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4천600보는 원성과 곡성의 합이므로 원성이 아닌 시설물은 모두 곡성일까? “아니요”이다. 이유는 시설물은 두 부류가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곡성인 시설물이고 다른 하나는 곡성도 아니고 원성도 아닌 부류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곡성을 이해하게 되고, 화성을 알게되는 것이다. 곡성은 무엇일까? 의궤 권수에 “화성 둘레의 통계가 4천600보가 되는 셈”이라 하고 뒤이어 4천600보의 내역을 설명하며 “문이나 초, 치, 포, 대, 돈 등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635보 4척이고 이 밖에 원성이 3천964보 2척”이라고 기록했다. 기록을 보면 4천600보는 화성의 총 길이이고 문, 초, 치, 포, 대, 돈이 차지한 길이와 원성 길이를 합한 것이 된다. 하지만 곡성이란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권1 ‘어제성화주략’에 그 실마리가 보인다. 어제성화주략이란 “성역을 계획할 때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임금께서 몸소 계획하시어 특별히 감동하는 신하에게 내렸다”라고 설명한다. 성화주략은 다산 정약용이 만든 화성 건설 기본계획서라고 지금껏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임금께서 몸소’라는 기록을 보면 마치 임금과 신하가 원저자를 놓고 다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뒤에 ‘계획하시어’를 붙인 것을 보면 임금은 전략과 지침을 주고, 신하는 이를 받들어 계획서를 만든 것이 된다. 설계 과정으로 보면 정조는 발주자 요구사항(Owner’s Requirements)을 다산에게 건네고, 다산은 이를 기준으로 설계지침(Design Criteria)을 만든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성화주략에 유일하게 곡성이란 용어가 나온다. “그 둘레가 곡성까지 합해 약 3천600보라야 겨우 계획한 바에 들어맞는다”라는 기록이다. 여기서 3천600보는 당초에 계획한 화성의 규모다. 이 계획이 실제로는 4천600보로 공사를 마쳤다. 따라서 의궤 권수에 나오는 4천600보는 ‘곡성을 합해 4천600보’란 의미다. 권수에 4천600보에 대해 “문이나 초, 치, 포, 대, 돈 등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635보 4척이고 나머지가 원성”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전체 화성의 길이에서 원성을 뺀 나머지 635보4척이 곡성이 되는 것이다. 화성 성역 200년 전 류성룡은 축성론에 “고대 성제에서 치는 곧 지금의 곡성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서 곡성은 치처럼 성 밖으로 돌출한 성을 말하고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치의 형태는 3면이 돌출된 형태여서 ‘굽을 곡’을 붙여 곡성이라 칭한 것 같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돌출된 모양이라고 모두 곡성은 아니란 점이다. 분별이 필요하다. 권수 도설 성지전국 편에 ‘곡성 635보4척’에 해당하는 시설물 이름과 길이가 일일이 기록돼 있다. 이 중 곡성이 아닌 시설물을 알아두는 것이 곡성 여부를 파악하는 요령이다. 곡성이 아닌 시설물을 요인별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눠 봤다. 첫째, 구조상 성이 될 수 없는 부류다. 지, 은구, 용연이 해당된다. 세 가지 모두 ‘연못 지’, ‘도랑 구’, ‘못 연’처럼 물과 관련된 시설로 지표면 아래에 형성되는 시설물이다. 둘째, 4천600보와 무관한 부류다. 옹성과 용도가 해당된다. 의궤에 옹성과 용도는 성과 구분해 별도로 분류하고 있다. 원성과 곡성의 합인 4천600보에 포함되지 않는 시설물이다. 셋째, 위치상 자연지반 위에 세운 부류다. 장대 2곳, 각루 4곳, 포사 3곳, 그리고 서노대, 동북공심돈, 성신사로 12개 시설물이다. 의궤에 이 12개 시설물은 ‘성 안(在城身之內) 시설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부류는 돌출된 인공지반 위가 아니고 성 안쪽 원래의 땅 위에 세웠다는 의미다. 이 12개 시설물은 꼭 기억해 둬야 한다. 세 가지 경우를 합한 23개 시설물은 곡성이 아닌 시설물이다. 따라서 나머지 37개 시설물이 곡성이다. 유형과 시설물을 보면 문 4곳, 암문 5곳, 수문 2곳, 적대 4곳, 노대 1곳 동북노대, 공심돈 2곳,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봉돈 1곳, 포루(대포) 5곳, 포루(군졸) 5곳, 치 8곳으로 10개 유형에 37개 시설물이다. 8개 유형은 해당 시설물 모두가 곡성인데 노대에서는 서노대가, 공심돈에서는 동북공심돈이 곡성에 속하지 않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두 시설물은 물론 원성에도 속하지 않는 성 안 시설물이다. 참고로 곡성 길이 기준에 대해 알아보자. 하나는 좌우 길이, 즉 넓이(활)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다. 이것은 직선 형태를 한 문, 암문, 수문에 적용된다. 다른 하나는 돌출한 3면의 바깥 둘레(외주)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다. 여기에는 문을 제외한 포루(대포), 치, 포루(군졸), 적대, 동북노대,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봉돈이 해당된다. 화성 전체 곡성 시설물은 권수 도설을 참고하면 된다. 정리하면 “곡성은 원성에서 돌출된 인공지반 3면의 성, 그리고 원성과 원성 사이에 설치된 문, 암문, 수문을 말한다.”, “화성에는 37개 시설물이 곡성이고, 그 곡성 길이의 합은 635보4척이다. 곡성 길이는 전체 성 길이의 15%에 해당한다.” 곡성에 포함되고 제외되는 기준을 살펴봤다. 용어 하나하나의 정의를 중시한 성역의궤 기록을 통해 정조의 엄격함을 엿보았다. 이강웅 고건축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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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5 06:30