭하다. 밤새 열대야에 시달려서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지구촌이 펄펄 끓고 있다. 에어컨을 껴안고 산다. 징그럽다. 한낮 체감온도가 30도를 넘은 지 이미 오래다. 열대야도 이젠 땅거미가 지면 일상이 됐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더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 어깨로 쏟아지던 햇볕을 구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환경을 훼손하는 인간을 향한 조물주의 꾸지람이 그럴 텐데 말이다.

[지지대] 태극전사들이 주는 ‘여름밤 에너지’

밤낮없이 이어지는 찜통더위에 국민들은 잠 못 드는 여름밤이 괴롭기만 하다. 더욱이 이번 여름은 프랑스 파리에서 선전하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잠 못 드는 ‘올빼미족’이 늘고 있다. 무더위와 올림픽 모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주범이지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한여름 무더위는 ‘열대야’로 이어져 짜증스럽지만 올림픽에서의 국가대표들의 선전은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 경기를 시청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게 해주는 청량음료 역할을 한다. 당초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금메달 5개 이상 획득, 종합순위 15위 이내 진입’이라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체육 정책의 위축과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기력 저하가 주 원인이다. 특히 구기 종목의 경기력 하향세가 두드러지면서 이번 올림픽에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8년 만의 최소 규모 선수단이 참가했다. 그럼에도 우리 선수들은 경기 초반 눈부신 선전으로 대회 개막 사흘 만에 목표한 금메달 5개를 수확했다. 양궁과 사격에서 2개씩, 펜싱이 1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궁과 펜싱을 제외하고는 사격 금메달은 기대 밖의 성과다. 앞으로도 양궁과 펜싱, 근대5종, 유도 등의 선전이 이어질 경우 10개의 금메달도 가능하리란 전망이다. 올림픽은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최고의 무대다. 이 무대를 밟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땀방울을 흘렸고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낸 결과물이 메달이다. 예상치 못했던 선수의 메달 획득은 우연이 아닌 피눈물 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메달을 못 딴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를 떠나 모두 승리자다. 올림픽은 국민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힘이 있다. 정쟁만 일삼으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에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역만리서 선전하는 태극전사들에게 올림픽 때만 반짝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지지대] 장단콩, 세계인을 홀리다

흔히 어떻게 결혼했느냐고 물으면 ‘콩깍지가 씌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기서 ‘콩깍지’는 콩을 털어내고 남은 껍질이다. 콩은 이처럼 우리에겐 친숙한 작물이다. 콩은 야생 돌콩부터 시작해 재배작물로 발달했다. 원산지는 중국인데 두만강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 구석기시대 황허강 유역을 중심으로 재배됐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역사는 깊다. 그런데 이 작물을 이야기할 때 파주, 그것도 장단을 빼놓을 수 없다. 서사는 이렇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쌀은 물론이고 콩까지 수탈했다. 특히 장단콩은 껍질 색이 노랗고, 배꼽에 색깔이 없는 데다 품질도 뛰어나고 수확량도 많아 표준품종이 됐다. 그리고 ‘장단백목(長湍白目)’이란 이름으로 정식 등록됐다. 그게 1913년이었다. 장단콩의 시조인 셈이다. 이후 2대 광교(1969년)로 이어졌고 현재 가장 많이 재배하는 대원(6대 장류 및 두부용), 태광(4대), 대풍(7대) 등 최근까지 70여종이 배출됐다. 장단콩은 특별했다. 다른 곳에서 생산되는 품목들에 비해 비쌌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건 1996년 무렵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작목반이 결성됐다. 1997년 통일촌에선 장단콩축제가 펼쳐졌고 전국으로 알려졌다. 해가 거듭되면서 축제 규모도 커지자 2001년부터는 임진각에서 열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단백목이 국제슬로푸드협회 국제생물다양성재단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경기일보 29일자 10면)됐다. 그동안 파주에서 토종닭 등이 개인 차원으로 올려졌지만 파주시 차원의 등재는 장단백목이 처음이다. ‘맛의 방주’는 멸종 위기에 처한 유산 식품의 국제 카탈로그다. 파주 장단콩 브랜드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이 고장이 시나브로 안보관광은 물론이고 농업관광의 메카로도 거듭나고 있다.

[지지대] ‘고졸 검정고시’ 급증

검정고시는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거나 중도에 그만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시험이다. 특정한 학력이나 자격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과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는다. 검정고시의 시작은 광복 직후 대학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실시한 게 효시다. 독학하는 사람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연 2회 실시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검정고시의 의미는 컸다. 지금의 초·중·고졸 검정고시는 1982년 도입됐다. 예전엔 검정고시 응시생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사고를 쳐서 퇴학을 당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이 응시하는 것으로 여겼다. 요즘은 일부러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부적응자도 있지만 입시를 위해 자퇴하는 고등학생이 늘고 있다. 지난해 고등학교 자퇴 학생이 2만5천792명으로 최근 5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신이 불리한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수능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4월 올해 1회차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한 10대 청소년 수가 1만6천332명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1회차(1만4천308명), 2회차(1만5천737명) 대비 최대 2천명 이상 늘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오는 8월8일 ‘제2회 초·중·고졸 검정고시’에 경기도에서 9천344명이 지원했다. 지난해 8천604명보다 740명 증가한 수치다. 이 중 고졸 신청자가 7천26명으로 지난해보다 770명 증가했다. 고졸 검정고시가 대학 입학 활용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내신 성적이 부진하다고 학교를 자퇴하고 너도나도 검정고시를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검정고시 취지에도 맞지 않고, 학교 이탈자 증가로 공교육이 흔들릴 수 있다. 검정고시 제도 개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 ‘올림픽 패션’ 경쟁

세계 패션 중심지에서 열리는 2024 파리 올림픽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패션’이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단복과 경기복도 볼거리다. 올림픽 개막식은 각국의 역사, 문화, 스포츠맨십을 담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 패션 올림픽이 펼쳐지는 런웨이다. 메달을 두고 다투는 올림픽 경기 이면에서 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10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엔 루이비통, 디올, 티파니 등 숱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 그룹이 처음 후원사로 나섰다. 주얼리 브랜드 쇼메가 파리 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했고, 루이비통은 시상식에서 메달을 담는 가죽 트레이를 만들었다. LVMH는 515명의 메달 시상 자원봉사자 의상도 만들었다. 남성복 브랜드 벨루티는 프랑스 선수단의 개막식 단복을 제작했다. 턱시도, 셔츠, 벨트, 스카프 또는 포켓 스퀘어, 슈즈를 세트로 디자인했는데 ‘진정한 프랑스식 우아함’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선수단 단복은 랄프로렌이 2008년부터 제작하고 있다. 이탈리아 선수단의 단복은 아르마니가 디자인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앞세워 단복을 제작하는 나라가 많지만 한국은 젊은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를 선택했다. 선수단 단복은 청색의 ‘벨티드 슈트 셋업’이다. 무신사는 동쪽을 상징하며 젊음의 기상과 진취적 정신을 담은 벽청(碧靑)색으로 표현했다. 블레이저 안감에는 청화백자 도안을 새겨넣어 한국의 전통미를 더했다. 벨트는 전통 관복의 각대를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블레이저 칼라 안쪽과 티셔츠, 슬랙스, 스니커즈에는 ‘팀 코리아(Team Korea)’를 새겼다. 한국 선수단 단복이 IOC가 선정한 ‘단복 톱10’에 선정됐다. ‘스포츠와 스타일이 만난 상위 10위 올림픽 유니폼’으로 한국과 몽골, 캐나다, 아이티, 미국, 프랑스, 체코, 이집트, 튀르키예, 시에라리온을 선정했다. 정치 혼란과 빈곤으로 고난을 겪어온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와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의 선정이 눈길을 끈다.

[지지대] 장수하늘소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대학을 중퇴하고 희귀한 곤충 잡기에 뛰어들었다. 밀수꾼의 꾐에 넘어가서다. 1960년대 상황이었다. 벌레를 잡는 게 돈벌이가 됐을까. 청년시절에 읽었던 이외수 작가의 한 단편소설 줄거리다. 유일하게 곤충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동양적 신비주의를 내세워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의 제목은 ‘장수하늘소’다. 이 녀석은 고대 로마제국 병정의 투구처럼 머리에 날카로운 뿔 2개가 돋았다. 갑옷 같은 각질이 온몸을 감싼 점도 특징이다. 다른 벌레와 달리 늠름함도 느껴진다. 예전에는 숲속에서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드물다.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좀 더 들여다보자. 국내에서 생물학적으로 처음 기록된 시점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이다. 곤충학자인 조복성 박사에 의해서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체수가 급감했다. 국가유산청(당시는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로, 환경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각각 지정했다. 종적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난 건 지난 2006년이었다. 암컷 한 마리가 광릉숲에서 관측됐다. 앞서 2002년에는 수컷 한 마리가 발견됐지만 사체였다. 국립수목원은 장수하늘소 인공사육과 복원연구 등을 진행 중이다. 매년 서식지도 복원하고 있다. 지난해는 인공증식 개체와 야생서식 개체의 자연번식 장면이 처음으로 관찰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립수목원이 최근 광릉숲에서 장수하늘소를 또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녀석은 수컷이다. 몸길이는 84.4㎜, 체중 9.4g 등이다. 상태도 양호했다. 국립수목원은 인공사육으로 확보한 암컷 개체들과 짝짓기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한 뒤 광릉숲에 방사할 예정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보존은 후손들을 위한 의무다.

[지지대] 기후위기 수난시대

‘200년 만의 폭우’, ‘한 달 내릴 비가 한 시간 만에 내렸다’. 요즘 장마철 비는 극한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다. 이른바 극한호우는 국지성으로 짧은 시간에 집중돼 피해를 주고 있다. 그래서 올여름 장마는 그동안 수해 걱정 없던 지역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극한호우는 이미 크고 작은 저지대 침수와 산사태 등으로 재산상·인명 피해까지 입혔다. 특히 경기도내 각 지자체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아슬아슬하게 범람 위기로 내몰았다. 최근 수도권에 내린 극한호우로 오산의 오산천, 광주의 경안천, 평택의 통복천 등 주요 하천이 넘칠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조금만 더 호우가 이어져 범람했다면 그 피해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기상전문가들은 극한호우의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꼽는다. 인간이 배출하는 오염물질, 탄소량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지구 온도가 올라가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후위기 경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수십년 전부터 기상이변이 벌어질 때마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있어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대비하는 모습은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해 발생한 수해 지역의 현장 복구가 늦어져 다시 피해가 났다는 뉴스는 장마철 단골이 된 지 오래다. 도심 우수 처리 용량을 늘려야 하는데 예산 부족으로 하지 못한다는 답답한 소식도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한 달 내릴 비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내리는 상황에서 이제 수해 안전지대는 없다. 이대로 당할 것인가, 준비할 것인가. 앞으로 기상이변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인 대비가 시급하다. 기후위기라는 불은 이미 발등에 떨어졌다.

[지지대] 폐지 줍는 어르신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가시는 어르신. 새벽마다 도심 주택가에선 낯익은 광경이다. 애달프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가운데, 광주광역시가 어르신 607명을 대상으로 8월 한 달간 대체일자리에 참여할 자원재생활동단을 모집했다. 폭염에 폐지 수집 대신 재활용품 선별배출작업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였다. 활동비로 2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참여하겠다고 나선 어르신은 고작 40여명에 그쳤다. 선정 예정 인원의 10%를 밑돌았다. 절반가량은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 근로소득이 늘어 복지 혜택 감소도 우려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어디 광주광역시뿐이겠는가.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전국에 1만4천831명이고 월소득은 76만6천원에 그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지자체 229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다. 전국 고물상 7천335곳 가운데 이들이 납품하는 고물상은 3천221곳이다. 고물상 한 곳당 평균 활동 인원은 4.6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2천530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 2천511명, 경남 1천540명, 부산 1천280명 등이다. 이 같은 활동으로 받는 소득액을 보면 50만원 이상~60만원 미만이 23.9%로 가장 많았다. 70만원 이상~80만원 미만 13.9%, 60만원 이상~70만원 미만 13.3% 등이었다. 연령대는 80~84세 28.2%, 75~79세 25.2%, 70~74세 17.6% 등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55.3%로 남성보다 많았다. 이들을 위한 현실성 있는 복지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어르신들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은 불가능했다. 대한민국의 과거를 찬찬히 복기하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지지대] AI 디지털교과서

종이 없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내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도입된다.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맞춤 학습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다. 단순히 종이 교과서를 스캔해 디지털 기기로 옮긴 것을 넘어, 학생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AI는 학생 분석을 한다. 학생들이 자주 틀린 문항을 기반으로 주요 개념을 다시 설명하거나 비슷한 문제를 제시한다. 학습목표를 어느 정도 완수했는지 점검도 한다. 교육부는 2025년 초등 3~4학년, 중1, 고1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내년부터 수학, 영어, 정보 교과를 시작으로 2028년까지 국어, 사회, 과학, 역사 등에 도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교육 방법이나 기술 도입만이 아니라 교사-학생의 관계, 학교 및 교실의 체제와 구조, 공교육의 정체성,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까지를 포괄하는 대변혁이기 때문이다. 자칫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교육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끌려다니는 교육이 될 수 있다. 교육 신기술이 계층 간 학습 격차를 키운다는 주장도 있다. 읽기 능력과 문해력 감소, 능동적 사고 저하 등의 부작용도 걱정된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들어간다. 현재 교원 연수에만 3천800억여원이 배정됐는데 학교 인프라 개선, 디바이스 보급, 기술검증 등의 비용까지 고려하면 향후 조 단위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관련 사업은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 AI 디지털교과서는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시범학교 운영 등 체계적 검증도 부족하다.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AI 디지털교과서에 교사와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준비가 충분치 않고 실효성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교육 디지털화’를 추진하다가 중단한 나라들이 있다. 스웨덴에선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학습을 중단했고, 핀란드는 종이책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서두를 이유가 없어 보인다.

[지지대] ‘나뭇잎 지뢰’ 주의보

올해 장마는 유난히 변덕스럽다. 밤에 집중적으로 내려 ‘야행성 폭우’라는 특징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쏟아질 지 예측이 어려워 ‘스텔스 장마’라고도 한다. 레이더망을 피해 숨어 있다가 갑자기 공격하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예상치 못했던 장마가 갑자기 튀어나와 물폭탄을 퍼붓는 상황이 반복돼 이런 별칭이 붙었다. 스텔스 장마로 기상청이 보유한 슈퍼컴퓨터의 강수량 예측이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에 퍼부은 물폭탄으로 산사태와 하천 범람, 인명피해, 농경지 침수 등 피해가 심각하다. 경기 북부의 피해도 컸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하나 더 있다. 북한에서 떠내려오는 지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나뭇잎처럼 생겨 탐지와 식별이 매우 어려운 일명 ‘나뭇잎 지뢰’를 개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장마에 나뭇잎 지뢰가 떠내려왔을 것으로 우려, 최전방지역 군부대에선 주민들을 대상으로 유실지뢰 경고문까지 배포했다. 군부대에 따르면 나뭇잎 지뢰는 색상이 갈색과 녹색으로 돼 있어 위장 효과가 뛰어나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지뢰탐지기 등으로 탐지가 어렵다. 길이 16㎝, 폭 9㎝, 높이 2㎝ 크기로 스마트폰과 비슷하다. 무게가 60g에 불과해 손으로 살포할 수 있고 방수 기능도 갖췄다. 폭발력은 우리 군의 M14 대인지뢰(일명 ‘발목지뢰’)처럼 발목을 절단할 수 있다. 1.84~3.05㎏의 하중이 가해지면 폭발한다. 북한이 지난 4월부터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지뢰 수만개를 매설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임진강(파주·연천), 역곡천(연천·철원), 화강(철원), 인북천(인제) 등 남한과 이어진 하천 인근 지역에 집중 매설했다고 한다. 이 중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나뭇잎 모양 지뢰도 다수 포함됐다. 그동안 나뭇잎 지뢰가 우리 쪽으로 유실돼 인명피해를 낸 적은 없지만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대한 대응 방식의 하나로 오물풍선 외에 집중호우 때 ‘고의적인 지뢰 유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집경지대 주민과 장병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뢰에 대한 군당국의 특별관리가 절실하다.

[지지대] “센강에 배변하자”

예전에는 ‘세느강’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센강’으로 표기한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 한복판을 흐른다. 한때는 낭만적인 장소로 사랑받기도 했다. 이 도시에선 7월26일부터 8월11일까지 제33회 하계올림픽이 열린다. 206개국에서 1만500여명이 참가한다. 32개 종목에 329개의 경기가 펼쳐진다. 센강에서도 경기가 벌어진다. 철인 3종경기 수영과 수영 마라톤으로 불리는 오픈 워터 스위밍 등이 그렇다. 이런 가운데 요즘 이 도시에서 ‘센강에 배변하자’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고 외신이 전하고 있다. 센강에서 대장균 등 세균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나서다. 수영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질이 스포츠 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이 계속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관련 사이트까지 등장해 센강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다. 지금 파리는 물론이고 유럽에선 온통 이 문제가 화두다. 해당 사이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안 이달고 파리 시장 등도 비웃고 있다. 이들이 센강이 깨끗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센강에서 직접 수영하겠다고 선언해서다. “그들은 우리를 배설물 속으로 빠뜨렸고, 이제 그들이 우리의 배설물 속으로 빠질 차례”라고도 했다. 이달고 시장은 올림픽 개막 전까지 약속을 지키겠다고 밝힌 상태다. 외신은 프랑스 당국이 하계올림픽에 대비해 수영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재까지 최소 14억유로(약 2조1천억원)를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수질은 여전히 수영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시가 최근 센강 수질을 분석한 결과 대장균이 유럽의 수영 지침과 국제3종경기연맹의 기준(100㎖당 1천개)을 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서울 한강에서 하계올림픽 수영경기가 열린다면 상황은 어떨까. 센강의 환경 문제에서 우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

[지지대] 경인이 아닌 인경

어느 날 문득 우리가 흔히 쓰는 ‘경인(京仁)’이라는 단어가 궁금해졌다. 당초에는 서울과 인천을 붙인 의미로 쓰였다. 처음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 경인선(경인국철)이다. 1898년 5월 경인철도를 깔기 위해 생긴 경인철도합자회사 이름에 이 표현이 처음 문서화했다. 이후에는 경인국도, 경인고속도로 등으로 확대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금은 경인이라는 단어는 경기도와 인천을 붙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인천교육대학교가 경기도 안양에 캠퍼스를 둔 뒤 교명을 경인교대로 바꾼 것도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경인은 수도권 전체를 의미하는 별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수도권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진 상태다. 수도권에서는 서울특별시를 따로 분리하고 경기도·인천시를 함께 묶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점점 경인은 ‘서울-인천’의 의미가 아니라 ‘경기-인천’의 의미로 바뀌는 추세다. 그렇다면 이 경인이란 단어는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2조(지방자치단체의 종류)에는 시·도의 순서를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지도나 내고장알리미 등에서도 공식적으로 이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이 순서를 적용하면 우리는 ‘경기-인천’을 뜻하는 경인이란 단어 대신 ‘인천-경기’를 뜻하는 인경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셈이다. 우리가 그동안 관행적으로 써 온 ‘서울-인천’을 의미하는 경인이라는 표현은 이제 점점 사라져 가고 ‘경기-인천’을 뜻하는 단어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공식 시·도 순서를 적용해 ‘인천-경기’를 뜻하는 인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어색하다. 수십년간 경인이라는 단어를 쓰다가 인경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입에 착 달라붙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익숙해질 수 있도록 지자체는 물론이고 언론 등에서 지금부터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씁쓸한 제헌절

“국력을 모으고 정치를 다스린다.” 독일의 헌법학자 크리스티안 슈타르크 교수의 정의가 명쾌하다. 헌법이 그 주체다.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통합에도 이바지한다. 권력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지 않도록 규제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의를 실현한다는 게 슈타르크 교수의 이론이다. 헌법은 국가의 기강이기도 하다. 행정조직과 통치작용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오늘 제정됐다. 이후 아홉 차례 개정됐다. 전문과 총강(總綱),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개정의 10장으로 나뉜 전문 130조와 부칙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심대한 의미를 갖춘 헌법을 제정한 날이 곧 제헌절이다. 올해로 일흔여섯 번째다. 법률적 근거는 1949년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에 의해 제헌절과 함께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등이 국경일로 지정됐다. 네 개의 국경일을 4대 국경일이라고 불렀다. 2006년부터는 한글날도 포함됐다. 지금까지 국경일은 모두 공휴일이었다. 그런데 2008년부터 제헌절이 국경일 지위는 유지하지만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국회의원이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쉬는 것보다 기리는 게 더 중요할 텐데 말이다. ‘비구름 바람 거느리고/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삼백예순 남은 일이 하늘뜻 그대로였다/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새 언약 이루니/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대한민국 억만년의 터/손 씻고 고이 받들어서/대계의 별들 같이 궤도로만/사사없는 빛난 그 위 앞날은 복뿐이로다/바닷물 높다더냐 이제부터 쉬거라/여기서 저 소리나니 평화오리다’. 정인보 선생의 노랫말에 박태준 선생이 곡을 붙인 ‘제헌절 노래’ 가사다. 과연 몇 명이나 이 노래를 기억할까. 씁쓸하다.

[지지대] ‘일하는 70대’ 증가

30~40년 일하고, 정년 퇴직 후에도 또 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녀들의 취업·결혼·출산 나이가 30~40대로 밀리면서 은퇴 나이도 늦어지고 있다. 현재 법정 정년인 60세까지만 벌어서는 자녀들을 부양하기 어렵다. 자신들의 노후 준비도 덜 돼 있어 일터를 떠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 기준 60대 후반(만 65~69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5.5%다. 지금 60대인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은 산업화 시대의 주역으로 20대 초중반부터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열심히 일해왔다. 그러나 정년 퇴직을 한 다음에도 두 번째 일자리를 찾아 5~10년 이상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령층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엔 70대 이상 취업자 수 증가 폭이 60대를 제치고 전체 연령대 가운데 1위로 올라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5세 이상 취업자수는 2천844만9천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2만명 증가했다. 일자리 증가세를 주도한 건 고령층이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28만2천명 늘었다. 특히 70세 이상 취업자(192만5천명)는 15만명 급증했다. 70세 이상 취업자 증가폭은 2022년 14만6천명, 작년 14만8천명에 이어 계속 커지고 있다. 칠순을 넘어 일하는 건 쉽지 않다.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고달프고 힘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6월, 중장년층이 퇴직 후 저숙련·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중장년층이 이전 직무와의 연속성이 단절된 ‘육체 단순노동’ 등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2020년 기준 노인 빈곤율이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1위다. 70대 고령층의 ‘은퇴 지각’은 자녀 문제도 있지만 노인 빈곤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노인이 돈을 벌고 있는데도 빈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면, 국가가 짐을 덜어줘야 한다. 가난 비관에 따른 자살 문제 등을 방관해선 안 된다.

[지지대] ‘사도광산’ 세계유산 반대

사도킨잔(Sado mine)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금산(金山)이다. 1601년 금맥이 발견, 이후 30여년 간 전성기를 맞아 매년 금 440㎏, 은 40t 정도를 채굴했다. 1989년 폐광됐고, 현재는 관광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갱도의 총 길이가 약 400㎞인데 300여m를 관광 루트로 공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사도광산은 조선인 강제노역이라는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이후 1천500여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런 사실은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입증된 상태다. 사도광산 주변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등재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에도시대로 한정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숨기려는 꼼수다.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지난 6월 사도광산 등재와 관련해 ‘보류’를 권고했다. ‘조선인 강제 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취지이자 일본의 흑역사 지우기가 잘못됐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는 21일부터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강제징용을 포함한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시도는 ‘군함도 시즌2’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2015년 일본은 군함도의 등재를 신청하면서 평가 기간을 1910년 메이지시대까지로 한정했다. 우리는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을 반영해야 등재에 동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일본은 사실대로 역사를 기록하고 희생자를 기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하지만 일본은 피해자를 기리겠다는 등재 당시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때문에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조건부 등재는 또 우리를 농락하는 꼴이 된다.

[데스크칼럼] ‘인구 절벽’ 탈출 위해 지혜를 모으자

문제 의식은 공감하는데 해법이 없다. 날로 감소하고 있는 인구 문제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2020년 정점을 찍은 후 이듬해부터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합계출산율 1.45의 절반 수준으로 올해는 0.68명, 내년에는 0.64명으로 더 떨어지는 등 인구절벽이 더욱 심화되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인구 급감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함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출산율 제고를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과 경제 성장 둔화, 복지 시스템의 붕괴와 지방 소멸 등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내년에 합계 출산율이 2.1명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2040년 생산가능 인구는 2천910만명으로 2025년 3천591만명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정부는 저출생 관련 예산을 47조원이나 투입했으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 있어 결혼과 아이를 갖는 것이 ‘축복’이 아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입시와 좋은 직장 갖기, 내 집 마련 등에 매몰돼야 하는 환경에서 살아온 게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에 정부가 육아휴직 확대와 육아휴직 급여 인상, 기존 제도의 유연한 변화 등에 힘쓰고 있으나 효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수요자가 원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에 따른 현실적인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경기도는 최근 ‘일·가정 양립지원 가족친화 문화조성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가족 친화적 일하기 좋은 기업 인증제도 도입과 임신 및 육아·돌봄 직원 ‘4·6·1육아응원 근무제’ 시행, 경력단절방지 도입 기업 지원,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 신설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저출생 대응의 핵심인 ‘일·가정 양립’으로 저출생 문제 극복을 위한 가족친화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다. 어제(7월11일)는 제13회 인구의 날이었다. 경기도와 인구보건복지협회 경기도지회는 인구의 날을 기념해 6일부터 12일까지를 ‘경기도 인구주간’으로 설정해 다채로운 행사를 펼쳤다. 인구 변화에 대응하는 이민정책 토론회와 100인의 아빠단 도민특강, 경기도 공무원 인구교육, 저출생 인식개선 뮤지컬 공연, 청소년 인구교육 소통 프로그램 등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경기도지회는 인구주간 행사 참여인증 캠페인도 함께 전개했다. 인구 문제 해결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국민 모두, 특히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현실적인 정책, 아이와 가정이 주는 의미 등을 기성세대와 함께 고민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지지대] ‘팜호초 열풍’

젊은이들만의 코드가 있다. 줄임말도 이런 카테고리에 속한다. ‘팜호초’가 딱 그렇다. 이쯤 되면 뭔 말이냐고 반문하는 기성세대들이 많겠다. 모국어의 조합인가, 아니면 외국어끼리의 결합일까.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걸그룹 ‘뉴진스’를 소환해보자. 그룹 명칭에 청바지를 뜻하는 ‘진(Jean)’이 들어갔다. 청바지처럼 청년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도 녹아 있다. 결성된 건 2년 전이다. 멤버는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 등 5명이다. 이들이 지난달 일본 도쿄돔에서 일을 냈다. 지난 6월27, 28일 이틀 동안 열린 콘서트에 관객으로 9만명이 몰렸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케이팝 역사상 최단 기간 도쿄돔에 입성해 최다 관객을 불렀다고 극찬했다. 그럴 만도 하겠다. 이런 가운데 멤버 중의 한 명인 하니가 또 한 건을 터뜨렸다. 베트남계 호주인으로 본명은 하니 팜이다. 그녀가 팬미팅에서 일본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노래 ‘푸른 산호초’를 열창해서다. 일본 관중들이 열광했다. 특히 중년 남성 팬들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다. 마쓰다는 일본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다. 당시는 케이팝이 발아하기 전이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이 한반도를 강타했던 시절이다. 팜호초라는 줄임말은 그렇게 탄생됐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본명인 하니 팜의 ‘팜’과 마쓰다 세이코의 히트곡 ‘산호초’가 결합됐다. 요즘 이들 덕분에 잠시 주춤했던 K-걸그룹이 부활하고 있다. 한국 팬들도 “하니 팜 덕에 일본 노래도 들어보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대중가요라면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밖에 모르던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도 열광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이 대중가요로 다시 뭉치고 있다. 걸그룹 멤버 한 명이 일본인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오는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말이다.

[지지대] 독이 든 성배

계약 해지에도 웃으면서 떠난 위르겐 클린스만. 천문학적인 위약금만 받아 챙기고 무책임한 발언을 전 세계 언론에 떠들고 다니는 그에게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이라는 직함도 쓰기 싫다. 그런데 그 클린스만이 남긴 여파가 대한민국의 축구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5개월간의 감독 공석과 두 차례에 걸친 임시 감독 체제,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의 돌연 사퇴, 그리고 기술발전위원장의 짙은 호소. 선택은 홍명보 감독이었다. ‘영원한 리베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이자 캡틴, 감독으로서는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축구의 산증인이자 상징이다. ‘2016 브라질 월드컵’의 처참한 결과가 아픈 상처로 남아 있지만 절치부심(切齒腐心) 끝에 울산 HD FC를 이끌고 K리그1 2연패를 달성하며 다시 한번 감독으로서 명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런 홍명보 감독 선임을 놓고 말이 많다. △외국인 감독이 아닌 국내 감독 선임 △선임 과정에서의 잡음 △K리그 감독 빼내기와 ‘배신자 프레임’ 등 서포터스의 반발 △근본적인 대한축구협회의 무능함 등 연일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홍 감독도 하루 반나절 만에 입장을 번복하며 ‘국대 감독 제안’을 받아들일 때 지금과 같은 거센 후폭풍이 일어날 것 쯤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4강 신화의 DNA를 물려받은 국내 지도자도 충분히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지금은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대한민국 황금세대가 피치 위에 있지 않은가. 어차피 선택된 인사이며 홍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역적’인 그 성배. 그 짐을 지겠다고 나선 이도 홍 감독이다. 물론 여러 방면으로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런 홍 감독이 할 일은 분명하다. 정치 분열에 지친 국민들에게 ‘원팀은 이런 것’이라는 속 시원한 퍼포먼스, 그걸 보여 주면 된다.

[지지대] 일단 돌풍은 멈췄지만...

‘일단 멈춘 돌풍...’. 최근 끝난 프랑스 총선 결과를 놓고 외신들이 뽑은 헤드라인이다. 예상을 뒤엎은 반전 드라마의 제목으로는 좀 인색하다. 당초 극우세력인 국민연합(RN)의 압승이 예고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 182석, 범여권 168석, RN 143석 등 딴판이었다. 마린 르펜 후보가 이끄는 RN이 받은 최종 성적표는 초라했다. 1위에 오른 NFP가 되레 눈길을 끌고 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이 뭉친 정치세력이다. 이들의 단결은 지난달 9일 이뤄졌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이 압승을 거둬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NFP는 RN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평소 이들은 경제정책이나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선 이견을 보였다. 하지만 명쾌한 공동의 목표 앞에선 한목소리를 냈다. 명칭은 1930년대 유럽 파시즘 부상에 맞서 결성한 좌파연맹인 ‘민중전선’에서 따왔다. 사실 총선 초반에는 심드렁했다. RN의 압승이 관측돼서다. 중반부터 1위를 유지했다. 승리는 일찌감치 예고됐다. 그런데 의외로 3위에 그쳤다. 이런 결과의 배경에는 유권자들 사이에 형성된 ‘공화국 전선’이 있었다. 이 나라 정치사에서 극우정당이 위협적 존재로 떠오를 때마다 형성된 세력이다. 이번에도 힘을 발휘했다. 공화국 전선은 극우세력 집권 저지라는 목표로 이념을 초월해 하나로 뭉쳤다. 프랑스는 과반 정당이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로 향하면서 경제 리스크를 안게 됐다. 특히 예상을 뒤엎고 좌파연합이 제1당으로 급부상해 향후 정부 지출이 늘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식과 채권 등 금융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꼭 먼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지지대] 일방통행 도로

도로에는 수많은 규칙이 존재한다. 원활한 교통 흐름과 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한 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한 구간도 있다. 이를 ‘일방통행 도로’라고 한다. 일방통행 도로는 좁은 골목길이나 상가가 밀집해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 설정한다. 진입 가능한 구간은 바닥에 ‘일방통행’이란 글씨와 함께 화살표(↑)가 표시돼 있고, 불가능한 입구에는 통행금지 표시가 있다. 이런 구간에선 역주행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하고 있지만 간혹 오류가 있다. 운전자가 표지판을 제대로 안 보고 역주행하는 사례도 있고, 알면서 진입하는 경우도 있다. 진입금지 표시 구간에 자동차가 진입 하면 적발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른 운전자의 사진 또는 블랙박스를 통한 신고로도 벌금을 부과받는다. 승용차 7만원, 승합차 8만원, 자전거 3만원이 부과된다. 현장에서 경찰관에 의해 적발되는 경우 승용차 6만원, 승합차 7만원으로 과태료는 조금 낮지만 추가로 벌점이 15점 부과된다. 실수로라도 일방통행 구간에 진입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잘못 들어선 것을 알았다면 바로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후진해 올바른 구간으로 통행해야 한다. 교통법규를 무시하거나 위반할 경우 사고를 부르고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서울시청 인근 일방통행 도로에서 역주행 교통사고로 9명이 사망했다. 역주행 사고는 일반 교통사고에 비해 3배 가까운 치사율을 보여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실제 헷갈리는 일방통행 구간이 많다. ‘일방통행’과 ‘양방향 통행’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구간은 운전자들이 순간적으로 착각해 사고가 잦다. 구도심 등의 일방통행 노면 표시는 낡거나 지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밤에는 식별이 더 어렵다. 교통표지판이 설치돼있지 않은 곳도 있다. 일방통행 도로는 언제든 역주행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때문에 운전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도로 표시를 눈에 잘 띄게 해야 한다. 차량 유도선을 설치하고 진입 금지나 노면 표지 등이 야간에도 잘 보일 수 있게 반사가 잘되는 안료를 써서 보강해야 한다. 지자체와 경찰이 일방통행 도로를 전수조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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